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원 별장.따스한 햇빛 때문에 박민정이 눈을 떴을 때, 유남준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있었다.고개를 든 박민정은 잘생긴 얼굴을 마주 보았다.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유남준이 갑자기 그녀를 품에 그러안았다.“좋은 아침이야.”유남준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박민정은 약간 굳었다.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박민정은 바로 유남준을 피했다.유남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박민정의 턱을 잡고 키스를 퍼부었다.전처럼 부드러운 키스가 아닌, 조급하고 거친 키스였다.박민정은 손으로 그를 밀어내며 피하려고 했지만 밀어낼 수가 없었다.유남준이 더한 것을 하려고 할 때,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또 무슨 일이지?’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조하랑이 박민정에게 건 전화였다.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박민정에게 건넸다.“네 친구 전화야.”박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쥔 채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하랑아, 왜 그래?”조하랑은 박민정과 유남준이 한 방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모든 일을 실토했다.“김인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민정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민하던 박민정이 물었다.“하랑아, 인우 씨가 말한 아이가 설마 예찬이는 아니겠지?”조하랑 곁의 아이는 박예찬뿐이었다.“박예찬?”조하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맞다, 까먹고 얘기하지 않은 게 있는데, 저번에 유치원에 예찬이를 데리러 갔다가 마침 김인우가 예찬이를 잡으러 온 걸 봤어. 내가 마침 나타나서 다행이지...”조하랑은 약간 겁이 났다.박민정도 믿을 수 없었다.왜 김인우가 박예찬을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설마 유명훈의 생신 축하연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김인우가 아무리 뒤끝이 길다고 해도 어린 아이한테 화풀이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하랑아, 예찬이가 뭘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박민정은 항상 어른스러운 박예찬을 믿었다.박예찬은 웬만해서 거짓
유남준은 박민정의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고 더 묻지 않았다.박민정은 뒤로 물러나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했다.“씻으러 갈게요.”두 걸음 떼자마자 유남준이 박민정의 손을 잡고 뒤에서 그녀를 그러안은 채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계속해야지.”박민정은 약간 굳어버렸다.거절하기도 전에 유남준의 입술이 그녀의 얼굴과 목에 닿았다.“싫어요...”박민정이 얼른 그를 말렸다.유남준은 멈춰서 거친 숨을 내뱉었다.이유는 모르지만, 박민정과 한 후로부터 그는 자기를 자제하기 더욱 힘들었고 집착은 더욱더 강해졌다.“왜?”그의 목소리는 약간 거칠었다.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물었다.“싫으면 왜 돌아와서 나한테 손을 댄 거야? 뭘 원하는 건지 알려줘. 내가 줄 수 있는 건 다 줄 테니까!”유남준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사람을 시켜 박민정의 과거를 조사해 본 결과, 그녀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녀가 연지석과 함께 4, 5년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왜 갑자기 유남준 곁으로 돌아온 것일까.유남준 품에 안긴 박민정은 어깨가 약간 아팠다.“놔줘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 놓아주면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을 때, 아래에서 대문 벨소리가 들려왔다.유남준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갔다.고영란은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유남준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얼른 달려갔다.“남준아, 오늘은 무조건 그 아이를 나한테 보여줘야 해.”며칠 전, 유남준이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을 들은 고영란은 사람을 시켜 조사해보았지만 유남준이 철저히 숨기는 바람에 아직도 그 아이에 대해 알아보지 못했다.유남준은 고영란이 온 이유를 알아채고 차갑게 얘기했다.“내 아이가 아니에요.”고영란은 멍해서 그대로 서 있었다.“무슨 소리야.”그토록 손자를 기다렸건만, 유남준의 자식이 아니라니.“그럼 누구 아이인데.”그녀는 유남준이 아무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봐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유남준은 의자를 꺼내 앉
