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말대꾸를 하려던 찰나에 병실에서 걸어 나오는 경소경을 보고 쫄았는지 줄행랑을 쳤다. 임채미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 때리셨죠? 그럼 저도 가 볼게요… 절 만나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죠…” 온연은 뺨을 때렸을 때부터 이미 분이 풀렸고, 임채미가 태도가 누그러진 걸 보고 계속 놓아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임립씨가 4천만원 주기로 한 것도 어쨌든 마음이니까 계좌 알려주세요. 나중에 이체 해드릴게요.” 임채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제가 애초에 원했던 것도 아니었는 걸요.” 온연도 고집 부리지 않았다. “필요 없으면 말고요. 그냥 그것도 같이 기부할게요 그럼.” 진몽요가 임신중이라 목정침은 경소경에게 진몽요를 데리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온연도 콩알이를 돌봐야 하니 돌아갔고, 그 혼자 병원에 남아 일처리를 했다. 함께 좋은 날들을 보냈던 형제가 이렇게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고 옆에 아무도 없을 때 그는 참았던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렸다. 이 날 밤, 그 누구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온연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재운 뒤 안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립씨 떠났어.” 그녀는 자신이 왜 이 일을 안야에게 말해주는지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안야가 알아야할 것 같았다. 전화 너머, 안야는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입을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 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이 세상에서 그녀와 그나마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마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임립은 그녀의 할아버지 유언을 받아드려, 그녀에게 늘 잘해주었다. 그녀는 그를 오빠처럼 따랐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국 그를 만나지 못 했다. 그녀는 지금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전화가 끊기고 안야는 계속해서 채소를 썰었다. 오늘은 아택이 집에 있는 날이라 그녀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이 눈 앞을 가렸고, 손에서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살짝 소리를 내며 자신이 베였다는 걸 알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난 위로하는 법을 몰라요. 만약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냥 마음 편히 울어요.” 안야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소리내어 울었다. 그녀는 참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해요… 그 사람이 죽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 사람? 아택은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경소경인가? 그럴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건 경소경이 아니었나? 경소경 말고 이렇게 마음 아프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그는 결국 묻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이어지게 된 사이라, 필요할 때 서로에게 기댈 수는 있었지만 감정이 섞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 며칠 후, 제도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마치 이전에 폭염을 다 씻어주듯이, 열기가 뜨거웠던 제도를 이 비가 깨끗이 씻겨주었다. 임립의 일처리도 거의 다 끝나갔다. 무덤은 온연의 할머니 옆에 배치했고, 옆에 있으면 말동무라도 할 수 있다는 진몽요의 뜻이었다. 할머니는 잔소리를 좋아했으니 임립도 지루하지 않을 테다. 소식은 임립의 아저비는 혼자 임립의 무덤을 찾아갔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모른 척했다. 목정침은 요즘 예민했지만 온연도 뭐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엄마와 아내 역할을 충실히 했다. 모두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마치 제도의 어두운 하늘처럼 오랫동안 가시지 못 했다. 