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 이건 내가 너한테 베푸는 마지막 친절이야. 해가 뜨기 전에 남원에서 떠나.”말을 마친 이성준은 뒤를 돌아 성큼성큼 떠났다.거대한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그의 싸늘함은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고 소파에 주저앉은 백아영은 다리를 끌어안더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눈물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남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에 남아 그와 적이 되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았다.남원을 떠나는 건 서로의 체면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이성준은 쏜살같이 본가로 돌아갔고 별장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몰려오는 차가운 한기에 주위 온도마저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이영철을 보며 물었다.“현무는요?”이영철은 미리 준비해 둔 핸드폰을 꺼내 실시간 CCTV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 속의 현무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작은방에 갇혔다.겁에 질린 채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었고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었다.“아빠... 아영 아줌마...”개미처럼 기어들어가는 나지막한 이현무의 목소리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팠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이성준은 처음으로 이영철에게 역겨움을 느꼈다.“놓아줘요!”“성준아, 너도 알다시피 지금 주도권은 나한테 있고, 넌 요구할 권리조차 없어.”그의 분노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이영철은 손에 용머리 지팡이를 든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요즘 네가 한 행동이 너무 거슬려. 더 이상 가문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것 같구나. 이씨 가문의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넌 당분간 쉬고 있어.”지금 권력을 빼앗으려는 것이다!돌아올 때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던 이성준은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응했다.“네.”이영철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병원에 있는 사람 철수시키고 다시는 선우 일가의 일에 관여하지 마!”경호원이 없으면 선우 일가는 이씨 가문에게 완전히 노출되는 상황이었지만, 이현무를 위해서라면 선택의
이성준의 눈빛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현무가 납치됐다는 걸 알게 되면 떠나지 않을 거야.”그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현무를 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영철의 타킷은 백아영이 된다.승패를 알 수 없는 이영철과 이성준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이고, 많은 걸 알게 될수록 위험한 상황에서 관계를 끊고 그녀를 떠나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타닥.”기다란 손가락이 키보드에 떨어지자 모니터링 화면은 곧바로 멈췄다. 이성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영철의 서재 앞에 서 있는 백채영을 바라봤고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오늘 백채영 통화 기록은?”“저녁 7시쯤 심씨 일가와 연락했습니다.”모니터링 화면 속 백채영이 핸드폰을 들고 이영철의 서재로 들어간 시간도 정확히 저녁 7시였다.심씨 일가가 이번 일에 가담하다니?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 은혜를 갚기는커녕 이제는 주인의 밥상을 넘보기까지 한다.그래도 선우 일가와 백아영이 오늘 밤 남원을 떠나니 이런 추잡스러운 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 시각 병원.이성준이 떠난 후 선우경진은 느릿하게 병실로 다가갔다.싱글벙글 웃고 있을 줄 알았던 백아영이 호두처럼 두 눈이 부어오른 채 펑펑 울고 있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영아, 왜 그래? 성준 씨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거야? 아니면 네가 아직 용서할 마음이 없어?”그의 이름은 대못처럼 백아영의 가슴에 박혔다.“남원을 떠나라고 했어요.”백아영은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안 그러면 저희랑 적이 될 거래요.”“뭐?!”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선우경진은 어리둥절했다.“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오해가 안 풀린 거 아니야? 네가 할머니 죽이지 않았다는 걸 믿는다고 해서 내가 성준 씨 들여보낸 거야.”이제야 이성준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굳이 거짓말까지 하면서 병실로 들어와 남원을 떠나라고,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전하는 모습에서 그녀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심은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고 선우 일가에서 도망친다면 그녀가 공들여 준비하던 모든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다.선우 일가가 이대로 도망가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미간을 찌푸린 채 착잡한 표정을 짓는 심은아의 모습에 이도하는 의아한 듯 물었다.“은아야, 왜 그래? 무슨 생각해?”선우 일가가 떠난다는 소식에 기분이 언짢아진 심은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은아는 온화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선우 일가가 이렇게 떠나버리면 앞으로 다시는 못만날까봐... 아영 씨가 날 구해줬는데 아직 아무것도 보답한 게 없잖아. 도하야, 우리 배웅하러 가자.”시간도 늦었고 유산할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 이도하는 그녀를 말렸지만 고집부리는 심은아를 보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문 앞까지만 가자.”심은아는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얌전하게 선우소훈과 작별 인사를 나누더니 직접 그를 부축하며 별장에서 나왔다.그 시각 선우경진도 백아영과 함께 도착했다.“할아버지...”차에서 내린 백아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재빨리 선우소훈을 향해 걸어갔다.“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네요.”“아영아, 우린 동고동락하는 가족이야. 네가 무사하다면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기꺼이 할 수 있어.”선우소훈은 인자한 모습으로 백아영의 손을 잡았다.“가자, 할아버지도 이 지긋지긋한 남원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선우소훈은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차에 다다르자마자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쿨럭하며 피를 토해냈다.“할아버지!”백아영은 서둘러 그를 부축하며 맥을 짚었고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까지 떨고 있었다.독이다! 중독됐다!선우소훈의 몸은 이미 기력을 잃은 상황에 처해 있있고 수명이 길지 않은 데다가 중독되었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어서, 빨리 할아버지를 방으로 데려가세요. 지금 바로 치료받아야 해요!”백아영의 다급한 목소리에 선우경진은 사람들과 함께