실내는 매우 조용해졌다.유남준은 그제야 알았다. 박민정은 생화를 좋아하고 고향에 가고 싶어 하고 도쿄에 가고 싶어 하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박민정은 어색한 기류를 눈치채고 얘기했다.“이미 얘기했잖아요. 부부 행세 하지 않기로.”유남준은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 기분이었다.“무슨 소리야. 그건 분명 너 혼자만의 결정이었어.”혼자만의 결정이라.모든 일이 두 사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면, 이지원을 만나러 가는 유남준은 뭐가 되는 것일까.박민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느새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졌다.“그래요. 아직 19일이 남았으니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네요. 밥하러 갈게요.”그렇게 말한 박민정이 바로 주방으로 갔다.유남준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유남준이 그녀를 따라가며 얘기했다.“내가 할게.”박민정은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유남준은 이미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비싼 맞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니 조금 이상했다.유남준이 나서서 하겠다고 했으니 박민정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며칠 지나면 유남준은 또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박민정은 정정당당하게 그를 떠날 수 있었다.유남준은 사업을 잘하는 편이지만 요리는 그럭저럭했다.아침을 만드는 데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맛없으면 사람을 시켜서 밥을 사 오라고 할게.”유남준이 자리에 앉아 얘기했다.박민정은 희멀건 죽과 약간 타버린 계란말이를 보면서 저번에 먹은 해물 죽을 떠올리고 이상함을 느꼈다.이지원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면 유남준은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는데...“요리할 줄 몰라요?”그녀가 의심스레 물었다.유남준은 약간 굳은 채 대답했다.“당연히 할 줄 알지.”미간을 찌푸린 그는 계란말이의 탄 부분을 잘라낸 후 박민정에게 건넸다.“이거 먹어.”박민정은 유남준이 자기 그릇에 있는 계란말이를 꺼내 탄 부분을 베어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유남준은 그녀의 시선을 보면서 해명했다.“그저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야.”그는 요
유남준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서다희는 그저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른 법무팀에 연락해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했다.“대표님, 오늘 새벽 개인 계좌가 해킹당한 일은 당장 밝혀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가상 주소를 써서...”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얘기했다.“지금까지 조사한 데이터를 다 나한테 보내.”“네.”유남준은 데이터를 받은 후 서재로 갔다.컴퓨터로 데이터를 연구하던 유남준은 빠르게 상대의 실수를 눈치채고 진짜 주소를 알아냈다.“하성이라...”다른 한편. 박예찬은 이마에 땀이 가득 맺힌 채, 유치원 화장실에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회로를 포기하고 자기 주소를 보냈다.이마의 땀을 닦은 박예찬이 얘기했다.“쓰레기 아빠한테 이렇게 유능한 부하가 있을 줄이야. 돈 훔치기 참 어렵네. 하마터면 발각될 뻔했어.”마음이 놓이지 않아 컴퓨터를 들고 와서 다행이었다.유남준은 그저 하성이라는 위치만 대강 알아냈다.“포기도 빠르네.”유남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라이벌 회사라면 이런 이상한 수단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대략적인 위치를 서다희에게 보내주면서 얘기했다.“잘 조사해 봐. 이 사람을 꼭 찾아내야 해.”유남준은 그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그냥 둘 수 없었다.모든 일을 처리한 후, 아침이 도착했다. 유남준은 내려가 박민정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박민정은 박예찬이 유남준한테 발각될 뻔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이번 달에 아이를 임신하는 것과 어떻게 윤우를 데리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윤우를 만나게 해주면 안 돼요?”박민정은 떠보면서 물은 후 해명을 덧붙였다.“아직 어리고 곁에 가족이 없으니까 걱정이 되어서...”저번 생일에 윤우를 만난 후, 그녀는 다시는 윤우를 만나보지 못했다.유남준은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는 또 고영란이 한 말을 떠올리게 되었고, 태어나지 못한 그 아이와 연지석을 떠올렸다.그리고
박민정은 이번에 와서 정림원 주변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만약 유남준이 윤우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윤우를 구해낼 수 있게 말이다.박윤우는 두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문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엄마!”박민정은 작은 윤우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왜 여기 서 있어?”박민정이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안 추워?”“안 추워.”말을 마친 박윤우는 박민정 뒤에 있는 유남준에게 걸어가 얘기했다.“아저씨, 아저씨를 기다리다가 다리가 저려서 그러는데 저 안아주시면 안 돼요?”그 말을 들은 박민정이 바로 얘기했다.“엄마가 안아줄게.”박윤우는 바로 고개를 젓고 유남준을 쳐다보았다.“아저씨, 우리 엄마는 몸이 안 좋아서 안 돼요. 저 좀 안아주세요.”박민정은 약간 어색해졌다. 박윤우를 설득하려고 할 때, 유남준이 바로 앞으로 걸어가 박윤우의 멜빵 바지를 잡아서 그를 들어 올렸다.“가자.”