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걸은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던져놓았다. 그의 거대한 몸에 딱 붙는 검정 와이셔츠 때문인지, 옷을 다 입고 있어도 야한 느낌이 들었다. 와이셔츠 안에 그의 실루엣이 어떤지, 그가 침대에서 얼마나 야성적인지……. 원유희는 2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면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원유희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김신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로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원유희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다. “배가 고픈 모양이군.” 김신걸은 하인에게 미리 준비된 음식을 가져오라고 했다.잠시 후 중년의 남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들고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김 선생님. 해물 짬뽕을 준비해 왔습니다.” 집사 해림이 두 손을 모은 채 한편으로 물러났다.원유희는 ‘해물’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배고프다며. 이리 와서 먹어.” 김신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해산물 못 먹어. 알레르기가 있어서.”원유희는 해산물을 먹으면 목구멍이 붓고 입술이 간지럽다. 어릴 때, 알레르기를 모르고 먹었다가 기도가 막혀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 성의를 무시하겠다고?”원유희는 김신걸의 말투에서 그가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해물 짬뽕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았다.“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걸 먹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원유희는 뒷걸음질 쳤다.김신걸이 원유희를 잡아끌어 탁자 쪽으로 내동댕이쳤다.“그럼 보기라도 해.”원유희는 탁자에 부딪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핸드백이 떨어지자 그 안에 있던 핸드폰이 밖으로 삐져나왔다. 원유희는 무릎이 아픈 것도 잊고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다.김신걸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고, 원유희는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떨어질 때 충격 때문인지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있었다.김신걸은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보았다. 핸드폰에 푸른 불
“너 여권도 없이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여권, 신분증 다 나한테 있어!”“제 여권이 고모한테 있다고요?”“그래! 전화해도 안 받고, 묵는 호텔에 가서 널 찾으니까 여권이랑 신분증을 두고 갔다고 하더라! 내가 고모라고 하고 받아왔어. 너는 무슨 배짱으로 5성급 미만 호텔을 잡아? 제성에 지내는 동안은 고모네 집에서 지내도록 해!”원유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고모 집으로 가고 싶었다. “못 가요.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왔더니 며칠 좀 더 있다가 가라네요. 여권 받으러 갈 때 연락 드릴게요.”“얘는 무슨, 몇 년 동안 안 돌아왔었잖아. 네가 친구가 어디 있어?”“예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요…….”원유희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유희야, 나는 네가 김신걸 때문에…… 이미 지난 일이니 너무 거기에 머물러 있지는 마.”……“고모네 집으로 와.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나중에 갈게요.”원유희는 전화를 끊고 미끄러지듯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김신걸이 보내주지 않으면 그녀는 이 저택을 나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김신걸은 순순히 그녀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김신걸의 눈에는 고모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아버지의 내연녀일 뿐이니까.*점심시간.원유희는 경호원의 안내로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그녀는 식탁 가득 차려진 해산물 요리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캐비어, 자연산 전복, 무늬오징어…… 모두 비싼 식재료였지만, 그녀에게는 모두 독일뿐이다.원유희는 애피타이저로 준비된 샐러드만 깨작거렸다. 그 순간 하인이 가져오는 음식 냄새에 그녀가 젓가락을 던지고 숨을 헐떡였다.“잠깐 멈춰요! 지금 들고 오는 그거 뭐죠?”“해물탕입니다.” 하인이 말했다.원유희는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못 먹었는데, 뭐라도 먹어야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원유희는 식탁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살폈다.“나보고 맨밥이나 먹으라는 거죠?”“…….”
