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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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왜 굳이 손으로 베껴야 해? 그냥 프린트하면 되잖아. 정 안 되면 알바라도 쓰든가!”강시유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더니 노형원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나 요즘 진짜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한소은 그 계집애 때문에 스트레스 폭발이라고!”애교 섞인 목소리에 똘망똘망한 표정의 강시유를 보는 순간 노형원의 마음은 사르륵 녹아내렸다.노형원은 바로 강시유를 품에 와락 끌어안더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알잖아. 데이터 분석은 컴퓨터로 한다고 해도 기본 데이터는 아직 손으로 베끼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혹시 알바한테 맡겼다가 필적 감정이라도 진행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도 우리 시유 고생하는 모습 보면 마음이 아파. 그래도 어쩌겠어. 이번 소송은 무조건 이겨야 해. 소송에서 지는 순간 우리 시원 웨이브는 끝이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응?”말을 마친 노형원은 강시유의 이마에 쪽 뽀뽀를 날렸다.그럼에도 강시유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이게 다 한소은 그 계집애 때문이잖아. 기자회견에서 쓸데없는 소리만 안 했어도 대회에서 우승도 했을 테고 투자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텐데...!”말을 마친 강시유가 노트를 책상에 홱 던져버렸다.노형원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불평이나 하고 있을 대가 아니었다. 한소은이 이렇게 나온다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배신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뜻, 사태를 수습하고 승소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한소은 뒷담화는 그 뒤에 실컷 해도 충분하니까.그 뒤로 노형원은 한참 동안 강시유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그제야 강시유는 노트를 베끼기 시작했다.드디어 고분고분해진 강시유의 모습을 바라보던 노형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유한테 맡겼어. 원고 확인했는데 문제는 없더라.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통화를 마치고 커다란 창문으로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는 노형원의 눈앞에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36층에 자리 잡은 사무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위해 온갖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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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만남도 갖지 못할 거라 생각지 못한 한소은은 어안이 벙벙했다.비서는 조현아 팀장이 회의 중이라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고 아직 신생의 정식 직원이 아닌 한소은은 들어갈 명분조차 없었다.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뭔가 결심한 듯 한소은은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비서가 부랴부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렇게 막 들어가시면 안 됩...”“누가 들어오라고 했죠?”고개를 힐끗 든 조현아가 입을 열었다.“지금 회의 중인 거 안 보여요? 외부인은 나가주시죠!”“정식 입사 절차도 밟았고 기획팀으로 발령까지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기획팀 팀원이니 외부인이라고 할 수 없죠.”말을 마친 한소은은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하, 이것 봐라?생각보다 세게 나오는 상대의 모습에 조현아는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한소은을 노려보았다.“글쎄요. 아직 난 한소은 씨를 기획팀 팀원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는데요?”두 여자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다른 팀원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팀장의 반대에도 대표가 굳이 한소은의 입사를 허락했다는 소식은 이미 신생 기획팀에 쫙 퍼진 상태였다.표절 사건으로 논란이 있는 인물, 게다가 리스크를 떠안을 정도로 학력이나 커리어가 뛰어난 여자도 아니다. 그런데 차기 부장 후보라고 인정받을 정도로 엘리트인 조현아 팀장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억지로 한소은을 입사시켰다는 건 아마... 두 사람의 관계가 회사 대표와 사원 그 이상이라는 말이겠지.능력은 둘째치더라도 남자 후리는 수단은 뛰어난 게 분명했다. 차도남 대표님의 마음을 이 정도로 구워삶을 수 있다니.“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절 팀원으로 인정해 주실 거죠? 테스트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한소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선재 말대로 조현아는 까칠하고 직설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능력도 뛰어나고 친해지면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라고 하니 신생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최대한 빨리 그녀의 오해를 푸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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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흔쾌히 승낙하는 한소은의 모습에 조현아도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한소은의 당당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낙하산을 완전히 쳐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비록 신생은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회사지만 환아라는 대기업의 서포트를 받고 있다 보니 입사한 직원들 모두 내놓으라 하는 엘리트들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낙하산이 갑자기 나타나다니.고지식한 조현아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종양 덩어리 같은 여자를 어떻게 기획팀에서 쳐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한소은 쪽에서 먼저 미끼를 덥석 물었으니 미소가 절로 나올 수밖에.“좋습니다. 난 한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은 질색이니 알아두시고요.”혹시나 말을 바꿀까 싶어 조현아는 한 마디 덧붙였다.“걱정하지 마세요. 한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저도 최악이니까요.”