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1229장

작가: 십육인
소만리는 종이 한 귀퉁이를 움켜쥐고 옥상 가장자리에 서 있는 여온을 바라보며 침착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

“여온아, 이제 엄마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거기 가만히 서 있어, 알았지?”

소만리는 아이에게 얘기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자 기여온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고 인형 같은 얼굴에는 더욱 근심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소만리는 계속 다가서다가 아이를 더 자극하는 꼴이 될까 봐 얼른 걸음을 멈추었다.

“기 부인, 당신 딸입니까?”

주변에 있던 경찰이 물었다. 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붉게 물든 눈동자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작은 여온을 에워쌌다.

소만리의 마음은 마치 폭탄에 낙인찍힌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그것보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여기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괴로웠다.

의혹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소만리의 귓가에 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 부인, 당신 아이라면 아이와 얘기를 좀 나눠보시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좀 물어봐 주세요. 가능한 한 빨리 내려와야 합니다. 만약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소만리는 눈을 붉히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슴 아프게 여온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다.

“아이가 말을 할 줄 몰라요.”

경찰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주변에 있던 기자들에게는 그다지 뜻밖은 아니었다.

예전에 기 씨 본가에 인터뷰하러 기자들이 왔을 때 위청재가 한바탕 욕을 퍼붓고 기자들을 쫓아낸 적이 있었다.

그때 강연에게 납치당했던 충격으로 여온이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위청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이 말은 과연 사실인 것 같았다.

“기 부인, 당신 딸은 얼마 전 살해당한 강연에게 납치당해 말을 못 하게 된 겁니까? 정말 그렇다면 기모진이 강연을 죽이려는 동기는 더욱 강해졌을 거예요.”

옆에 있던 뭔가 꿍꿍이를 품고 있던 경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소만리는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사람을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나랑 사건을 분석하자는 거예요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0장

    경찰들은 의외로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즉시 명령을 내렸다.“즉각 각종 인터넷과 생방송 플랫폼에서 기여온이 기 씨 그룹 빌딩 옥상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해요. 기모진이 보게 만들어서 반드시 이곳으로 딸을 구하러 오도록 유인해야 해!”이 말을 듣고 소만리는 갑자기 뭔가 눈치챘다. 그녀는 어린 여온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여온은 스스로 여기로 온 것이 아니라 끌려온 것이었다.그 사람의 목적은 이곳으로 기모진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소만리는 이제야 이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하지만 눈앞의 아이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그리고 기모진, 소만리는 그가 절대 이곳에 나타나지 않길 바랬다.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해야 두 사람 모두 무사하게 할 수 있을까?소만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온몸이 불편하고 눈앞의 사물이 아른아른거리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문득 자신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점차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여온아!”뒤에서 갑자기 다급한 고함소리가 울렸다.흐릿해져 가는 소만리의 의식이 순식간에 깨어났다.그녀가 돌아보니 초조한 듯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드리운 강자풍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그의 눈동자에는 기여온의 작은 그림자가 비칠 뿐이었다.“여온아!”강자풍은 긴장한 표정으로 달려갔다.그런데 기여온이 강자풍을 보자 갑자기 발걸음이 뒤로 물러났다!앙증맞은 작은 체구가 바람을 맞으며 갑자기 흔들렸고 소만리는 가슴이 두근거려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왔다.“여온아!”소만리가 소리치며 강자풍을 잡아당기며 일깨워 주었다.“앞으로 가지 마!”강자풍은 걸음을 뚝 멈추었고 이미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움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그의 눈에는 기여온이 이대로 떨어질까 봐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다.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고 손바닥에선 식은땀이 흘렀다.“여온아, 오빠 놀래키지 말고 얌전히 내려와 줄래? 오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1장

