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Chapter 1011 - Chapter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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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1장

백화점에서 걸어 나오자 온연과 진몽요의 기분은 한 층 나아졌다. 두 사람은 원래 계획대로 백수완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고 바로 샵으로 향했다. 서예령이 목정침의 옆에 있는 걸 보고 온연은 마음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아무리 두 사람이 매일 한 침대에서 자면서 사이가 좋아도 어느 날 그녀가 성에 차지 않는 다면 목정침도 바람 필 여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결혼 생활을 망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그녀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나이에는 커리어에 집중해야 하지만 일찍 아이를 낳았고 목정침이 만들어준 온실 안에서만 살면거 모든 걸 포기하며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았다.  회사. 아이는 이제 몸을 뒤집는 법을 배웠고 혼자서도 잘 놀았다. 목정침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혼자 소파에 올려 두기가 불안해 어쩔 수 없이 안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그의 컴퓨터와 펜을 건들였고 계약서 서류도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머리가 아프던 찰나에 서예령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목 대표님, 도와드릴 거 있으신가요?”  온연이 백화점에서 자신을 보던 눈빛이 생각나 당연히 거절했다. “아니요, 가서 일 봐요.”  서예령은 피곤해 보이는 그를 보고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릴 게요. 딱 이때쯤 아이들이 사물에 관심을 보일 때라 뭐든 만지면 입으로 집어넣고 그래서 대표님 일 하는데 방해되실 거예요. 아이는 제가 안고 있다가 일 끝나시면 가 볼게요.”  목정침은 살짝 망설이다 “알겠어요… 일 금방 하니까 사무실에서 잠깐만 안고 있으면 돼요.”  서예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아이를 안았다. “대표님, 사모님 정말 예쁘시던데요. 청초하시지만 눈에 딱 띄었어요. 아까 백화점에서 저희한테 걸어오실 때 뵌 적은 없지만 바로 알아봤어요… 아이 얼굴은 물론 기억하고 있었지만요~”  목정침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서류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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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장

전화를 받고 온연과 진몽요는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온연은 임립의 생명이 이제 거의 다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쯤 돼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건 거의 저승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고,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다들 병원 앞에서 모였고 임립은 아직 사경을 헤메는 중이었다. 온연은 아이를 안고 있는 서예령을 보았고 서예령도 자신이 아이를 안고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온연에게 다가갔다. “사모님, 아까 대표님이 급하게 오시느라 저도 같이 왔어요. 회사에 아직 일이 있어서 저는 가보겠습니다.”  온연은 아이를 안았다. “네, 고마워요.”  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약간 불편했다. 목정침은 데이비드와 함께 올 수 있었는데 서예령과 왔다. 임립의 소식을 듣기 전부터 서예령이랑 있었다는 말인데…  지금 제일 급한 건 임립의 일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다들 기분이 안 좋은 만큼 어떤 일들은 우선 제쳐두어야 했다.  응급 처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임립의 가족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임립이 살아있을 땐 임립의 가족들은 그를 미워했지만 이제 죽을 때 되니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이상한 건 임채미도 임립네 가족과 동행했다.  경소경은 어두운 표정으로 가족들을 막았다. “여기 왜 오셨어요?”  임가네 사람들은 경소경을 무서워했기에 차마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못 하고 임립의 아버지는 침착한 척했다. “뭐하자는 거야? 감히 네가 우릴 막아? 내 아들이 지금 위독한데 우리가 오면 안되는 거니? 너희들은 그저 친구야. 이건 우리 집안 일이니까 너흰 들어가 봐!”  경소경은 이를 꽉 물었다. “얘는 이미 임가네를 떠났어요. 당신들이랑 상관없다고요. 마무리일들도 저희한테 맡겼으니 가족분들께서 가셔야죠. 안정을 취해야할 때 방해하지 마시고 꺼지세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그런 모습을 보고 살짝 쫄았다. 평소에 성질도 안 내고 웃기만 하는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니 그녀는 그가 싸울까 봐 무서웠지만 차마 다가가서 말리지 못 했다.  임립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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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3장

