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펑!예쁜 불꽃들이 하늘에서 반짝였다가 금세 사라져 버린다.그때 옆에 있던 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은 빨개진 얼굴로 수줍어하는 여성의 손을 잡고 평생 같이하자고 외쳤다.박민정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도 가슴 뜨거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에게 반한 뒤로 그녀는 자신에게 구애해오는 남자들은 전부 무시해버렸고 그렇게 연애 한번 하지 못한 채 그와 결혼을 했다.그러니 달콤하고 애틋한 연애란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오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빠, 나 후회해요.”유남준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8시 반이 되고 계속 될 것 같던 불꽃놀이도 끝이 났다.사람들이 서서히 돌아가고 서다희도 마침 박민정을 데리러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강변에 홀로 남겨진 쓸쓸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며칠 전 자신의 약혼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어?”이 순간, 서다희는 박민정을 동정했다.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천천히 박민정의 곁으로 다가왔다.“민정 씨, 집까지 모시겠습니다.”박민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실망감이 가득한 눈길을 거두어들이고 애써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고마워요.”차에 올라탄 후 서다희는 히터를 조금 높게 틀었다.몇 년 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박민정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아직 많이 여린 편으로 특히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가뜩이나 허약한 몸이 후 불면 날아갈 듯했다.서다희는 유남준을 대신해 그녀에게 해명했다.“이지원 씨가 사생팬에게 습격을 당했어요. 응급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대표님 얼굴이 보고 싶다는 것이였어요...”사생팬...박민정이 쓰게 웃었다. 유남준이라면 조금만 조사해도 임수호가 그녀의 사생팬이 아니라는 걸 알텐데.
박민정이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지석이 전화를 걸어왔다.전화를 받자 연지석이 얘기했다.“오늘 내가 사람을 시켜서 임수호를 데리고 이지원을 만나러 가게 했어.”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이지원이 정말 임수호 때문에 다친 건가?“그거 알아? 그 여자, 임수호를 죽이려고 했어. 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임수호는 죽었을 거야.”연지석은 박민정에게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며칠간, 그는 사람을 시켜 임수호에게 이지원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하지만 그 멍청한 임수호는 믿지 않았고 오늘 이지원의 집까지 찾아갔다.이지원은 그저 그를 위로해 주는 척하다가 몰래 그에게 수면제를 먹였다. 그리고 그가 잠에 든 후, 가스 밸브를 열어 사고로 위장하려고 했다.하지만 연지석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데려왔다.이지원은 들통날까 봐 두려워 자해를 했다. 그리고 먼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사생팬이 그녀의 집에 들어와 그녀를 해쳤다고 얘기했다.모든 것을 들은 박민정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박민정은 이지원이 이토록 악독할 줄은 몰랐다.박민정의 추측이 맞다면 이 모든 것은 이지원의 자작극일 것이다.아무 대답 없는 박민정을 보면서, 연지석은 걱정이 되었다.“민정아, 괜찮아?”“괜찮아.”박민정은 정신을 차리고 얘기했다.“그저 이지원이 그렇게 악독한 줄 몰랐었어.”“고아로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쉬운 애가 아니야.”그렇게 얘기한 연지석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났다.“너 같은 사람은 꼭 주의해야 해.”그는 약간 멈칫하더니 또 조심스레 물었다.“임신하기 위한 일은 어떻게 됐어?”박민정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응, 얻었어.”“그래. 그럼 내가 얼른 윤우를 데리고 나올게. 그리고 같이 에스토니아로 돌아가자.”박민정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윤우가 갇혀 있는 곳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병원과 완전히 달랐고 경비도 삼엄했다. 아무리 연지석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며칠 좀 더 기다려줄래? 내가 유남준
“걱정하지 마, 모든 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연지석이 얘기했다.하민재는 연지석이 모른는 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 말할 수가 없었다.“내가 들은 소문 알려줄까? 유남준의 여자가 다쳤대.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사업한다는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어디서 그런 쓰레기를 주워 왔대?”“알고 싶지 않아.”연지석은 담담하게 얘기했다.하민재는 그제야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남준은 이지원을 여자 친구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 연지석이 좋아하는 사람을 아내로 두었으니.하민재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연지석은 깊은 눈동자로 창밖을 보면서 얘기했다.“언제 다시 돌아갈 거야?”“조금 더 있다가.”하민재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씨 가문의 형제들이 호시탐탐 연지석을 노리고 있는데, 이곳에 남아있다가 연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면 끝장이었다....병원에서.이지원은 연약하게 병상에 누워있었다. 목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오빠, 나 너무 무서워요...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그녀의 눈가가 천천히 젖어 들었다.