선우소훈을 모시던 도우미들은 전부 갇혔고 이영철이 호시탐탐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기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심씨 일가에서 도우미 아줌마 두 명을 모셔와 그들을 보살펴야 했다.하지만 안 좋은 일이 여러 번 발생한 탓에 더 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백아영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선우소훈과 온유성을 함께 모셨다. 같이 있으면 적어도 서로를 돌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모든 일들이 차츰 정리되자 선우소훈은 안타까운 듯 괴로워하며 입을 열었다.“아영아, 밤새 피곤했을 텐데 얼른 가서 쉬어.”온유성도 말했다.“그래, 아가야.”어느덧 시간은 정오가 되었고 밤새 잠을 못 잤더니 백아영은 눈이 아플 정도로 피곤했다.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도우미 아줌마한테 잘 보살펴달라고 당부하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그러나 걸음을 떼자마자 선우경진의 부하들이 급히 달려왔고 그들은 온몸이 진흙투성이에 약간의 찰과상도 있었다.“도련님이 심씨 일가에서 약재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산사태를 만나 차가 반쯤 묻혔습니다. 인원이 너무 적어 발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도련님께서 선우 일가의 경호원과 함께 오시라고 하셨습니다.”선우 일가의 경호팀은 가장 강력하고 숙련된 사람들로만 구성된 선우 일가의 숨은 ‘무기’였다. 약재 발굴에도 능숙한 능력자지만, 지금은 이영철의 위협에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백아영을 보호하고 있다.그녀의 안전을 위해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백아영도 함께 가기를 원했고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했지만 망설임 없이 답했다.“가요!”그녀는 선우 일가의 경호원들과 함께 재빨리 산사태 현장으로 달려갔다.약재를 실은 차는 반쯤 매몰되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선우경진은 겉옷까지 벗은 채 큰 돌을 옮기려고 애쓰다가 백아영이 다가오는 걸 보고 죄책감을 느껴 미안한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아영아, 밤새 쉬지도 못했을 텐데 나 때문에 여기까
이대로 죽을 운명인 건가?그녀는 남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라 오늘 아침에도 잠 못 이루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독가루를 만들었다.그런데 이렇게 빨리 사용될 줄은 몰랐다.백아영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명령했다.“독 퍼뜨려!”말이 끝나자, 그녀가 데려온 경호원들은 즉시 해독제를 삼켰고 동시에 몸에 지니고 있던 독가루를 뿌렸다. 순식간에 연기가 흩날리며 산 전체로 퍼졌다.“얼른 입과 코 막아!”비밀 경호원은 큰 소리로 외쳤고, 그들이 무방비한 틈을 타 백아영과 선우 일가는 재빨리 운전해 자리를 피했다.일사불란하게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에 비밀 경호원들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비겁하다니!“잡아!”선두에 있던 비밀 경호원이 노발대발하며 말하자 오프로드 차량들이 재빨리 숲을 빠져나와 선우 일가를 추격했고 수십 대의 차가 산길에서 위험한 추격전을 벌였다.선우 일가가 한발 앞서 도망쳤지만 약재를 실은 대형 화물차는 여러 방면에서 오프로드 차량보다 훨씬 뒤처졌고 그렇게 두 사람 간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약재 차량을 버리지 않으면 곧 잡힐 겁니다.”누군가가 제안했지만,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선우경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안돼. 이 약재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고! 어떻게든 가지고 돌아가야 해!”하지만 이대로라면 이씨 가문에게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고 약재는 물론 사람까지 잃게 생겼다.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만큼 상황은 매우 긴박했다.바로 그때 백아영은 앞에서 순찰하고 있는 경찰차를 보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경찰이 있으니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거예요!”아니나 다를까 금방이라도 따라잡으려던 비밀 경호원들은 경찰이 막고 있는 걸 보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고 이를 본 선우 일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안전하고 약재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운이 좋네.”줄곤 긴장하던 선우경진도 마침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고 그의 지휘하에 차들은 가지런히 주차되어 검사받을 준비를 하고
선우경진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저희 물건 아닙니다!”약재를 인수하고 검사를 담당하던 책임자는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지금껏 심씨 일가에서 약재를 제공받으며 단 한 번도 불량품을 발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괜찮을 줄 알고 자세하게 확인하지 않았는데...”그는 애초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이런 불법 약물이 그 안에 숨어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심씨 일가에서 꾸민 일이에요!”백아영은 이를 악물었고 순식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이제야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심씨 일가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겉으로는 선우 일가와 손을 잡은 척했지만, 뒤에서는 온유성을 20년 넘게 고문할 정도로 처음부터 다른 의도를 품고 있었다.오늘날 그들은 이영철과 힘을 합쳐 선우 일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이제는 모함까지 일삼았다.지금 같은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선우 일가는 영원히 파멸될 것이다!이 얼마나 악랄하고 사악한 수법인가!“담당자 누구시죠?”이렇게 많은 불법 약물이 발견되었으니 경찰로 송치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잘못되면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백아영이 모든 일을 떠안고 책임을 인정하려던 그때 선우경진이 그녀를 잡더니 입을 열었다.“접니다.”백아영은 당황했다.“오빠...”“올바르게 사는 게 선우 일가의 가훈이었어. 지금껏 한 번도 불법 약물에 손댄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니까 진실은 분명히 밝혀질 거야. 오빠는 남자여서 감옥에 며칠 있어도 괜찮아.”선우경진은 걱정스러운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네가 걱정이야. 아직 귀찮은 일들이 많이 남았는데 고생해야겠어. 여긴 선우철. 줄곧 내 밑에서 일하던 아이야. 능력 좋고 믿음직하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선우경진은 가장 믿음직하고 아끼던 부하를 소개해 주었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너무 애쓰지 마. 못 버틸 것 같으면 고모부랑 함께 남원에서 떠나.”
