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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1화

황자들의 성격“형수한테 사과 했어?” 제왕이 물었다.주명취는 제왕을 보고 마음속으론 병신이라고 욕을 했지만 겉으로는 한숨을 쉬며: “이게 어디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될 일인가요?”“사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긴 하지, 엄밀히 말해 이 일은 당신이랑 무관하니까.” 제왕은 주명취가 진심으로 혜정후가 저지른 일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서 위로했다.주명취는 마음이 콩밭에 간 상태로 응대하며 우문호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예를 취하며, “호 오빠, 당숙을 대신해서 사과 드려요,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초왕비가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불행 중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미안해서 죽을 뻔 했어요.”울음 섞인 주명취의 목소리는 처량하고 혜정후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서렸다.우문호는 주명취를 보고: “왕비는 상처가 상당히 심해서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제왕비도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당신과 무관하니까요.”주명취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 졌다.우문호가 비록 너그럽게 받아주었지만 원경릉의 상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떨떠름하게 웃으며, 넋이 나간 채로 앉는데 애처로운 눈빛에 슬픔이 어려 있다.이어서 황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주명취는 듣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음을 다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둘째야, 듣자 하니 네가 다섯째를 경조부 부윤으로 천거했다면서.” 기왕이 갑자기 물었다.손왕이 고개를 들고 천천히, “맞아요, 아바마마께서 나에게 할 거냐 말 거냐 하셔서, 난 당연히 안 한다고, 그래서 다섯째를 추천했습니다.”“흥, 못난 녀석.” 기왕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주제를 정확히 아는 거죠.” 손왕이 매정하게 딱 잘라 반박했다.제왕이 호기심에: “둘째형은 왜 싫은데?”“내 능력 밖이야.”“둘째형 겸손했네, 둘째형이 문무 겸비한 걸 다 아는데……” 제왕이 말하면서 자기도 웃으며 그래, 이건 너무 비꼬는 거 같다.손왕이 제왕을 한 번 째려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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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2화

여인의 식사 예절과 혼절한 주명취원경릉은 사실 나와서 같이 밥 먹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그게 가능한 게, 원경릉이 상처가 심하게 아프다거나 신체적인 원인으로 환자식을 먹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상궁이 말한 것이 떠올라 기왕비를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비는 도대체 두 얼굴인지 아니면 가면이 여러 개 인지 말이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오는 것을 보고 안색이 어제보다 안 좋은 듯하니 눈살을 찌푸리며, “약 먹었어?”“먹었어요.” 원경릉이 답했지만 그녀가 먹은 건 자기가 조제한 약으로 어의가 처방한 건 딱 한 모금 마시고 구실을 대서 쏟아버렸다.“정말 먹었으면 다행이겠지만, 가서 확인해보고 몰래 버렸으면 그땐 두고 봅시다.” 우문호는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원경릉이 목을 움츠리며, “안 그래요.”우문호는 정말 위협하고 있고, 원경릉도 진짜 소심한데 이 대화가 주명취의 귀에는 남녀가 “’꽁냥꽁냥’ 하는 것처럼 들렸다.원경릉이 자리에 앉자 우문호는 그녀의 왼쪽에, 주명취는 원경릉의 오른쪽에 그 옆은 제왕이, 다음은 기왕비, 기왕 그리고 손왕 순이다.하인이 들어와 식사 시중을 들려 하자, 손왕이 크게 손을 한번 내저으며, “오늘 형제가 모여 식사하는 자리니 시중들 필요 없다, 다들 나가봐.”하인이 요리를 집어오는 게 얼마나 느린지 원, 또 마음에 딱 들지도 않아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집는 것만 못하다.현대에서 원경릉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식탁 예절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손왕처럼 후루룩 먹어 치우지 않는다. 원경릉은 지금까지 자기가 교양 있게 먹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주명취와 기왕비가 식사하는 것을 보고 원경릉은 자기가 얼마나 우악스럽게 먹었는지 깨달았다.주명취는 입을 살짝만 벌려 앞니 두개만 살짝 보이고 젓가락으로 집는 양이…… 원경릉이 한 번 세 보니 쌀알 다섯 알이다. 고작 이 정도로 작게 입에 넣고 입을 다물고 씹어서 천천히 목으로 넘기는데 이 동작이 얼마나 고상한지, 특히 밥알이 목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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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3화