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눈썹을 씰룩거리던 조현아가 의자의 방향을 살짝 돌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가까이 와봐요.”사실 회의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한소은은 조현아의 앞에 놓인 향수를 발견했다. 똑같은 용기에 담긴 똑같은 양의 향수, 아마 신제품 테스트 중이었겠지.하나의 완벽한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의 테스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테스트에서 가장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바로 조향사의 예민한 후각이었다.“이 세 샘플은 이번 우리 회사 신제품 테스트에서 탈락한 제품들이에요. 시향해 보고 왜 탈락했는지 이유를 말해 봐요.”조현아의 말에 다른 팀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상사의 뜻을 눈치챈 팀원들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이게 테스트인가요?”조현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한소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한소은은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녀를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는걸, 억지로 끼워 넣은 테스트에서 망신을 당하길 바라고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그녀의 전 회사와 그녀가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는 건 뉴스에서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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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한소은의 말에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무리 여자한테 미쳤다지만 설마 신제품 정보까지 빼돌린 건가?나름대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조현아를 바라보며 한소은은 말을 이어갔다.“세 샘플은 사실 같은 제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세 향수에 들어간 원료 중 다른 건 단 하나뿐이니까요. 하지만 그 단 하나의 향료 때문에 세 가지 가능성으로 나뉜 거겠죠.”“그래요?”조현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의 한소은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소 지었다.그럼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잘난 척은.하지만 한소은은 그런 조현아의 태도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덤덤한 표정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보통 사람들이 시향했다면 아마 큰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차이겠지만 조향사라면 단번에 눈치챌 수 있겠죠. 베이스 노트에 들어갈 향료가 바뀌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향을 낼 테고... 굳이 저더러 세 샘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신다면...”한소은은 손을 뻗어 가장 오른쪽의 제품을 가리켰다.“이 제품을 선택하겠습니다. 18세부터 23세의 젊은 여성 고객층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네요.”한소은의 말에 순간 정적이 일었다.조현아는 여전히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확신해요?”“네, 확신합니다.”대답하는 한소은의 말투에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조현아는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까지 조롱과 비웃음으로 가득하던 조현아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서렸다.“이 정도 대답에 만족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향료를 썼는지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샘플에 사용된 향료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읊는 한소은의 모습에 팀원들의 두 눈은 더 휘둥그레졌다.아무 능력 없는 낙하산인 줄만 알았던 여자가, 표절 사건으로 소송까지 치르고 있는 여자가 조 팀장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건 물론 이렇게 훌륭한 기량을 보여줄 줄이야.팀원들 중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하지만 한소은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테스트가 시작된 순간부터 훌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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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첫 번째 테스트는 통과예요.”이미 예상했던 바지만 한소은은 괜히 놀란 척 되물었다.“첫 번째 테스트요?”조현아가 웃음을 터트렸다.“그럼 이렇게 간단한 테스트 하나 넘었다고 기획팀에 들어올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우리 신생을, 기획팀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요? 신생에 입사한 직원들 모두 필기에 1차 면접, 2차 면접까지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한소은 씨만 예외일 수는 없죠.”조현아가 한소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조현아는 유명 대회 우승과 훌륭한 커리어를 가진 채 경력직으로 지원했음에도 필기, 면접까지 거친 뒤에야 입사할 수 있었다.그렇게 신생에 입사하고 차기 부장 후보에까지 오르면서 수많은 핵심 프로젝트를 담당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낙하산이 등장한 건 처음이었다.그런데 한소은... 네가 뭔데? 아니,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한소은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능력 없는 낙하산은 절대 그녀의 팀에서 그녀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예외를 원한 적도 바란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절 테스트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한소은은 조현아의 날카로운 비난에 부끄러워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한소은은 그런 여자였다. 청초한 미모와 침착한 성격이 어우러져 상대의 마음을 어느새 사르르 녹게 만드는 사람.“맞아요. 그리고 앞서 했던 말대로 방금 전은 첫 번째 테스트에 불과해요.”그럼에도 조현아가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쉽게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집 때문이었다.