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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장

엘리베이터 구석에 몰린 소만리는 저항하지도 몸부림치지도 못했다.눈앞에 있는 사람의 생김새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이 바닐라 향기는 이미 그녀의 숨결을 압도하고 있었다.몇 초 동안 혼이 쏙 빠진 소만리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속에서 불이 나듯 초조한 마음에 그를 몰아세우며 말했다.“여기 왜 왔어? 얼른 가! 경찰이 아직도 날 감시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날 찾아오면 어떻게 해!”소만리는 급히 문 열림 버튼을 누르며 기모진을 밀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기모진의 품으로 끌려가 엘리베이터 구석에 틀어박혔다.“날 따라와.”기모진의 말투는 온화하고 부드러웠으며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탓하지 않았고 더욱이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자신의 자존심 따위 다 내팽개치고 오로지 기모진을 구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소만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난 안 가. 이미 시작한 일이야.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거야.”기모진은 심호흡을 하며 검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무슨 일이야?”그의 안색이 어둡다는 것을 알아챈 소만리는 걱정스러운 듯 기모진의 팔을 잡았다.“모진, 어디 아파? 당신 또 힘들어? 그 만성 독소가 당신을 또 힘들게 하는 거야?”기모진은 소만리의 걱정 가득한 모습을 보며 손을 뻗어 꼭대기 층의 버튼을 누르고 소만리를 돌아보며 끌어안았다.“소만리, 내 옆에 있어. 돌아와. 제발.”애원하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의 귓가를 찌르며 그대로 심장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울먹이며 눈물을 흘렸지만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모진, 난 당신한테 돌아갈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 말 한 번만 들어줘, 응?”“안 돼.”기모진은 고집 센 아이처럼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의 깊은 눈도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소만리는 기모진의 몸 상태에 뭔가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그의 피부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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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장

소만리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를 보내려고 했다.“모진...”소만리가 자신을 너무 걱정하다가 혹시나 위치가 드러날까 봐 기모진은 아예 그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소만리는 이때 기모진이 자기에게 키스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그녀는 그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있는 힘껏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굵은 빗방울이 두 사람에게 사정없이 쏟아졌고 소만리의 시선은 더욱 흐려져 눈조차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점차 그녀도 이 남자를 빨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잊었고 기모진의 부드럽고 깊은 키스에 서서히 빠져들고 말았다.기모진도 더 이상 소만리가 저항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입술을 떼며 비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소만리, 나랑 같이 가자, 응?”“응...”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미 거절할 만한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더구나 점점 나빠져가는 그의 안색을 보며 그녀의 가슴이 타들어갔다.기모진은 흐뭇하게 입꼬리에 아치를 그리며 또 한 번 소만리의 입술에 격정적으로 키스한 후 지체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옥상 문으로 향했다.그런데 문 앞에 다다르자 갑자기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경연이 검은 우산을 쓰고 한가롭게 가죽구두를 신고 걸어왔다.어두운 빛에도 불구하고 경연의 얼굴에는 경박스럽고 야비한 웃음이 선명하게 배어 있는 것이 보였다.“역시 오셨군.”경연은 기모진을 보면서 마치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그래, 이렇게 예쁜 아내가 나한테 돌아와서 섭섭하겠지.”기모진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소만리를 자신의 등 뒤로 보호했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경연을 노려보았다.“경연, 남자라면 당당히 나와 싸워. 소만리는 내 아내야. 나 말고는 아무도 그녀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경연은 이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당신 아내가 먼저 찾아왔어. 자진해서 날 찾아왔다구.”“내 아내가 왜 당신을 찾아갔는지 잘 알잖아. 당신이 남사택과 결탁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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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장

경연은 소만리가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는 갑자기 텅 비어버린 손을 보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놀란 것은 기모진도 마찬가지였다.소만리의 날카롭고 민첩한 행동은 정말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고 그야말로 그의 온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러나 소만리의 행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침착했으며 핑크빛 입술을 다부지게 다물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연을 주시하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이 박력과 기세는 흠잡을 데가 없다.소만리는 경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기모진에게 다정하게 말했다.“모진, 어서 빨리 여기를 떠나.”“소만리.”“어서 빨리!”소만리는 일부러 역정을 내며 기모진을 내몰았다.“모진, 난 당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걸 믿어. 언젠가는 진범이 본색을 드러내고 나타날 거야!”소만리가 그녀에게서 아직 눈을 떼지 못하는 기모진을 향해 재촉했다.“어서 가.”소만리의 눈에 비친 강한 결의와 그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끼며 기모진은 더 이상 이 여자의 의지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소만리를 바다같이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경연에게 흘끗 시선을 스쳐갔다.기모진은 지칠 대로 지치고 손상된 몸을 이끌고 재빨리 옥상을 떠났다.하지만 소만리는 손안에 든 총에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여전히 패기 등등하게 경연을 노려보고 있었다.마음속으로는 기모진이 지금 빌딩 주변을 벗어났는지 아닌지를 계산하고 있었다.“이미 기모진도 멀리 갔으니 당신도 이제 그만 그 총 내려놓지?”경연이 불만스러운 감정을 가득 담아 말했다.“이렇게 총을 들고 나를 겨누고 있는 사람 너무 싫어. 소만리. 당신도 예외가 아냐.”그는 언짢은 듯 말하다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소만리가 움켜쥐고 있던 총을 빼앗으려고 했다.소만리가 저항하다가 실수로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고 ‘펑'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되었다.방금 빌딩을 벗어난 기모진은 갑자기 귀를 찢는 소리를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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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장