화가나서 자리를 뜬 기왕 부부제왕은 ‘아’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빈혈일까요?”제왕은 원경릉을 보고, “그럼 형수님이 들어와서 도와주세요.”우문호는 한 손으로 원경릉의 팔목을 잡고, “우선 사랑채로 옮깁시다. 초왕부에 어의가 있으니 바로 어의에게 가라고 명하겠습니다.”“좋아요!” 제왕이 주명취를 안고 달려 나가고 기상궁이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모두 다시 앉았지만 식욕이 없다, 손왕만 빼고 말이다.기왕비가 웃으며: “결혼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둘 거라 생각도 못했네요.”손왕이 먹으면서 말하길: “어떻게 안 급합니까? 지금 우리 형들이 아직 전부 아들을 못 낳았잖아요.”기왕비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럼 둘째 아주버님이 힘내시면 되겠네요.”“전 그러죠, 형도 힘내셔야 됩니다.” 손왕이 먹는 틈틈이 기왕을 흘끔 보며, “형 애가 타지?”기왕은 방금 젓가락을 들었다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내려놓으며 엄숙하게: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면 되지, 그렇게 공격할 필요 없잖아. 난 너한테 잘못한 게 없는 걸로 아는데.”“없어.” 손왕이 계면쩍어 하며 고개를 들고, “난 말하는 게 늘 이런 식이야. 언제 공격했다고 그래? 아들 낳는 거에 애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애탄다고.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한 거야. 형은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기왕이 ‘흥’하더니 기왕비를 끌고: “말이 안 통하네. 가자!”기왕비가 미안해 하며 원경릉에게: “그럼 우리 먼저 갈게요.”원경릉이 예를 취하며, “조심히 가세요.”형제들이 모인 식사는 유쾌하지 못하게 마무리 되었으나 원경릉은 기뻤다. 적어도 이제 밥은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원경릉이 앉아 손왕에게: “저분들이 안 드셨으니 우리가 많이 먹어요, 낭비하지 말고요, 전부 신선한 채소와 고기잖아요.”“나도 사실 배가 부르지만 이렇게 많은 요리를 재료도 최고급을 사용한데다 궁중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인데 안 먹으면 낭비군요, 조금만 더 먹죠.”우문호는 안 먹고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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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4화

손왕과 원경릉손왕은 식탁에 가득한 빈 그릇을 보며 그만 화가 났다. 또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죄책감이 진하게 피어 올라 애꿎은 원경릉을 원망하며, “요리 3개만 준비하라니까 왜 이렇게 많이 했어요? 이렇게 잔뜩 차려서 낭비하느라 백성이 뼈가 부서지게 일하고 피를 빨리는 거 아닙니까. 재수씨는 흡혈모기예요 흡혈모기.”욕을 다 뱉고나서 배를 내밀고 헉헉거리며 돌아갔다.원경릉은 가만 있다가 욕만 얻어 먹고 정신이 멍한 채로, “누가 아주버님을 저렇게 많이 드시게 했어요?”사실 원경릉이 제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그녀가 흡혈모기란 말이야? 사실 손왕 아냐?원경릉은 우문호를 보고, “둘째 아주버님 머리가 좀 이상하신 거 아냐?”우문호가 진지하게, “응.”그럼 됐다.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과는 싸우는 거 아니다.기상궁이 와서 아뢰길: “제왕과 제왕비 마마께서는 벌써 가시며 쇤네에게 대신 전하라 하셨습니다.”원경릉은 묻는 김에: “제왕비 마마 몸은 괜찮으셔?”기상궁이: “어의 말로 제왕비께서는 울화가 오른 것일 뿐이라 합니다. 화기운이 일시적으로 심장에 무리를 줬지만 돌아가셔서 조리하시면 괜찮다고 했습니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자 우문호가 일어나 나가는데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다.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닌 척 하긴!원경릉은 기상궁에게 식탁에 음식 좀 챙겨서 이따가 다바오 밥 주라고 하고, 마당에서 다바오와 놀고 있는데 탕양이 오는 게 보인다. “왕비마마, 왕야께서 가서 쉬라고 하십니다.” “쉰다고? 나 안 피곤해!” 원경릉은 다바오와 신나게 논 탓에 좀 더워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안 피곤하시다고요?” 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왕야께서 안 피곤하시면 금강경을 백 번 필사 하라고 하셨습니다.”원경릉이 손을 가지런히 내리고, “그러고보니 좀 피곤하네, 그럼 난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을 테니 탕대인이 가서 왕야에게 좀 전해줘.”“알겠습니다!” 탕양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원경릉은 돌아가 침대에 엎드려 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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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5화

