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Chapter 941 - Chapter 950

1402 Chapters

제941화

앞으로 5일만 있으면 떠난다는 말에 민아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쳤다.“민아야,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과거에 학교 다닐 때는 항상 돈을 많이 벌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밤낮으로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더 중요한 것을 잃었어. 난 이제 평범한 나라에서 봉사 활동이나 하면서 가난한 아이들을 돕고 싶어. 그러다 질리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카페랑 꽃집을 열거나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거야.”“좋아.”민아는 지아를 돌아보았다.“넌?”“난 더 강해질 거야. 의학 공부도 계속하고 계속 선생님 눈에 자랑스러운 학생이 될 거야.”지아의 눈빛이 확고했다.“잘됐네.”민아는 한숨을 쉬었다.“고등학교 3학년 때 교내 나무 밑에 앉아 미래를 기대하던 때가 생각나. 나중에 우리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유학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민아야, 도망쳐봐야 소용없어. 때론 경험해 봐야만 아는 게 있어.”“하긴.”민아는 나무 그늘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세어보았다. 세찬과 모든 인연을 영원히 끊을 때까지 아직 5일이 남아있었다.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일이 생겼다.지난 이틀 동안 민아는 잔뜩 들떠 있었고 심지어 폴짝폴짝 뛰면서 길가에 있는 잡초에도 인사를 건넸다.아마도 세찬은 민아가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못 견뎠는지 사흘째 저녁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때 민아는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그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열흘에 한 번씩 섬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주는 걸 알고 있었다.섬의 일꾼들이 돌아오는 줄 알았던 민아는 상관하지 않고 나무 밑에 서서 천으로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었다.“여덟, 아홉, 열, 꼬마들 잘 숨었어? 늑대가 토끼 잡으러 간다!”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에 민아는 그 자리에서 무작위로 일꾼 몇 명을 붙잡아 숨바꼭질에 합류시켰다.고작 몇 걸음만에 단단한 누군가의 품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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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2화

그 목소리에 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고, 민아는 자신의 얼굴에서 눈가리개를 격렬하게 벗었다.민아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세찬이었다!민아는 번개라도 맞은 듯 말을 더듬었다.“여긴 왜 왔어요?”세찬의 입꼬리가 미소를 머금고 말려 올라갔다.“난 매일 밤낮으로 김 비서 보고 싶었는데, 섬에서 너무 잘 지내서 내가 누군지도 잊었나?”일꾼들은 모두 눈치껏 자리를 떴고, 두 아이는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눈을 크게 깜빡이며 세찬을 쳐다보았다.그 천진난만한 눈빛에 뭔가 하고 싶었던 세찬은 민아를 그냥 놓아주었다.“해경이랑 소망이 맞지?”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아이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소망이가 불렀다.“아빠?”세찬은 기뻐하며 서둘러 무릎을 꿇고 아이를 안아주었다.마치 올챙이가 어미를 찾는 것 같았다.“꼬마야, 난 네 아빠가 아니야.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다.”소망이의 눈에 실망감이 스쳐 갔다. ‘아빠는 어디 갔을까?’세찬은 소망을 안고 한참을 놀아주었고 눈가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민아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오래 전 세찬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당시 민아는 천진난만하게 아이들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세찬의 대답은 단호했다.“안 좋아해. 짜증 나.”그러고는 들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았다.“김 비서, 당신은 똑똑하니까 멍청한 짓은 안 할 거야, 그렇지?”세찬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 속에는 위협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아이를 좋아하지 않으니 애인이 낳은 아이는 더더욱 싫어할 것이다.앞으로 세찬의 자녀는 본처의 뱃속에서만 태어날 테니까.그때까지도 깊게 빠지지 않았던 민아도 그 점을 잘 알고 2년 동안 잘 버텼다.그날 밤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 민아도 자신이 임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아이가 생기자 생각도 바뀌었다.그런데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민아는 세찬이 아이와 노는 사이 미련 없이 뒤돌아 가버렸다.세찬만 보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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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3화

