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죄송해요."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하숙민의 이불 끝을 적셨다. 신세희는 울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신입이라 며칠 출장 가라는 직장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했어요. 제때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내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그런 것을."하숙민은 아직도 몸에 기계를 잔뜩 달고 있었다. 그런 자기 모습을 본 그녀가 쓰게 웃었다."이젠 눈을 감으면 다시 뜰 수나 있을지 걱정되는구나...""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떠나시면 안 돼요. 어머니가 없으면 저는 혼자예요. 이 세상에 더는 제 가족이 없단 말이에요."신세희는 하숙민의 곁에 엎드려 목이 찢어지도록 오열했다.방금 구조된 몸이지만 신세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에 남아 하숙민을 간호했다. 손수 몸을 닦아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손톱을 깎아주기도 했다. 창백하던 하숙민의 안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신세희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오히려 친아들인 부소경은 할 일이 없어졌다. 그저 조용히 옆에서 가짜 고부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밤이 되어 하숙민이 잠든 것을 보고서야 신세희는 부소경과 함께 그들의 저택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신세희는 녹색 팔찌를 내밀었다."이렇게 귀중한 물건은 당신한테 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병원으로 가는 길에 부소경은 신세희에게 팔찌를 다시 건네줬었다. 신세희를 빤히 쳐다본 부소경은 팔찌를 받지 않은 채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그쪽한테 주는 게 아니야. 그걸로 내 어머니를 안심시키라고 그러는 거지."신세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도 당신이 내게 비싼 물건을 줄 거라는 착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부소경 덕분에 구출된 신세희는 부쩍 그에게 말을 많이 건넸다."부소경 씨, 저와 아주머니가 처음 만났을 때요, 아주머니가 먼저 다가오셨어요. 제가 어리고 불쌍하다며 보살펴주시다가 점점 친해지게 된 거예요. 나중에 아주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으셨을 때 무리한 일을 하
"비가 오나?"부소경이 발코니 앞으로 다가갔다.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한 여인이 무릎을 꿇은 채 비를 맞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부소경은 우산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빠, 오빠... 정말로 내려오셨네요."임서아의 입술은 추위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부소경에게 다가가 그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오빠, 제 말을 한 번만 들어주세요. 듣고 나서 절 때려도 좋고 아무래도 좋아요. 제발 한 번만 해명할 기회를 주세요."비굴하고 비천한 그녀를 보며 부소경은 구역질이 치밀었다. 차라리 어제 자비를 베풀지 말걸.그녀가 몸을 바쳐 자신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자신이 F그룹을 손에 거머쥐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망설임 없이 발길질을 했을 것이다.그러나 임서아에 대한 혐오감은 날따라 늘어나고 있었다.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날 밤처럼 조용하고 절박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2개월 뒤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그녀는 매번 그를 화나게 했다.부소경이 떠날 의사가 없는 걸 확인한 임서아는 아예 그의 발밑에 엎드렸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이 간절하게 그를 쳐다봤다."오빠는 몰랐죠? 사실 나는 오빠가 해외로 쫓겨났을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오빠는 큰일을 할 사람이니까, 가문의 모든 권력을 얻기 전까진 누군가와 교제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그래서 전 조용히 기다렸어요. 오빠를 도와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그러다가 드디어 제게 오빠를 구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제 몸으로 오빠를 구했어요. 하지만 오빠와 결혼하겠다는 꿈은 꾸지도 않았어요. 오빠에게 비하면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니까요.""그렇지만... 오빠가 2개월 뒤에 저와 결혼하겠다면서요. 근데 어떻게 신세희와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요? 대체 누가 이런 걸 견딜 수나 있겠어요. 오빠를 너무 사랑해요. 오빠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건 정말 못 참겠
부태성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는 명령과 부탁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소경아, 그 여자와 엮인 건 네 어미 소원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나와 네 할미가 간단한 집안 모임을 준비했다. 이번 주말에 남성과 서울 명문 집안의 적령기 여자아이들도 연회에 참석할 것이니...""안 갑니다."어르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소경은 매몰차게 거절했다.부태성의 목소리가 어르듯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소경아, 아직 끊지는 말거라. 이 할아비 얘기는 끝까지 들어다오.""......""소경아?""듣고 있습니다.""우리 부씨 가문의 사업에 관해선 내 참견하지 않는다만, 이 할아비 나이가 올해 아흔여섯이란다. 넌 내가 손주며느리와 손자 구경도 못 해보고 눈을 감으면 좋겠더냐? 물론 연회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난다면 정말 좋겠지만, 설령 아니라고 해도 강요하진 않으마."부태성은 거의 간청하고 있었다.부소경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는 임서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그가 임서아에게 말했다."주말 가족 모임에서 할아버님을 뵈어야겠으니 잘 준비해 둬."