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달리다 대로변으로 나온 원유희는 달리는 차 사이를 비집고 도망쳤다. 운전자들은 창문을 열고 욕을 하며 클락션을 울려댔고, 장정의 두 남자는 멈추지 않고 그녀를 쫓았다. ‘이러다 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어디 숨을 곳을 찾아야 해!’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길 맞은편에 서있는 검은색 롤스로이스를 보았다. 그 차는 마치 잠에 든 범고래처럼 크고 웅장했다. 그녀는 생각할 겨를 없이 롤스로이스 뒤로 몸을 숨겼다. 원유희는 차체에 기대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헐떡이는 숨을 억눌렀다. 차는 선텐이 잘 되어있어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핸드백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놀라서 핸드폰의 수신버튼을 누르고 몸을 살그머니 내밀어 길 맞은편 남자들의 동태를 파악했다.유희야, 어디 갔니?”고모, 저 먼저 가볼게요.”왜 무슨 일이야? 호텔로 돌아갈 거니? 너만 괜찮다면 고모 집으로 들어와. 방 하나 마련해 줄게. 아니면…… 예전에 쓰던 방에서 지내도 되고.고모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뒤에서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흔들렸다. 원유희는 몸이 굳어진 채 핸드폰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롤스로이스 창문이 내려오자 서서히 안에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차갑고도 깊은 그의 눈동자가 원유희를 향하자, 그녀의 호흡이 순감 멈추었고 핸드폰 너머 사람의 말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꺅!” 원유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유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원유희가 핸드폰을 가방에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맞은편의 경호원들이 달려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롤스로이스 차문이 열렸고 장신의 남자가 차 밖으로 나왔다.“나한테서 도망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나 보네.” 김신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너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으악!”김신걸은 큰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끌었다.그의 아귀힘이 어찌나 좋은지 원유희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졌다.김신걸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조용히
김신걸은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던져놓았다. 그의 거대한 몸에 딱 붙는 검정 와이셔츠 때문인지, 옷을 다 입고 있어도 야한 느낌이 들었다. 와이셔츠 안에 그의 실루엣이 어떤지, 그가 침대에서 얼마나 야성적인지……. 원유희는 2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면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원유희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김신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로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원유희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다. “배가 고픈 모양이군.” 김신걸은 하인에게 미리 준비된 음식을 가져오라고 했다.잠시 후 중년의 남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들고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김 선생님. 해물 짬뽕을 준비해 왔습니다.” 집사 해림이 두 손을 모은 채 한편으로 물러났다.원유희는 ‘해물’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배고프다며. 이리 와서 먹어.” 김신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해산물 못 먹어. 알레르기가 있어서.”원유희는 해산물을 먹으면 목구멍이 붓고 입술이 간지럽다. 어릴 때, 알레르기를 모르고 먹었다가 기도가 막혀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 성의를 무시하겠다고?”원유희는 김신걸의 말투에서 그가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해물 짬뽕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았다.“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걸 먹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원유희는 뒷걸음질 쳤다.김신걸이 원유희를 잡아끌어 탁자 쪽으로 내동댕이쳤다.“그럼 보기라도 해.”원유희는 탁자에 부딪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핸드백이 떨어지자 그 안에 있던 핸드폰이 밖으로 삐져나왔다. 원유희는 무릎이 아픈 것도 잊고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다.김신걸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고, 원유희는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떨어질 때 충격 때문인지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있었다.김신걸은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보았다. 핸드폰에 푸른 불
“너 여권도 없이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여권, 신분증 다 나한테 있어!”“제 여권이 고모한테 있다고요?”“그래! 전화해도 안 받고, 묵는 호텔에 가서 널 찾으니까 여권이랑 신분증을 두고 갔다고 하더라! 내가 고모라고 하고 받아왔어. 너는 무슨 배짱으로 5성급 미만 호텔을 잡아? 제성에 지내는 동안은 고모네 집에서 지내도록 해!”원유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고모 집으로 가고 싶었다. “못 가요.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왔더니 며칠 좀 더 있다가 가라네요. 여권 받으러 갈 때 연락 드릴게요.”“얘는 무슨, 몇 년 동안 안 돌아왔었잖아. 네가 친구가 어디 있어?”“예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요…….”원유희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유희야, 나는 네가 김신걸 때문에…… 이미 지난 일이니 너무 거기에 머물러 있지는 마.”……“고모네 집으로 와.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나중에 갈게요.”원유희는 전화를 끊고 미끄러지듯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김신걸이 보내주지 않으면 그녀는 이 저택을 나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김신걸은 순순히 그녀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김신걸의 눈에는 고모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아버지의 내연녀일 뿐이니까.*점심시간.원유희는 경호원의 안내로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그녀는 식탁 가득 차려진 해산물 요리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캐비어, 자연산 전복, 무늬오징어…… 모두 비싼 식재료였지만, 그녀에게는 모두 독일뿐이다.원유희는 애피타이저로 준비된 샐러드만 깨작거렸다. 그 순간 하인이 가져오는 음식 냄새에 그녀가 젓가락을 던지고 숨을 헐떡였다.“잠깐 멈춰요! 지금 들고 오는 그거 뭐죠?”“해물탕입니다.” 하인이 말했다.원유희는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못 먹었는데, 뭐라도 먹어야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원유희는 식탁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살폈다.“나보고 맨밥이나 먹으라는 거죠?”“…….”
