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당연히 돼죠.” 큰 대문이 서서히 열리고 서예령은 감사인사를 한 뒤 집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처음 왔을 텐데, 길이 익숙해 보였고, 온연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않았더라면, 서예령이 처음 온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뻔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채 집에 들어왔을 때 서예령은 이미 윗층으로 올라갔다. 온연은 서재에 염탐하러 가지 않고 조용히 거실에서 기다렸다. 약 5분 정도 지나자 서예령이 내려왔다. “사모님,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야근한다고 하니 더 붙잡고 있진 않을 게요. 데이비드 한테 나 대신 물어봐줘요. 이런 중요한 서류마저 인턴한테 시킬 정도로 바쁜 거냐고요. 완전 인턴 괴롭히는 거 아닌가요?” 서예령은 어느정도 그 의미를 눈치 채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 괜찮습니다. 열심히 하면 돌아오는 것도 있을테니까요. 저는 힘든 것도 다 괜찮아서 괴롭힘 당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대답은 살짝 돌려말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잘 위기를 넘겼다. 온연은 비록 서예령이 이제 막 입사한 직원이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서예령이 떠나고 그녀는 한참동안 창밖을 보다가 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재에 들어가자 그녀는 옅은 담배연기를 맡았다. 냄새가 심하진 않았지만 비흡연자로써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창가로 가서 굳게 닫혀 있던 커튼을 치고 창문도 살짝 열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나도 임립이 떠나서 마음 아픈 건 알지만… 됐어요, 이런 얘기 안 할래요. 담배 적당히 펴요. 어렵게 끊었는데, 어차피 몸에 해로운 거잖아요.” 목정침은 등받이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몇 개밖에 안 폈어… 애 데리고 나가, 여기 공기 안좋아. 이따가 방 들어가서 바로 잘 거야. 졸려. 밥은 안 먹을 거니까 알아서 챙겨 먹어.” 온연은 왠지 모르게 무력해진 기분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그의 사소한 얘기들을 듣고, 같이 진몽요와 경소경의 결혼
진몽요는 얼른 호칭을 바꿨다. “엄마~ 그럼 엄마랑 연이가 같이 골라주세요. 얼른요, 저는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하람은 유심히 둘러본 뒤, 제일 중간에 있는 루비 목걸이를 가리켰고, 말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루비 목걸이 좀 꺼내주세요.” 하람은 절대 뺏길 수 없었다. “아가씨, 저희가 먼저 찜했으니까 좀 기다리세요. 저희가 다 본다음에 보는 것도 늦지 않을 텐데요?” 여자가 말을 하려던 찰나에 진몽요를 보고 굳었다. 그녀는 예군작의 지갑에서 진몽요를 본 적이 있었다. 온연은 한 눈에 이 여자가 예군작의 아내 국청곡인 걸 알아봤다. “예 사모님, 이 목걸이는 이미 저희가 골라서요, 다른 걸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예 사모님이라는 단어는 국정곡을 충분이 기분 좋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그 목걸이를 보다가 손을 저었다. “네, 그러죠. 저는 이런 거 없어도 되니까 다른 거 고를게요. 정말 우연이네요, 진 아가씨는 제 남편이랑 친구죠? 남편이 가끔 얘기를 해서요.” 진몽요는 영문을 몰랐지만 온연이 ‘예 사모님’ 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그제서야 이해했다. ”그럼… 예군작씨 아내분이신가요? 국가네 아가씨 맞죠? 아, 이제 생각 났네요. 실물을 뵌 적이 없어서 죄송해요, 이제 알아봤네요. 저랑 남편분은 아는 사이죠, 굳이 말하자면 친구고요. 아는 사이라서 잘 됐네요. 저는 결혼 예물 고르러 온 거라 저희 어머님이 저 루비 목걸이를 고르셨거든요. 그럼 양보 해주셔서 감사해요.” 국청곡은 웃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예군작에 지갑에서 그녀의 사진을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것처럼 어떤 일들을 묻어두는 게 가장 좋았다. “결혼하세요? 그럼 미리 축하드려요. 그 목걸이 예쁘긴 하죠, 결혼식에 쓰기 딱 좋겠어요. 그정도는 당연히 양보해드릴 수 있죠. 그럼 천천히 둘러보세요, 저는 다른 곳에 가볼게요.” 국청곡의 그림자가 멀어지자 하람이 말했다. “국가네 아가씨 괜찮게 생겼네, 예의도
