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녹주야. 왕야에게 몇 명의 첩이 있는지 아느냐?”소월각에 우문호를 보필하는 시녀들이 몇 명 있긴한데, 외모도 괜찮았던 것 같고, 설마 그 시녀들이 첩이었나?“그 일은 쇤네가 알지 못합니다. 소월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저희 봉의각에서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근데 아마 없지 않을까요? 첩이 있다면 아마 위에서 통지가 있었을 겁니다. 만약 왕야께서 첩이 있다는 것을 숨기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원경릉은 그의 성격이라면 아마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혈기왕성한 젊은 남성이라면 첩 한두명 정도 들이는 것도 정상적인 시대이다.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원경릉은 갑자기 느껴지는 가슴 통증에 허리를 숙였다. 아직 호숫물을 마신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가슴을 다독이며 생강탕을 한 입 마셨다.“녹주야. 내가 물색해 줄게. 그만 무릎 꿇고 일어나거라.” 원경릉은 손을 뻗어 녹주를 일으켰다.녹주는 감동해 눈물을 훔쳤다. 원경릉은 녹주와 대화를 나눈 뒤,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천천히 남은 생강탕을 마셨다. 원경릉은 녹주에게 그릇을 치우라고 시켜 밖으로 내보낸 뒤, 약 상자를 꺼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염원했다.“만년필이 필요해……”그녀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약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만년필이 아닌 연필만 몇 자루 들어있었다. 약 상자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걸까?“리팸핀이 필요해……” 그녀는 다시 한번 시도했다.약 상자를 다시 열어보니 리팸핀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원래 약 상자에 있던 수량 그대로지, 한개도 증가하지 않았다. “덱사메타손 약!”그녀가 약 상자를 세차게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니 덱사메타손 연고가 들어 있었다.“덱사메타손 알약이라고!”그녀는 약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보고는 실소가 터졌다. 치질 연고 한개와 관장약이 나왔다.약 상자가 이렇게 말을 듣지 않으니 회왕의 병은 치료해 줄 수가 없구나. ‘회왕, 저는 최선
한 번도 제왕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는 주명취가 어쩌다 이렇게 변한걸까? 제왕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혼인을 한 이래로 그녀는 온화하고 신중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심지어 하인들에게도 허세를 부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늙은 상궁들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그랬던 그녀가 이렇게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다니.‘아마 많이 놀랐을 거야.’제왕은 주명취를 꼭 안아주며 “괜찮다. 흥분하지마라.” 라고 말했다.주명취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녀 스스로도 지금 추태를 부리는 것을 인식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왕은 단순해서 이렇게 추태를 부려도 절대 자신을 싫어하지 못할 것임을 주명취는 안다. 사실 제왕도 남편감으로 나쁘지 않다. 현재 부황에게 가장 총애를 받고 있으며,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다.그녀는 문득 호숫가에서 자신이 원경릉에게 내뱉은 천박한 말들이 떠올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자신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저급한 말들이 튀어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경릉이 왜 너를 호수로 떠밀었느냐? 그 여자 정말 미친거 아니야?” 제왕이 물었다.주명취는 방금 전에 벌어진 일들을 회상했다. 그녀는 회왕부(懷王府)에서 원경릉이 호수 부근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원경릉을 호수로 떠밀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주명취는 살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원경릉을 호수로 밀었는데, 계산을 잘못해 자신도 같이 호수에 빠진 것이다. 물에 빠지는 순간에 그녀는 조부(祖父)의 말이 떠올라 몸이 벌벌 떨리며 살인 충동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왕 물에 빠진거 원경릉을 이대로 살려두기는 싫었다. 그녀는 원경릉의 머리를 힘껏 수면 아래로 눌렀다. 원경릉이 강하게 반항을 하며 주명취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것을 우문호에게 보여줘 원경릉의 나쁜 심보를 증명하고, 주명취의 상처를 본 우문호가 원경릉을 더욱 증오할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걸까?’“원경릉은 구제불능이야. 본왕은 당시에 그녀가 좀 바뀐 줄 알았는데.” 제왕이
제왕도 태자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왕은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알고 있었다. 한 국가가 그의 손에 달렸다면, 과연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그렇다고 기왕이 태자가 되어 정권을 잡는다면, 한 구석으로 물러서 국정에 신경쓰지 않고 한가한게 왕 노릇이나 할 수 있을까? “태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두 계략을 세우고 있을 겁니다. 심지어 초왕비도 수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권력 쟁탈전 뿐 아니라 생사가 걸린 싸움입니다. 만약 제왕께서 태자 자리에는 오르지 않겠다고 두 손을 든다고 해도, 제왕은 적자(嫡子)이기에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기왕이 만약 태자가 된다면 조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자기 편으로 포섭할테지만, 적자인 당신과 모후는 절대 포용하지 않을겁니다.”주명취가 진지한 표정으로 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제왕은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본왕이 잘 생각해 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라고 말했다. 이전에 그도 이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 기왕이 다섯째 형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 그가 시간을 핑계로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회왕부에서 두 왕비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이 왕실에 자자하게 퍼졌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화가 난 사람은 노비(鲁妃) 마마였다.