김신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밀었다. “으악!”원유희가 중심을 잃고 테이블 위로 넘어지면서 컵 안의 물 때문에 그녀의 머리가 흠뻑 젖었다. 김신걸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방금 전 원유희를 성추행하려고 했던 임 사장이 김신걸에게 다가가 술을 따랐다.“어! 김 선생님 오셨네~ 제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야 원유희! 네가 따라봐.” 김신걸이 임 사장 손에 들린 술을 거칠게 뺏어 원유희에게 주었다.원유희는 수치심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김신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나…… 이제 가도 될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원유희가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옆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김신걸은 마치 그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그곳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듯했다.“왜 오자마자 간다고 그래?” 임 사장이 원유희에게 술을 따라주며 “김 선생님하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그가 말했다.“술 못하는데…….” 원유희가 고개를 돌렸다.김신걸은 그녀의 아래턱을 잡아끌며 “거짓말, 네 몸속에는 남자한테 술 따라주는 유전자가 있잖아.”라고 말했다.원유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보았다.“돈에 눈이 먼 그 여자가 가르쳐주지 않아?”“우리 고모는 내연녀가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 “당연하지, 너도 그 여자랑 같은 부류니까. 감싸고돌고 싶겠지.”김신걸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턱을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으악!” 원유희가 비명을 질렀다.“원유희, 무슨 배짱으로 돌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넌 이제 끝이야.” 김신걸은 그녀의 뺨을 툭툭 치고는 손을 거두었다.원유희는 몸에 힘이 쭉 빠져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자, 이리 와서 나랑 술이나 마시자고.” 옆에 있던 임 사장이 다가와 그녀에게 술을 건넸다.다른 남자들도 그녀의 몸을 잡아 이
고모의 말을 들은 원유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유희야? 근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아뇨…… 별거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고 노력했다.“근데 너 언제 올 거니? 고모가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로 한 상 거하게 차려줄게!”“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가기 전에 전화 드릴게요.”“아 그래? 그럼 알겠어…….”전화를 끊은 원유희는 충격을 받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김신걸이 돈만 많을 뿐, 제성의 큰손일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하루빨리 이곳에서 도망쳐야 해. 해외로 뜨기만 하면 김신걸은 나를 찾을 수 없을 거야.’그녀는 고모에게 여권을 받자마자 가장 빠른 비행기로 떠날 생각을 했다.하지만 그녀 앞에는 남월만과 김신걸이라는 큰 벽이 존재했다. *또다시 찾아온 저녁 시간. 그녀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둘러봤다.‘이번에도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밥과 샐러드뿐.’그녀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해산물 냄새에 젓가락을 집은 손이 덜덜 떨렸다.그녀는 살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입에 넣었다. 하인은 그녀를 지켜보며 저렇게 먹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급히 몸을 돌려 부엌 밖으로 나가 해림을 찾았다.“큰 집사님! 원 씨 아가씨가 또 샐러드만 먹고 있어요!”해림은 굳은 표정으로 하인을 보았다.“당장 들어가서 아가씨를 잘 감시해.”*마천빌딩 최고층에 위치한 사무실.김신걸은 푹신한 의자에 반쯤 누워 전화를 받았다.“왜 무슨 일이야?”“그…….” 해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해림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깨진 그릇의 파편과 밥, 반찬들이 바닥에 쏟아져있었다.그 옆에는 원유희가 엎드린 채 기침을 했고, 팔에는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왔다. “김 선생님, 아가씨께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해림이 말했다.“병원으로 보내.”“예.”차에 올라탄 원유희는 유리창에 기대어 차창 밖의 풍경을 보았다.10분 후
공항에 도착하자 검색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모 원수정이 서있었다.그리고 저 멀리서 원유희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경호원들이 원수정을 보고 달려왔다.“고모, 표 주세요!”그녀는 고모에게서 여권과 신분증 그리고 비행기표를 받았다.“유희야, 무슨 일이니?”“교수님이 다시 학교로 복귀하라고 하셨어요. 급한 일이 있으시대요.” 만약 원유희가 임신 때문에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유희야, 연회에서 얼굴만 비추고 그렇게 사라지고는 지금까지 친구네 집에 있다가 고모네 집에는 오지도 않고…… 이렇게 가버리면 너를 언제 또 보겠니? 넌 그 동안 고모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고모의 애처로운 모습에 원유희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도 고모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김신걸이 괴롭히니 그녀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모, 제가 나중에 찾아 뵐게요. 저…… 정말 가야겠어요. 고모 건강하세요.”원유희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응시하며 고모의 손을 놓고 검색대로 달려갔다. “유희야…….” 원수정은 조카가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렇게 급히 찾는다고? 말도 안 돼.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검색대를 통과한 원유희는 급히 비행기에 올라타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온몸의 근육이 저릿했다.순간 원유희는 검색대 앞에 서있던 원수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돌아올 일이 없는데…….’그녀는 고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비행기에는 계속해서 승객들이 탑승했고, 원유희는 혹시 경호원들이 이 비행기에 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잠시 후 안전벨트를 매고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리자 원유희는 기내에 준비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활주로 쪽으로 향했다.원유희는 덜컹거리는 비행기 안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비행기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별로
