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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장형준은 이내 동창회 날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확실한 것은 그날 정유진 씨와 둘째 도련님이 같은 파티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마주쳤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들 가면을 쓰거나 화장을 해서 만나봤자 얼굴도 몰랐을 테고 누군지는 더더욱 몰랐을 겁니다.”강지찬은 강지현의 표정을 떠올리며 말했다.“서울 대학교 가면무도회, 대체 뭐 하는 거야? 춤추는 거야?”그의 물음에 장형준이 대답했다.“정유진 씨가 그때 학교 퀸카여서 개교기념일에 공연했습니다. 저녁에 있는 가면무도회에서도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참, 대표님. 가면무도회가 의외로 재미있는 구석도 있더라고요. 조명이 무작위로 파트너를 선택하고 같은 색의 조명이 비친 사람이 같이 춤을 춰야 한대요.”순간 강지찬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장형준은 강지찬의 기색을 살피며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그런 우연이?’ 강지찬은 진짜로 그 우연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 강지현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정유진은 강지현에게 확실히 임팩트를 준 것은 분명해 보였다.다만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몇 년 후에 다시 만났을 때 강지현이 정유진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그리고 지난 동창회에서 강지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게 틀림없었고 그제야 그는 정유진이 그해 개교기념일 가면무도회에서 만났던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원래부터 눈썰미가 좋은 강지찬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참, 대표님. 어르신께서 본가에 다녀오시라고 하셨습니다.”순간 강지찬은 얼굴을 찌푸렸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 강씨 집안 식구들이 고향에 가서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니 4시가 다 되어갔다.강지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 들고 대표이사실을 나오며 말했다.“유진 씨에게 가.”장형준은 가는 이유에 대해 감히 더 묻지 못했다.한창 디자인에 몰입하고 있던 정유진은 강지찬이 오는 것을 보고 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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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외출 한 번에 정유진은 미혼에서 기혼으로 변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그저 어이없게만 느껴졌다.하지만 강지찬은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결혼식도 성대히 치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솔직히 결혼식이니 뭐니 정유진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지찬이 오늘 갑자기 혼인신고서를 한 것에 많이 놀랐다. 어떤 집에서는 애들은 여러 명 낳고도 혼인 신고를 안 하고 산다는데 자기는...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런 상황이 너무 의외라 그녀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또 어디 가요?”차가 한참을 달려서야 그녀는 지금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강지찬은 그녀의 손을 꾹꾹 주무르며 말했다.“이제 봤어요? 그러다 내가 유진 씨 납치라도 해서 밖에 내다 팔면 어쩌려고.”그 말에 정유진이 대답했다.“파세요. 나중에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K그룹 대표이사가 아내 팔았다고 나오게.”강지찬은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한마디 했다.“굿 아이디어. 그 생각 계속 유지하고요. 유진 씨는 강지찬의 마누라라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돼요.”“지찬 씨 마누라를 뺏으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네요.”그때 익숙한 길인 것을 발견한 정유진이 물었다.“본가로 가는 거예요?”“역시 내 아내는 똑똑하다니까.”이틀 뒤에 곧 제사를 지낼거라 장남인 강지찬은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그래서 그가 급하게 혼인 신고를 한 목적이 자기를 정정당당하게 그의 본가에 데려가려고? 여기까지 생각한 정유진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정유진은 이 남자가 항상 자기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그녀에게 난처한 일이 없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쩌면 사랑받는 느낌이 아닐까?누군가가 당신의 근심을 덜어주고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묵묵히 해준다정유진은 7년 동안 연애를 했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것도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강지찬이 저녁에 본가로 갈 거라고 미리 본가에 연락하는 바람에 강씨 집안 사람들은 저녁을 같이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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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사실 아무도 강지찬이 정유진을 데리고 혼인신고서를 하고 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 류선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강지찬에게 굽신거리며 말했다.“역시 지찬이는 자기주장이 확고한 아이야. 하고 싶은 건 확실하게 하고, 집안 어른들 걱정도 안 끼치고.”이 말은 사실 강홍식이라는 아빠가 그저 이 집안에서는 장식품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들이 그를 전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그에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강홍식은 한참 만에야 가까스로 화를 누그러뜨렸다.곧 제사를 지내야 했고 어쨌든 이 일은 강지찬이 해야 했기에 강홍식은 최대한 참을 수밖에 없었다.만약 지금 싸우다가 강지찬이 화가 나 가버리면 제사에 장손주가 없는 게 되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이 발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강지찬 대신 강지현을 내세울 수도 없지 않은가?