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1491 - 챕터 1500

1571 챕터

제1491화

“왜 나만 보면 도망가려고 해? 두려울 게 없다, 이거야?”“엄마...”“My son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 이 배은망덕한 녀석!”백인서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어머님, 안녕하세요.”표아정은 머리를 다듬으며 마치 화려한 공작새처럼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백인서를 힐끗 쳐다본 후, 몇 초 지나서야 대답했다.“응, 너도 잘 지냈니?”그러고는 백인서의 손가락을 보더니 아무 장신구도 없다는 걸 알아챘다.최지용은 어머니의 반응을 보고 재빨리 눈치를 채고 서둘러 변명을 덧붙였다.“엄마, 인서가 반지를 안 낀 건, 반지가 조금 커서 그래요. 인서 손가락이 가늘어서 오늘 같은 자리엔 잘 안 어울리죠. 게다가 인서가 그 반지를 무척 아껴서 서랍에 보관해 두고는 아무 때나 꺼내지도 않아요!”표아정은 아들을 한 번 더 쳐다보며 입을 삐죽였다.“내가 뭐랬니? 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잔뜩 떠드네.”“그게...”“알았어, 너희 젊은 사람들은 그런 디자인을 안 좋아할 수도 있겠지.”“아니에요, 어머님!”백인서가 황급히 말했다.“저는 정말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안 들면 이 녀석한테 새로 사달라 해!”표아정이 웃으며 말했다.“얼마든지 사달라고 해!”최지용과 백인서는 동시에 놀란 듯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표아정은 백인서의 손을 잡고는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아끼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역시 우리 인서가 제일 훌륭해! 이번 공익 프로젝트도 아주 성공적이었어. 비록 진짜 기획자는 권욱이지만, 네가 그 뒤에서 큰 역할을 했으니, 공이 적지 않지.”“어머님, 과찬이세요.”“그렇게 잘한 거예요?”최지용은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엄마 예전에 이런 거 싫어하셨잖아요...”“뭘 싫어했는데? 난 너 같은 철부지가 더 싫어!”표아정을 최지용을 째려보며 말했다.최지용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멀리서 최군형은 이 장면을 보고는 입 모양으로 최지용에게 말했다.“가족 전통이지!”부모들은 처음엔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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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2화

백인서는 문을 활짝 열었다.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승우이었다.“너였어?”백인서는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여긴 왜 온 거야?”정승우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눈빛만 깊어졌다.그때 강소아가 나와서 정승우를 보고는 잠시 놀라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백 선생님이 데려온 학생이야? 오늘 밤 이런 자리 처음이지? 밥은 잘 먹었어?”정승우는 멍하니 강소아를 쳐다보다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 예쁜 누나를 본 적이 없었다.정승우는 세상에서 누나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정승우의 시선이 다시 백인서에게 향했다. 문득, 그의 누나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아름다움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천사 같다는 점이었다.“얘!”백인서가 정승우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뭘 그렇게 보고 있어?”“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정승우는 고개를 급히 숙였다. 이 나이 또래의 소년에게도 이미 부끄러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그렇게 쳐다본 게 실례인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 기분이었다.“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잖아.”백인서가 물었다.“여기 왜 온 거야?”“저는...”“여기는 모유 수유실이야. 이 표지판 못 봤어?”정승우는 더욱 당황하며 작은 손으로 옷깃을 꽉 쥐었다.그 말을 하고 나서 백인서도 조금 후회했다. 평생 산골에서 자란 아이가 모유 수유실이 뭔지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백인서는 산속에서 여인들이 아이를 돌보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공공연히 아이에게 젖을 먹었고 사생활 같은 건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개는 작은 숲이나 나무 그늘에 들어가 조용히 수유할 뿐이었다. 그런 폐쇄적이고 낙후된 환경에서 여성은 단지 출산과 양육을 위한 도구로 여겨졌을 뿐이었다.강소아는 정승우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고 다가가 정승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작은 어깨를 곧추세우도록 도와주었다.“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키가 안 커!”강소아는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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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3화

