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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이라는 죄로: Chapter 91 - Chapter 100

485 Chapters

제91화

유시아는 모든 청춘을 그림과 임재욱에게 퍼부었다.학창시절 남운대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미술학과 미녀 유시아가 임재욱과 사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였다.유시아도 이 문제에 관해 많이 생각했었다. ‘삼 년? 아니면 오 년?’‘이쁘게도 생겼고 그림도 잘 그리고 또 재욱 씨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졸업 전에 사귀어서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면 딱 좋을 텐데.’그녀는 졸업 전에 진짜 해냈다.임재욱은 그녀가 자퇴하고 얌전히 임씨 집안 며느리를 하는데 전념하길 바랐다. 그리고 성대한 결혼식도 올려준다고 약속했었다.그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던 그녀는 자신이 결혼 당일 죄수복을 입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임재욱은 이혼협의서를 그녀에게 건네주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시아, 거울이라도 들여다보는 게 어때? 내 너 같이 멍청하고 악독한 여자를 왜 좋아하겠어?”그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자신을 해치려고 할 때 이토록 끔찍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유시아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옛 기억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떠올려서는 안 되었고 또 감히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으니까 말이다.유시아는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두 사람은 같은 이불을 덮고 있었기에 그녀가 일어날 때 임재욱도 기척을 느꼈다.임재욱은 원래 잠이 매우 얕아서 그녀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잠에서 깼다.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한 채 멍한 표정으로 유시아를 바라보면서 가쁘게 숨을 쉬었는데 약간 기분이 나쁜 듯했다. 그는 일어나 가운을 입고는 뒤돌아 떠났다.유시아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세수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다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얄 스위트룸 웨이터가 그녀를 식당으로 안내하면서 임재욱이 같이 아침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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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애를 낳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임재욱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유시아는 알겠다고 고분고분 대답했다.“알겠어요.”현재 그녀는 아주 얌전한 모습이었는데 아무런 영혼도 없는 얌전함이었다. 임재욱은 그녀를 보면서 속이 탔다.아침을 먹은 후 임재욱은 외투를 입고 유시아가 지내던 셋집에 가서 그녀의 물건들을 대신 가져다주려고 했다.그가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유시아가 그를 불러세웠다.“저도 같이 갈래요.”임재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면서 물었다.“가서 뭐 하려고?”“어떤 물건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리고 또 어떤 물건은 그냥 버릴 거라서...”임재욱은 유시아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더는 듣기 싫었다.“그럼 같이 가는 거로 해.”유시아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볍게 웃어 보이더니 이내 임재욱과 함께 문을 나섰다....그러나 유시아의 셋집은 이미 잠겨져 있었다. 구름이를 포함한 모든 물건이 다 이씨 아주머니한테 압수당했던 것이다.하지만 이씨 아주머니의 조카인 현수가 병원에 입원해서 이씨 아주머니가 옆에서 돌봐주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병원에 가서 이씨 아주머니를 찾아 열쇠를 가져야 했다.병원에 도착한 후, 유시아는 현수가 있는 병실로 갔고 임재욱은 현수의 상태를 알기 위해 의사 사무실로 향했다.의사는 현수의 몸에 많은 외상 외에도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내장을 찔러 심각한 내출혈을 일으켰고 또 뇌 CT에도 그림자가 보여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고 사실대로 전했다.임재욱은 의사의 말을 듣고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정신을 잃은 채 죽어버린다 해도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 하나가 적어진 것과 마찬가지죠...”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 병실에서 이씨 아주머니의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에는 욕설도 섞여 있었다.“이 뻔뻔한 기생 같으니라고...”임재욱은 눈살을 찌푸리고 재빨리 병실로 걸어갔다.그는 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이씨 아주머니가 유시아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붓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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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이씨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귀를 찌르는 듯이 날카로웠다.그녀는 유시아의 인식을 왈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아주 심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화난 유시아는 몸을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그러나 이씨 아주머니의 태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녀는 유시아의 멱살을 잡고 쉴 새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이년아, 잘 들어. 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현수가 깨어날 때까지 도망칠 생각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버릴 거야...”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으면서 뒤로 끌어당겼다.