김신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밀었다. “으악!”원유희가 중심을 잃고 테이블 위로 넘어지면서 컵 안의 물 때문에 그녀의 머리가 흠뻑 젖었다. 김신걸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방금 전 원유희를 성추행하려고 했던 임 사장이 김신걸에게 다가가 술을 따랐다.“어! 김 선생님 오셨네~ 제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야 원유희! 네가 따라봐.” 김신걸이 임 사장 손에 들린 술을 거칠게 뺏어 원유희에게 주었다.원유희는 수치심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김신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나…… 이제 가도 될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원유희가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옆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김신걸은 마치 그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그곳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듯했다.“왜 오자마자 간다고 그래?” 임 사장이 원유희에게 술을 따라주며 “김 선생님하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그가 말했다.“술 못하는데…….” 원유희가 고개를 돌렸다.김신걸은 그녀의 아래턱을 잡아끌며 “거짓말, 네 몸속에는 남자한테 술 따라주는 유전자가 있잖아.”라고 말했다.원유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보았다.“돈에 눈이 먼 그 여자가 가르쳐주지 않아?”“우리 고모는 내연녀가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 “당연하지, 너도 그 여자랑 같은 부류니까. 감싸고돌고 싶겠지.”김신걸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턱을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으악!” 원유희가 비명을 질렀다.“원유희, 무슨 배짱으로 돌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넌 이제 끝이야.” 김신걸은 그녀의 뺨을 툭툭 치고는 손을 거두었다.원유희는 몸에 힘이 쭉 빠져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자, 이리 와서 나랑 술이나 마시자고.” 옆에 있던 임 사장이 다가와 그녀에게 술을 건넸다.다른 남자들도 그녀의 몸을 잡아 이
고모의 말을 들은 원유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유희야? 근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아뇨…… 별거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고 노력했다.“근데 너 언제 올 거니? 고모가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로 한 상 거하게 차려줄게!”“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가기 전에 전화 드릴게요.”“아 그래? 그럼 알겠어…….”전화를 끊은 원유희는 충격을 받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김신걸이 돈만 많을 뿐, 제성의 큰손일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하루빨리 이곳에서 도망쳐야 해. 해외로 뜨기만 하면 김신걸은 나를 찾을 수 없을 거야.’그녀는 고모에게 여권을 받자마자 가장 빠른 비행기로 떠날 생각을 했다.하지만 그녀 앞에는 남월만과 김신걸이라는 큰 벽이 존재했다. *또다시 찾아온 저녁 시간. 그녀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둘러봤다.‘이번에도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밥과 샐러드뿐.’그녀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해산물 냄새에 젓가락을 집은 손이 덜덜 떨렸다.그녀는 살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입에 넣었다. 하인은 그녀를 지켜보며 저렇게 먹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급히 몸을 돌려 부엌 밖으로 나가 해림을 찾았다.“큰 집사님! 원 씨 아가씨가 또 샐러드만 먹고 있어요!”해림은 굳은 표정으로 하인을 보았다.“당장 들어가서 아가씨를 잘 감시해.”*마천빌딩 최고층에 위치한 사무실.김신걸은 푹신한 의자에 반쯤 누워 전화를 받았다.“왜 무슨 일이야?”“그…….” 해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해림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깨진 그릇의 파편과 밥, 반찬들이 바닥에 쏟아져있었다.그 옆에는 원유희가 엎드린 채 기침을 했고, 팔에는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왔다. “김 선생님, 아가씨께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해림이 말했다.“병원으로 보내.”“예.”차에 올라탄 원유희는 유리창에 기대어 차창 밖의 풍경을 보았다.10분 후
공항에 도착하자 검색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모 원수정이 서있었다.그리고 저 멀리서 원유희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경호원들이 원수정을 보고 달려왔다.“고모, 표 주세요!”그녀는 고모에게서 여권과 신분증 그리고 비행기표를 받았다.“유희야, 무슨 일이니?”“교수님이 다시 학교로 복귀하라고 하셨어요. 급한 일이 있으시대요.” 만약 원유희가 임신 때문에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유희야, 연회에서 얼굴만 비추고 그렇게 사라지고는 지금까지 친구네 집에 있다가 고모네 집에는 오지도 않고…… 이렇게 가버리면 너를 언제 또 보겠니? 넌 그 동안 고모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고모의 애처로운 모습에 원유희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도 고모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김신걸이 괴롭히니 그녀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모, 제가 나중에 찾아 뵐게요. 저…… 정말 가야겠어요. 고모 건강하세요.”원유희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응시하며 고모의 손을 놓고 검색대로 달려갔다. “유희야…….” 원수정은 조카가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렇게 급히 찾는다고? 말도 안 돼.