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1481 - 챕터 1490

1571 챕터

제1481화

최지용은 잠시 멈칫하며 백인서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아저씨가 씩 웃으며 따뜻한 물을 좀 더 가져오겠다고 말하고는 눈치 있게 자리를 피했다.산속의 바람엔 이미 한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런 쓸쓸한 분위기는 백인서가 깊이 묻어둔 좋지 않은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저는 커서 도망쳐 나왔어요. 그 뒤로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고요.”백인서는 조용히 말했다.“이 산골에 교사로 왔지만, 저 산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산 같아요.”“괜찮아.”최지용은 백인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그런 곳은 미련 둘 만한 데가 아니잖아. 게다가 친아버지도 아니고.”“지용 씨.”백인서는 고개를 들어 최지용을 바라보며 말했다.“저 산을 못 넘는 것처럼... 제 과거도 평생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거겠죠?”최지용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밝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백인서의 물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인서야, 사실 인생이란 꼭 모든 걸 다 넘어가야 하는 게 아니야. 우리는 여기 더 머물지 않을 거고, 이 산은 오성까지 따라오는 것도 아니잖아. 아마 이번이 평생, 이 산을 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그러니 도망치는 것도 마냥 나쁜 건 아니야.”최지용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전쟁 중엔 이탈 병이 있으면 안 되지만, 내 곁에선 네가 언제든 원할 때 도망쳐도 괜찮아. 나도 함께 도망칠 수 있고.”“지용 씨...”“넘지 못하는 산이라도 괜찮아. 내가 늘 곁에 있을 테니까. 넘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못 넘는다면 내가 네 어린 시절의 상처가 다시 떠오르지 않게 평생 지켜줄게.”백인서는 입술을 깨물며 최지용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어쩌면, 어린 시절의 고생이 많았기에 하늘이 최지용을 보내 자신을 구해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과거의 그림자를 정말로 완전히 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자, 이제 그만 생각해.”최지용은 가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이틀 후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야 해. 마지막으로 인원을 점검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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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2화

영미는 더 큰 창피를 당하기 전에 애써 균형을 잡으며 간신히 일어섰다.백인서는 영미를 힐끗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무 말 없이 민박집 안으로 들어갔다. 최지용이 따라가려던 순간, 영미가 다가와 최지용을 잡아끌었다.“지용 오빠, 제 말 좀 들어줄 수 있어요?”최지용은 영미의 손을 피하며 일정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야?”“오빠... 왜 저한테 그렇게 냉정하게 굴어요?”영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어릴 땐 우리 잘 지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영미야.”최지용은 진지하게 말했다.“어릴 적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나도 그때를 생각해서 이 정도로 대하는 거야. 더 차갑게 대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지용 오빠!”“난 여자 친구가 있어. 내 아내가 될 사람이고 내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이야.”최지용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다른 여자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 그건 여자 친구에 대한 충성이기도 하고 너에 대한 배려이기도 해.”영미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영미의 기억 속에서 최지용은 어릴 때부터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나무토막 같은 사람이었다. 영미는 자신이 최씨 집안의 며느리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런데, 최지용에게 이제 백인서가 있었다.영미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 채 간청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용 오빠, 오빠가 여자 친구를 많이 좋아하는 건 알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몇 년간의 우정을 한 번에 없던 일로 할 순 없잖아요?”“나도 적당한 선을 지킬 줄 알아.”“만약 제가 아프면, 돌봐 주실 거예요?”최지용의 눈이 어두워졌다.“무슨 일 있어?”“저... 요 며칠 너무 힘들어요.”영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괴로운 표정으로 최지용을 바라보았다.“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 해서 그런지 계속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요. 게다가 이런 낡은 숙소에선 잠을 잘 수가 없어요!”그때 마침 민박집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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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3화

“하지만...”영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지용은 이미 성큼성큼 민박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영미는 발을 쾅쾅 구르며 화를 내보았지만, 그저 속만 상할 뿐이었다.아무 소득 없는 대화를 마친 영미는 오후에 학교로 가서 영미에게 자리를 양보할 아이를 찾기로 했다.하교 시간, 학교에는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몇몇 청소 당번 아이들만이 교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낡은 건물과 부족한 교구들이지만, 여자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였다.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며 다가올 여정을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비행기를 타고 큰 도시로 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아이들은 여전히 침착해 보였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손을 맞잡으며 열심히 공부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인생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영미는 그런 아이들을 지겨운 듯 흘겨보았다.이 여자아이들은 명단에 올라와 있는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이었는데 학교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었다. 만약 이 아이들을 전용기에 타지 않는다면 최지용과 백인서가 분명히 눈치챌 것이다.누굴 골라야 하지?영미는 작고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작은 자갈에 걸려 짜증만 쌓였다.그때, 영미는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는 한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었다.영미는 문득 카메라로 이 남자아이를 찍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카메라를 뒤적이니, 아니나 다를까 사진 속에 그 아이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아이답지 않은 싸늘함이 서려 있어 또래 아이들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아마도 가정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사람들과 어울리기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아이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개 이런 환경의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고 값진 것을 본 적이 없어 설득하기가 쉬웠다.영미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막대로 땅 위의 개미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영미는 옆의 돌에 앉아 웃으며 말을 걸었다.“안녕?”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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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4화