방금 전 테스트는 꽤 난이도가 있기도 했고 한소은은 향수에 든 향료를 전부 맞추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운이 따라준 걸 수도 있다고 조현아는 생각했다.한소은,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나? 이제부터는 좀 더 진지해져야겠어.“좋아요. 그럼 문제를 더 내주시죠. 전 준비됐습니다.”말을 마친 한소은은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조현아의 눈을 똑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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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한소은, 여리여리한 몸매에 온화한 표정이지만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묘한 가시가 돋쳐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상황만 보더라도 십분 전까지 낙하산 직원을 응징하는 훌륭한 상사에서 불쌍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마녀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총 세 라운드입니다.”조현아는 이를 악물었다.“다른 직원들도 필기시험, 1차, 2차 면접까지 총 세 라운드를 거쳐서 입사했으니 한소은 씨도 그 정도 테스트는 받아야죠?”그제야 허리를 다시 세운 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당연히 받아야죠.”“그럼 두 번째 테스트는 뭐죠? 아니면 방금 전 테스트는 그저 기본 테스트였고 지금부터 정식 테스트인 건가요?”한소은의 진지한 질문에 조현아는 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조현아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가 이끄는 팀원들이 모두 앉아있는 자리에서 한낱 어린 낙하산 여자애한테 밀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방금 전 질문은 연습 문제에 불과했다고 다시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는데... 오히려 한소은이 선수를 치니 입장이 괜히 난처해졌다.“방금 전에 첫 번째 라운드를 통과했다고 했잖아요? 연습 테스트는 없어요. 우리 신생을 뭐로 보고!”“뭐로 보다니요? 제가 앞으로 열정을 바쳐 일할 회사로 보고 있죠.”한소은은 단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됐어요. 그런 아부는 넣어둬요. 그런 전략은 나한테 안 먹히니까.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테스트는 앞선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려울 테니 각오해 둬요.”“걱정하지 마세요. 전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팀장님처럼요.”팀장님처럼이라는 단어에 일부러 더 강조하는 한소은의 모습에 조현아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좋아요.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다들 나가봐요.”조현아의 말에 방금 전까지 팝콘 각을 세우고 있던 직원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고 곧 조현아와 한소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마지막 팀원이 회의실 문을 닫는 순간, 조현아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두 팔을 올려 기지개를 켰다.“오늘은 운이 꽤 좋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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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일이요?”조현아는 고개를 저었다.“아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니 기획팀 일원이라 할 수 없고 기획팀 팀원이 아니니 일을 맡길 수도 없어요.”잠깐 멈칫하던 조현아가 말을 이어갔다.“물론 굳이 여기 있고 싶다면 청소라도 하든가요. 그래도 괜찮겠어요?”“아니요. 괜찮지 않습니다. 전 조향사예요. 제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향수를 개발하는 일이지 청소가 아닙니다. 청소부를 비하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적어도 신생에 청소부로 들어온 건 아니니 그럴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3일 안에 테스트 내용을 공지해 주겠다고 하셨고 그 사이에는 저에게 일을 맡길 수도 없다고 하셨으니 전 팀장님 소식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싱긋 미소 짓던 한소은이 말을 이어갔다.“아, 참. 만약 3일 뒤에도 테스트 문제를 보내주지 않으시면 절 기획팀 팀원으로 받아들이신 것으로 생각하고 다음 날부터 바로 출근하겠습니다.”당당한 한소은의 모습에 조현아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직급으로 기를 눌러놓으면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게 거절하다니.손과 코를 아끼는 건 프로 조향사로서 훌륭한 자세이긴 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한소은은 그녀에게 부탁을 하는 입장이 아닌가? 왜 저렇게 당당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한소은이 회의실에서 나와 회사를 나서자 기획팀 팀원들은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모두들 한소은이 조 팀장과 독대한 뒤 회사를 나서는 걸 보고 딜이 실패했을 것이라 추측했고 이 소문은 기획팀을 넘어 신생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물론 한소은은 그런 헛소문 따위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설령 오해가 있다 해도 언젠가 풀릴 일, 지금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했다.3일이라는 시간이 생겼으니 노형원 쪽의 일부터 완벽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어.차에 탄 한소은의 벨 소리가 울렸다.“여보세요. 한 소은 씨 되십니까?”낯설지만 예의 바른 목소리였다.“네, 누구시죠?”“전 시원 웨이브 담당 변호사입니다. 노형원 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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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고민도 없이 패소할 게 분명한 고소를 선택하는 한소은의 모습에 변호사는 당황한 듯 잠깐 침묵하다 곧 말을 덧붙였다.“한소은 씨, 지금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시나 봅니다. 패소하신다면 사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시원 웨이브 쪽에서 정식으로 피해 보상금을 요구할 테고 운이 안 좋으면 구속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심이 어떠실지? 지금 제 의뢰인인 노형원 씨도 단순히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는 것뿐이니...”“아니요. 노형원한테 전하세요. 사과는 꿈도 꾸지 말라고.”한소은은 변호사의 말을 바로 끊어버렸다.“그리고 전 절대 패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법정에서 뵙는 걸로 알고 이만 끊겠습니다.”웃기는 자식. 