“아까...” 백인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먼저 노크해야지, 바로 문손잡이를 돌리면 안 돼.”정승우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이런 것도 배워야 해.” 백인서는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 선생님 사무실에 가든 친구 기숙사에 가든 항상 먼저 노크를 해야 해. 바로 문을 여는 건 예의가 아니거든, 알겠지?”정승우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말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아까 그건, 정승우가 아니었다.십여 분 전, 정승우는 시끄러운 연회장에서 빠져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조용한 복도로 나왔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 방의 문손잡이를 조심스레 돌리는 모습을 발견했다.정승우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주 경계심이 강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자 곧장 자리를 떴다.그제야 정승우가 그곳으로 걸어갔고 마침 방 안에서 ‘누구세요?’하는 백인서의 목소리가 들려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왜 또 말이 없어?” 백인서는 약간 답답한 듯 말했다. “방금 내가 한 말 잘 기억했지?”정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너는...”백인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정승우는 빠르게 돌아서서 걸어갔다.백인서는 정승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콧물을 흘리면서 백인서에게 업히려 하던 작은 소년의 모습이 불쑥불쑥 나쁜 기억들과 함께 떠올라 백인서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백인서가 그 산골 마을을 떠날 때, 엽이는 겨우 세 살이었다. 정대명이 평생 기다린 아들이었지만, 그조차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지 못했다.정대명은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도박에서 지거나 술에 취할 때면 먼저 딸을 때리고 그 다음엔 아들에게 손을 대곤 했다. 그럴 때면 백인서는 어린 엽이가 매를 맞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동생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빗자루와 회초리가 백인서의 몸에 가차 없이 내려쳤지만 백인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더는 견딜 수 없던 백인서는 오랜 시간 계획을 세운 끝에 어느 안개 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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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4화

그 말을 들은 정대명은 눈이 번쩍 뜨였다.“영...영미 아가씨...”정대명은 어쩔 줄 몰라 손발을 허둥대며 놀라움과 탐욕이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영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배로 보면 저의 윗분이신데, 이 정도는 후배가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라 생각해 주세요.”정대명은 입맛을 다시며 도시에서 온 술맛이 얼마나 특별할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영미는 타이밍을 맞춰 정대명에게 음식을 더 담아 주며 웃으며 권했다. 정대명의 경계심이 조금씩 풀리면서 본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예의라곤 없는 태도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고 입맛 다시는 소리를 거침없이 내고 있었다.영미는 정대명의 먹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다.몇 잔의 술이 들어가자, 정대명의 경계는 풀리고 태도는 한결 느긋해졌다. 정대명은 가슴을 두드리며 영미에게 호언장담했다.“영미 아가씨, 아가씨는 내게 두 번째 부모님이나 다름없다니까! 하하하... 내가 무식해서 말을 잘 못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까!”“정말요?”바로 영미가 기다린 대답이었다.“진짜지, 진짜!”정대명은 하늘에 맹세하듯 손을 올리며 술기운에 취해 말을 더듬었다.“영미 아가씨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데, 내가 아가씨 말을 안 들으면... 응? 내가 그러고도 사람이야?”“좋아요.”영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사실 특별히 부탁드릴 건 없고요, 다만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보고 싶어요.”“뭔데?”“백홍이 노구예요?”정대명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갔고 술기운이 반쯤 날아간 듯했다.정대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영미를 쳐다보았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는 백홍 그 빌어먹을 년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혹시 백인서가 이름을 바꾸고 복수하러 찾아온 걸까?이렇게 생각한 정대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식탁을 뒤집을 듯한 기세였다.영미는 깜짝 놀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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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5화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세요, 알겠죠?”정대명은 고개를 재빨리 끄덕이며 대답했다.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목숨이지만 낯선 이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영미는 턱을 치켜들었고 눈에는 싸늘한 빛이 서렸다.“솔직하게 말해요. 백홍이 대체 누구예요?”“그... 그 사람은 인신매매범이야.”정대명은 감히 숨길 수 없었다.영미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방금 그 ‘썩을 년’은 누굴 말한 거예요?”“백인서라고, 내 딸을 말한 거야.”“백인서...”영미의 귓가에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산골 아이들을 오성에 데려가 공부하게 도와준다던 그 백인서요?”“그래, 맞아!”정대명은 고개를 급히 끄덕였다.“전에 백홍이 우리 동네에서 일을 했었는데, 유일한 딸이었던 백인서를 나한테 맡기고는 매달 돈을 보내줬었거든.”“그러니까, 백인서가 당신 양녀였다는 말인가요?”“맞아.”정대명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하지만... 나중에 도망가 버렸어.”“왜 도망갔죠?”정대명은 입술을 깨물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영미는 이미 짐작했다. 그날 밤, 정대명이 자기 아들을 어떻게 때렸는지 영미는 똑똑히 보았다. 친아들한테조차 그렇게 독하게 손을 대는데 양녀에게는 얼마나 더 가혹했을지 뻔했다.백인서가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어쨌든 영미가 가장 궁금했던 비밀이 풀린 것이다.영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악의에 가득 찬 그 웃음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정 선생님.”영미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정대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악랄함이 스며들어 있었다.“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까 제게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맞죠?정대명은 떨리는 눈길로 영미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나중에 필요하면 연락할 테니 기다리세요.”영미는 경호원에게 손을 흔들어 정대명을 밖으로 내보내도록 지시했다.“정 선생님, 여기서 지내세요. 제가 최고급 방으로 준비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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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6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거예요?”백인서는 권욱과 나란히 운동장을 걷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고 두 사람의 즐거운 웃음소리는 유난히 더 밝게 들려왔다.“두 사람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 완벽한 한 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맞아, 잘 어울려.”권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둘째 도련님과 윤아 아가씨는 누가 봐도 잘 어울려. 비슷한 집안 배경, 뛰어난 외모, 비슷한 취미, 게다가 두 집안은 오랜 친구 사이잖아. 환장할 일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지!”“음, 이제야 맞는 말을 하네요.”“보니까 둘째 도련님도 예전의 어두웠던 모습에서 벗어난 것 같네?”“그런 가봐요.”백인서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삶은 계속되고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요.”“맞아, 과거에 얽매여 빠져 있으면 안 되지. 스스로 구원할 줄도 알아야 해!”백인서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권욱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백인서의 마음 깊이 와닿았다.백인서는 다시 과거를 떠올렸다. 마을에서 탈출한 이후 오랫동안 우울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고작 십 대였던 어린 나이의 백인서에겐 너무 잔혹한 경험이었다. 백인서도 스스로를 과거에서 구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백인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순간 찾아온 고통이 정신을 다시 붙잡아 주었다.참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자꾸 과거가 떠오른다. 거의 잊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말이다.“어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권욱이 고개를 돌려 백인서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백인서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그나저나, 왜 여기 있는 거예요? 회사 일로 바쁜 시간 아닌가요?”“우리도 인연이란 게 있나 봐!”“어휴...”“알았어, 알았어. 앞으로는 이런 농담 안 할게. 이런 농담 더 했다간 집에 있는 특수부대 출신 남자 친구가 기관총 들고 나한테 달려오는 거 아니야?”“권욱 씨!”“알았어, 진짜 안 할게!”권욱은 배를 잡고 깔깔 웃다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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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7화

