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이 점잖은 주명취를 이렇게 저속한 말까지 하게 만들었을까?원경릉은 주명취의 손을 뿌리치며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표정에 자극받은 주명취가 원경릉에게 달려들더니 원경릉의 목을 옭아매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여리여리해 보이던 주명취에게 장사 같은 힘이 숨겨져 있었다니.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원경릉은 저항도 못하고 맥없이 주명취에게 끌려갔다. 원경릉은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물속에서 버둥거리며 살기위해 애를 썼지만, 주명취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물속으로 누르는 바람에 차가운 호숫물이 그녀의 입, 코, 귀로 들어왔다. 그녀는 턱턱 막히는 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원경릉은 주명취를 밀어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주명취는 그녀의 머리를 누르며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원경릉은 참을 수 없어 자신에 머리에 꽂힌 비녀를 뽑아 주명취를 마구 찔렀다. 그제서야 주명취가 잡고 있던 원경릉의 머리채를 놓았다. 원경릉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재빠르게 머리를 수면 밖으로 내밀고는 숨을 헐떡거렸다. 수면 위에는 핏발이 흩어져 있었으며, 주명취가 천천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명취의 얼굴이 의기양양해 보였다. 원경릉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호숫가 부근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왕비가 물에 빠졌다! 왕비가 물에 빠졌다!” 원경릉은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온건지 의문이 들었다. 마치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주명취가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달려와서는 자신과 주명취를 물 밖으로 건져 올렸다.“초왕비, 초왕비! 괜찮으십니까?” 누군가가 원경릉의 뺨을 두드리며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주명취도 얼마 가지 않아 물 밖으로 건져졌다. 주명취의 몸 군데군데에 비녀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상처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람이 몰려있는 것을 보고 제왕(齐王)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달려왔다. 제왕은 주명취를 끌어안고 다급하게 외쳤다. “어찌 물에 빠진
원경릉은 몸을 웅크린 채 코맹맹이 소리로 외쳤다.“욕하려면 해! 하지만 때리지는 마! 이번엔 나도 필사적으로 싸울 준비가 돼있어! 그리고 내가 맹세하건데 난 절대 주명취를 물속으로 밀지 않았어! 걔가 미쳐가지고 나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 거야! 걔가 내 머리를 눌러서 물속으로 가라앉게 했다고! 나도 어쩔 수 없어서 비녀로 찌른 것뿐이야!”우문호는 억울해하는 원경릉을 보며, 자신이 어쩌다 이런 미친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했을까 생각했다.“날 믿지 않는다는거 알아. 네가 내 숨소리도 듣기 싫어한다는 거 나도 안다고! 넌 그 주명취를 좋아하잖아! 그 여자가 발냄새가 난다고 해도 그마저도 향기롭다고 여길 너라는거 알아!”“입 닥쳐!” 우문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또 때리려고?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원경릉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원경릉은 말을 마치자마자 달려들어 우문호의 목덜미를 물었다.“이런 미친 여자가!” 화가 난 우문호가 그녀를 밀쳐냈다. 그의 목에는 핏멍울이 맺혀 있었다.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 그녀에게 던졌다.“본왕이 언제 너를 때리려고 했느냐? 난 그저 네가 추워하길래 내 옷을 벗어주려고 한 것뿐이야.”“네가 그럴리가 있어?” 원경릉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래, 네 기대에 부응해주마. 본왕이 너를 죽여버리겠다!” 우문호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원경릉은 멋쩍은 표정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그럼 말을 하고 주면 되지. 왜 내 옷깃을 잡아 올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우문호는 그녀를 외면한 채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경릉은 코가 간지러워 수차례 재채기를 했다. 이러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그녀는 천천히 젖은 옷을 벗으며 우문호를 노려보더니 “보지 마.” 라고 말했다.“누구는 보고 싶은 줄 알아?” 우문호가 버럭했다.원경릉은 재빨리 그의 옷을 걸치고 몸을 감싼 뒤, 자신의 옷소매에서 약 상자를 꺼내 비타민C를 한 알 삼켰다. 그녀는 옷을 비틀어 물기를 빼
“회왕은 정말 재수도 없지.” 원경릉은 이 말을 마치고 시원하게 재채기를 했다.“속옷도 다 젖었을 텐데 왜 벗지 않아?” 우문호가 찝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원경릉은 코를 비비며 “됐어. 마차 안에서 벗기 불편해. 곧 도착할텐데 뭐.”“왜 내외하고 그래? 서로 볼거 다 봤으면서.”“나도 네가 보는거 아무 감흥 없어.” 어쨌든 이 몸은 원주(原主)것이니까 주의하는 것일 뿐이다.우문호는 흥 하며 눈을 감았다.“나 약간 토 할 것 같아.” 원경릉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갑자기 그 호수에 빠졌을 때 맡았던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 원경릉이 호수 바닥에서 발버둥칠 때, 호숫물과 함께 진흙도 같이 입으로 들어왔는데 그때의 그 냄새가 났다. 아마 주명취도 적지 않게 마셨을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주명취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원경릉을 모함하기 위해서 죽음도 무릅쓰지 않는구나.우문호는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여기 기대서 좀 쉬어.”라고 말했다.무뚝뚝하던 그가 이렇게 자상하게 행동할 때마다 원경릉은 당황해서 뚝딱거렸다. 그러나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눈을 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고마워.”머리를 천천히 기대려고 하는데 갑자기 우문호가 휙 몸을 숙이는 바람에 원경릉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그러게 누가 아까 내 목덜미를 깨물랬어?”우문호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원경릉은 부딪힌 머리를 손으로 비비며 몸을 일으키며 우문호를 보았다.“어휴 쪼잔하게 진짜!”사람이 어쩜 이렇게 못됐을까?“원수는 반드시 갚는다. 받은 만큼 꼭 돌려준다.”우문호가 말했다.아까 물에 빠졌을 때, 주명취가 계속 머리를 짓눌렀고, 지금은 우문호의 꾀에 넘어가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오늘 뇌세포가 얼마나 죽었는지 모르겠다.우문호는 그녀가 계속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머리를 다쳤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놀란 그는 그녀의 머리를 잡아 당겨 자신의 허벅지에 눕히더니 “어디 상처 좀 보자.” 라고 말했다
