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681 - Chapter 690

916 Chapters

제681화

이성준은 살면서 한 번도 이렇게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연구해냈다!”보름이 지난 어느 날, 백아영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웃음이 보였다. 웃음기가 그녀의 입가에서부터 눈 밑까지 환하게 번졌다.선우경진이 물었다.“뭘 연구해 냈는데?”“한태윤을 치료하는 방법이요.”백아영은 흥분된 마음으로 두툼한 처방전을 선우경진에게 보여 주었다.“이대로만 치료하면 한태윤 씨는 반드시 완쾌돼서 무병장수할 수 있어요.”선우경진은 얼른 처방전을 받아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백아영의 의술에 연신 감탄했다.이런 불치병을 치료하는 방법까지 연구를 해내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너희 둘 인연이 여기까지가 아닌가 보구나!”백아영의 얼굴의 미소가 살짝 굳어버리고, 가슴속에 짓눌렀던 쓸쓸함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잠시 생겼던 희열과 기쁨 마저 모두 그 속에 잠겨버렸다.그녀는 씁쓸하게 말했다.“인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그 사람이 나한테 고마워서 보답하겠다고 하는 거 필요 없어요. 각자 잘 사는 게 나와 그 사람의 미래에요.”각자 잘살게 될 건 한태윤이지만, 완쾌만 된다면 이성준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다.선우경진은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은 채 말했다.“태윤 씨가 직접 와서 너랑 얘기하는 게 낫겠다.”백아영은 선우경진에게 약 처방을 가져가게 하고, 사람을 보내 한태윤한테 전달하라고 했다.비록 한태윤과는 미래가 없고, 그들 사이에 더 이상 연락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항상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시하며, 머릿속에서는 그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연습하고 있었다.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그와의 미래를 감히 바라진 못해도, 간단한 인사치레를 하면서 잠깐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정도로 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는 걸 말이다.하지만 수없이 많은 말을 머릿속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지만, 그녀는 한태윤의 전화를 받아보지 못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이성준을 만나게 되었다.그는 바람처럼 그녀를 향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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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그때의 일이 머릿속을 다시 스쳐 지나가자 백아영은 이내 그 원인을 찾았다. 그 당시 이성준은 아마 너무 많이 취해 기억이 안 났을 것이다. 그래서 줄곧 자기가 앤니와 관계가 발생한 줄로 알고 있었고, 나중에 앤니가 결혼한 후 맨빌 아일랜드 토착 재벌들의 풍습을 알게 되고 나서야 앤니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그 때문에 이렇게 신나서 자신을 찾아온 거야.그는 백아영을 배신하지 않았다!그렇다면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우웩!위에서 경련이 일어나며 백아영은 너무 메스꺼워 헛구역질이 나왔고 이따금 떫은 냄새가 입안 전체에 퍼졌다.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위를 감쌌지만, 그 메스꺼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고 계속해서 토하고 싶었다.요즘 들어 그녀는 가끔 이런 경우가 생겼는데, 그저 너무 피곤해서, 위가 상해 그런 줄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한가할 때 위를 보호하는 약이나 지어 먹으려고 했었다.그러나 구토감은 나날이 강해지고, 지금은...그녀는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얼른 손으로 자기 맥을 짚고 나서 동공이 갑자기 움츠러들었고 안색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임신이다.그녀가 임신했다!하필 이런 시기에 한태윤의 아이를 임신했다.운명이란 정말 사람을 갖고 노는구나.“아영아, 왜 그래?”이성준은 걱정스럽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백아영은 황급히 그의 손길을 피했다.입 안 구석구석에 쓴맛이 퍼지면서 그녀는 끝없는 늪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그 늪은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려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다.“너와 앤니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더라도, 나와 너는 이미 끝났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그를 잊어버려! 우리 다시 시작하자!”“이성준.”