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아가씨 결혼하셨어요?”백아영은 병상에 앉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의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피검사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축하드려요, 임신하셨어요.”임신이라니?!백아영은 전혀 기쁜 내색 없이 오히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이 아이는 절대 그녀의 남편 이성준의 아이가 아닐 것이다!그녀는 심지어 그날 밤 그 남자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백아영은 허둥지둥 호텔로 돌아가 샤워기를 켜고 찬물에 몸을 적셨다.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평평한 배를 내려다보았다.이젠 어떡해야 하는 걸까?...호텔 입구, 최고급 한정판 마이바흐 안에서.앞에 앉은 비서실장 위정이 전화를 끊고 공손하게 보고했다.“사장님, 그날 밤 그 사람은 백채영 씨가 확실합니다.”이성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준수한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는데 지금은 웃음기까지 살짝 더해져 싸늘한 기운이 조금은 줄어들었다.열흘 전 그는 누군가의 덫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는 목이 쉬도록 울면서 그를 죽이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정작 이성준이 기진맥진 해하고 있을 때 과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가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그 순간 이성준은 반드시 그녀를 책임질 거라고 다짐했다.“선물 보내줘.”“그럼 사모님 쪽은...”이성준은 시선을 올려 호텔을 바라보더니 순간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그는 증오에 찬 표정으로 쏘아붙였다.“비겁한 수법으로 나와 결혼한 천박한 여자일 뿐이야. 감히 내 혼사를 망칠 자격 없어.”그는 차에서 내려 기세등등하게 안으로 걸어갔다.백아영이 한창 찬물로 샤워하고 있을 때 이성준이 방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그는 욕실 앞에 서서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비명을 질렀다.“으악!”화들짝 놀란 백아영이 몸을 가리려고 허겁지겁 타월을 챙겼다. 그 남자의 모습을 또렷하게 본 순간 백아영은 더 식겁했다.“이성준?”이
흠칫 놀란 그 순간, 이성준이 그녀를 가차 없이 밀쳐냈다.그의 눈빛이 한없이 차가워졌고 말투도 증오로 가득 찼다.“정말 파렴치한 여자야. 툭하면 끼를 부려!”이성준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다만 문 앞에 다다른 이성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좀 전에 그녀를 만졌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방금 백아영을 안았을 때 증오가 아니라 마치 그날 밤처럼 익숙한 설렘이었다...하지만 그날 밤 그 여자는 분명 백채영이었는데, 절대 비겁하고 악독한 백아영일 리가 없었다!이성준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백아영은 멍하니 넋 놓은 채 그가 떠난 방향만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복잡한 심경을 달랬다.그녀는 그날 밤 그 남자가 진짜 이성준이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만약 이 아이가 이성준의 아이라면 그녀는 절대 이혼할 수 없다!...다음날 백씨 일가.백채영이 부랴부랴 계단을 내려오며 당혹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큰일 났어요, 엄마! 글쎄 성준이가 직접 와서 아영이를 이씨 저택으로 데려갔대요! 그날 밤에 함께 잤던 여자가 백아영이란 걸 알게 됐을까요?”그날 밤, 그들은 일부러 판을 짜서 백아영을 늙은 남자에게 보내 잠자리를 갖게 했는데 운 좋게 이성준과 잤을 줄이야.백채영은 이성준의 외모와 재력을 노리고 그가 잠든 틈을 타 몰래 침대에 기어올라 백아영을 대신했다.백채영의 엄마 박라희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했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어두컴컴한 밤에 이성준과 백아영은 서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리 쉽게 알아볼 리가 있겠어? 그들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밖에 한창 비가 내렸는데 가랑비가 섞인 찬 바람이 훅 불어오자 순간 온몸이 오싹해졌다.이때 마침 백아영이 얼음처럼 차갑고 싸늘한 눈빛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그녀를 본 백채영은 화들짝 놀라 사색이 되었고 겁에 질린 채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설마 다 들은 건 아니겠지?’