우문호는 자세를 바로 앉더니 천천히 손을 움직여 방석 위에 앉아 있던 원경릉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이대로 움직이지도 말고, 다가오지도 마……!’당황한 눈빛의 원경릉도 긴장한듯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허공을 바라보았다. 온 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손끝이 손에 닿자 그녀는 몸이 움츠러들었다.근데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손끝만 닿았는데? 두 사람은 이미 부부의 연을 맺은 상태이다. 이렇게 손만 닿았을 뿐인데 밀어내는게 더 이상한거 아닌가?그리고 요즘은 사이가 좋으니, 친구라고 생각해도 되는거 아닐까? 친구끼리 손도 스치고 하니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근데 심장은 왜 이렇게 빠르게 뛰는 걸까?마차 안의 공기가 달아오르는 것도 잠시 마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서일이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우문호는 재빨리 손을 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왕야 왕비! 도착했습니다!” 서일이 말했다.눈치 없기로 유명한 서일이니 당연히 마차 안의 분홍빛 공기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우문호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원경릉은 헐렁한 그의 외투를 부여잡고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우문호는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 당겨 그녀와 몸을 바짝 밀착했다. 그 순간 원경릉의 손 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른해졌고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몇걸음도 걷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서일이 손을 뻗어 원경릉의 젖은 옷가지를 들어주려고 하자 우문호가 이를 한 손으로 낚아챘다.“오!” 서일은 우문호가 더러운 옷들을 가져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우문호는 옷을 녹주에게 던져주며 “왕비에게 생강탕을 끓여 가져다주거라.” 라고 말했다.봉의각에 도착한 원경릉은 창밖의 회화나무를 바라보던 원경릉의 마음은 여전히 찝찝했다.주명취를 물속으로 떠민 범인이 내가 아니라는 걸 우문호는 어떻게 안거지? 그가 주명취를 믿지 않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다.“왕비. 생강탕 드십
원경릉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녹주야. 왕야에게 몇 명의 첩이 있는지 아느냐?”소월각에 우문호를 보필하는 시녀들이 몇 명 있긴한데, 외모도 괜찮았던 것 같고, 설마 그 시녀들이 첩이었나?“그 일은 쇤네가 알지 못합니다. 소월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저희 봉의각에서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근데 아마 없지 않을까요? 첩이 있다면 아마 위에서 통지가 있었을 겁니다. 만약 왕야께서 첩이 있다는 것을 숨기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원경릉은 그의 성격이라면 아마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혈기왕성한 젊은 남성이라면 첩 한두명 정도 들이는 것도 정상적인 시대이다.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원경릉은 갑자기 느껴지는 가슴 통증에 허리를 숙였다. 아직 호숫물을 마신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가슴을 다독이며 생강탕을 한 입 마셨다.“녹주야. 내가 물색해 줄게. 그만 무릎 꿇고 일어나거라.” 원경릉은 손을 뻗어 녹주를 일으켰다.녹주는 감동해 눈물을 훔쳤다. 원경릉은 녹주와 대화를 나눈 뒤,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천천히 남은 생강탕을 마셨다. 원경릉은 녹주에게 그릇을 치우라고 시켜 밖으로 내보낸 뒤, 약 상자를 꺼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염원했다.“만년필이 필요해……”그녀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약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만년필이 아닌 연필만 몇 자루 들어있었다. 약 상자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걸까?“리팸핀이 필요해……” 그녀는 다시 한번 시도했다.약 상자를 다시 열어보니 리팸핀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원래 약 상자에 있던 수량 그대로지, 한개도 증가하지 않았다. “덱사메타손 약!”그녀가 약 상자를 세차게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니 덱사메타손 연고가 들어 있었다.“덱사메타손 알약이라고!”그녀는 약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보고는 실소가 터졌다. 치질 연고 한개와 관장약이 나왔다.약 상자가 이렇게 말을 듣지 않으니 회왕의 병은 치료해 줄 수가 없구나. ‘회왕, 저는 최선
