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밤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유남준은 박민정을 뒤에서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머리맡에 둔 작은 유리병을 보고는 드디어 떠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그 유리병 안에는 드디어 그녀가 얻고 싶었던 것이 들어있다.박민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유남준이 더욱 세게 안아왔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일단 그 물건을 침대 아래 숨겨두고 내일 유남준이 출근하면 다시 꺼내기로 했다.그러고는 몸을 돌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유남준을 바라봤다. 괜히 죄책감이 밀려왔던 그녀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아까 미안하다고 했던 건 진심이었어요. 그 이유가 죽은 척하고 당신을 떠난 것에 대한 건 아니었지만...’지금 그녀의 행동은 유남준을 속이는 것이 된다.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만 아이를 곁에 둘 수 있으니까.다음날, 날이 밝아오고 유남준은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품에는 아직 박민정이 있었고 이에 안도감이 들어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그러다 문득 그녀의 매끄러운 등에 오래된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태로 봐서는 자상인 듯했다.그때 박민정도 잠에서 깼고 유남준은 그녀에게 물었다.“등에 이 상처는 뭐야?”박민정이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원망과 슬픔이 가득 들어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기억 안 나요?”이 상처는 그때 칼을 맞을 뻔한 그를 구해주려다가 생긴 것이었다.그런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유남준과 김인우는 정말 친구가 맞나 보다. 두 사람 다 똑같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유남준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듯 다시 물었다.“언제 생긴 건데?”박민정은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열일곱 살 때요.”즉 유남준이 유씨 가문에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할 때였다.당시 그 범인이 유씨 가문에서 보낸 것인지 아니면 라이벌 회사에서 보낸 것인지는 몰랐지만 유남준은 하마터면 칼에 맞을 뻔했고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유씨 가문 사람들조차 알고 있는 일을 당사자인 그는 까맣게 잊어버렸
박민정은 나쁜 짓을 하고 들킨 아이 얼굴을 한 채 그와 눈이 마주쳤다.하지만 유남준은 화를 내지 않았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이제 알려 줘. 네가 원하는 게 뭔지.”박민정은 그와 금방이라도 코가 닿을 거리에서 유남준의 시선을 마주하며 거짓말했다.“그냥 단순히 당신과 하룻밤 보내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녀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유남준은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언뜻 슬퍼 보이기도 했다.“그럼 그 다음은? 이제 날 떠나려고?”박민정은 그에게 꽉 잡힌 어깨가 부서질 듯 아파 났다.“나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너는 내 허락 없이 진주시에서 절대로 못 나가. 벌써 잊었어?”박민정의 몸이 살짝 떨렸다.“잊은 적 없어요. 당신 돈 다 갚고 떠나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윤우가 여기 있는데 내가 몰래 떠날 리가 없잖아요.”“그 많은 돈은 어떻게 마련하게?”유남준이 물었다.박민정이 해외에서 꽤 유명세를 떨치는 작곡가인 건 맞지만 그가 준 돈을 다 갚으려면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어요.”박민정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어 말했다.“당신 돈 갚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하지만 유남준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힘을 더 꽉 주었다.“아파요.”박민정이 미간을 찌푸리고 나서야 그는 손에 힘을 풀었다.박민정은 이불로 몸을 가리며 천천히 뒤로 갔다.“그럼 난 먼저 씻을게요.”원래 그녀는 옷을 입으려고 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의 옷을 보니 전부 찢어져 있고 유남준의 옷과 함께 뒤엉켜 있는 바람에 이불이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이불을 돌돌 말은 채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유남준이 다시 한번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뭐가 그렇게 급해?”그의 목소리는 살짝 젖어있었다.“네가 전에 그랬지? 나와 부부처럼 지내고 싶다고. 손도 잡고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고...”