반짝이는 구두가 마루를 밟자 맑고 청아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성준이 백아영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며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그러니까 나랑 잔 게 너란 말이야?”백아영도 실은 백 퍼센트 확신한 게 아니라 단지 두 모녀를 떠보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이에 이성준이 되묻자 그녀는 몹시 난감할 따름이었다.다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고 더는 퇴로가 없으니 그녀도 결국 이를 악물고 이 자리에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려 했다!“그날 밤에...”백아영이 말을 꺼내자마자 박라희가 불쑥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백아영! 이게 다 내가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야. 네가 제 몸 하나 아끼지 못하고 정체도 모를 남자와 밤을 지새우더니 이젠 성준이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꿈 깨 제발! 그날 밤은 채영이와 성준이가 연인관계를 확인한 날이라 두 사람은 줄곧 함께 있었어!”이 말을 들은 백채영이 두 눈을 반짝였다. 백아영은 지금 이성준이 그날 밤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백채영만 이성준과 함께 있었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곧이어 백채영이 잔뜩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거렸다.“성준아, 그날 밤 내가 너랑 함께 있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다 아영의 이간질에 휘말리겠어.”순간 백아영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모든 투지가 식어버리고 난처함과 절망감에 휩싸였다.‘정말 내가 잘못 안 걸까?’“내가 너 때문에 창피해서 못 살아. 네가 아무리 비겁한 수단을 써도 채영의 남자는 절대 앗아갈 수 없어!”박라희가 기세등등하게 욕설을 퍼부었다.“성준이는 곧 채영이를 데리고 드레스 고르러 가는데 넌 아직도 안 꺼지고 뭐 해?”백아영은 고개 들어 한없이 차가운 이성준의 눈빛을 쳐다봤다. 이보다 더한 야유는 없었다. 그녀는 애초에 그 사람이 이성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백아영이 굴욕을 참고 이를 악문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이성준은 짙은 눈빛으로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사색에 잠겼다.그날 밤 백아영도
백아영은 곧바로 백씨 일가를 떠난 게 아니라 뒤뜰의 창고 방으로 향했다.2년 전 그녀는 갑작스럽게 백씨 일가에서 쫓겨나 경황이 없어 아무 물건도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곧이어 교도소에 갇혔고 이제야 물건들을 챙기러 오게 됐다.아니나 다를까 창고 방의 너덜너덜해진 큰 상자에서 그녀의 물건을 찾았다.잡동사니들은 얼추 다 있었지만 그녀가 직접 연구한 난치성 염증에 관한 약 처방만 전부 사라졌다!‘처방은?’그것은 백아영이 수년간 의학을 배우며 심혈을 쏟아부은 성과였다!백아영은 박라희를 찾아가 따져 물으려 했는데 마침 문 앞에 도착하자 박라희 부부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아영의 존재가 항상 채영이한테 위협이 돼요.”박라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채영이가 2년 전에 은침을 빼고 일부러 아영이한테 고의상해죄를 뒤집어씌워 감방에 갇히게 했어. 그런데 고작 2년만 갇혀있었지. 아영이는 이젠 성준의 와이프야. 그런 애를 우리가 무슨 수로 손을 쓰겠어?”박라희의 남편이 되물었다.“그래도 꼭 방법이 있을 거예요. 반드시 아영이를 없애고 말겠어요. 내가 생각 좀 해볼게요.”박라희가 대답했다.백아영은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굳었다.2년 전 그녀는 우연히 부상 당한 사람을 마주쳤는데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라 급한 대로 은침을 사용해 겨우 부상자를 살려주었다. 이는 원래 좋은 일이었지만 그녀가 구급차를 마중 간 짧디짧은 1분 사이에 누군가가 은침을 두 대 빼낸 탓에 부상자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고 나중엔 결국 절단 수술을 받게 되었다!한편 백아영은 생명의 은인에서 살인자로 몰락했다!2년 동안 그녀는 침을 뺀 사람이 누구인지 줄곧 찾아 헤맸는데 백채영이었다니!백채영의 부모는 진작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딸아이의 악행에 대해 함묵했다!백아영은 마음속의 분노가 활활 타올라 이를 꽉 악물었다.‘백채영, 내가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어. 넌 죄를 인정하고 감방에 갇혀야 해!’백씨 일가에서 나온 후 백아영은 곧바로 흥신소에 연락하여 백채영의 범죄 증거를
