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721 - Chapter 730

916 Chapters

제721화

이성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돈 때문에 이런 푸대접을 받게 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백아영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손에 은행카드를 꽉 쥔 그는 본인이 먼저 잘못을 저지른 탓이라며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고 나서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그러고 나서 온유성을 향해 말했다.“온씨 가문에 미지의 위험 요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영을 데리고 섣불리 들어가면 안 돼요. 만반의 대책을 강구할 테니까 며칠만 더 기다려줘요.”선우경진도 고개를 끄덕였다.“고모부, 성준 씨 말이 맞아요. 아영이든 고모부든 혼자서 쳐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소파에 앉아 있는 온유성의 위로 석양이 비추자 마침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였다.음영이 지는 바람에 얼굴의 굴곡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는 듯싶었다.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나지막이 말했다.“비록 아직 기억을 완전히 되찾은 건 아니지만 온씨 가문은 내 본가가 확실해. 집에 돌아가는 게 뭐가 그리 위험하다고? 내가 가서 정현을 데려올게.”이내 고개를 들어 백아영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에 가려진 탓인지 그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아영아, 엄마가 너도 기다리고 있단다.”온유성의 긍정적인 반응에 백아영은 온씨 가문에 찾아가기로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설령 위험이 있더라도 둘이 가면 서로 도와주고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그날 밤 백아영은 온유성과 함께 온씨 가문으로 향했다.백아영의 뒷모습이 온씨 가문 안으로 사라지자 이성준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선우경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눈살을 찌푸렸다.“그래도 자기 딸인데 그 누구보다도 아영이 안전하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고모부가 위험한 일은 없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설령 무슨 일이 터진다고 해도 아영을 지켜줄 테니까.”이성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나 아닌 사람한테 아영을 맡기는 자체가 걱정돼요.”그게 설령 온유성일지라도 마찬가지였다.선우경진이 한숨을 내쉬었다.“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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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2화

제갈연준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생각지도 못한 슬픔과 속상함이 엿보였다.“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올 텐데...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완벽한 존재, 아영아, 앞으로 넌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겠군.”심은아가 콧방귀를 뀌었다.“온씨 가문이야말로 백아영 인생의 종착역이죠.”...비록 온유성과 같이 들어 왔지만, 백아영은 여러 단계의 신원 인증을 거쳐 온씨 가문의 혈육이라는 사실이 증명되고 나서야 무사히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덕분에 온씨 가문의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 몸소 체험했다.장치가 얼마나 많은지 설령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진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우강이라는 위험천만한 불법 지대에서 이 정도 방어 장치는 절대로 과한 게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백아영은 불안과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녀는 시종일관 은침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내부로 진입할수록 벌레 한 마리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방어 장치를 제외하고 타락한 천사의 조각상이 곳곳에 보였다. 시커먼 조각상과 부러진 날개, 그리고 눈동자가 사라진 텅 빈 동공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하지만 이런 게 바로 온씨 가문의 신앙이지 않겠는가?거실에 들어서자 중앙에 집주인이 사용할 법한 가구들이 있는 게 아니라 높이가 3m 정도 되는 타락 천사 조각상이 떡하니 나타났다. 다른 조각상과 달리 마치 피에 물든 것처럼 시뻘건 눈은 보기만 해도 오싹하고 스산했다.그러나 온유성은 조각상을 향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더니 절을 연신 하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주님, 신도 온유성이 찾아뵙습니다.”옆에 서 있는 백아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온유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동안 신도다운 면모를 보여준 적이 없는지라 경건한 모습이 실로 의아할 따름이었다.심지어 스산하기 짝이 없는 타락한 천사를 믿고 따르다니.“벌써 20년이네?”연로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검은색 도포 차림의 백발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날카로우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온유성을 바라보다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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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3화