민아는 입을 삐죽거렸다.“그런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지아야, 어떡해. 그 사람이 오면 우리 계획은...”세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무슨 계획? 김 비서, 나 몰래 뒤에서 나쁜 짓 하는 거야?”민아는 하마터면 들킬 뻔하자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그나마 지아가 침착하게 마스크를 벗고 수술 도구를 내려놓은 다음 수술복을 벗고 방 밖으로 나왔다.“아무것도 아닙니다. 민아가 말한 건 그쪽이 잘 때 칼로 찔러서 죽일지, 설사약을 먹여서 죽일지였어요. 그런 계획은 하루에도 백 개는 생각해 내거든요.”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아에게 눈짓했다.‘역시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지아는 차분하고 절제된 성격, 민아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 서로 보완하기 딱 좋았다.세찬은 가볍게 웃었다.“장난이 심하네. 역시 형수님께서 현명하시네요.”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강세찬 씨도 저희가 이미 이혼했다는 걸 아실 텐데 그런 호칭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미안합니다, 소지아 씨.”그제야 세찬은 도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민아는 화가 나면 달려들어 물고 얼굴을 할퀴는데 지아는 말다툼은커녕 차갑게 쳐다보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강세찬 씨는 섬에 왜 오셨죠? 민아가 이제 겨우 이겨내고 있는데 지금 그쪽을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민아는 세찬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만 소란을 피웠으며, 평온할 때는 습관적으로 멀리 피했고 함부로 쏘아붙이지도 않았다.지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민아는 당장에 속으로 감탄을 뱉었다.‘역시 지아야!’“흠, 김 비서 만나러 왔습니다.”지아는 무심코 머리 위의 감시카메라를 가리켰다.“이 섬에는 카메라가 많고 강세찬 씨도 적지 않게 봤을 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람 불쾌하게 하시는 거죠? 솔직히 민아와 미래를 꿈꾸는 것도 아니면서 왜 서로 시간만 낭비하시는 건가요? 본인도 불쾌하고 남도 불행할 뿐인데.”민아는 일방적으로 지아가 자신의 변호인이라고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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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4화

손을 깨끗이 씻고 부검실을 나가려고 돌아서자 두 아이가 뒤를 따랐다.“엄마, 삼촌...”“알아, 너희는 가서 재미있게 놀아.”지아는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찬이 이곳에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도윤은 자신이 떠난 후로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소식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지아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도윤이 지아를 놓아줄 수 있었던 것은 지아가 섬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감시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만약 자신이 떠난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지아는 세찬이 민아를 데려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민아의 방 문을 바라보았다.민아가 돌아간다면 과거의 자신보다 더 처참할 것이다. 적어도 도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아를 사랑했지만 세찬은 달랐다. 세찬의 눈에 민아는 그저 노리개에 불과했고, 영원히 민아에게 떳떳한 신분을 주지 않을 것이며 아이를 낳아도 남들 눈에는 그저 내연녀와 서자일 뿐이었다.언젠가 세찬이 민아에게 싫증을 내면 민아는 그대로 버림받게 된다.지아는 너무 많은 고통을 겪은 탓에 다시는 민아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민아를 데려갈 생각이었다.세찬은 민아를 강제로 끌고 갔고 민아는 차갑게 물었다.“여기 왜 왔어요?”세찬이 대답대신 물었다.“네 방이 어디야?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민아의 턱이 정면을 향해 까딱하자 세찬이 민아의 손을 잡아당겨 방 안으로 들어갔다.“대체 무슨 일인데 읍...”문이 쾅 닫히는 순간, 세찬의 몸이 다가오며 얇은 입술이 그대로 민아의 입술을 머금었다.“요물, 보고 싶었어.”민아는 세찬이 정말 중요한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것에 깜짝 놀랐다.심지어 그동안 민아는 머릿속으로 전에 처리한 계약이 뭔가 크게 잘못되어서 세찬이 먼 거리에서 달려온 것은 아닌지 계속 생각했다.세찬에게 입맞춤을 당하는 순간 민아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미쳤나?’“이거 놔요!”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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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5화

