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의 몸이 굳어졌다.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밖만 내다보았다.“선배가 회복할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기로 주씨 가문과 약속했어.”구승훈이 웃었다.“진짜 못 만나는 거야, 아니면 핑계가 필요한 거야?”강하리의 입꼬리가 움찔하며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구승훈의 말이 다시 들렸다.“하리야, 너와 나 사이엔 헤어지더라도 이유는 딱 하나, 네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야. 주씨 가문이든 주해찬이든 우리 사이에 방해가 될 건 없어.”강하리는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해찬의 일로 핑계를 댄 건 맞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그녀를 구하기 위해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마음 편히 다른 사람과 사랑놀이나 하겠나.더군다나 그 사랑과 애정이 가져다준 씁쓸함 때문에 다시는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차는 도시 외곽의 한 별장까지 달렸다.구승훈은 먹고 지내는 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강하리는 별장으로 돌아와 연정이에게 분유를 먹인 뒤 방으로 안고 갔다.구승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막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준봉이 갑자기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어르신께서 오셔서 심씨 가문 어르신을 뵙고 싶답니다.”준봉의 말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고 심문석의 얼굴은 순식간에 험악해지며 콧방귀를 뀌었다.“날 만날 낯짝은 있고?”심금천, 백아영, 심지어 심준호의 표정도 일그러졌다.이곳으로 온 이유 중에 심미현을 보는 것 외에 구동근에게 찾아가 따지는 것도 있었다.그런데 찾아가기도 전에 상대가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할아버님, 만나고 싶지 않으면 돌려보내면 됩니다.”구승훈이 심문석을 바라보며 말하자 심문석은 그를 노려보았다.“개자식, 네가 연기하는 거 모를 줄 알아?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아?”구승훈의 눈가에 미소가 번졌다.“제가 알려준 게 맞아요. 따질 건 확실히 따져야죠.”심문석은 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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