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교사의 딸...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강홍식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우리 엄마도 교사 딸이에요. 둘째 숙모는 이 대사가 지겹지도 않으세요?”순간 류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잠깐 잊었지만 경윤미 그 천한 년도 교사 딸이었다.‘큰 집은 정말 기가 막혀. 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고 어쩜 여자 보는 눈도 똑같아.’“지찬아, 내가 지금 너의 아버지와 얘기 중이잖니.”류선은 오늘 제사 지낼 권리를 되찾기로 마음먹은 듯했다.이것은 체면 문제도 있지만 주로는 돈이다.강씨 집안에 여주인이 없어 그동안 집안의 모든 일은 대부분 그녀가 도맡아 했다.하지만 이번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면 뒤에 더 많은 여러 개 명절이 있는데 그것들까지 못 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돈과 관련된 일이다. 일단 이런 일들이 그녀 손을 거치기만 하면 몇천만 원의 백 하나 정도는 바로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여러 호텔에서 뒷돈과 선물까지 넉넉히 챙겨준다. “아주버님, 제사는 우리 강씨 집안의 큰일이에요. 만약 조금이라도 조상들의 마음에 안 들어 노여움이라도 산다면 가문 자체가 피해를 볼 거예요.”강홍식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강지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둘째 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지켜온 우리 강씨 집안인데요. K그룹도 계속 잘 성장하고 있고 지금은 똑똑한 며느리까지 들이고 이제 곧 태어날 아이도 있어요. 조상님들도 분명 흐뭇해하고 계실 거예요. 한 개 절차 정도는 잘못돼도 조상님께서 봐주실 거예요.”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다. 사람들은 류선도 분명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차갑고 도도한 K그룹 대표이사의 말발이 이렇게 좋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때 옆에 있던 강홍식이 한마디 했다.“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원래부터 우리 큰집의 일이여야 했는데 그동안 제수씨 신세를 많이 졌어요. 앞으로 지찬이 와이프에게 맡기세요.”그러자 정유진도 한마디 거들었다.“제가 모르는 게 많으니까 둘째 숙모님과 집
류선의 눈에는 강지찬에 대한 질투심으로 불타올랐다.강지찬이 말한 그녀 뱃속에서 기어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은 그야말로 류선의 심장을 찌르는 한마디였다.이 일은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택에 사는 사람들, 하인들까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 알고 있었다. “뭐라고? 이 숙모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나도 이 집안 어른이야.”강지찬은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강지현이 돌아온 이후로 둘째 숙모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둘째 숙모, 혹시 몸이 편찮으시면 제사에 나오지 않으셔도 돼요. 집에서 쉬세요.”그러자 류선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제는 나더러 제사도 참석하지 말라는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나가면서 이상한 곳에 화풀이까지 했다.“강홍택, 어디 간 거야? 아내가 여기서 몰매를 맞고 있는데 어디 가서 자빠진 거야?”순간 거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강홍식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괜히 강지찬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다음번에 물매를 맞을 대상이 자기가 될 거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홍식은 강지찬을 매우 무서워한다.지금 부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이곳은 예전에 강홍택과 그의 아버지, 즉 강지찬의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곳이다. 지금 자기 아버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자기 아들이었지만 강홍식의 마음 상태는 예전과 똑같이 변한 게 없었다. 그때 그는 친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그리고 지금은 친아들을 두려워하고 있다.순간, 강지찬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작은아버지의 밖에 있는 그 아이, 곧 성인이 되지 않아?”뜬금없는 꺼낸 강지찬의 이 말에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때 장형준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대표님, 그 도련님은 올해 만 열여덟 살이 되었어요.”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홍식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지찬아, 너 또 무슨 속셈이야?”강지찬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 장형준을 보며 말했다
강홍택의 사생아 이름은 강지혁이었다.아이는 강씨 집안 남자의 큰 키와 뚜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를 완벽하게 물려받았고 강지현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그를 본 류선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강홍택! 지자 돌림 쓰지 않았다면서요? 밖에서 데려온 애를 왜 강씨 집안 핏줄과 같은 글자를 쓰냐 말이에요! 그때 어르신도 밖에서 데려온 애는 이름을 따로 지었어요! 당장 이름 바꿔요! 당장!”강지혁은 류선과는 상관이 없지만 강홍택의 친아들인 이상, 류선이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었다.비록 혼외자지만 부족한 게 없이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귀족학교에 다녔다.오늘 류선의 붉으락푸르락 하는 분노에도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강홍택은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앞으로 여기가 너의 집이야. 이건 네 형이야, 나중에 네 형이 너를 데리고 집안 어르신들께 인사시켜줄 거야.”강지혁은 그저 ‘네’라고 대답할 뿐 별로 기쁜 기색은 없었다.옆에 있던 류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치 화가 난 고양이가 털을 쭈뼛쭈뼛 세우고 있지만 감히 함부로 싸우지 못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함께 서 있는 두 아들은 한 명은 병약하고 다른 한 명은 건강하다.한 사람의 이제 거의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창창한 미래를 밝히기 시작한 새내기이다.