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은 그런 말이 민아의 입에서 나온 게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병원에서 울고불고 싸울 때도 끝내자는 말은 하지 않던 민아였다.세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다시 말해봐.”민아는 고개를 숙이고 손톱을 만지작거렸다.“이젠 질렸으니까 끝내자고요.”허리를 잡은 손이 격렬하게 조여오고 민아를 꽉 끌어당기며 세찬은 이를 갈았다.“방금 한 말을 취소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야.”“강 대표님, 그동안 잘 생각해 봤는데 이런 관계는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원하던 게 아니야? 허.”세찬은 비웃으며 손을 뻗어 민아의 턱을 들어 올렸다.“설마 강씨 집안 사모님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와 조롱하는 듯한 눈빛을 보며 민아는 자신이 직접 그런 말을 뱉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냥 그만두고 싶어요. 계약기간은 3년이었고 이제 몇 달 안 남았는데 3개월 휴가까지 준다고 하셨으니 기간이 다 된 것 같아서요.”“그만둔다고? 왜, 비서 일 그만두고 다시 영업이나 하려고?”민아는 세찬의 비열한 태도에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2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좀 쉬고 싶어요. 강 대표님, 그만해요 우리.”“김 비서, 계약 위반하면 위약금 내야 하는 거 알고 있나?”세찬은 민아가 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말을 하면 긴장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민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알아요, 얼마든 낼게요.”“네가 내야 할 금액이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일했던 만큼이라면? 시간 낭비한 셈인데.”민아의 속눈썹이 살짝 흔들리자 세찬은 민아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는 것처럼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돈을 그렇게 좋아하는 네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지. 얌전히 유급 휴가 보내면 보너스를 두 배로 줄게, 어때? 이번엔 내가 조심해서 더는 너 임신해서 고생하는 일 없게 할게.”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세찬을 바라보았는데, 세찬은 그 눈빛이 낯
떠날 계획을 마친 민아가 어떻게 준비를 안 할 수 있겠나.민아는 나중에 화가 난 세찬이 계좌를 동결할까 봐, 모아두었던 돈을 개인적으로 조금씩 이체하거나 사람을 찾아 현금으로 바꾸었고, 고향 집에 송금하는 등 잔액을 줄이고 있었다.세찬은 매우 호탕하게 지아의 계좌로 6억을 보냈다.민아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하룻밤에 6억이라니, 내 가치가 꽤 높네.’세찬은 이런 쪽에 요구가 높았다. 민아를 고를 때도 진작 민아의 몸 사이즈를 재어보고 며칠 동안 테스트해 보고 나서야 손을 대기 시작했다.겉으로는 잘 포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껍질을 벗겨낸 후 세찬이 얼마나 악마처럼 지저분한 사람인지 민아만이 알고 있었다.그래도 민아가 임신했다는 걸 안 뒤로 양심껏 건드리지 않았고 따지고 보면 몇 개월이 지난 시간이었다.세찬이 조급하게 침대에 눕히자 민아는 다소 불편했다.“아직 안 씻었는데...”“하고 씻어.”민아의 머리카락이 새하얀 이불 위에 흩어져 있었고, 세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민아가 침대에서 자신에게 잘 맞춰줬는데 지금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아팠고 손의 움직임마저도 훨씬 부드러워졌다.“그동안 다른 사람 만난 적 없어요?”민아가 묻자 세찬은 그런 질문이 불만스러운 듯 차가운 눈빛으로 민아를 훑어보았다.“아무나 내 침대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세찬은 반지를 다시 민아의 손에 끼워주며 손가락 끝에 입맞춤을 했다.대단한 집안도 아니고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지만 다리만큼이나 그 손이 설명할 수 없이 세찬을 매료시켰다.“악보 기억나?”세찬은 입술을 귓불로 옮기며 물었다.미친!민아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 미친 남자는 1년 전부터 민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아무런 기초도 없었던 민아는 매일 잠들기 전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악보까지 외우게 했다.임신한 동안 겨우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세찬이 또 이런다.“아니요, 기억 안 나요.”“휴가 줄 테니까 10곡만 외워.”“알았어요.”민아
