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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메리 카페에서.창가에 앉은 심하윤은 조금 어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환경도 아니었고 메뉴판 위의 값비싼 커피와 디저트도 아니었다.바로 그녀를 불러낸 사람이 소현우라는 것이었다.30분 전, 그는 심하윤에게 연락하여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중요한 일로 할 말이 있는 듯했다.그가 홍콩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불러낸 자리이므로 무언가 직감이 좋지 않았다.심하윤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는 메뉴판을 제복을 입은 웨이터에게 내밀었다.“밀크커피 한 잔이요. 얼음 넣어서요.”10여 분이 지나서야 소현우가 황급히 도착했다.“미안. 오는 길에 차가 좀 막혀서 늦었어...”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심하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유시아가 납치당한 일로 화를 내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생일파티가 있던 날 밤, 멋대로 오해하고 윽박지르던 소현우가 아닌 양 굴었다.심하윤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져 왔지만 애써 웃어 보였다.“괜찮아. 시아는 좀 어때? 임재욱이 혹시 어떻게 한 건 아니지?”“임재욱이 시아한테 할 수 있는 건 없어. 신경 안 써.”소현우가 미간을 찌푸리곤 한참을 망설이며 입술을 달싹였다.“하윤아, 그날엔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아무리 당황스럽고 흥분했어도 너를 그렇게 다그쳐서는 안되는거였어...”심하윤이 실눈을 뜨고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고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현우야,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 빙빙 돌리지 말고.”소현우가 잠시 침묵했다.“그래. 그럼 말할게. 사실 우리 4년 전에 헤어진 사이잖아.”4년 전 심하윤이 헤어지자고 한 것은 홧김이었을 수도 혹은 삐진 저를 그가 잘 달래주길 바랐을 수도 있다.어린 여자아이의 마음은 대체로 그런 법이니까.그런데 그가 헤어지자는 말에 수긍하고 붙잡지 않았을 때 둘은 이미 완전히 헤어진 것이었다.소싯적의 사랑은 처음에는 사탕처럼 달콤했고 불처럼 타올랐으나 그만큼 끝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심하윤은 눈을 꼭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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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만일 유시아를 저처럼 지극히 아끼는 남자가 나타나고 또 유시아가 그와 결혼하길 원한다면 그는 기꺼이 손 놓아 줄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곁에 이런 착한 남자는 없었다. 오직 자신과 결혼하고 사모님이 되어야만 더 이상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을 수 있다.심하윤이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어머님께서는 동의하셔?”“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서동의하게 할 거야..”심하윤은 괜히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커피잔은 차가웠고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그녀의 마음도 이 속의 커피처럼 쓰고 시렸다.소현우의 말이 맞다. 그는 클럽을 드나드는 플레이보이와 다를 게 없었다. 이전에도 그의 곁에는 연예인들과 모델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심하윤이 그중 한 명을 보내면 소현우는 또 한 명을 찾아 곁에 두었다...굳건히 포기하지 않던 전 여자 친구와 날이면 날마다 바뀌던 연인들.그녀는 끊임없이 바람둥이 남친 때문에 속을 썩여야 했고 심지어 이 때문에 평생 기억될 큰 잘못까지 저질렀다...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심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현우야,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거야?”그가 심하윤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보며 애써 고개를 저었다.“미안해...”“그래!”심하윤이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말투는 단호했다.“만약 네가 꼭 시아와 함께하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네 말대로 내가 시아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우리 집이 시아에게 빚을 진 거야. 쟁탈하려는 것도 정도가 있지, 쟁취할 수 없는 건 나도 인정해야지.”심하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소현우, 그럼 이만하자. 나중에 결혼하면 우리 집에 청첩장은 보내지 말아줘. 보내도 안 갈 거야. 너희들도 내 축복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정오, 정운대학교.수업이 끝난 지 한참이 되었지만 유시아는 여전히 교실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기말고사 때는 전공 지식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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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용재휘는 유시아와 처음 만난 날 입었던 흰 셔츠 차림이었다.