백아영은 돌아서며 그한테 등을 돌렸고, 눈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흘러내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굳건했다.“끝난 건 다시 되돌릴 수 없어.”그녀는 이성준도, 한태윤도 가질 자격이 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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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죄송합니다. 아가씨가 여행을 떠나서 당분간 못 뵐 것 같습니다.”선우철은 말을 마치자마자 차를 몰고 쏜살같이 가버렸다.정호는 제자리에 선 채로 멍해졌다. 뭐? 여행?어디로 여행 갔는지는 알려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그러나 그는 선우철의 차가 쌩쌩 멀어지는 걸 보는 수밖에 없었다.백아영을 만나지 못한 정호는 풀이 잔뜩 죽어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속으로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생각했다.바로 그때 승합차 한 대가 그의 옆에 멈춰 섰고, 검은 옷의 남자가 내려 그를 묶어 차에 태웠다....현란한 불빛 아래 시끌벅적한 술집 내, 은밀한 구석 쪽에 있는 프라이빗 좌석에는 이성준이 앉아있었다.좌석 주변의 기온은 여름날인데도 불구하고 얼어붙을 지경으로 차가웠다.이성준은 백아영이 선우경진한테 남긴 편지를 산산이 쥐어뜯어 버렸다.하룻밤도 못 기다릴 만큼, 한시가 급하게 그 남자를 찾아가다니!“떠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지금 가서 쫓으면 따라잡을 수 있어요.”선우경진은 급하게 그를 재촉했다.그러나 이성준은 일어날 생각이 없이 어두운 얼굴색으로 술 한 병을 더 따고, 벌컥벌컥 크게 들이켰다.그의 몸의 술기운은 점점 더 짙어졌다.선우경진은 얼른 그가 마시려고 가져가는 술병을 가로채며 걱정했다.“술에, 담배에, 몸은 생각 안 해요? 아영이가 겨우 치료법을 연구해 냈는데, 약 먹는 동안에는 술도 담배도 다 끊어야 한다고요!”“치...”이성준은 냉소를 터뜨렸다.“다 나으면 뭐 해요? 내 여자 하나도 못 지켜내는데.”이성준의 자포자기한 모습에 선우경진은 멍해 버렸다.“당신, 이대로 포기하려고요?”“그럴 리가.”이성준은 매우 험악한 얼굴을 하고 꽉 깨문 이 사이로 말을 한 글자씩 뱉어냈다.“밧줄로 묶어서라도 내 곁에 꽁꽁 묶어둘 거예요. 한 발짝도 못 떨어지게 할 거예요!”선우경진이 말했다.“그럼 어서 가서 잡아요.”그러나 방금 독한 말을 퍼붓던 사람은 또 술 한 병을 따 마시며 조금도 일어나서 쫓아갈 기색이 없었다.조급해서 안절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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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백아영은 갑자기 입덧이 너무 심해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토만 했다.그녀는 호텔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이 하루빨리 집에서 나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선우경진한테 영락없이 들켰을 것이다.이 애가 한태윤의 애라는 걸 그녀는 누구에게도 알게 할 생각이 없다.안 그러면 한태윤의 성격에 꼭 책임을 지려 할 것이다. 혼전 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건 그한테도 평생 상처가 될 것이다.그녀는 이 아이를 밖에서 낳고, 돌아가서 원나잇으로 생긴 아이라고 둘러댈 생각이다.아버지가 없어도 그녀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다음날 출발할 때 그녀는 선우철이 미행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비록 그의 보호하려는 의도는 잘 알지만 그렇게 되면 임신한 일이 탄로 날 게 뻔하다.그래서 그녀는 사람을 고용해서 자신의 차를 몰게 하고, 자기는 슬그머니 남의 차를 타고 떠났다.선우철이 잘못 미행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백아영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백아영의 입덧이 심한 탓에, 길에서 헤매는 것 또한 그녀는 너무 힘들어, 근처 여광마을이라는 곳에서 작은 집을 하나 얻어 도우미 아주머니를 모시고 임신 조리를 하고 있었다.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며칠이 지났다.선우철이 백아영을 미행하다 잃어버린 후부터, 손 놓고 있었던 이성준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화를 엄청나게 내고 자기 밑에 사람들을 전부 다 풀어 그녀를 찾으라고 지시했다.비록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가는 걸 방해 할 생각은 없지만, 반드시 그녀가 자신의 보호 아래 시시각각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녀한테 끈 떨어진 연처럼 불안감을 주고 싶진 않았다.“그냥 여행 갔을 뿐인데 별로 위험하진 않을 거야. 위정이 금방 찾아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심보라는 우아하게 향초에 불을 붙였고, 서서히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그녀의 손끝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유난히 부드럽고 마음을 설레게 했다.