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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이라는 죄로: Chapter 361 - Chapter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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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대우 그룹 내부에 대해서 임태훈은 이미 손을 뗀 지 오래되었다.나이가 많은 것도 있지만 임재욱에 대한 믿음이 컸기에 안심하고 노후를 즐기면서 회사 일에 관해 묻지도 않은 것이다.그러나 가끔 회사 큰 주주들이 집으로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언급했었다.임태훈은 그제야 임재욱이 심씨 가문을 위해 적지 않게 힘써준 것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시대가 바뀌고 전성기를 다 보내는 부동산 사업은 전경이 그리 좋지는 않다.여러 해 동안 적자를 낸 심씨 가문의 통장을 메우려는 것도 결코 한 순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임재욱은 심씨 가문을 위해 대출을 비롯한 여러 도움을 주었는데, 그중에서 황금 지역까지 내주면서 다시 일어서게끔 했다.이는 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주주들의 불만을 자아낸 것이다.그렇게 끝내는 임태훈의 귀에까지 들어온 것이고.임씨 가문과 심씨 가문 사이에는 그동안 아무런 거래도 교류도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씨 가문에서 시원시원하게 도와주는 건 모두 유시아 때문이다.이런 애물단지가 임재욱 곁에 있으니 대우 그룹 전체가 손에 땀을 쥐고 있다.그러므로 정유라는 이 사건의 서론이자 낙타 등에 눌린 마지막 짚이기도 하다.임태훈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임재욱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놀아도 되는데 정도껏 해야지. 꽃뱀이나 다름없는 여자잖아. 그런 여자한테 그 많은 돈을 쏟아붓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그럴 가치도 없거니와.”말을 마치고 임태훈은 바로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그리고 정유라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더 이상 두 사람 일에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유시아에 관해서 절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그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유시아 한 명을 위해 대우 그룹 전체를 망치게 할 수는 없다면서.임재욱도 몸을 돌려 멀어져가는 임태훈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시아 저한테 돌려주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네?”그 말을 듣기는 했으나 임태훈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위층으로 향했다.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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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기의 지위가 가장 높고 특별했으면 한다.어머니를 제외하고서 그 누구도 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생각을 하지 말라면서.한서준은 티슈 한 장을 뽑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임청아의 입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얼굴에 미소를 띠고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100점 대답 들었으니, 이제 좋아?”임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도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해 마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마음이 단순한 여자는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한서준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고 입꼬리도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가능하다면 그녀가 평생 이렇게 단순하게 지냈으면 한다.그 어떠한 고민도 걱정도 없이 세간의 고통도 모른 채로 말이다.밥을 다 먹고 나서 한서준은 임청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번화한 밤거리를 바라보며 임청아는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 제안했다.“서준아,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새로 나온 액션영화가 있다고 하던데 엄청 재밌다고 들었어. 같이 보러 가면 안 돼?”그 말에 한서준은 입가에 웃음이 일었다.“청아 너 같은 여자들은 보통 사랑 영화 같은 걸 보지 않아? 갑자기 웬 액션 영화? 그건 남자들이 보는 거 아니야?” “영화 보는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재밌으면 그냥 보는 거지. 난 액션 영화가 좋단 말이야.”임청아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 덧붙였다.“어릴 적부터 액션 영화 좋아했어. 우리 할아버지가 난 응당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그러셨어.”그때는 임태훈의 말이 듣기 거북하지 않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차라리 그랬으면 했다.