뒤집힌 팔레트가 옷 위에 나뒹굴었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지저분한 물감들은 오히려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의외로 괜찮다고 느낀 그는 빨기도 귀찮아 아예 새 옷인 셈 치고 입었다. 심지어 유시아에게 농담까지 했다.“시아 씨, 이 작품이야말로 시아 씨 미술 생애에서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최고의 작품이죠? 정말 교탈천공이네요!”유시아가 저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재휘 씨가 사자성어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용재휘의 부모는 외국에서 거주했으므로 그 역시 중학교까지는 외국에서 보냈다.어려서부터 영어로 말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한국어는 잘 알지 못했다. 용재휘의 부모는 아들이 모어도 못할까 걱정되어 특별히 고모 이채련을 통해 정운대학교로 보내 미술을 전공하는 동시에 한국어도 배우도록 했다.사촌 누나 심하윤이 그에게 유시아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이를 핑계로 유시아를 졸졸 따라다닐 수 있게 되었다.“시아 씨, 제가 쏠 테니 같이 밥 드실래요? 초콜릿 훠궈 어때요? 달콤한 거.”“안 돼요. 집에 가서 공부할 거예요. 그리고 구름이한테 밥도 줘야 하거든요.”“구름이가 누구예요? 반려동물?”“네. 되게 귀엽고 예쁜 강아지예요!”“...”용재휘가 두 걸음 앞서가더니 유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다.“저 유시아 씨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강아지만도 못하다 이거죠?”유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펴 보였다.“뭐 하러 강아지랑 비교해요.”“그럼 내일. 내일도 되는데...”이 며칠 소현우와 임재욱의 일로 골치가 아픈 터였다. 유시아는 멈춰 서서 쉬지 않고 자신을 지껄이는 보라색 머리의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호감 없는 상대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은 매우 성가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녀는 단번에 임재혁의 감정을 이해했다.“시아 씨.”유시아의 불쾌한 기색을 눈치챈 용재휘가 조금 긴장했다.“화났어요...?”“아뇨. 그...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유시아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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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시아야...”소현우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손을 뻗어 다이아 반지를 들고 망설이더니 아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시아야, 나랑 결혼해 줄래?”로맨스 드라마에서도 이런 로맨틱한 장면은 극히 드물다.한순간 교문 어귀에 몰려든 사람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소현우의 진심에 감동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한 사람의 선동에 따라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받아줘! 받아줘! 받아줘!”뒤따라온 용재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워했다.이런 약은 수작 따위는 용재휘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회를 놓쳐버리다니.심지어 먼저 기회를 채간 사람이 사촌 누나의 전 남자 친구라니?용재휘는 놀람과 동시에 믿을 수가 없었다.“시아야. 나한테 오면 한평생 너만을 사랑하고 너와 함께할게.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유시아의 놀람과 기쁨이 섞인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이어서 말했다.“그 사람과는 이미 확실히 말하고 왔어. 이제 나 소현우는 마음속에 유시아 하나만을 품을 것을 맹세한다! 난 우리가 평생 함께할 거라 믿어.”“유시아. 결혼해 줘!”바람이 불어와 유시아의 눈을 아프게 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가녀린 손을 소현우에게 살며시 내밀었다.물고기가 물을 동경하듯, 날아가는 새가 하늘을 동경하듯. 유시아에게는 소현우가 그런 존재였다. 그의 따뜻한 품은 그녀가 휴식하고픈 안식처였다.다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언가 찢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프고 간지럽게.과거에 대한 미련일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까?곧게 뻗은 손이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그녀가 다시 손을 내릴 겨를도 없이 소현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이아반지를 약지에 끼웠다.그는 일어나 유시아를 품에 꼭 안았다.“시아야. 이제부터 너는 내 여자야!”소현우가 그녀의 귓가에 확고하게 말했다.“전에 겪었던 억울한 일들, 내가 다 몇천 배로 보상해 줄게. 넌 나만의 공주야. 꼭 사랑할게.”