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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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우웩!”먹은 지 얼마 안 된 것을 백아영은 화장실에서 와르르 다 토해냈다.그러고 나서 침대에 엎드려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다.입덧이 나날이 심해져 그녀는 며칠 새 살이 쭉 빠지고 목숨이 반쯤밖에 남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예전에 현무를 임신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래서 좀 불안했다.“먹는 족족 다 토하는데, 얼마나 낭비에요. 그만 먹는 게 낫겠어요.”도우미 왕씨 아주머니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는 김에 침대 머리맡에 있는 따끈따끈한 제비집도 가져갔다.“쟤 안 먹어?”청소하는 류씨 아주머니는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왕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제비집을 두 그릇으로 나눠, 류씨 아주머니와 식탁에 앉아 털털하게 먹기 시작했다. “이 제비집은 되게 좋은 거래.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이랑 달라.”“그렇겠지, 얼마나 비싼데. 이 한 그릇만 해도 우리가 몇 달 동안 먹고 마시겠네. 이 귀한 걸 먹고 다 토하니 내가 가슴 아파 죽겠어. 그래서 얼른 가져왔지.”“저 여자 팔자가 참 좋아. 어린 나이에 돈이 어찌 저렇게 많아? 제비집도 밥처럼 먹을 수 있고 말이야.”“팔자가 좋은 게 아니라, 뻔뻔한 거겠지.”“임신하고 옆에 사람 하나 없이 이렇게 외진 곳에 와서 슬그머니 낳으려고 하는 걸 보니 별로 떳떳하지 못한 아인가 봐.”“내연녀가 아니면 어디 숨겨둔 여자겠지. 혹시 알아? 아이 낳고 조강지처 쫓아낼 생각인지?”“그건 너무 염치없는 년이지. 악독한 년.”“그래, 나도 그냥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아영아!”이성준은 눈을 번쩍 뜨더니 눈가에는 채 풀리지 않은 애틋함과 분노로 가득 찼다.그는 그녀가 살이 많이 빠지고, 힘들게 토하고, 곁에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모두가 그녀를 괴롭히는 꿈을 꾸었다.꿈만 꾸었는데도 칼날로 가슴을 파는 것처럼 아팠다.“성준아, 그냥 꿈이야.”심보라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졸졸 흐르는 샘물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사람을 안심시켰다.“꿈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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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먹는 족족 다 토하는 바람에 백아영의 몸은 점점 더 나빠지고, 위는 시시때때로 경련을 일으키며 아팠다.그녀의 몸이 못 버티면, 아이는 더욱 버틸 수 없다.백아영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서야 했다.그녀는 왕씨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한의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의원은 낡아서 매우 오래된 것 같았지만, 의사는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멋있게 생긴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였다.진찰을 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 진짜 환자 말고도 의사 생김새 때문에 온 여자들도 많았다.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의원 전체가 떠들썩해 보였다.진중구 의사는 성격이 좋아서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백아영은 한참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 겨우 차례가 돌아왔다.진중구는 그녀의 맥을 짚으며 동정하는 표정을 지었다.“환자 분의 입덧은 지금 너무 심한 상태입니다. 즉시 구토를 멈추게 해야 하는데 한약은 효과가 느려서 몸조리에만 적합하지, 응급조치에는 맞지 않습니다. 어서 종합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으세요.”한의학은 이 작은 마을에서가 아니라 전국에서도 백아영을 따라 올 사람이 없다.진중구가 말한 건 그녀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진 선생님, 침을 놓으실 줄 아시죠?”진중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아영은 이어서 말했다.“제가 침놓는 법을 한가지 아는데, 임신기간 입덧을 치료할 수 있어요. 부작용도 없고요. 선생님께서 저한테 침 좀 놔주실 수 있어요?”말하면서 그녀는 미리 준비한 침구도를 진중구에게 가져다주었다.진중구는 침술로 입덧을 치료한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해 거절하려고 했지만, 침구도를 보자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한참 후, 그는 감탄하며 말했다.“이 침술법은 정말 기가 막히게 대단하네요. 세상에 이런 침술법이 있다니! 어디서 난 침술법이에요?”백아영이 대답했다.“제가 직접 연구했어요.”“환자 분도 한의사예요?”진중구는 입을 벌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환자 분처럼 젊은 사람이 침술에 이렇게 조예가 깊다고요?”