우문호의 동생 회왕의 병원경릉이 돌계단에 앉아 있고 다바오는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사람 하나 강아지 한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손왕이 와서 아무렇 게나 되는 대로 계단 한쪽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아는 척을 해도 답이 없다.“왜 그래요?” 원경릉이 물었다. “또 살 빼요?”“아니!”“배고파요? 그럼 아주버님께 뭘 좀 만들어드리라고 하게요.”“안 넘어가!”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먹보가 밥이 안 넘어간다고? 이거 심각한데.“무슨 일이 에요?” 원경릉이 다바오의 머리를 두드리며 한쪽으로 보냈다.다바오는 게으른 몸뚱이를 이끌고 느릿느릿 걸어갔다.손왕이 옆으로 원경릉을 보며, “다섯째가 얘기 안 해? 여섯째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여섯째? 원경릉은 그제서야 그 가엾은 회왕, 우문회가 생각났다.우문회와 우문호는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우문호는 우문회보다 한 달 형으로, 우문회는 노비 마마 소생으로 2년전 병이 나서 왕부를 하사 받은 후 왕부밖으로 한 걸음도 나와보지 못했다.“여섯째 도련님…..무슨 병이시죠?” 원경릉이 물었다.“폐병!”“폐병이요? 폐결핵이에요?”“응!”원경릉이 웃으며, “결핵은 치료가 가능하고 죽을 병도 아닌 걸요, 가망이 없긴 뭐가 없어요.”손왕은 원경릉을 힐끔 보더니, “너 능력 좋네, 폐병도 낫게 하고, 어의도 너만큼 능력은 안되나 보다.”원경릉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에 폐병은 절망적인 병으로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상황이 심각한가요?” 원경릉이 물었다.손왕이 허탈하게: “아바마마께서 이미 사람을 시켜 여섯째의 후사를 준비하게 하셨고, 내가 보니 이미 관도 집에 준비되어 있더군. 올해 초 아바마마께서 황릉에 여섯째를 위한 묘를 수리하게 하셨는데 아마 지금쯤 다 고쳐졌겠지. 앞으로 여섯째는 침릉(寢陵)에 살게 되겠지, 형제가 백리를 떨어져 지내게 되겠구나.”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회왕 입장에서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이 아직 살아있는데, 몇 개월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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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6화

손왕은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다섯째는 아마 기분이 썩 좋지 않겠군요. 그는 황자(皇子)들 중에서 회왕(懷王)과 사이가 제일 좋으니까요.”우문호는 저녁 무렵 회왕부에 들렀다가 돌아온 뒤, 저녁밥도 먹지 않고 서재에만 틀어박혀있었다.원경릉은 오후에 손왕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와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지금까지도 배가 불렀다. 그녀는 삼시 세끼를 옛날 사람들이 먹던 대로 먹으니 질려서 MSG가 그리워졌다.우문호가 서재에 박혀 나오지 않는 틈을 타서 그녀는 약 상자를 꺼내 안에 있는 약들을 정리했다.내성 결핵 마이신, 리팸핀, 에탐부톨, 피라진아마이드는 약 상자 안에 새로 생긴 약들이다. 그녀는 이 약들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초기 폐결핵은 치료 기간이 3개월 내지 반년이다. 하지만 회왕이 언제 병에 걸린지 모를뿐더러 결핵균이 다른 곳으로 전염이 됐는지도 의문이었다. 약상자 안의 약은 10일 동안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일단 항생제 치료가 시작되면 내성 때문에 중도에 약을 끊거나 멈출 수 없다. 만약 이 기간에 복용을 한 번이라도 놓친다면 내성이 생겨 완치될 가능성이 적었다.그녀는 약 상자 안의 폐결핵 항생제가 계속해서 생겨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약 상자의 약품들은 원경릉의 통제 밖이었기에 만약 약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면 회왕을 치료하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회왕이 폐결핵 합병증에 걸렸을 가능성이다.사실 회왕이 병에 걸린 것과 원경릉은 전혀 관련이 없다. 그냥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는 죽음을 맞이하면 될 것이고, 원경릉은 회왕의 장례에 가서 부조금을 내고 향을 피우고, 눈물 몇 방울 흘리면 될 일이었다.하지만 그녀가 회왕의 치료에 개입한 상태에서 그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죽게 된다면……이는 황실의 일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서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없다. 만약 치료 도중에 회왕이 죽는다면 원경릉도 회왕의 무덤에 산채로 같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생각을 하자 원경릉은 태상황을 치료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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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7화