조작한 자료들과 매수한 증인들로 날 밟아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지금까지 그녀가 노형원의 그날 아래에 있으면서 불평 한 마디 없었던 건 노형원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노형원의 성공이 곧 그녀의 성공이라 생각했기에 기꺼이 그의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노형원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노형원 앞에서 더 이상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집으로 돌아온 한소은은 현관에 놓인 김서진의 신발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쯤이면 회사에 있어야 할 텐데...거실로 들어가니 김서진도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지 정장 재킷만을 벗은 상태였다.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보이는 섹시한 쇄골에 한소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한편, 김서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태블릿을 보고 있느라 한소은이 집에 온 지도 모르는 눈치였다.“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한소은이 슬리퍼를 갈아 신으며 물었다.“밥 아직 안 먹었죠?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요.”말을 마친 한소은이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김서진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아니요. 일단 이쪽으로 와봐요.”소매를 걷어올린 한소은은 진지한 김서진의 표정을 발견하고 다가갔다.“왜요? 회사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내가 회사 일 따위로 고민할 사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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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액정에 비친 것은 폭로 전문 너튜버가 올린 영상이었다.피식 미소를 짓던 한소은이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당신 이런 너튜브도 봐요? 의외네요?”하지만 김서진은 그녀의 눈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눈빛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한소은은 태블릿을 들어 영상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너튜버가 올린 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한소은 그녀였다.한소은 그녀의 실명까지 밝힌 영상은 그녀가 대학교에 입학한 뒤로 지금까지의 인생사를 모두 닮고 있었다. 그중 가장 집중적으로 다룬 건 바로 그녀와 노형원, 강시유 세 사람 사이의 관계였다.게다가 어그로를 끌기 위한 타이틀은 더더욱 자극적이었다.“바람녀가 판치는 세상”영상을 확인한 한소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화가 난다기보단 이렇게 허접한 수단까지 사용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이었다.그의 추잡한 수작은 자료를 조작하고 증인들을 매수하는 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너튜버까지 매수해 여론까지 조작하려 하다니. 노형원, 당신 날 정말 사랑하긴 한 거야? 아니면 지금 당신이 가진 명예와 재부가 우리의 추억들을 이렇게 매도할 정도로 중요한 거야?“이게 도대체...”다시 한번 영상의 내용을 확인하던 한소은이 김서진을 바라보았다.“이 내용을 정말 믿어요?”이런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건 바로 김서진의 생각이었다.“안 믿어요. 이렇게 황당한 루머를 내가 믿을 리가 없잖아요?”김서진은 태블릿을 꺼버린 뒤 한소은을 품에 꼭 안았다. 바다처럼 깊은 눈빛으로 한소은을 바라보던 김서진이 물었다.“화났어요?”한소은은 고개를 저은 뒤 김서진의 목을 더 꼭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안기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한소은이었다.김서진이 정말 영상의 내용을 믿었다면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겠지. 그런데 이 남자 도대체 왜 그녀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걸까? 누구라도 혹할 만큼 잘 꾸며진 이야기인데... 도대체 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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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한소은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신생은 환아의 계열사일 뿐이잖아요? 본사 대표와 계열사 기획팀 팀장... 뭐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죠. 갑자기 부르면 깜짝 놀라서 기절할지도 몰라요.”“풉.”오버스러운 한소은의 말투와 표정에 김서진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그렇게 높은 사람이에요? 아주 마음에 드는 아부였어요. 상을 내려야겠는걸요?”“무슨 상이요?”한소은이 눈빛을 반짝였다.“어떤... 상을 원하는데요?”김서진의 섹시한 목소리가 한소은의 귓가에 울렸다.순간 당황한 한소은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그건...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일, 일단 밥부터 먹어요. 나 배고프단 말이에요.”한소은은 도망치 듯 주방으로 뛰어가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서진의 표정이 곧 차갑게 굳었다.아무런 근거도 없는 루머뿐이라지만 그의 여자를 이렇게 모욕하는 건 견딜 수 없었다.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그 대가는 제대로 치러야겠지?한편, 손을 씻고 냉장고를 연 한소은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음료수나 즉석식품 정도나 들어있을 줄 알았던 냉장고에는 싱싱한 채소부터 고기, 온갖 소스까지 없는 게 없었다.일하는 아주머니는 이틀에 한 번씩 와서 청소만 해주신다 했고...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봤을 것 같이 생긴 김서진이 설마 직접 요리라도 하는 건가? 한소은은 고개를 갸웃했다.이리저리 재료의 상태를 살피던 한소은은 자세한 건 식사를 하며 묻기로 하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워낙 바쁘기도 했고 남자친구의 바람에 소송까지 밥맛이 뚝뚝 떨어지는 일들만 일어나다 보니 김서진과 함께 외식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끼니를 제대로 챙긴 적이 거의 없다 보니 집밥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다.집밥이라면 갈비찜이 빠질 수 없는 법. 일단 한소은은 냉장고에서 꺼낸 손질한 갈비의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담근 뒤 채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거실에서 이런저런 파일을 검토하던 김서진은 아직도 잠잠한 부엌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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