주말에 목정침은 집에 있으며 아무데도 가지 않았고, 아이를 놀아줄 때 외에는 혼자 서재에갇혀 있었다.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온연은 차를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그가 뭐하고 있는지 보았지만 계속 멍만 때리고 있었다. 저녁. 비는 조금 그쳤다. 임집사는 외출을 하고 돌아와 우산을 옆에 접어두었다. “사모님, 어떤분이 도련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회사 문서를 전달하러 왔다는데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지금 문 앞에 계세요.” 온연은 대답을 한 뒤 아이를 잠깐 유씨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나가보았다. 정
온연은 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당연히 돼죠.” 큰 대문이 서서히 열리고 서예령은 감사인사를 한 뒤 집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처음 왔을 텐데, 길이 익숙해 보였고, 온연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않았더라면, 서예령이 처음 온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뻔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채 집에 들어왔을 때 서예령은 이미 윗층으로 올라갔다. 온연은 서재에 염탐하러 가지 않고 조용히 거실에서 기다렸다. 약 5분 정도 지나자 서예령이 내려왔다. “사모님,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야근한다고 하니 더 붙잡고 있진 않을 게요. 데이비드 한테 나 대신 물어봐줘요. 이런 중요한 서류마저 인턴한테 시킬 정도로 바쁜 거냐고요. 완전 인턴 괴롭히는 거 아닌가요?” 서예령은 어느정도 그 의미를 눈치 채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 괜찮습니다. 열심히 하면 돌아오는 것도 있을테니까요. 저는 힘든 것도 다 괜찮아서 괴롭힘 당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대답은 살짝 돌려말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잘 위기를 넘겼다. 온연은 비록 서예령이 이제 막 입사한 직원이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서예령이 떠나고 그녀는 한참동안 창밖을 보다가 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재에 들어가자 그녀는 옅은 담배연기를 맡았다. 냄새가 심하진 않았지만 비흡연자로써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창가로 가서 굳게 닫혀 있던 커튼을 치고 창문도 살짝 열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나도 임립이 떠나서 마음 아픈 건 알지만… 됐어요, 이런 얘기 안 할래요. 담배 적당히 펴요. 어렵게 끊었는데, 어차피 몸에 해로운 거잖아요.” 목정침은 등받이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몇 개밖에 안 폈어… 애 데리고 나가, 여기 공기 안좋아. 이따가 방 들어가서 바로 잘 거야. 졸려. 밥은 안 먹을 거니까 알아서 챙겨 먹어.” 온연은 왠지 모르게 무력해진 기분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그의 사소한 얘기들을 듣고, 같이 진몽요와 경소경의 결혼
진몽요는 얼른 호칭을 바꿨다. “엄마~ 그럼 엄마랑 연이가 같이 골라주세요. 얼른요, 저는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하람은 유심히 둘러본 뒤, 제일 중간에 있는 루비 목걸이를 가리켰고, 말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루비 목걸이 좀 꺼내주세요.” 하람은 절대 뺏길 수 없었다. “아가씨, 저희가 먼저 찜했으니까 좀 기다리세요. 저희가 다 본다음에 보는 것도 늦지 않을 텐데요?” 여자가 말을 하려던 찰나에 진몽요를 보고 굳었다. 그녀는 예군작의 지갑에서 진몽요를 본 적이 있었다. 온연은 한 눈에 이 여자가 예군작의 아내 국청곡인 걸 알아봤다. “예 사모님, 이 목걸이는 이미 저희가 골라서요, 다른 걸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예 사모님이라는 단어는 국정곡을 충분이 기분 좋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그 목걸이를 보다가 손을 저었다. “네, 그러죠. 저는 이런 거 없어도 되니까 다른 거 고를게요. 정말 우연이네요, 진 아가씨는 제 남편이랑 친구죠? 남편이 가끔 얘기를 해서요.” 진몽요는 영문을 몰랐지만 온연이 ‘예 사모님’ 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그제서야 이해했다. ”그럼… 예군작씨 아내분이신가요? 국가네 아가씨 맞죠? 아, 이제 생각 났네요. 실물을 뵌 적이 없어서 죄송해요, 이제 알아봤네요. 저랑 남편분은 아는 사이죠, 굳이 말하자면 친구고요. 아는 사이라서 잘 됐네요. 저는 결혼 예물 고르러 온 거라 저희 어머님이 저 루비 목걸이를 고르셨거든요. 그럼 양보 해주셔서 감사해요.” 국청곡은 웃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예군작에 지갑에서 그녀의 사진을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처럼 어떤 일들을 묻어두는 게 가장 좋았다. “결혼하세요? 그럼 미리 축하드려요. 그 목걸이 예쁘긴 하죠, 결혼식에 쓰기 딱 좋겠어요. 그정도는 당연히 양보해드릴 수 있죠. 그럼 천천히 둘러보세요, 저는 다른 곳에 가볼게요.” 국청곡의 그림자가 멀어지자 하람이 말했다. “국가네 아가씨 괜찮게 생겼네, 예의도