유시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정말 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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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휘황찬란한 레스토랑 내부에서는 은은하고 듣기 좋은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소현우는 이미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하였다. 식탁에는 파란 장미 한 다발이 놓여 있었고 한편에서는 요리사가 유리창 하나를 사이 두고 블루베리 파이와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있었다.유시아가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자기 왼손을 펼쳐보았다.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올해 프랑스 장인의 최신 디자인으로, 왕관 모양의 다이아 반지였다. 잘게 부서져 빛나는 다이아가 5.21캐럿의 핑크다이아를 에워싸고 있다.소현우가 말하길, 공주님으로 대한다고 했으니, 공주라면 무릇 화창한 봄날의 핑크색이 어울리고 근심걱정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데만 급급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랑을 받는 쪽이 되니, 유시아는 놀랍고 황송한 마음이 들었다.“시아야...”소현우가 걸어와 유시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유시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듣자니 약지에 동맥이 있어 심장과 연결되어 있대. 그래서 반지를 약지에 끼면 두 사람의 심장이 연결되어서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는대.”“네. 현우 씨 뜻 이해했어요.”유시아가 웃음기를 머금고 대답하며 그와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하지만 다음엔 이렇게 돈 낭비하면 안 돼요. 돈 벌기가 어디 쉽나요...”이 레스토랑은 유시아도 이전에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일 인당 소비가 적지 않은 데다가 소현우는 대관까지 했으니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것이다.게다가 유시아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어려서부터 부자는 꿈꿀 수 없었고 잘 입고 잘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사치품에 대한 흥미도 별로 없었다.이전에 그녀가 임재욱을 좋아했을 때도 그는 여전히 가난했다.그녀 역시도 소현우가 돈을 버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동산재기라는 것도 말기야 쉽지 실제로 실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할지 모른다.소현우를 아끼니까. 그가 힘들게 버는 돈을 더 쉽사리 쓰기 쉽지 않은 것이다.“좋아. 시아는 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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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유시아가 두 인형의 코끝을 콕콕 눌렀다.“집에 돌아가면 제일 높은 곳에 둬야겠어요. 구름이가 물지 않게.”두 사람은 편안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는 사이 차도 어느덧 화랑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려 할 때, 옆 차의 전조등이 갑자기 밝아졌다. 유시아는 무의식중에 소현우의 곁에서 움츠러들었다.소현우가 놀란 유시아를 껴안고 불빛이 나오는 방향으로 눈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임재욱이 벤틀리에서 내리더니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물었다.“오호라. 데이트를 하고 왔군요?”난감해진 유시아는 고개를 돌린 채 침묵을 지켰다.이때 소현우가 유시아의 손을 잡으며 임재욱에게 대답했다.“네. 함께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재욱 씨는 여기서 얼마나 기다린 겁니까. 인내심이 강하기도 하셔라. 임 대표님과 협력했던 사람들 모두가 대표님은 성질이 급하다던데 다 거짓말이었나 봅니다. 정말 너무들 하시네.”결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농담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구구절절 임재욱의 가슴을 후벼팠다.만약 전에 그가 유시아에게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를 더 줬다면, 혹은 그녀의 말에 조금이라도 더 귀 기울였다면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엇갈리지는 않았을 텐데. 더욱이 오늘날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차 문에 얹은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임재욱은 손에 힘을 꽉 주고는 소현우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시아를 향해 외쳤다.“시아야, 너한테 할 말이 있어.”SNS를 뜨겁게 달군 청혼 영상은 이미 확인했다. 유시아가 자기 손을 건네는 것도, 그 손에 결혼반지가 끼워지는 것도, 두 사람이 꼭 껴안는 모습과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박수하는 것도 모두 보았다.영상 속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낭만적이었고 동화처럼 비현실적이었다.