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위로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옆의 경호원에게 물었다.“조사해 냈어?”“네. 이지원 씨의 팬이 먼저 도착했고 후에 들어온 사람들은 연지석의 부하들입니다.”경호원이 대답했다. 그는 이지원의 팬이 그날 박민정을 차로 친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쪽으로 연관을 지을 생각도 못 했다. 이지원은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연지석의 부하들이라면... 설마 민정...”그러더니 이내 입을 막고 얼른 말을 바꿨다.“그럴 리가 없어요. 민정 씨가 왜 이런 짓을 벌여요? 내가 민정 씨를 해친 적도 없는데 왜 나를 죽이려고 하겠어요?”이지원은 임수호를 데려간 게 연지석의 사람일 줄은 몰랐다. 저도 모르게 겁이 난 이지원은 먼저 선수를 쳤다.유남준은 이제 이지원의 말 때문에 박민정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연지석은 연지석이고, 박민정은 박민정이니까.“잘 쉬고
유남준의 눈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박민정을 찾아 나섰다.별장의 방을 여러 번 확인했지만 박민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유남준은 사람을 시켜 공항에서 박민정을 찾게 했다. 그러다가 뒷마당에 도착해서야 벤치에 앉아 있는 박민정을 보고 한숨을 내돌렸다.박민정은 잠이 오지 않아 밖에서 바람을 쐬던 중에 유남준이 급하게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는데.’시선이 마주치자 유남준은 성큼성큼 걸어와 단번에 그녀를 품에 안았다.어두운 불빛 아래서, 박민정은 약간 굳어버렸다. 붉어진 그의 눈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그가 얼마나 조급해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왜 방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거야.”유남준은 약간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박민정은 이 말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다.“그럼 저는 왜 이 시간에 꼭 방에 있어야 하는데요?”유남준은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아까 박민정이 사라졌을 때, 왜 그렇게 흥분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유남준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박민정이 또 물었다.“이지원 씨는 괜찮아요?”“남자가 목에 칼을 들이대서 아직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중이야.”유남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목에 칼을...’박민정은 이지원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원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못하는 짓이 없었다.“범인은 잡혔어요?”그 사람을 떠올린 유남준의 시선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아니. 하지만 이지원의 팬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연지석의 보디가드였어.”유남준의 품에서 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남준을 쳐다보았다.“무슨 뜻이에요?”유남준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눈치채고 천천히 목울대를 움직였다.“연지석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유남준은 박민정이 이지원을 해치려고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연지석은 박민정을 위해 이지원을 해칠 사람이었다.박민정은 목이 약간 아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눈앞은 마치 뿌연 안개가 끼인
유남준은 불쾌한 감정을 꾹 내리누르며 박민정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키스를 퍼부었다.박민정은 그제야 유남준이 아까 손을 다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껏 유남준을 밀어냈다.“내가 아까 했던 말은 잊었어요? 당신과의 약속은 더 이상 지키지 않을 거예요.”유남준의 입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박민정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다.“이지원한테 빚진 건 갚아야 해.”유남준이 해명했다.‘빚이라...’박민정은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그럼 나한테는 빚진 게 없어요?”이지원은 유남준 어머니를 살렸다.그리고 박민정은 유남준을 살렸다. 하지만 유남준은 왜 이리도 뻔뻔한 걸까?유남준은 박민정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박민정이 얘기하는 ‘빚’이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를 무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너와 잘 살겠다고 약속할게.”다른 사람 앞에서 뜻을 굽히는 것은 처음이었다.만약 이 얘기를 5년 전에 들었더라면 박민정은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민정은 이제 더 이상 유남준을 믿지 않았다.“힘들어요. 쉴래요.”유남준은 바로 박민정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날 밤.박민정은 벗어나지 못하고 유남준 품에 안겨있었다.유남준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오늘 저녁에 본 빈방이 떠올랐다.손의 상처는 여전히 아릿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지원 씨가 남준 씨 어머니를 구한 일을 물어볼 수 있어요?”박민정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몰랐다.유남준은 고영란과 김인우가 죽을 뻔한 일을 얘기해 주었다. 같은 차를 타고 회사로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고, 후에 이지원이 그들을 구해주었다는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그 얘기를 들은 박민정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김인우가 왜 이지원한테 잘 해주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유남준이 이지원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또..