“이제 길 잃을 일 없겠지?” 유리창 밖으로 김신걸의 악마 같은 얼굴이 보였다.“안 돼…… 난 죽을 수 없어.”원유희는 유리창에 바짝 달라붙어 문틈 사이로 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했다. “제발 풀어줘 난 이대로 죽으면 안 돼. 그냥 내가 네 눈앞에서 사라질게.”그녀의 말은 아무 소용없었다.김신걸의 눈빛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만 같았다.원유희는 숨쉬기 힘든 듯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만 흘렸다.“제발 그만, 이제 도망가지 않을게. 살려줘…….”말을 마친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흐린 시선이었지만 유리창 밖에 있던 긴 그림자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내 아이들. 내가 죽으면 애들은 어떡해.’“으악!” 원유희는 심연 같은 어둠에서 깨어났다. 겁에 질린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낯익은 천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증기실에서 벗어났구나…….’원유희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얼굴을 더듬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온전한 모습의 자신을 보자 그녀는 안도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죽지는 않았지만 죽을 뻔했던 순간이 머릿속에 스치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원유희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까지 했다. ‘만약 내가 해산물 알레르기를 일으켰을 때 김신걸이 나를 그대로 방치했다면, 죽일 생각이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김신걸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어. 아니, 적어도 이렇게 빨리 죽이지는 않을 거야.’사냥감을 잡을 때 목덜미를 물어 한 번에 죽이는 맹수가 있는가 반면에 흥미를 잃을 때까지 가지고 노는 맹수가 있다.김신걸을 후자에 속한다.그러나 이번에 증기실에 갇혀 산채로 익어 죽을 뻔했을 때, 그녀는 김신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살인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무서워…….’그녀는 여권과 신분증을 찾기 위해 침실을 다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김신걸이 가져갔을 것이다. 여권이 없으면 어떻게 이 나라를 떠날 수
예고 없이 열린 욕실 문. 그 앞에 원유희가 앉아있다가 온몸을 덜덜 떨며 천천히 일어났다. 김신걸의 차가운 눈빛에 원유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내 집에서 왜 마음대로 문을 잠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어?”원유희는 반박할 힘도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남월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김신걸의 소유물이며 아무렇게나 쓰고 버려도 괜찮은 노리개이다. “그…… 좀 무서워서.” 원유희가 고개를 숙였다.김신걸은 원유희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시선을 보고 그녀는 핸드폰을 꼭 쥐며 뒤로 숨겼다. 그녀는 김신걸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줄 꿈에도 몰랐고,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랬지!” 김신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 펴졌고, 그가 원유희의 핸드폰을 빠르게 낚아챘다. 핸드폰이 김신걸의 손에 들어가자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이대로 들켜버리면 끝이야…….’김신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저…… 내가 악몽을 꿔서 고모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네가 알면 화날까 봐 안 했어.”그녀는 조금 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통화기록을 삭제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김신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붙이며 “그럼 한번 전화해 봐.”라고 말했다.원유희는 그가 주는 핸드폰을 빤히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널 도망치도록 도와줬는데 내가 그 여자를 가만히 둘 것 같아?” “아니, 아니야! 내가 여권만 가져다 달라고 했어. 고모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고모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네가 싫다면 앞으로 절대 연락하지 않을게.”고모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연락하면 안 되는데…….그러자 김신걸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억지로 핸드폰을 갖다 댔다.“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기억해.”“아…… 알겠어.” 원유희는 눈물을 꾹 참았다. 그 순간 ‘띠리링-’ 느닷없는 벨소리가 욕실에 메아리쳤다.원유희는 혹시 아이들에게 온 연락일까
원유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것도 김신걸의 계획인가?’남자의 등장으로 하동우의 낯빛이 변했다.“이 남자 뭐야?”“유희, 이쪽은 네 새로운 손님? 어쩐지~ 오래 안 보이더라! 이 사람은 돈 얼마 줬어?”낯선 남자의 등장에 원유희는 어안이 벙벙했다.“저기요. 얘한테 얼마 줬어요? 뭐 얼마를 줬던 내가 두 배로 줄게.”원유희는 고개를 돌려 김신걸 쪽을 보았다. 그는 위층에서 술잔을 들고 이 상황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유희야, 이 사람 말이 사실이야?” 허동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설마 이 손님한테 거짓말 했어? 거짓말하고 손님 받은 거야? 저기요, 아저씨. 얘 여기서 일하는 아가씬데? 못 믿겠으면 저기 웨이터한테 물어 봐봐!”허동우는 놀란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저기 웨이터! 이 여자애 알지?” 낯선 남자가 웨이터에게 물었다.“네, 알죠. 여기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가씨입니다.”낯선 남자는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물었다. 모두들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소리를 했다.‘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김신걸의 계획에 일부였어…… 대단한 노력이네 김신걸.’원유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화장실 좀.”그녀는 수치스러움에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김신걸의 허락 없이는 이 클럽에서 나갈 수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바로 뒤이어 하동우가 따라 들어왔다.그는 경멸의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너 이렇게 쉬운 여자였어? 더러워.”원유희는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나랑 연애할 때는 너 혼전순결이라고 손도 못 대게 했잖아! 근데 뭐? 술집 아가씨? 너 지금까지 이러고 산 거야?”“할 말 다 했지?” “아니? 아직 한참 남았어!”“뭐가 더 남았는데?”하동우는 원유희를 거세게 잡아 세면대 위에 눕혔다.“하동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놔?”“왜 나는 안 돼?” 하동우가 힘껏 그녀의 옷을 찢었다.그녀의 찢어진 옷 사이로 희고 부드러운 살갗이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