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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죄로의 모든 챕터: 챕터 271 - 챕터 280

485 챕터

제271화

정건호의 생일, 임재욱은 꼭 정유라 때문이 아니더라도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사적인 친분도 있고, 사업적으로도 많은 협업을 하고 있어, 두 집안은 정운시에서 한배를 탄 것으로 유명했다.하여 임재욱은 쉽게 정씨 가문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그가 더 이상 임씨 가문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를까.뜻밖의 긍정적인 대답에 정유라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정말이지? 약속 꼭 지켜. 그날 나랑 같이 집에 가야 해.”임재욱은 그녀를 향해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침실 발코니에 서서 그의 차가 저택을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유라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유시아 요즘 뭐 하고 다니는지 알아봐! 특히, 홍콩에서 돌아온 이후의 모든 행적들 샅샅이 알아내!”**뱃속에 잉태한 작은 생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언젠가 그녀를 철저히 무너뜨리지는 않을까.유시아는 침대에 누워 잠옷에 덮인 배를 만지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넌 날 벌 주러 왔구나!”대체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빠인 임재욱처럼 그녀의 인생에 나타나 그녀를 괴롭히고, 모욕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와 의지까지 철저히 앗아가는 걸까!지워야 할까, 지켜야 할까……반복되는 같은 질문만 유시아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고통스럽게 했다!지우기엔 마음이 아프고, 지키기엔 결국 과거 임재욱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 신세가 될 게 뻔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은 뼛속까지 매정한 이들이었다.그녀와 임재욱은 평생 함께하지 못할 운명이다!만약 이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땐 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유시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다. 하느님께서 참 어려운 문제를 내려주신 것 같았다.아직은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다. 유시아는 여전히 일상적인 나날을 보냈다. 매일 출근하고 번 돈으로 자신과 구름이를 먹여 살려야 했다.겨울이라 옷이 두꺼운 데다, 아기 달수도 짧았기에 전혀 임산부 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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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정신을 차린 유시아는 서둘러 술을 서빙하러 갔다.임신 중이긴 하지만 아직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업무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유시아의 섣부른 판단이었다.불과 몇 시간 후, 속이 더부룩해 난 유시아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엎드려 한바탕 토하고 말았다!식욕이 없어 저녁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텅 빈 위에서 토해낼 것이라고 신물밖에 없었다. 목이 불에 덴 듯 따끔거리고, 통증에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돌린 유시아는 탈의실로 돌아가 요구르트로 속을 달랠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장실 문을 열자 한서준이 창가에 선 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유시아는 흠칫 긴장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한 대표님……”“왜 그래?”한서준의 시선이 그녀의 작고 창백한 얼굴에 머물렀다.“몸이 안 좋은가?”“아, 아닙니다.” 유시아는 담담한 미소로 대답했다.“탈의실에 가서 좀 쉬면 돼요!”하지만 한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병원 가자, 돈은 보험처리 해줄게!”유시아는 살짝 당황했다.“아니요, 정말 괜찮아요. 그냥 가서 좀 쉴게요……”가늘게 뜬 한서준의 눈에 의구심이 스쳐 지나갔다.“유시아, 너 혹시……”“괜찮다니까요!”말을 마친 유시아는 계단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만약 한서준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절대 비밀을 지켜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그러다 임재욱의 귀에까지 들어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그리하여 유시아는 직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고,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었다!1층 라커룸으로 돌아온 유시아는 사물함에 손을 뻗어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단번에 들이킨 다음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밤늦게 퇴근한 유시아는 구름이를 안고, 네온사인이 번뜩이는 야생가에서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한서준의 차가 앞을 가로질러 왔다. “타, 집까지 태워줄게!”“괜찮아요, 감사합니다.”유시아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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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그 말을 들은 유시아는 한서준을 돌아보며 되물었다.“뭐라고요?”“전에도 나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직접 찾아왔더라고, 사람 찾으러!”한서준은 유시아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찾으러 온 거라고!”유시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임재욱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아직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임재욱 본인이 직접 말했었다.자신이 그만하기 전까지 그녀가 도중에 그만둘 권리는 없다고.항상 말하면 말한 대로 하는 그였기에,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말을 이행했을 뿐이었다!임재욱이 찾으러 왔지만 보내줄지 말지는 한서준이 결정할 일이었다.문제의 중심인 유시아는 오히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담담했다.