유남준의 개인 계좌가 해킹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서다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새벽에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었다.“누가 한 일인지는 조사해 냈어?”유남준은 잠깐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물었다.“아직입니다.”서다희는 흠칫하더니 또 얘기했다.“이번 사건이 갑작스럽기도 했고 또 대비하지도 않아서... 발견했을 때는 이미 돈이 사라진 후였습니다.”이상하기도 했다. 유남준의 계좌를 해킹한 사람이 그저 1조 4천억만 훔쳤다니. 게다가 이런 능력과 담이 있다면 바로 은행을 해킹하는 것이 더욱 빠를 것이다. 유남준의 개인 계좌를 해킹한다는 것은 유남준한테 앙심을 품었다는 것과 같다.“하루의 시간을 줄 테니까 알아서 해결해.”유남준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계좌를 해킹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어떻게 돈을 빼돌리는가 하는 것이었다.유남준 계좌에서 얼마만큼의 숫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만큼의 돈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정말 없어졌다고 해도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다른 한편, 조하랑은 일찍 일어나 박예찬을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박예찬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오늘은 무슨 일이래?”평소에는 박예찬을 깨울 필요가 전혀 없었다. 박예찬은 알아서 잘 깨어나는 아이였으니까.가까이 다가간 조하랑은 깊게 자고 있는 박예찬을 보면서 마음이 약해져 깨우지 못하고 붉은 볼살을 주물럭거렸다.“오늘만 지각하게 내버려둘게.”박예찬은 어제 유남준의 개인 계좌를 해킹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새벽 네 시, 다섯 시쯤에 잤던 것이다.그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홉 시 반이었다.일어나서 미간을 찌푸린 그 모습은 마치 미니 버전의 유남준 같았다.“너무 오래 잤어...”박예찬은 유남준처럼 시간 약속에 예민했다. 이건 박예찬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그는 얼른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조하랑은 아직 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박예찬, 오늘 지각이네?”박예찬은 조하
조하랑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어디까지 왔어요?”전화기 너머에서 매력적인 보이스가 들려왔다.“곧 도착해요.”말을 마친 조하랑은 바로 전화를 끊고 운전 기사한테 옆에 세워달라고 했다.그리고 구두를 신고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갔다.김인우는 레스토랑 전체를 렌트했다. 조하랑이 들어갔을 때, 종업원을 제외하고는 김인우뿐이었다.그는 흰색 가운을 벗지도 않고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는 지적인 매력이 흘러넘쳐 그녀가 마음에 품은 사람보다 더욱 멋있었다.조하랑은 얼른 시선을 거두고 미쳤다고 속으로 욕했다.김인우는 그저 껍데기만 화려한 남자일 뿐이다.조하랑은 앞으로 다가가 인사했다.“안녕하세요.”김인우는 시선을 돌려 조하랑을 쳐다보았다. 165센티미터의 키에 로우번을 묶은 그녀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갓 졸업한 대학생 같았다.김인우는 조하랑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대체 언제 그녀의 몸에 손을 댄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마침 두 사람이 언제 만난 것이냐고 물으려는데, 조하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거예요. 그러니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조하랑은 자리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서서 여유로워 보이는 남자를 내리깔아보았다.“인우 씨 할아버지께도 얘기해 주세요. 저는 김인우 씨한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요. 김씨 가문에서 준 사례금도 다 가져가세요.”김인우는 흠칫했다.“사례금이요?”그는 그제야 자신이 김훈에게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 가서 열심히 일하면 조하랑과의 결혼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더니, 몰래 사례금까지 줬다니.“모르고 있었어요?”조하랑도 약간 놀랐다.“네.”김인우는 약간 화가 난 눈빛으로 얘기했다.“전에도 얘기했지만 아이는 내가 키울 수 있어요. 조하랑 씨가 원하는 만큼 배상금을 줄 수도 있고요.”아이?무슨 아이?조하랑은 그대로 멍해졌다.김인우는 백지 수표를 건네더니 얘기했다.“적어요.”조하랑은 여전히 멍했다.김인우의 말