이혼을 결심한 이후로 박민정은 유남준과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유남준은 그녀의 잔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내 이름 불러줘.”박민정의 빨간 입술이 서서히 움직였다.“남준 씨.”유남준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입 맞출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 때문에 아쉽게도 분위기가 깨져버렸다.도우미가 두 사람의 식사를 올려왔다.그리고 한 시간 뒤, 식사를 마친 후 박민정이 물었다.“오늘 정말 출근 안 해도 되겠어요?”유남준은 그녀가 자신을 회사로 보내려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응, 직원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사실 처음부터 이래야 했다. 한 회사의 대표가 많은 것을 끌어안기보다는 적당히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나눠줄 줄도 알아야 한다.박민정은 조금 곤란해졌다. 그가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정자가 들어있는 그 유리병을 찾기 힘들 테니까.유남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내가 회사로 갔으면 좋겠어?”“아뇨.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박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번 달은 일에서 손을 뗄 생각이야. 너한테 더 신경 쓸 거니까.”일에서 손을 뗀다고...박민정은 조금 믿기 힘든 얼굴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참, 너 전에 신림현으로 가고 싶다고 했었지?”그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건네자 컵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두 사람이 막 결혼했을 당시 박민정은 자주 그에게 자신이 크고 자란 곳을 언급했다.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걸 공유하고 싶었으니까.“그랬죠.”“그럼 이따 거기로 갈 거니까 준비해.”한 달간 진짜 부부가 되기로 약속은 했지만, 정확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하여 그는 문득 누군가가 허니문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나 이런 제안을 꺼낸 것이다.박민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준비할게요.”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다가 조하랑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것을 봤다
신림현으로 가는 길에 장대비가 내렸다.박민정은 조수석에 앉아 우연히 운전석에 있는 유남준의 옆얼굴을 보고는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차창 밖을 바라봤다.솔직히 유남준을 얻기 전에는 그의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그가 있었다.유남준은 아주 잠깐 자신에게 머물었던 박민정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휴게소에 거의 다다를 때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가 조용하니까 적응이 안 돼.”그에 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전에는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그 말에 박민정은 쓰게 웃었다.“그런 내게 말 많은 거 싫다고 한 건 당신이었죠.”그녀의 말에 차 안의 분위기가 바로 차갑게 가라앉았다.박민정은 괜한 얘기를 했다는 생각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여기 휴게소에서 조금만 더 가면 단풍나무 숲이 보일 거예요. 되게 예뻐요.”벌써 가을이 훌쩍 다가온 시점이라 해가 빨리 지기 시작했고 비 때문인지 날씨도 점점 추워졌다.단풍나무 숲을 지나갈 때 저녁이기도 하고 비도 와 날이 어둡기는 했지만, 다행히 예쁜 단풍나무는 볼 수 있었다.그리고 이때 유남준은 실로 오랜만에 활짝 웃는 박민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마치 순진무구한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단풍나무 숲 풍경은 금세 사라졌고 박민정은 심심함을 달래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는 바람에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그때 유남준이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이거 써. 비번은 없어.”박민정은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에는 휴대폰을 건네받았다.그의 핸드폰에는 업무에 필요한 앱들과 연락할 때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노래를 듣는 앱도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최근 뉴스를 확인하러 포털에 들어갔다.그러자 인기 검색어에 이지원의 [공개 사과문]이라는 다섯 글자가 보였다.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남준이 그녀에게
은은한 불빛 아래 박민정은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술만 달싹였다.유남준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고 박민정은 이불을 꽉 쥐었다.“오늘은 힘들어서 싫어요.”유남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서 규칙적으로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남준 씨...”“응.”“우리가 처음 포옹한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를 꽉 끌어안은 건 두 사람의 첫날밤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때 유남준은 그녀의 기분을 헤아리려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몰차게 떼어놨었다.박민정이 그때 일로 자신을 원망하려는 건 줄 안 유남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때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그에게 이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나 다름없었다.한편 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두 사람이 처음 포옹한 건 아직 학생이었을 당시 그가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괴롭힘당하던 그녀를 구해줬을 때였다.그런데 그때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니?하지만 박민정은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얘기했다.“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기억으로 박민정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자신을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한 첫날밤에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니?그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민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그때는 남준 씨가 정말 멋져 보였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결혼 같은 건 꿈도 꿔본 적이 없어요.”유남준도 그 어린 여자아이와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박민정을 처음 만났던 건 그녀가 10살이었을 때였다. 그때의 그녀는 여리고 가녀렸지만, 얼굴에 띤 미소만큼은 그 누구보다 빛이 났다.“우리는 다
