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침대에서 자. 난 소파에서 잘 테니까.”류인하는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마치 대학교에 다닐 때처럼 정직하고 바른 느낌이 들었다.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고 여전히 의술 연구밖에 모르는 공붓벌레 같았다.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며 백아영은 속으로 몰래 탄식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초심마저 잃은 듯싶었다.“인하야, 고마워.”“보라 씨는 은인이고 넌 동창인데 돕는 게 당연한 거지.”류인하는 잽싸게 짐을 풀었다.“임신까지 한 몸으로 종일 이동했는데 무리가 가기 마련일 테니까 얼른 쉬어. 푹 잘 수 있게 향을 피워줄게.”향에 불을 붙이자 단향의 냄새가 서서히 피어올랐고, 긴장이 탁 풀리면서 편안한 느낌에 백아영은 졸음이 쏟아졌다.그녀가 잠든 뒤 류인하는 소파에 앉았고, 백아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서서히 탐욕으로 물들더니 욕심이 가득했다.그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현실 앞에 무릎 꿇게 되었다.사실 그동안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못 찾아 좌절도 겪고 모욕도 당해 출세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심지어 누군가 모함하는 바람에 자칫 의학계에서 영구 추방될 뻔했다. 결국 절망에 빠져 그는 투신자살까지 계획했다.나중에 심보라의 도움을 받아 심리 상담받았는데, 인맥을 통해 재취업의 기회를 쟁취하게 힘을 써준 덕분에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그와 동시에 이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 약육강식이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그는 더는 의학 연구에만 매진하지 않았고, 점점 사회생활에 치중했다. 착하고 어리숙한 겉모습과 달리 뒤로는 악랄한 수작을 부려 사람을 탈탈 털릴 때까지 갉아먹었다.하지만 아직 만족하기에는 일렀다. 그는 어디까지나 남을 위해 일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야망은 풍선처럼 커지고 있지만, 딱히 실현할 방법이 없었다.심보라는 그의 은인이자 귀인이다. 이번에 백아영의 남자친구로 위장하라는
최신 업데이트 : 2024-01-25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