기모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다가 경연이 소만리를 안고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엘리베이터가 문을 닫는 순간 그는 피로 물든 소만리의 팔과 정신을 잃은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소만리!”기모진은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뒤쫓아 가려고 했다.그 순간 옥상에서 내려온 경찰이 그를 한눈에 발견하였다.“기모진이다!”“잡아라! 기모진이 저항하면 쏴!”기모진이 지금 마음속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소만리뿐이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잡히면 소만리의 상황을 알 수도 없고 경연이 짜놓은 계략에 다시 또 누명을 쓸 가능성이 컸다.그는 계단을 택했고 심신의 극심한 불편과 통증을 꾹 참고 재빨리 모 씨 그룹 빌딩을 빠져나갔다.그는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나가 정문의 상황을 엿보려고 했으나 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길가에서 차를 한 대 불러 타고 핸드폰의 앱을 켰다.소만리는 아들이 직접 만들어준 수정 팔찌를 항상 끼고 있다는 사실을 기모진은 생각해냈다.그 팔찌에는 위치 추적장치가 심어져 있었다.앱을 통해 소만리가 지금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러나 소만리가 지금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그 총소리는 마치 그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온몸이 쓰리도록 괴로웠다.게다가 지금 독소의 영향도 있는 데다 비까지 맞아서 기모진도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하지만 약지의 결혼반지를 보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소만리...”소만리는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실로 옮겨졌다.다행히 총알이 팔을 스쳤을 뿐이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다만 피를 많이 흘려서 소만리는 지금 온몸이 나른하고 축 처진 상태였다.경연은 병상 옆에 서서 서리가 내린 듯 창백한 얼굴을 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너무 강한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정복욕을 일으킬 뿐이야. 소만리. 충고해 두겠는데 다음엔 이렇게 고집부리지 마. 안 그러면 당신이 다칠 거야.”그의 말은 얼핏 들으면 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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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장

소만리는 일어나 앉아 팔뚝의 욱신욱신한 통증을 참으며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어서 가!”그러나 기모진은 소만리를 꼭 안으며 말했다.“소만리, 쫓아내지 마.”“...”소만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그녀인들 왜 그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지 않겠는가.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사랑을 속삭일 때가 아니었다.자신에 대한 기모진의 걱정과 안타까움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모진, 내 말 좀 들어봐. 나 괜찮아. 난 그냥 외상을 좀 입은 것뿐이야. 며칠만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야.”그녀는 그를 위로하며 몇 마디 덧붙였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거야.”“아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야.”기모진이 소만리를 품에서 놓으면서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다시는 내 아내가 다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기모진이 자신을 절절하게 아끼고 있다는 것을 소만리는 느꼈고 그녀 또한 똑같이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모진, 당신을 위해 흘린 눈물과 피는 모두 당신 아내로서 기꺼이 내 마음이 그래서 한 일이니 자책하지 마.”그녀는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오히려 그의 상태가 자신보다 더 좋지 않다고 느꼈다.“방금 옥상에서 또 발작했지? 힘들지 않아?”기모진도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었던지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미 익숙해졌어.”소만리는 눈썹을 찌푸리며 밀려오는 후회를 주저할 수 없었다.“마지막 해독제 세 개를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적어도 당신이 힘들고 괴로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었어.”기모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만리의 손을 꼭 잡았다.“이따위 아픔은 참을 수 있어.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아픔은 당신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거야.”이 말을 듣고 소만리의 마음이 쓰라렸다.“모진, 내 말 들어. 어서 가.”“소만리.”“어서 가. 안 그러면 앞으로 당신 얼굴 안 볼 수도 있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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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장