류선은 자기 아들의 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을 느꼈고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강홍택! 내가 말하고 있잖아! 못 들었어? 당장 이 사생아의 이름 바꾸라니까!”강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류선을 바라봤다.사생아?그렇다. 사람들은 가끔 그를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강홍택은 오늘 너무 기뻐 류선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쌀쌀한 얼굴로 한마디 경고를 날렸다.“당신 꼴 좀 봐, 좀 어른스러울 수 없어?”‘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류선은 일부러 강지혁의 발 옆으로 꽃병을 깨뜨렸다.방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정유진이 장수 자물쇠를 좋아하는 모습에 강원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싫어하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군.”강원훈은 강지찬에게 족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대신 강지혁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아이가 둘째 형을 많이 닮았네. 곧 고3이지? 어느 대학에 갈지 결정했어?”강지혁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성적이 괜찮아서 우선 국내 대학으로 생각하고 있어요.”그 말에 옆에 있던 강지찬이 한마디 했다.“자기 일에 대해 계획도 있고, 괜찮네? 나중에 잘 안되면 나에게 얘기해.”그의 말은 강지혁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다.그러자 강지혁도 이내 대답했다.“감사합니다.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옆에 있던 강지현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아이가 똑 부러지네.”강원훈은 자기 몸에서 주섬주섬 뭔가 찾는듯하더니 이내 손목시계를 빼서 강지혁에게 쥐여주며 말했다.“네가 오는 줄 모르고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 이 시계라도 갖고 가.”그러자 강홍택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너 오래간만에 어른스럽게 행동하네.”이 시계는 그 장수 자물쇠보다 당연히 비싸겠지만 하나는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을 준 것이다.강원훈은 겉으로 보기에 건들건들해 보이지만 이런 일 처리 하나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몇천만 원의 장수 자물쇠는 그 누구도 그가 강지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거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고 나면 강지찬은 그에게 신세를 진 셈이 된다. 시계를 받아쥔 강지혁은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대답했다.“고마워요, 작은아버지.”정유진은 강지혁에게 차 키가 든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성인이 된 기념으로 형님과 형수가 드리는 선물이야.”강지혁은 집에서 정유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친엄마가 집에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강지찬을 사로잡은 여자는 분명 예사롭지 않은
강지찬과 정유진은 본가에서 저녁을 먹지 않았다. 강홍식은 이제 막 부자간의 정을 조금 느끼려던 참이었고 또 강홍택이 아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말에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왜? 여기 밥은 안 넘어가?”강지찬은 정말 이럴 때마다 아버지고 뭐고 없이 행동하고 싶다는 충동을 가끔 느낀다. 말하는 꼬락서니가 도저히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으니 말이다. “나야 먹을 수 있지만 내 와이프에게는 못 먹이겠어요.” 너무 직설적인 대답에 순간 강홍식과 정유진은 어리둥절했다.강지찬은 정유진의 손을 잡더니 강홍식의 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그곳을 나왔다. 정유진은 차에 오를 때까지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다.차에 오른 후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를 보자 강지찬은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안더니 웃으며 말했다.“왜요? 무서워요?”정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를 감쌌다.그녀는 강지찬과 강지현이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난 ‘우연의 일치'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무서워요.”그녀는 솔직히 대답했다.그러자 강지찬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뭐가 두려워요? 남편이 여기 있는데.”정유진이 무서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강지찬이 오늘 보여준 이 수단들은 류선조차 어떻게 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류선은 지금쯤 이 두 사람을 죽도록 미워할 것이다. 강지찬 또한 평소 본가에 별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에 집안의 하인들은 진작 류선에게 매수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강지찬이 본가에 머물려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게다가 고세연도 여기에 있다.정유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온몸이 더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그럼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일은...”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찬이 대답했다.“이번 제사는 부경원에서 사람을 데려올 거예요. 방씨 아주머니는 저희 어머니 곁에 오래 계셨던 분이에요. 집사