박윤우의 몸이 그대로 허공에 뜨게 되었다.박윤우의 전적이 있어서, 유남준은 그를 들 때 일부러 거리를 유지했다.박윤우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 두 발로 힘껏 뒤를 차 유남준의 정장에 발자국 몇 개를 남겼다.유남준의 표정은 금세 굳어버렸다.박윤우는 그를 발로 차면서 사과했다.“아저씨, 죄송해요. 다리에 쥐가 나서 그래요. 일부러 찬 게 아니에요.”‘쥐가 났는데 이렇게 잘 맞춰서 찬다고?’유남준은 박윤우가 일부러 장난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봐줄게.”실내의 소파에 박윤우를 내려놓은 유남준이 손을 뻗어 그의 다리를 잡으려고 했다.박윤우는 얼른 피하며 얘기했다.“아저씨, 제 다리 이제는 나았어요.”유남준은 그저 그렇게 박윤우를 지켜보았다. 박민정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앞으로 다가가 얘기했다.“미안해요. 윤우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먼저 옷 좀 갈아입을래요?”유남준도 아이와 진심으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응.”유남준이 떠나자마자 박민정이 박윤우에게
박민정은 윤우의 그림을 몰래 숨겨놓았다.정림원은 너무 커서 제대로 돌아보려면 적어도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주변에 숨어있는 카메라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유남준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거대한 몸집의 그는 검은 눈동자에 두 사람이 앉아서 노는 장면을 담았다.시간은 항상 빠르게 지나가서 놀라게 만든다.박윤우는 유남준을 발견하고 얼른 그와 인사했다.“아저씨, 우리랑 같이 놀래요?”아까는 그저 발로 몇 번 찼을 뿐이다. 그래서 성에 차지 않았다. 박민정은 박윤우를 말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박윤우와 유남준은 혈연관계이니, 너무 오랜 기간 같이 있으면 서로의 신분을 알게 될까 봐였다. 유남준은 이미 그들에게로 걸어오며 물었다.“뭘 놀고 싶은데.”박윤우는 머리를 굴리고 얘기했다.“역할 놀이 해요! 아저씨는 아빠, 엄마는 엄마! 나는 두 사람의 아들!”박민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유남준도 멍해서 서 있었다.‘남자애가 무슨 역할 놀이를 좋아해? 여자애들도 아니고.’“아저씨, 우리 아빠는 엄청난 부자예요. 내 아빠 역할은 아무한테나 안 시키는 건데, 특별히 아저씨한테 주는 거예요.”박윤우가 입술을 움직이며 이 일이 유남준의 영광이라도 되는 듯 얘기했다. “윤우야, 아저씨 난처하게 하지 말고...”박민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이 얘기했다.“그래, 네 아빠가 되어줄게.”박윤우는 그가 동의하자마자 바로 그의 허벅지를 잡고 눈물과 콧물을 갈아입은 바지에 묻히며 얘기했다.“엉엉엉, 아빠, 윤우가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알아요? 보고 싶어서 죽을 뻔했다고요.”유남준은 박윤우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아빠라는 말에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다른 한편, 박민정은 윤우가 유남준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의 두 아이는 아빠를 원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빠가 있었으면 했다.지금 윤우가 안고 있는 사람이 그들의 친아빠라고 알려주면 얼마나 좋아할까.하지만 박민정은 유남준에
가끔 어린아이의 도발도 꽤 유용했다.유남준은 다시 박민정을 보더니 목울대를 꿈틀거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미안해.”박민정도 그를 보다가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얘기했다.“괜찮아요.”박윤우는 나름 참신한 방법으로 유남준이 사과하게 만들었다.“아빠, 매일 여기에 혼자 있는 건 너무 답답해요. 아빠랑 엄마랑 같이 나가서 놀고 싶어요.”박윤우의 애교는 누구도 당해내지 못한다.그건 유남준도 마찬가지였다.“그래.”동의한 후, 유남준은 사람을 시켜 박윤우를 데리고 근처의 놀이공원에 갔다. 하지만 박윤우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많은 놀이기구들은 탈 수가 없었다. 박민정은 박윤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세 사람은 놀이공원에서 이목을 끌었다.박윤우는 조금 걷더니 피곤함을 느껴 유남준을 쳐다보았다. 유남준이 그를 안아주려는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박윤우는 그가 돈과 얼굴이 아니었으면 평생 아내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빠, 저기 다른 아빠들 좀 봐요.”박윤우는 멀지 않은 곳에서 딸을 어깨에 앉힌 남자를 가리켰다.유남준은 그 남자를 보고 또 박윤우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안돼.”“하지만 아빠, 나도 아빠한테 안기고 싶단 말이에요.”박윤우는 제자리에 서서 유남준을 바라보았다.“그럼 차면 안 돼.”그렇게 경고한 후에야 유남준은 박윤우를 안았다.박윤우는 전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그의 품에 안겨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이 놀이기구, 저 놀이기구 다 타겠다고 했다.“아빠, 저 판다 인형을 잡아서 엄마한테 줘요!”“아빠 최고!”“아빠, 나 엄마랑 저거 먹고 싶어요.”“아빠가 최고예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박윤우는 유남준의 품에서 다시는 내려오지 않으려고 했다.유남준은 아빠라는 소리를 들으며 점점 박윤우가 연지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오후에 품에 안은 박윤우가 저녁에 그의 등에서 잠이 들자, 유남준은 그제야 놀이를 끝냈다.“내가 안을게요.”박민정이 손을 뻗
