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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죄로의 모든 챕터: 챕터 301 - 챕터 310

485 챕터

제301화

“전엔...”유시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예전에 임재욱이 신서현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허씨 아주머니는 모르고 있을게 뻔하다.하지만 맞힐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 임재욱이 그녀에게 대한 백배, 아니 만 배는 더욱 더 잘해줬을 것이다.신서현은 임재욱의 첫사랑이였다. 그러기에 임재욱은 신서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할 수가 있었다. 만약 신서현이 그렇게 죽지도 않았다면 임재욱은 아마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만약 그녀가 임재욱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유시아도 그렇게까지 넝쿨처럼 그에게 매달리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두 글자는 바로 만약이라는 단어이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단추 하나를 잘못 잠그면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하는 것처럼 일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유시아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많이 늦어버린 후였다.여기까지 생각을 하던 유시아는 갑자기 눈앞의 음식들이 먹고 싶지 않아졌다. 그녀는 우유 잔을 내려놓더니 구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구름이는 아주 착한 강아지였다. 비록 최근 며칠간 허씨 아주머니와 사이가 급격히 좋아졌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유시아의 말에 충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시아가 구름이를 불렀을 때 바로 달려가 그녀와 함께 방으로 올라 갈수 있었던 것이다.유시아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속상해 보일 때, 구름이는 옆에서 재롱을 부려대며 유시아를 즐겁게 해주었다.구름이는 아주 귀엽고 따뜻한 성격을 가진 최고의 반려견이였다.유시아도 구름이가 있어 이 집에 있는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임재욱과 같이 살고 있는 이 시간들은 유시아의 생각만큼 그렇게 험난하고 힘들 지가 않았다.그도 처음에 말한 것대로 약속을 잘 지키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서로 터치하지 않고 각자 잘 생활하는 것.그리고 임재욱은 매일 일찍 집을 나서 늦게 들어오는데 출근할 때 유시아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고 밤에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꿈나라에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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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임재욱은 운전기사와 보디가드, 그 누구도 함께하지 않고 오직 둘이서만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여자의 몸은 아주 약한 기계와도 같아 고치려면 돈을 제외하고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차근차근 회복을 도와줘야 하니 여간 쉬운 것만이 아니었다.온화해 보이는 여자 선생님 한 분이 유시아에게 이것저것 많은 문제를 물어보고는 간호사한테 그녀를 데려가 각종 검사를 해오라고 지시하였다.한바탕 검사를 다 마친 뒤 때는 어느덧 점심이 되였고 두 사람은 VIP룸에 안배를 받아 그 곳에서 검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그들에게 공짜로 점심을 제공해 주겠다고 말했다. 점심으로는 소고기죽과 각종 반찬들이 준비돼 있었다.임재욱과 유시아, 두 사람이 마주앉아 함께 밥을 먹을 기회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임재욱은 조금 신나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수저를 유시아에게 건네며 말했다.“아침도 안 드셨는데 배고프시죠?”“고마워요.”유시아는 수저를 건네받고는 고개를 숙여 놓아져있는 죽을 먹기 시작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뭐... 별로 너무 배가 고픈 건 아니었어요.”많은 날들을 같은 집에서 산 두 사람이었지만 같이 밥을 먹는 동안 둘은 어색하고 서먹하기 그지없었다.“많이 드십시오.”임재욱은 말을 하며 반찬을 집어 그녀한테 주었다.“이따 결과가 나오면 먼저 집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전 회사로 가야돼서...”숟가락을 들고 있던 유시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러더니 임재욱의 말에 천천히 대답해주었다.“재욱 씨 바쁘시면 저 혼자 택시타고 가도 돼요.”“안 바쁩니다.”임재욱은 고개를 들어 유시아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물었다.“뭐 필요한 물건 있으십니까? 좀 이따가 같이 사러 갈 가요?”“아니요. 없어요.”유시아는 고개를 연신 저으며 대답했다. “아... 곧 설인데 저 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싶어요.”한참을 망설이던 유시아가 다시 말했다.[집에 간다고?]그녀의 대답은 임재욱의 마음을 후벼 파는 듯이 아프게 만들었다.그는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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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도우미의 위로 섞인 목소리를 듣자마자 유시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유시아의 온 몸은 굳어가고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아이?][정유라가 임신을? 그럼 임재욱과 정유라 사이에 곧 아이가 생긴다는...?][내 아이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정유라가 임신을 해?]유시아가 가만히 서있는 틈을 타 정유라가 얼른 그녀의 뒤를 쫓아와서는 말을 걸었다.“시아 씨...”그녀는 손을 뻗어 가녀린 유시아의 손목을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시아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 어디가 아픈 건데요?”자상하고 부드러운 말투, 저번에 야생가에서 봤던 그 독한 모습과 비교했을 때 완전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유시아는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정유라의 물음에 대답했다.“아니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검사 다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 이였어요.”그녀는 어떻게든 빨리 정유라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이였다. 