세찬은 그런 말이 민아의 입에서 나온 게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병원에서 울고불고 싸울 때도 끝내자는 말은 하지 않던 민아였다.세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다시 말해봐.”민아는 고개를 숙이고 손톱을 만지작거렸다.“이젠 질렸으니까 끝내자고요.”허리를 잡은 손이 격렬하게 조여오고 민아를 꽉 끌어당기며 세찬은 이를 갈았다.“방금 한 말을 취소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야.”“강 대표님, 그동안 잘 생각해 봤는데 이런 관계는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원하던 게 아니야? 허.”세찬은 비웃으며 손을 뻗어 민아의 턱을 들어 올렸다.“설마 강씨 집안 사모님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와 조롱하는 듯한 눈빛을 보며 민아는 자신이 직접 그런 말을 뱉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냥 그만두고 싶어요. 계약기간은 3년이었고 이제 몇 달 안 남았는데 3개월 휴가까지 준다고 하셨으니 기간이 다 된 것 같아서요.”“그만둔다고? 왜, 비서 일 그만두고 다시 영업이나 하려고?”민아는 세찬의 비열한 태도에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2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좀 쉬고 싶어요. 강 대표님, 그만해요 우리.”“김 비서, 계약 위반하면 위약금 내야 하는 거 알고 있나?”세찬은 민아가 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말을 하면 긴장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민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알아요, 얼마든 낼게요.”“네가 내야 할 금액이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일했던 만큼이라면? 시간 낭비한 셈인데.”민아의 속눈썹이 살짝 흔들리자 세찬은 민아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는 것처럼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돈을 그렇게 좋아하는 네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지. 얌전히 유급 휴가 보내면 보너스를 두 배로 줄게, 어때? 이번엔 내가 조심해서 더는 너 임신해서 고생하는 일 없게 할게.”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세찬을 바라보았는데, 세찬은 그 눈빛이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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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6화

떠날 계획을 마친 민아가 어떻게 준비를 안 할 수 있겠나.민아는 나중에 화가 난 세찬이 계좌를 동결할까 봐, 모아두었던 돈을 개인적으로 조금씩 이체하거나 사람을 찾아 현금으로 바꾸었고, 고향 집에 송금하는 등 잔액을 줄이고 있었다.세찬은 매우 호탕하게 지아의 계좌로 6억을 보냈다.민아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하룻밤에 6억이라니, 내 가치가 꽤 높네.’세찬은 이런 쪽에 요구가 높았다. 민아를 고를 때도 진작 민아의 몸 사이즈를 재어보고 며칠 동안 테스트해 보고 나서야 손을 대기 시작했다.겉으로는 잘 포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껍질을 벗겨낸 후 세찬이 얼마나 악마처럼 지저분한 사람인지 민아만이 알고 있었다.그래도 민아가 임신했다는 걸 안 뒤로 양심껏 건드리지 않았고 따지고 보면 몇 개월이 지난 시간이었다.세찬이 조급하게 침대에 눕히자 민아는 다소 불편했다.“아직 안 씻었는데...”“하고 씻어.”민아의 머리카락이 새하얀 이불 위에 흩어져 있었고, 세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민아가 침대에서 자신에게 잘 맞춰줬는데 지금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아팠고 손의 움직임마저도 훨씬 부드러워졌다.“그동안 다른 사람 만난 적 없어요?”민아가 묻자 세찬은 그런 질문이 불만스러운 듯 차가운 눈빛으로 민아를 훑어보았다.“아무나 내 침대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세찬은 반지를 다시 민아의 손에 끼워주며 손가락 끝에 입맞춤을 했다.대단한 집안도 아니고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지만 다리만큼이나 그 손이 설명할 수 없이 세찬을 매료시켰다.“악보 기억나?”세찬은 입술을 귓불로 옮기며 물었다.미친!민아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 미친 남자는 1년 전부터 민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아무런 기초도 없었던 민아는 매일 잠들기 전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악보까지 외우게 했다.임신한 동안 겨우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세찬이 또 이런다.“아니요, 기억 안 나요.”“휴가 줄 테니까 10곡만 외워.”“알았어요.”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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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7화