임채미는 살짝 울먹였고 이게 진심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랐다. “그런 말 그만해요. 나한테 일부를 준다니요? 4천만원으로 밥 값 하라고요? 난 정말 저 사람을 사랑했는데 나중에 나한테 그런 대우를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 이유를 묻고 싶었어요! 난 그저 이 사람의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고 마지막 순간만큼은 가족들이 모였으면 했던 건데 잘못됐어요? 괜히 트집 잡지 말아요.”  온연은 임립 때문에 속상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임립은 가족들에게 알리는 걸 제일 싫어했는데 임채미가 가족들을 다 데리고 왔고 그건 결국 재산분할 때문이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 마셨다. “임채미씨, 난 임립씨가 다 죽어가는데 당신이랑 입씨름하기 싫으니까 얌전이 있어요. 아니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요!”  임채미는 옆에 있던 가족들을 보며 자신을 대변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자 묵묵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온연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아이를 안고 조용히 기다렸다. 약 1시간 정도 지나자 응급실 문이 열렸다.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일어나 의사 주변을 둘러 쌌고 의사는 이 광경에 깜짝 놀랐다. “다들… 뭐하시는 거예요?”  목정침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나요?”  의사는 정신을 차렸다. “환자분은 원래부터 위암 말기셔서 예전 결과를 저희가 검토를 해봤지만 다들 대충 상황은 아실겁니다. 이건 단순히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병이에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선 지금은 응급처치를 했지만 일시적이에요. 최대한 병원에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서 제때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요. 더 미뤄봤자… 며칠 안 남으셨기 때문에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저희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병원에서 제일 듣기 무서운 말이 “최선을 다 했다” 라는 말이다.  목정침은 임립의 운명이 이렇게 정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돈은 상관없으니까… 제발 뭐라도 해주세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유감스럽게 말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임립은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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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4장

경소경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 마. 너가 싫으면 아무도 여기 못 들어와.”  임립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누나 들어오라고 해. 그나마 가족 중에는 누나가 제일 사람 같거든.”  경소경은 임립의 누나를 부르러 나갔다. 임가네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있었고 병원인 걸 개의치 않아했다. 병신 문이 열리자 냄새 맡은 파리들처럼 달려 들었다.  경소경은 반감이 들어 인상을 찌푸렸고,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임립의 누나에게 고정됐다. 그는 그제서야 임립의 누나가 계속 조용히 있었던 걸 발견했고 그녀는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역시 임립의 말처럼 그녀는 사람다웠다.  “누나, 립이가 들어 오래요.” 그는 임립을 생각해서 누나라고 불렀다.  임립의 누나는 벙쪘다. “알겠어요.”  병실에 들어오자 임립은 누나를 보며 웃었다. “누나, 왔네.”  그의 누나는 눈물을 훔치며 같이 웃었다. “미안해, 내가 계속 네 신경을 못 써서 결혼하고 나서는 더 무관심했어… 너도 이 집이 싫겠지만 나도 싫어. 너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오늘 저 사람들이랑 만날 일 없었을 거야. 난 그냥 너의 임종만 보고 싶었지 다른 생각 없으니까 오해하지 마. 난 저 사람들이랑 달라…”  임립은 당연히 알았다. “나도 알아, 오해한 적 없어. 저 사람들한테 전해줘. 내 재산 절대 못 가져갈 거니까 미련 갖지 말라고. 돌려줄 건 이미 다 돌려줬으니 서로 신세진 게 없어. 이런 순간까지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 망치고 싶지 않아. 보기도 싫어.”  그의 누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임립은 눈을 감았고 숨소리도 작아졌다. “난 이제 미련이 없어… 다들 미안해, 속상하게 만들어서…”  의료기기에서 급박한 경고음이 들렸고, 화면에 있던 선도 점점 직선으로 변하고 있었다. 진몽요는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고 경소경도 창문을 보며 그를 등지고 있었다. 그가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의 어둠이 다 가려주었다.   목정침도 의사나 간호사를 부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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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5장

