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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죄로의 모든 챕터: 챕터 311 - 챕터 320

485 챕터

제311화

임재욱이 해외에 출장 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유라는 조금 언짢았다.해외는 너무 멀어서 그녀의 세력권에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의심스러웠다. 출장을 이용하여 유시아와 해외에서 즐겁게 지낼 게 아닌가 하고.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자신에게 함께 가달라고 했다.임태훈은 연세가 많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임청아도 새로 사귄 남자 친구 때문에 임태훈의 강한 반대를 받고 있었는지라 최근 들어 자주 소란을 피웠고, 성격도 점점 변덕스러워졌다.그러니 정유라는 본가에서 말할 사람 하나 없을 정도로 외로웠다.생각해 보니 임재욱과 함께 해외에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그가 일할 때 그녀는 호텔에서 묵으면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아기가 크기를 기다리면 된다...한바탕 계산을 끝낸 후에 정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마침 남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임재욱은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미국으로 가는 일은 임재욱과 정유라 두 사람이 함께 결정했다.부부 두 사람 모두 동의하는 사안인 만큼 어르신들도 반대할 여지도, 이유도 없는 듯했다.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섣달그믐을 보내고 나서야 임재욱은 정유라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유시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길 건너에 있는 임재욱과 정유라를 발견했다.설을 쇠고 나니 봄바람이 쌀쌀했다. 임재욱은 검은색 코트를 입었고, 정유라는 하얀 밍크코트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루이뷔통의 한정판 가방을 들고서 임재욱 곁에 딱 붙어 서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항으로 향했다.가까이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마침 검은색과 흰색이어서 그런지 더 튀었다. 유시아는 멍하니 선 채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공항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오늘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용재휘는 원래 미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보름을 쇤 다음 다시 정운시로 오려고 했는데 고모부 심송학이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것을 듣고 급하게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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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공항 출구 쪽에서 용재휘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옅은 회색 패딩 점퍼를 입고 흰색 캐시미어 목도리를 한 채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시아 씨!”유시아는 그에게 웃음을 보이며 걸어갔다.“재휘 씨, 한국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면서 심씨 집안의 차에 올라 병원으로 직행했다.심송학은 지금도 시내에 있는 사립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는 이곳의 원장과 오랜 친구였고, 또 평소에도 병원에 각종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 병원만이 그를 받아주었다.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심송학은 이미 잠들었고, 채경숙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며칠 동안 피부관리에 소홀한 데다가 화장도 하지 않은 그녀는 꽤 초췌해 보였다.심하윤이 없는 걸 보니 밥을 사러 나간 것 같았다.“고모.”용재휘는 앞으로 다가가 채경숙에게 물었다. “고모부는 어떠세요? 의사 선생님께선 뭐래요?”채경숙은 친정 조카를 보자 눈시울을 붉혔다. “재휘야, 네 고모부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 우리 심씨 집안도...”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유시아는 자신이 외부인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있기가 민망해 조용히 말했다. “아주머니, 재휘 씨, 말씀 나누세요, 전 하윤 언니를 찾으러 갈게요.”그리고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윤이 도시락 두 개와 과일을 넣은 봉지를 들고 식당에서 나왔다.집안 사업이 부도나고 남자 친구에게 차인 데다가 웨딩숍마저 운영이 안 돼 문을 닫은 충격으로 심하윤은 평소보다 훨씬 야위어 보였다. 얼마 없었던 볼살마저 빠져 턱이 유독 돋보였는데 예전의 생기를 잃은 것 같았다.“하윤 언니.”유시아는 그녀를 부르며 앞으로 다가가 무거운 과일 봉지를 받아 갔다.“아저씨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고 재휘 씨가 방금 왔어요. 지금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예요.