이씨 아주머니는 두피에서 밀려오는 고통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땅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들어보니 자신의 조카를 저렇게 만든 죄인이 거만한 태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주머니, 연세가 많으시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세요. 조카가 버릇없이 굴어서 교육해준 것뿐이에요. 당신 조카한테 해준 첫 인생 수업이 바로 여자를 함부로 때리지 말라는 거예요.”이씨 아주머니는 원래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임재욱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자마자 순간 쭈그러들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땅에서 일어서면서 임재욱을 가리키며 말했다.“내 조카를 저렇게 만들어놓고 내가 널 가만둘 줄 알아? 신고할 거야...”임재욱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신고하세요. 신고하면 저야 좋죠.”평소라면 이씨 아주머니는 이미 신고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임재욱한테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그리고 평소 현수가 도적질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는 바람에 그에 관한 평판이 워낙 좋지 않아 이씨 아주머니도 감히 신고하지 못했다.임재욱은 평소에 귀찮은 일을 싫어해서 대부분 돈으로 일을 처리했었는데 이씨 아주머니와 현수에게는 유난히 인색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 돈 한 푼도 배상해주기 싫었다.생리가 온 연약한 여자를 힘들게 몰아붙이면서 손찌검까지 하려고 드니 절대 좋은 사람일 수가 없었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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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유시아는 짐을 하나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폰과 지갑, 그리고 중요한 민증과 여권 등만 챙기고는 구름이를 안고 도망쳤다.그녀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품고 아파트에서 달려 나와 길옆에 있던 택시를 잡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임재욱이 차를 몰고 쫓아 나왔다.겁에 질린 유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기사님, 얼른 운전해주세요. 제발요. 뒤에 차가 따라오지 못하게 빨리 떠나주세요...”그녀는 굳어진 얼굴을 하고 벤츠 차에 앉아있는 임재욱을 뒤돌아보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그녀의 손에서는 땀이 났고 구름이를 안고 있는 두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꼭 달아나야 해. 멈춰서는 안 돼. 절대 잡히면 안 된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구름이를 데리고 도망쳐 나왔는데...’‘잡히면 날 정운시로 데려가서 괴롭히고 모욕하면서 날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만들 거야.’“빨리요... 곧 따라잡힌단 말이에요. 기사님, 더 빨리 가주세요... 아...”차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더니 유시아는 관성 때문에 앞으로 넘어질 뻔했고 구름이는 너무 놀란 탓에 비명을 질렀다.임재욱이 벤츠를 몰고 택시 차를 들이박은 것이다.심한 추돌 사고 때문에 택시 차는 부득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임재욱이 차에서 내리더니 택시 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택시 차 문을 와락 열자마자 구름이를 안고 움츠린 채 함정에 빠진 새끼 사슴마냥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시아를 보았다.택시 기사가 차에서 내려 임재욱을 향해 걸어오면서 광둥어로 그를 비난했다. 성가시게 느껴진 임재욱은 택시 기사에게 지갑에 있던 돈뭉치를 던져주면서 말했다.“옆에 가서 기다려요.”유시아는 택시 차 안에서 다른 편에 문 쪽으로 다가갔다.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른 편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한 듯 문을 두드리면서 급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다.“왜 안 열리는 거야? 대체 왜 열리지 않는 건데...”임재욱은 문 앞에서 서서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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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유시아는 남자의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을 보면서 갑자기 소리 내어 웃었다.“임재욱 씨, 당신 3년 전에도 날 평생 사랑할 거라고 말했어요. 나한테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고 나와 결혼 한 후에도 날 평생 사랑할 거라고 약속했었다고요...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잖아요.”처음부터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다. 그녀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한 임재욱은 그녀에게 절망만 안겨주었다. 그리고 절망한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어리석다고 비웃었다.그녀는 다시는 믿지 않을 것이다.임재욱이 했던 모든 말을 다시는 믿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든 그의 마음속에 있는 원한은 지워지지 않으니 말이다.그는 그녀의 아버지를 미워했고 그녀더러 아버지 대신 죗값을 치르게 했었다. 모든 원한을 그대로 그녀에게 갚아주었다.지금 그녀는 홍콩에 남아 그림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구름이와 함께 삼시 세끼를 먹고 사계절을 함께 보내면서 간단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었다. 다시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녀만 돌아가지 않는다면 소현우는 그녀를 점차 잊어버리고 심하윤 또는 다른 알맞는 상대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임재욱도 싫어하는 그녀를 더는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녀는 불필요한 존재였고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임재욱은 차 문을 잡고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당장 내려!”유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으로 숨었다.인내심이 바닥난 임재욱은 그녀의 가녀린 팔을 잡고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고는 자신의 차에 밀어 넣었다.차 문이 닫히면서 더는 열리지 않았다.고급스러운 벤츠 차는 작은 감옥마냥 유시아와 임재욱을 안에 가두었다.유시아는 품 안에 있는 구름이를 꼭 껴안았다. 구름이 목에 걸려있는 방울이 딸랑딸랑 울렸는데 이는 유시아로 하여금 소현우를 떠올리게 했다.