두원 별장.따스한 햇빛 때문에 박민정이 눈을 떴을 때, 유남준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있었다.고개를 든 박민정은 잘생긴 얼굴을 마주 보았다.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유남준이 갑자기 그녀를 품에 그러안았다.“좋은 아침이야.”유남준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박민정은 약간 굳었다.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박민정은 바로 유남준을 피했다.유남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박민정의 턱을 잡고 키스를 퍼부었다.전처럼 부드러운 키스가 아닌, 조급하고 거친 키스였다.박민정은 손으로 그를 밀어내며 피하려고 했지만 밀어낼 수가 없었다.유남준이 더한 것을 하려고 할 때,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또 무슨 일이지?’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조하랑이 박민정에게 건 전화였다.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박민정에게 건넸다.“네 친구 전화야.”박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쥔 채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하랑아, 왜 그래?”조하랑은 박민정과 유남준이 한 방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모든 일을 실토했다.“김인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민정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민하던 박민정이 물었다.“하랑아, 인우 씨가 말한 아이가 설마 예찬이는 아니겠지?”조하랑 곁의 아이는 박예찬뿐이었다.“박예찬?”조하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맞다, 까먹고 얘기하지 않은 게 있는데, 저번에 유치원에 예찬이를 데리러 갔다가 마침 김인우가 예찬이를 잡으러 온 걸 봤어. 내가 마침 나타나서 다행이지...”조하랑은 약간 겁이 났다.박민정도 믿을 수 없었다.왜 김인우가 박예찬을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설마 유명훈의 생신 축하연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김인우가 아무리 뒤끝이 길다고 해도 어린 아이한테 화풀이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하랑아, 예찬이가 뭘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박민정은 항상 어른스러운 박예찬을 믿었다.박예찬은 웬만해서 거짓
온갖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시아버지인 유석진이었고 재빨리 구석 쪽으로 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오늘 저녁에 호우주의보가 떴던데 남준이랑 민정이 모두 거기에 있어?”“네.”“그러면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주 자연스럽겠지?”유석진이 묻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최현아는 다급히 그에게 설명했다.“여기에는 다른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도 계세요.”“난 그저 유남준이랑 박민정만 사라진다면 다른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이 없어.”유석진의 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최현아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더니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에게로 향했다.“알겠어요. 그럼 준비되면 알려주세요.”“그래. 너랑 지훈이는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네.”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 전화를 끊었다.그러다가 머릿속에서는 진짜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사고 나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지 온갖 잡생각으로 뒤엉켜있었다.박민정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지만 몰래 마음을 두고 있는 유남준이 이대로 죽는 건 아쉬웠다.두통이 몰려오던 이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싸우고 있는 듯했다.이때 여교사 한 명이 최현아에게 다급히 달려왔다.“지훈이 어머님, 빨리 가보셔야겠어요. 지훈이가 다른 아이랑 지금 싸움 났거든요.”이건 선생님들이 관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워낙 유지훈의 부모님이 극성이라는 소문이 있어 감히 먼저 말리지 못했다.또한 유씨 가문의 세력만 봐도 선생님들 쪽에서 밉보이는 행동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처지였다.“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려?”최현아가 빠르게 싸움 현장에 달려와 보니 유지훈과 조하랑의 조카인 조동민이 한창 주먹다짐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훈은 조동민보다 덩치가 한참 작았기에 전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내 물고기 당장 물어내! 우리 아빠가 직접 잡은 물고기인데 물어내라고!”