자신이 정유라에게 상대도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벗어나고픈 그 마음이 더욱 컸다.정유라는 임재욱의 엄연한 아내 이기에 임재욱과 함께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유시아와 임재욱이 같이 있는 다면 유시아 그녀가 욕을 먹게 될 수밖에 없었다.특히나 정유라 앞에서 유시아는 절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 그 뿐 이였다.“시아 씨...”정유라는 현재 임신을 한 몸이지만 힘이 만만치 않아 유시아의 손목을 더욱 더 꽉 쥐며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시아 씨 혼자 온 거 예요? 재욱 씨는요? 같이 안 왔어요?”정유라는 낯빛이 창백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녀의 물음에 유시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그리고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정유라의 손을 뿌리치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전 이만 가봐야 해서요.”“재욱 씨랑 같이 온 거 알아요! 안다 고요!”정유라는 그런 유시아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저 이미 다 알아요. 두 사람 오늘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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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이거 놓으시라고요!”유시아는 이미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을 잡고 있는 정유라의 손을 뿌리치며 계속 외쳤다.“이거 놔요. 전 더 이상 할 말 없어요.”정유라가 기다린 것은 바로 이런 상황 이였으니 유시아가 그녀를 살짝 밀치자마자 바로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연기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정유라는 현명하고 선량하지만 임재욱의 예쁨을 받지는 못하고 있어 만약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임재욱에 의해 임씨 집안에서 쫓겨 날 것이 뻔했다.다시 말해 임태훈이 명령하지 않았는가! 아이만 잘 낳는다면 임재욱과의 결혼식을 다시 치르게 해주겠다고 말이다.그러나 아이가 없어진다면... 이 모든 건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다.유시아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정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눈치였다.그녀는 임신을 해본 몸이기에 임산부가 넘어지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안 돼! 정유라 뱃속 아이를 지켜야해. 아니면 난 평생 자책하며 살아 갈 거야...]정유라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순간, 뒤에서 큰 손이 나타나 정유라의 허리를 받쳐주었다.“임신을 했으면 조심 좀 하죠? 자꾸 밖에서 이렇게 말썽부리지 말고요.”냉랭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다 못해 마치 기계 같았다.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뒤를 볼아 본 정유라는 놀라는 눈치였지만 바로 감정을 조절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말했다.“재욱 씨... 저 너무 무서워요. 우리 아기는...”“그렇게 아이가 소중하면 집에 가만히 계시지, 왜 자꾸 밖에서 돌아다니는 겁니까?”임재욱은 아주 냉정하게 정유라의 말을 끊어버리더니 함께 병원으로 온 도우미 아주머니 허은실에게 그녀를 데려가라고 부탁하고는 곧이어 정유라를 조롱하듯이 말했다.“잘 좀 부탁드립니다. 뱃속 아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 절대 사고 나지 않게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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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유시아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정유라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필경 그녀들은 동병상련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임재욱은 마치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태어날 때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물론 가만히 있어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줄을 지어 있었다.임재욱은 아마 평생 사랑 받지 못하는 느낌도, 사랑 받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이런 행복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하는 감정아닌가.유시아의 단순하지만 고집으로 가득 차 보이는 얼굴을 본 임재욱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역시 유시아는 전혀 변한점이 없었다. 여전히 의리를 지키려고 하고 정의를 구현하려 하는 성격이 강한 여자였다.심지어 지금, 자신의 라이벌마저 도우려 하고 있으니 참 희한한 일이였다.운전을 해 그린 레이크 아파트로 도착한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임재욱은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는데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임재욱은 진단서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을 건네주며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회복속도가 꽤나 빠르다고. 계속 견지하세요. 약 꼭 챙겨 드시고요. 거의 다 왔는데 포기하지 말아요.”유시아는 연한 파란색의 셔츠를 입고 얌전히 침대에서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재욱 씨, 저 섣달 그믐날은 집에서 보내고 싶은데...”어차피 섣달 그믐날에 임재욱도 그린레이크 아파트가 아닌 임씨 저택으로 가야하는 터라 그녀를 언제까지고 여기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 이였다.게다가 며칠간 유시아는 시키는 대로 약도 제때에 챙겨먹고 밥도 거르지 않으니 건강에는 지장이 없어 더 이상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시아 씨, 집이 있습니까?”임재욱은 표정이 약간 굳어진 채로 고개를 들어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유병철이 세상을 뜨고, 소현우마저 죽은 이 시점에 유시아는 정말로 돌아갈 의미가 있는 집이 없었다. 지금 그녀가 갖고 있는 집 몇 채는 가족이 있는 따뜻한 집이 아닌 그저 자산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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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개소리 집어 치워!”