“일단 시장에 가서 대량으로 구매하세요. 가격이 비싸도 상관없으니 살 수 있는 만큼 사서 급한 일부터 해결하죠.”선우경진이 없으니 모든 일은 백아영이 결정 내리고 책임져야 했다.모든 걸 정리한 후에야 그녀는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선우소훈과 온유성을 찾아갔다.그녀의 모습에 선우소훈은 걱정이 가득했다.“왜 벌써 왔어? 조금이라도 더 쉬지.”백아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충분히 잘 쉬었어요. 저녁 함께 먹고 싶어서 왔어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콘스프로 준비했어요.”“그래, 그래. 아영이가 함께 먹는다니 더 맛있겠는걸?”선우소훈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경진 이 자식은 약재 구하러 간다더니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네.”선우경진이 언급되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오빠가 다른 일로 바쁘다고 저한테 잘 돌보라고 부탁했어요.”이영철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 백아영까지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으니 바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은 선우소훈의 방으로 옮겨졌고 창가에 앉아있던 심은아는 비꼬는 듯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밥이 넘어간다고? 그래, 많이 먹어둬. 며칠 지나면 밥도 못 먹게 될 거야.’마침 이도하도 음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고 창밖을 바라보며 싸늘하고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심은아의 모습에 오싹함을 느꼈다.상냥하고 온화한 심은아의 얼굴에 나타나서는 안 될 미소였기에 생소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고 나아가 불안감이 밀려왔다.“은아?”말소리가 들리는 순간 심은아는 돌변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이도하를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산뜻한 봄바람처럼 느껴져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아름다움과 부드러움만 있을 뿐,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이도하는 자신이 잘못 본 거라며 착각했다!하지만 지금껏 무언가를 잘못 본 적이 없었다.
백채영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문을 밀더니 단번에 위정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녀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던 위정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고 정신을 차렸을 땐 백채영이 이미 안으로 들어왔다.그러나 방안의 침대는 비어있었다.“성준 씨는요?”백채영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위정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고 문을 닫았다.‘어떡하지? 이제 끝났어!’백채영한테 들킨 건 정말 큰 일이나 다름없었기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몰랐던 위정은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웁...”괴로움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찬 백채영은 격렬하게 몸부림쳤고 계획에 영향 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이성준이 비밀리에 나간 일을 즉시 이영철에게 알리려고 했다!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창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성준이 사뿐히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백채영을 싸늘하게 바라봤고 위정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쳐들어오는 걸 미처 막지 못했어요. 어떻게 처리할까요?”평소 같으면 백채영을 기절시켜 인적 없는 곳에서 처리했을 텐데, 지금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이영철이 무조건 의심할 것이고 백채영을 통해 제갈연준의 행방도 알아내야 했으니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이성준의 싸늘한 눈빛에 백채영은 두려움을 느꼈고 이간질하기도 전에 이성준의 손에 처리될까 봐 무서웠다...그녀는 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들을 수 있게끔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웁...”곧이어 이성준의 싸늘한 눈빛이 사라지더니 이내 차분하게 변했다.그는 소파로 걸어가더니 늠름하고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풀어줘.”위정은 깜짝 놀랐다.“사장님?”지금 놓아주는 순간 백채영은 이영철에게 달려가 이 일을 알릴게 분명했고 그럼 이현무를 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준비하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될 뿐만 아니라 현무의 생명도 위협받게 된다.하지만 이성준은 늘 자신의 계획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기에 위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백채영을 놓아주었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