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모든 게 다 지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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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아닐 거예요, 하윤 언니...”유시아는 탁자 위를 치우며 말했다.“일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비관하지 마요. 모든 게 다 지나갈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하윤은 조금 멍해졌다.그녀는 심송학, 심씨 가문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무릇 어떤 위기가 찾아온들 심송학의 건강이 이토록 심하게 악화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그 역시 해결하지 못한 일을 심하윤 모녀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서로 속고 속이는 상업계에서의 일에 대해 그녀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게다가 심하윤은 디자인을 할 때도 웨딩드레스 가게를 열 때도 항상 아버지인 심송학이 뒤에서 지탱해주었기에, 그녀는 전혀 혼자 생활하며 돈을 벌 능력이 없었다!심송학이 쓰러진 마당에, 그녀는 보호자가 없어 노숙하게 될지도 모른다.그런 날들을 심하윤은 평생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저녁 무렵, 그녀는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유시아는 심하윤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문 입구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이때 용재휘가 보낸 메시지가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시아야, 이번 고모네 일이 조금 많이 까다로워.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두 줄의 짧은 문자였지만, 유시아는 되레 한숨을 푹 내쉬었다.[뭔데?][고모부네 회사에 적자가 너무 많아. 몇천억의 자금도 없어서 도저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해외에 있는 용재휘네 회사 역시 총자산이 몇십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이 “구멍”을 메울 방법이 없다!‘몇천억이라...’유시아는 조용히 입을 꼭 다물었다. 몇천억, 그녀에게 있어 이건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라 할 수 있다!예전에 그녀는 부득이한 상황이 되면 집을 사서 그들을 어느 정도 도울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제 보니 그건 쥐꼬리만 한 도움일 뿐이었다!유시아가 손가락을 떨며 그에게 답장을 보내던 중, 병실에서 심송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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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안됩니다. 가질 수 없어요!” 유시아는 단호히 거절했다.“아저씨, 저도 손발 다 있고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저씨 돈을 받을 수 있겠어요? 이 돈은 아저씨 의료비로 하거나 하윤 언니한테 남겨주세요. 저는 정말 받을 수 없습니다...”심씨 가문의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유시아가 돈을 받는 것은 불이 난 틈을 타 강도질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아니, 꼭 네가 받아둬야 한다!”심송학은 갑자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네 아버지가 떠날 때, 내가 너를 잘 돌봐주겠다고 약속했다. 네 아버지는 나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나는 잘 돌봐주지도 못하고 되레 너를 지금 외롭게 하고 있어. 죽은 후에 네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게 하고 싶지는 않구나. 시아야, 아저씨가 이렇게 부탁하니 돈은 꼭 받아주렴...”부탁이었던 것이 마지막에는 애원하는 것으로 변했다.유시아는 마지 못해 그 카드를 움켜쥐었다.“상심해 마세요, 아저씨. 이 카드는 제가 받을게요.”“그래. 고맙구나.”심송학은 모든 것을 끝내고 나서야 천천히 베개에 기대었다.“너도 나가서 쉬어. 아저씨는 좀 혼자 있고 싶구나.”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일찍 쉬세요.”곧이어 그녀는 심송학을 도와 불을 끄고 난 뒤 병실을 떠났다.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유시아가 먼저 깨어났다.그녀는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씻은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가 조식을 샀다.돌아왔을 때, 심송학 부녀는 모두 깨어난 뒤였고 세 사람은 함께 앉아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에는 유시아가 심하윤에게 함께 설거지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그렇게 화장실에 도착하자 그녀는 그 카드를 꺼내어 심하윤의 옷 주머니에 넣었다.“카드 비밀번호는 0 여섯 개예요. 아저씨께서 어제저녁 저한테 생활비 하라면서 주신 거예요. 근데 지금은 제가 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 언니가 이거 받고 나중에 급할 때 써요.”그러자 심하윤은 아연실색하며 서둘러 말했다.