문자를 받은 경소경은 빛의 속도로 집에 왔다. “엄마, 왜 또 이 사람 데려왔어요? 맨날 이렇게 많이 먹이는 것도 안 좋아요.” 하람은 불쾌한 듯 말했다. “너가 나보다 잘 알아? 내가 몽요한테 주는 건 다 영양분이 가득해서 살찌는 음식이 아니야. 난 통통한 손자를 안고 싶다고!” 경소경은 어이가 없었다. “만약에 손자가 아니라 손녀면요?” 하람은 당황했다. “손녀? 손녀나 손자나 다를 게 뭐야? 어차피 우리 경가네 사람일 텐데, 딸이면 얌전하고 좋지 뭐. 남녀 쌍둥이가 제일 좋지만.” 진몽요는 마음이 심란했다. 매일 하람이 손자 타령하는 걸 듣고 있으면서, 만약 정말 딸을 낳게되면 드라마처럼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녀는 상상하기 싫었고, 경소경의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엄마, 전 소경씨만 먼저 가 볼게요. 이따가 비 올 것 같아서, 빗길에 운전하면 위험하잖아요.” 하람은 그들을 보내기가 아쉬웠고, 특히 진몽요와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내기 싫었다. “밥 먹고 내일 가. 어차피 내일 출근도 안 하잖아. 그렇게 하자. 소경아, 가서 요리해. 몽요가 좋아하는 걸로.” 하람의 견고한 태도에 경소경은 진몽요의 손등을 두들겼다. “내일 가죠 뭐. 난 요리 할게요, 이따가 너무 배부르면 좀 덜 먹으면 돼요. 배고파지면 또 내가 뭐 해줄게요.” 진몽요는 소리 없이 울었다. “알겠어요…” 어차피 경소경이 옆에 있으니 없는 것보단 마음이 편했다. 수다를 떨다가 하람은 임립을 언급했다. “립이가 좋은 청년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떠나 버렸네. 예전에 소경이가 정침이랑 립이랑 제일 친했었거든. 요즘 쟤도 많이 초췌해졌어.” 진몽요는 얼른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쉿… 엄마, 작게 말해주세요. 소경이 안 그래도 심란한데 이 얘기 들으면 또 마음 아파할 거예요.” 하람은 입술을 문질렀다. “나도 알아, 주방에 있으니까 그냥 얘기한 거지. 몽요야, 여기 들어와서 살기 싫으면 주말에라도 와. 소경이가 널 챙겨주는 게 영 마음이 안 놓여서 그
경소경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저를 임신하셨을 때 그렇게 드셨으면 전 태어났을 때 몇 키로였어요? 저한테 영양분이 간 거 확실하세요?” 하람은 투덜거렸다. “네가 영양분 흡수를 제대로 안 한 거지. 너 때문에 20키로가 넘게 쪘는데 낳고 보니까 고작 3키로 정도였어. 괜히 많이 먹었지 뭐야. 임신 기간에 몸도 늘 조심했었는데.” 경소경은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늘 제가 잘못한 것만 말하고, 아들 구실 못 했다고만 하시는데, 제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지 않나요? 저는 남의 집에서 늘 얘기하는 잘난 ‘다른 집 아들’인데, 엄마만 늘 저를 과소평가하세요. 어쨌든, 엄마가 많이 드셔서 영양분이 저한테 온 것도 아니니 몽요씨도 그렇게 많이 먹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살 잘 찌는 체질이라 확실히 튼실해졌잖아요.” 진몽요는 식탁 아래서 그의 발을 밟았다. 튼실하다고? 이런 단어로 그녀를 형용하는 건 너무했다. 경소경은 아픔을 느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하람은 드디어 생각을 고쳤다. “알겠어, 앞으로 몽요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 내가 부추기지 않을 게. 너도 몽요를 생각하지만 나도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고.” 밥을 다 먹고, 진몽요는 졸음이 밀려와 휴식을 취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낮에 그렇게 쇼핑을 하고, 그녀는 임신을 하니 확실히 몸이 힘들어졌다. 초반에는 별 증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달라짐을 느꼈다. 경소경은 거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올라가서 방문을 열자 하람이 불렀다. “뭐하는 거야? 너는 다른 방에서 따로 자야지. 몽요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그는 살짝 당황했다. “왜요? 제가 쉬는 걸 왜 방해하겠어요? 저랑 살 때는 늘 같이 잤는데요?” 하람은 그를 끌고 갔다. “좀 가만히 있어, 얘 임신 했잖아!” 그는 이해가 안됐다.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됐어요, 엄마랑 이런 얘기해서 뭐 하겠어요.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서 남편 챙기셔야죠. 가세요!” 하람은 대화
