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순결을 가져간 남자가 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2823 챕터

제21화

신세희는 차갑게 웃으며 임서아를 노려봤다.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떻단 말인가?그녀는 임씨 집안에서 그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걸 진즉에 눈치챘다. 기껏해야 임씨 집안에서 제거하고 싶은 경쟁 대상일 터였다. 그러나 대놓고 사람을 죽일 순 없으니 그녀더러 그 남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나 배웅하라고 보낸 것이겠지. 설령 그 남자가 정말 죽었더라도 그건 방종한 생활을 한 그의 업보이리라. “궁금하지 않아.”“너...”임서아는 다시 한번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그래도 들어야 할 거야. 내가 여기서 모든 진실을 밝힐 테니까. 그래야 네가 미련없이 죽어버릴 거 아냐. 궁금하지 않니? 네가 왜 임씨 집안에서 8년이나 얹혀살아야 했는지, 우리 엄마랑 내가 왜 그렇게 너를 미워하는지. 단지 네가 우리 집안에 빌붙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신세희,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아니나 다를까 신세희는 고개를 들어 임서아를 쳐다봤다.그녀도 줄곧 궁금하긴 했었다. 엄마는 왜 12살 때 그녀를 임씨 집안에 보냈을까, 임씨 집안에서는 왜 그녀를 거둬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그동안 그녀를 괴롭히고 멸시했을까? 게다가 엄마의 죽음에 얽힌 비밀까지... 신세희는 간절히 알고 싶었다.광기 어린 눈으로 신세희를 쳐다보던 임서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왜냐하면 넌 원래...”쾅-거센 소리와 함께 창고의 문이 뜯겨나갔다.이윽고 전신 무장을 하고 손에 연장을 챙긴 수많은 사람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가운데는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성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부... 소경 오빠?”임서아는 놀라서 낯빛이 시퍼레졌다.부소경이 데려온 무리는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신세희를 납치한 무능한 건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바닥을 구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창고에 울려 퍼졌다.그곳에서 유일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이는 혼비백산한 임서아밖에 없었다.부소경은 신세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표정한 얼굴로 기둥에 묶인 신세희를 응시했다. 창백하게 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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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신세희는 하얗게 질린 채 부소경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부소경의 잔인함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 이들이었다. 동정할 필요도 없는 인간들이었다.자신이야말로 하마터면 임서아에게 고문당하다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부소경의 어깨에 기댔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임서아를 바라보는 신세희의 눈빛이 퍽 억울해 보였다.병원으로 실려 간 신세희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의사가 담담하게 말했다.“인대가 좀 늘어나긴 했지만, 다른 곳은 이상 없습니다.”신세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포와 긴장으로 거세게 요동치던 심장도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납치된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아주머니는 무사하실까?’“소경 씨,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주머니는... 괜찮으세요?”신세희는 고마움을 담아 인사했다.“괜찮을 리가!”“아주머니께서 왜... 무슨 일인데요?”“중환자실에 계셔.”그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하숙민은 그동안 신세희의 보살핌에 익숙해졌었다. 신세희가 갑자기 사라지자 하숙민의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허약한 몸인데 더는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처음에 부소경은 팔찌를 얻은 신세희가 그걸 판 돈으로 도망친 줄 알았다. 그래서 신세희를 잡으면 그녀를 아주 갈기갈기 찢어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임서아에게 납치되었을 줄이야.“아주머니께선... 아직 무사하신 거죠? 네?”신세희는 벌벌 떨며 부소경의 손을 잡았다.“제발, 제발 아주머니를 뵙게 해줘요. 당장 가서 뵈어야겠어요.”부소경은 그녀를 중환자실 앞에 데려다주었다. 유리를 통해 온몸에 기계를 주렁주렁 매단 하숙민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의식불명의 상태였다.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그녀에겐 이제 가족이 없었다. 하숙민은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온기였다. 그러나 하숙민도 그녀를 이토록 소중하게 여길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떻게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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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어머니, 죄송해요."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하숙민의 이불 끝을 적셨다. 신세희는 울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신입이라 며칠 출장 가라는 직장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했어요. 제때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내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그런 것을."하숙민은 아직도 몸에 기계를 잔뜩 달고 있었다. 그런 자기 모습을 본 그녀가 쓰게 웃었다."이젠 눈을 감으면 다시 뜰 수나 있을지 걱정되는구나...""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떠나시면 안 돼요. 어머니가 없으면 저는 혼자예요. 이 세상에 더는 제 가족이 없단 말이에요."신세희는 하숙민의 곁에 엎드려 목이 찢어지도록 오열했다.방금 구조된 몸이지만 신세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에 남아 하숙민을 간호했다. 