영미는 이 남자아이의 반응에 한 방 맞은 듯 말을 잃었다.영미는 산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진해서 쉽게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하지만, 이 아이는 마치 깊은 산속에서 자란 여우 같았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영미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기운을 잃지 않고 물었다.“너... 그냥 그 자리를 나한테 양보해 줄 수 없겠니?”“뭐라고요?”남자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영미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남자아이를 설득했다.“꼬마야, 누나가 무리한 부탁을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누나 좀 도와줄래? 손해 볼 것도 없잖아. 그리고 오성에 가게 되면 누나가 널 잘 돌봐줄게!”“돌봐준다고요?”남자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어떻게요? 돈을 줄 건가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산속의 아이들은 세상을 잘 몰라서 결국 돈에 끌리기 마련이다.“당연하지!”영미는 자신 있게 말했다.“많이 줄 거야! 오성에서도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많이라면 얼마나요?”“그건...”“200억은 되나요?”영미는 말문이 막혔다.남자아이는 입꼬리를 올려 비웃듯이 미소를 지었다.“200억쯤이야 당신네 부자들에겐 큰돈도 아니겠죠? 많이 준다면서, 200억도 아깝나요?”영미는 남자아이한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깊은 산속에 이런 아이가 있을 줄은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200억이 영미에게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런 아이가 돈의 개념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아이의 조상들은 대대로 가난하게 살아서, 2억 원만 있어도 대대손손 먹고 살 걱정은 없을 터였다.“누나, 왜 말이 없어요?”남자아이는 영미에게 천진한 목소리로 다가섰다.“자리 바꾸고 싶다면서요? 그 자리가 그 정도 가치도 안 되나요?”“너...”“그렇다면, 안 바꿀래요!”남자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꼬마야.”영미는 생각에 잠기며 다시 말했다.“지금 당장 그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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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5화

“돈 조금 쥐여주면서 저 속이려고 했어요?”남자아이는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몰라도, 얻으려면 크게 얻어야 한다는 건 알아요!”말을 마친 남자아이는 개미집을 발로 짓밟아 무너뜨리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수많은 개미가 흙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영미는 그 아이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한참 동안 강한 햇빛 아래 서 있던 영미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당직 선생님들이 교실 문을 확인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작은 단층집에서 나오며 영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혹시... 영미 선생님 맞으시죠? 기억해요, 배 선생님이랑 같이 오셔서 우리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어 주셨잖아요!”영미는 창백한 얼굴로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영미 선생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오셨나요?”산골 사람들은 소박하고 따뜻했다. 교장 선생님은 백인서가 아이들을 오성으로 데려가 공부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백인서 일행을 모두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영미의 손을 붙잡고 고마움을 연신 표했다.“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들이 이 산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이곳에선 고등학생이 희귀한 인재라죠...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정말...”“교장 선생님!”영미가 교장 선생님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제가 이 시간에 온 건... 학생 명단을 다시 확인하려고 온 거예요.”“네?”“이제 곧 떠나잖아요.”영미는 핑계를 대며 말했다.“배 선생님이 명단을 확인하라고 하셔서요... 한 번 더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교장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교장실 문을 다시 열었다.“명단과 사진이 여기 있습니다.”교장 선생님은 종이 뭉치를 꺼내며 말했다.“영미 선생님, 천천히 확인하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고요!”영미는 종이를 받아 대충 흉내를 내며 사진과 이름을 맞추던 중, 그 남자아이의 사진을 발견했다.“이 아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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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6화