“너한테 줬으니 네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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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심씨 가문의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자금이 하루라도 확보되지 않는 한 심씨 가문 소유의 부동산 회사는 채권자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심씨 가문의 별장 역시 회사의 장부에 예치되어 있기에 만약 파산한다면 집도 은행에 압류된다.그들 세 식구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길거리 노숙이었다.심씨 가문의 자금이 수천억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골치가 아팠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억지로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그렇지 않으면 심리적 압박이 더욱 커질 테니 말이다!저녁 무렵이 되자 용재휘는 유시아에게 가서 쉬라고 권했고, 그는 심하윤과 함께 남아 고모부를 돌보기로 했다.유시아는 심하윤이 조금 안쓰러워 그녀더러 쉬게 하고 자신은 여기에 남아있기를 원했다.하지만 거실의 소파가 좁아서 잠들기 불편했고, 심하윤도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그녀가 오히려 유시아를 말렸다.“그냥 돌아가. 재휘랑 둘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채경숙도 유시아의 팔을 잡아당겼다.“그래, 시아야. 나랑 함께 차 타고 돌아가자!”유시아는 눈을 치켜들고 채경숙의 눈을 바라보다가 마치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자동차에 탔다.차는 아주 빨리 심씨 저택 마당으로 들어가서 별장 입구에 천천히 멈춰 섰다.“시아야...”채경숙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단둘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줄래?”유시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채경숙을 따라 함께 별장으로 향했다.이전에도 그녀는 심씨 저택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는데, 유럽식의 큰 별장은 넓고 화려해 매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하곤 했다. 어떤 사람은 차를 대접하고 또 어떤 사람은 꽃과 나무를 다듬어 별장이 더욱 기품이 넘치게 했다.그러나 지금의 별장은 텅 비어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하나도 없이 쓸쓸해 보였다.유시아는 그녀를 부축하며 소파에 앉았다.“제가 가서 물 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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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채경숙은 그녀의 손목을 힘껏 끌고 있었다. 너무 초조한 탓인지 말투가 심지어는 신경질적이고 어눌하기까지 했다.“임재욱은 줄곧 너를 사랑했어. 지금 아내랑은 그냥 쇼윈도 부부일 뿐이야. 소현우가 죽었을 때, 임재욱이 도망치고 너 보러도 갔었잖아.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네 부탁을 무시할 수 있겠어. 시아야, 아줌마가 이렇게 빌게. 우리 심씨 가문을 구해줘. 안 그러면 우리는 살 길이 없어...”유시아는 힘겹게 그녀를 밀치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죄송해요, 아줌마. 저... 저는 도울 수 없을 것 같네요!”임재욱은 자선가가 아닐뿐더러 유시아의 꼭두각시는 더더욱 아니었다.얻을 이익이 없으면 상업가들은 나서지 않는 법이다. 심씨 가문과 평소에 아무런 접점도 없었는데 임재욱이 무엇을 믿고 그들을 도와주겠는가?더군다나 이렇게 까다로운 일은 임태훈도 반드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채경숙은 그녀를 향해 무릎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 손을 뻗어 유시아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너 말고는 없어. 우리 집이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는 거 너도 알잖니. 아마 얼마 안 있으면 빚쟁이가 찾아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낼 거야. 그러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앞으로의 고된 생활을 예상해서인지 채경숙은 더욱 펑펑 울었고 급기야 통곡하기 시작했다.“시아야,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가 여태껏 너를 돌봐 주었잖니. 그 정을 봐서라도 임재욱한테 부탁해주면 안 돼? 우리 좀 도와달라고, 우리 좀 살려달라고 부탁해줘. 제발... 내가 이렇게 머리 조아리마!”그녀는 울면서 이마를 땅바닥에 쿵 하고 박았다.유시아는 깜짝 놀라 난처한 안색으로 얼른 손을 뻗어 그녀의 팔뚝을 잡아당겼다.“아줌마, 이건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나 다름없어요!”“나도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그래!”땅에 웅크리고 있는 채경숙의 머리는 잔뜩 어수선해져 예전의 귀부인다운 풍모는 일찍이 사라졌다!회사가 파산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은 이런 부자들에게 생사가 걸린 큰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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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재정 위기는 심씨 가문에서 발생한 건데 왜 되레 내가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당하는 거지?’