손수 몸을 닦아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손톱을 깎아주기도 했다. 창백하던 하숙민의 안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신세희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오히려 친아들인 부소경은 할 일이 없어졌다. 그저 조용히 옆에서 가짜 고부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밤이 되어 하숙민이 잠든 것을 보고서야 신세희는 부소경과 함께 그들의 저택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신세희는 녹색 팔찌를 내밀었다."이렇게 귀중한 물건은 당신한테 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병원으로 가는 길에 부소경은 신세희에게 팔찌를 다시 건네줬었다. 신세희를 빤히 쳐다본 부소경은 팔찌를 받지 않은 채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그쪽한테 주는 게 아니야. 그걸로 내 어머니를 안심시키라고 그러는 거지."신세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도 당신이 내게 비싼 물건을 줄 거라는 착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부소경 덕분에 구출된 신세희는 부쩍 그에게 말을 많이 건넸다."부소경 씨, 저와 아주머니가 처음 만났을 때요, 아주머니가 먼저 다가오셨어요. 제가 어리고 불쌍하다며 보살펴주시다가 점점 친해지게 된 거예요. 나중에 아주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으셨을 때 무리한 일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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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비가 오나?"부소경이 발코니 앞으로 다가갔다.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한 여인이 무릎을 꿇은 채 비를 맞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부소경은 우산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빠, 오빠... 정말로 내려오셨네요."임서아의 입술은 추위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부소경에게 다가가 그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오빠, 제 말을 한 번만 들어주세요. 듣고 나서 절 때려도 좋고 아무래도 좋아요. 제발 한 번만 해명할 기회를 주세요."비굴하고 비천한 그녀를 보며 부소경은 구역질이 치밀었다. 차라리 어제 자비를 베풀지 말걸.그녀가 몸을 바쳐 자신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자신이 F그룹을 손에 거머쥐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망설임 없이 발길질을 했을 것이다.그러나 임서아에 대한 혐오감은 날따라 늘어나고 있었다.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날 밤처럼 조용하고 절박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2개월 뒤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그녀는 매번 그를 화나게 했다.부소경이 떠날 의사가 없는 걸 확인한 임서아는 아예 그의 발밑에 엎드렸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이 간절하게 그를 쳐다봤다."오빠는 몰랐죠? 사실 나는 오빠가 해외로 쫓겨났을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오빠는 큰일을 할 사람이니까, 가문의 모든 권력을 얻기 전까진 누군가와 교제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그래서 전 조용히 기다렸어요. 오빠를 도와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그러다가 드디어 제게 오빠를 구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제 몸으로 오빠를 구했어요. 하지만 오빠와 결혼하겠다는 꿈은 꾸지도 않았어요. 오빠에게 비하면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니까요.""그렇지만... 오빠가 2개월 뒤에 저와 결혼하겠다면서요. 근데 어떻게 신세희와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요? 대체 누가 이런 걸 견딜 수나 있겠어요. 오빠를 너무 사랑해요. 오빠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건 정말 못 참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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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부태성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는 명령과 부탁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소경아, 그 여자와 엮인 건 네 어미 소원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나와 네 할미가 간단한 집안 모임을 준비했다. 이번 주말에 남성과 서울 명문 집안의 적령기 여자아이들도 연회에 참석할 것이니...""안 갑니다."어르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소경은 매몰차게 거절했다.부태성의 목소리가 어르듯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소경아, 아직 끊지는 말거라. 이 할아비 얘기는 끝까지 들어다오.""......""소경아?""듣고 있습니다.""우리 부씨 가문의 사업에 관해선 내 참견하지 않는다만, 이 할아비 나이가 올해 아흔여섯이란다. 넌 내가 손주며느리와 손자 구경도 못 해보고 눈을 감으면 좋겠더냐? 물론 연회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난다면 정말 좋겠지만, 설령 아니라고 해도 강요하진 않으마."부태성은 거의 간청하고 있었다.부소경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는 임서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그가 임서아에게 말했다."주말 가족 모임에서 할아버님을 뵈어야겠으니 잘 준비해 둬."임서아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렸다."오빠,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저랑 같이 가족 모임에...""그래. 가족 모임에 가서 어르신들을 뵙자고."여전히 무표정한 부소경이 말했다.그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가문 사이 이익 관계에 따른 결혼을 하지도 않을 거고 명문가 아가씨와 눈이 맞는 일도 없을 것이다.비록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임서아를 자신의 유일한 반려로 맞이할 계획이었다. 사랑의 감정은 없지만, 책임은 존재했다. 