임립의 누나는 바로 발걸음을 멈추기 눈 앞에 있는 가족들의 태도를 믿을 수 없었다. “다들 뭐 하자는 거예요? 네? 아빠, 아들이 죽었어요, 오빠들, 동생이 죽었다고요! 쟤가 빚진 거 있어요? 아무한테도 빚진 거 없으니까 나눠 갖을 이유도 없다고요! 진짜 하는 짓마다 역겨운 사람들이 있는데 난 당신들이랑 가족이라는 거 자체가 창피해요!”  임가네 형제는 아직도 어떻게 임립의 재산을 손에 넣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임립의 아빠만 깊은 생각에 빠져 한숨을 쉬었다. “다 입 다 물어! 됐어, 오늘 우리가 여기 왔으면 안됐었어. 무사히 보내줬어야 하는데…”  임채미는 분위기를 보고 그제서야 임립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로 벤치에 앉아 몸을 떨고 있었고,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그녀랑 웃으며 밥을 먹고 잠을 자던 남자가 정말 죽었다… 앞으로 이 세상에 그는 없었다.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계속 원하던 건 재산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그와의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가 관계를 정리했다. 그녀는 그가 마지막 순간을 자신과 함께 하고싶다는 말을 하길 계속 바래왔다…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왜 그가 그녀를 차버렸는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과 배경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를 향한 감정은 진심이었다. 이 순간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버림받은 사실에 기분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임립의 아빠와 누나가 자리를 떠나고 임가네 형제만 남았다. 그들은 임채미를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임립이랑 헤어진지 얼마나 됐어요? 임신했으면 된 거 아니에요? 애만 있으면 재산을 분명히 분할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임채미는 그들을 보며 역겨워서 입맛이 다 떨어질 정도였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 말이 없었다.  이때 온연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고 방금 한 대화를 다 들었다. “아이디어는 좋네요. 근데 이거 어쩌죠, 제가 다 들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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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6장

두 사람은 말대꾸를 하려던 찰나에 병실에서 걸어 나오는 경소경을 보고 쫄았는지 줄행랑을 쳤다. 임채미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 때리셨죠? 그럼 저도 가 볼게요… 절 만나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죠…”  온연은 뺨을 때렸을 때부터 이미 분이 풀렸고, 임채미가 태도가 누그러진 걸 보고 계속 놓아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임립씨가 4천만원 주기로 한 것도 어쨌든 마음이니까 계좌 알려주세요. 나중에 이체 해드릴게요.”  임채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제가 애초에 원했던 것도 아니었는 걸요.”  온연도 고집 부리지 않았다. “필요 없으면 말고요. 그냥 그것도 같이 기부할게요 그럼.”  진몽요가 임신중이라 목정침은 경소경에게 진몽요를 데리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온연도 콩알이를 돌봐야 하니 돌아갔고, 그 혼자 병원에 남아 일처리를 했다.  함께 좋은 날들을 보냈던 형제가 이렇게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고 옆에 아무도 없을 때 그는 참았던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렸다.  이 날 밤, 그 누구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온연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재운 뒤 안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립씨 떠났어.”  그녀는 자신이 왜 이 일을 안야에게 말해주는지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안야가 알아야할 것 같았다.  전화 너머, 안야는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입을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 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이 세상에서 그녀와 그나마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마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임립은 그녀의 할아버지 유언을 받아드려, 그녀에게 늘 잘해주었다. 그녀는 그를 오빠처럼 따랐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국 그를 만나지 못 했다. 그녀는 지금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전화가 끊기고 안야는 계속해서 채소를 썰었다. 오늘은 아택이 집에 있는 날이라 그녀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이 눈 앞을 가렸고, 손에서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살짝 소리를 내며 자신이 베였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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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7장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난 위로하는 법을 몰라요. 만약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냥 마음 편히 울어요.”  안야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소리내어 울었다. 그녀는 참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해요… 그 사람이 죽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 사람? 아택은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경소경인가? 그럴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건 경소경이 아니었나? 경소경 말고 이렇게 마음 아프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그는 결국 묻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이어지게 된 사이라, 필요할 때 서로에게 기댈 수는 있었지만 감정이 섞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  며칠 후, 제도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마치 이전에 폭염을 다 씻어주듯이, 열기가 뜨거웠던 제도를 이 비가 깨끗이 씻겨주었다.  임립의 일처리도 거의 다 끝나갔다. 무덤은 온연의 할머니 옆에 배치했고, 옆에 있으면 말동무라도 할 수 있다는 진몽요의 뜻이었다. 할머니는 잔소리를 좋아했으니 임립도 지루하지 않을 테다.  소식은 임립의 아저비는 혼자 임립의 무덤을 찾아갔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모른 척했다.  목정침은 요즘 예민했지만 온연도 뭐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엄마와 아내 역할을 충실히 했다.  모두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마치 제도의 어두운 하늘처럼 오랫동안 가시지 못 했다.  주말에 목정침은 집에 있으며 아무데도 가지 않았고, 아이를 놀아줄 때 외에는 혼자 서재에갇혀 있었다.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온연은 차를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그가 뭐하고 있는지 보았지만 계속 멍만 때리고 있었다.  저녁. 비는 조금 그쳤다. 임집사는 외출을 하고 돌아와 우산을 옆에 접어두었다. “사모님, 어떤분이 도련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회사 문서를 전달하러 왔다는데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지금 문 앞에 계세요.”  온연은 대답을 한 뒤 아이를 잠깐 유씨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나가보았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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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8장

