은은한 불빛 아래 박민정은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술만 달싹였다.유남준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고 박민정은 이불을 꽉 쥐었다.“오늘은 힘들어서 싫어요.”유남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서 규칙적으로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남준 씨...”“응.”“우리가 처음 포옹한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를 꽉 끌어안은 건 두 사람의 첫날밤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때 유남준은 그녀의 기분을 헤아리려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몰차게 떼어놨었다.박민정이 그때 일로 자신을 원망하려는 건 줄 안 유남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때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그에게 이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나 다름없었다.한편 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두 사람이 처음 포옹한 건 아직 학생이었을 당시 그가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괴롭힘당하던 그녀를 구해줬을 때였다.그런데 그때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니?하지만 박민정은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얘기했다.“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기억으로 박민정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자신을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한 첫날밤에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니?그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민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그때는 남준 씨가 정말 멋져 보였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결혼 같은 건 꿈도 꿔본 적이 없어요.”유남준도 그 어린 여자아이와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박민정을 처음 만났던 건 그녀가 10살이었을 때였다. 그때의 그녀는 여리고 가녀렸지만, 얼굴에 띤 미소만큼은 그 누구보다 빛이 났다.“우리는 다
박민정은 그 말에 유남준의 손을 잡고 포옹한 후 가볍게 입까지 맞췄다.그렇게 끝난 줄 알고 방에 들어가자 유남준이 손에 들린 떡볶이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그녀의 머리를 잡고 짙은 키스를 해왔다.유남준은 방금 스킨십을 해오는 박민정의 눈동자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그는 괜히 심통이 나 그녀의 입술을 꽉 깨물어버렸다.박민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치려고 하자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버렸다. 이에 그녀는 복수라도 하려는 듯 그의 입술을 똑같이 깨물어버렸다. 그러고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질 때쯤 입술을 뗐다.유남준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속삭였다.“내 얼굴 똑바로 보고 내 이름을 불러.”박민정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입술은 그녀 때문에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남준 씨.”평온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두 눈에 언제나 자신만 담던 여자아이의 눈이 아니었다.유남준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는 눈가가 빨갛게 변해버린 채 그대로 박민정을 안아 들었다.그는 그녀가 발버둥 치는 것도 무시한 채 그렇게 소파에 올려놓았다.“내 이름을 불러.”유남준은 한없이 다정했다가 또다시 지금처럼 발작했다.“남준 씨.”담담한 그녀의 말투에서는 역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유남준은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내리치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그는 아무 말 없이 박민정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뜨거운 행위를 마치고 보니 그가 사온 떡볶이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었다.유남준은 직원에게 부탁해 다시 사 오라고 하려 했지만, 박민정이 그를 제지했다.방 안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었기에 데워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데운 후의 떡볶이는 그녀가 알던 그 맛이 아니었다.그러다 문득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자조하듯 웃었다. 두 사람 사이는 마치 이 떡볶이처럼 다시 데운다고 한들 처음 같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아침을 먹은 후, 유남준은 차를 몰아 박민정과 함께 그
방안에는 그녀의 아버지인 박형식의 유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중 그녀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의 아버지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박형식이 죽은 후 그녀의 어머니인 한수민과 동생 박민호는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종국에는 집안에 돈이 되는 물건들은 전부 다 경매에 넘겨버렸다.박민정이 귀국한 이유 중에는 그의 아버지 유품들을 되찾기 위함도 있었다. 특히 자신을 그린 이 작품을 말이다.박형식이 이 그림을 그렸을 때 그녀는 막 10살이었고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베란다에 앉아 꽃을 들고 웃고 있었다.박민정은 한 걸음 한 걸음 그림을 향해 다가갔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흰색 머리로 뒤덮인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녀에게 그림을 그려줄 때 그의 아버지는 항상 인자하고 다정한 얼굴을 했었다.박민정은 손을 들어 그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다시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이 그림은 특별함 따위는 없는 그림이라 분명히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유남준이 찾아낼 줄이야...유남준은 박민정의 표정을 보며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걸 선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이것들 전부 두원 별장으로 옮겨가도 돼.”