민아가 유난히 협조적이어서 세찬의 마음은 묘했지만 차마 이상한 점을 보아내지 못했다.두 사람은 점심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일어나 밥을 먹었고, 세찬은 민아와 오후 내내 함께 있으면서 마음이 그렇게 평온했던 적이 없었다.비서가 거듭 재촉해서야 세찬은 그곳을 떠났다.세찬이 떠나기 전 민아는 헬기 앞에서 아쉬운 듯 세찬의 허리를 껴안으며 배웅하러 다가왔다.“그럼 언제 또 날 보러 올 거예요?”“뭐야, 떠나기도 전에 또 보고 싶어? 어젯밤에 충분하지 않았나?”세찬이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민아는 진중한 얼굴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런 세찬을 본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원칙적인 도윤과는 달리 세찬은 흥미가 당기면 사업 얘기를 나눌 때도 테이블 밑으로 자신의 다리에 손을 얹는 남자였다.“세찬 씨, 가서 내 생각할 거예요?”민아가 갑자기 묻자 세찬은 단순히 애교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어 민아의 코를 만졌다.“밤이면 유난히 생각나지.”세찬은 늘 민아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지만 민아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전 생각 안 할래요, 너무 힘들어.”세찬이 뭐라 말하려는데 비서가 다시 재촉했다. 그는 오늘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데 더 지체하면 늦을 게 뻔했다.세찬은 민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5일, 길어도 5일 안에 올게. 선물도 가져올 테니까 밤낮으로 내 생각해. 반지는 절대 빼면 안 돼.”“알았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대표님.” 민아는 세찬의 품에서 물러나 안전한 곳에 섰다.왠지 그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세찬은 마음에 걸렸다. 마치 민아가 일부러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세찬은 별다른 생각 없이 헬리콥터에 올랐다.헬기는 떠났고 세찬은 민아가 자신이 떠난 방향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작은 점이 세찬을 매일 생각나게 했다.세찬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민아는 차갑게 식어버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드디어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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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8화

교신 후 그날 밤, 일행은 섬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섬에는 총 352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지아는 오래전에 데이터를 수집해 두었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지아는 아이를 데리고 산 뒤편 해안가로 갔고, 바닷바람이 불자 민아는 소름이 돋았다.이곳은 지아가 시체를 매장한 곳이고 그동안 해부 후 묻힌 시신은 족히 30구는 되었다.이 바람마저도 꽤 음침한 느낌에 민아는 목뒤가 서늘해졌다.이러한 이유로 다른 일꾼들도 감히 산 뒤편으로 올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곳이 탈출하기에 가장 편리한 장소였다.민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너 혹시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지아야? 예전보다 훨씬 더 계산적으로 행동하잖아.”“난 너무 많이 실패했어. 이번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엄마,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너희들 삼촌 보고 싶지 않아? 엄마가 데려다줄게.”이미 전효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두 아이는 전효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삼촌! 보고 싶었어요.”해경은 한달음에 달려갔고 전효도 아이들이 그리운 듯 품에 꼭 껴안았다.소망도 조용히 전효를 부르며 다가갔다.전효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민아가 지아의 팔을 슬쩍 건드리며 물었다.“대체 밖에서 다른 남자는 언제 찾은 거야? 비밀스럽게 구는 걸 보니 설마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라도...”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소망은 갑자기 손을 뻗어 전효의 가면을 벗기고 볼에 부드럽게 뽀뽀했다.“삼촌...”지아는 전효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얼굴에 흉터나 무슨 자국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작 얼굴은 깨끗하고 입체적인 이목구비에 잘생겼다.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전효와 도윤이 조금 닮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전효는 재빨리 가면을 썼다.“얼른 가자, 늦으면 문제 생길 수도 있어.”그제야 지아는 정신을 차리며 밤에 희미한 불빛 때문에 잘못 본 거라 생각하며 민아의 손을 잡고 보트에 올랐다.지아는 이 섬에 촘촘히 설치된 카메라 외에도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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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9화