어차피 모두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들이고, 그녀의 의지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의견을 표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런데 한참을 차로 이동하던 중, 유시아는 문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뒤를 돌아본 그녀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여, 여긴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저는 집에 가려던 건데……”“너 지금 아파!”한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상사로서 검진 받으라고 병원 데려가는 거야. 괜히 직원들 막 대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아니요, 전 병원 안 가요……”유시아는 다급히 손을 뻗어 차 문을 열려 했다. “병원 가기 싫어요, 차라리 일 그만둘래요!”한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유시아, 너 여기 올 때 야생가에서 계약서 썼던 거 기억 안 나? 넌 여기서 10년 동안 계속 일해야 해!”“……”뭐?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일자리를 구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야생가가 첫 직장이었다.처음 계약서에 서명할 때는 회사 계약서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서 조항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는데, 혹시 그곳에도 함정이 있었던 걸까?한서준은 전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유시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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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한서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알기로 둘은 형식적인 결혼일 뿐 계속 별거 중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는다는 거지?”유시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전에 임재욱이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과 정유라는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고, 단순히 양가 어르신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장 결혼이라고.그녀는 임재욱으로부터 두 사람의 결혼이 가짜라는 것을 들었지만, 한서준은 어떻게 아는 걸까? 게다가 임재욱과 정유라의 부부 생활까지 알고 있다고?이 남자, 무서울 정도로 미스터리하다!한서준은 경계하는 여자의 표정을 보고 담담하게 웃었다.“그러니까 유시아 씨, 배 속의 아이를 이용해 임재욱에게 뭔가를 얻어내고 싶지 않아? 명예나 신분, 아니면 자유라던가.”유시아는 고개를 돌려버렸다.“사장님은 참 훌륭한 사업가네요. 뭐든지 거래할 생각뿐이죠!”그녀는 아니었다. 아이 엄마로서, 아이의 목숨을 임재욱과의 협상 카드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그녀의 조롱에도 한서준은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다. “예쁘장한 여자가 아이까지 임신했으면, 미모와 아이로 자신에게 정당한 이익을 취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전 못해요!”유시아가 반박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기를 이용하진 않을 거예요. 사장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한서준은 그녀의 말에 생각에 잠긴 듯 지그시 바라보았다.“고집이 너무 센 여자는 팔자가 안 좋아. 유시아 씨,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제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유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 이만 집에 데려다주시겠어요? 여의찮으면 제가 알아서 차 타고 갈게요!”한서준은 큼 헛기침하며 기사에게 차를 돌려 유시아의 집으로 가도록 지시했다.30분 후, 차는 유시아의 집 앞에 멈췄다.구름이를 품에 안고 집안에 들어선 유시아는 텅 빈 작은 집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도 그 남자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레 그녀의 집에 찾아와 일상을 방해하지는 않았다.유시아는 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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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늦은 밤, 임재욱은 여전히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일이 바쁘지도 않았고, 야근을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그는 야근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어려서부터 줄곧 타지에서 자란 그는 가까운 친구들도 전부 그곳에 있었다. 정운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상 지인일 뿐 사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임씨 가문은 그의 집이 아니고, 유시아도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다!갈 곳 없는 그는 일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컴퓨터로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유시아의 전화다!임재욱은 휴대폰을 들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단호하게 끊어버렸다.몇 번이고 그녀에게 매달리느라 이미 자존심도 많이 상한 상태였다.홍콩에 있을 때 그토록 매정했던 그녀의 말에 자신의 마지막 체면이라도 살려야 할 것 같았다.유시아는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질머리 하고는!휴대폰을 꺼버린 후 그녀도 이불 속에 파고들며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유시아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일어나 씻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후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도착해 10분 정도 걸어서 대우그룹 본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유시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프론트 데스크 쪽으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 그…… 임재욱 씨 만나러 왔는데요.”깔끔한 유니폼에 섬세한 메이크업을 한 직원이 유시아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리 약속 잡으셨나요?”유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간곡히 말했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전화 걸어 주시면 제가 직접 얘기할게요!” “알겠습니다!”