문자를 받은 경소경은 빛의 속도로 집에 왔다. “엄마, 왜 또 이 사람 데려왔어요? 맨날 이렇게 많이 먹이는 것도 안 좋아요.” 하람은 불쾌한 듯 말했다. “너가 나보다 잘 알아? 내가 몽요한테 주는 건 다 영양분이 가득해서 살찌는 음식이 아니야. 난 통통한 손자를 안고 싶다고!” 경소경은 어이가 없었다. “만약에 손자가 아니라 손녀면요?” 하람은 당황했다. “손녀? 손녀나 손자나 다를 게 뭐야? 어차피 우리 경가네 사람일 텐데, 딸이면 얌전하고 좋지 뭐. 남녀 쌍둥이가 제일 좋지만.” 진몽요는 마음이 심란했다. 매일 하람이 손자 타령하는 걸 듣고 있으면서, 만약 정말 딸을 낳게되면 드라마처럼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녀는 상상하기 싫었고, 경소경의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엄마, 전 소경씨만 먼저 가 볼게요. 이따가 비 올 것 같아서, 빗길에 운전하면 위험하잖아요.” 하람은 그들을 보내기가 아쉬웠고, 특히 진몽요와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내기 싫었다. “밥 먹고 내일 가. 어차피 내일 출근도 안 하잖아. 그렇게 하자. 소경아, 가서 요리해. 몽요가 좋아하는 걸로.” 하람의 견고한 태도에 경소경은 진몽요의 손등을 두들겼다. “내일 가죠 뭐. 난 요리 할게요, 이따가 너무 배부르면 좀 덜 먹으면 돼요. 배고파지면 또 내가 뭐 해줄게요.” 진몽요는 소리 없이 울었다. “알겠어요…” 어차피 경소경이 옆에 있으니 없는 것보단 마음이 편했다. 수다를 떨다가 하람은 임립을 언급했다. “립이가 좋은 청년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떠나 버렸네. 예전에 소경이가 정침이랑 립이랑 제일 친했었거든. 요즘 쟤도 많이 초췌해졌어.” 진몽요는 얼른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쉿… 엄마, 작게 말해주세요. 소경이 안 그래도 심란한데 이 얘기 들으면 또 마음 아파할 거예요.” 하람은 입술을 문질렀다. “나도 알아, 주방에 있으니까 그냥 얘기한 거지. 몽요야, 여기 들어와서 살기 싫으면 주말에라도 와. 소경이가 널 챙겨주는 게 영 마음이 안 놓여서 그
경소경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저를 임신하셨을 때 그렇게 드셨으면 전 태어났을 때 몇 키로였어요? 저한테 영양분이 간 거 확실하세요?” 하람은 투덜거렸다. “네가 영양분 흡수를 제대로 안 한 거지. 너 때문에 20키로가 넘게 쪘는데 낳고 보니까 고작 3키로 정도였어. 괜히 많이 먹었지 뭐야. 임신 기간에 몸도 늘 조심했었는데.” 경소경은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늘 제가 잘못한 것만 말하고, 아들 구실 못 했다고만 하시는데, 제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지 않나요? 저는 남의 집에서 늘 얘기하는 잘난 ‘다른 집 아들’인데, 엄마만 늘 저를 과소평가하세요. 어쨌든, 엄마가 많이 드셔서 영양분이 저한테 온 것도 아니니 몽요씨도 그렇게 많이 먹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살 잘 찌는 체질이라 확실히 튼실해졌잖아요.” 진몽요는 식탁 아래서 그의 발을 밟았다. 튼실하다고? 이런 단어로 그녀를 형용하는 건 너무했다. 경소경은 아픔을 느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하람은 드디어 생각을 고쳤다. “알겠어, 앞으로 몽요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 내가 부추기지 않을 게. 너도 몽요를 생각하지만 나도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고.” 밥을 다 먹고, 진몽요는 졸음이 밀려와 휴식을 취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낮에 그렇게 쇼핑을 하고, 그녀는 임신을 하니 확실히 몸이 힘들어졌다. 초반에는 별 증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달라짐을 느꼈다. 경소경은 거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올라가서 방문을 열자 하람이 불렀다. “뭐하는 거야? 너는 다른 방에서 따로 자야지. 몽요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그는 살짝 당황했다. “왜요? 제가 쉬는 걸 왜 방해하겠어요? 저랑 살 때는 늘 같이 잤는데요?” 하람은 그를 끌고 갔다. “좀 가만히 있어, 얘 임신 했잖아!” 그는 이해가 안됐다.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됐어요, 엄마랑 이런 얘기해서 뭐 하겠어요.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서 남편 챙기셔야죠. 가세요!” 하람은 대화