부소경은 제 어머니에게 평생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는 자신과 밤을 보낸 이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임서아를 평생 함께할 사람으로 정했으니 차라리 그녀를 어르신들께 소개해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연회에 참석한 여자들의 헛된 꿈을 부숴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오빠의 가족을 뵙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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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임서아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오빠..."부소경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엄 비서, 임서아 씨를 댁까지 모시고 가."임서아는 말문이 막혔다.전화를 끊은 부소경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엄 비서가 3분이면 도착할 거고, 집까지 바래다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문이 닫혔다.임서아는 홀로 빗속에 멍하니 서 있었다.정확히 3분 뒤, 엄선우가 도착했다. 차를 이끌고 가까이 다가온 그가 자동차 창문을 조금 열고 임서아에게 말했다."임서아 아가씨, 얼른 타세요. 그러다 젖겠어요.""제 정신이에요?"임서아의 태도가 돌연 사나워졌다.영문을 모르는 엄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나 소경 오빠 약혼녀예요. 감히 기사 주제에... 당장 내려와서 문도 열어주고, 무릎도 꿇어서 내가 편히 탑승하게 도와줘야 할 거 아니에요!"몇 초 후, 엄선우는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고는 한쪽 무릎을 굽힌 자세를 취하며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타시죠."임서아가 고고하게 말했다."이렇게 나와야지."오늘 사건으로 임서아는 깨달은 게 있었다. 그녀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부소경은 그녀와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부소경은 그날 밤 몸을 팔아가면서까지 그를 구해준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굉장한 면죄부를 갖고 있으니 앞으로 신세희를 처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흥!'임서아는 들뜬 기분으로 엄선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한편 위층에 도착한 부소경은 현관을 지나칠 때 샤워실에서 나오는 신세희를 발견했다.방금 목욕을 마친 그녀에게 은은한 향기가 났다.분명 싸구려 비누임에도 향이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고 상큼했다.하얀 샤워타월을 몸에 걸친 신세희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미처 부소경을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그대로 그와 쿵 부딪치며 부소경의 신발까지 밟고 말았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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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부소경은 신세희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그녀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신세희를 훑고 있었다. 그를 세게 밀친 신세희는 샤워타월을 주워 몸을 감싸며 황급히 방으로 돌진했다.문을 닫은 순간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억울한지 몰랐다.헤픈 눈물을 쓱 훔친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갑자기 등 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신세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소경이 약상자를 든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신세희는 샤워타월로 자기 몸을 가리며 그를 경계했다."뭐, 뭐 하자는 건데요?"부소경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몸이 확 뒤집힌 상태로 털썩 침대에 눕게 되었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차가운 약이 등에 닿았다.샤워했을 때 등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을 뿐 자신의 등 상태가 어떠한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약이 발린 자리에 통증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다리에도 멍이 가득했다. 침대에 엎드린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어떻게 등 전체에 약을 펴 발랐는지도 알지 못했다.멍하니 엎드려 있는데 다시 몸이 정면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딱 죽고만 싶어졌다.눈을 꼭 감고 손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이를 악물었다.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가 건달들을 응징하는 걸 직접 본 뒤로 신세희는 감히 그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범하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당장 복잡한 기계 장치가 가득한 그의 방에 쳐들어가 아무렇게나 만져댈 것이라고 다짐했다. 차라리 날카로운 물건에 확 찔려 죽어버리고 말지! 바로 그의 눈앞에서 말이다.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모든 자국에 약을 골고루 바른 부소경은 더는 다음 행동을 이어가지 않았다.신세희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어둡고 서늘한 얼굴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신세희는 한 번도 이런 표정을 짓는 부소경을 본 적 없었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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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고개를 든 신세희는 말간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나비 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신세희는 이 남자가 누군지 몇 초 동안 고민해야 했다."조의찬 씨."디자인 디렉터는 마치 태자 전하라도 본 듯한 태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도련님, 여긴 어쩐 일로...? 혹시 시찰하러 오신 겁니까?""방금 무슨 일이에요?"조의찬이 지나가듯 물었다."학력도 낮고 경험도 전무한 신입이 글쎄 무단결근까지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 회사에 채용할 순 없습니다."디자인 디렉터가 대답했다."