소현우는 부드럽고 매너 있는 남자였는데 유시아를 잘 보살펴주었었다. 그녀에게 화를 낸 적도 없었고 그녀를 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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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진한 메이크업을 한 점원이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는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남자는 키도 크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기품을 지니고 있었는데 잡지에 오를 만큼 완벽한 사람이었다. 반면 여자는 아주 가엾어 보였고 방금 울었었는지 코가 빨갰는데 주름진 값싼 치마를 입고 있었다.비교해보면 왕자와 거지와 다름없었는데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임재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십 대 초반 여자애한테 어울리는 스킨케어 제품을 추천해주세요.”“이 앰플을 추천해 드립니다.”점원은 말하면서 진열대에 놓인 유리병 하나를 들고 유시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가씨, 손 줘보세요. 제가 테스트해 드릴게요.”유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상처투성이인 거친 손을 뒤로 숨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했다.그녀는 얼굴과 손만은 사람들 앞에 보이고 싶지 않았다.임재욱은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점원에게 말했다.“이거 포장해 주세요. 그리고 저 스킨케어 키트도 포장해 주세요...”쇼핑몰에서 나왔을 때 임재욱은 이미 손에 여러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스킨케어 제품 뿐만 아니라 여러 유명 브랜드 옷과 치마, 그리고 여러 액세서리와 그림 도구 세트도 있었다.유시아는 다락방에서 달아나면서 구름이와 중요한 물품들 외에 옷과 일용품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그 싸구려 물품들을 버리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 임재욱은 그녀에게 다 새것으로 사줬다.임재욱은 오늘 저녁 티켓을 예약했는데 비행기를 타려면 시간이 약간 촉박했는지라 쇼핑몰에서 나오자마자 임재욱은 유시아를 데리고 짐을 챙기러 호텔로 갔다.그가 대우 그룹을 물려받아서부터 처음 이렇게 오랫동안 무단결근을 했다. 홍콩에 더 머물렀다가 임태훈이 직접 잡으러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호텔로 돌아와서 임재욱은 급하게 짐을 챙겼고 유시아는 소파에 앉아 티테이블 위에 놓인 디저트를 구름이에게 먹였다.이 동안 방에 갇힌 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구름이는 약간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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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난 필요 없어요!”유시아의 작은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이 담담했다.“재욱 씨, 난 이런 거 필요 없어요. 난 당신의 연민 따윈 필요 없다고요!”비록 몸에 걸친 치마는 낡아서 말라비틀어진 야채 잎사귀 같았지만 그녀의 몸을 제대로 가릴 수 있고, 매일의 식사는 풍성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배를 채우긴 거뜬했다. 숙소도 매우 누추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위해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었다.그건 마치 혼자 사는 것이 외롭고 쓸쓸해도 더 이상 실망이나 배신 같은 건 없을 거라는 것과 마찬가지다.그녀는 원래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임재욱이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아껴줄 것을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녀는 이 세상을 구차하게나마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임재욱의 마음속에는 왠지 모르게 쓸쓸함과 야속함이 밀려왔다.알고 보니, 그가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던 거구나...그는 그저 그녀가 출소 후에 더 잘 살았으면 좋겠고, 남한테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익숙한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 것뿐인데.게다가 그 물건들 안에는 화려한 옷과 화장품만이 아니라 값비싸고 효능이 좋은 보혈하는 보건 품도 들어있었다.석 선생님이 그녀가 가벼운 빈혈이 있어, 자주 손발이 차가워지고 얼굴도 항상 하얗게 변한다고 말해서 그가 특별히 기억했다가 그녀를 위해 샀다. 제때 복용시켜 그녀의 허한 몸을 하루빨리 추스르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나는 필요 없다'라는 한마디가, 마치 그가 그녀를 위해 한 모든 노력이 말살당하고, 그들을 가장 익숙한 낯선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그가 사준 물건을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원래부터 소현우 하나뿐이었고, 지금 그가 억지로 그들을 갈라놓았으니, 그녀의 마음은 이제 텅 비었을 것이다...임재욱은 잠시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다가, 문득 입가에 까칠한 미소를 내보이며 말했다.“그건 어차피 내가 산 구조 물품들이야, 갖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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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강석호는 눈치를 채고 즉시 주차장 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유시아를 바라봤다.“유시아 씨. 이쪽입니다.”유시아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감사합니다.”임재욱은 유시아가 강석호의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할아버지의 차에 올라탔다.“수고스럽게 할아버지께서 다 마중을 나오시다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저 여자는 왜 또 데리고 왔어? 싫어하는 사람은 멀리 찍 보내버려야 성가시지 않은 법이야!”임재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할아버지의 그 걱정 많은 버릇은 언제쯤 고쳐집니까?”임재욱은 할아버지 앞에서 항상 이래왔다. 자기를 수틀리게 하면 할아버지도 맘 편하게 두지 않는다.임태훈은 그의 말버릇에 익숙하다는 듯이 그저 웃기만 하며 말했다.“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유시아가 감옥에서 3년을 보내고 사람도 많이 변한 거 같은데, 왠지 한 송이 꽃처럼 더 연약해 보이는구나. 흠...아쉽네, 하필이면 살인자의 딸인 게 말이야!”그는 말하면서 곁눈질로 임재욱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예상대로 임재욱은 표정이 약간 변했고, 미간을 더욱 조여왔다.