햇빛 아래서 그의 덩치는 유난히 우람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박민정은 눈앞의 현실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웬만한 부잣집 도련님들은 보통 이런건 모르지 않나? 그런데 왜 유남준은 개울에서 물고기 잡을 줄도 아는 거지?’이때, 마침 유남준도 그들을 보고 있었고 물고기를 받으라고 손짓했다.그 모습에 박예찬은 한껏 흥분한 상태로 그를 향해 외쳤다.“여기로 던져주세요.”유남준은 그의 말대로 손바닥보다 더 큰 물고기를 박예찬에게 던져줬다. 필경 아직 어린아이라 물고기를 만져보니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첫 번째로 잡은 물고기는 구덩이 하나를 파서 물을 채운 뒤 안에 넣었다.그 모습에 많은 어린이들이 구경하러 오게 되었다.“와! 예찬아, 이게 너희 아빠가 잡은 물고기야?”박예찬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어떤 여자아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너희 아빠 참 대단하다. 우리 아빠는 아직 아무것도 못 잡았는데.”다른 아이들도 유남준을 칭찬하며 박예찬을 한껏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준은 또 다른 물고기를 잡아 그에게 던져줬다.최현아 따라 땔감을 주우러 가려던 유지훈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엄마, 저도 가서 볼래요.”그의 말에 최현아도 말리지 않았다.“그래.”최현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유지훈은 재빨리 아이들이 몰린 쪽으로 달려가더니 자기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밀쳐내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나도 물고기 좀 보게 다들 비켜봐.”아이들은 이런 유지훈의 행동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내키지 않지만 저마다 자리를 비켜줬다.유지훈이 맨 앞에 다가가 두 마리의 물고기를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난 또 얼마나 대단한 물고기를 잡았다고. 저건 작아도 너무 작잖아? 우리 아빠가 돈 주고 산 물고기가 훨씬 크고 이뻐!”아이들이라 그런지 한창 비교하기 좋아하는 나이다.특히 유지훈은 모든 아이가 박예찬을 둘러싸고 칭찬하는 모습에 질투심을 느꼈다.그러나 아쉽
유남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어젯밤에 네가 계속 춥다고 잠꼬대해서 내가 안고 같이 잤어.”“네?”박민정은 그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날씨도 이젠 어느 정도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더구나 어젯밤도 전혀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때, 옆에 누워있던 박예찬이 침낭에서 일어나더니 박민정에게 말했다.“엄마, 나도 봤어. 어젯밤에 분명 엄마가 계속 춥다면서 안아달라고 했어.”박예찬의 진지한 말투가 전혀 거짓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자 순간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내가 그런 잠꼬대를 했다고? 나이 먹으면서 외로워졌나?’이때, 박예찬이 박민정 앞에 다가와 다시 말을 이었다.“엄마,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예전에도 두 사람이 자주 그렇게 잤으니까.”박민정은 그의 말에 더욱 부끄러워 어딘가 숨고 싶어졌다.“알았어.”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유남준에게 말했다.“그럼 어젯밤은 고마웠어요. 혹시 저 때문에 못 잔 건 아니죠?”유남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야. 내가 이따가 이불을 준비하라고 할 테니까 오늘 밤에는 우리 이불 덮고 자자.”“그럴 필요 없...”박민정이 단번에 거절하려는 순간 텐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동서, 남준 씨, 깼어?”최현아였다.그녀의 물음에 박민정이 재빨리 답했다.“네. 무슨 일이에요?”“우리 지금 땔감 주어서 아이들한테 야외에서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는데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여기까지 직접 와서 물어보니 박민정은 거절하기 힘들었다.“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박민정이 침낭에서 나오자 유남준이 갑자기 그녀의 팔목을 잡으면서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이때,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최현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남준 씨, 동서가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이따 남자분들은 개울에서 낚시해야 해요.”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말없이 얼굴을 찡그렸다.박민정은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최현아는 자