한 번도 제왕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는 주명취가 어쩌다 이렇게 변한걸까? 제왕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혼인을 한 이래로 그녀는 온화하고 신중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심지어 하인들에게도 허세를 부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늙은 상궁들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그랬던 그녀가 이렇게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다니.‘아마 많이 놀랐을 거야.’제왕은 주명취를 꼭 안아주며 “괜찮다. 흥분하지마라.” 라고 말했다.주명취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녀 스스로도 지금 추태를 부리는 것을 인식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왕은 단순해서 이렇게 추태를 부려도 절대 자신을 싫어하지 못할 것임을 주명취는 안다. 사실 제왕도 남편감으로 나쁘지 않다. 현재 부황에게 가장 총애를 받고 있으며,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다.그녀는 문득 호숫가에서 자신이 원경릉에게 내뱉은 천박한 말들이 떠올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자신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저급한 말들이 튀어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경릉이 왜 너를 호수로 떠밀었느냐? 그 여자 정말 미친거 아니야?” 제왕이 물었다.주명취는 방금 전에 벌어진 일들을 회상했다. 그녀는 회왕부(懷王府)에서 원경릉이 호수 부근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원경릉을 호수로 떠밀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주명취는 살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원경릉을 호수로 밀었는데, 계산을 잘못해 자신도 같이 호수에 빠진 것이다. 물에 빠지는 순간에 그녀는 조부(祖父)의 말이 떠올라 몸이 벌벌 떨리며 살인 충동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왕 물에 빠진거 원경릉을 이대로 살려두기는 싫었다. 그녀는 원경릉의 머리를 힘껏 수면 아래로 눌렀다. 원경릉이 강하게 반항을 하며 주명취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것을 우문호에게 보여줘 원경릉의 나쁜 심보를 증명하고, 주명취의 상처를 본 우문호가 원경릉을 더욱 증오할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걸까?’“원경릉은 구제불능이야. 본왕은 당시에 그녀가 좀 바뀐 줄 알았는데.” 제왕이
제왕도 태자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왕은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알고 있었다. 한 국가가 그의 손에 달렸다면, 과연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그렇다고 기왕이 태자가 되어 정권을 잡는다면, 한 구석으로 물러서 국정에 신경쓰지 않고 한가한게 왕 노릇이나 할 수 있을까? “태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두 계략을 세우고 있을 겁니다. 심지어 초왕비도 수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권력 쟁탈전 뿐 아니라 생사가 걸린 싸움입니다. 만약 제왕께서 태자 자리에는 오르지 않겠다고 두 손을 든다고 해도, 제왕은 적자(嫡子)이기에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기왕이 만약 태자가 된다면 조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자기 편으로 포섭할테지만, 적자인 당신과 모후는 절대 포용하지 않을겁니다.”주명취가 진지한 표정으로 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제왕은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본왕이 잘 생각해 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라고 말했다. 이전에 그도 이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 기왕이 다섯째 형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 그가 시간을 핑계로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회왕부에서 두 왕비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이 왕실에 자자하게 퍼졌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화가 난 사람은 노비(鲁妃) 마마였다.회왕의 병세가 좋지 않아 오늘 내일 하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녀가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그녀는 울면서 명원제를 찾아가 이 일을 보고했다.“초왕비라는 사람은 정말 너무한거 아닙니까? 제왕비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면 밖에서 해결할 것이지, 왜 제 아들이 있는 회왕부에서 이런 음침한 짓을 저지른 겁니까. 만약 그 일로 회왕부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회왕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지 않습니까?”노비(鲁妃)는 흐느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명원제는 가뜩이나 아들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노비가 이런 추접
냉정언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제 아무리 세상 이치를 통달한 수재라도해도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황제께서 제왕비는 부르지 않고, 초왕비에게만 입궁하라고 명하셨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는 황제가 신경 쓸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짐이 초왕비를 입궁하라고 명한 것은 잘 한 일인가?”명원제는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잘하고 못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초왕비가 입궁했을 때, 변명도 들을 필요없이 그녀가 저지른 죄의 죗값을 치루게 하면 됩니다. 죗값은 황제께서 정하시면 되겠네요.”“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느냐?”“소인의 생각을 그렇습니다.”“그게 옳다고 생각하냐고!”“…… 예 그렇습니다.”명원제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으면서, 왜 냉정언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걸까.명원제는 냉정언의 대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경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먼저 죄를 물어야 겠군. 그녀가 속죄하는 방법은 회왕의 병을 고치는 것 뿐. 짐은 이번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일단 원경릉의 죄를 사면해 줘야겠어. 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죄를 묻는거지. 경의 생각이 참 좋구만!”“폐하의 찬사에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라며 냉정언이 바둑판을 만지작거리더니 “그럼 한판 더 두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다.명원제는 손을 저었다. “뭘 또 바둑을 둬? 자네는 요즘 일이 없느냐? 정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지금 젊은이들을 좀 봐! 얼마나 학문에 몰두하는지! 자네 이러다가 점점 뒤떨어진다? 짐을 위해서 학문을 소홀히 하지 말거라!”명원제의 말을 듣고 냉정언은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두 시간 후, 원경릉이 어서방으로 불려왔다. 그녀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명원제 그녀를 노려보며 “왕비의 행동 하나하나가 황실을 대표하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회왕부에 문병을 하러 가면서도 그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