그는 눈물 없이 울었다. “엄마가 당신이랑 따로 자래요. 내가 당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그런 것 같아요. 당신이 친딸이고 내가 주어 온 자식이잖아요.” 그녀는 문을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그럼 부모님 주무시는 거 기다렸다가 몰래 들어와요. 안 그래도 낯설어서 잠도 안 오는데 같이 안 있으니까 더 못 자겠어요. 밖에 비도 오고 번개도 쳐서 무서워요.” 그의 말투는 한 층 부드러워졌다. “알겠어요, 좀 있다 갈 테니까 겁먹지 말고 먼저 자요.” 저녁 11시쯤 되자 하람과 경성욱은 드디어 잠에 들었다. 경소경은 나이 든 사람들이 이 저녁까지 안 자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몰래 진몽요의 방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를 품에 안으니 안정감이 들었다. 진몽요는 그의 품 안에 자리를 잡았다. “옷은 왜 안 입었어요?” 그는 살짝 튀어나온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요즘 날씨가 에어컨 키면 춥고 안 키면 또 더워서요. 얼른 자요, 내일 일찍 가게요.” 그녀는 그의 가슴을 문질렀다. “이미 많이 자서 잠이 안 와요. 아까 나가서 결혼식 때 필요한 물건다 샀어요. 어찌나 피곤하던지. 당신은 따라오지도 않고 집에서 쉬기만 했죠?” 그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아니에요, 나도 회사 갔다 왔어요. 정말로요.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쉬어요? 진짜 안 쉬었어요.” 공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진몽요는 온연이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경소경은 참을지 말지 고민하고 하고 있었고,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설마 하람이 이 새벽에 감시하러 온 건가? 발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하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요야, 깼어? 주방에서 국 끓이고 있는데 한 그릇 할래? 내가 가져다줄까?” 경소경은 얼른 거절하라는 손짓을 했지만 이때 문이 열렸다.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니요, 지금 배가 안 고파서 내일 아침에 먹을 게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얼른 주무세요.” 하람이 대답을 하고 나가자 경소경은
진몽요는 그를 흉내내며 다리로 밀었다. “가요.” 다음 날, 온연은 목정침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아이가 예방 접종을 맞을 때가 됐다. 요즘 날씨 변화가 심해서 감기 걸리기 쉬웠고, 밖에는 비가 내려서 그녀는 아이에게 긴팔을 입혀주었다. 옷이 두꺼워져 아이가 더 동그래진 모습이 훨씬 귀여워 보였다. 차에 탄 후, 목정침은 시계를 보고 운전석에 진락에게 말했다. “일단 병원에 내려서 접종은 너가 같이 가. 난 혼자 차타고 회사로 갈게. 접종 끝나면 임집사님이 데리러 오실 거야.” 온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급한 일 있어요? 왜 병원에 같이 안 가요?”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다. “응, 회의 있어.” 그녀는 왠지 모르게 실망했다. 예전에 그는 아이 일이라면 뭐든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걸까? 예전에 그녀는 아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 했지만, 서예령이 나타난 이후로 그녀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녀는 자신이 서예령보다 부족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집안 배경은 그녀가 목가네에서 자랐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뭐든 서예령보다 잘났지만, 왠지 모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가 물었다. “진짜 같이 안 가요?” 목정침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응, 이번엔 정말 안 가. 일이 바빠서.”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 갔다. 회사에 도착한 뒤, 사무실에 들어가자 마자 목정침은 서류를 안고 책상 앞에 있는 서예령을 보고 당황했다. “무슨 일 있어요?” 서예령은 안고 있던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이 서류에 서명이 필요해서요. 제가 일찍 왔는지 대표님이 안 계셔서 잠깐 기다렸어요… 우선 서류부터 보시고 천천히 서명해주세요.” 그가 서류를 검토할 때 서예령은 입을 열었다. “대표님, 갑자기 왜 차가워지신 거예요? 제가 예전에 본 대표님 관련 뉴스에서 늘 웃고 계셔서 따뜻해 보이셨는데, 여기 온 다음부턴