회왕의 병세가 좋지 않아 오늘 내일 하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녀가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그녀는 울면서 명원제를 찾아가 이 일을 보고했다.“초왕비라는 사람은 정말 너무한거 아닙니까? 제왕비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면 밖에서 해결할 것이지, 왜 제 아들이 있는 회왕부에서 이런 음침한 짓을 저지른 겁니까. 만약 그 일로 회왕부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회왕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지 않습니까?”노비(鲁妃)는 흐느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명원제는 가뜩이나 아들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노비가 이런 추접
냉정언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제 아무리 세상 이치를 통달한 수재라도해도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황제께서 제왕비는 부르지 않고, 초왕비에게만 입궁하라고 명하셨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는 황제가 신경 쓸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짐이 초왕비를 입궁하라고 명한 것은 잘 한 일인가?”명원제는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잘하고 못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초왕비가 입궁했을 때, 변명도 들을 필요없이 그녀가 저지른 죄의 죗값을 치루게 하면 됩니다. 죗값은 황제께서 정하시면 되겠네요.”“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느냐?”“소인의 생각을 그렇습니다.”“그게 옳다고 생각하냐고!”“…… 예 그렇습니다.”명원제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으면서, 왜 냉정언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걸까.명원제는 냉정언의 대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경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먼저 죄를 물어야 겠군. 그녀가 속죄하는 방법은 회왕의 병을 고치는 것 뿐. 짐은 이번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일단 원경릉의 죄를 사면해 줘야겠어. 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죄를 묻는거지. 경의 생각이 참 좋구만!”“폐하의 찬사에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라며 냉정언이 바둑판을 만지작거리더니 “그럼 한판 더 두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다.명원제는 손을 저었다. “뭘 또 바둑을 둬? 자네는 요즘 일이 없느냐? 정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지금 젊은이들을 좀 봐! 얼마나 학문에 몰두하는지! 자네 이러다가 점점 뒤떨어진다? 짐을 위해서 학문을 소홀히 하지 말거라!”명원제의 말을 듣고 냉정언은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두 시간 후, 원경릉이 어서방으로 불려왔다. 그녀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명원제 그녀를 노려보며 “왕비의 행동 하나하나가 황실을 대표하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회왕부에 문병을 하러 가면서도 그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구나.’원경릉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가 궁을 나옴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회왕의 병을 치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비록 그녀는 앞으로 절대 아픈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그녀는 만약 자신이 회왕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해도 황제가 그녀에게 벌을 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만 마음한켠엔 노비(鲁妃)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다.노비……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원경릉은 입궁한 김에 건곤전에 들렀다.오늘 태상황은 기운이 넘쳐보였다. 원경릉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태상황은 손에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태상황님. 지금 무얼하고 계십니까?” 원경릉은 호기심에 다가가서 물었다.태상황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맞혀보거라!”“빨래 건조대를 만드시는 겁니까?” 그가 들고있는 긴 막대가 마치 빨래 널기 딱 좋아보였다.“빨래 건조대? 그게 무슨 말이냐?” 태상황은 계속 나무를 다듬으며 말했다.“그럼 이게 뭐예요?” 원경릉은 그의 손에 들린 나무를 한참을 보았다.“모르겠지? 선물이다! 네 거야!” “저에게 주신다고요?”원경릉은 의아했다.이왕 하사할 물건이라면 금이나 은으로 된 비싼걸 주시지 뭔 나무토막 만들다 만걸 준다는 거지?“이것은 어장(禦杖)이라는 건데, 나중에 다섯째가 널 괴롭히려고 하면 이걸 들어다가 마구 때려라! 어떠냐? 좋지?”그는 나무토막 옆에 자를 두고, 상선에게 반대편을 잡으라고 명령한 후, 톱을 짧게 잡고는 나무토막을 잘랐다.“너무 길어도 불편하니까, 이 정도 길이가 딱 좋겠구나.”“좋아요! 마음에 쏙 듭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쭉 내밀고 눈을 반짝였다.상선을 그런 원경릉을 보며 웃으며 “이 어장으로 왕비를 막무가내로 호수로 끌고 가려고 했던 막돼먹은 여인네도 때리면 좋겠네요.” 라고 말했다.“상선, 그런 말씀은……” 원경릉은 놀라서 눈이 휘