“혼인 신고를 마쳤다고?”조예원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역시 강 대표님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정유진은 키키와 조예원에게 자료들을 전송하면서 말했다. “내가 휴가 내는 동안만은 잘 부탁할게. 컴퓨터는 내가 챙길 테니까 급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줘.”조예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너는 지금 강씨 집안의 안주인이야. 당장 조사님 제사를 코앞에 두고 무슨 회사 일이야. 회사 일은 우리에게 맡겨. 나중에 출근하고 다시 얘기해.”“알았어.”정유진도 더 이상 그녀와 입씨름을 하지 않았다.조예원의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에 정유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강 선생님도 제사를 지내야 하니까 당분간은 상록수 별장으로 가지 않아도 돼.”잠깐 생각에 잠겼던 정유진은 절친인 조예원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작은 집의 일을 그에게 말했다. “혼외자가 열여덟 살이라고? 그, 그러면 강 선생님 많이 속상하겠네?”정유진은 그녀의 예상 밖의 대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제대로 보지 못했어. 그런데 별로 슬퍼 보이진 않던데? 그냥 평소와 똑같았어. 강지혁을 잘 보살펴주기도 하고 식사할 때 반찬도 챙겨줬어. 속상한 건 강 선생님 어머니겠지. 숙모님이 이번에 지찬 씨 확실히 미워할 거야.”정유진의 말에 조예원도 맞장구를 쳤다.“그래, 네 남편이 확실히 독하기는 해. 그게 누구여도 분명 화가 날 거야.”그러면서 못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그래도 우리 지현 씨가 제일 좋아. 얼마나 멋지고 젠틀해. 꼭 오래 사셔야 할 텐데.”그녀의 말을 들은 정유진이 그녀를 보며 한마디 했다.“강 선생은 살이 빠진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어. 밖에서 하는 말이 다 그냥 헛소문인 것 같아.”“우리 엄마가 저번에 유명한 한의사를 안다고 했어. 아주 대단하다고 했는데... 강 선생님께 보약 한재 지어드리고 싶어.”정유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한의사가 믿을 만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 선생님
청하군은 강씨 가문이 있어 다른 마을보다 훨씬 번화했다.게다가 근처에 유명한 오래된 마을까지 있어 관광업이 매우 번창하고 있었다.같이 고스톱을 치고 있는 낯선 두 여자는 아마 류선과 같은 세대인 강씨 집안의 친척일 것이다. 강지찬을 본 두 여자는 얼른 손에 있던 패를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지찬이 왔어? 오랜만이야. 너의 숙부가 너를 많이 보고 싶어했어.”“어머, 지아야. 어쩌면 클수록 점점 더 예뻐져?”강지찬은 정유진에게 이 사람들을 소개해주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이건... 숙모.”그러자 정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숙모님들 안녕하세요.”그녀가 웃으며 인사하자 그 두 여자는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아부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우리 지찬이 와이프가 참 예쁘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저리 가라야.”“우리 지찬이는 정말 복이 많아.”정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강지찬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숙모님, 편하게 계세요. 저희는 잠깐 방에 가서 정리 좀 하고 나올게요.”그러자 노란 옷을 입은 숙모가 웃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 없어. 지찬이 와이프, 좀 이따 나와서 같이 고스톱 한판 해?”정유진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할 줄 몰라서.”그들이 방으로 들어간 후, 노란 옷을 입은 숙모가 옆 사람에게 말했다.“지찬이 와이프가 좀 까다롭네요.”그 말에 류선은 고세연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대답했다.“그러니까요, 역시 우리 세연이가 제일 얌전하고 말을 잘 들어요.”그러자 두 여자는 바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우리 세연이가 제일 예뻐요.”“세연이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봐온 아이라 어떤 애인지 너무 잘 알죠. 휴, 지찬이 얘는 옆에 있어도 사람 볼 줄 이렇게 모르니... 어쩌겠어요. 본인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데.”이 집안의 대부분이 강지찬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두 여자는
밖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은 일부로 정유진더러 들으라는 듯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정유진은 전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온미정이 우유를 많이 마시면 태아에게도 좋고 살도 안 찐다고 해서 그녀는 매일 오후나 저녁에 한 컵씩 따뜻한 우유를 마시곤 했다.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가에 앉아 한 모금씩 여유롭게 들이켰다.우유를 다 마셔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가지 않은 것을 보니 일부러 정유진을 찾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정유진은 화장을 조금 수정하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입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고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중에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와’하고 감탄했다.바로 안이 침실인지라 그녀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란 말은 안 하고 그저 입구에서 그들을 향해 물었다.“혹시 저를 찾으셨나요?”이때 한 젊은 남자가 건들건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에요. 저희는 형수님이 예쁘다는 말을 들어서 특별히 보러 왔어요.”정유진은 웃으며 대꾸했다.“고마워요. 안으로 들어오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아래층에 디저트랑 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편하게 계시다 가세요.”그때 누군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무슨 내숭을 그렇게 떨어요. 우아한 척은! 부잣집 도련님 품에 한 번 안겨서 인생 역전한 주제에!”말하는 여자는 화장도 화려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은 꽤 예쁜 여자였다. 정유진이 그녀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녀도 도발하듯 정유진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정유진은 이제 이런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예전에 한빈의 회사에도 갓 입사한 소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한빈에게 빠져 있어 정유진이 매번 회사로 갈 때마다 그 소녀는 이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기 때문이다.강지찬은 여기서도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은 것 같다.하지만 옆에 있던 방씨 아주머니는 그 여자의 말에 매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어린 아가씨가 왜 이렇게 교양 없이 말해요? 누구 집 자식이에요?”“내가 누구 집 자식이든 당신 같은 가정부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