유남준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알겠어.”빠르게 저녁 시간이 돌아왔고 산기슭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유난히 별들이 잘 보였다.박민정과 박예찬은 같이 앉아 쉬고 있었고 유남준은 그들과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바비큐를 기다리고 있었다.고기 굽는 냄새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해 자기도 모르게 시선들이 이쪽으로 쏠리게 되었다.박민정은 살짝 난감한 듯 박예찬에게 말했다.“예찬아, 네가 다른 친구들이랑 학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도 데리고 와서 같이 먹자고 해.”전날 밤, 그냥 가벼운 말로 야외에서 캠핑하면 바비큐 먹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걸 유남준이 기억하고 준비해 줬다.“네.”박예찬이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일어서더니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그렇게 잠깐 박민정과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녀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틈에 유남준은 어느새 다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박민정에게 건넸다.“먹어.”“먼저 먹어요. 저는 제가 구워서 먹을게요.”박민정은 방금 그와 다퉜는데 그가 구워준 고기를 덥석 받아먹는 게 왠지 미안했다.하여 스스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유남준은 여전히 자신을 거절하는 그녀 때문에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난 고기를 원래 안 좋아해. 네가 안 먹으면 이건 그냥 버릴게.”살짝 화가 난 목소리였다.그의 말에 박민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재빨리 그의 접시를 받아서 들었다.“아깝게 왜 버려요. 고기 안 좋아하면 더 이상 굽지 말아요.”생각했던 대로 말했을 뿐, 별다른 뜻은 없었다.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유남준은 순간 질투가 많은 여느 여고생처럼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이제 자신이 구워주는 고기도 마다한다고 생각하니 유남준은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박민정은 이 상황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즐겁게 고기를 먹고 있다가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몰려오자 그들과 같이 식사 자리를 즐기기 시작했고 금세 유남준이라는 사람을 잊어버리게 되었다.그런 유남준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웃고
그러다가 최현아는 무심결에 유남준의 튼실한 팔뚝과 또 잘생긴 그의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애초에 남준 씨랑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러다가 그에게 다가가 휴지를 꺼내며 물었다.“땀 흘렸네요. 제가 닦아 드릴까요?”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그의 땀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막 거절하려던 순간 박민정과 박예찬이 들꽃을 꺾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괘씸한 마음이 들어 일부러 가만히 서 있었다.순간 최현아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유남준때문에 심장이 또다시 나대기 시작했다.‘들은 소문에 의하면 유남준에게 첫사랑인 이지원을 제외하면 여자라고는 박민정뿐이라고 했는데?’‘역시나 남자들은 다 똑같네!’순간 최현아는 진작에 유남준에게 접근하지 않은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아니면 진작에 IM 대표의 사모님 자리를 꿰찼을 텐데.마음속 욕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서 손은 점점 바빠졌다.박민정과 박예찬은 마침 돌아오자마자 두 사람의 애틋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그러다가 박민정은 문득 머릿속에 기억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장소는 비슷했지만 유남준의 맞은편에는 최현아가 아닌 이지원이 서 있었다.순간 박민정은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유남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예찬도 화가 난 나머지 잡고 있던 박민정의 손을 놓고 재빨리 달려가 두 사람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물었다.“현아 이모, 지훈이가 급한 일이 있다고 이모 찾던데요?”그의 말에 최현아가 재빨리 되물었다.“무슨 급한 일?”“가서 직접 물어보세요.”박예찬의 말에 최현아는 두말없이 유지훈 쪽으로 향해 달려갔다.박민정은 어느새 유남준에게 다가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보통 이런 식으로 바람피웠나 보네요?”유남준은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무덤덤해 보이는 박민정에게 다가가 되물었다.“화 안나?”“그저 유치해 보이는데요?”박민정의 입에서 들리는 유치하다는 말이 단번에 유남준의 가슴에 꽂혀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이제