그는 그녀가 두원 별장을 떠나기 싫어지도록, 그녀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집에 들이고 싶었다.박민정은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고마움 가득 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고마워요.”“그러니까 앞으로는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해. 괜히 이상한 투정부리지 말고.”이상한 투정...그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박민정의 눈동자가 다시 차갑게 식었다.유남준은 이때다 싶어 블랙카드를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네가 원하는 대로 써.”두 사람이 결혼했을 당시 유남준은 항상 서다희를 통해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곤 했었다. 그러다 박민정이 떠나고 나서야 그녀가 서다희가 건네준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박민정은 눈앞에 놓인 카드를 보며 전혀 기
펑! 펑!예쁜 불꽃들이 하늘에서 반짝였다가 금세 사라져 버린다.그때 옆에 있던 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은 빨개진 얼굴로 수줍어하는 여성의 손을 잡고 평생 같이하자고 외쳤다.박민정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도 가슴 뜨거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에게 반한 뒤로 그녀는 자신에게 구애해오는 남자들은 전부 무시해버렸고 그렇게 연애 한번 하지 못한 채 그와 결혼을 했다.그러니 달콤하고 애틋한 연애란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오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빠, 나 후회해요.”유남준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8시 반이 되고 계속 될 것 같던 불꽃놀이도 끝이 났다.사람들이 서서히 돌아가고 서다희도 마침 박민정을 데리러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강변에 홀로 남겨진 쓸쓸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며칠 전 자신의 약혼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어?”이 순간, 서다희는 박민정을 동정했다.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천천히 박민정의 곁으로 다가왔다.“민정 씨, 집까지 모시겠습니다.”박민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실망감이 가득한 눈길을 거두어들이고 애써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고마워요.”차에 올라탄 후 서다희는 히터를 조금 높게 틀었다.몇 년 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박민정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아직 많이 여린 편으로 특히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가뜩이나 허약한 몸이 후 불면 날아갈 듯했다.서다희는 유남준을 대신해 그녀에게 해명했다.“이지원 씨가 사생팬에게 습격을 당했어요. 응급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대표님 얼굴이 보고 싶다는 것이였어요...”사생팬...박민정이 쓰게 웃었다. 유남준이라면 조금만 조사해도 임수호가 그녀의 사생팬이 아니라는 걸 알텐데.
박민정이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지석이 전화를 걸어왔다.전화를 받자 연지석이 얘기했다.“오늘 내가 사람을 시켜서 임수호를 데리고 이지원을 만나러 가게 했어.”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이지원이 정말 임수호 때문에 다친 건가?“그거 알아? 그 여자, 임수호를 죽이려고 했어. 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임수호는 죽었을 거야.”연지석은 박민정에게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며칠간, 그는 사람을 시켜 임수호에게 이지원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하지만 그 멍청한 임수호는 믿지 않았고 오늘 이지원의 집까지 찾아갔다.이지원은 그저 그를 위로해 주는 척하다가 몰래 그에게 수면제를 먹였다. 그리고 그가 잠에 든 후, 가스 밸브를 열어 사고로 위장하려고 했다.하지만 연지석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데려왔다.이지원은 들통날까 봐 두려워 자해를 했다. 그리고 먼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사생팬이 그녀의 집에 들어와 그녀를 해쳤다고 얘기했다.모든 것을 들은 박민정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박민정은 이지원이 이토록 악독할 줄은 몰랐다.박민정의 추측이 맞다면 이 모든 것은 이지원의 자작극일 것이다.아무 대답 없는 박민정을 보면서, 연지석은 걱정이 되었다.“민정아, 괜찮아?”“괜찮아.”박민정은 정신을 차리고 얘기했다.“그저 이지원이 그렇게 악독한 줄 몰랐었어.”“고아로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쉬운 애가 아니야.”그렇게 얘기한 연지석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났다.“너 같은 사람은 꼭 주의해야 해.”그는 약간 멈칫하더니 또 조심스레 물었다.“임신하기 위한 일은 어떻게 됐어?”박민정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응, 얻었어.”“그래. 그럼 내가 얼른 윤우를 데리고 나올게. 그리고 같이 에스토니아로 돌아가자.”박민정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윤우가 갇혀 있는 곳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병원과 완전히 달랐고 경비도 삼엄했다. 아무리 연지석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며칠 좀 더 기다려줄래? 내가 유남준
