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341 - 챕터 350

916 챕터

제341화

“알았어요.”이성준은 곧장 영정 사진 앞에 걸어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인 채 향을 피웠다.이영철은 싸늘한 시선으로 이성준을 바라보았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원래는 그와 함께 복수심을 불태워 백아영을 죽이려고 작정했지만, 어디까지나 손자를 과대평가했다.그렇다면 앞으로 이 문제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제외하면 그만이다.이영철이 고개를 들어 집사에게 눈짓하자 즉시 알아차린 집사는 조용히 빈소를 빠져나와 비밀 경호원에게 선우 일가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백아영이 선우 일가로 돌아가서 보호를 받는다고 해서 수년간 정성을 들여 키운 비밀 경호원과 비교하면 선우 일가 따위는 적수가 되지 않았다.선우 일가에게 앞날은 없고, 모조리 매장당할 것이다!병원.백아영은 수술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지만, 수술실의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온유성은 아직도 수술받고 있다.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존 가능성은 작아지고 목숨이 더 위태롭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초조함이 극에 달한 백아영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쪼그려 앉으려고 할 때마다 휘청거리며 옆으로 픽 쓰러졌다.선우경진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아영아, 무리하지 마. 몸이 이미 한계치에 달해서 쉬어야 한다고.”“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백아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그러나 핏발이 선 두 눈은 더없이 확고했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고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여기에서 온유성이 무사히 나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다.“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고모부가 나오기 전에 네가 먼저 쓰러질 거야.”선우경진은 가슴이 찢어졌다. 더 이상 백아영이 제멋대로 하게 놔둘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기절시키려고 몰래 은침을 꺼냈다.백아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분노와 배신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입맛 벙긋했을 뿐 아무 말도 못 하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선우경진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병실로 데려갔다.침대로 걸어가 창문을 여는 순간 캄캄한 어둠 속에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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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그녀는 눈앞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전화가 걸려왔고 곧바로 느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좋은 소식이 있어요. 온유성이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기억력 저하가 왔는데,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대요.”절망에 빠진 심은아는 드디어 일말의 희망을 되찾았다. 그러나 순식간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이내 서늘하고 스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심유미, 장난해?”“그럴 리가요? 다름 아닌 우리 가문을 이끄시는 대단한 분인데.”심유미의 나긋한 목소리는 미안함은커녕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대단한 분이라고 했지만 마치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그래서 말인데 온유성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 의술이 뛰어난 선우 일가의 치료를 받게 된다면 언제 기억을 다시 회복할지 몰라요. 그때 가면 아마 또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요? 계획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을 텐데...”얼핏 듣기에는 걱정하는 듯싶지만, 말뜻을 곰곰이 새겨보면 비아냥거림뿐이었다.심은아는 차가운 눈초리로 피식 비웃었다.“언니,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어쨌거나 내가 잘못되면 언니도 심씨 일가 주인이 될 자격이 없잖아?”심씨 일가의 관습에 따르면 쌍둥이는 어려서부터 대결을 거쳐 승패를 가른 후 승자는 주인으로, 패자는 노예가 된다. 이러한 신분 차이는 일생 바뀌지 않는다.다만 그때 승리를 쟁취한 사람은 심유미가 아니라 심은아였다.심은아는 겉보기에 연약하지만, 사실상 성격이 교활하기 그지없다. 능력, 수단, 계략 등 전부 심유미를 훨씬 뛰어넘는다.비록 대결에서 이겼지만, 그녀는 가문을 이끄는 대신 심유미에게 떠넘기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선언했다.차마 밝힐 수 없는 많은 일은 그녀가 절대적인 권리를 앞세워 비밀리에 진행한 것이다.심유미는 겉으로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상 노예이자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물론 본인도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했고, 심은아를 죽도록 미워했다. 심은아가 죽기를 오매불망 바라지만 한편으로 명령에 따라 하라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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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정현... 왜 이러지? 가슴이 너무 아파... 정현아, 어디 있어? 왜! 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거야?”괴로워하는 온유성의 모습을 보자 백아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선우정현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온유성이 이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일 줄이야!그만큼 선우정현은 온유성의 마음속 깊이 새겨진 존재라는 것을 의미했다.그녀를 건드리는 순간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이라니!“아빠, 진정하시고 애써 떠올리려고 하지 마세요.”백아영은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았다.“엄마가 해외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서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정말?”온유성은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도 붙잡은 듯 두 눈에 기대로 차올랐다.반면, 백아영은 마음이 쓰라렸다....백아영은 병실로 돌아가는 대신 남아서 온유성을 보살폈다.