“땀 난다!” 태상황이 소리쳤다.원경릉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좀 쉬세요. 물도 드시고요.”“거의 다 됐다. 여기에 용 무늬를 새기고 안쪽에 단추만 달면 된다.”태상황은 원경릉을 힐끗 보았다.“혜정후의 일은 말이다. 네가 일단 너의 신분에 상관없이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단했다면, 남장 여자로 분장하지 말고, 그냥 왕비의 신분으로 그의 주의를 끌었어야 했다.”“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혜정후는 제가 초왕비인 것을 알았습니다.” 원경릉이 대답했다.“그가 처음엔 모르는 척 하지 않았느냐, 잘 생각해보거라 이번에 혜정후는 네가 초왕비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변 사람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럼 네가 그의 손에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네가 초왕비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다.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거야! 하지만, 네가 신분을 밝히고 그와 만났더라면 주변에 보는 눈이 있으니 소문이 날 것이야. 그러다 네가 죽게된다면 모두 혜정후를 의심할 것이고, 증거가 나오지 않더라도 덮어씌울 명분이 생긴단 말이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이 늙은이 아주 여우구만…….“어떤 일을 하기 전에 최악의 결과를 먼저 생각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두어야 한다. 너를 죽인 상대방이 다리를 쭉펴고 잠을 잘 수 없게 말이다.”“태상황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배웠습니다.” 만약 다바오와 다른 개들이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태상황이 말한대로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혜정후는 발 쭉 뻗고 잠을 잤을 것이다.“왕비님. 태상황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지 않으시니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세요.” 상선이 말했다.“예 알겠습니다.” 원경릉은 무의식적으로 태상황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태상황이 내가 유일하게 빌 수 있는 언덕이구나.’“이제 나가보거라. 과인의 일을 방해하지 말고.” 태상황에 그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며 “아 참! 내일 회왕부에 가지 않느냐? 빨리 돌아가서 준비하거라.”“어쩜 그렇게 소식이 빠르십니까?” 원경릉은
명원제가 목여 태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넌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소인이 어리석습니다. 황제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목여 태감이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말했다.명원제는 태감의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이 늙은 태감에게 여인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입만 아플 뿐이다.그 시각 초왕부.우문호가 후부에 돌아오자 시녀가 그에게 구사가 원경릉을 데리고 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듣자하니 회왕과 관련된 일로 부름이 있어 갔다고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우문호가 입궁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던 참에 원경릉이 초왕부로 복귀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보고 “부황께서 나보고 회왕을 치료하라고 하라고 했어.”라고 말했다.“할 수 있겠어?” 우문호가 물었다.“아니.”“자신 없으면 가지말거라.”원경릉을 자리에 앉아 물 한모금을 마셨다.“안갈 수 없어. 너도 네 아버지의 성격을 모르지 않잖아. 내가 명령을 어긴다면 내 모가지를 날려버릴걸?”“그렇게까지 하겠느냐?”“하긴……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 근심에 찬 우문호의 얼굴을 본 원경릉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너무 걱정마. 내가 병을 고치지는 못했도, 황제께서 나를 죽이진 않을거야. 기껏해봐야 곤장이나 맞겠지.”“본왕은 너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네가 회왕을 고통스럽게 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회왕의 병을 고칠 자신이 있다면 내가 기쁜 마음으로 회왕부로 보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가느니만 못하다.”“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어디 덧나나.” 원경릉은 물 잔을 내려두며 우문호를 보았다.“정말 일말의 자신감도 없느냐?”“일단 그의 병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을 해봐야 해.”“알겠다. 그럼 본왕이 같이 가주겠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왕야는 관아에서 일봐야지, 나는 희상궁이랑 가면 돼.”“내가 함께 가겠다고!” 우문호는 불쾌해하며 방금 원경릉에게 의견을 물은게 아니라 자기가 결정한 것임을 강조했다.원경릉은 자리에서
철화목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일것이다. 나무지만 보통 철재보다 두배가량 더 단단하다.현대에는 철화목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로 분류되는데, 이전에 사람들이 철화목을 철재 대신에서 사용하기도 했으며, 값이 아주 비쌌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태상황이 톱으로 나무를 짧게 다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를 조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설마 금강석 칼로 조각을 한건 아니겠지?“태상황님께서 직접 조각을 한 것이니, 아마 철화목은 아닐 것 같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희상궁은 그런 원경릉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철화목은 태상황님만 다룰 수 있는 목재입니다. 목수들도 조각하기 힘들어 합니다.”라고 말했다.“태상황님은 몸이 좋지 않아 걷는 것도 힘드실텐데 어떻게 이런 단단한 나무를 사용해서 만드셨겠습니까?” 원경릉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희상궁의 말이 맞다면, 태상황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걷는 것이 힘든건 늙고 병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태상황님께서 젊었을 때는 우리 북당에서 무공이 가장 높은 용사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쇠해졌다고 해도 젊었을 때 그 내력(内力)이 어디 가겠습니까.”“정말 내력이라는게 있습니까?”원경릉은 더 궁금해졌다. 무협소설에나 등장하는 내력은 무공이 어느 실력에 도달하면 떨어지는 꽃잎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희상궁이 막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문 어귀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어유, 왕야 늦게오셨네요.”우문호는 태상황이 하사했다는 물건이 도착했다는 것을 듣고,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문 앞에서 살짝 구경만 하려다가 희상궁의 눈에 띄어버려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관심이 없는 척 힐끔 어장을 보았다.“이게 황조부께서 하사한 물품이냐?”“응. 직접 조각하셨어 한번 봐봐.” 원경릉이 손에 든 어장을 내밀었다.우문호는 그녀의 대범함에 당황해 얼떨결에 어장을 받아 들었다. 어장을 면밀히 살펴보니 손에 닿는 감촉이 매우 매끄럽고, 한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