그러나 임재욱은 알고 있었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문제점을.유시아는 아기를 낳을 수 없다. 이는 석 선생님이 그에게 알려준 것이다.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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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집으로 돌아온 유시아가 금방 잠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현관문 외시경으로 밖을 내다보니 소현우여서 문을 열어주었다.일찍부터 오늘 저녁에 데려다주는 김에 구름이를 보고 간다고 약속했었다.구름이는 옛 주인을 만나도 유난히 좋아했다. 인기척이 들리자 신이 나서 달려오더니 그의 허벅지를 안고 안아달라며 꼬리를 흔들었다.소현우는 슬리퍼로 갈아신은 뒤 구름이를 들어 올렸다.“구름이 되게 잘 키웠네. 나랑 있을 때보다 몸무게가 늘었어.”유시우가 흐뭇하게 웃으며 구름이의 큰 귀를 만지작했다.“왜냐하면 구름이가 저랑 함께 있은 시간이 가장 길거든요! 제 단짝이죠.”구름이에 대한 말을 시작하자 유시아의 웃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마치 방금 임재욱과의 갑작스러운 만남이 그녀의 기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것처럼.소현우가 구름이를 앉고 소파에 앉아 농담했다.“솔직히 구름이가 좀 부럽기도 하네. 매일 시아 옆에 붙어있고 시아가 주는 사랑이 담긴 사료도 먹을 수 있고...”유시아가 웃으며 대답했다.“현우 씨는 대단한 소 대표님인걸요. 세현그룹을 기사회생할 수도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데요.”소현우가 허허 웃었다. 자신이 이룬 성과들을 마음에 두지 않는 듯이.세현그룹이 어떻게 기사회생한 건지, 그가 또 어떻게 1년 이내에 세현을 다시 상장시킨 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현우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그의 성과는 사실 자랑할 가치도 없었고 더욱이 시아가 존경할 필요도 없었다.이 귀엽고 멍청한 아가씨...그가 구름이를 유시아의 품에 다시 내려놓으며 물었다.“요새 수업은 어때? 괜찮아?”유시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현우 씨, 저 꼭 전 과목 A+ 받고 말 거예요. 현우 씨 체면 지켜줘야죠.”비록 소현우를 통해 방청 자격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이후의 모든 시험은 그녀가 직접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다.소현우가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그래. 역시 우리 시아야.”그가 구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섰다.“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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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19층에 위치한 2,300평 남짓한 소현우의 집은 간단한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장식이 되어있지 않아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소현우가 말하길, 아주머니가 매주 월요일 청소하고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구름이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다. 꼬리를 날아갈 것처럼 흔들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화분의 작은 잎사귀를 물어뜯는 것도 좋아했다.강아지가 물건을 망가뜨릴까 봐 걱정되었던 유시아가 가방에 다시 들어가게 하려 하다 소현우에게 제지당했다.“원래 장난을 좋아하는 아인데, 이대로 둬.”이후 소현우는 유시아를 서재로 데려갔다.그는 오늘 마침 답장해야 할 업무 이메일이 있었다. 유시아는 창문과 가까운 테이블에서 공부하다가 가끔 책장 앞에 가서 책을 골라 읽었다.소현우의 책장은 작지 않았고 거의 한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소현우는 장난스레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대부분 장식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중 예술류의 서적과 그림책을 가리키며 농담했다.“그치만 이 책들은 성실한 시아 친구에게 잘 어울릴 것 같네.”유시아가 까치발을 하고 가장 위쪽의 책을 가지려고 할 때 cd 하나가 위에서 떨어져 옆의 카펫 위로 떨어졌다.허리를 굽혀 주운 뒤 자세히 보았더니, 그 cd는 뜻밖에도 신서현이 생전에 출판했던 음반이었다. 심지어 디럭스에디션이었다. 외곽은 특색 있게 포장되었고 신서현의 사진도 찍혀있었다.사진 속의 신서현은 20대의 모습이었다. 원래도 젊고 아름다운 얼굴에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치니 더욱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일에 열중해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던 소현우가 유시아의 기척이 들리지 않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유시아가 그 cd를 들고 넋 놓고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시아야...”부름소리에 유시아가 정신을 차렸다. “방금 책 가지려고 할 때 떨어졌어요.”소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cd를 들고 잠시 쳐다보고 대답했다.“전에 신서현 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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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9화