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심씨 가문이 그동안 자신을 위해 한 모든 것을 유시아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그녀도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기를 원한다.하지만 그들에게 보답하는 방식이 임재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면 말이 달라진다!유시아는 차에 앉아 멍하니 바깥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반월별장 단지에 도착해 기사가 차를 멈춰 세우자, 유시아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 차에서 내렸다.“허 기사님,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허 기사는 그녀를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인 역시 차에서 내렸다.그는 이전에 유시아의 아버지 유병철과 함께 심씨 가문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해온 경력이 있어 서로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비록 유시아와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오랜 동료의 딸인지라 그는 마치 자신의 친딸을 대하듯 친절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시아야, 내가 심씨 가문에 출근하는 건 오늘로써 끝이야.”유시아는 조금 의아해졌다.“허 기사님도 가시는 거예요?”‘아저씨 병이 아직 낫지 않아서 개인 운전기사 없이 매일 집과 병원을 오가려면 가족들이 아마 많이 불편할 텐데...’“나도 어쩔 수 없어.”허 기사는 다소 무력해하며 말했다.“그래도 심씨 가문을 떠나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마지막이야. 나도 부양해야 할 부모님과 아이가 있는지라 쭉 여기서 시간을 다 소비할 수는 없어. 몇 달 치 월급도 포기하고 여기를 떠나는 거란다.”유시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굳게 오므렸다.‘그래, 허 기사님한테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데... 의리가 실질적으로 밥 먹여주는 것도,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의리에 기대 배 채우기를 기다릴 수는 없지. 모든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잖아. 나도 남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할 수는 없어.’가로등 아래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유시아를 보고 허 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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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이튿날, 유시아는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최근 피로가 많이 쌓여 집에서 하루 푹 쉬고 싶어서 말이다.하지만 허 기사가 막 사직했고 용재휘네 화실에는 아직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이 남아있었다.용재휘를 빼면 심씨 가문에는 친척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유시아가 가지 않는다면 그들 모녀는 더욱 고립무원이 될 것이다.‘하윤 언니가 마음에 걸리네...’설날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온은 여전히 낮았다.유시아는 검은색 패딩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떨며 한참을 길가에 서 있었다. 그런데도 병원에 갈 수 있는 택시를 타지 못해 결국 그녀는 인근 지하철역으로 향했다.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 무렵이었다.그녀는 심하윤과 통화한 김에 그들에게 먹일 점심을 사다 주었다.병원 정문에 들어서 병실로 올라가기 전, 그녀는 1층 무인 수납기 앞에 있는 심하윤의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하윤 언니!”심하윤은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시아, 왔구나.”최근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낸 탓이었는지 심하윤의 웃음에는 쓸쓸함이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이런 고초와 억울함을 겪은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응석받이로 자랐고 설령 큰 어려움과 맞닥뜨린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곤 했다.유시아는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아저씨는 어떠세요?”“그대로야.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어. 의사가 그러는데 이건 아빠가 마음의 병을 얻은 거라고 하더라.”심하윤은 들고 있던 카드를 내보이며 쓴웃음을 지었다.“안에 있는 2억이 우리 가족 전 재산이야. 전부 입금하려고. 아빠를 얼마나 더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줄지 모르겠지만...”유시아는 그 카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저께 밤 심송학이 유시아에게 준 것을 그녀가 받은 후 다시 심하윤에게 돌려줬으니 말이다.