다음날 소만리가 깨어나 보니 경연이 병상 옆에 서 있었다.그녀는 꿍꿍이를 감추고 서 있는 남자를 말없이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경연은 소만리를 세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어제 피를 많이 흘려서 내가 보양탕을 좀 가져왔어. 씻고 한 술 들어.”소만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보양탕을 보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소만리, 기모진이 당신을 이렇게 다치게 했는데 왜 아직도 그를 그렇게 사랑하는 거야?”경연이 묻는 소리가 화장실 밖에서 유유히 들려왔다.그 말에 소만리는 대꾸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경연은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여전히 온화하고 점잖아 보였다.냉혈한 살인범의 이미지를 전혀 연상할 수 없었다.소만리는 담담한 시선으로 말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이유가 필요해?”그녀는 한마디 되묻고는 침대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경연은 그녀 곁으로 다가가 소만리 대신 보온통을 열어 정성스럽게 국물을 담아 소만리에게 건넸다.그는 붕대를 감은 소만리의 팔을 보고 그릇을 다시 거두어들이며 말했다.“내가 먹여줄게.”경연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소만리의 입에 가져다주었다.“...”소만리는 고개를 돌리며 거부했다.“내가 혼자 먹을 수 있어.”“해독제를 손에 넣고 싶은 거 아냐?”경연은 유유히 입을 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사이에 단단히 협박의 기운을 실어 말했다.소만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을 받아먹었다.먹고 있는 중에 그녀가 곁눈으로 보니 병실 문밖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많은 기자들이 병실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녀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일이 이렇게 빨리 언론에 알려졌다니, 소만리는 틀림없이 경연이 언론에 폭로한 것이라고 믿었다.“기모진과는 이제 분명히 선을 긋고 이제는 나와 핑크빛 분량을 뽑을 때가 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다 당신을 도와주는 거야.”경연이 인정머리 없는 말들을 내뱉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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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장

소만리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잊었어요? 기모진이 우리 부모님을 죽였을 때 난 이미 기모진과 이혼했고 그 후에 경연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경도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데. 설마 모르셨어요?”“...”위청재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그건, 그 무슨 IBCI 임무라고 하지 않았냐? 너랑 경연은 진짜 부부가 아니었잖아!”“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진짜 부부로 다시 시작하려구요.”소만리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말했다.위청재는 소만리가 내뱉는 말에 정신이 멍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만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소만리, 너 도대체 왜 그래? 넌 분명히 모진을 사랑하잖아.”“그래요. 전 그 사람을 매우 사랑했지만 요 몇 년 동안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불만을 토로했다.“우리 엄마 아빠는 죽었고 여온이도 그 사람 때문에 말도 못하게 되었고 그 사람은 지금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어요. 모 씨 그룹 주식까지 영향을 받아서 곤두박질치고 있다구요. 이젠 지긋지긋해요.”“모진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누명을 쓴 거야! 너도 모진을 믿고 있잖니?”위청재가 초조해하며 소만리의 손을 잡고 설득하려고 했다.“소만리, 너와 모진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잖아. 네가 지금 모진을 떠나면 어떡하니? 그럼 안 돼.”소만리는 싫다는 듯 위청재의 손을 뿌리쳤다. 뿌리치는 손과 작은 얼굴에 싸늘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내가 믿는다고 무슨 소용 있어요? 증거가 확실해요. 그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사형을 면한다 하더라도 이미 인생은 끝장인데, 왜 내가 그런 남자를 계속 따라다녀야 해요? 이미 그 사람 때문에 내 지난 십여 년의 인생이 망가졌는데 더 이상 내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냉혹하고 단호한 말투로 감정을 토해내었다.“지금부터 기모진과 나 소만리는 세 명의 아이를 둔 것 외에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에요. 그가 죽든 살든, 도망치든 잡히든, 나와는 아무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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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장

그녀의 남자, 기모진은 절대 살인범이 아니다.그녀 또한 절대 경연 같은 남자를 사랑할 리 없다.경연은 소만리의 날카롭고 강인한 눈동자에서 이런 메시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그는 그녀의 이런 침착함과 강인함을 특히 좋아했다.“내가 올 때까지 잠깐 기다리고 있어.”경연은 그 말을 마치고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났다.그가 나가자마자 소만리는 바로 벌떡 일어나 2층의 침실로 갔다.방이 깔끔한 것으로 보아 경연은 평소 혼자 이곳에서 생활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한 바퀴 뒤져보았지만 의심할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소만리는 좀 더 뒤져보고 싶었지만 팔에 난 상처가 너무나 욱신거리며 아팠다.그녀가 방금 너무 무리해서 방을 뒤진 탓인지 상처에서 은은히 피가 배어 나왔다.소만리는 간단히 드레싱이라도 해보려고 의약 상자를 찾기 시작했다.닥치는 대로 옷장을 열었지만 의약 상자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경연의 옷장에는 양복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옷장에 걸려 있는 양복은 경연과 그녀가 커피숍에서 만났던 날 입었던 것이었다.그날은 강연이 살해된 날이기도 했다.소만리의 후각은 예리하다. 이 양복에서 평소 경연에게서 나는 침향목 향기가 났다.하지만 이 냄새 외에도 총탄 같은 냄새도 났다.강연은 총에 맞아 죽었고 분명히 총을 쏜 사람의 몸에도 그 총탄 냄새가 배었을 것이다.경연이 이 옷을 따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혹여나 잘못 처리되어 오히려 자신에게 위협이 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소만리는 자신이 발견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경연,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당신이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군.모진, 곧 당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거야.그녀가 기뻐하고 있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그녀가 받자마자 기란군의 앳된 목소리가 힘없이 들려왔다.“엄마,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엄마가 나랑 동생들을 싫어한다고 하셨어. 여온이는 지금 너무 기분이 우울한 가봐.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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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장

