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661 - Chapter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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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1화

따라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우선 특별한 고백부터 하기로 했다.이성준은 남원의 초호화 펜션을 예약하고 생화로 장식하여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선우경진에게 네온사인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밤에 백아영을 데려오라고 부탁했다.향긋한 꽃내음과 황홀한 야경 속에서 이성준이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백아영에게 천천히 다가갔다.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다정하면서도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해독제도 이미 먹었고, 아영 씨를 향한 내 마음은 그 어떤 외부적인 요인의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라는 걸 믿어줘요. 아영 씨, 사랑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백아영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심연처럼 깊은 눈망울은 수시로 그녀를 빨아들일 듯싶었고, 한 번 빠지면 쉽게 벗어나거나 도망치기 힘들게 했다.진심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탓에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비록 낭만적인 분위기와 멋진 고백에 너무 행복하고 기쁘지만,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기에는 버거웠다.이 얼마나 비열한 짓이냐는 말이다.그의 손에 든 장미꽃을 받아들이고 싶은 충동이 커질수록 점점 밀려오는 두려움과 떨림에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난...”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는 본인마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이는 이성준의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이었다.그는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될 거로 생각했다.연애의 정석대로 기대를 최대한 충족시켜 주기 위해 다음 단계까지 모두 준비해놓지 않았는가? 쇼핑은 물론 놀이공원도 같이 가고, 영화 보고 심지어 여행도 계획했다.“혹시 저랑 만나기 싫어요?”이성준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가라앉으며 딱딱해지자 백아영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도 좋아요. 단지...”“좋다면서 뭘 망설이는 거죠?”이성준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자마자 백아영은 마치 겁에 질린 새끼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피했다.이내 혼란스러운 얼굴로 허둥대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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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백아영의 목소리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어쩌면 저한테 미래는 사치일지도 몰라요.”한편, 고백 현장.이성준은 어두운 얼굴로 연애 계획이 적힌 종이를 갈기갈기 찢었다.엉터리 계획 같으니라고, 전혀 소용이 없지 않은가?“왜 그래요? 몇 날 며칠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내용인데, 어떻게 미련 없이 찢어버릴 수 있죠?”선우경진은 안쓰러운 얼굴로 종잇조각을 쓸어 담았다.“게다가 고백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계획이 물거품이 된 건 아니잖아요.”이성준의 싸늘한 시선이 선우경진에게 꽂혔고, 혀라도 뽑아버릴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었다.순간 등골이 오싹한 선우경진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아영이가 생각할 시간을 필요하다고 했지, 엄연히 따지면 거절이라고 할 수 없죠. 여자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편이라서 고민해보다가 나중에 마음을 받아줄 가능성도 있다고요.”만약 그의 말처럼 간단한 일이라면 이성준도 지금처럼 화가 나고 초조하지 않았을 것이다.“아영은 고민거리가 있는 게 확실해요.”이성준이 선우경진에게 말했다.“가서 물어봐 줘요.”“제가요?”선우경진이 손을 내저었다.“남녀 사이의 일을 제가 무슨 수로 알아내요? 게다가 물어본다고 해서 솔직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이성준이 대뜸 선우경진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 같았다.“만약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 정원의 거름으로 줄 거예요.”선우경진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선우 일가.집에 돌아온 백아영은 거실에서 안절부절못한 채 기다리는 성무열을 발견했다. 그녀가 들어서는 순간 다급하게 뛰어오더니 어깨를 붙잡고 한껏 경계하는 눈빛으로 뒤를 두리번거렸다.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태윤 씨가 고백했다고 하던데 혹시 받아줬어?”백아영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니.”긴장이 풀리자 성무열의 잘생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고,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네가 그 자식을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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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 들어가려는 찰나 발걸음을 떼자마자 조금 전에 고백을 거절한 백아영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현재 두 사람을 막아설 신분도, 명분도 없었다.이에 이성준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선우경진은 부르르 떨면서 양팔을 껴안더니 몰래 자리를 빠져나오려고 했다. 곧 아수라장이 될 상황에서 굳이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미처 도망치기도 전에 이성준이 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선우경진이 흠칫 놀랐다.“왜요?”이성준은 싸늘한 얼굴로 두말없이 그를 거실로 밀어 넣었다.휘청거리며 거실에 들어선 선우경진은 자빠질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성무열과 백아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경진 씨, 다리에 쥐 났어요?”성무열이 농담을 건넸다.한편, 겨우 중심을 잡은 선우경진은 두 눈을 부라리며 이 사달의 원흉인 남자를 쏘아보았으나 문밖에 이성준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이 간사한 악마 같으니라고!비록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고개를 돌려 언짢은 표정으로 성무열을 노려보았다.