최현아는 계속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이렇게 보면 또 남자가 너무 잘생기고 능력이 좋아도 파리들이 많이 꼬여서 마냥 기쁜일만은 아닌것 같네. 그러니까 동서도 조심해.”박민정은 그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어린애도 아닌데 아무리 감시하고 조심한다고 되겠어요? 그냥 신경끄고 자기 삶을 사는게 낫을 것 같네요.”최현아는 박민정이 이렇게 쿨하게 나올줄은 생각지도 못해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이따가 텐트도 쳐야 할 텐데 혹시나 도울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사람 보낼 테니까.”말을 마친 뒤 자리를 떴다.“네, 고마워요.”최현아가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남준이 박민정의 곁으로 돌아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방금 유남준의 곁에서 맴돌던 학부모들의 안색이 저마다 어둡더니 더 이상 그와 말을 걸지 못하는 눈치였다.“저 사람들이랑 무슨 얘기를 나눴어요?”유남준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박민정의 관심에 일부러 입을 삐쭉거리며 답했다.“맞춰봐.”그러나 박민정은 그의 도발에 순간 흥미가 뚝 떨어졌다.“됐어요. 그럼 전 텐트 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자리를 뜨는 박민정을 보고 유남준도 냉큼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별일 아니고 IM 그룹이랑 협력하고 싶다고.”“그렇군요.”갑자기 냉담해진 박민정의 태도에 유남준은 그녀의 생각을 더욱 알기 힘들었다.“민정아, 화났어?”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아니요? 제가 왜 화 나요?”유남준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거짓말하는 건 같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더욱 불편했다.“내가 다른 여자들이랑 수다를 떨어도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 거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텐트를 들고 그녀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갔는데 박민정은 그제야 유남준이 화났다는 걸 눈치챘다.유남준이 혼자서 말없이 텐트 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박예찬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재빨리 박민정에게 다가와 물었다.“엄마, 무슨 일이야?”박민정은 순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라
박민정은 장연수란 사실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연수 씨, 무슨 일이에요?”장연수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민정 씨, 제가 오늘 오면서 돗자리를 못 챙겼는데 혹시 같이 밥 먹어도 될까요?”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세요.”어차피 갖고 온 돗자리 사이즈가 커서 비좁지는 않았다.장연수는 그녀의 허락에 활짝 웃더니 지원이만 남기고 먹거리 가지러 달려갔다.그러나 유남준은 그런 장연수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박민정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내가 다른 돗자리 사 오라고 할게.”“지금 사러 가도 이미 늦었어요. 아쉬운 대로 그냥 먹어요.”“그래.”이때 장연수는 어느새 음식을 한 보따리 가져와서 돗자리에 올려놨다.“제가 직접 한 음식들인데 괜찮으면 같이 먹어요.”“감사합니다.”그러다가 그녀느 문득 유남준을 바라보며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유 대표님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익히 들었고 저희 남편도 자주 언급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어느 연회에서 대화도 나눴다던데요?”“그래서 제가 오늘 대표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저희 남편이 듣더니 대표님 명함 하나만 부탁하던데 혹시 받아볼 수 있을까요?”박민정은 그제야 장연수가 오늘 그들에게 접근한 의도를 알아챘다.그러나 남편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맺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유남준도 그녀가 그저 학부모라고 생각하고는 선뜻 자기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장연수는 밥 먹을 때도 유남준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어렴풋이 자기 남편과 같이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그러나 유남준은 그저 예의상 몇 마디 대답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식사 자리가 끝난 뒤 장연수는 박민정이 뒷정리하는 걸 가로막으며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고 박민정도 진작에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쉽세 물러서지 않았다.“지원이 엄마, 제가 하면 돼요.”“아니요. 이건 제가 정리할게요. 민정 씨는 아이들이랑 놀아