    ”여온아!”강자풍 역시 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주저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어머! 아이가 떨어졌어!”“여기 28층인데 떨어지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기자들이 다들 놀라 충격에 휩싸였지만 한편으론 이 순간을 포착하느라 바빴다.이때 전광석화와 같은 바람이 소만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그 ‘바람'은 그녀에게 익숙한 기운을 풍기며 좌중을 휩쓸고 지나갔다.소만리는 기모진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는 쏜살같이 그녀의 곁을 지나갔고 그녀를 위험한 곳에서 밀어내면서 아이와 함께 덩달아 훌쩍 뛰어내렸다.“아!”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몸집이 큰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완전히 충격에 휩싸였다.한쪽으로 밀려난 소만리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모습을 정신을 놓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심장을 때리는 아픔을 느꼈다.그녀의 모든 감각과 의식이 한꺼번에 그녀의 몸에서 흩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모진...”그녀는 멍한 눈으로 기모진의 이름을 불렀고 눈가에 가득 찬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소만리는 자신도 황급히 뛰어가려고 발을 내디뎌 보았지만 두 걸음만 걸어도 두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누나!”강자풍이 그녀를 부축했다.소만리의 창백한 얼굴과 당황한 눈빛을 보며 강자풍은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지 마. 날 떠나지 마. 모진, 여온아...”소만리는 텅 비어버린 옥상 모서리를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경찰도 한참을 멍하니 넋을 잃고 나서야 서둘러 기모진이 뛰어내린 자리로 가서 아래를 바라보았다.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무사한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사람 안 떨어졌어!”“기모진이다!”“기모진? 당장 경찰 배치하고 체포할 준비해!”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갑자기 그녀의 세계에 다시 빛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그녀는 이미 자신의 부상은 잊은 채 위험을 무릅쓰고 옥상 가장자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2장

    기여온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위기도 의식하지 못했다.그저 이렇게 기모진을 집중해서 똑바로 쳐다볼 뿐이었다.“여온아, 아빠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아빠가 여온이를 사랑하지 않는 척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아빠에게 여온이는 유일한 공주야. 아빠가 평생 목숨 바쳐 우리 작은 천사 여온이 사랑하고 지켜낼 거야.”기모진의 말이 떨어졌을 때 그가 꼭 잡아당기고 있던 난간이 갑자기 헐거워졌다.기여온의 몸이 오십 센티 정도 아래로 떨어졌고 기모진의 어깨도 그만큼 아래로 기울어졌지만 그는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움켜쥐었다.소만리는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그녀는 관계자의 구조를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 갑자기 손을 뻗어 기모진의 팔을 잡아당겼다.“소만리, 뭐 하는 거야? 얼른 손 놔. 만일 난간이 헐거워지면 당신도 나와 끌려 내려갈 거야!”기모진이 격앙된 목소리로 엄중하게 말하며 소만리의 행동을 말렸다.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꿋꿋이 남자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그럼 같이 떨어지면 되지. 당신과 여온이를 잃으면 나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소만리!”“더 이상 나 말리지 마!”소만리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모진, 당신이 있는 곳이 내 집이야.”“소만리...”기모진은 이미 소만리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아울러 강자풍도 와서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을 보았다.“다들 아무 일 없을 거야!”강자풍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고 불만스럽게 돌아보며 기모진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을 재촉했다.“빨리 사람을 구하지 않고 뭐해요? 사람을 잡아서 자신의 실적만 세우려 하는 거예요? 그게 국민을 섬기는 겁니까?”강자풍의 말을 듣고 있던 주변 경찰들은 서둘러 움직였지만 기모진에 대한 감시도 늦추지 않았다.그들은 이미 기모진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모두 배치했다.그런데 기모진은 지금 자신의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3장

