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휘는 유시아와 처음 만난 날 입었던 흰 셔츠 차림이었다.뒤집힌 팔레트가 옷 위에 나뒹굴었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지저분한 물감들은 오히려 색다른 분위기를 풍겼다.의외로 괜찮다고 느낀 그는 빨기도 귀찮아 아예 새 옷인 셈 치고 입었다. 심지어 유시아에게 농담까지 했다.“시아 씨, 이 작품이야말로 시아 씨 미술 생애에서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최고의 작품이죠? 정말 교탈천공이네요!”유시아가 저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재휘 씨가 사자성어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용재휘의 부모는 외국에서 거주했으므로 그 역시 중학교까지는 외국에서 보냈다.어려서부터 영어로 말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한국어는 잘 알지 못했다. 용재휘의 부모는 아들이 모어도 못할까 걱정되어 특별히 고모 이채련을 통해 정운대학교로 보내 미술을 전공하는 동시에 한국어도 배우도록 했다.사촌 누나 심하윤이 그에게 유시아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이를 핑계로 유시아를 졸졸 따라다닐 수 있게 되었다.“시아 씨, 제가 쏠 테니 같이 밥 드실래요? 초콜릿 훠궈 어때요? 달콤한 거.”“안 돼요. 집에 가서 공부할 거예요. 그리고 구름이한테 밥도 줘야 하거든요.”“구름이가 누구예요? 반려동물?”“네. 되게 귀엽고 예쁜 강아지예요!”“...”용재휘가 두 걸음 앞서가더니 유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다.“저 유시아 씨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강아지만도 못하다 이거죠?”유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펴 보였다.“뭐 하러 강아지랑 비교해요.”“그럼 내일. 내일도 되는데...”이 며칠 소현우와 임재욱의 일로 골치가 아픈 터였다. 유시아는 멈춰 서서 쉬지 않고 자신을 지껄이는 보라색 머리의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호감 없는 상대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은 매우 성가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녀는 단번에 임재혁의 감정을 이해했다.“시아 씨.”유시아의 불쾌한 기색을 눈치챈 용재휘가 조금 긴장했다.“화났어요...?”“아뇨. 그...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유시아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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