“엄마는? 엄마는 어떻게 됐어요?”흐느끼는 백아영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그제야 자신이 어떤 처지에 빠졌는지 알게 되었다. 경비가 삼엄한 온씨 가문에서 외부인의 침입은 물론 한 번 들어오면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온유성에게 속아 발을 들인 이상 나락으로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네 엄마?”온유성의 말투가 유난히 쌀쌀맞았다.“온씨 가문 혈육을 수도 없이 낳고 피연꽃의 먹이로 주고 있지.”이내 고개를 돌려 무심하게 물었다.“죽었어요?”온정이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정한 말에 백아영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그동안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껴줬는가? 과연 몸까지 날리면서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차를 막아주던 자상한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마저 들었다. 지금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매정하고 무자비하며 감정 따위 찾아보기 힘든 짐승 같았다.자기 아내를 당연하다는 듯이 애를 낳는 기계로 생각하고 생사 따위 관심 없는 모습이라니.백발노인의 안색이 어두웠다.“선우정현이라는 여자가 꽤 독하던데? 더는 애를 낳지 못하게 스스로 몸을 망가뜨렸어.”온유성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얼굴에 혐오감이 가득했다.이내 쌀쌀맞은 말투로 대답했다.“그렇다면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죠.”그래서 이미 선우정현을 죽였단 말인가?백아영은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고,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백발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비록 아이를 낳지는 못하지만, 피는 꽤 괜찮은 자양분으로 쓸 수 있거든.”말을 마치고 나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그렇게 괴로운가? 정이 깊은 아이로구나. 오히려 좋지, 뭐. 다루기도 쉽고.”그는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따라와, 네 엄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할 테니까.”백아영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실감이 나지 않아 비틀거리며 따라갔다.한참을 걷다 여러 개의 방을 지나고 나서야 비린내가 진동하는 늪에 도착했고, 한가운데에 집이 한 채 있었다.방 안에는 선홍빛 연꽃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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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4화