그럼, 적어도 성차별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고 홀로 대우 그룹을 도맡을 수 있을 건데 말이다.허구한 날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아버지의 혼외 자식인 임재욱을 보지 않아도 되고.정서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성격이라 그 일을 떠올리더니 임청아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하지만 한서준은 그녀가 지금 무슨 일로 갑자기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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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한서준이 내려가자, VIP 상영관에는 임청아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그녀는 소파에 기댄 채 팝콘을 먹으면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영화를 즐겼다.바로 그때 외투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을 꺼내 들어 보니 발신자 번호에 임재욱이라고 적혀 있었다.이름 석 자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수신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야?”“너 지금 히트 영화관이야? 한서준이 누구하고 싸우던데? 지하 주차장에서.”그 말에 임청아는 당황해 마지 못했다.“뭐라고? 서준이가 싸우고 있다고?”확답을 듣고서 임청아는 바로 전화를 끊고 외투와 가방을 챙겨 달려 나갔다.걸음을 재촉하면서 한서준에게 전화를 계속 걸었다.하지만 받는 이가 없었다. 지하 주차장에 워낙 신호가 없으니깐.임청아는 별다른 의심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지하 2층에 이르러 엘리베이터에서 나서자마자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임재욱과 마주치게 되었다.“서준이는?”임청아는 다소 다급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어... 웁...”바로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젖은 수건으로 임청아의 입과 코를 막아 버렸다.수건에서 이상한 향기가 났고 임청아는 그 향기를 계속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순간 머리가 빙빙 돌면서 차갑게 웃고 있는 임재욱의 웃음소리마저도 희미해졌다.모든 걸 해결하고 다시 상영관으로 돌아온 한서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임청아도 이미 사라진 채 아무것도 없었으니...다음 날 아침, 임태훈이 위층에서 내려오자, 집사는 그를 보자마자 공손하게 아침 인사를 드렸다.“안녕히 잘 주무셨나요?”이에 임태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나이가 들면 잠도 줄어드는지 그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곤 한다.이른 아침부터 하인들은 자기 위치에서 청소하고 음식 준비를 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임태훈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청아는? 들어오지 않았어?”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어제 점심에 나간 뒤로 지금껏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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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자기가 살아 있을 때는 어떻게든 임청아를 지켜줄 수 있지만, 일단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임청아는 어찌 될지 모른다고.대우 그룹에서 얼마나 나눠 가질 수 있는지도 그때가 되면 임재욱의 손에 달려있게 된다고.따라서 시무에 맞게 똑똑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었다.이때 핸드폰에 떠오른 전화번호를 보고 임재욱은 수신 버튼을 눌렀다.그러고는 핸드폰을 임청아의 귓가에 놓았는데.“할아버지야 전화야. 받아.”전화기 너머 임태훈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청아야, 너 어제 또 외박했어? 지금 어디야? 당장 사람 보낼게.”임청아는 이미 놀라서 자지러질 뻔했으나 임태훈의 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했다.“할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임재욱이 절 죽이려고 해요.”순간 임태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임재욱? 청아야, 너 지금 어디야? 임재욱은? 걔한테 전화 좀 받으라고 해.”옥상의 바람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려왔다.백화점 아래서 많은 이들이 옥상 위의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고 경비원들은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경찰에 신고하며 기자에게 연락하며...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임재욱이 꼭 닫아 버렸기에 지금 이곳은 두 사람만의 ‘무인도’가 되어 버렸다.임재욱은 핸드폰을 도로 가져와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텔레비전을 보시든가 아니면 온라인으로 ‘히트 백화점’검색해 보시든가 하세요. 그럼, 귀하신 손녀분께서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임태훈이 직접 움직일 것도 없이 집사가 태블릿으로 시민이 찍은 동영상을 보여드렸다.