워낙 심하게 다쳐서 몸 상태까지 안 좋은 탓에 그는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다.따라서 백아영은 침상 옆에 앉아 묵묵히 수발을 들기로 했다.창밖은 어둑어둑해졌고, 달마저 먹구름에 가려졌다. 반면, 불이 켜져 있는 병실 안은 유난히 포근하고 평화로워 보였다.백아영은 온유성의 손을 잡고 침대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고요하고 평온한 내부와 달리, 병원 밖에서는 이영철의 비밀 경호원이 벌써 이틀 밤 연속 공격을 개시했다.그러나 병원 근처에 접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한참이나 떨어진 외곽에 이성준이 배치한 부하들에 의해 발목을 붙잡혔다.이씨 가문 본가.이영철은 부하가 전해온 소식을 듣고 버럭 화를 내며 이성준 앞에 있는 향로를 발로 걷어찼다.불이 채 꺼지지 않은 향과 잿가루가 사방에 흩날렸다.이성준의 검은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잿가루 때문에 머리는 군데군데 은회색으로 변했고, 분위기가 한 층 더 가라앉았다.그는 안색이 살짝 돌변하더니 경고했다.“여긴 할머니 빈소입니다.”아무리 이영철이라고 해도 때를 가려야 하지 않은가?“그래도 네 할머니 빈소에서 장례를 치르는 건 알고 있나 보네?”이영철은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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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그 뒤로 백아영은 온유성을 케어하는데 온 신경을 다했고, 덕분에 점차 컨디션을 회복해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부녀의 관계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돈독해졌다.여태껏 기억을 되돌려 봐도 가족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지라 백아영은 온유성과 지내는 며칠 동안 가족애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이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라니!백아영은 현재의 기분을 만끽하며 모처럼 찾아온 만족감과 즐거움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선우정현을 꼭 되찾겠다고 몰래 다짐했다.세 식구, 아니 아들까지 찾아내서 네 식구가 한데 모이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다만 온유성이 잠들고 나서 혼자 조용히 있을 때면 마음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가끔 이성준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는데 괜스레 가슴을 바늘로 꼭꼭 쑤시는 듯 괴로웠다.그날 이후로 이성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쩌면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녀를 뼛속까지 증오해서일 지도 모른다.“웅웅!”이때,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선우경진한테서 결려온 전화였다.온유성의 병세가 안정되자 그는 선우 일가로 돌아가 가짜 약 사건을 조사했다.“어때요?”백아영은 휴대폰을 들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물었다.선우경진의 말투가 사뭇 진지했다.“집에 상자 하나가 사라진 걸 확인했어. 다만 원래 비어 있는 상자라서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거든? 아마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짜 약을 넣었을 텐데 범인이 누구인지, 언제 범행을 저질렀는지 전혀 단서를 찾을 수가 없어.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할 줄 아는 것처럼 말이야. 젠장!”기대감으로 벅차오르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단서가 없다는 건 진상과 증거를 하루아침에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즉, 이영철의 부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계속해서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비록 기분이 씁쓸했지만 백아영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급한 건 아니까 천천히 조사해요. 이영철도 아직 손을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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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선우경진은 경호원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했다.“가요. 901호 병실에 있어요.”“고마워요.”이성준이 병원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한편, 이씨 가문 본가.장례식이 끝나자 이씨 가문 친척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본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복귀했다.그러나 고요할수록 이영철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했다.이내 반짝반짝 윤이 나는 용머리 지팡이를 꽉 움켜쥐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성준 어디 갔어?”3일이 지나자 ‘착한 손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집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병원에 갔습니다.”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이 백아영을 찾아갔을 것이다.“못난 놈!”이영철은 화가 나서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며 연신 기침했다.3일 동안 비밀 경호원이 몇 번이고 공격을 개시했지만, 백아영을 죽이기는커녕 이성준의 수비대를 뚫는 것조차 실패하고 병원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이제 병원까지 직접 찾아갔으니 손을 쓸 기회가 더더욱 희박했다.아내를 죽인 범인이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생각만 해도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을 듯싶다.“할아버지, 제가 대신 백아영을 죽여드릴게요.”여자의 간사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하이힐을 신은 백채영이 또각또각 걸어왔다.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그녀는 이현무의 엄마이자 이성준의 예비 아내 신분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빈소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강제로 방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결국 장례식이 끝나서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그녀를 바라보는 이영철의 무심한 눈빛은 경멸이 가득했다. 원래 수중에 좋은 패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제 무덤을 파버렸으니 그런 지능으로 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는 말이다.그는 애초에 무능한 사람과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쫓아내.”집사는 그녀를 끌어내기 위해 즉시 앞으로 나갔다.백채영은 다급하게 외쳤다.