어쩌면 핏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엄마라는 소리에 그녀는 눈시울이 대뜸 붉어졌다.“네가...?”갈라지고 힘없는 목소리는 마치 모든 힘을 끌어내서 겨우 쥐어짜 낸 듯싶었다.“내 아이야?”“네, 맞아요. 엄마, 미안해요. 제가 너무 늦게 왔죠?”백아영은 울면서 피로 가득 찬 연못으로 뛰어가 흐느끼며 말했다.“오랫동안 고생이 많으셨어요.”“우리 딸 벌써 이렇게 컸어? 엄마의 예상대로 너무 예쁘네.”선우정현이 무의식중으로 손을 뻗어 백아영을 만지려고 했지만, 쇠사슬에 묶여 있는 탓에 버둥거리는 순간 짤랑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작 이런 움직임에도 그녀는 벌써 지쳐서 기절하기 직전이었다.이내 심호흡하더니 한숨 돌리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백아영을 향해 웃기만 했다.초췌한 얼굴과 창백한 입술, 그러나 미소만큼은 자애로웠다.“엄마...”백아영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그녀가 갓난아기 때 선우정현이 다른 곳에 보낸 바람에 여태껏 살면서 모성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부럽기도 하고, 유감스럽기도 하며, 이미 해탈도 했다.성인이 되고 나서는 모성애 따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도 단지 호칭에 불과하다고 여겼다.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고스란히 느끼게 되었다. 만약 선우정현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더라면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로 자랐을 게 뻔했다.그러나 설령 키워주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자기 목숨과 인생까지 바쳐서 딸아이의 삶을 20년 동안이나 지켜줬다.“엄마는 우리 딸을 봐서 이제 여한이 없구나. 얼른 도망가, 여긴 위험해!”“도망가긴 어딜 가?”온유성이 피로 가득한 연못으로 천천히 다가가 한동안 ‘사랑했던 아내’를 마주하면서도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고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선우정현, 네 딸이 곧 당신을 대신해서 피연꽃을 키워줄 예정이거든? 이제 그만 저세상으로 가도 될 것 같아.”간신히 고개를 든 선우정현이 온유성을 바라보았다.이내 동공이 커지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온유성이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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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화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저 여자는 죽을 거야!”백발노인의 악을 쓰는 목소리가 10m 밖에서 들려왔다. 그는 독 안개 밖에 서서 손에 검은색 리모컨을 들고 있었다.백아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리까지 잠근 피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이 들면서 한기가 피부 속을 파고드는 듯싶었다.“백아영, 얼른 독 가루를 치우지 못해?”백발노인이 명령했다.“아가야, 엄마는 상관하지 마. 만약 도망갈 능력이 있다면 목숨 걸고 도망쳐!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고. 난 이미 이 지경이라 구해준다고 한들 살아남지 못할 거야. 비록 내 인생은 끝장났지만, 네 인생까지 망칠 수는 없잖아. 가! 얼른 가라고.”선우정현은 자신의 생사 따위 전혀 개의치 않고 초조한 얼굴로 기를 쓰고 외쳤다.“네가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선우정현은 반드시 죽을 테니까 알아서 해.”백발노인은 악랄한 말로 협박했고, 백아영을 바라보는 눈빛에 탐욕이 가득했다.“차라리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선우정현이 몇 년은 더 버텼을 텐데, 네가 제 발로 찾아온 이상 피연꽃의 제물로 굳이 선우정현을 쓸 필요가 없거든. 만약 선우정현이 죽는다면 자기 엄마를 죽인 원흉이 바로 너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백아영의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 같았다.“저 늙은이 말 듣지 마! 난 어차피 사느니 죽는 것보다 못한 나날을 보내왔어. 죽음은 나에게 곧 해탈이니까 오히려 네가 날 구해준 거야.”만약 움직일 수만 있다면 선우정현은 가까이 다가오는 뾰족한 가시를 향해 주저하지 않고 몸을 날렸을 것이다.“아영아, 가라고! 얼른 가.”백발노인이 리모컨을 누르자 가시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고, 날카롭고 뾰족한 부분이 선우정현의 살갗을 찔렀다.이내 새빨간 피가 그녀의 가냘픈 몸에서 흘러나왔다.비록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안간힘을 써서 꾹 참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재촉했다.“얼른, 가...”백아영은 독 가루가 든 병을 꽉 움켜쥔 채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마치 뾰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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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6화