“두 사람 방금 뭐한 거예요?”성무열이 잽싸게 대답을 가로챘다.“장난치고 있었죠.”어이없는 백아영이 두 눈을 흘겼다.머리가 지끈거리는 선우경진이 제 발 저린 듯 문밖을 힐끔 쳐다보더니 대뜸 성무열은 쫓아냈다.“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영이랑 단둘이 할 말도 있거든요.”안 그래도 성무열은 바쁜 와중에 틈을 내서 백아영을 찾아왔는지라 원하는 대답을 얻고 나니 홀연히 가버렸다.그가 떠나자 선우경진은 재빨리 백아영을 붙잡고 물었다.“아영아, 네가 태윤 씨를 좋아하는 것쯤은 나도 보아낼 수 있는데 왜 거절했어?”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한 선우경진을 보자 백아영은 마지못해 대답했다.“거절한 게 아니에요. 단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죠.”“무슨 생각?”“저...”백아영은 씁쓸한 눈빛으로 고개를 떨구었다.“제 마음속에 두 명의 남자가 있거든요.”선우경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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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이내 서둘러 말을 보탰다.“아영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말해주지 않았단 말이에요. 상대가 성무열이라는 보장은 없잖아요.”“성무열을 제외하고 또 있을까요?”기다란 손가락이 문득 사진을 움켜쥐었는데, 가장자리에서 비롯된 접힌 자국이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나가 유난히 끔찍해 보였다.선우경진은 입만 벙긋했을 뿐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백아영 주변에는 남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한태윤을 제외하고 제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성무열뿐이다.하지만 백아영이 대체 언제부터 성무열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실마리가 없었다.선우경진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사랑은 원래 서로 경쟁하고,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켜야 더 성취감이 있지 않겠어요? 성준 씨, 아니면 페어플레이해 봐요.”이성준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아영은 내 아내예요!”선우경진은 작은 목소리로 반박했다.“전 와이프겠죠...”이성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선우경진을 향한 싸늘한 시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살점을 모조리 도려낼 기세였다.선우경진은 흠칫 떨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틀린 말도 아닌데 왜 애먼 사람한테 화풀이하냐는 말이다.이혼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 없지 않은가?비록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생존 욕구 하나만큼은 투철한지라 잽싸게 위로했다.“당시 성준 씨가 성무열 회사를 공격했을 때 아영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죠? 아영은 정이 넘치고 의리를 지키는 아이예요. 설령 50조라는 빚을 짊어지더라도 성씨 일가를 지켜주려고 했잖아요. 만약 지금 성무열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면 아영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존재가 되는 꼴밖에 안 나죠. 죽은 사람과 경쟁하면 결론은 정해져 있어요. 즉, 패배일 뿐이죠.”이성준은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라 사진을 구겨버렸다.다음 날, 성무열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백아영을 찾아왔다.하지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덩치가 산만 한 검은 옷의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혀 발도 들여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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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교외.술병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악을 쓰며 고래고래 외치는 백채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백아영 또 살아났네! 죽지도 않고 돌아왔어! 신약이 출시하면 50조 빚을 갚을뿐더러 명성까지 얻게 되잖아. 앞으로 의약 업계는 물론 상류층에서도 한 자리 차지할 게 뻔한데, 그년을 패가망신하게 한다며? 붙잡아서 제갈연준에게 바쳐 인정받는다더니 고작 이따위 계획을 세운 거야? 못난 놈! 이 쓸모없는 자식 같으니라고.”PC 앞에 앉아 있는 백승구의 표정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했다.고작 한 달 만에 백아영이 진짜 신약을 개발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획기적인 데다가 의학 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 약이라니!“반드시 성공하고 말 거예요.”백승구의 자그마한 손이 마우스를 꼭 움켜쥐었고, 표정이 점점 험악하고 사나워졌다.“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면 더 심하게 다칠 뿐이죠.”...몇 개월 동안 바삐 달려온 백아영은 드디어 여유를 되찾았지만, 오래간만에 찾아온 평화롭고 한가한 시간을 마냥 즐길 수가 없었다.걱정이 태산인 지라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태윤 생각뿐이었다.결국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성그룹으로 향했다.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을 바라보자 마음이 착잡했다. 예전에는 이성준을 찾기 위해서라면 한태윤을 보러 온 지금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다만 이성준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앞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면서 꿈쩍하지 않았다.아직 자기 마음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한태윤을 만나러 간단 말인가?어쩌면 서로에게 고민과 상처만 안겨줄지 모른다.제 자리에 멍하니 한참을 서 있던 그녀는 어느샌가 뒤꿈치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진 탓에 풀이 죽은 모습으로 한숨을 푹 내쉬더니 뒤돌아서 떠나갔다.그러고 나서 묵묵히 걸어가던 와중에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곧이어 화려한 스포츠카 한 대가 서서히 멈춰 섰다. 이내 운전석에 앉은 성무열이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자기, 왜 청승맞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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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유씨 일가 연회장.유씨 일가 가주인 유문상이 버선발로 레드 카펫까지 마중 나와 이성준울 맞이했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환한 미소를 지었다.