목여 태감은 필요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사실 우문호는 그가 힘들까 봐 걱정되어 그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태상황을 그렇게 오랜 세월 모셨으니 그의 노고가 매우 컸고, 그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계속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뛰어난 데다 신체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를 쉬게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현재 어서방이든 소월궁이든, 그가 비록 그곳에 있긴 했지만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시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매번 그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문호가 그를 늙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태감!” 원경릉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늦게 주무시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셨네. 몸에 열이 많은 것 같은데, 태감이 보기에 어의를 불러 몇 해열탕을 몇 첩 지어야 할 것 같소?”목여 태감은 긴장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열이 오르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의를 불러 맥을 짚어 봐야 합니다.”“맥을 짚을 필요는 없네. 내가 보아하니 열이 오른 것 같네. 태감이 약 몇 첩을 지어 잘 달인 뒤 어서방으로 보내 주시게.” 목여 태감이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아주 바빠 보였다. 다시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원경릉은 몇 자 적고는 녹주를 시켜 어서방으로 보내 우문호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의정 논의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들여보냈고, 그의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녹주는 쪽지를 받아 어서방 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틈이 생기자 어전 시위에게 전달하며 황제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이어서 황후 마마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덧붙였다.우문호는 오늘 대신들과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가 이전에 발탁했던 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잠시 미뤄 두게. 짐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으니…”“정말 급한 일입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탕양은 말을 마치자마자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몸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치듯 달려갔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정말 재빠르게 도망치는군. 누가 잡아먹겠다고 했나, 그저 속마음을 좀 털어놓으려 했을 뿐인데. 저 이기적인 놈, 내 또 누구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목여 태감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폐하, 탕 대인께서는 폐하께서 잔소리하실까 봐 그러시는 겁니다!” “짐이 언제 잔소리를 했단 말이냐? 몇 번…아니 열몇 번, 많아야 백 번 정도 말했을 뿐이지 않나?” 우문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네 그럼요, 폐하께서는 잔소리하지 않으십니다!” 목여 태감이 웃으며 말했다. 황제가 탕 대인을 매우 아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황제는 그가 홀로 밖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며, 집에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짐이 그를 설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사람마다 뜻이 있는 법이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면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사람의 일생이란, 정말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붙잡아야 하는 법 일세.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어 한평생을 되돌아보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겠나?”“짐도 잔소리가 좀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저 이 일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야. 감정적인 일은 억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급하구나.”목여 태감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이전 사례로 보아 황제는 또 한동안 탕 대인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터였다. 탕 대인 일이라면 황제가 탕 대인보다 더 안달복달이었다.정말이지, 태감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황제만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우문호는 소월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원경릉은 책을 보면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