그의 말에 유시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해 엷게 웃었다.“이 cd 저한테 주면 안 돼요?”비록 노래를 좋아하지도, 평소에 노래를 즐겨 듣지도 않았지만 기념품으로나마 이 cd를 간직하고 싶었다.확실히 자신의 전 반생의 기쁨과 슬픔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와 깊이 사랑했던 남자가 모두 신서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괜찮으니까 마음에 들면 가져가. 여기 있어도 전시외엔 쓸데가 없으니...”소현우는 신서현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저녁 시간이네. 나가서 외식하고 우리 엄마 보러 가자.”유시아가 잠시 망설였다.“어머님을 뵈러 간다고요?”비록 처음 뵙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예비 며느리로 시어머니를 뵈러 간다고 생각하니 유시아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었다.게다가 이 여사는 아직 그들의 결혼을 정식으로 승낙하지 않았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둘의 결혼 결정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기도 했다.“네.”소현우가 부드럽게 유시아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어찌 됐든 언젠가는 만나 뵈어야 하는 사람이니까.”비록 어머니와 함께 살진 않았지만 주말이면 본가에 돌아가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되었다.그가 유시아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위안했다.“괜찮아. 우리 엄마 친화력도 좋고 너 좋아해 줄 거야.”그가 뒤돌아서 서랍을 열어 푸른색 선물상자를 꺼내 보여주었다.“봐봐. 내가 너 대신 선물도 준비해 뒀어. 엄마가 한복을 좋아해서 브로치를 모으는 취미가 있거든. 그리고 나도 같이 있을건데...”소현우의 위로에 유시아가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 그럼 전 가서 책 정리할게요.”“그럼 난 구름이 밥 줄게.”말을 마치고 소현우는 주방으로 향했다.유시아가 서재에서 필기와 그림 원고를 정리할 때 소현우의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하 이사” 세글자가 보였다. 회사 사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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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0화

혼자 집에 있던 유시아는 구름이에게 밥을 먹이고 빵을 꺼내 허기를 채웠다.오후 4~5시가 되었을 때 소현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유시아는 책을 덮고 창가에서 밖을 보며 눈을 쉬었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는 우유와 즉석밥, 컵라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유시아는 냉장고 문을 닫고 지갑을 챙겨 인근 편의점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아파트 주변은 녹화 환경도 좋고 공기도 맑았고 간간이 새 지저귐소리도 들려왔다.임재욱은 한 은행나무 아래에 선 채 저 멀리 석양 속에서 쇼핑카트를 밀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여인을 바라보았다.유시아는 오늘 하얀 와이셔츠에 간단한 디자인의 청색 멜빵바지를 입고 흰 축구화를 신었다. 귀엽게 묶은 올림머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학생 같아 보였다.쇼핑 키트에 산처럼 쌓인 식재료를 보고 임재욱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아주 현모양처가 따로 없네. 금방 청혼을 허락하고 이렇게 밥이며 채소를 갖다 바치면서 주부를 자처하는구나. 소현우는 참 복에 겨웠네.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그가 위 천공으로 입원했을 때 유시아가 밤을 새워 토마토 브로콜리 죽을 해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너무 많았던 토마토조각과 시큼한 맛의 죽...가슴이 아팠다. 오장육부가 다 저릴 만큼.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창백한 얼굴의 여인을 보며 미세하게 웃었다.“제가 말했죠. 피한다고 계속 피할 순 없다고."유시아의 쇼핑 키트를 잡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유시아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임재욱이 쇼핑 키트를 잡았다.“정말 소현우랑 결혼할 거야? 평생 같이 살 거야?”“그럼요?”유시아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뭐 어떡하려고요.”다시 생각해 보니 유시아의 눈에 두려움이 담겨있다.그녀의 눈에 임재욱은 맹수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그녀가 출소한 이래 가장 즐겨하던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고 싶냐는 말은.임재욱 역시도 자신에게 수없이 물어봤던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건가? 아예 유시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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