“너희 내외도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 손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싸우지만 않아도 좋은 부부라고 할 수 있죠.”“너희는 자주 싸우느냐?”“그럴 리가요? 저희 사이 좋습니다. 저를 얼마나 아끼시는데 어찌 저에게 손찌검을 하겠습니까?” 원경릉이 문을 열고 들어가며“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옷만 갈아입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회왕의 병이 악화되자 평소 사이가 좋든 안 좋든 형식적으로라도 얼굴을 비춰야 한다는 의무감에 황실에 있는 친인척들과 형제들이 회왕부로 찾아왔다. 원경릉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거의 모든 황친(皇亲)들이 모여있었고,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으며, 공주들도 몇 명 와있었다.손왕이 먼저 들어갔고, 원경릉은 사람이 너무 많아 밖에서 배회하는 수 밖에 없었다. 밖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우문호를 보지는 못했다. 그녀가 문 앞에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눈가가 붉어진 채로 나오는 주명취를 발견했다. 주명취는 원경릉은 보더니 휙 하고 지나가버렸다. 뒤이어 낙평공주, 진평공주 그리고 그녀들은 전용 부마(驸马) 두 명이 밖으로 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눈시울에도 공주들은 도도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었다. 원경릉은 한쪽으로 물러나 서있었고, 네 사람은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곧장 대문을 지나쳤다.잠시 후, 몸종이 회왕의 모친인 노비(鲁妃)를 부축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노비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눈과 코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그녀는 걸어 나오는 내내 “불쌍한 내 아가!”라고 소리내며 흐느꼈다.원경릉은 노비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가늠조차 잡히지 않았다. 원경릉은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녹주야. 우리 가자!” 원경릉이 말했다.“왕비. 안 들어가십니까?” 녹주가 물었다.“안 갈래.” 원경릉은 회왕을 마주한다면 태상황 때와 같이 자신이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두려웠다. 그녀는 하는 일마다 운이 좋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나섰다가 회왕을 치료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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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8화

“왜 그러느냐?”우문호가 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보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어……. 저는 둘째 아주버님을 따라 와서, 돌아갈 방편이 없습니다.”“그럼 편청에 가서 본왕을 기다리거라. 본왕도 곧 돌아갈 참이니 데려다 주겠다.”“그럼 정원에서 기다리겠습니다.”오다보니 정원에 바람이 솔솔 불어서 생각 정리하기 좋을 것 같았다.“정원 쪽은 바람이 많이 분다. 편청으로 가서 기다리거라!” 우문호가 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알겠습니다.” 원경릉은 녹주와 함께 자리를 떴다.그녀는 겉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우문호의 말을 듣지 않고 정원으로 갔다. 호수 근처 풀밭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귀 밑 머리카락이 휘휘 날렸다. 녹주는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주위를 살폈다. 방금 왕야가 왕비를 몸을 걱정해서 편청에 가있으라고 한건데, 왜 왕비는 말을 듣지 않고 정원으로 와서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풀밭에 앉아 있는지 녹주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왕비님 배가 고프십니까? 쇤네가 가서 먹을 것을 좀 가지고 올까요?”“응!” 원경릉은 잠깐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 그냥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녹주는 알겠다고 하며 종종 걸음으로 먹을 것을 가지러 갔다.원경릉은 반짝이는 호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햇빛이 드리운 호수 표면은 금빛 조각들이 흩어진 듯 반짝거렸고, 근방엔 휘날리는 버들잎과 활짝 핀 가을 국화들이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하지만, 회왕에게는 이런 세상을 볼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원경릉은 한숨을 내쉬었다. 약 상자만 좀 도와준다면 회왕의 병을 치료해 볼 만 한데 말이다.“초왕비.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지금 초왕께서 왕비에게 잘 해주지 않습니까?”이게 세상의 이치인가? 항상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주명취가 자리를 뜨길 바랐다.주명취는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계속 그녀의 옆에 서있었다. 원경릉은 딴청을 하며 바닥만 보았다. 그러자 주명취의 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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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9장