“이거 좀 보세요. 아가씨께서...”임태훈은 간신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임재욱, 청아는 네 동생이자 우리 임씨 가문의 일원이야...”“임씨 가문의 일원이라는 거 저도 물론 잘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제 숨통을 조이시니 저도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이러고 있는 중이에요.”임재욱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일었다.“할아버지, 거래 하나 하실래요? 저한테 시아 돌려주시면 저도 손녀분 돌려드릴게요. 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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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오늘 아침 6시 폭파 철거!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시간을 한 번 보았는데, 딱 마침 6시였다.‘늦었어.’순간 우렁찬 소리가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시아 죽이려고 했어... 처음부터 우리 시아 죽이려고 했어...’유시아를 ZH빌라로 보낸 걸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위험 주택인 ZH빌라를 폭파하면서 유시아까지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설령 나중에 누군가가 그때 그 건물 속에 사람이 있었다고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임태훈은 자신의 인맥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심지어 유시아 혼자서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고 할 수도 있다.거렁뱅이가 지붕이 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처럼.폭파 소리일지도 모르는 그 희미한 소리는 임재욱의 고막을 찌른 동시에 가슴까지 확 치고 들어왔다.순간 폭풍우처럼 밀려드는 슬픔에 숨이 턱턱 막혔고 유시아와 헤어졌던 마지막 그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뭉치한테 제발 좀 잘해 달라고 부탁했던 그 순간.그렇게 하겠다며 약속을 받아냈던 그 순간.차가 멀어질 때까지 그린레이크 앞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그 순간. 그 모든 순간이 전례없이 또렷하게 확대되었다.시간을 좀 더 뒤로하여 하나씩 떠올렸는데...유시아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유시아가 편히 살 수 없게끔 임재욱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괴롭혔었다.그녀가 좋아하지도 않은 고양이를 억지로 선물했고 소현우한테서 받았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버렸고 심지어 구름이까지 데리고 갔다.그렇게 모질게 대했었는데 살짝 고개를 숙이고 뭉치한테 잘 해달라고 하니 유시아는 또 시원시원하게 승낙까지 했었다.‘내 말이라면 그게 뭐든 듣는 사람이잖아... 그러니 시아야, 절대 죽지 마! 나 너 보고 죽어도 된다고 한 적 없어...’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의외로 침착한 모습으로 전화를 끊었다.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응급차까지 불렀다.모든 걸 마치고 난 뒤 그는 액셀을 끝까지 밟고 신호등 따위를 무시한 채 미친 듯이 달려갔다.ZH빌라에 도착했을 때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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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임재욱의 마이바흐 차소리가 들려왔다.임태훈은 소리에 따라 창밖으로 내다보더니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눈에 핏발이 가득 선 임재욱이 아래층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임태훈을 보고서 임재욱은 천천히 입을 여는데.“저 ZH 빌라에서 이제 막 돌아왔어요.”“그래서?”임태훈의 입가에 헛웃음이 일었다.“네가 그토록 원하던 여자는 만났어?”“아니요.”“할아버지께서 저를 속이신 게 아니시라면, 누군가가 시아를 구해간 것 같아요. 아니면 혼자 도망갔을 수도 있고요. 폭발하고 나서 그곳에서 시아에 관한 그 어떠한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어요.”“뭐라고?”그 말을 듣고서 임태훈은 눈살이 찌푸려졌다.‘그럴 리가 없는데...’유시아를 납치했을 때, 임태훈 측 사람은 유시아를 기절시키고 나서 바로 커다란 검은색 봉지에 싸서 그대로 ZH빌라 어느 한구석에 버렸다.ZH빌라는 철거 구역이고 위험 주택이므로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유시아 스스로 도망쳐 나온다는 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고.햇살을 등진 채 가만히 서 있는 임재욱, 그의 얼굴은 유난히 더 어두워 보인다.“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온 거예요.”“할아버지, 유시아는 제 여자입니다. 이번 한 번은 봐 드릴 수 있으나 또다시 그 여자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시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만약 그럴 시에는 할아버지께서 애지중지 여기시는 손녀가 많이 힘들어질 겁니다.”지팡이를 꼭 짚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협박이나 다름없는 그의 말을 듣고서 임태훈은 손등에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임태훈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임재욱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임재욱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처음부터 조금씩 가르쳐 준 사람은 임태훈이다.