이미 기력이 다해서 힘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백아영은 울컥하는 마음에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우리 엄마는 건드리지 마! 같이 자면 될 거 아니야! 하지만 오늘 밤은 안 돼, 오늘은... 그날이라서...”“그렇게 공교롭다고?”남자는 믿기지 않은 눈치인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백아영은 흠칫 놀랐다.아니면 피눈물도 없는 인간들이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이거 놔! 놓으라고!”그녀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순간 쇳덩이 같은 손바닥에 뺨을 세게 맞았다.얼굴 뼈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서 백아영은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입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반면, 남자는 뺨을 때리고 나서 바짝 다가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손목을 강제로 움켜쥐었다.그리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험상궂게 변했다.“너 임신했어?!”그는 맥을 짚을 줄 아는 게 확실했다.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꺼지며 그녀는 황급히 배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친 욕설과 함께 남자의 무쇠 다리가 배를 강타했다.‘악!’가슴을 파고드는 고통과 영혼을 떨게 하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백아영은 새우등을 하고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식은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아가야, 내 아가...’“괜히 시간 낭비만 했네!”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욕설을 퍼붓더니 대뜸 명령했다.“유산약 가져와!”“아, 안 돼!”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백아영은 배를 끌어안고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내 아이는 건드리지 말아줘. 제발, 아이는 내버려둬! 기꺼이 피연꽃의 제물로 될 테니까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제발 내 아이만큼은 건드리지 마.”“어차피 온씨 가문 아이도 아닌데 살려둬봤자 아무 소용 없어. 당장 지워버려.”백발노인이 멀지 않은 곳에 서서 협상의 여지 따위 없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약이 도착했다.시커먼 탕약을 보자 백아영은 아픈 배를 움켜쥐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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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이성준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지고 어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역시나 온씨 가문과 손을 잡았군.”20여 년 전, 선우 일가를 곤경에 빠뜨린 원흉이 마치 제갈 일가처럼 보였지만 선우정현은 생뚱맞게 온씨 가문에 갇혔다. 따라서 세 가문의 연결고리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제갈연준이 온씨 가문에 등장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대단한데? 대체 모르는 게 뭐야?”제갈연준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 소용 없지. 아영을 구해주겠다고 무작정 달려드는 바람에 결국은 내 손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으니까.”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서 커다란 그물이 솟아올라 이성준을 가둬두었다.이성준은 재빨리 단검을 꺼내 그물을 자르고 안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빠져나오는 순간 제갈연준이 옆으로 다가와 날카로운 비수로 그의 배에 푹 찔러넣었다.이내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나왔다.제갈연준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통쾌하다는 얼굴로 말했다.“이성준, 너 때문에 제갈 일가는 망했어. 꿈에서도 널 갈기갈기 찢어버려 죽이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소원을 이뤘군.”...“온유성, 당신 인간 맞아? 무려 네 친딸이잖아. 얼른 구해주지 않고 뭐해? 네 손자를 구하라고!”선우정현은 애처로운 얼굴로 목이 터지라 외쳤다.하지만 온유성은 말뚝처럼 꼿꼿이 서서 유산약을 억지로 마시는 백아영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뱃속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백아영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이내 뜨거운 액체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아가, 내 아가야! 안 돼! 안 돼!!”그녀는 괴로운 듯 배를 움켜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심장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배 속의 작은 생명체가 점점 사라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안 돼, 내 아가! 우리 아가야, 가지 마. 엄마를 두고 떠나지 마...”결국 백아영은 이성의 끈을 놓았다.“몸조리 잘하고 다음 달에 임신할 수 있도록 준비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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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8화

행여나 싶은 그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고, 둘 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사람 구하러 간다! 공격해!”밤새 집결한 선우 일가와 이씨 가문 사람들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온씨 가문에 쳐들어갔다.곧이어 독 안개가 하늘을 뒤덮었다.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백아영이 좁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을 때 날은 이미 훤히 밝아 있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을 보아하니 벌써 점심이 된 듯싶었다.그러나 독 안개는 없었고,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백아영은 메마른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내 마음속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온씨 가문을 찾았을 때 삼엄한 경비를 몸소 체험했던지라 철옹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뚫기 힘들었다.게다가 어젯밤 그들이 독 가루를 압수한 이상 신속하게 방어 대책을 세웠을 것이기에 독 안개 공격도 무력화될 가능성이 컸다.선우경진이 사람을 구하러 여기까지 온다는 건 사실 큰 희망이 없었다.정신이 맑아질수록 점점 더 절망스러웠고, 백아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기 배를 만졌다. 배에 손이 닿는 순간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게다가 유난히 싸늘하고 아팠다.철제 침대에 누운 그녀의 볼 위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이틀 후.익숙한 약 냄새와 함께 철 감옥 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또 약을 가져다주는 사람인가?백아영은 눈길도 돌리지 않고 철창 밖의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녀가 유산하게 된 이유는 약뿐만 아니라 온시혁이 발로 걷어찬 것도 있었다. 내상을 심하게 입은 탓에 약물 치료받아야만 했는데, 아니면 생식 기능조차 잃을지 모른다.자기 몸 상태를 잘 아는 백아영은 일부러 약을 가져다주는 족족 엎질러버렸다.즉, 치료받지 않을 작정이었다.“약 먹어!”누군가 침대맡에 약을 내려놓았고,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백아영은 눈을 번쩍 떴다. 핏발이 가득한 두 눈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고, 한때 제일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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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9화