프런트 직원은 곧바로 인터폰을 통해 임재욱의 사무실로 연결했다.“대표님, 지금 1층에 한 여성분이 와 계시는데……”유시아는 재빨리 말했다.“유시아라고 해요!”“지금 1층에 유시아라는 분께서 오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하시는데…… 네, 알겠습니다. 일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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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임재욱……”유시아는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망설임 없이 임재욱을 향해 걸어갔다.그러자 임재욱은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볼 뿐,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1초도 머물지 않고 빠르게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유시아는 거침없이 회사 로비에서부터 그를 쫓아갔고,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으며 임재욱의 뒤에서 소리쳤다.“임재욱 씨, 시간 오래 안 뺏을게요. 한마디만 하고 갈 테니까 그렇게 피하지 말아요!”마침내 임재욱이 그녀를 돌아보더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좋아, 5분 줄게!”“2분이면 충분해요!”유시아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말을 돌렸다.“그날 나 때문에 한서준 씨를 찾아왔다고 들었어요.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쓰지 마요, 나 거기서 일 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서준 씨 단순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에요. 괜히 나 때문에 그 사람과 얽힐 필요 없어요!”그렇게 말하고 나서 유시아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대우그룹 로비는 에어컨을 틀어놓아 무척 따뜻했다.그를 기다리는 동안 패딩을 벗고 있던 유시아는 하얀색 얇은 니트 하나만 입고 있었다.급한 마음에 패딩을 입는 것도 잊어버린 채 임재욱을 따라 나온 것이다.휙 찬 바람이 불어오자 유시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내가 할 말은 이게 다예요!”그러고는 뒤돌아 로비를 향해 잔달음으로 달려갔다.임재욱은 유시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차에 앉은 임재욱이 의자에 편하게 기댄 채 고개를 드니, 마침 창밖으로 유시아가 보였다. 검은색 패딩에 하얀 털모자를 쓴 유시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건물 밖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러니까 찬바람을 무릅쓰고 와서 하는 말이,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지 말고 멀리 떨어지라는 소리였나?임재욱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됐을까.마이바흐는 거침없이 달려 유시아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유시아도 미련 없이 버스 정류장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이미 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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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감기 걸렸어?”그 말을 듣자마자 용재휘는 펄쩍 뛰었다.“그럼 얼른 약 먹어야지. 요즘 독감 심해서 그냥 버티는 걸로 안 돼. 내가 약 사다 줄게!”말을 마친 그는 통화를 끊었다.혼자 살아서 돌봐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 용재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유시아가 다시 용재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 시각 용재휘는 약국으로 가는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정운시의 겨울은 무척 추웠고, 며칠째 눈이 내리고 있어 용재휘는 스쿠터를 타지 않았다. 그의 고모는 아파트와 화실을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작은 차를 선물해 주었다.약국에 가서 약을 사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유시아가 좋아하는 음식까지 포장한 그는 차를 몰고 유시아의 집으로 향했다.전에 한 번 왔었기 때문에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다만 유시아가 어느 건물에 사는지 정확히 몰랐기에 밑에 도착했을 때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다 왔는데 어느 동, 몇 층에 살아?”당황한 유시아가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가니, 집 아래 작은 하늘색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위치를 알려주자 곧바로 차 문이 열리고, 용재휘가 큰 가방을 손에 든 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위를 한번 바라보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4층에 살던 유시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고, 열어보니 네이비 패딩을 입고, 도시락과 약봉지를 손에 든 채 문 앞에 서 있는 용재휘가 보였다.“짜잔! 유시아 씨, 배달 왔습니다!”유시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얼른 들어와!”용재휘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집에 물건들이 다소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침실은 따로 없고 이불을 펴놓은 침대만 있었다. 그 위엔 구름이가 엎드린 채 경계 어린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짖어댔다.작은 집에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서 서 있기만 하다가, 유시아가 의자를 내주어서야 자리에 앉았다. 용재휘는 구름이를 데려와 털을 쓰다듬으며 유시아에게 말했다.“시아야, 내가 정리하는 것 도와줄 테니까 이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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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유시아는 용재휘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감기 걸린 날 보고도 계속 착취할 셈이에요?”용재휘는 답했다. “그럼 감기 낫는 대로 그려주는 거죠?”유시아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 안 그렸더니 감을 잃었어요!”“더 그리지 않으면 모든 감을 다 잃어버릴지도 몰라요!”유시아는 용재휘의 말에 웃어 보이고는 이내 고개를 숙여 그릇의 밥알을 뒤적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재휘 씨.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아요, 정말. 