“온유야, 그렇게 행동하면 못 써!”조순영은 급히 딸을 당겼다.“싫어요.”권온유는 고모 백인서의 팔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고모가 더 좋아요!”“하하하!”조순철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그러게 말이다, 둘이 정말 고모와 조카처럼 닮았구나. 청아한 눈매도 그렇고, 나중에 우리 온유도 인서 아가씨처럼 기품 있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구나.”백인서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말했다.“과찬입니다, 선생님.”“온유가 자꾸 예쁜 고모 얘기를 하길래, 혹시나 했는데...”조순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욱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이어 조순영도 재빨리 아버지에게 눈짓을 보냈다.오직 백인서만이 그 뜻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혹시나... 뭐가요?”조순철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얼른 화제를 돌렸다.“하하... 이번 선거도 이제 마지막 행사만 남았네. 현장에 훌륭한 학생 대표가 와주면 좋겠는데.”권욱이 바로 맞장구쳤다.“맞아요, 저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몇 명 있어요. 공부에 재능도 있고 이번 기회를 소중히 여겨 열심히 하더군요. 장래에 훌륭한 인재가 될 겁니다.”“그 정승우라는 아이도 있지?”“네, 있죠!”젓가락을 쥔 백인서의 손이 살짝 떨렸다.“정승우요? 그 아이를 아세요? 정말... 훌륭한 아이라고 생각하시나요?”권욱은 백인서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말을 이어갔다.“그 아이 참 영리하더군. 몇 번 학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사람을 대할 때 눈치가 참 빨라. 어린 나이지만 어딘가 어른스러운 기운이 느껴졌어. 아마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일찍 철이 든 게 아닌가 싶더라고.”“그 아이, 이제 열한두 살쯤 됐나?”조순영이 물었다.“겉모습은 여덟아홉 살 같더라.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아 보여서 안쓰럽더라고. 인서 씨, 괜찮아요? 음식 많이 먹어요.”“네...”백인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복잡한 생각을 애써 정리하려 했다.“참.”권욱은 백인서에게 조용히 속삭였다.“이 호텔이 4성급에 불과해도 이곳에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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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8화