박민정은 그 말에 유남준의 손을 잡고 포옹한 후 가볍게 입까지 맞췄다.그렇게 끝난 줄 알고 방에 들어가자 유남준이 손에 들린 떡볶이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그녀의 머리를 잡고 짙은 키스를 해왔다.유남준은 방금 스킨십을 해오는 박민정의 눈동자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그는 괜히 심통이 나 그녀의 입술을 꽉 깨물어버렸다.박민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치려고 하자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버렸다. 이에 그녀는 복수라도 하려는 듯 그의 입술을 똑같이 깨물어버렸다. 그러고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질 때쯤 입술을 뗐다.유남준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속삭였다.“내 얼굴 똑바로 보고 내 이름을 불러.”박민정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입술은 그녀 때문에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남준 씨.”평온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두 눈에 언제나 자신만 담던 여자아이의 눈이 아니었다.유남준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는 눈가가 빨갛게 변해버린 채 그대로 박민정을 안아 들었다.그는 그녀가 발버둥 치는 것도 무시한 채 그렇게 소파에 올려놓았다.“내 이름을 불러.”유남준은 한없이 다정했다가 또다시 지금처럼 발작했다.“남준 씨.”담담한 그녀의 말투에서는 역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유남준은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내리치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그는 아무 말 없이 박민정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뜨거운 행위를 마치고 보니 그가 사온 떡볶이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었다.유남준은 직원에게 부탁해 다시 사 오라고 하려 했지만, 박민정이 그를 제지했다.방 안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었기에 데워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데운 후의 떡볶이는 그녀가 알던 그 맛이 아니었다.그러다 문득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자조하듯 웃었다. 두 사람 사이는 마치 이 떡볶이처럼 다시 데운다고 한들 처음 같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아침을 먹은 후, 유남준은 차를 몰아 박민정과 함께 그
방안에는 그녀의 아버지인 박형식의 유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중 그녀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의 아버지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박형식이 죽은 후 그녀의 어머니인 한수민과 동생 박민호는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종국에는 집안에 돈이 되는 물건들은 전부 다 경매에 넘겨버렸다.박민정이 귀국한 이유 중에는 그의 아버지 유품들을 되찾기 위함도 있었다. 특히 자신을 그린 이 작품을 말이다.박형식이 이 그림을 그렸을 때 그녀는 막 10살이었고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베란다에 앉아 꽃을 들고 웃고 있었다.박민정은 한 걸음 한 걸음 그림을 향해 다가갔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흰색 머리로 뒤덮인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녀에게 그림을 그려줄 때 그의 아버지는 항상 인자하고 다정한 얼굴을 했었다.박민정은 손을 들어 그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다시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이 그림은 특별함 따위는 없는 그림이라 분명히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유남준이 찾아낼 줄이야...유남준은 박민정의 표정을 보며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걸 선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이것들 전부 두원 별장으로 옮겨가도 돼.”그는 그녀가 두원 별장을 떠나기 싫어지도록, 그녀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집에 들이고 싶었다.박민정은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고마움 가득 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고마워요.”“그러니까 앞으로는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해. 괜히 이상한 투정부리지 말고.”이상한 투정...그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박민정의 눈동자가 다시 차갑게 식었다.유남준은 이때다 싶어 블랙카드를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네가 원하는 대로 써.”두 사람이 결혼했을 당시 유남준은 항상 서다희를 통해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곤 했었다. 그러다 박민정이 떠나고 나서야 그녀가 서다희가 건네준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박민정은 눈앞에 놓인 카드를 보며 전혀 기
펑! 펑!예쁜 불꽃들이 하늘에서 반짝였다가 금세 사라져 버린다.그때 옆에 있던 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은 빨개진 얼굴로 수줍어하는 여성의 손을 잡고 평생 같이하자고 외쳤다.박민정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도 가슴 뜨거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에게 반한 뒤로 그녀는 자신에게 구애해오는 남자들은 전부 무시해버렸고 그렇게 연애 한번 하지 못한 채 그와 결혼을 했다.그러니 달콤하고 애틋한 연애란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오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빠, 나 후회해요.”유남준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8시 반이 되고 계속 될 것 같던 불꽃놀이도 끝이 났다.사람들이 서서히 돌아가고 서다희도 마침 박민정을 데리러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강변에 홀로 남겨진 쓸쓸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며칠 전 자신의 약혼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어?”이 순간, 서다희는 박민정을 동정했다.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천천히 박민정의 곁으로 다가왔다.“민정 씨, 집까지 모시겠습니다.”박민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실망감이 가득한 눈길을 거두어들이고 애써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고마워요.”차에 올라탄 후 서다희는 히터를 조금 높게 틀었다.몇 년 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박민정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아직 많이 여린 편으로 특히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가뜩이나 허약한 몸이 후 불면 날아갈 듯했다.서다희는 유남준을 대신해 그녀에게 해명했다.“이지원 씨가 사생팬에게 습격을 당했어요. 응급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대표님 얼굴이 보고 싶다는 것이였어요...”사생팬...박민정이 쓰게 웃었다. 유남준이라면 조금만 조사해도 임수호가 그녀의 사생팬이 아니라는 걸 알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