일 년에 몇 번 없는 명절, 간만에 식구들이 한곳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가문의 큰일이다. 이것은 반드시 강씨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주관해서 해야 했다. 늘 어리석은 강홍식이었지만 유독 이 일에서만은 집착이 심했다.어릴 때부터 강홍식이 아버지를 따라 여러 번 제사를 지냈고 그대로 물려받아 직접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강홍식이 강지찬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라 할 수 있으니 그래서 어쩌면 더 특별히 중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다들 앉아서 식사하세요.”강홍식이 손짓을 하자 하나둘씩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강홍식이 제일 센터에 앉고 한쪽에는 남자들이, 다른 한쪽에는 여자들이 앉았다.집안 규정에 따라 남자 쪽은 강홍택, 강지찬, 강지현 순으로 앉았고 여자 쪽은 류선, 고세연 순이었다. 류선은 일부러 고세연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는 척 말했다.“세연아, 요즘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요즘 웃는 얼굴도 통 못 본 것 같아.”그러고는 고세연의 팔을 끌어 당기며 빨리 앉으라고 했다.그때 강지찬이 한마디 했다.“잠깐.”류선과 고세연이 같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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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지금의 강씨 집안의 모든 권력은 강지찬이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이 집안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고세연은 옆에 멍하니 선 채 주먹만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강지찬 앞에 서 있었지만 강지찬은 마치 그녀가 안 보이는 듯했다. 사실 강지찬의 눈에는 오직 정유진만 보였다.결국 보다 못한 강홍식이 한마디 했다.“세연아, 앉아서 밥 먹어.”고세연은 아무 말없이 정유진 옆에 앉았다.한참후 강원훈이 뒤늦게 들어왔다.강씨 집안의 혼외자로서 그는 자기가 어디에 앉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늦어서 죄송합니다.”그는 천천히 걸어와 강지현 옆에 앉았고 잠이 덜 깬 듯 하품을 하기도 했다.입을 벌려 하품하는 중에 그는 순간 눈에 띈 정유진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어머, 조카며느리가 왔네?”정유진은 굳이 누가 가르칠 필요 없이 알아서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작은 아버님, 안녕하세요.”이 집에서 그녀는 강홍식과 강원훈을 제외한 둘째 집 식구들에게 따로 호칭을 부르지 않았다.강홍택과 류선도 그걸 눈치챘는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한편 강원훈은 그런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찬이가 왜 왔나 했더니 조카며느리를 데리고 왔네. 환영해, 자주 와.”이 말에 강홍식도 그리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집안 하인들이 하나둘씩 음식을 내오자 강홍식이 제일 먼저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다들 들어. 먹으면서 제사 얘기나 하지.”원래부터 식구가 많지 않은 강씨 집안인 데다가 하나둘씩 다른 속셈과 꿍꿍이가 있다 보니 강지찬을 제외하고 모두 조용히 고개 숙여 밥만 먹었다. “여보, 그건 먹으면 안 돼요, 매워요. 여보 이거 먹어봐요, 영양가 있는 거라 태아에 좋아요. 여보, 이 닭국 시원해, 한 그릇 마셔봐요.”강지찬이 정유진의 앞에 놓인 접시에 음식을 집으려고 몸을 내밀었다. 옆에 있던 다른 식구들은 그저 이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정유진은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지찬 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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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방에 들어서자 강지찬은 정유진을 벽에 밀치고 한참 동안 거칠게 키스를 했다.“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강지현과 식탁에서 눈짓을 주고받는 거예요?”정유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계속 나에게 눈짓했던 건 지찬 씨 아니에요?”강지찬은 눈에 힘껏 힘을 주더니 정유진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녀의 배를 만졌다. “여보, 아기가 다 컸어요.”정유진은 못 알아듣는 척하며 말했다.“음, 시누이가 그래도 조심하라고 했어요.”“오늘 우리 첫날밤이에요.”강지찬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조심할게요.”정유진이 손을 빼려고 하자 강지찬은 갑자기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유진은 저도 모르게 강지찬의 목을 꼭 껴안았다. 그러자 강지찬은 이내 그녀에게 입술을 갖다 댔다. 그동안 두 사람은 스킨십을 계속했지만 아이 때문에 강지찬이 계속 참고 있었다. 강지찬은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를 하며 계속 ‘여보’라고 불러 정유진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오래 참아왔던 강지찬은 오늘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잠시 후 얼굴에 땀 범벅이 된 강지찬은 그래도 아쉬웠는지 한참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기 낳고 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강지찬은 정유진의 귓불을 깨물며 한마디 덧붙였다.“각오해요.”정유진은 그의 허리를 꼬집으려 했지만 손바닥에 힘이 다 풀려 힘주어 꼬집지 못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 시트를 간 후 다시 이불 속에 누운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방안의 구조를 눈여겨 볼 수 있었다.강씨 본가의 인테리어는 매우 전통적이며 온 집안의 가구를 봐도 확실히 ‘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샤워하고 나온 강지찬이 이불을 들추자 조금 전 강지찬의 셔츠로 갈아입은 그녀의 길고 하얀 다리가 눈에 띄었다.그는 하마터면 또 한 번 충동을 이기지 못 할 뻔했다.강지찬은 정유진을 꼭 끌어안더니 다시 그녀의 목에 거칠게 키스했다.“지금 무슨 생각 해요?”정유진은 앤티크 선반에 있는 앨범들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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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강홍식과 함께 바둑을 두고 나온 강지현은 마당에서 2층의 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고세연을 발견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올려다 보니 그곳은 바로 강지찬의 침실 창문이었다. 