“성준 씨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방문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이성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섰고, 손님들도 연화장 거실에 잇달아 모여들더니 환심을 사기 위해 아부하기 급급했다.“유씨 일가는 운도 좋네요. 무려 이성준 씨가 찾아왔으니 얼마나 체면이 서겠어요? 이번 연회를 개최한 게 헛되지는 않았네요. 이가네와 라이벌이라고 하더니 압승을 거둔 셈이죠.”“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밀릴 뻔했잖아요. 다만 요즘 화제성 1위인 선우 일가 아가씨가 이가네를 찾았다고 하던데, 주목을 한 몸에 받지 않겠어요?”“아무리 화제가 넘친다고 해도 이성준 씨만큼은 아니죠.”“하긴...”유문상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이성준에게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춰주기 바빴다.순간, 이성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이내 싸늘한 시선으로 입을 떠벌리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백아영이 이가네 연회에 참석했다고?”“네? 맞아요.”그 말을 듣자 이성준은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어두운 밤하늘 아래 우아하고 훤칠한 뒷모습은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유문상은 제자리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성준 씨?”사람들도 어리둥절한 건 매한가지였다.점점 멀어져가는 이성준의 차를 지켜보던 와중에 누군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서 말했다.“설마 아영 씨를 찾으러 간 건 아니겠죠?”“헉! 방금 선우 일가 아가씨가 성준 씨보다 못하다는 말은 취소할게요!”이건 경쟁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기권에 가까웠다.백아영은 연회장에서 이런 극진한 대접을 처음 받아본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는 얼굴로 질세라 몰려와 연신 술을 권하지 않겠는가?사실 술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한태윤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코빼기마저 안 보이자 기분이 울적한 나머지 권하는 술을 받아먹기 시작했다.그러다 한 두 잔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시게 되었다.다시 정신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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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이내 두 팔을 들어 그를 꽉 끌어안았다.이성준은 흠칫 놀라더니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그녀에게 자신이 이토록 특별한 존재일 줄은 몰랐다. 설령 술에 취해도 알아볼 정도라니, 그렇다면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때, 품에 안긴 백아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고 술에 취해 희미해진 눈동자는 아련하기 그지없었다. 이내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당신은 누구죠?”이성준은 할 말을 잃었다.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거라고는 눈에 거슬리는 가면뿐인지라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또한, 이 가면 때문에 지금 안고 있는 사람이 한태윤인지, 아니면 이성준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머릿속이 뒤죽박죽된 탓에 그녀는 기분이 착잡했다. 결국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더듬거리며 손을 위로 뻗어 가면을 만지는 순간 단번에 벗겨냈다.드디어 남자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다니!분명 익숙해야 맞지만, 어딘가 낯선 느낌이 드는 이목구비를 마주하자 백아영은 넋을 잃고 말았고, 정확히는 실망에 가까웠다.마치 가면 아래에 다른 얼굴이 있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은 이성준의 눈에 마치 낙인처럼 찍혔다.싸늘한 눈빛은 온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성무열이 아니라서 실망한 건가?”화가 난 듯한 차가운 시선에 백아영은 흠칫 놀랐다. 몽롱하던 정신도 벼락 맞은 듯 점점 또렷해지면서 그제야 친숙한 느낌이 서서히 들었다.그녀는 해맑은 아이처럼 웃는 얼굴로 품에 파고들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구시렁댔다.“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이성준은 두 눈을 부라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안고 있으면서 머릿속으로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여자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불만을 토로하냐는 말이다.결국 화가 난 나머지 그녀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백아영은 중심을 잡기 어려운 듯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었다.“나 보러 와주면 안 돼요?”이성준은 굳은 얼굴로 손을 뻗어 그녀가 넘어지지 않게 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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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백아영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이때, 성무열이 밖에서 부리나케 뛰어 들어오더니 백아영을 보자마자 큰소리로 물었다.“아영아! 어젯밤에 취하고 누가 널 데려다줬어? 그 사람이 나쁜 짓 한 건 아니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아영을 꼼꼼히 살피러 다가갔는데,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단추가 삐뚤삐뚤 채워진 옷과 뽀얀 목덜미에 생긴 선명한 키스 자국을 발견했다.성무열의 다리가 못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고,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곧이어 불같이 화를 내며 고래고래 외쳤다.“누구야?!”안 그래도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팠는데 백아영은 이제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게다가 성무열의 고함에 관자놀이마저 지끈거리는 듯싶었다.성무열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헐렁한 잠옷 차림의 이성준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안에서 걸어 나왔다.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더욱이 목소리는 잠에서 덜 깬 나른함이 묻어 있었다.“무슨 일이죠?”말을 마친 그는 불편한 듯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는데, 헐렁하던 잠옷이 풀어 헤쳐지면서 하얀 피부가 훤히 드러났고 빨갛게 부어오른 손톱자국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그만큼 격정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지 않은가?