임서아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렸다."오빠,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저랑 같이 가족 모임에...""그래. 가족 모임에 가서 어르신들을 뵙자고."여전히 무표정한 부소경이 말했다.그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가문 사이 이익 관계에 따른 결혼을 하지도 않을 거고 명문가 아가씨와 눈이 맞는 일도 없을 것이다.비록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임서아를 자신의 유일한 반려로 맞이할 계획이었다. 사랑의 감정은 없지만, 책임은 존재했다. 부소경은 제 어머니에게 평생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는 자신과 밤을 보낸 이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임서아를 평생 함께할 사람으로 정했으니 차라리 그녀를 어르신들께 소개해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연회에 참석한 여자들의 헛된 꿈을 부숴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오빠의 가족을 뵙는다니,
임서아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오빠..."부소경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엄 비서, 임서아 씨를 댁까지 모시고 가."임서아는 말문이 막혔다.전화를 끊은 부소경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엄 비서가 3분이면 도착할 거고, 집까지 바래다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문이 닫혔다.임서아는 홀로 빗속에 멍하니 서 있었다.정확히 3분 뒤, 엄선우가 도착했다. 차를 이끌고 가까이 다가온 그가 자동차 창문을 조금 열고 임서아에게 말했다."임서아 아가씨, 얼른 타세요. 그러다 젖겠어요.""제 정신이에요?"임서아의 태도가 돌연 사나워졌다.영문을 모르는 엄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나 소경 오빠 약혼녀예요. 감히 기사 주제에... 당장 내려와서 문도 열어주고, 무릎도 꿇어서 내가 편히 탑승하게 도와줘야 할 거 아니에요!"몇 초 후, 엄선우는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고는 한쪽 무릎을 굽힌 자세를 취하며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타시죠."임서아가 고고하게 말했다."이렇게 나와야지."오늘 사건으로 임서아는 깨달은 게 있었다. 그녀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부소경은 그녀와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부소경은 그날 밤 몸을 팔아가면서까지 그를 구해준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굉장한 면죄부를 갖고 있으니 앞으로 신세희를 처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흥!'임서아는 들뜬 기분으로 엄선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한편 위층에 도착한 부소경은 현관을 지나칠 때 샤워실에서 나오는 신세희를 발견했다.방금 목욕을 마친 그녀에게 은은한 향기가 났다.분명 싸구려 비누임에도 향이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고 상큼했다.하얀 샤워타월을 몸에 걸친 신세희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미처 부소경을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그대로 그와 쿵 부딪치며 부소경의 신발까지 밟고 말았다."아...!
부소경은 신세희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그녀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신세희를 훑고 있었다. 그를 세게 밀친 신세희는 샤워타월을 주워 몸을 감싸며 황급히 방으로 돌진했다.문을 닫은 순간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억울한지 몰랐다.헤픈 눈물을 쓱 훔친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갑자기 등 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신세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소경이 약상자를 든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신세희는 샤워타월로 자기 몸을 가리며 그를 경계했다."뭐, 뭐 하자는 건데요?"부소경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몸이 확 뒤집힌 상태로 털썩 침대에 눕게 되었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차가운 약이 등에 닿았다.샤워했을 때 등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을 뿐 자신의 등 상태가 어떠한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약이 발린 자리에 통증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다리에도 멍이 가득했다. 침대에 엎드린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어떻게 등 전체에 약을 펴 발랐는지도 알지 못했다.멍하니 엎드려 있는데 다시 몸이 정면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딱 죽고만 싶어졌다.눈을 꼭 감고 손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이를 악물었다.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가 건달들을 응징하는 걸 직접 본 뒤로 신세희는 감히 그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범하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당장 복잡한 기계 장치가 가득한 그의 방에 쳐들어가 아무렇게나 만져댈 것이라고 다짐했다. 차라리 날카로운 물건에 확 찔려 죽어버리고 말지! 바로 그의 눈앞에서 말이다.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모든 자국에 약을 골고루 바른 부소경은 더는 다음 행동을 이어가지 않았다.신세희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어둡고 서늘한 얼굴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신세희는 한 번도 이런 표정을 짓는 부소경을 본 적 없었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고개를 든 신세희는 말간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나비 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신세희는 이 남자가 누군지 몇 초 동안 고민해야 했다."조의찬 씨."디자인 디렉터는 마치 태자 전하라도 본 듯한 태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도련님, 여긴 어쩐 일로...? 