목적을 달성한 임태훈은 허허 웃으며 차창 밖을 돌아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 손자놈은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제멋대로다. 그도 손자를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다.예로부터 사내놈은 포부를 잃지 말고 정에 약하면 안 된다고 했다. 둘 중에 그 어느 것이든 적중했다간 성공하기 힘들다. 남자는 여자한테 너무 감정을 쏟아도 안 되고 쏟으려는 마음이 있어도 안 된다. 그게 바로 약점으로 변해버리니까.약점이 있는 사람은 불패의 위치에 서기가 어렵다.예전의 그 신서현은 목숨이 짧아 임재욱의 약점이 될 운명이 아니었지만, 이 유시아는...사실 그는 예전에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어쨌든 유병철이 신서현을 죽인 원한이 있으니. 게다가 임재욱은 한시도 그걸 잊은 적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 임재욱이 정운의 모든 것을 제쳐놓고 홍콩에 가서 유시아를 찾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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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정운은 이미 1년 중 기온이 가장 높은 달에 접어들었고, 오후가 되었는데도 지면 온도는 여전히 높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유시아는 수업 가는 길에 너무 더워, 저도 몰래 길가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멈추었다.“사장님,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음... 설탕 알갱이 많이 뿌려서요, 감사합니다.” 카카오페이로 돈을 계산하고, 유시아는 가게 사장 손에서 설탕 알갱이로 장식된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으며 기분이 한층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한창 그것을 입 속에 넣으려고 하는데,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윙윙거리기 시작했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그 안에서 임재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아이스크림 먹지 마!”유시아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주변은 모두 행인들이었고, 맞은편에는 넓은 도로가 있었다. 마침 빨강 신호등이라 도로에 여러 차량이 서 있었다.임재욱은 아마 저 차들 중에 어느 한대의 뒷좌석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 하며 그녀는 생각했다.다른 한편에서, 임재욱의 말투는 더욱 엄격해졌다.“석 선생이 너한테 찬 음식을 먹지 말라고 당부했잖아. 먹고 또 배가 아프면 어떡해? 네 몸 건강을 그런 식으로 챙기는 거야? 어?”비록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유시아는 꾸중을 들으며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날씨가 너무 더워서 하나 사 먹었는데, 평소에는 안 먹었...”임재욱한테서 차가운 명령이 떨어졌다.“얼른 버려! 내가 차에서 내려 네 손에서 뺏기 전에!”“......”그녀는 원래 애티난 귀염 상 얼굴을 갖고 있는데,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먹을 엄두는 내지 못하며, 서러워하는 가여운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임재욱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왠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입가에 저도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뜻밖으로 그녀와 타협했다.“그럼 한 입만 먹고 버려.”그의 승낙을 받자, 유시아는 입을 벌려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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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유시아가 학교에 일찍 도착한 바람에 교실 안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구석에 자리를 골라 앉아 화판을 받치고 책을 꺼내 읽으며 교수님이 수업하러 오기를 기다렸다.미술학과 강의실은 2층에 있었는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장난치며 수다를 떨고 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낯익은 여자 목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유시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과연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여자, 신시연이 있었다.신시연은 치타 무늬의 나시에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두 여학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유시아가 있는 이 건물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비록 그녀들이 자신이 있는 교실에 올 거라는 건 확실하지 않지만, 유시아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1급 경보가 울렸다.만약 신시연한테 자신이 여기서 방청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게 된다면, 그녀는 예전처럼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고 욕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지난번에 신시연이 자기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간 적도 있고, 신시연 언니의 그 오래된 빚까지 합쳐 신시연은 아마 자신을 무지막지 미워할 것인데, 여기서 자신을 만난다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 있었던 일이 일단 밝혀지면, 그녀는 앞으로 이곳에서 방청할 수 없게 된다...왜 오늘 재수가 이렇게 없지? 신시연이 다니는 학교는 정운의 또 다른 대학인데, 왜 하필 여기서 만나게 된 건지. 참으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오늘 상황이 딱 그러하다.유시아는 재빨리 물건을 간단히 치우고 복도 너머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오늘 수업은 일단 듣지 않기로 하고, 나중에 다시 외출하게 되면, 오늘의 운세를 한번 훑어보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시연을 다시 만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니까.그런데 긴장할수록 두 손이 떨렸고, 가까스로 화판을 들고 문으로 돌진했을 때 마침 강의실에 들어오는 남학생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물감 상자가 뒤집히며 알록달록한 물감이 그 남학생 셔츠에 뿌려져 매우 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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