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검색대를 통과한 원유희는 급히 비행기에 올라타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온몸의 근육이 저릿했다.순간 원유희는 검색대 앞에 서있던 원수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돌아올 일이 없는데…….’그녀는 고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비행기에는 계속해서 승객들이 탑승했고, 원유희는 혹시 경호원들이 이 비행기에 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잠시 후 안전벨트를 매고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리자 원유희는 기내에 준비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활주로 쪽으로 향했다.원유희는 덜컹거리는 비행기 안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비행기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별로
“이제 길 잃을 일 없겠지?” 유리창 밖으로 김신걸의 악마 같은 얼굴이 보였다.“안 돼…… 난 죽을 수 없어.”원유희는 유리창에 바짝 달라붙어 문틈 사이로 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했다. “제발 풀어줘 난 이대로 죽으면 안 돼. 그냥 내가 네 눈앞에서 사라질게.”그녀의 말은 아무 소용없었다.김신걸의 눈빛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만 같았다.원유희는 숨쉬기 힘든 듯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만 흘렸다.“제발 그만, 이제 도망가지 않을게. 살려줘…….”말을 마친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흐린 시선이었지만 유리창 밖에 있던 긴 그림자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내 아이들. 내가 죽으면 애들은 어떡해.’“으악!” 원유희는 심연 같은 어둠에서 깨어났다. 겁에 질린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낯익은 천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증기실에서 벗어났구나…….’원유희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얼굴을 더듬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온전한 모습의 자신을 보자 그녀는 안도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죽지는 않았지만 죽을 뻔했던 순간이 머릿속에 스치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원유희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까지 했다. ‘만약 내가 해산물 알레르기를 일으켰을 때 김신걸이 나를 그대로 방치했다면, 죽일 생각이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김신걸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어. 아니, 적어도 이렇게 빨리 죽이지는 않을 거야.’사냥감을 잡을 때 목덜미를 물어 한 번에 죽이는 맹수가 있는가 반면에 흥미를 잃을 때까지 가지고 노는 맹수가 있다.김신걸을 후자에 속한다.그러나 이번에 증기실에 갇혀 산채로 익어 죽을 뻔했을 때, 그녀는 김신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살인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무서워…….’그녀는 여권과 신분증을 찾기 위해 침실을 다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김신걸이 가져갔을 것이다. 여권이 없으면 어떻게 이 나라를 떠날 수
예고 없이 열린 욕실 문. 그 앞에 원유희가 앉아있다가 온몸을 덜덜 떨며 천천히 일어났다. 김신걸의 차가운 눈빛에 원유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내 집에서 왜 마음대로 문을 잠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어?”원유희는 반박할 힘도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남월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김신걸의 소유물이며 아무렇게나 쓰고 버려도 괜찮은 노리개이다. “그…… 좀 무서워서.” 원유희가 고개를 숙였다.김신걸은 원유희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시선을 보고 그녀는 핸드폰을 꼭 쥐며 뒤로 숨겼다. 그녀는 김신걸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줄 꿈에도 몰랐고,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랬지!” 김신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 펴졌고, 그가 원유희의 핸드폰을 빠르게 낚아챘다. 핸드폰이 김신걸의 손에 들어가자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이대로 들켜버리면 끝이야…….’김신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저…… 내가 악몽을 꿔서 고모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네가 알면 화날까 봐 안 했어.”그녀는 조금 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통화기록을 삭제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김신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붙이며 “그럼 한번 전화해 봐.”라고 말했다.원유희는 그가 주는 핸드폰을 빤히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널 도망치도록 도와줬는데 내가 그 여자를 가만히 둘 것 같아?” “아니, 아니야! 내가 여권만 가져다 달라고 했어. 고모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고모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네가 싫다면 앞으로 절대 연락하지 않을게.”고모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연락하면 안 되는데…….그러자 김신걸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억지로 핸드폰을 갖다 댔다.“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기억해.”“아…… 알겠어.” 원유희는 눈물을 꾹 참았다. 그 순간 ‘띠리링-’ 느닷없는 벨소리가 욕실에 메아리쳤다.원유희는 혹시 아이들에게 온 연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