“영미 아가씨, 여기 계셨군요!”그때 멀리서 경호원이 달려왔다.이들은 최지용이 영미를 보호하기 위해 붙여둔 경호원들이었다.최지용이 아무리 영미를 달갑지 않게 여겨도 이 산골에서 사고를 당하길 바라진 않았다. 그래서 최씨 집안의 경호원들이 도착하자마자 절반을 영미에게 붙여 그녀의 안전을 지키게 했다.“영미 아가씨,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잠깐!”영미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경호원들은 발길을 멈추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 영미가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날이 늦었지만, 아직 찍어야 할 사진이 몇 장 남아서요.”“사진 찍으시려면 저희가 함께하겠습니다.”“차는 가져왔나요?”경호원이 학교 밖의 흙길을 가리켰다. 거기엔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좋아요, 산 너머로 가서 사진을 찍을 거예요. 차로 가자고요!”...어둠이 깔리고 산길은 매우 험했다. 운전사는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우고 속도를 조절하며 조심스레 나아갔다.“잘 따라가고 있나요?”영미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신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짜증스럽게 옆 좌석에 던져버렸다.“계속 뒤따라가고 있습니다.”운전사가 대답했다.“영미 아가씨, 이 산길에서는 차보다 걸어가는 게 더 빠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우리보다 빠른 겁니다...”“입 다물어요!”영미는 운전사를 노려보며 말했다.“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가요! 만약 놓치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네, 네!”운전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영미 아가씨, 전조등을 켜면 안 될까요? 이러다 큰일 날 수도 있어요...”“전조등을 켜면 그 애가 눈치채지 않겠어요?”“전조등 없이 운전하니 멀리 떨어져서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입 다물어요!”갑작스러운 요철에 차가 덜컹거려 영미는 거의 자리에 엎어질 뻔했다.간신히 이웃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열 시가 가까웠다.덩치 큰 경호원들도 모두 안색이 창백해졌다. 산길이 위험천만한 데다 영미가 전조등도 켜지 못하게 했다. 익숙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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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7화

한 늙은 남자가 손에 낡은 빗자루를 쥐고 사납게 정승우를 노려보고 있었다.“그 계집애 때문이지? 그렇지? 듣자니, 그 마을에 배 선생이 왔다더라... 오성에서 왔다고? 처음엔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네가 한 번 수업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미친 듯이 매일 산을 넘으며 거기 가더군!”“그 계집애 때문이지? 맞잖아? 네 입으로 말해, 맞지?”정승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마치 돌처럼 굳어 있었다.정대명이 빗자루를 휘두르며 정승우를 내려쳤다. 마른 빗자루 자루가 정승우에게 내리치며 먼지가 사방으로 튀었다.영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였다. 마치 자신이 소리라도 내면 그 빗자루가 자신의 몸에 내리칠 것 같았다.“그만해요!”정승우가 큰 소리로 외치며 돌아서서 악에 받친 눈빛으로 정대명을 쏘아보았다.“난 그저 오성에 가고 싶어요! 공부하고 싶고, 제일 좋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요! 내가 잘못한 게 뭐예요? 잘못한 건, 이 집에서 당신 아들로 태어난 것뿐이에요!”“이 자식이...”“아빠는 나만 때린 게 아니라 언니도 때렸잖아요!”정승우는 울부짖듯 말했다. 흰자에 핏발이 선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 헤매는 어린 늑대처럼 보였다.“내가 어렸다고 모를 줄 알아요? 아빠가 언니를 어떻게 때렸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그래... 그 팔자 사나운 년이 쓸데없는 참견을 했네!”정대명은 정승우의 코앞에 손가락을 들이밀며 손을 떨었다.“인신매매꾼의 딸 주제에 우리 집안을 망칠 속셈이었어! 그 백홍이라는 어미가 매달 돈을 보내니까 그나마 밥 먹여주고 내버려둔 거라고!”“백홍이 보내준 돈, 다 도박하고 술로 날려 버렸잖아요. 제가 공부할 돈도 다 써버렸잖아요. 당신은 아버지 자격조차 없어요!”“이놈이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정대명은 다시 한번 맹렬히 정승우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영미는 그 소리에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정승우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꿋꿋이 입술을 악물고 서 있었다. 정승우의 눈빛은 불타오르는 용암처럼 격렬했고 모든 걸 무너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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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8화