임태훈의 손을 거쳐 그는 아주 평범한 남자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엘리트로 성장했다.지금과 같은 실력과 모습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임태훈 덕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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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침실 안은 순간 더없이 밝아졌다.조금 전 유시아가 부주의로 깨버린 물 잔도 용재휘가 30분 전에 침대 머리에 놓았다.유시아가 하도 긴 시간 동안 혼수 상태에 빠져서 깨어나자마자 물을 찾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그곳에 올려놓은 것인데.“시아 씨, 깼어요?”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용재휘는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깨끗한 흰 셔츠에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까지 거둔 모습으로.용재휘는 침실에서 소리가 나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다.“시아 씨, 괜찮아요? 좀 어때요?”손을 내밀어 이마를 짚고 미간까지 찌푸린 유시아가 대답하는데.“머리가 좀 아프네요.”그러자 용재휘는 바로 그녀를 도로 천천히 눕히고 안심을 주었다.“뇌진탕이 좀 있는데 큰일은 아니라고 그랬어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여기 가만히 누워있어요. 좀만 더 쉬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예요.”핏기 하나 없는 유시아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면서 용재휘는 가슴이 미어졌다.지난번 병원에서 마주쳤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초췌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그때는 얼굴에 살도 좀 있고 두 눈도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모든 걸 잃은 지금 이 모습과는 달리.활발하고 생기가 넘쳤던 유시아는 불과 며칠 만에 임재욱의 손에 살아있는 송장이 되어 버렸다.‘임재욱! 나쁜 놈!’용재휘는 아랫입술을 사리물고 다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시아 씨, 곰탕 끓이고 있어서 나 이만 부엌에 가봐야 해요. 잠시 쉬고 있어요. 거의 다 끓여가요.”유시아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용재휘는 유리 파편을 대충 치우고 부엌으로 달려갔다.가스레인지 불을 끄자마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는데, 심하윤이었다.밤바람이 따뜻한 계절에 심하윤은 베이지 코트를 입고 그렇게 나타났다.양손에 각종 영양제를 바리바리 챙겨서 허겁지겁 달려온 모습으로.“재휘야, 시아는 좀 어때? 깨어났어?”“조금 전에 깨어났어요. 곰탕을 좀 끓였는데 시아 씨한테 가져다주려던 참이었어요.”“알았어.”심하윤은 천천히 침실 문을 열었다.용재휘의 아파트에는 침실이 두 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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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만약 심하윤이 목격하고 뒤따라 가지 않았더라면 유시아는 이미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다시 그때 그 상황을 떠올려보니 저절로 살이 떨리는 심하윤이다.지금으로서는 용재휘가 있는 이곳이 가장 안전해 보인다.심하윤은 유시아의 작은 손을 잡고 감개무량한 듯이 운을 떼었다.“시아야, 전에 일들에 대해서 엄마한테 들었어. 미안해... 진심으로. 우리 집안 때문에 네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비록 심하윤도 그 계약서를 가지고 유시아를 놓아달라고 임재욱을 찾아간 적이 있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심지어 유시아에게 우환까지 안겨다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내 자책하며 미안해했다.그렇다고 하여 해결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그러나 이번이야말로 좋은 기회인 듯싶었다.다시 임재욱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뿐더러 임재욱과 심씨 가문 사이에서 등이 터지지 않아도 된다고.유시아는 야식을 간단하게 먹고서 다시 침대에 올랐다. 옆에는 심하윤도 함께했다.가장 친하게 지냈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메인 침실을 기꺼이 내준 용재휘는 거실 소파에서 자고.“시아야, 오늘 외삼촌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재휘가 다시 해외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심하윤은 말하고서 몸을 돌렸다.스탠드의 불빛에 은은하게 비친 유시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계속 덧붙였다.“너도 같이 갔으면 해. 나도 그랬으면 좋겠고. 어쩌면 너한테 있어서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해외로 나가서 일하고 그림도 그리고 계속 학교에 다녀도 되고.”유시아는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재휘 씨랑 같이 가는 거예요?”“음. 