민아가 유난히 협조적이어서 세찬의 마음은 묘했지만 차마 이상한 점을 보아내지 못했다.두 사람은 점심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일어나 밥을 먹었고, 세찬은 민아와 오후 내내 함께 있으면서 마음이 그렇게 평온했던 적이 없었다.비서가 거듭 재촉해서야 세찬은 그곳을 떠났다.세찬이 떠나기 전 민아는 헬기 앞에서 아쉬운 듯 세찬의 허리를 껴안으며 배웅하러 다가왔다.“그럼 언제 또 날 보러 올 거예요?”“뭐야, 떠나기도 전에 또 보고 싶어? 어젯밤에 충분하지 않았나?”세찬이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민아는 진중한 얼굴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런 세찬을 본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원칙적인 도윤과는 달리 세찬은 흥미가 당기면 사업 얘기를 나눌 때도 테이블 밑으로 자신의 다리에 손을 얹는 남자였다.“세찬 씨, 가서 내 생각할 거예요?”민아가 갑자기 묻자 세찬은 단순히 애교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어 민아의 코를 만졌다.“밤이면 유난히 생각나지.”세찬은 늘 민아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지만 민아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전 생각 안 할래요, 너무 힘들어.”세찬이 뭐라 말하려는데 비서가 다시 재촉했다. 그는 오늘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데 더 지체하면 늦을 게 뻔했다.세찬은 민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5일, 길어도 5일 안에 올게. 선물도 가져올 테니까 밤낮으로 내 생각해. 반지는 절대 빼면 안 돼.”“알았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대표님.” 민아는 세찬의 품에서 물러나 안전한 곳에 섰다.왠지 그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세찬은 마음에 걸렸다. 마치 민아가 일부러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세찬은 별다른 생각 없이 헬리콥터에 올랐다.헬기는 떠났고 세찬은 민아가 자신이 떠난 방향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작은 점이 세찬을 매일 생각나게 했다.세찬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민아는 차갑게 식어버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드디어 갔네.”
교신 후 그날 밤, 일행은 섬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섬에는 총 352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지아는 오래전에 데이터를 수집해 두었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지아는 아이를 데리고 산 뒤편 해안가로 갔고, 바닷바람이 불자 민아는 소름이 돋았다.이곳은 지아가 시체를 매장한 곳이고 그동안 해부 후 묻힌 시신은 족히 30구는 되었다.이 바람마저도 꽤 음침한 느낌에 민아는 목뒤가 서늘해졌다.이러한 이유로 다른 일꾼들도 감히 산 뒤편으로 올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곳이 탈출하기에 가장 편리한 장소였다.민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너 혹시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지아야? 예전보다 훨씬 더 계산적으로 행동하잖아.”“난 너무 많이 실패했어. 이번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엄마,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너희들 삼촌 보고 싶지 않아? 엄마가 데려다줄게.”이미 전효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두 아이는 전효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삼촌! 보고 싶었어요.”해경은 한달음에 달려갔고 전효도 아이들이 그리운 듯 품에 꼭 껴안았다.소망도 조용히 전효를 부르며 다가갔다.전효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민아가 지아의 팔을 슬쩍 건드리며 물었다.“대체 밖에서 다른 남자는 언제 찾은 거야? 비밀스럽게 구는 걸 보니 설마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라도...”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소망은 갑자기 손을 뻗어 전효의 가면을 벗기고 볼에 부드럽게 뽀뽀했다.“삼촌...”지아는 전효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얼굴에 흉터나 무슨 자국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작 얼굴은 깨끗하고 입체적인 이목구비에 잘생겼다.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전효와 도윤이 조금 닮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전효는 재빨리 가면을 썼다.“얼른 가자, 늦으면 문제 생길 수도 있어.”그제야 지아는 정신을 차리며 밤에 희미한 불빛 때문에 잘못 본 거라 생각하며 민아의 손을 잡고 보트에 올랐다.지아는 이 섬에 촘촘히 설치된 카메라 외에도 작은