최지용이 백인서 옆에 앉아 백인서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미안해요.”백인서가 최지용의 귀에 속삭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약간 멋쩍게 덧붙였다.“아이들이 처음으로 먼 곳에 가는 거라 그런지 무척 들떠 있네요.”“뭐가 미안해?”“그게... 아무래도 지용 씨 비행기 안이니까요.”“이제부터는 네 비행기이기도 해.”최지용은 다정하게 백인서의 코를 비비며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이상한 냉기가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구석에 앉아 있던 조용한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흘깃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그때 집사가 다가왔다.“도련님, 비행기 점검이 끝났습니다. 이제 이륙 준비하겠습니다.”“그래요.”최지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영미에게 항공권을 예매해 줬나요?”“영미 아가씨는...”집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경호원들 말로는 영미 아가씨가 산에서 며칠 더 머물고 싶다고 하더군요.”“뭐라고요?”최지용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도 거기 더 있고 싶어 한다고요?”“사진을 몇 장 더 찍어서 나중에 사진전을 열 계획이라며...”최지용은 의아해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영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영미가 더 머물고 싶다면 더 머물게 두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돈도 있고 경호원도 있으니 특별히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백인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상 풍경은 점점 작아졌고 백인서는 이곳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어쩌면 앞으로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백인서는 머리를 최지용의 어깨에 기대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 눈을 감았다....이번 공익 프로젝트의 성공은 조 회장을 시장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했다.사위인 권욱도 그를 도와 물심양면으로 협력했으며 각종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조순영의 손을 잡고 딸을 안고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들은 사이좋은 부부이자 자상한 아버지와 귀여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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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9화

“햇볕에 타서 그래요.”“어쨌든, 거기서 고생 많이 했을 텐데.”백인서가 웃음을 터뜨렸다.강소아는 늘 백인서가 곁에 없으면 고생할까 봐 걱정했다. 마치 백인서도, 강소아가 곁에 없으면 누군가 강소아를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최군형과 최지용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묘한 이해가 담긴 미소를 주고받았다. 강소아와 백인서는 자신들을 그냥 공기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다.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군형과 강소아는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별처럼 둘러싸여 사라졌고, 최지용도 바쁜 응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백인서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다시 구석 자리로 돌아갔다.그때, 누군가가 샴페인 한 잔을 내밀었다.백인서가 올려다보니, 취기가 오른 듯 얼굴이 붉어진 권욱이 백인서 앞에 서 있었다.권욱은 넥타이를 살짝 풀며 발코니 쪽을 가리켰다.백인서는 권욱을 따라 발코니로 나섰다. 넓고 조용한 발코니는 왁자지껄한 연회장과는 다른 세상이었다.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고 샴페인은 달콤한 향을 남기며 목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렸다.백인서는 고개를 숙이며 드문 평온함을 즐기고 있었다.“왜 안에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여기 나온 거예요?”권욱은 잠시 백인서를 쳐다볼 뿐 굳이 대답하지 않으려는 표정이었다.사실 대답하지 않아도 백인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었다.권욱은 조순영과 인생을 함께할 마음이 정말 없는 걸까? 조순영은 그에게 충분히 어울리는 좋은 아내이고 훌륭한 어머니였다.“이번 일... 고마워.”잠시 침묵하던 권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맙긴요.”백인서는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저도 개인적인 바람이었어요.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았으면 했거든요.”“장인어른께서 참 고마워하셔. 너를 자신의 귀인이라고 말하셨어. 조만간 기회 봐서 자리 마련할게.”“조 회장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백인서는 권욱을 바라보며 말했다.“다만... 그분이 선거 연설에서 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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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0화

백인서는 순간 멍해졌다. 기억의 판도라 상자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열리는 듯했다. 백인서는 산골을 떠나며 과거를 함께 묻어두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 소년은 지울 수 없는 그림자처럼, 백인서를 그 시절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었다.백인서는 급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흐릿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정승우... 아니, 그럴 리가 없다.그 아이의 이름은 분명 엽이었었다.그 남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도박에 져서 돌아와 막 출산한 아내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이 아이는 빚을 갚으러 온 아이라고, 엽이라고 불렀다.그렇게 그 아이의 이름은 엽이가 되었던 거다.그러니... 정승우는 다른 집 아이일 것이다.그래, 그래야만 한다.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씨 성을 가졌으니, 아마 다른 집 아이일 것이다.백인서는 두 걸음 물러서며 옷깃을 움켜쥐었고 손끝이 살짝 떨렸다.정승우의 눈에 있던 적의는 사라지고 어딘가 부드러운 감정이 배어 있었다. 그의 거친 얼굴선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색이었다.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이미 자신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운 것일까?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 시절의 기억이 백인서에게 좋을 리가 없으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정승우는 백인서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가 이내 물러섰다. 정승우는 조용히 백인서를 바라보았고 눈엔 밝은 달빛을 담고 있었다. 정승우는 이내 가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선생님, 제가 수업에 자주 안 나왔으니 기억하지 못하시는 게 당연해요.”“아... 그래.”백인서는 손가락을 천천히 풀며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수업에 잘 나오지 않은 거야?”“집이 가난하고 학교가 멀어서요. 그래서 가끔 안 나갔어요.”“이제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해.”“네, 그럴 거예요.”정승우는 미소 지었다.“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뭐든 최선을 다할 거예요.”백인서도 정승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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