백아영의 동공이 커지더니 마치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죽이 머릿속에서 터지는 듯싶었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대체 어젯밤에 이성을 잃고 무슨 짓을 한 거지?이성준의 모습을 본 성무열은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고, 화가 난 나머지 이성을 잃었다.“너 이 자식 죽여버릴 거야.”머리끝까지 치민 분노와 ‘여자친구를 빼앗긴 원한’을 안고 이성준을 향해 이를 악물고 주먹을 뻗었다.이성준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칼날처럼 서늘한 눈빛으로 성무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저항도, 방어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이번에 한 번 얻어맞으면 서로 빚진 게 없이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성무열의 주먹이 이성준의 얼굴에 닿기 직전 주먹 바람 때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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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성준의 섬뜩한 눈빛을 마주친 선우경진은 잽싸게 입을 닫았다.정원.백아영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성무열의 두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듯싶었다.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호통쳤다.“백아영, 이 착해 빠진 숙맥아. 아무리 한태윤을 좋아한다고 해도 아직 마음을 정한 것도 아니고, 사귀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잖아. 어젯밤에 당한 일은 결국에 여자가 손해라는 거 몰라? 차마 원망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내가 대신 혼내줄 때 막지는 말았어야지. 여자로서 자존심이자 자긍심마저 잊은 거야?”잔소리 폭격에 백아영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이내 돌의자에 털썩 앉더니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어젯밤은 내가 먼저 했어.”“뭐라고?!”성무열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백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 앞으로 나랑 태윤 씨한테 신경 쓰지 마. 자칫 사이가 틀어진다고 해도 내 탓일 가능성이 크니까.”성무열은 할 말을 잃었다.그가 떠나자 백아영은 피곤한 얼굴로 돌 책상에 엎드렸고, 마음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탓에 무슨 얼굴로 한태윤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해장국 먹으면 속이 좀 괜찮아질 거예요.”순간 백아영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꼿꼿이 폈다. 한태윤이 어느샌가 곁에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장국 한 그릇을 눈앞에서 내려놓았다.시커먼 가면 아래 무참히 유린당해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창백한 입가에 보기 좋은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백아영은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결국 수치심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어젯밤... 미안했어요.”이성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성무열을 보자마자 사과할 수 있지? 설마 미안할 만한 결정을 이미 내린 건가?“그래서요?”싸늘한 말투는 마치 지옥에서나 들을 법했다.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한태윤은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함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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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5일은 마치 백아영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 같았다.만약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 것이기에 5일 내내 발버둥 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하지만 한태윤은 5일 뒤면 남원을 떠난다. 그때 가서 떳떳하게 함께 있지 못하는 이상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마냥 지켜보는 신세이지 않겠는가?5일 동안 그녀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지?결국 고민에 빠진 백아영은 도무지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몰래 심리상담실을 찾아갔다.심리상담사는 젊은 여성인데 그녀를 보자마자 무슨 일인지 눈치챈 듯 싱긋 웃었다. 그리고 백아영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태연하게 차 한 잔 따르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아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상담은 비밀리에 진행될 예정이라 아영 씨가 했던 말은 절대 유출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귀에 흘러 들어갈 일도 없어요. 고민이 있으면 저한테 다 털어놓으셔도 돼요.”심리상담사는 기껏해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이력이 워낙 화려해서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 동종 업계의 걸출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다시 말해서 타고난 재능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백아영은 왠지 모르게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심리상담사의 안내에 따라 백아영도 점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한태윤 씨를 사랑하는 아영 씨의 마음은 확신에 가까워요.”심리상담사가 결론을 내렸다.“물론 이성적으로도 이성준 씨와 재결합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과거에 서로 얼마나 사랑했든 이미 지나간 일에 불과하죠. 아영 씨는 현명한 분이시니까 이성준 씨를 잊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거예요. 하지만 잊기는커녕 한태윤 씨와 접촉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성준 씨가 생각난다고 했잖아요. 혹시 아영 씨 문제가 아니라 한태윤 씨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여태껏 스스로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 고민이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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