앞으로 다시는 무단결근하지 않겠습니다. 현장에서도 열심히 일할게요."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신세희가 애원했다."고작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라면서요? 우리 같은 대기업은 포용력도 넓어야 하잖아요. 신입에게 기회는 줘야죠,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잖아요. 잘못은 고치면 그만이고요, 안 그래요?"건들건들한 태도로 옳은 말만 해댔다.디자인 디렉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의찬이, 이 궁상맞은 여자와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챘다. 조의찬이 감싸는데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가 사무적으로 말했다."다음은 없어요. 이게 다 도련님 덕분인 줄 알아요. 얼른 감사드리지 않고 뭐 해요!"그 말을 들은 신세희는 조의찬에게 고개를 숙였다."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디렉터님, 저는 일하러 가보겠습니다.""일단 자리에 앉아 있어요."디렉터가 말했다."알겠습니다."신세희가 나가자 디렉터는 다시 조의찬에게 공손하게 물었다."도련님, 외람되지만 신세희 씨와는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조금 쉬운 일거리를 맡길까요?"'쉬운 일거리라고?'조의찬은 사무실 속 꽃 같은 여자들을 질리게 봐왔었다. 매번 회사에 올 때마다 그들은 벌떼처럼 몰려와 사근사근 말을 걸었다. 마침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그래서 그는 입맛을 바꾸기로 했다.고분고분한 것 같으면서도 또 차갑고 보수적인 이 가난한 여자가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이 여자는 그저 제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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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적어도..."조의찬은 골목 안 식당들을 둘러봤다. 낡고 볼품없는 외관의 가게들, 똑같은 반찬의 도시락을 먹는 인부들이 눈에 들어왔다.그는 코를 찡그렸다.'깐깐한 여자와 한 번 자보겠다고 별짓을 다 하는군,'"적어도 몇천 원짜리 도시락 한 끼는 사줘야 하지 않겠어요?""좋아요!"신세희가 쿨하게 대답했다.두 사람은 야채 반찬 두 개와 고기반찬 하나가 나오는 도시락 1인분을 주문했다. 찐빵 두 개를 먹은 신세희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조의찬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먹는 걸 지켜봤다.그야말로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담담해서 더 민망했다.밀랍을 씹는 것 같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조의찬은 문득 손을 뻗어 신세희의 말랑한 볼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싶어졌다. 숨 막히도록 품에 꽉 안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때가 되어서도 이런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러나 조의찬은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그는 항상 인내심을 갖고 사냥감을 대했다.카운터에 간 신세희는 뒤늦게 조의찬이 이미 계산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조의찬을 쳐다봤다."미안해요, 내가 사기로 했는데...""고작 몇천 원짜리 도시락으로 대신하려고요? 신세희 씨 아직 돈이 부족한 것 같아서 이번엔 그냥 내가 샀어요. 첫 월급 나오면 꼭 맛있는 거 사줘요."조의찬은 아무 거리낌 없이 돌직구를 던졌다.이곳 운성에서 조의찬은 부소경 말고는 딱히 두려워할 상대가 없었다.남성에서는 모두 조의찬을 무서워했다.신세희는 갑자기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거짓 없이 순수한 웃음에 조의찬은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봤다."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지나치게 솔직하긴 하지만 사실 악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특히 당신 같은 부잣집 도련님들은 말이에요. 의찬 씨는 잘생겼고 성격도 밝으니까 여자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겠죠? 부럽네요."신세희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자기는 가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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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나가요!"신세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허영과 임서아가 자기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아픈 아주머니에게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신세희는 가방을 들어 허영을 내려치려 했다. 그러나 하숙민이 말렸다."세희야..."신세희는 하숙민을 쳐다보며 말했다."어머니, 괜찮아요. 제가 당장 이 사람들을 쫓아낼게요.""내가 불렀단다, 세희야."하숙민이 담담하게 말했다."네?"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허영과 임서아가 겁에 질린 채 병실에 누워있는 하숙민을 쳐다보고 있었다."어머니가요? 대체 왜 부르신 건데요?"신세희는 전혀 영문을 몰랐다.창백한 하숙민의 얼굴에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허영 씨, 임서아 씨.""사모님..."허영은 마치 강한 적수를 마주한 사람 같았다.하숙민이 차갑게 내뱉었다."내가 비록 부씨 집안의 정실은 아니지만, 과연 능력이 없었다면 나와 내 아들이 이 집안에서 무사할 수 있었을까? 당신들이 지난 8년 동안 세희에게 한 짓들은 옛날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겠어. 그렇지만 지금 이 아이는 내 며느리야. 우리 소경이 아내라고! 그런데 네깟 것들이 감히 부씨 집안의 며느리를 납치해서 죽일 뻔했다지? 부씨 가문은 안중에도 없는 게야? 아니면 날 죽은 사람 취급한 건가?"신세희는 깜짝 놀랐다."어머니, 대체 그걸 어떻게..."하숙민은 신세희에게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세희야. 이 어미가 다 해결해 주마. 비록 지금은 이 꼴로 병원에 누워있지만 머리는 아직 멀쩡하게 돌아간단다. 네가 며칠 동안 사라진 건 출장 때문이 아니라 임서아에게 납치된 거야, 그렇지? 뺨을 때린 것도 임서아 짓이지?""어머니...""저 집안에 얹혀살 땐 그렇게 구박하다가, 지금은 또 네가 시집 좀 잘 갔다고 배 아파하고 있구나. 넌 저들에게 정이라도 남아있겠지만 내겐 그저 남일 뿐이야."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내뱉는 말에는 위엄이 넘쳤다.신세희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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