“성준아...?”백아영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렸다.“문 열어요! 열라고! 제발 들여보내 줘요.”하지만 온유성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쌀쌀맞은 말투로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사실 이틀 전에 이미 붙잡혔어.”다시 말해서 이성준은 이런 모습으로 그녀의 옆방에서 이틀 동안 누워 있었다는 뜻이다.심지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아직 목숨은 붙어 있는데 몇 시간만 더 지체한다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어떻게 하면 성준을 살려줄 건데요? 당신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말만 해요! 얼른 살려줘요. 제발, 살려달라고!”온유성이 말했다.“몸조리 잘하고 임신 준비해.”몸조리 잘하라는 안부의 말이 지금 상황에서 이처럼 아이러니하게 들릴 줄이야.백아영은 목덜미라도 잡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그녀가 고분고분 밥도 먹고 약까지 마신 덕분에 이성준이 간단한 치료라도 대충 받을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졌다.백아영은 옆방과 닿은 벽에 기대어 앉아 그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렀다.절망으로 가득한 어두컴컴한 곳에서 이성준은 그녀가 살아갈 유일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고, 이미 무참히 짓밟힌 탓에 사느니 죽는 것보다 못한 나날만 남았을 뿐이다. 결국 당장은 하루하루 무미건조하게 보내며 이성준이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다.감금 생활은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흘러갔다.백아영은 고통에 시달리며 얼마나 오랫동안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드디어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 때 희미한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아영아...”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했지만, 귀를 찢는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백아영은 눈을 번쩍 뜨며 격앙된 표정으로 외쳤다.“이성준? 깨어났어? 이성준, 성준아!”“아영아...”또 한 번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끊어질 듯 말 듯 한 어조로 뜸을 들였으나 아까보다 훨씬 뚜렷했다.“괜찮아?”눈을 뜨자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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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화

하지만 백아영의 눈물은 도통 멈추지 않았다.다시 말해서 진작에 크게 다칠 줄 알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위해 쳐들어왔단 뜻이었 다.“이성준, 당신 미쳤어?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어!”그녀는 단지 이성준이 무사히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아영아, 어떻게 널 혼자 위험을 무릅쓰게 놔두겠어? 네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난 함께 할 거야.”이성준의 목소리는 세상 다정했다.“그만 울어, 알았지? 그쪽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서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잖아. 네가 계속 울면, 이 거추장스러운 벽을 확 부숴버린다?”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백아영은 발끈하며 외쳤다.“미친!”그러나 말과 달리 눈물이 더는 흐르지 않게 꾹 참았다.그제야 이성준은 안도한 듯 벽에 기대어 나지막이 물었다.“그동안 무슨 일 없었어?”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은 백아영에게 그야말로 악몽 같았다.고작 몇몇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영혼이 울부짖으며 괴로워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떨리는 손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지자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아이를 잃은 슬픔이 다시 엄습해왔다.자책과 고통에 빠진 그녀는 한참 동안 기분을 추스르고 나서야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온유성이 우리 어머니를 배신했어. 날 일부러 여기까지 유인한 거야. 온씨 가문은 내 피로 피연꽃을 키울 작정이거든.”물론 유산한 것과 그녀를 출산 기계로 써먹으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성준아, 온씨 가문에서 절대로 날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혹시라도 기회가 생기면 혼자서라도 도망쳐야 해.”이성준이 피식 웃었다.“내가 널 두고 갈 수 있을까?”비록 말투는 가벼웠지만,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백아영은 마음이 심란하고 무거웠다.이때,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곧이어 옆방 문이 달깍 열렸다.그녀는 바짝 긴장하며 물었다.“이성준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한참 동안 소란이 이어지다가 백아영은 창살 사이로 세 명의 그림자를 얼핏 보았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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