재휘가 너한테 어떤 마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을 건데?”흔들린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서 심하윤은 바로 몸을 일으켜 앉아 설득에 나섰다.“외삼촌은 지금 해외에서 회사를 운영 중이시고 외숙모도 현지에서 알아주는 대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계셔. 다들 좋은 분들이시니 네가 가게 된다면 틀림없이 양팔 벌려 널 환영할 거야.”임재욱이 아무리 쫓아온다고 한들 해외로 쫓아오지는 않을 것이다.만약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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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유시아는 밤새 잠을 설쳤다.정유라 사건 이후로 유시아는 종종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폭발 소리, 폐허, 그린레이크 문 앞...실수로 정유라를 밀친 화면, 유산으로 바닥에 피가 낭자한 광경, 끊이지 않은 아이의 울음소리...그렇게 오랫동안 유시아는 유산한 사람이 대체 정유라인지 아니면 자기인지 심하게 착각할 정도였다.두 사람 모두 임재욱의 아이를 품었었고 똑같이 아이를 잃었으니.밤새 몇 번이나 악몽에서 깨어나서 또다시 잠들었는지 다음 날 아침 유시아는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다크서클도 턱 밑까지 내려오고.용재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장난삼아 말했다.“어머, 판다가 우리 집에도 있었네요? 시아 씨 지금 판다 같아요. 동물원에 넘기면 부르는 게 값일 거예요.”너스레 떠는 그의 농담에 유시아의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한참을 웃다가 유시아는 순간 가슴 한쪽 곁이 미어져 왔다.심씨 가문을 위해 임재욱과 그런 거래하여 대출도 땅도 대신 얻어왔으니 그만하면 꽤 값어치가 있는 게 아닐까?표정이 한껏 어두워진 유시아를 바라보며 용재휘는 말실수한 것 같다는 거 알아차렸다.멋쩍은 말투와 어색한 모습으로 다급히 입을 여는데.“어... 난 이만 화실에 가봐야 해요. 그리고 누나는 아침 일찍 조식사러 나갔어요. 이제 곧 올 것 같은데...”말하면서 그는 자기 태블릿을 유시아에게 건네주었다.“심심하면 게임이라도 좀 하고 있어요. 누나 오고 나면 아침 먹어도 되니 좀 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먼저 가 볼게요.”용재휘가 떠나고 홀로 방안에 남겨진 유시아는 지루하기 그지없었다.심심하기도 하여 용재휘의 태블릿을 열었는데, 다소 놀라운 것들을 보게 된다.배경 화면이 유시아인 것은 물론이고 그 사진은 심지어 유시아가 18살 때 찍었던 프로필 사진이다.일찍이 유시아는 그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그때 그 SNS를 로그오프한 지 한참 되었으나 용재휘가 그 사진들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옛 사진을 바라보며 유시아는 살짝 웃었다.그러고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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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마지막 한마디를 듣고 난 뒤 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신서현에 관해서 이러한 소리를 들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정월 대보름에 클럽 룸안에서 도승우라고 하는 재벌 2세가 많은 이들 앞에서 신서현의 스트립쇼에 대해 평가한 적이 있다.그로 인해 임재욱의 손에 죽을 뻔도 했었고.그리고 지금, 심하윤 역시 같은 뉘앙스로 신서현을 언급하고 있다.‘천한 X’은 말 그대로의 뜻인데, 그렇다면...유시아는 고개를 번쩍 들어 심하윤을 바라보았다.“하윤 언니, 신서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요?”“꽤 많이.”심하윤은 꿀꺽 침을 삼키더니 운을 떼기 시작했다.“우리 아빠 친구가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연예인들이 엄청 많아. 그래서 그쪽 업계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거야. 신서현은 겉으로 보기에만 청순하지 사생활은 입에 담기 버거울 정도야. 스폰서도 엄청 많고 이 남자 저 남자랑 마구 자는 것도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야. 같은 여자로서 부끄러울 정도로 천하고 마지노선이 없어. 노래며 연기며 뭐 하는 잘하는 것 없는데, 대중들 앞에 보여 준 모든 것들을 잠자리로 바꾼 거래.”“...”유시아는 어느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일반인에게 있어서 연예계는 단지 눈으로 보인 것이 전부다.전에 신서현에 대해 알아본 것도 사이트와 기사 보도에 적힌 것이 전부였다.기사에서 신서현은 청순한 이미지를 지닌 노력형 배우로서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며 마음이 더없이 넓고...단점 하나 없는 사람으로 포장되어 있었다.회사에서 소속 연예인의 콘셉트를 잡고 그와 관련된 허위 사실을 마구 지어내 콘셉트를 유지하게끔 하는 걸 유시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다만 신서현이 심하윤한테서 그러한 이미지인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세상 천박한 여자로 각인되어 있었으니.유시아는 순간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랐다.도승우의 말까지 다시 떠올려보니 신서현이 살아 있을 때 정말로 그러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 모든 걸 임재욱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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