주변이 삽시에 조용해지고 바람이 나뭇잎을 휩쓸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박민정은 익숙한 유남준의 얼굴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어색해하면서 입을 열었다.“미안해요. 난 이제...”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끼어들었다.“너랑 낳겠다는 게 아니었어.”박민정은 놀라서 동공이 떨렸다. 그의 차갑고 모진 말이 그녀의 고막을 때렸다.“어떤 남자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계속 아이를 낳고 싶겠어.”유남준은 박민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걸어갔다.자기 방에 도착한 그는 짜증스레 외투를 벗어 던졌다.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박민정이 거절하려고 하자 유남준은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우스운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그가 얼마나 황당한 일을 저질렀는지도 알게 되었다.하루 동안 그 아이의 아빠 역할을 해주다니.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었으면 다른 아이의 아빠를 해줬을까.별장 밖.박민정은 홀로 바람 속에 서 있었다.머리에는 유남준이 한 말이 맴돌았다. “어떤 남자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계속 아이를 낳고 싶겠어.”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거실에 들어갔다.거실에는 그녀뿐이어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러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5년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홀로 이렇게 넓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박민정은 얼른 방으로 돌아갔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부드러운 선율에 박민정의 마음이 약간 풀렸다.쿠쿵~창밖에서 갑자기 우레가 치더니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멈추지 않을 기세로 쏟아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정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거의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그때 마침 밖에서 차량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윽고 대문 벨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누구지?’박민정은 유남준이 잠에 들었는지 몰라 일단 나가보았다. 문을 열자 환자복을 입은 이지원이 목에는 붕대를 하고 비에 맞아 쫄딱 젖은 채, 핏기 하나 없는
“하지만 증조할아버지, 이 일은 반드시 비밀로 해주세요.” 박예찬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하랑 이모가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연기를 가르쳐 사람들을 속였다는 걸 알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사실 그도 어쩔 수 없었다.김훈이 어느 순간부터 조하랑을 마음에 들어 하더니 꼭 손자며느리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박예찬에게 이 어려운 임무를 맡겼다.박예찬은 할아버지가 이런 어려운 임무를 자신에게 맡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도움을 얻기 위해 온갖 부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거절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런 꾀를 내게 된 것이다.신혼 방에서 김인우와 조하랑은 나란히 누웠지만 감시당할까 봐 말도 못 꺼냈다.“자요.” 김인우가 어색하게 기침을 했다.“네.” 조하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지만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김인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일 아침 일찍 노인네가 방에 설치해 둔 도청 장치를 반드시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방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한편, 강씨 가문에서 강연우가 황예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온몸이 상처투성이인 황예지가 누워서 그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미안해.”강연우는 그녀의 사과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왜 나한테 사과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황예지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난 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어. 당신에게 짐이 되기 싫었거든. 내가 죽으면 당신은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고.”강연우는 그제서야 그녀가 왜 갑자기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알게 됐다. 바로 자신이 한 말 때문이었다.죽음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 떠나버리면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겠어?”강연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입 맞췄다.“당신은 정말 바보야.