그는 눈물 없이 울었다. “엄마가 당신이랑 따로 자래요. 내가 당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그런 것 같아요. 당신이 친딸이고 내가 주어 온 자식이잖아요.” 그녀는 문을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그럼 부모님 주무시는 거 기다렸다가 몰래 들어와요. 안 그래도 낯설어서 잠도 안 오는데 같이 안 있으니까 더 못 자겠어요. 밖에 비도 오고 번개도 쳐서 무서워요.” 그의 말투는 한 층 부드러워졌다. “알겠어요, 좀 있다 갈 테니까 겁먹지 말고 먼저 자요.” 저녁 11시쯤 되자 하람과 경성욱은 드디어 잠에 들었다. 경소경은 나이 든 사람들이 이 저녁까지 안 자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몰래 진몽요의 방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를 품에 안으니 안정감이 들었다. 진몽요는 그의 품 안에 자리를 잡았다. “옷은 왜 안 입었어요?” 그는 살짝 튀어나온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요즘 날씨가 에어컨 키면 춥고 안 키면 또 더워서요. 얼른 자요, 내일 일찍 가게요.” 그녀는 그의 가슴을 문질렀다. “이미 많이 자서 잠이 안 와요. 아까 나가서 결혼식 때 필요한 물건다 샀어요. 어찌나 피곤하던지. 당신은 따라오지도 않고 집에서 쉬기만 했죠?” 그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아니에요, 나도 회사 갔다 왔어요. 정말로요.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쉬어요? 진짜 안 쉬었어요.” 공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진몽요는 온연이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경소경은 참을지 말지 고민하고 하고 있었고,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설마 하람이 이 새벽에 감시하러 온 건가? 발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하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요야, 깼어? 주방에서 국 끓이고 있는데 한 그릇 할래? 내가 가져다줄까?” 경소경은 얼른 거절하라는 손짓을 했지만 이때 문이 열렸다.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니요, 지금 배가 안 고파서 내일 아침에 먹을 게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얼른 주무세요.” 하람이 대답을 하고 나가자 경소경은
진몽요는 그를 흉내내며 다리로 밀었다. “가요.” 다음 날, 온연은 목정침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아이가 예방 접종을 맞을 때가 됐다. 요즘 날씨 변화가 심해서 감기 걸리기 쉬웠고, 밖에는 비가 내려서 그녀는 아이에게 긴팔을 입혀주었다. 옷이 두꺼워져 아이가 더 동그래진 모습이 훨씬 귀여워 보였다. 차에 탄 후, 목정침은 시계를 보고 운전석에 진락에게 말했다. “일단 병원에 내려서 접종은 너가 같이 가. 난 혼자 차타고 회사로 갈게. 접종 끝나면 임집사님이 데리러 오실 거야.” 온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급한 일 있어요? 왜 병원에 같이 안 가요?”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다. “응, 회의 있어.” 그녀는 왠지 모르게 실망했다. 예전에 그는 아이 일이라면 뭐든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걸까? 예전에 그녀는 아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 했지만, 서예령이 나타난 이후로 그녀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녀는 자신이 서예령보다 부족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집안 배경은 그녀가 목가네에서 자랐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뭐든 서예령보다 잘났지만, 왠지 모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가 물었다. “진짜 같이 안 가요?” 목정침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응, 이번엔 정말 안 가. 일이 바빠서.”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 갔다. 회사에 도착한 뒤, 사무실에 들어가자 마자 목정침은 서류를 안고 책상 앞에 있는 서예령을 보고 당황했다. “무슨 일 있어요?” 서예령은 안고 있던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이 서류에 서명이 필요해서요. 제가 일찍 왔는지 대표님이 안 계셔서 잠깐 기다렸어요… 우선 서류부터 보시고 천천히 서명해주세요.” 그가 서류를 검토할 때 서예령은 입을 열었다. “대표님, 갑자기 왜 차가워지신 거예요? 제가 예전에 본 대표님 관련 뉴스에서 늘 웃고 계셔서 따뜻해 보이셨는데, 여기 온 다음부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