그 방은 아직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쉬세요.”강지현의 한마디에 고세연은 순간 눈물을 뚝뚝 흘렸다.“왜 나는 안 되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강지현도 그 창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시간이 길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고세연은 내키지 않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그럼 저 이제 어떡하죠?”강지현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포기해요.”하지만 고세연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혼인 신고했다고 해도 그게 뭔 상관인가?결혼이 있으면 이혼도 있는 거고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거니까!“죽기 전에는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고세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낯선 번호를 보고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세연 씨, 저예요...”흰색 승용차 한 대가 강씨 본가를 떠났고 30분 후, 집에 있던 강지찬은 장형준의 메시지를 받았다.「대표님, 김주환이 나타났어요.」순간 어리둥절해진 강지찬은 몇 초간 고민해서야 김주환이 누군지 떠올렸다.하마터면 지아를 추행할 뻔해 그에게 해고당한 경호원이었다.이 일은 강지찬이 경찰에게 부탁하기 미안해 장형준 더러 사람을 보내 김주환을 감시하게 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자식의 소식을 듣게 될 줄 몰랐다.정유진이 품에 안겨 잠든 것을 본 강지찬은 남은 한 손으로 장형준에게 답장했다. 그리고 곧 제사 지낼 준비를 해야 했기에 강지찬은 다음날 아예 하루 휴가를 냈다.예전에 제사 관련된 일은 대부분 류선이 담당했고 강지찬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달랐다. 강지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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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일개 교사의 딸...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강홍식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우리 엄마도 교사 딸이에요. 둘째 숙모는 이 대사가 지겹지도 않으세요?”순간 류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잠깐 잊었지만 경윤미 그 천한 년도 교사 딸이었다.‘큰 집은 정말 기가 막혀. 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고 어쩜 여자 보는 눈도 똑같아.’“지찬아, 내가 지금 너의 아버지와 얘기 중이잖니.”류선은 오늘 제사 지낼 권리를 되찾기로 마음먹은 듯했다.이것은 체면 문제도 있지만 주로는 돈이다.강씨 집안에 여주인이 없어 그동안 집안의 모든 일은 대부분 그녀가 도맡아 했다.하지만 이번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면 뒤에 더 많은 여러 개 명절이 있는데 그것들까지 못 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돈과 관련된 일이다. 일단 이런 일들이 그녀 손을 거치기만 하면 몇천만 원의 백 하나 정도는 바로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여러 호텔에서 뒷돈과 선물까지 넉넉히 챙겨준다. “아주버님, 제사는 우리 강씨 집안의 큰일이에요. 만약 조금이라도 조상들의 마음에 안 들어 노여움이라도 산다면 가문 자체가 피해를 볼 거예요.”강홍식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강지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둘째 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지켜온 우리 강씨 집안인데요. K그룹도 계속 잘 성장하고 있고 지금은 똑똑한 며느리까지 들이고 이제 곧 태어날 아이도 있어요. 조상님들도 분명 흐뭇해하고 계실 거예요. 한 개 절차 정도는 잘못돼도 조상님께서 봐주실 거예요.”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다. 사람들은 류선도 분명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차갑고 도도한 K그룹 대표이사의 말발이 이렇게 좋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때 옆에 있던 강홍식이 한마디 했다.“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원래부터 우리 큰집의 일이여야 했는데 그동안 제수씨 신세를 많이 졌어요. 앞으로 지찬이 와이프에게 맡기세요.”그러자 정유진도 한마디 거들었다.“제가 모르는 게 많으니까 둘째 숙모님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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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류선의 눈에는 강지찬에 대한 질투심으로 불타올랐다.강지찬이 말한 그녀 뱃속에서 기어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은 그야말로 류선의 심장을 찌르는 한마디였다.이 일은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택에 사는 사람들, 하인들까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 알고 있었다. “뭐라고? 이 숙모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나도 이 집안 어른이야.”강지찬은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강지현이 돌아온 이후로 둘째 숙모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둘째 숙모, 혹시 몸이 편찮으시면 제사에 나오지 않으셔도 돼요. 집에서 쉬세요.”그러자 류선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제는 나더러 제사도 참석하지 말라는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나가면서 이상한 곳에 화풀이까지 했다.“강홍택, 어디 간 거야? 아내가 여기서 몰매를 맞고 있는데 어디 가서 자빠진 거야?”순간 거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강홍식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괜히 강지찬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다음번에 물매를 맞을 대상이 자기가 될 거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홍식은 강지찬을 매우 무서워한다.