본래 김인우도 이 말을 하려 했는데 뜻밖에 조하랑이 먼저 말해버렸다. 그는 약간 불쾌했다. 마치 자신이 조하랑에게 미움이라도 받는 것 같아서.“방에는 침대 하나뿐인데 어떻게 따로 자죠? 전 소파나 바닥에서는 안 자요.” 김인우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조하랑이 어떻게 할지 보려고 말이다.조하랑은 이 상황을 보고 말없이 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제가 소파에서 자면 돼요. 소파도 꽤 편하게 잘 수 있어요.”어렸을 때 혼자 방에서 자는 게 무서워서 자주 소파에서 잤었다. 그래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김인우는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조하랑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걸 본 그는 깊게 한숨을 쉬고 겉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사실 조하랑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첫째는 어젯밤 일 때문이고 둘째는 김인우와 한방에 있어서였다. 둘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약간 불편했다.김인우가 불을 끄고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하랑 씨.” 그가 참지 못하고 부르자 조하랑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왜요?”“내 옆에서 잘래요?” 김인우는 여자를 소파에서 재우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하랑은 이 말을 마치 유혹으로 들었다. “싫어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결혼한 거예요. 우리 사이에는 어떤 스킨십도 없어야 해요, 알겠죠?”김인우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당신과 뭘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침대가 큰데 우리가 각자 한쪽에서 자면 서로 닿지도 않을 것 같아서요. 싫다면 그만두죠.”그제서야 조하랑은 자신이 그를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죄송해요, 제가 방금 오해했네요. 괜찮아요, 전 침대에서 안 자도 돼요.”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두 사람이 모두 조용해졌을 때 텅 빈 방에서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이 요망한 것들, 감히 이 늙은이를 속이다니? 응?”김훈이었다.조하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할아버지, 여기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신 거예요?”“하랑아, 내가 그렇게
운전기사는 함미현이 있는 정신병원으로 핸들을 틀었다.이번에 다시 가면서 박민정은 예전보다 경비가 더 삼엄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도 유남준 덕분에 두 사람은 쉽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박민정이 함미현이 있는 병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 보니 함미현은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인기척에 놀란 그녀는 곧장 구석으로 몸을 움츠리며 머리를 감싸고 중얼거렸다.“제발 때리지 마세요.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요, 제발 때리지만 마세요.”그 말을 하는 함미현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그녀의 모습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함미현은 분명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게 분명했다.박민정은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미현 씨, 저예요. 박민정.”함미현은 박민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희망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민정 씨, 저 구하러 오신 거예요? 이젠 제 말을 믿으실 거죠? 제발 저 좀 구해주세요... 아니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그 어린애한테는 아무 죄가 없잖아요.”그런 함미현을 보는 박민정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여기까지 오는 길에 동하 찾아달라고 사람 보내놨어요.”그 말을 듣자 무겁기만 하던 함미현의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저는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뭐든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선에서 다 얘기해드릴게요.”박민정은 그녀에게서 정수미가 딸을 잃어버린 다음부터 염혜란과 함께 보육원을 찾았던 일을 들었다.그 내용은 전과 똑같았고, 이것을 통해 그녀의 말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박민정은 옅게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정말 그랬던 거구나, 정말로...”그녀는 계속해서 혼잣말을 이어나갔다.유남준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무슨 일이야, 민정아?”박민정은 붉어진 눈시울로 유남준을 꼭 끌어안았다.“남준 씨, 나 친엄마를 찾은 것 같아요. 정수미가 내 친엄마였어요.”그 말에 유남준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숨이 턱 막혀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믿기
전화를 받은 강연우의 눈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인데요?”“일단 빨리 와, 와 보면 알게 돼.”강연우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는 조하랑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볼게.”“그래.”조하랑은 그렇게 강연우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두 사람의 대화는 지나가던 김인우의 눈에까지 들어왔다.김인우는 최대한 평소의 성질을 억누르며 순간적인 분노를 가까스로 참고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안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몰래 만난 거예요?”조하랑이 설명하려던 순간, 박민정에 방에서 나왔다.“인우 씨, 오해하지 마요. 몰래 만난 게 아니라 나도 여기 같이 있었으니까.”조하랑은 박민정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박민정이 방 안에 같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김인우는 뒤늦게 나타난 박민정의 존재에 마음이 풀렸다.“미안해요, 방금은 오해했네요.”김인우는 곧장 사과를 건넸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잘못이 명확해지는 순간 바로 사과부터 하는 성격이었다.조하랑도 화를 내지 않았다.“괜찮아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나는 김인우의 와이프고, 우리 둘이 함께 살아가는 거잖아요. 나는 절대 인우 씨한테 미안할 행동 하지 않을 거예요.”김인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 마요, 나도 하랑 씨가 하는 대로 따를 테니까.”그 말인즉슨 네가 먼저 나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에게 미안할 짓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박민정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 둘이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결혼식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박민정과 유남준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내가 봤을 인우 씨랑 하랑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그 말에 유남준도 거들었다.“걱정 마, 인우는 분