“여기 지금 헤이데이고요. 환자가 지금 막 발병해서 상태가 매우 위독해요! 가능한 빨리 와주시겠어요?”무릇 다른 선택권만 있다면 백아영은 절대 이성준에게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곧바로 결정했다.“기사님, 헤이데이로 가주세요.”가는 길에서 위정에게 전화해 조금 늦게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 전원이 꺼졌다.‘어쩔 수 없지 뭐. 돌아가서 다시 설명해야지. 어차피 성준이도 빨리 돌아오라고 다그칠 뿐 진짜 날 기다린 건 아니잖아.’창밖에 해가 저물고 밤이 점점 더 짙어졌다.이씨 별장 안에는 가라앉을 것만 같은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이성준은 넓은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대문 방향만 뚫어지라 쳐다봤다.그는 얇은 입술을 앙다문 채 싸늘한 기운만 내뿜었다.옆에 있던 위정은 간담이 서늘해져 허겁지겁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백아영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감히 이성준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다니, 백아영은 홀로 제 무덤을 판 거나 다름없었다!“사장님, 지금 당장 사모님을 찾아오겠습니다!”이성준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좀 더 기다려.”‘더 기다린다고? 사장님이 언제 이렇게 인내심이 많아졌지?’위정은 어안이 벙벙했다.다만 그날 밤 그 여자가 정말 백아영이었다면 이성준은 더는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위정은 그제야 큰 깨달음을 얻었다.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백아영은 하룻밤 사이에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뚜뚜뚜...”이때 위정의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그는 통화를 마친 후 재빨리 대답했다.“구 사장님의 전화입니다. 선우 일가의 단서를 찾았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헤이데이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헤이데이라는 네 글자를 듣는 순간 이성준은 증오가 확 밀려왔다.겉보기엔 고급스러운 클럽 같지만 실제로는 남자들이 애인을 찾고 여자들이 그물에 걸려드는 의도 불순한 남녀들이 한곳에 모인 장소였다.그곳은 더
뼛속까지 익숙한 이목구비와 그 얼굴, 그 사람은 바로 백아영이 전에 5년이나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 오재문이었다!2년 전 오재문이 바람을 피운 탓에 헤어지게 됐고 이번 생에 더는 볼 일이 없을 거로 여겼는데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놀란 것도 잠시, 백아영은 금세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물었다.“네가 병 보이려고?”그녀는 돈이 시급했기에 역겨운 마음도 뒤로 하고 인간쓰레기 같은 오재문을 치료하기로 했다.“네가 돈이 급해서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는다는 소문을 들었어. 아영아, 나 아직 너한테 미련이 남아있거든. 그냥 내가 도와줄게.”오재문은 그녀 앞에 다가와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나랑 다시 만나. 그럼 바로 원하는 대로 돈을 줄게.”백아영은 울화가 치밀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며 모든 기대를 걸었는데 오재문에게 기만당하고 농락까지 당하다니!그녀는 혐오에 찬 표정으로 그의 손을 내리쳤다.“꿈 깨!”오재문은 웃음기가 굳어지고 금세 사악한 표정으로 바뀌었다.“백아영, 넌 백씨 일가에서 쫓겨나고 평판까지 흐려져 이젠 모든 걸 잃었어. 대체 뭘 믿고 아직도 거만한 척이야? 너 여기 온 거 결국 다 돈 때문이잖아!”그는 옷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한 뭉치 꺼내 백아영의 얼굴에 톡톡 내리쳤다.“나 이젠 남아도는 게 돈이야. 네가 서비스만 잘해주면 이 돈 전부 너 줄게. 물론 내 애인이 되고 싶다면 그땐 달마다 백만 원씩 줄 거야. 나 그럴만한 능력 돼.”차가운 돈뭉치로 얼굴을 맞으니 귀싸대기를 맞은 것보다 더 치욕스러웠다.백아영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한때 왜 이런 인간쓰레기를 만난 것인지 후회가 사무치게 밀려왔다. 그녀는 심지어 의사로 번 돈으로 그의 대학 뒷바라지까지 해줄 생각이었다.다만 오재문은 돈을 벌어 인생 역전을 하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었다!“오재문, 너 정말 역겨워!”백아영은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한편 오재문은 절대 그녀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