이 침술법은 혁신적일 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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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백아영은 길가에 모여 노는 아이들을 보고 웃으며 배를 만졌다.“아가야, 네가 뱃속에서 나오면 현무랑 같이 놀아.”임신 기간 내내 현무를 볼 수도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애가 보고 싶어 속이 갑갑했다.“이모, 이모 너무 예뻐요.”한 어린 여자아이가 갑자기 백아영한테 달려와 그녀한테 작은 들꽃 한 송이를 건넸다.“이거 이모 줄게요.”두 갈래의 말총머리를 한 여자아이는 얼굴이 작고 통통해서 매우 귀여웠다.백아영은 문득 배 속의 아이도 여자애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만 되면 아들과 딸을 다 가지는 셈이니까 말이다.그러면 현무한테도 여동생이 생기는 거다.“고마워, 꼬마야. 넌 이름이 뭐야?”백아영은 기분이 좋아서 그 여자애를 보며 쪼그려 앉았는데, 이때 어떤 30대 중반의 여자가 성급하게 다가와 어린 소녀를 힘세게 끌어당겨 데려갔다.그 여자가 백아영을 보는 눈빛은 경계심, 심지어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바보야, 아무하고 말 섞지 말랬지? 돌아가서 어디 가만 놔두나 보자!”“아무나가 아니고 예쁜 언닌데...”“이런 예쁜 여자 때문에 요즘 세상이 어지러운 거야. 생김새만 믿고 몸을 팔아 남한테 내연녀, 정부 노릇이나 하면서. 애도 어디 꼭꼭 숨어서 낳질 않나, 나중에 이런 여자 절대 따라 하면 안 돼!”“그렇게 나빠요? 그럼 난 절대 안 따라 할게요!”백아영의 미소가 입가에서 조금씩 굳어졌다.띠링! 띠링!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선우철을 비록 따돌렸지만, 연락을 두절하진 않았다. 그녀는 매일 잊지 않고 선우경진한테 안부를 전하고, 선우경진은 그녀가 따라다니면서 보호해 주는 걸 원치 않다고 태도가 견결하니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또 선우경진한테서 연락이 온 줄 알았는데 현무의 영상통화였다.귀여운 아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백아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현무야, 엄마가 보고 싶었어?”“네, 보고 싶어요!”아이가 단호하게 대답하며 큰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글썽였다.“엄마, 언제 돌아오세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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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구토를 멈추자, 백아영은 마침내 음식을 좀 먹을 수 있었고, 정신도 많이 좋아졌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마당에 앉아 의서를 뒤적거렸다.이성준이 찾아왔을 때 바로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주황색 노을빛이 그녀의 몸에 쏟아져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비추는 화면은마치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처럼 평온하고 아늑했다.“아영 씨는 참 즐길 줄 아는 여자네. 이렇게 조용한 마을로 와서 한가하게 책을 보고 있고.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심보라는 매우 부러운 듯 입을 열었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쳐다보며, 눈길은 어둡고 그윽했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좀 말랐어.”심보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이성준을 긴장해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성준아, 네가 가서 만날 거야?”이성준은 입술을 꼭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때 마당에서 왕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밥 다 준비됐어요.”백아영은 책을 덮고 들어갔고, 마당에는 의자 한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이성준은 쓸쓸한 눈빛으로 한참을 서 있다가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떠났다.그는 떠나는 동시에 위정에게 지시를 내렸다.“사람 붙여서 잘 보호하도록 해. 들키지 말고.”그제야 심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성준은 백아영을 만날 생각이 없구나!만나지만 않는다면 옛정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을 거다. 그들의 감정은 시간의 소용돌이에서 점점 무뎌지고, 끝내는 사라질 것이다.그다음 날 저녁.진중구는 약속대로 퇴근해서 백아영의 집으로 침을 놓으러 왔다.그는 체크무늬 셔츠에 캐주얼한 바지를 입은 평상복 차림을 하고 왔는데 아주 활기가 넘치고 친절해 보였다.대문으로 마중 나간 백아영은 그를 보고 인사했다.“진 선생님, 수고 많으신데 여기까지 오셨네요.”“당연히 와야죠. 아영 씨를 알게 돼서 영광입니다.”