“백아영이 선우 일가와 성준 씨의 보호를 받는 이상 무턱대고 죽이는 건 절대 불가능해요. 다만 그녀를 보호해주는 존재가 사라지고 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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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얼굴의 대부분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고 희미한 윤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백아영은 한참을 멍해 있다가 입을 열었다.“어떻게 들어왔어?”이성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날 만나기 싫은 거야?”그 말은 칼날처럼 백아영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그에게 진심을 고백하고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살인자’로 낙인찍힌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를 마주할 수 있겠는가?“차가 올 줄은 정말 몰랐어.”이성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미안해.” 그동안 다시 만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수없이 생각했지만, 그가 사과하러 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백아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순식간에 마음이 심란해졌다!자신이 뭘 기대하는지 알지 못한 채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봤다.“날 죽이려고 한 거 아니야?”“백아영, 난 한 번도...”말하려는 순간, 이성준의 핸드폰에서 귀를 찌르는 듯한 벨 소리가 울렸다.극도의 긴급 상황에서만 울리는 경고음이기에 이성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즉시 핸드폰을 꺼냈고 거기엔 이영철이 보내온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이현무가 묶인 채 물탱크 위로 떨어지는 몇 장의 사진이었다!사진마다 시간이 달랐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현무의 얼굴이 수면에 가까워져 언제든 물에 빠져 익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잔뜩 겁에 질린 이현무는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고 두 눈도 팅팅 부어올랐다.그는 핸드폰을 움켜쥐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사진 밑에 기입된 메시지를 읽었다.「성준아,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비록 너랑 현무 둘 다 내 핏줄이지만 나한테는 네 할머니만큼 중요하지 않아.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난 목숨까지 바칠 수 있어. 넌 둘 중 누가 더 소중해? 백아영? 현무?」이영철이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복수를 위해 자기 핏줄도 가만두지 않다니!이성준은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고, 살기마저 하늘을 찔렀다.“왜 그래?”백아영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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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백아영, 이건 내가 너한테 베푸는 마지막 친절이야. 해가 뜨기 전에 남원에서 떠나.”말을 마친 이성준은 뒤를 돌아 성큼성큼 떠났다.거대한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그의 싸늘함은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고 소파에 주저앉은 백아영은 다리를 끌어안더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눈물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남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에 남아 그와 적이 되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았다.남원을 떠나는 건 서로의 체면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이성준은 쏜살같이 본가로 돌아갔고 별장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몰려오는 차가운 한기에 주위 온도마저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이영철을 보며 물었다.“현무는요?”이영철은 미리 준비해 둔 핸드폰을 꺼내 실시간 CCTV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 속의 현무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작은방에 갇혔다.겁에 질린 채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었고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었다.“아빠... 아영 아줌마...”개미처럼 기어들어가는 나지막한 이현무의 목소리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팠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이성준은 처음으로 이영철에게 역겨움을 느꼈다.“놓아줘요!”“성준아, 너도 알다시피 지금 주도권은 나한테 있고, 넌 요구할 권리조차 없어.”그의 분노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이영철은 손에 용머리 지팡이를 든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요즘 네가 한 행동이 너무 거슬려. 더 이상 가문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것 같구나. 이씨 가문의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넌 당분간 쉬고 있어.”지금 권력을 빼앗으려는 것이다!돌아올 때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던 이성준은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응했다.“네.”이영철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병원에 있는 사람 철수시키고 다시는 선우 일가의 일에 관여하지 마!”경호원이 없으면 선우 일가는 이씨 가문에게 완전히 노출되는 상황이었지만, 이현무를 위해서라면 선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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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이성준의 눈빛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현무가 납치됐다는 걸 알게 되면 떠나지 않을 거야.”그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현무를 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영철의 타킷은 백아영이 된다.승패를 알 수 없는 이영철과 이성준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이고, 많은 걸 알게 될수록 위험한 상황에서 관계를 끊고 그녀를 떠나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타닥.”기다란 손가락이 키보드에 떨어지자 모니터링 화면은 곧바로 멈췄다. 