지금 부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이곳은 예전에 강홍택과 그의 아버지, 즉 강지찬의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곳이다. 지금 자기 아버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자기 아들이었지만 강홍식의 마음 상태는 예전과 똑같이 변한 게 없었다. 그때 그는 친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그리고 지금은 친아들을 두려워하고 있다.순간, 강지찬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작은아버지의 밖에 있는 그 아이, 곧 성인이 되지 않아?”뜬금없는 꺼낸 강지찬의 이 말에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때 장형준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대표님, 그 도련님은 올해 만 열여덟 살이 되었어요.”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홍식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지찬아, 너 또 무슨 속셈이야?”강지찬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 장형준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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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강홍택의 사생아 이름은 강지혁이었다.아이는 강씨 집안 남자의 큰 키와 뚜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를 완벽하게 물려받았고 강지현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그를 본 류선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강홍택! 지자 돌림 쓰지 않았다면서요? 밖에서 데려온 애를 왜 강씨 집안 핏줄과 같은 글자를 쓰냐 말이에요! 그때 어르신도 밖에서 데려온 애는 이름을 따로 지었어요! 당장 이름 바꿔요! 당장!”강지혁은 류선과는 상관이 없지만 강홍택의 친아들인 이상, 류선이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었다.비록 혼외자지만 부족한 게 없이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귀족학교에 다녔다.오늘 류선의 붉으락푸르락 하는 분노에도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강홍택은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앞으로 여기가 너의 집이야. 이건 네 형이야, 나중에 네 형이 너를 데리고 집안 어르신들께 인사시켜줄 거야.”강지혁은 그저 ‘네’라고 대답할 뿐 별로 기쁜 기색은 없었다.옆에 있던 류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치 화가 난 고양이가 털을 쭈뼛쭈뼛 세우고 있지만 감히 함부로 싸우지 못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함께 서 있는 두 아들은 한 명은 병약하고 다른 한 명은 건강하다.한 사람의 이제 거의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창창한 미래를 밝히기 시작한 새내기이다.류선은 자기 아들의 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을 느꼈고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강홍택! 내가 말하고 있잖아! 못 들었어? 당장 이 사생아의 이름 바꾸라니까!”강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류선을 바라봤다.사생아?그렇다. 사람들은 가끔 그를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강홍택은 오늘 너무 기뻐 류선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쌀쌀한 얼굴로 한마디 경고를 날렸다.“당신 꼴 좀 봐, 좀 어른스러울 수 없어?”‘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류선은 일부러 강지혁의 발 옆으로 꽃병을 깨뜨렸다.방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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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정유진이 장수 자물쇠를 좋아하는 모습에 강원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싫어하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군.”강원훈은 강지찬에게 족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대신 강지혁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아이가 둘째 형을 많이 닮았네. 곧 고3이지? 어느 대학에 갈지 결정했어?”강지혁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성적이 괜찮아서 우선 국내 대학으로 생각하고 있어요.”그 말에 옆에 있던 강지찬이 한마디 했다.“자기 일에 대해 계획도 있고, 괜찮네? 나중에 잘 안되면 나에게 얘기해.”그의 말은 강지혁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다.그러자 강지혁도 이내 대답했다.“감사합니다.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옆에 있던 강지현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아이가 똑 부러지네.”강원훈은 자기 몸에서 주섬주섬 뭔가 찾는듯하더니 이내 손목시계를 빼서 강지혁에게 쥐여주며 말했다.“네가 오는 줄 모르고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 이 시계라도 갖고 가.”그러자 강홍택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너 오래간만에 어른스럽게 행동하네.”이 시계는 그 장수 자물쇠보다 당연히 비싸겠지만 하나는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을 준 것이다.강원훈은 겉으로 보기에 건들건들해 보이지만 이런 일 처리 하나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몇천만 원의 장수 자물쇠는 그 누구도 그가 강지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거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고 나면 강지찬은 그에게 신세를 진 셈이 된다. 시계를 받아쥔 강지혁은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대답했다.“고마워요, 작은아버지.”정유진은 강지혁에게 차 키가 든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성인이 된 기념으로 형님과 형수가 드리는 선물이야.”강지혁은 집에서 정유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친엄마가 집에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강지찬을 사로잡은 여자는 분명 예사롭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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