그러니 더 이상 날 힘들게 하지 말아 줄래요?”용재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소현우의 죽음과 함께 유시아도 반 죽은 목숨처럼 지냈다. 정운대에서의 생기발랄한 유시아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오랜 시간 유시아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잠깐의 침묵 후 비어진 유시아의 그릇을 본 용재휘는 일회용 수저를 문밖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유시아에게 감기약을 열어 보였다. “약 먹어요, 그래야 빨리 낫죠!”유시아는 임신 중이었기에 함부로 약을 먹을 수 없었다. “아니에요, 이미 배불러요. 푹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약을 먹어야 감기가 빨리 낫죠. 요새 독감이 심하다던데...”“저 감기약 알레르기 있어요!”유시아는 용재휘의 말을 재빨리 끊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감기약을 먹지 않았어요. 그리고 면역력이 좋아서 빨리 나을 거예요!”유시아는 일부러 용재휘를 속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남자아이에게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도 난처했다.용재휘는 유시아의 말대로 약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요!”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식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용재휘는 웃어 보이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문을 나가며 용재휘는 유시아를 향해 다시금 방긋 웃었다. “심심할 때 그림이나 많이 그려 놔요. 아니면 내 화실에 놀러 와요. 스트레스 많이 풀릴 거예요, 장담해요!”용재휘는 말이 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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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차가 한참이나 멀어지고 나서야 임재욱은 브레이크를 밟았다.뒤따라 조금은 언짢은 듯 임재욱은 옷에서 담배갑을 꺼내 들어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세게 빨아들였다.다른 곳에 집중한 탓에 임재욱은 담배 한 모금에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기침은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잦아들었다.임재욱은 운전석에 앉아 오랫동안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 CD를 틀었다. 이윽고 차 안에는 삽시에 신서현의 청초하고도 달콤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랫소리는 마치 신서현이 임재욱의 귓가에 속삭이는 아름다운 밀어와도 같았다.임재욱의 입가에는 저절로 쓰디쓴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가질 수 있는 여인은 아마 신서현 한 명 뿐일 것이다. 다만 임재욱은 유시아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빠져있을지 몰랐다.유시아의 감기는 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해져 갔다.임신초기의 여러 증상도 함께 나타나 유시아는 함부로 약을 먹을 수 없어 하는수 없이 시간을 내 병원을 다녀왔다.그 결과, 산부인과 의사는 유시아의 체력이 일반인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터라 매일 출근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특히 야근은 많은 체력이 필요하니 집에서 쉬면서 배속의 태아를 돌보라고 신신당부했다.유시아더러 일과 아이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아이를 살리던지, 아니면 퇴사하던지!유시아에게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는 것이다!유시아는 고개를 숙여 조심스레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쓰게 웃었다.‘아가, 너도 네 아빠처럼 마음 쓰이게 하는구나!’낮은 한숨을 내뱉은 유시아는 고개를 돌려 새빨간 석양빛을 바라보았다. 유시아의 가슴 또한 빨갛게 찢겨나가는 듯했다.다음날, 유시아는 아침 일찍 차를 잡아 야생가로 향했다. 인사 담당자에게 사직서를 전할 셈이었다.사직서를 건네받은 담당자는 유시아의 이름을 보고 멈칫하다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죄송합니다, 유시아 씨. 퇴사 신청서는 한 대표님에게 제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유시아는 어리둥절했다.“여기가 인사팀이 아닌가요?”“입사 때부터 유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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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한서준은 낮게 웃었다.“유시아, 너는 나를 가끔 혼란스럽게 만들어. 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너의 어리석음을 비웃어야 할까?”“그건 대표님이 알아서 할 일이죠!”유시아는 다시 자기 사직서를 들이밀었다.“사인 해주세요!”“지금 임 대표랑 내가 비즈니스 중인데 어떻게 너를 놓아주겠니?”말과 함께 한서준은 사직서를 들어 올려 두 손으로 찢어 버렸다.“며칠간 휴가를 줄 수 있어, 아니 몇 개월이라도 괜찮아. 그 기간 아이를 잘 보살피라고. 하지만 난 너의 대표야! 퇴사는 임재욱이 직접 나한테 얘기하라고 할게.”유시아는 어이가 없었다.“그럼 차라리 무기한으로 무단결근할게요!”유시아는 이 말과 함께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다. 야생가는 낮에 손님이 많지 않아 노래를 부르러 오는 사람도 얼마 없어 복도는 꽤 한산했다.유시아가 복도를 지나며 뭘 먹을까 고민하던 그때, 옆방의 문이 열리며 웬 손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 들어 억세게 그녀를 끌고 들어갔다.곧바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닫혔다.룸 안의 불빛은 유시아의 창백해진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는 자신 눈앞의 낯선 두 남자를 바라보며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당신들...누구야?”“아가씨, 이쁘게 생겼네. 좀만 놀다 가...”짙은 술 냄새가 풍기는 걸 보니 두 놈 다 술주정뱅이였다. 그들은 유시아의 격렬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테이블로 끌고 가 그녀를 힘껏 눕혔다. 한 놈은 유시아의 두 손을 누르고 다른 한 놈은 옷고름을 풀어 헤쳤다.“이렇게 연약한 걸 보니 아직 처녀 같은데, 흐흐...”남자들의 소름 돋는 웃음소리에 놀라 정신이 혼미해진 유시아는 아직 움직임이 가능한 두 다리로 발버둥 쳤다.“이거 놔, 살려 주세...읍...”유시아의 말하는 입술은 그놈들의 손에 의해 막혔고 외투 또한 찢겼다. 술 냄내를 풍기며 얼굴에 칼자국을 새긴 남자는 성큼 걸어와 그녀에게 걸터앉아 있는 힘껏 들이밀었다.그곳은 시아의 아랫배였다. 유시아의 가슴은 찢겨나가는 듯했다!그녀의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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