그녀가 자리로 돌아오자 주임이 물었다. “내 책상에 있는 서류 건들였어요?” 서예령은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님이 회사에 오셨는데, 서명하러 안 가셨길래요. 자리에 안 계시는 거 보고 제가 대신 갔다 왔어요. 이미 서명도 다 됐으니 감사인사는 됐습니다.” 주임은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턴 주제에, 본인 일이나 똑바로 해요. 앞으로 이런 거 건들일 생각 말아요! 당신 같은 사람은 대표님 사무실에 들어갈 자격 없어요!” 서예령이 되물었다. “곧 실직하실 마당에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싫다 이거세요? 다들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결국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건데, 어차피 누군가 했어야 될 일이었잖아요. 저한테 화 내실 이유 없는 거 같은데요. 불만 있으시면 대표님한테 직접 말하세요, 대표님 반응이 궁금하네요.” 주임은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 인턴 주제에 나한테 덤빈다 이거야? 너도 나중에 내 자리 오면 그때 덤벼봐. 앞으로 내 물건 건들이면 잘릴 줄 알아!”主 주임이 나가자 옆에 있던 사람이 위로했다. “주임님이 갱년기라서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자기가 일 처리 못 한 건데, 괜히 예령씨만 귀찮게 했네요.” 서예령은 웃었다. “익숙해서 괜찮아요, 일만 제대로 했으면 됐죠 뭐. 요즘 회사가 바빠서 다들 주말에 야근하는데, 주임님도 예민해지셨겠죠.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다 회사를 위한 거잖아요. 목대표님도 못 쉬시고 주말에 회사 나오시잖아요.” 옆에 있던 직원은 칭찬했다. “아직 인턴인데 생각이 그렇게 깊다니, 앞 날이 창창하네요. 사실 야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쉬는 날엔 어차피 나가서 돈만 쓰는데, 야근하면 수당도 3배나 더 주고 저는 나쁠 거 없다고 봐요.” 거의 점심시간이 되자, 목정침은 회의를 마치고 목가네로 향했따. 집에 들어서자 온연은 유모차 안에 있는 아이를 놀아주며 디저트 가게 장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편한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고 헝클어진 채, 화장도 안 해서 더 초췌해 보였다. 이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비록 그녀는 표정으로 티 내진 않았지만 마음은 내심 심란했다. 지금의 일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오히려 오염된 강처럼 너무 평온해서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목정침은 부모님도 없고 가족도 없고 형제도 없어서, 경소경과 임립은 그에게 아주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임립의 죽음으로 인한 그림자는 아마 오래 갈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불만이 많았다. 그가 속상해하면서 그녀와 아이를 무시하는 게 싫었다. 그녀와 아이도 중요하고 앞으로 함께 할 사람들은 정작 그들인데 말이다. 우기가 지나고, 제도의 날씨도 시원해지며 가을에 접어들었다. 콩알이는 이제 대충 앉는 법을 배웠다. 가끔 중심을 잃고 혼자서 넘어지기도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고 혼자서 장난감도 잘 갖고 놀았다. 온연도 이제 육아에서 슬슬 벗어나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가봐도 사모님이니 목정침네 회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일을 못 할 것 같았다. 경소경네 회사로 가서 배가 나오는 진몽요를 케어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경소경네 회사도 다를 바 없을 것 같았기에 두 곳 다 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일을 안 했기에 그녀는 중소기업을 찾았다. 예전에 감각을 되돌리면서 자연스럽게 일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비록 같은 업계지만 그녀도 이름을 내고 싶었고, 영원히 목정침을 의지하고 싶진 않았다. 일자리를 찾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제일 먼저 목정침에게 공유했다. “나 일자리 찾았어요, 앞으로 아이는 아주머니에게 맡기면 될 거 같아요. 퇴근하고 또 내가 볼게요.” 목정침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너가 알아서 해.” 온연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예전처럼 차가워졌고, 그의 쌀쌀 맞은 태도가 그녀는 적응되지 않았다. “뭐하는 거예요? 우리 잘 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질린 거예요? 아니면 내가 예전에 반항하는 게 재밌었는데 이제는 말을 너무 잘 들어서 흥미를 잃은 거예요?” 그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