최현아는 유남준이 계속 따라오는 게 불편했다. 그가 옆에 있으면 박민정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에게 굳이 부탁할 필요 없이 저만 따라가는 게 왠지 더 안심될 것 같네요.”유남준의 말에 최현아는 더욱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이때 학부모들은 박민정 곁에 서 있는 유남준에게 눈길을 몇 번 더 주더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렇게 잘생기고 능력도 좋은 남편이 있는 걸 보면 예찬이 엄마는 참 복도 많아.”“그러게요. 그러니까 태어난 아들도 똑똑한가 보죠. 지난번 수학 경시대회에서도 1등 했다던데요?”“우리 딸이 나중에 예찬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네요.”“꿈 깨요.”그들은 말하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유남준 외에도 많은 아이의 부모님들이 야외 캠핑을 즐기기 위해 참석하게 되었다.그리고 각자의 차에 올라탄 뒤 함께 출발했다.박예찬은 차에 올라타서도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엄마, 요즘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픈 데 없어?”박민정이 웃으며 답했다.“많이 좋아졌어. 기억들도 서서히 돌아오는 것 같고.”순간, 박예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뭐가 기억났는데?”“너랑 윤우에 관한 기억인 것 같은데 너무 흐릿했어.”박민정의 말에 박예찬은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당장에라도 박민정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차마 그러지 못했다.“엄마, 건강도 챙기고 밥도 많이 먹어야 해.”말을 마친 뒤 그는 주머니에서 핫팩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줬다.“아직 추우니까 손에 쥐고 있어.”이건 같은 반에 여자아이가 박예찬에게 준 물건이었다.박민정은 손에 든 핫팩을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자기 아들이 말은 투박해도 참 따뜻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순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우리 아들, 고마워.”그러다가 자기 아들을 꽉 안아줬는데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박예찬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그러나 옆에서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유남준은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지기 시작했다.아침에 그녀를 위해
유남준은 쉽사리 상대할 인물이 아니었지만 박민정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약점이었다.최현아는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여러분, 선생님과 상의한 끝에 봄도 왔겠다 싶어 아이들과 함께 교외로 소풍을 가려고 합니다. 좋은 날씨를 놓치지 말고 모든 학부모님께서 꼭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녀의 제안은 순식간에 대다수 부모들의 찬성을 얻었다.박민정도 그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모든 학부모가 참여한다니 혼자 거절하기도 애매해 결국 그녀도 동행하기로 했다.최현아는 박민정의 답변을 확인하고 살짝 안도했다. 곧바로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주의 사항을 보냈다.[동서, 이모님께 들으니 동서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하더라. 예찬이를 데리고 가려면 조심해야 할 거야. 여기 필요한 물품 리스트가 있어. 소풍뿐만 아니라 캠핑도 할 거니까 모기 기피제나 감기약 같은 것도 꼭 챙겨가도록 해.]박민정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그 무렵,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지원이 엄마였다.[예전엔 이런 소풍이나 캠핑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어쩐 일로 최현아가 나서서 추진하는 걸까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이제 완전히 박민정의 편이 된 지원이 엄마였다.박민정도 신중한 태도로 답장을 보냈다.[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지켜봐요.][네, 알겠어요.]박민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유남준에게 박예찬과 함께 교외로 소풍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이 말에 유남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너 혼자?”박민정은 가볍게 끄덕였다.“네, 학교에서 부모 한 명만 동행하면 된다고 했어요.”유남준의 대답은 단호했다.“안 돼. 나도 같이 갈 거야.”그녀와 박예찬을 단둘이 외부에 내보내는 건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박민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망설였다.“근데 남준 씨는 회사에 나가야 하잖아요?”“일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소풍은 1년에 몇 번 있지도 않아. 그런데 날짜는 언제야?”“모레예요.”“좋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