“걱정하지 마, 모든 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연지석이 얘기했다.하민재는 연지석이 모른는 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 말할 수가 없었다.“내가 들은 소문 알려줄까? 유남준의 여자가 다쳤대.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사업한다는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어디서 그런 쓰레기를 주워 왔대?”“알고 싶지 않아.”연지석은 담담하게 얘기했다.하민재는 그제야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남준은 이지원을 여자 친구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 연지석이 좋아하는 사람을 아내로 두었으니.하민재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연지석은 깊은 눈동자로 창밖을 보면서 얘기했다.“언제 다시 돌아갈 거야?”“조금 더 있다가.”하민재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씨 가문의 형제들이 호시탐탐 연지석을 노리고 있는데, 이곳에 남아있다가 연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면 끝장이었다....병원에서.이지원은 연약하게 병상에 누워있었다. 목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오빠, 나 너무 무서워요...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그녀의 눈가가 천천히 젖어 들었다.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위로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옆의 경호원에게 물었다.“조사해 냈어?”“네. 이지원 씨의 팬이 먼저 도착했고 후에 들어온 사람들은 연지석의 부하들입니다.”경호원이 대답했다. 그는 이지원의 팬이 그날 박민정을 차로 친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쪽으로 연관을 지을 생각도 못 했다. 이지원은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연지석의 부하들이라면... 설마 민정...”그러더니 이내 입을 막고 얼른 말을 바꿨다.“그럴 리가 없어요. 민정 씨가 왜 이런 짓을 벌여요? 내가 민정 씨를 해친 적도 없는데 왜 나를 죽이려고 하겠어요?”이지원은 임수호를 데려간 게 연지석의 사람일 줄은 몰랐다. 저도 모르게 겁이 난 이지원은 먼저 선수를 쳤다.유남준은 이제 이지원의 말 때문에 박민정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연지석은 연지석이고, 박민정은 박민정이니까.“잘 쉬고
유남준의 눈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박민정을 찾아 나섰다.별장의 방을 여러 번 확인했지만 박민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유남준은 사람을 시켜 공항에서 박민정을 찾게 했다. 그러다가 뒷마당에 도착해서야 벤치에 앉아 있는 박민정을 보고 한숨을 내돌렸다.박민정은 잠이 오지 않아 밖에서 바람을 쐬던 중에 유남준이 급하게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는데.’시선이 마주치자 유남준은 성큼성큼 걸어와 단번에 그녀를 품에 안았다.어두운 불빛 아래서, 박민정은 약간 굳어버렸다. 붉어진 그의 눈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그가 얼마나 조급해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왜 방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거야.”유남준은 약간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박민정은 이 말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다.“그럼 저는 왜 이 시간에 꼭 방에 있어야 하는데요?”유남준은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아까 박민정이 사라졌을 때, 왜 그렇게 흥분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유남준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박민정이 또 물었다.“이지원 씨는 괜찮아요?”“남자가 목에 칼을 들이대서 아직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중이야.”유남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목에 칼을...’박민정은 이지원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원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었다.“범인은 잡혔어요?”그 사람을 떠올린 유남준의 시선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아니. 하지만 이지원의 팬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연지석의 보디가드였어.”유남준의 품에서 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남준을 쳐다보았다.“무슨 뜻이에요?”유남준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눈치채고 천천히 목울대를 움직였다.“연지석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유남준은 박민정이 이지원을 해치려고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연지석은 박민정을 위해 이지원을 해칠 사람이었다.박민정은 목이 약간 아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눈앞은 마치 뿌연 안개가 끼인
유남준은 불쾌한 감정을 꾹 내리누르며 박민정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키스를 퍼부었다.박민정은 그제야 유남준이 아까 손을 다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껏 유남준을 밀어냈다.“내가 아까 했던 말은 잊었어요? 당신과의 약속은 더 이상 지키지 않을 거예요.”유남준의 입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박민정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다.“이지원한테 빚진 건 갚아야 해.”유남준이 해명했다.‘빚이라...’박민정은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그럼 나한테는 빚진 게 없어요?”이지원은 유남준 어머니를 살렸다.그리고 박민정은 유남준을 살렸다. 하지만 유남준은 왜 이리도 뻔뻔한 걸까?유남준은 박민정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박민정이 얘기하는 ‘빚’이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를 무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너와 잘 살겠다고 약속할게.”다른 사람 앞에서 뜻을 굽히는 것은 처음이었다.만약 이 얘기를 5년 전에 들었더라면 박민정은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민정은 이제 더 이상 유남준을 믿지 않았다.“힘들어요. 쉴래요.”유남준은 바로 박민정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날 밤.박민정은 벗어나지 못하고 유남준 품에 안겨있었다.유남준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오늘 저녁에 본 빈방이 떠올랐다.손의 상처는 여전히 아릿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지원 씨가 남준 씨 어머니를 구한 일을 물어볼 수 있어요?”박민정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몰랐다.유남준은 고영란과 김인우가 죽을 뻔한 일을 얘기해 주었다. 같은 차를 타고 회사로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고, 후에 이지원이 그들을 구해주었다는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그 얘기를 들은 박민정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김인우가 왜 이지원한테 잘 해주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유남준이 이지원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