조하랑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 역시 자신의 결혼식에 강연우가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다.그녀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황예지의 말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이미 김인우와 결혼하기로 한 이상,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김인우 역시 조하랑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강연우를 발견하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만나고 싶어요?”그는 애써 관대한 척 물었다.조하랑이 고개를 저었다.“됐어요.”“그럼 차에 타요.”김인우는 그 대답에 마음이 어느 정도 편해졌다.솔직히 말해 그는 조하랑이 어젯밤 겪은 일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도 강연우를 생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한쪽은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당한 것이지만 다른 한쪽은 자발적인 행동이었으니 두 문제의 본질은 완전히 달랐다.차에 올라탄 후, 조하랑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신부 측 하객으로 온 사람들은 조하랑이 탄 차의 뒤차에 타 함께 김인우의 집으로 향했다.김인우의 집에 도착한 후,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김훈과 조석천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결혼식이 끝난 후, 조하랑은 여전히 우울한 표정으로 방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런 그녀의 곁을 박민정이 지켜주었다.어떤 말로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던 박민정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다.그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박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강연우였다.“저예요.“박민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강연우 씨? 연우 씨가 여린 왜 온 거예요? 오늘 하랑이 결혼식인 거 알죠? 굳이 민폐 끼치지 말고 얼른 돌아가세요.”조하랑도 밖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의 뒤로 다가갔다.“연우야, 우리 더 할 얘기 없잖아. 다 끝난 사이에.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다 알았고,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다 보상해줄게.”보상
이지원의 마음속은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 김인우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만약 네가 유남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 사이는 절대 이어질 수 없어. 급이 안 맞거든.”그 탓에 이지원은 유남준에게만 모든 마음을 쏟았다.하지만 지금, 이지원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 때문에 자신의 모든 한계치를 다 넘고 있었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지원은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소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앞으로 확실하지 않은 일은 제발 단언하지 말아 줄래요? 너무 창피하니까.”이지원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네.”이지원은 그제야 자리를 떴다.화장실로 들어온 이지원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일 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시킨 대로 한 거 맞아?”전화를 받은 부하는 두려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저희는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아가씨. 아침 일찍 조하랑을 시즌 호텔에 던져놓기도 했고요.”“그럼 영상은 어떻게 했어? 옆에 있는 티비에 다 틀어놓은 거 맞아?”“당연하죠.”상대의 말투에서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저희가 조하랑 옮겨둔 다음에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드렸잖아요. 저희를 못 믿으시겠다면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이런 일 자주 하니까 저희도 무섭네요.”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이지원의 마음은 더욱 답답했다.분명 영상까지 틀어놨다고 했는데, 김인우가 이걸 어떻게 용납할 수 있다는 걸까?여자가 자신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남자인데 말이다.“설마, 김인우가 정말 그 졸부 딸을 사랑한다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던 이지원은 다른 핑계를 하나 더 만들어냈다.김인우가 조하랑을 용서해준 이유는 그녀가 바로 박민정의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정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이지원의 기분이 조금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하지만
김인우는 누군가가 자신과 맞서면서까지 아내에게 감히 손을 댈 줄은 미처 예상도 못 하고 있었다.만약 범인을 찾게 된다면 반드시 죽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을 선사해줄 생각이었다.방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여전히 결혼식을 위해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조하랑을 발견했다.놀란 듯한 박민정의 모습에 조하랑은 김인우가 그대로 진행하자는 결정을 내렸다고 얘기해주었다.그 순간, 박민정 역시 김인우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이렇게 보면 김인우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맞았다.하지만 지금, 시즌 호텔 앞은 기자들로 가득했다.기자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조하랑을 이상하게 여겼다.“1시간이나 지났는데, 신부는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기자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았다.