백인서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머릿속에 몇 년 전 그날 밤이 아련히 되살아났다.정대명이 술에 취해 집 안 물건을 마구 던지며 난동을 부리던 그 밤이었다. 백인서는 미리 집을 나와 밤이 깊어 집이 고요해졌을 때야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정대명은 백인서를 문 쪽으로 세차게 몰아붙였다...정대명은 백인서의 입을 틀어막고 거친 손으로 그녀의 옷 속을 파고들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인서의 온몸이 심하게 떨렸다. 귓가에 그의 거친 숨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고, 공기에는 불쾌하고 탁한 냄새가 진동했다.정대명이 백인서의 바지를 벗기려는 순간, 백인서는 무릎을 힘껏 들어 정대명의 급소를 걷어찼다.정대명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자 백인서는 그 틈을 타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그날 밤, 백인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마을 근처 숲속에 몸을 숨겼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고 이따금 동물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백인서는 스스로를 꼭 껴안고 한없이 앉아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이미 눈물조차 다 말라버렸다.그날 이후, 백인서의 마음속에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갈망이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백인서는 길가에 멈춰서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표정 하나 없이 근처 작은 바 안으로 들어갔다. 거품 가득한 맥주가 오색 찬란한 조명에 비추어지며 마치 시끄러운 조롱처럼 느껴졌다....늦은 밤, 백인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아파트로 돌아왔다.집 안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문을 열고 스위치에 손이 닿기도 전에 갑자기 불이 켜졌다.백인서는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장미 꽃잎으로 가득한 거실이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예쁜 이단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그 위의 작은 크리스탈 상자가 은은한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백인서는 잠시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때 누군가의 든든한 팔이 백인서를 조용히 뒤에서 감싸안았다.익숙한 남자의 향기가 백인서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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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9화

순간, 최지용은 멍하니 굳어졌다.“너, 성인 맞지?”백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해외에서는 스물한 살부터 술을 마실 수 있잖아. 그 나이는 이미 지났겠지?”최지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백인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났어요.”“그러면 술을 마셔도 되지.”백인서는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 마음이 아려왔다. 백인서는 고개를 들어 최지용을 바라봤다. 최지용의 맑고 깊은 눈동자에는 그녀만을 위한 다정함과 아낌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바보야.”최지용은 손을 들어 백인서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네가 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건데?”“저는...”백인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착한 여자는 술을 마시면 안 되잖아요.”백인서는 남자들이 여자 친구가 술을 마시는 걸 싫어하고 강하게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해 왔다.최지용이 방금 백인서에게서 술 냄새를 맡았을 때, 최지용이 백인서를 질책하고 냉담하게 굴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최지용은 오히려 왜 술을 마시면 안 되는지 물었던 것이다.백인서는 멍하니 최지용을 바라보며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그럼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게.”최지용은 백인서를 살며시 품 안에 안고 다정하게 말했다.“너는 합법적으로 술을 마신 거야. 술은 그저 하나의 음료일 뿐이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단순한 음료. 술을 마신다고 해서 사람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건 편협하고 어리석은 일이야. 물론, 난 네가 왜 술을 마셨는지 정말 궁금해. 혹시 힘든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뭔가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는 건지. 하지만 네가 말하고 싶을 때 한해서야. 말하기 싫다면 억지로 묻지 않아.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테니까.”“지용 씨...”백인서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백인서는 말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끔찍했던 일들과 상처들을 드러내고 싶었다. 백인서의 인생을 거의 파괴할 뻔했던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는 걸 전하고 싶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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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0화

“인서야...”최지용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다가섰다. 백인서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했지만, 백인서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누구도 강요할 수 없었다.최지용의 속은 타들어 갔지만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 따귀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백인서의 속상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백인서에게 맞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미안해요...”백인서는 자신을 감싸안고 웅크린 채, 최지용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 사과했다.“미안해요, 지용 씨 미안해요...”“너 오늘 이상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백인서는 고개를 숙였고 어깨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인서야! 제발 말해 줘? 내가 도와줄게!”“혼자 있고 싶어요.”최지용의 손이 공중에 멈춰 그대로 굳어버렸다.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백인서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백인서를 품에 안고 예전처럼 위로하고 다독여 줄 수 있었다.혼자 있고 싶다는 백인서의 한마디가 두 사람 사이에 넘기 힘든 벽을 세운 것만 같았다.최지용은 백인서와 자신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가로놓인 듯한 아득함을 느꼈다.최지용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최지용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집어 들었다. 문을 나서기 전, 백인서를 마지막으로 바라본 뒤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문이 잠기는 소리가 바깥에서 들리자, 백인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고 눈물이 쏟아졌다.얼마나 오랜 시간 침대에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 채,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야 백인서는 천천히 거실로 나섰다. 그곳엔 여전히 이단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장미 꽃잎이 깔려 있었으며, 최지용이 선물한 분홍빛 다이아몬드가 반짝이고 있었다.이 밤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밤이 되어야 했다.하지만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었다.백인서는 붉어진 눈으로 거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케이크를 잘라 냉장고에 넣고 다이아몬드 반지는 조심스레 서랍에 보관한 뒤 지친 몸을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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