이성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영철의 서재 앞에 서 있는 백채영을 바라봤고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오늘 백채영 통화 기록은?”“저녁 7시쯤 심씨 일가와 연락했습니다.”모니터링 화면 속 백채영이 핸드폰을 들고 이영철의 서재로 들어간 시간도 정확히 저녁 7시였다.심씨 일가가 이번 일에 가담하다니?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 은혜를 갚기는커녕 이제는 주인의 밥상을 넘보기까지 한다.그래도 선우 일가와 백아영이 오늘 밤 남원을 떠나니 이런 추잡스러운 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 시각 병원.이성준이 떠난 후 선우경진은 느릿하게 병실로 다가갔다.싱글벙글 웃고 있을 줄 알았던 백아영이 호두처럼 두 눈이 부어오른 채 펑펑 울고 있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영아, 왜 그래? 성준 씨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거야? 아니면 네가 아직 용서할 마음이 없어?”그의 이름은 대못처럼 백아영의 가슴에 박혔다.“남원을 떠나라고 했어요.”백아영은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안 그러면 저희랑 적이 될 거래요.”“뭐?!”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선우경진은 어리둥절했다.“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오해가 안 풀린 거 아니야? 네가 할머니 죽이지 않았다는 걸 믿는다고 해서 내가 성준 씨 들여보낸 거야.”이제야 이성준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굳이 거짓말까지 하면서 병실로 들어와 남원을 떠나라고,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전하는 모습에서 그녀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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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심은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고 선우 일가에서 도망친다면 그녀가 공들여 준비하던 모든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다.선우 일가가 이대로 도망가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미간을 찌푸린 채 착잡한 표정을 짓는 심은아의 모습에 이도하는 의아한 듯 물었다.“은아야, 왜 그래? 무슨 생각해?”선우 일가가 떠난다는 소식에 기분이 언짢아진 심은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은아는 온화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선우 일가가 이렇게 떠나버리면 앞으로 다시는 못만날까봐... 아영 씨가 날 구해줬는데 아직 아무것도 보답한 게 없잖아. 도하야, 우리 배웅하러 가자.”시간도 늦었고 유산할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 이도하는 그녀를 말렸지만 고집부리는 심은아를 보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문 앞까지만 가자.”심은아는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얌전하게 선우소훈과 작별 인사를 나누더니 직접 그를 부축하며 별장에서 나왔다.그 시각 선우경진도 백아영과 함께 도착했다.“할아버지...”차에서 내린 백아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재빨리 선우소훈을 향해 걸어갔다.“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네요.”“아영아, 우린 동고동락하는 가족이야. 네가 무사하다면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기꺼이 할 수 있어.”선우소훈은 인자한 모습으로 백아영의 손을 잡았다.“가자, 할아버지도 이 지긋지긋한 남원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선우소훈은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차에 다다르자마자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쿨럭하며 피를 토해냈다.“할아버지!”백아영은 서둘러 그를 부축하며 맥을 짚었고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까지 떨고 있었다.독이다! 중독됐다!선우소훈의 몸은 이미 기력을 잃은 상황에 처해 있있고 수명이 길지 않은 데다가 중독되었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어서, 빨리 할아버지를 방으로 데려가세요. 지금 바로 치료받아야 해요!”백아영의 다급한 목소리에 선우경진은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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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선우소훈을 모시던 도우미들은 전부 갇혔고 이영철이 호시탐탐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기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심씨 일가에서 도우미 아줌마 두 명을 모셔와 그들을 보살펴야 했다.하지만 안 좋은 일이 여러 번 발생한 탓에 더 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백아영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선우소훈과 온유성을 함께 모셨다. 같이 있으면 적어도 서로를 돌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모든 일들이 차츰 정리되자 선우소훈은 안타까운 듯 괴로워하며 입을 열었다.“아영아, 밤새 피곤했을 텐데 얼른 가서 쉬어.”온유성도 말했다.“그래, 아가야.”어느덧 시간은 정오가 되었고 밤새 잠을 못 잤더니 백아영은 눈이 아플 정도로 피곤했다.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도우미 아줌마한테 잘 보살펴달라고 당부하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그러나 걸음을 떼자마자 선우경진의 부하들이 급히 달려왔고 그들은 온몸이 진흙투성이에 약간의 찰과상도 있었다.“도련님이 심씨 일가에서 약재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산사태를 만나 차가 반쯤 묻혔습니다. 인원이 너무 적어 발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도련님께서 선우 일가의 경호원과 함께 오시라고 하셨습니다.”선우 일가의 경호팀은 가장 강력하고 숙련된 사람들로만 구성된 선우 일가의 숨은 ‘무기’였다. 약재 발굴에도 능숙한 능력자지만, 지금은 이영철의 위협에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백아영을 보호하고 있다.그녀의 안전을 위해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백아영도 함께 가기를 원했고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했지만 망설임 없이 답했다.“가요!”그녀는 선우 일가의 경호원들과 함께 재빨리 산사태 현장으로 달려갔다.약재를 실은 차는 반쯤 매몰되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선우경진은 겉옷까지 벗은 채 큰 돌을 옮기려고 애쓰다가 백아영이 다가오는 걸 보고 죄책감을 느껴 미안한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아영아, 밤새 쉬지도 못했을 텐데 나 때문에 여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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