생방송 뉴스를 보고 있던 윤소현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해 질문을 던졌다.“왜 아직도 안 나와?”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던 이지원은 가볍게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웃는 얼굴로 말해주었다.“아마 감히 얼굴을 들고 나오기가 창피해서 그런 거겠죠.”그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윤소현이 물었다.“뭐 아는 거 있죠? 뭔데 그래요? 얼른 얘기해 봐요.”이지원이 사실대로 말해줄 리 없었다.혹시라도 윤소현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알렸다가는 큰일이었다.“별거 아니에요. 조하랑 주제에 김씨 가문을 건드렸으니 오늘 결혼은 이대로 엎어지겠네요.”그 말을 하는 이지원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 말에 윤소현 역시 이번 김씨 가문의 결혼식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김인우가 그토록 자랑해대던 여자가 어떤 창피를 당할지 너무 보고 싶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이 기대하던 그 장면을 볼 수 없었다.방송은 계속되었고 조하랑은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다.온몸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그녀의 자태는 보는 이들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김훈은 손자의 결혼식을 위해 자신의 아내인, 그러니까 김인
조하랑의 두 눈은 텅 비어 공허해 보였다.“난 정말 김씨 가문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할아버님도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그 말에 박민정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마치 목에 큰 가시라도 걸려 버린 듯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지금 그녀는 조하랑과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책 중이었다.“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널 그렇게 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게 급선무야.”조하랑은 이제 아무런 기대도 하지 못했다.“알겠어.”그리고 문밖에서는 김인우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됐던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있는 상태였다.김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인우야, 어떻게 된 일이냐? 하랑이는 만났어? 하랑이는 도대체 어디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김인우는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려버리는 할아버지의 화법에 짜증이 났지만 더는 할아버지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일이 좀 생겨서요, 결혼식을 미뤄야 할 것 같아요.”말을 마친 김인우는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그는 진작 사람들을 보내 조하랑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조사하도록 했다.드디어 방 문이 열렸고 김인우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하지만 박민정이 방 문 앞에 서서 김인우에게 말했다.“인우 씨, 하랑이한테 일이 좀 생겼는데, 단둘이 얘기 좀 하고 싶대요.”“알겠어.”김인우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고 박민정은 밖으로 나왔다.유남준이 박민정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무슨 일이야?”“아직은 말해줄 수 없어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박민정은 급히 정민기에게 전화를 걸었다.“민기 씨, 어제 오후에 그랜드 호텔까지 찾아가서 조하랑을 데려간 사람들이 누구인지 조사해주세요.”“알겠습니다.”대답을 마친 정민기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박민정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대체 누가 조하랑을 노리고 있는 걸까?방 안으로 들어간 김인우는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처음에는 조하랑이 결혼을
방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급히 안으로 들어선 김인우는 침대 위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조하랑을 발견했다.심장이 철렁한 김인우는 빠른 걸음으로 조하랑에게 다가갔다.“하랑아!”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깨어난 조하랑이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김인우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였다.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내가 왜 여기 있지?”말을 마친 조하랑의 머릿속에는 불쾌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온몸을 감싸며 방 한구석으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다 꺼져, 꺼져! 아무도 오지 마, 오지 말라고!”그 모습을 보며 김인우는 조하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믿고 싶지 않았다.“하랑아,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김인우는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조하랑은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나가! 나가라고!”박민정은 놀란 듯한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조석천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하랑아, 아빠 여기 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빠한테 얼른 얘기해 보렴. 설마 강연우 그 짐승 새끼가 그런 거니?”그는 조하랑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이 강연우라고 생각했다.조하랑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고 마음은 더욱 답답했다.그녀는 아무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나가! 다 나가라고!”김인우는 조하랑의 상태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일단 우리 다 나갑시다. 혼자 진정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요.”그 말에 주위 사람들도 모두 방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리를 뜨면서도 조하랑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있었다.조하랑의 상태를 확인한 박민정 역시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다.“민정아, 넌 남아줘.”조하랑이 박민정을 불러세웠다.“알겠어.”박민정은 곧바로 대답했다.그렇게 방 안에는 박민정과 조하랑 두 사람만 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