온연은 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당연히 돼죠.” 큰 대문이 서서히 열리고 서예령은 감사인사를 한 뒤 집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처음 왔을 텐데, 길이 익숙해 보였고, 온연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않았더라면, 서예령이 처음 온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뻔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채 집에 들어왔을 때 서예령은 이미 윗층으로 올라갔다. 온연은 서재에 염탐하러 가지 않고 조용히 거실에서 기다렸다. 약 5분 정도 지나자 서예령이 내려왔다. “사모님,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야근한다고 하니 더 붙잡고 있진 않을 게요. 데이비드 한테 나 대신 물어봐줘요. 이런 중요한 서류마저 인턴한테 시킬 정도로 바쁜 거냐고요. 완전 인턴 괴롭히는 거 아닌가요?”  서예령은 어느정도 그 의미를 눈치 채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 괜찮습니다. 열심히 하면 돌아오는 것도 있을테니까요. 저는 힘든 것도 다 괜찮아서 괴롭힘 당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대답은 살짝 돌려말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잘 위기를 넘겼다. 온연은 비록 서예령이 이제 막 입사한 직원이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서예령이 떠나고 그녀는 한참동안 창밖을 보다가 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재에 들어가자 그녀는 옅은 담배연기를 맡았다. 냄새가 심하진 않았지만 비흡연자로써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창가로 가서 굳게 닫혀 있던 커튼을 치고 창문도 살짝 열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나도 임립이 떠나서 마음 아픈 건 알지만… 됐어요, 이런 얘기 안 할래요. 담배 적당히 펴요. 어렵게 끊었는데, 어차피 몸에 해로운 거잖아요.”  목정침은 등받이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몇 개밖에 안 폈어… 애 데리고 나가, 여기 공기 안좋아. 이따가 방 들어가서 바로 잘 거야. 졸려. 밥은 안 먹을 거니까 알아서 챙겨 먹어.”  온연은 왠지 모르게 무력해진 기분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그의 사소한 얘기들을 듣고, 같이 진몽요와 경소경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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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장