백아영한테 침을 놓아주면서 그는 입덧을 멎게 하는 신기한 침술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침을 놓는 도중에 그녀의 조언도 받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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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류씨 아주머니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왜? 월급을 그렇게나 많이 주는데? 우리가 일 년 동안 일해도 이만큼 못 벌잖아.”왕씨 아주머니가 코를 찡그렸다.“돈을 많이 주는 게 아니면 저런 여자 시중을 절대 안 들어!”“맞다. 방금 돌아오는데 길가에 어떤 커플이 서 있는데, 남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보다도 더 잘 생겼더라고, 귀티가 좔좔 흐르는 게. 여자친구도 엄청 이쁘고, 단정하고. 그런 게 선남선녀지.”이때 방문이 열리는 걸 보자 왕씨 아주머니는 일부러 비꼬면서 말했다.“선남선녀끼리 부끄러울 게 없어야 제대로 된 커플이야. 보니깐 아주 부럽더구먼. 그 정도로 남한테 떳떳해야지.”잘생기고 귀티 나는 남자...백아영은 아까 느꼈던 그 차가웠던 시선을 다시 회상하며 머릿속에 이성준의 모습이 떠올렸다.그러나 다음 순간 백아영은 그 생각을 떨쳐냈다. 그녀도 이성준과 완전히 선을 그었고, 그도 더는 매달리지도 않으니 이미 둘은 깔끔하게 헤어졌다.그리고 이성준 옆에는 다른 여자가 없으니 더더욱 이성준일 리는 없다.선남선녀 커플이면 모두 다 부러워할 만하지.이성준은 백아영의 집 대문 가까이에서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눈에는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이때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이성준의 몸에서 발산되는 냉기도 점점 더 차가워져 갔다.저 남자는 아영이의 집에서 자고 갈 건가?비록 그녀의 사생활에 더 이상 간섭 안 하고 강요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수많은 화살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올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짧은 한 시간밖에 안 되는 동안에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수천 번이나 저 집안에 뛰어 들어갔다.그럴 때마다 이성이 다시 그를 붙잡았고 그의 발길을 막아섰다.그런데, 하늘색이 완전히 어두워져 방안에 불이 켜졌고, 커튼으로 백아영과 그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자, 이성준의 마지막 정신줄은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배려는 무슨 얼어 죽을 배려, 끝까지 기다리기는 개뿔, 다 헛소리고, 다 집어치워!그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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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침을 맞고 나니 몸 상태가 좀 더 좋아졌고, 배고픔을 확실히 느꼈다.그때 식사 준비가 다 되어 백아영은 다이닝 룸으로 향했는데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음식 재료가 그녀의 요구대로 사 온 게 아니고 네 가지 요리가 전부 그녀가 싫어하는 음식이었다.입덧은 풀렸지만 임신 중에는 워낙 입맛이 까다로워지는데, 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니 오히려 속이 더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아영 아가씨, 식사가 맘에 안 들어도 양해하세요. 여긴 작은 마을이라 도시처럼 뭐나 다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시장에 가보니 아가씨가 말한 그 재료들은 이미 다 팔고 없었어요.”왕씨 아주머니는 조금도 미안함이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일부러 그랬다.백아영이 사 오라던 채소는 사실 다 사 왔는데, 그녀가 진중구를 꼬시는 걸 보고 역겨워 그걸 다 숨겨놓았다.백아영은 그걸 모르고, 마을 상황이 워낙에 왕씨 아주머니가 말한 것처럼 그런 줄 알고, 억지로 밥을 먹었다.하지만 메뉴도 그렇고 맛도 예전과 너무 달라 어찌나 넘기기 힘든지, 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겨우 밥 반 공기를 먹었다.더 먹으면 토가 나올 것 같았다.그녀가 수저를 놓고 들어가자 왕씨 아주머니는 숨겨뒀던 재료의 요리를 꺼내 류씨 아주머니와 신나게 먹어 치웠다.저녁밥을 많이 먹지 못한 데다가 임산부는 배가 빨리 고프게 되는지라, 밤 열한 시가 되자 그녀는 허기가 져 잠에서 깼다.주방에 가서 먹을 것이 있나 찾아보는데 냉장고 안은 텅 비었고 어디에도 먹을 것은 없었다.하는 수 없이 그녀는 겉옷을 걸치고 밖에 먹을 걸 찾으러 나갔다.늦은 가을이라 여광의 밤 기온은 매우 낮았고 그녀는 옷깃을 세워 몸을 움츠린 채 밤바람을 맞으며 먹자골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작은 마을이라 밤 열한 시에는 길거리에도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만 밝게 비추었다.가로등 아래 그녀의 외로운 그림자가 아주 길게 비쳤고, 그림자 끝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뒤를 따랐다.이성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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