도윤의 온몸이 떨리고, 가슴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자신의 손과 눈을 적시며 전림이 죽었던 순간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랐다.말도 안 돼!“아니, 전림이 아니야. 전림은 내 품에서 죽었어, 확실해.”그 총알이 전림의 심장을 관통했고 전림은 죽은 게 확실했다.도윤은 남자의 가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전효야. 내 짐작이 맞다면 전림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그놈일 거야!”“세상에, 어떻게 이런 인연이. 전림에게 형이나 동생이 있는데 왜 우리가 몰랐죠?”“그건 전씨 가문의 문제야. 섬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서 저들을 막아!”도윤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지아야, 미안해”이번에는 정말 놓아주려고 했는데. 이 남자의 정체가 너무 미스터리하고 게다가 전림의 형제라면 도윤은 더 이상 상대를 밖에 둘 수가 없었다.순식간에 섬에서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민아는 당황한 나머지 긴장한 얼굴로 하마터면 배에서 떨어질 뻔했다.“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릴 찾은 거지? 지아야 어떡해? 우리가 다시 잡히면 개도윤이 나까지 철창에 가두지 않을까?”“징징거릴 시간 있으면 얼른 뛰어. 전효 씨, 속도를 올려요.”지아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두툼한 외투로 감싼 채 품에 꼭 안아 보호했다.전효가 스피드를 올리자 보트가 빠르게 달렸다.지아가 민아를 달랬다.“걱정 마, 우리가 탈출한 걸 들키더라도 한동안은 우리 위치를 모를 테니까.”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지아는 머리 위에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헬기는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지아의 머릿속에는 도윤이 자신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만 떠올랐다.“지아야, 너희 두 사람 쌍으로 정말 대단하다! 네가 충분히 똑똑한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이 더 똑똑한 줄 몰랐어. 끝났어, 끝났어. 이번엔 절대 못 탈출할 거야. 잡히면 돼지우리에 넣는 거 아니야? 게다가 넌 네 애인도 있잖아. 차라리 내 애인이라고 할게.”지아는 할 말을 잃었다.“쓸데없는 말 해 줘서 참 고맙다.”민아가 히죽 웃었다.“
보트를 정박한 전효는 곧바로 지아의 품에서 두 아이를 안고 다급하게 말했다.“자, 따라와!”지아는 민아의 손을 잡고 섬으로 오른 뒤 전효를 따라 미리 파놓은 통로로 들어갔다.“당장은 놈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여기 계속 숨어 있다가 섬을 포위하면 잡히지 않겠어요?”전효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내 짐작이 맞다면 한대는 공중에서 내려올 거고 다른 한 대는 대기할 거야. 이런 헬기는 연료가 3시간밖에 버티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섬을 포위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고 지금 섬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이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우리를 찾을 방법이 없어. 두 시간만 더 버티면 돼.”민아는 전효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누구신데 정말 대단하세요. 모든 걸 꿰뚫어 보시는 군요!”“전효라고 합니다.”전효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여러 사람을 데리고 물과 음식이 있는 거대한 지하 동굴로 가더니 지아에게 병 하나를 건넸다.“물 좀 마시고 좀 쉬어. 앞으로 매일 이동해야 하니까.”“고마워요.”두 아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큰 반응이 없었다.전효의 말대로 섬 전체는 아무도 개발하지 않아 식물들로 가득했고 걸어서 섬 전체를 돌아다니려면 사흘이나 걸리는 데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사람을 찾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민아는 지아에게 기대어 잠을 청했고, 전효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역시나 머리 위 헬기는 사라진 상태였다.감시를 피해 바다로 도망치자 도윤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지아는 섬을 떠나고 나서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평온함을 느꼈다.하늘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밤새 달려온 끝에 바다 위로 떠오른 일출은 정말 아름다웠다.지아는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드디어 자유를 찾았어!”몇 년이 지난 지금, 지아는 드디어 도윤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민아 역시 지아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꽉 껴안았다.“지
