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여권도 없이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여권, 신분증 다 나한테 있어!”“제 여권이 고모한테 있다고요?”“그래! 전화해도 안 받고, 묵는 호텔에 가서 널 찾으니까 여권이랑 신분증을 두고 갔다고 하더라! 내가 고모라고 하고 받아왔어. 너는 무슨 배짱으로 5성급 미만 호텔을 잡아? 제성에 지내는 동안은 고모네 집에서 지내도록 해!”원유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고모 집으로 가고 싶었다. “못 가요.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왔더니 며칠 좀 더 있다가 가라네요. 여권 받으러 갈 때 연락 드릴게요.”“얘는 무슨, 몇 년 동안 안 돌아왔었잖아. 네가 친구가 어디 있어?”“예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요…….”원유희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유희야, 나는 네가 김신걸 때문에…… 이미 지난 일이니 너무 거기에 머물러 있지는 마.”……“고모네 집으로 와.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나중에 갈게요.”원유희는 전화를 끊고 미끄러지듯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김신걸이 보내주지 않으면 그녀는 이 저택을 나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김신걸은 순순히 그녀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김신걸의 눈에는 고모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아버지의 내연녀일 뿐이니까.*점심시간.원유희는 경호원의 안내로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그녀는 식탁 가득 차려진 해산물 요리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캐비어, 자연산 전복, 무늬오징어…… 모두 비싼 식재료였지만, 그녀에게는 모두 독일뿐이다.원유희는 애피타이저로 준비된 샐러드만 깨작거렸다. 그 순간 하인이 가져오는 음식 냄새에 그녀가 젓가락을 던지고 숨을 헐떡였다.“잠깐 멈춰요! 지금 들고 오는 그거 뭐죠?”“해물탕입니다.” 하인이 말했다.원유희는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못 먹었는데, 뭐라도 먹어야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원유희는 식탁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살폈다.“나보고 맨밥이나 먹으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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