혹시 시찰하러 오신 겁니까?""방금 무슨 일이에요?"조의찬이 지나가듯 물었다."학력도 낮고 경험도 전무한 신입이 글쎄 무단결근까지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 회사에 채용할 순 없습니다."디자인 디렉터가 대답했다."앞으로 다시는 무단결근하지 않겠습니다. 현장에서도 열심히 일할게요."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신세희가 애원했다."고작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라면서요? 우리 같은 대기업은 포용력도 넓어야 하잖아요. 신입에게 기회는 줘야죠,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잖아요. 잘못은 고치면 그만이고요, 안 그래요?"건들건들한 태도로 옳은 말만 해댔다.디자인 디렉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의찬이, 이 궁상맞은 여자와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챘다. 조의찬이 감싸는데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가 사무적으로 말했다."다음은 없어요. 이게 다 도련님 덕분인 줄 알아요. 얼른 감사드리지 않고 뭐 해요!"그 말을 들은 신세희는 조의찬에게 고개를 숙였다."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디렉터님, 저는 일하러 가보겠습니다.""일단 자리에 앉아 있어요."디렉터가 말했다."알겠습니다."신세희가 나가자 디렉터는 다시 조의찬에게 공손하게 물었다."도련님, 외람되지만 신세희 씨와는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조금 쉬운 일거리를 맡길까요?"'쉬운 일거리라고?'조의찬은 사무실 속 꽃 같은 여자들을 질리게 봐왔었다. 매번 회사에 올 때마다 그들은 벌떼처럼 몰려와 사근사근 말을 걸었다. 마침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그래서 그는 입맛을 바꾸기로 했다.고분고분한 것 같으면서도 또 차갑고 보수적인 이 가난한 여자가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이 여자는 그저 제 어머
"적어도..."조의찬은 골목 안 식당들을 둘러봤다. 낡고 볼품없는 외관의 가게들, 똑같은 반찬의 도시락을 먹는 인부들이 눈에 들어왔다.그는 코를 찡그렸다.'깐깐한 여자와 한 번 자보겠다고 별짓을 다 하는군,'"적어도 몇천 원짜리 도시락 한 끼는 사줘야 하지 않겠어요?""좋아요!"신세희가 쿨하게 대답했다.두 사람은 야채 반찬 두 개와 고기반찬 하나가 나오는 도시락 1인분을 주문했다. 찐빵 두 개를 먹은 신세희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조의찬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먹는 걸 지켜봤다.그야말로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담담해서 더 민망했다.밀랍을 씹는 것 같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조의찬은 문득 손을 뻗어 신세희의 말랑한 볼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싶어졌다. 숨 막히도록 품에 꽉 안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때가 되어서도 이런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러나 조의찬은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그는 항상 인내심을 갖고 사냥감을 대했다.카운터에 간 신세희는 뒤늦게 조의찬이 이미 계산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조의찬을 쳐다봤다."미안해요, 내가 사기로 했는데...""고작 몇천 원짜리 도시락으로 대신하려고요? 신세희 씨 아직 돈이 부족한 것 같아서 이번엔 그냥 내가 샀어요. 첫 월급 나오면 꼭 맛있는 거 사줘요."조의찬은 아무 거리낌 없이 돌직구를 던졌다.이곳 운성에서 조의찬은 부소경 말고는 딱히 두려워할 상대가 없었다.남성에서는 모두 조의찬을 무서워했다.신세희는 갑자기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거짓 없이 순수한 웃음에 조의찬은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봤다."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지나치게 솔직하긴 하지만 사실 악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특히 당신 같은 부잣집 도련님들은 말이에요. 의찬 씨는 잘생겼고 성격도 밝으니까 여자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겠죠? 부럽네요."신세희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자기는 가질 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나가요!"신세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허영과 임서아가 자기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아픈 아주머니에게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신세희는 가방을 들어 허영을 내려치려 했다. 그러나 하숙민이 말렸다."세희야..."신세희는 하숙민을 쳐다보며 말했다."어머니, 괜찮아요. 제가 당장 이 사람들을 쫓아낼게요.""내가 불렀단다, 세희야."하숙민이 담담하게 말했다."네?"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허영과 임서아가 겁에 질린 채 병실에 누워있는 하숙민을 쳐다보고 있었다."어머니가요? 대체 왜 부르신 건데요?"신세희는 전혀 영문을 몰랐다.창백한 하숙민의 얼굴에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허영 씨, 임서아 씨.""사모님..."허영은 마치 강한 적수를 마주한 사람 같았다.하숙민이 차갑게 내뱉었다."내가 비록 부씨 집안의 정실은 아니지만, 과연 능력이 없었다면 나와 내 아들이 이 집안에서 무사할 수 있었을까? 당신들이 지난 8년 동안 세희에게 한 짓들은 옛날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겠어. 그렇지만 지금 이 아이는 내 며느리야. 우리 소경이 아내라고! 그런데 네깟 것들이 감히 부씨 집안의 며느리를 납치해서 죽일 뻔했다지? 부씨 가문은 안중에도 없는 게야? 아니면 날 죽은 사람 취급한 건가?"신세희는 깜짝 놀랐다."어머니, 대체 그걸 어떻게..."하숙민은 신세희에게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세희야. 이 어미가 다 해결해 주마. 비록 지금은 이 꼴로 병원에 누워있지만 머리는 아직 멀쩡하게 돌아간단다. 네가 며칠 동안 사라진 건 출장 때문이 아니라 임서아에게 납치된 거야, 그렇지? 뺨을 때린 것도 임서아 짓이지?""어머니...""저 집안에 얹혀살 땐 그렇게 구박하다가, 지금은 또 네가 시집 좀 잘 갔다고 배 아파하고 있구나. 넌 저들에게 정이라도 남아있겠지만 내겐 그저 남일 뿐이야."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내뱉는 말에는 위엄이 넘쳤다.신세희는 그만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