두 아이도 머리를 내밀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나...”지아는 민아의 품에 기대어 작은 목소리로 숨을 헐떡이며 온몸에 힘이 빠진 듯했다.민아의 표정이 어두웠다.“지아야, 너 그전까지 매일 해부해도 토하지 않았잖아. 설마, 최근에 개도윤이랑 잔 적 있어? 이 증상만 보면 꼭... 임신한 것 같잖아.”지아의 표정이 굳었다. 요 며칠 도윤을 돌봐줄 때도 둘은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고 시간적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혹시...지아는 강욱과 배에서 보냈던 밤을 떠올렸다.지아는 다음 날 A시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하빈에게 피임약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고 임신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아니, 임신은 아닐 거야.”지아의 손이 약간 떨렸다.“약 먹었어.”“약? 지아야, 피임약으로만 100% 피임이 가능한 건 아니야. 생리했어?”지아가 계산을 해보니 마지막으로 생리를 한 것이 두 달 전이었다.줄곧 생리가 규칙적이지 않았기에 개의치 않았던 지아는 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워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아니야. 내가 임신했을 리 없어!”민아는 지아의 충격과 두려움에 찬 표정을 보며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지아야, 걱정하지 마. 밤새 급하게 이동하느라 배가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의사 선생님도 너 다시 임신하기 힘들다고 했었잖아. 괜히 겁먹지 마.”지아의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머릿속엔 정말 강욱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지아는 강욱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날 밤은 그저 사고였다.지아는 가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도중에 몇 개의 섬을 지났지만 임신 테스트기를 파는 곳은 없었다. 역겨운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점점 더 불안해졌다.민아도 지아의 병이 다시 발작한 건 아닌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임신이든 병이든 어느 쪽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지아는 병이 발작하면 단순히 토하고 메스꺼운 것이 아니라 위가 아프다는 걸 잘 알았다.이런 증상은 지난 임신 때 겪었던
주원을 보고 너무 놀란 지아는 잔뜩 들떠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주원아,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누나 찾기 정말 힘들었는데 다행히 전효 형한테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됐네요.”“응,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지아는 한탄했다.“누나, 병은 좀 어때요?”지아는 가발을 벗었다.“상반기에 재발했을 때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예전에 네가 준 약과 항암치료로 잘 이겨냈어. 지금은 항암 부작용도 많이 줄었고 머리카락도 자라기 시작했지만 종양은 여전히 있어.”남자보다 더 짧은 지아의 머리를 보는 민아의 눈에는 아픔이 가득했다.“지아야, 고생 많았어.”“다 지나간 일이야. 그때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내 명이 긴가 봐. 주원아, 항암약물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진전이 있어?”“지아 누나, 이번엔 누나 병 완치해 주려고 찾은 거예요.”완치라는 말을 듣자 지아의 눈은 순식간에 밝아졌고,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세계의 의료 수준이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암은 여전히 인류가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였다.아무리 좋은 의사도 100%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네, K국에 가서 반년 내내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효과가 있는 약을 찾았어요. 다른 암은 100% 낫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위암은 내가 배합해 준 약대로만 먹으면 반년 안에 암세포 수치가 정상으로 되고 종양이 사라지며 몸의 수치도 서서히 전부 정상으로 바뀔 수 있어요.”지아는 감격했다. 몇 년 동안 이 병으로 깊은 고통을 받아왔고, 단기간에 또다시 심각한 발작이 오면 이를 억제하기 위한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었기에 결국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민아도 외쳤다.“신의네! 특허 내지 않을래요? 제가 투자해서 함께 연구개발에 매진하면 분명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주원은 옆에서 잔뜩 들떠있는 여자를 바라보았고 지아는 이마를 짚었다.“흠, 여기는 내 절친 민아고 이쪽은 주원이라고 해.”“안녕하세요.”“만나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