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신이 컵에 담긴 커피를 힐끗 바라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나 인스턴트 안 마셔.”“정말 미안하게 됐어. 우리 집엔 인스턴트밖에 없어서 말이야.”그녀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그때 과일을 들고 다가오던 아주머니가 하필 방금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가씨, 서랍에 제가 금방 사 온 원두 있어요.”진예은이 말을 잇지 못했다.반재신이 겨우 웃음을 참아냈다.“진예은 씨,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이게 뭡니까?”아주머니는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서둘러 해명했다.“도련님, 아가씨 탓이 아니에요. 제가 미처 아가씨한테 새 원두를 사 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제가 당장 한 잔 내려드릴게요.”아주머니를 돌아보는 반재신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웠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가서 볼 일 보세요.”가사도우미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갔다.그가 포크를 들고 과일을 콕 집어 맛본 후,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진예은을 힐끗 바라보았다.“아주머니를 봐서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다행이야. 그럼 그거 먹고 꺼져.”진예은이 몸을 휙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던 반재신은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과일 접시를 멀찍이 밀어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정원 밖에서 점점 멀어지는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진예은이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젖혀보았다. 정원에 주차해두었던 차가 드디어 사라진 걸 확인하고 커튼을 닫아버렸다.연서가 자기 키만큼 큰 곰인형을 안고 문 앞에 나타났다.“고모, 아빠는?”진예은이 아이한테 다가가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웅크려 앉았다. 그녀가 아이의 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연서야, 아까 그 사람은 네 아빠가 아니야.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함부로 불러서는 안돼. 알았지?”연서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아직 부모에 대한 인식이 없는 아이는 온전한 가족이 어떤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크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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