소만리는 종이 한 귀퉁이를 움켜쥐고 옥상 가장자리에 서 있는 여온을 바라보며 침착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여온아, 이제 엄마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거기 가만히 서 있어, 알았지?”소만리는 아이에게 얘기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그러자 기여온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고 인형 같은 얼굴에는 더욱 근심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소만리는 계속 다가서다가 아이를 더 자극하는 꼴이 될까 봐 얼른 걸음을 멈추었다.“기 부인, 당신 딸입니까?”주변에 있던 경찰이 물었다. 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붉게 물든 눈동자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작은 여온을 에워쌌다.소만리의 마음은 마치 폭탄에 낙인찍힌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그것보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여기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괴로웠다.의혹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소만리의 귓가에 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기 부인, 당신 아이라면 아이와 얘기를 좀 나눠보시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좀 물어봐 주세요. 가능한 한 빨리 내려와야 합니다. 만약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소만리는 눈을 붉히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슴 아프게 여온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다.“아이가 말을 할 줄 몰라요.”경찰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주변에 있던 기자들에게는 그다지 뜻밖은 아니었다.예전에 기 씨 본가에 인터뷰하러 기자들이 왔을 때 위청재가 한바탕 욕을 퍼붓고 기자들을 쫓아낸 적이 있었다.그때 강연에게 납치당했던 충격으로 여온이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위청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보아하니 이 말은 과연 사실인 것 같았다.“기 부인, 당신 딸은 얼마 전 살해당한 강연에게 납치당해 말을 못 하게 된 겁니까? 정말 그렇다면 기모진이 강연을 죽이려는 동기는 더욱 강해졌을 거예요.”옆에 있던 뭔가 꿍꿍이를 품고 있던 경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소만리는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당신은 지금 사람을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나랑 사건을 분석하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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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장

경찰들은 의외로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즉시 명령을 내렸다.“즉각 각종 인터넷과 생방송 플랫폼에서 기여온이 기 씨 그룹 빌딩 옥상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해요. 기모진이 보게 만들어서 반드시 이곳으로 딸을 구하러 오도록 유인해야 해!”이 말을 듣고 소만리는 갑자기 뭔가 눈치챘다. 그녀는 어린 여온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여온은 스스로 여기로 온 것이 아니라 끌려온 것이었다.그 사람의 목적은 이곳으로 기모진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소만리는 이제야 이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하지만 눈앞의 아이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그리고 기모진, 소만리는 그가 절대 이곳에 나타나지 않길 바랬다.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해야 두 사람 모두 무사하게 할 수 있을까?소만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온몸이 불편하고 눈앞의 사물이 아른아른거리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문득 자신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점차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여온아!”뒤에서 갑자기 다급한 고함소리가 울렸다.흐릿해져 가는 소만리의 의식이 순식간에 깨어났다.그녀가 돌아보니 초조한 듯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드리운 강자풍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그의 눈동자에는 기여온의 작은 그림자가 비칠 뿐이었다.“여온아!”강자풍은 긴장한 표정으로 달려갔다.그런데 기여온이 강자풍을 보자 갑자기 발걸음이 뒤로 물러났다!앙증맞은 작은 체구가 바람을 맞으며 갑자기 흔들렸고 소만리는 가슴이 두근거려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왔다.“여온아!”소만리가 소리치며 강자풍을 잡아당기며 일깨워 주었다.“앞으로 가지 마!”강자풍은 걸음을 뚝 멈추었고 이미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움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그의 눈에는 기여온이 이대로 떨어질까 봐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다.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고 손바닥에선 식은땀이 흘렀다.“여온아, 오빠 놀래키지 말고 얌전히 내려와 줄래? 오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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