도대체 무엇이 점잖은 주명취를 이렇게 저속한 말까지 하게 만들었을까?원경릉은 주명취의 손을 뿌리치며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표정에 자극받은 주명취가 원경릉에게 달려들더니 원경릉의 목을 옭아매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여리여리해 보이던 주명취에게 장사 같은 힘이 숨겨져 있었다니.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원경릉은 저항도 못하고 맥없이 주명취에게 끌려갔다. 원경릉은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버둥거리며 살기위해 애를 썼지만, 주명취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물속으로 누르는 바람에 차가운 호숫물이 그녀의 입, 코, 귀로 들어왔다. 그녀는 턱턱 막히는 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원경릉은 주명취를 밀어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주명취는 그녀의 머리를 누르며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원경릉은 참을 수 없어 자신에 머리에 꽂힌 비녀를 뽑아 주명취를 마구 찔렀다. 그제서야 주명취가 잡고 있던 원경릉의 머리채를 놓았다. 원경릉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재빠르게 머리를 수면 밖으로 내밀고는 숨을 헐떡거렸다. 수면 위에는 핏발이 흩어져 있었으며, 주명취가 천천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명취의 얼굴이 의기양양해 보였다. 원경릉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호숫가 부근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왕비가 물에 빠졌다! 왕비가 물에 빠졌다!” 원경릉은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온건지 의문이 들었다. 마치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주명취가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달려와서는 자신과 주명취를 물 밖으로 건져 올렸다.“초왕비, 초왕비! 괜찮으십니까?” 누군가가 원경릉의 뺨을 두드리며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주명취도 얼마 가지 않아 물 밖으로 건져졌다. 주명취의 몸 군데군데에 비녀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상처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람이 몰려있는 것을 보고 제왕(齐王)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달려왔다. 제왕은 주명취를 끌어안고 다급하게 외쳤다. “어찌 물에 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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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0화

원경릉은 몸을 웅크린 채 코맹맹이 소리로 외쳤다.“욕하려면 해! 하지만 때리지는 마! 이번엔 나도 필사적으로 싸울 준비가 돼있어! 그리고 내가 맹세하건데 난 절대 주명취를 물속으로 밀지 않았어! 걔가 미쳐가지고 나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 거야! 걔가 내 머리를 눌러서 물속으로 가라앉게 했다고! 나도 어쩔 수 없어서 비녀로 찌른 것뿐이야!”우문호는 억울해하는 원경릉을 보며, 자신이 어쩌다 이런 미친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했을까 생각했다.“날 믿지 않는다는거 알아. 네가 내 숨소리도 듣기 싫어한다는 거 나도 안다고! 넌 그 주명취를 좋아하잖아! 그 여자가 발냄새가 난다고 해도 그마저도 향기롭다고 여길 너라는거 알아!”“입 닥쳐!” 우문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또 때리려고?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원경릉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원경릉은 말을 마치자마자 달려들어 우문호의 목덜미를 물었다.“이런 미친 여자가!” 화가 난 우문호가 그녀를 밀쳐냈다. 그의 목에는 핏멍울이 맺혀 있었다.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 그녀에게 던졌다.“본왕이 언제 너를 때리려고 했느냐? 난 그저 네가 추워하길래 내 옷을 벗어주려고 한 것뿐이야.”“네가 그럴리가 있어?” 원경릉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래, 네 기대에 부응해주마. 본왕이 너를 죽여버리겠다!” 우문호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원경릉은 멋쩍은 표정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그럼 말을 하고 주면 되지. 왜 내 옷깃을 잡아 올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우문호는 그녀를 외면한 채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경릉은 코가 간지러워 수차례 재채기를 했다. 이러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그녀는 천천히 젖은 옷을 벗으며 우문호를 노려보더니 “보지 마.” 라고 말했다.“누구는 보고 싶은 줄 알아?” 우문호가 버럭했다.원경릉은 재빨리 그의 옷을 걸치고 몸을 감싼 뒤, 자신의 옷소매에서 약 상자를 꺼내 비타민C를 한 알 삼켰다. 그녀는 옷을 비틀어 물기를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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