진몽요는 얼른 호칭을 바꿨다. “엄마~ 그럼 엄마랑 연이가 같이 골라주세요. 얼른요, 저는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하람은 유심히 둘러본 뒤, 제일 중간에 있는 루비 목걸이를 가리켰고, 말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루비 목걸이 좀 꺼내주세요.”  하람은 절대 뺏길 수 없었다. “아가씨, 저희가 먼저 찜했으니까 좀 기다리세요. 저희가 다 본다음에 보는 것도 늦지 않을 텐데요?”  여자가 말을 하려던 찰나에 진몽요를 보고 굳었다. 그녀는 예군작의 지갑에서 진몽요를 본 적이 있었다.  온연은 한 눈에 이 여자가 예군작의 아내 국청곡인 걸 알아봤다. “예 사모님, 이 목걸이는 이미 저희가 골라서요, 다른 걸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예 사모님이라는 단어는 국정곡을 충분이 기분 좋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그 목걸이를 보다가 손을 저었다. “네, 그러죠. 저는 이런 거 없어도 되니까 다른 거 고를게요. 정말 우연이네요, 진 아가씨는 제 남편이랑 친구죠? 남편이 가끔 얘기를 해서요.”  진몽요는 영문을 몰랐지만 온연이 ‘예 사모님’ 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그제서야 이해했다. ”그럼… 예군작씨 아내분이신가요? 국가네 아가씨 맞죠? 아, 이제 생각 났네요. 실물을 뵌 적이 없어서 죄송해요, 이제 알아봤네요. 저랑 남편분은 아는 사이죠, 굳이 말하자면 친구고요. 아는 사이라서 잘 됐네요. 저는 결혼 예물 고르러 온 거라 저희 어머님이 저 루비 목걸이를 고르셨거든요. 그럼 양보 해주셔서 감사해요.”  국청곡은 웃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예군작에 지갑에서 그녀의 사진을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처럼 어떤 일들을 묻어두는 게 가장 좋았다. “결혼하세요? 그럼 미리 축하드려요. 그 목걸이 예쁘긴 하죠, 결혼식에 쓰기 딱 좋겠어요. 그정도는 당연히 양보해드릴 수 있죠. 그럼 천천히 둘러보세요, 저는 다른 곳에 가볼게요.”  국청곡의 그림자가 멀어지자 하람이 말했다. “국가네 아가씨 괜찮게 생겼네, 예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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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0장

문자를 받은 경소경은 빛의 속도로 집에 왔다. “엄마, 왜 또 이 사람 데려왔어요? 맨날 이렇게 많이 먹이는 것도 안 좋아요.”  하람은 불쾌한 듯 말했다. “너가 나보다 잘 알아? 내가 몽요한테 주는 건 다 영양분이 가득해서 살찌는 음식이 아니야. 난 통통한 손자를 안고 싶다고!”  경소경은 어이가 없었다. “만약에 손자가 아니라 손녀면요?”  하람은 당황했다. “손녀? 손녀나 손자나 다를 게 뭐야? 어차피 우리 경가네 사람일 텐데, 딸이면 얌전하고 좋지 뭐. 남녀 쌍둥이가 제일 좋지만.”  진몽요는 마음이 심란했다. 매일 하람이 손자 타령하는 걸 듣고 있으면서, 만약 정말 딸을 낳게되면 드라마처럼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녀는 상상하기 싫었고, 경소경의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엄마, 전 소경씨만 먼저 가 볼게요. 이따가 비 올 것 같아서, 빗길에 운전하면 위험하잖아요.”  하람은 그들을 보내기가 아쉬웠고, 특히 진몽요와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내기 싫었다. “밥 먹고 내일 가. 어차피 내일 출근도 안 하잖아. 그렇게 하자. 소경아, 가서 요리해. 몽요가 좋아하는 걸로.”  하람의 견고한 태도에 경소경은 진몽요의 손등을 두들겼다. “내일 가죠 뭐. 난 요리 할게요, 이따가 너무 배부르면 좀 덜 먹으면 돼요. 배고파지면 또 내가 뭐 해줄게요.”  진몽요는 소리 없이 울었다. “알겠어요…” 어차피 경소경이 옆에 있으니 없는 것보단 마음이 편했다.  수다를 떨다가 하람은 임립을 언급했다. “립이가 좋은 청년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떠나 버렸네. 예전에 소경이가 정침이랑 립이랑 제일 친했었거든. 요즘 쟤도 많이 초췌해졌어.”  진몽요는 얼른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쉿… 엄마, 작게 말해주세요. 소경이 안 그래도 심란한데 이 얘기 들으면 또 마음 아파할 거예요.”  하람은 입술을 문질렀다. “나도 알아, 주방에 있으니까 그냥 얘기한 거지. 몽요야, 여기 들어와서 살기 싫으면 주말에라도 와. 소경이가 널 챙겨주는 게 영 마음이 안 놓여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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