그들 가족이 현재 돈을 필요로 하므로 그녀는 이 돈을 받지 않았다.심하윤은 유시아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며 가볍게 한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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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심송학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오래간만에 오곡밥 먹어보자.”채경숙도 고개를 돌리더니 유시아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시아야, 그동안 네가 도와준 덕분이다. 네가 없었다면 나랑 하윤이 둘 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야.”어제 한바탕 통곡한 탓인지, 두 눈이 아직 빨갛게 부어있었고 한눈에 봐도 안색이 창백한 게 많이 초췌해 보였다.유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애써 그녀의 눈빛을 피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별일 아니래도요. 저한테 너무 예의 차리지 마세요, 아줌마!”유시아의 이러한 태도는 채경숙의 마음을 냉랭하게 만들었다.‘설마 이미 우리를 안 돕기로 마음 먹은 거야...?’유시아는 심씨 가문이 일로 인해 임재욱에게 부탁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더더욱 다시 임재욱 손안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소현우가 남겨준 부동산과 돈으로 혼자 잘 살려는 건가? 소현우... 애초에 시아가 소현우를 우리 딸한테서 뺏지 않았더라면 소현우의 아내가 될 사람은 바로 우리 유현이였을 텐데... 심씨 가문에 일이 생기면 소현우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적어도 우리를 도와 유현이를 잘 돌봤겠지. 그런데 지금 죽었으니 시아도 이제 손을 떼고 상관하지 않으려는 모양이군.’이런 생각이 들자 채경숙은 유시아가 조금은 달갑지 않았다.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 이렇게 산산조각나며 미래가 캄캄해지자 그녀의 안색도 어두워졌다.심송학은 간단히 점심을 먹고 평소와 다름없이 휴식을 취하려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쉽게 피곤함을 느끼곤 해서 말이다.채경숙은 병실에서 그를 지키고 있었고, 유시아는 이 기회를 틈타 심하윤을 끌고 나가서 그녀와 함께 바람을 쐬려고 했다.병원 뒤쪽에는 유럽풍의 작은 정원이 있었다. 비록 겨울이라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남았지만 여러 가지 등불 장식이 있어 분위기가 침체되기는커녕 오히려 활기 넘쳐 보였다.심유현은 연한 갈색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넣더니 갑자기 물었다.“시아야, 너는 업보라는 걸 믿어?”밑도 끝도 없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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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어이쿠!”심유현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한 남자가 심유현 쪽을 쳐다보더니 물었다.“이게 따님입니까? 아주 예쁘장하게 생겼네. 아직 남자친구는 없지?”“네 남자친구가 널 차버렸다고 하던데? 나랑 한번 사귀어보는 건 어때? 내가 돈 많이 줄게. 하룻밤 자주면 한 달 이자 갚은 거로 하지!”곧 남자가 심유현에게 다가갔다.살면서 처음 접해본 장면에 심유현은 깜짝 놀라 멍해지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 자리 꼼짝 않고 서 있었다.그녀의 곁에 서 있던 유시아도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지만,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심유현은 끌어당기려 했다.“언니...”그러나 이미 늦었다. 남자는 이미 손을 뻗어 심유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조롱하고 있었다.“왜? 이미 다 파산한 마당에 네가 무슨 아직도 부잣집 아가씨인 줄 알아?”“손 사장님...”그때, 채경숙이 단번에 달려 나와 손 사장의 앞을 가로막았다.“제발, 일단은 이러지 마세요. 돈은 제가 꼭 무슨 방법을 대서든지 갚을게요. 한 달, 아니 보름 사이로 꼭 갚을 테니 제 딸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남자는 비웃었다.“뭐로 갚으시게요? 장부상 그렇게 많은 돈을 잃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난 돈으로 갚겠다는 거죠?”계속되는 남자의 모욕에 채경숙은 얼굴이 시뻘게졌다.“치... 친정에 가서 빌리겠습니다!”그녀의 친정은 해외에 있다. 외부에는 그녀의 친정 오빠가 해외에서 아주 큰 회사를 차려 심송학과 실력이 비등비등하다고만 알려져 있다. 때문에 채경숙은 친정을 무기 삼아 남자를 위협할 수 있었다!하지만 손 사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전혀 난처해하는 기색이 없었다.“그래요. 그럼 일단 기다려보죠! 만약 보름 동안 돈을 갚지 못하면 당신 딸은 제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며 그는 심유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계집애, 어디 도망칠 생각하지마! 내 사람들이 병원 전체를 지키고 있어. 네가 도망쳐도 네 엄마 아빠는 도망칠 수 없으니, 그런 줄 알아!”이 말을 남기고 남자는 비로소 나머지 두 사람을 데리고 의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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