임태훈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화가 난 듯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경고하는데 일찌감치 유시아 그 여자랑 깨끗하게 끊어!”이 말에 임재욱이 되받아치려고 했지만, 자신이 이렇게 강하게 나온다면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불만을 시아에게 다 털어놓을 것 같아 입 밖에 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하필, 유시아도 그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만약 할아버지에게 약점이라도 잡힌다면 아마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거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할아버지의 관심을 유시아에게서 돌리는 것이다.그래서 임재욱은 주저하지 않고 동생 임청아를 미끼로 던졌다. “제 쪽엔 큰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소중한 손녀를 잘 살펴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청아가 연애하고 있다는 걸 아세요?”이 말에 임태훈은 놀라서 물었다.“뭐라고? 청아가 남자 친구를 사귀었어?”임재욱은 그렇다고 했다.“제가 할아버지께 여쭤봤던 야생가 사장 한서준 씨입니다. 그날 친구와 그곳에 가서 직접 보았어요.”한서준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또 임청아는 사랑이라면 무모하게 행동했다. 그러니 그와 사귄다면 청아는 반드시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임재욱은 이 일을 알았으니 할아버지께 일찌감치 보고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임청아가 한서준한테 상처를 받는 순간,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화를 낼 게 뻔했으니까.그럴 바에는 진작 청아 일을 털어놓는 게 상책이었다.할아버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임마저 없앴으니, 일거양득이었다.과연, 이 일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더는 그의 일을 관여하지 않았다. 임태훈은 황급히 몇 마디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할아버지는 늘 이런 사람이었다. 자기 아들이며 손자는 마음대로 밖에서 여자를 갖고 놀 수 있지만, 임씨 집안의 여식은 절대 손해를 보아선 안 됐다.-섣달그믐날을 사흘 앞두고서야 임재욱은 차를 몰고 유시아를 반월별장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다.가려는 사람을 굳이 잡고 싶지 않았다. 그도 자신의 모든 체면을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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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낮에 임재욱의 침실 문은 닫혀 있었다.자물쇠를 살짝 비틀었다가 다시 밀자 화려한 문이 소리와 함께 열렸다.방 안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남자의 호르몬 냄새가 남아 있었다.유시아는 문 앞에 서서 잠시 멍해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그 그림은 침대 맞은 쪽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마호가니 무늬를 새긴 네모난 탁자가 있었는데 그 탁자 위에는 신선한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언뜻 보니 마치 이 그림을 모시는 것 같았다.유시아는 까치발을 들고 두 손을 뻗어 액자를 떼어낸 후 안쪽으로 끌어안고 나서 밖으로 걸어갔다.임재욱은 그녀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캐리어만 끌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반월 별장으로 가는 길은 신기하게도 차가 전혀 막히지 않았다.원래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총 4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유시아는 그에게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약을 잘 챙겨 먹겠다고 말한 후 손을 뻗어 문을 밀었다. 그리고 캐리어를 들고 구름이를 안고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임재욱은 차에 앉아 있다가 뭐에 홀린 듯 갑자기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시아야...”이 부름 소리에 유시아가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요?”문득 정신을 차린 임재욱이 허탈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잘 가.”말을 마친 그는 차창을 내리고 차를 후진시켜 빌라 지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유시아는 그 자리에 서서 임재욱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구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구름이를 내려놓은 후, 그녀는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농구장 그림을 캐리어에서 꺼내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벽난로에 던져 재로 변하게 내버려두었다...-사실 임재욱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한 해의 시작을 함께하지 못했으니까.예전에 남운대에서 공부할 때, 그는 아직 임씨 집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선 보육원에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열여덟 살 이후의 모든 설엔 거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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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섣달그믐날 밤, 호텔은 시끌벅적했고 분주했다. 임재욱이 퇴근할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그가 새로 만든 볶음면을 들고 유시아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등에는 큼직한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마치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임재욱이 그녀를 툭 치자마자 유시아는 벌떡 깨어났다. “음, 재욱 오빠, 퇴근했어요?”임재욱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의 바로 앞에 볶음면 한 접시와 일회용 젓가락 놓았다. “미안해. 호텔에 딱히 먹을 게 없어서 볶음면을 갖고 왔어. 이거라도 먹어.”배가 고팠던 유시아는 그 볶음면을 보더니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오빠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거예요? 맛있어 보여요!”“셰프님한테 해달라고 했어.”이 말에 유시아는 입을 삐죽거렸다.“오빠는 어쩌면 거짓말조차 할 줄 몰라요? 이러다가 나중에 여자 친구가 없겠어요!”