도윤의 온몸이 떨리고, 가슴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자신의 손과 눈을 적시며 전림이 죽었던 순간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랐다.말도 안 돼!“아니, 전림이 아니야. 전림은 내 품에서 죽었어, 확실해.”그 총알이 전림의 심장을 관통했고 전림은 죽은 게 확실했다.도윤은 남자의 가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전효야. 내 짐작이 맞다면 전림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그놈일 거야!”“세상에, 어떻게 이런 인연이. 전림에게 형이나 동생이 있는데 왜 우리가 몰랐죠?”“그건 전씨 가문의 문제야. 섬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서 저들을 막아!”도윤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지아야, 미안해”이번에는 정말 놓아주려고 했는데. 이 남자의 정체가 너무 미스터리하고 게다가 전림의 형제라면 도윤은 더 이상 상대를 밖에 둘 수가 없었다.순식간에 섬에서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민아는 당황한 나머지 긴장한 얼굴로 하마터면 배에서 떨어질 뻔했다.“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릴 찾은 거지? 지아야 어떡해? 우리가 다시 잡히면 개도윤이 나까지 철창에 가두지 않을까?”“징징거릴 시간 있으면 얼른 뛰어. 전효 씨, 속도를 올려요.”지아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두툼한 외투로 감싼 채 품에 꼭 안아 보호했다.전효가 스피드를 올리자 보트가 빠르게 달렸다.지아가 민아를 달랬다.“걱정 마, 우리가 탈출한 걸 들키더라도 한동안은 우리 위치를 모를 테니까.”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지아는 머리 위에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헬기는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지아의 머릿속에는 도윤이 자신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만 떠올랐다.“지아야, 너희 두 사람 쌍으로 정말 대단하다! 네가 충분히 똑똑한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이 더 똑똑한 줄 몰랐어. 끝났어, 끝났어. 이번엔 절대 못 탈출할 거야. 잡히면 돼지우리에 넣는 거 아니야? 게다가 넌 네 애인도 있잖아. 차라리 내 애인이라고 할게.”지아는 할 말을 잃었다.“쓸데없는 말 해 줘서 참 고맙다.”민아가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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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0화

보트를 정박한 전효는 곧바로 지아의 품에서 두 아이를 안고 다급하게 말했다.“자, 따라와!”지아는 민아의 손을 잡고 섬으로 오른 뒤 전효를 따라 미리 파놓은 통로로 들어갔다.“당장은 놈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여기 계속 숨어 있다가 섬을 포위하면 잡히지 않겠어요?”전효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내 짐작이 맞다면 한대는 공중에서 내려올 거고 다른 한 대는 대기할 거야. 이런 헬기는 연료가 3시간밖에 버티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섬을 포위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고 지금 섬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이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우리를 찾을 방법이 없어. 두 시간만 더 버티면 돼.”민아는 전효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누구신데 정말 대단하세요. 모든 걸 꿰뚫어 보시는 군요!”“전효라고 합니다.”전효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여러 사람을 데리고 물과 음식이 있는 거대한 지하 동굴로 가더니 지아에게 병 하나를 건넸다.“물 좀 마시고 좀 쉬어. 앞으로 매일 이동해야 하니까.”“고마워요.”두 아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큰 반응이 없었다.전효의 말대로 섬 전체는 아무도 개발하지 않아 식물들로 가득했고 걸어서 섬 전체를 돌아다니려면 사흘이나 걸리는 데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사람을 찾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민아는 지아에게 기대어 잠을 청했고, 전효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역시나 머리 위 헬기는 사라진 상태였다.감시를 피해 바다로 도망치자 도윤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지아는 섬을 떠나고 나서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평온함을 느꼈다.하늘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밤새 달려온 끝에 바다 위로 떠오른 일출은 정말 아름다웠다.지아는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드디어 자유를 찾았어!”몇 년이 지난 지금, 지아는 드디어 도윤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민아 역시 지아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꽉 껴안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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