“꼬맹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빨리 먹기나 해.”임재욱은 비록 그녀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유시아가 또래들 보다 일찍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그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어렸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면 어른 행세를 하곤 했다.꼬맹이, 이건 임재욱이 시아를 가장 따뜻하게 불렀던 한 번이었다.그날 밤, 유시아는 볶음면을 만족스럽게 먹은 후 트림까지 했다. 그리고 즉시 자신의 모자와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재욱 오빠, 우리 함께 새해를 맞이하러 가요. 오빠한테 줄 선물도 가져왔어요!”임재욱이 물었다.“무슨 선물?”유시아는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두드리며 말했다.“폭죽이요. 우리 불꽃놀이 하러 가요!”이 말을 들은 임재욱은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전에 그는 유시아가 조금 바보 같다고만 생각했었지, 섣달그믐날 밤에 가족을 두고 그를 찾아올 정도로 어리석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인화성 물건을 가방에 넣어서 메고 오다니!감동받은 임재욱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들게 줘 봐.”“네에.”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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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그린레이크로 돌아왔을 때 아래층 로비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허씨 아주머니는 도우미들을 지휘하여 방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도련님, 돌아오셨어요? 저녁 식사는요? 야식 준비할까요?”임재욱이 됐다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아뇨. 위층으로 올라가 좀 쉬고 싶어요.”말하면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유시아가 묵었던 방은 이미 깨끗하게 청소되었다.이곳은 원래 객실이라 물건이 많지 않았다. 기본적인 침대 매트리스 외에는 별다른 세팅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떠나니 방안이 더 휑해 보였다.피곤함이 몰려오자 그는 유시아가 잤던 작은 침대에 누웠다. 베개와 이불엔 아직도 그녀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은은한 달콤함, 민트 같기도, 레몬 같기도 그리고 청춘의 맛 같기도 했다.이번 섣달그믐날에도 그는 시아와 함께 불꽃놀이를 하고 싶었다. 그녀의 새해 소원이 아직도 자신과 연관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올해 그의 새해 소원은 유시아와 함께 있는 것이다.아쉽게도 10대 시절, 그와 함께 설을 쇠려고 큰 폭죽을 가방에 넣어 멘 채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왔던 여자아이는 이미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유시아란 여자는 가장 다정했고, 또 가장 매정했다.사랑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고 모든 감정을 싹둑 잘라버릴 수 있었다.임재욱은 심호흡하며 연분홍색 침대보를 만지작거렸다.“유시아는 오늘 집에서 뭘 할까...”나지막이 중얼거린다....이튿날, 임재욱이 회사에서 출근할 때 본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할아버지였다.세월의 흔적이 낀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재욱아, 유라가 오늘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라. 이미 병원에 실려 갔으니까 빨리 유라 곁에 있어 주면서 잘 위로해주렴.“임재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유라 씨는 또 왜요?““왜긴.” 임태훈은 불만이 담긴 말투로 말했다.“임신까지 한 애를 네가 그렇게 차갑게 대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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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임재욱처럼 교만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 할아버지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배 속 아이는 사생아로 되어버릴 게 아닌가.정유라는 이 아이를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큰 작용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산하는 건 아쉬웠다.이런 갈등 때문에 그녀는 짜증이 났고 심지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넋을 놓고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병실 입구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고 보니 임재욱이 두 박스의 보약을 손에 든 채 병실 밖에 서 있었다.임재욱이 걸친 검은 코트엔 아직 눈송이가 달린 걸 보니 밖에 눈이 내린 듯했다.“어머, 도련님 오셨어요?”세상 물정에 밝은 도우미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 임재욱의 손에서 물건을 받아 정성스럽게 정유라의 침대맡에 내려놓았다.“두 분 먼저 얘기를 나누세요. 전 밖에 물건을 가지러 갈게요.”그러더니 금세 병실에서 사라지더니 친절하게 문까지 닫아 주었다.“재욱 씨.”정유라는 몸을 일으켰다. 재욱을 본 순간, 창백하던 얼굴에 약간의 붉은 끼가 돌았다.“여... 여긴 어쩐 일이에요? 눈 내렸어요? 춥지 않아요?”“할아버지께서 유라 씨가 입원했다고 하시길래 병문안하러 왔어요.”임재욱은 예전처럼 그녀를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정유라 곁에 다가가 아까 도우미가 앉았던 자리에 앉기까지 했다. “좀 어때요? 의사가 뭐라고 했어요?”이러한 관심에 정유라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저, 저는 괜찮아요. 임신할 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할아버지께서도 제가 너무 걱정돼서 재욱 씨한테 전화한 걸 거예요. 업무에 지장을 준 건 아니죠?”임재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유라의 아랫배를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이 아이, 꼭 무사히 낳아줘요.”정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그럴게요.”잠시 멈칫하더니 그녀는 입을 열었다.“재욱 씨, 그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이젠 나 좀 용서해 줘요...”“됐어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 임재욱은 말했다.“나한텐 그 일은 이미 지나간 거예요. 그러니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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