    소만리는 경찰이 이때를 틈타 기모진을 체포할 줄은 몰랐다.그의 손목에 채워진 은빛 수갑을 바라보는 소만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기모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경찰이 이끄는 대로 옥상으로 올라왔다.기모진이 올라온 순간 기자들은 미친 듯이 카메라를 그에게 겨누었다.경도 제일의 명문가 자제 기모진이 살인죄로 체포되었다.이런 체포 현장은 인터넷에서 클릭 수를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기자들에겐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기모진은 옆에 서서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소만리를 바라보았고 그녀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깊이 바라보기만 했다.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소만리는 기모진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감지할 수 있었다.“기모진, 저희와 함께 가시죠. 우리가 조사해 보면 당신이 결백한지 아닌지 다 밝혀지겠죠. 철수!”경찰은 기모진을 경찰서로 데려가려고 했다.기모진도 지금 다시 도망가고 싶지 않았고 돌아서서 끌려 가기 전에 소만리를 다시 돌아보았다.소만리는 일부러 냉담하게 눈을 떼고 다시는 그를 보지 않았다.기모진은 오히려 회심의 깊은 미소를 띠었고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다만 그가 두어 발자국도 가지 못했을 때 갑자기 총총총 작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들었다.그가 돌아보니 기여온이 이미 그의 곁으로 달려와 있었다.기모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가 그에게 달려와 옷자락을 잡아당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여온아.”그는 몸을 구부리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엄마랑 같이 집에 가 있어. 아빠는 지금 여온이랑 같이 갈 수 없어.”미안한 듯한 기모진의 표정을 보고 기여온은 눈살을 찌푸리고 진지하게 기모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기모진의 옷자락을 힘껏 잡아당기며 함께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는 듯했다.그러나 기모진은 지금 이 상황에서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여온아, 아빠가 약속할게.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4장

    소만리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옆에 있는 경연을 바라보았다.경연은 사랑스러운 듯 소만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모든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며 소만리의 어깨를 감쌌다.물론 그의 이런 행동은 기모진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는 기모진에 대한 승리의 기쁨을 남몰래 표출하고 있었고 당당하게 소만리를 안고 보란 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기모진이 딸을 구하려고 나타나 붙잡힌 일은 삽시간에 알려졌다.소만리가 옥상에서 기모진에게 몰인정한 말을 내뱉으며 경연을 따라간 것도 다 알려졌다.그러나 그녀는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욕설과 비난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경연을 따라 그들의 신혼집으로 돌아온 소만리는 총탄 냄새가 배어 있는 경연의 양복을 손에 넣을 기회를 노렸다.하지만 경연은 소만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항상 그녀와 함께 있었고 거실의 TV를 켜놓고 뜨겁게 보도되고 있는 기모진의 체포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기모진이 결국 여자와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줄은 몰랐어.”경연은 흡족한 듯 입꼬리를 잡아당겨 시원하게 웃으며 옆에 앉은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당신도 대단해. 지조 없는 여자라는 더러운 오명을 뒤집어쓸지언정 기모진의 목숨을 위해 기꺼이 이런 연극을 해서 나를 만족시키다니 말이야.”경연의 말을 듣던 소만리는 갑자기 쓴웃음을 지으며 피곤한 듯 소파에 기대어 공허한 눈빛으로 먼 곳을 주시하며 말했다.“난 정말 그와는 인연이 없는지도 몰라.”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떨구었다.“그 사람이랑 여러 번 헤어졌고 지금까지 편안하게 함께 한 적이 없어. 난 그저 평온한 삶을 갈망했을 뿐인데 왜 항상 이렇게 힘든 걸까?”경연은 소만리가 갑자기 이런 감정을 드러내고 눈물을 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안타까운 듯 손을 들어 살며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따뜻하게 그녀를 위로했다.“둘이 어울리지 않는데 왜 굳이 함께 있어야 해? 감정이란 것이 결혼에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은 맞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5장

    아이의 작은 입에서 외친 이 두 글자가 시간을 멈춰버린 것 같았다.소만리와 기모진은 동시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지금 이 순간 들은 이 말을 믿기 어려웠다.기모진은 더욱이 자신이 지금 환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했다.그의 어린 공주가 그를 아빠라고 불렀던가?어리둥절한 표정의 기여온은 아무 반응도 없이 꼼짝 않고 서 있는 기모진을 올려다보았고 빽빽이 들어찬 속눈썹을 살짝 들었다 놓더니 이내 맑은 아이의 눈동자엔 쓸쓸함이 감돌았다.“아빠.”기여온은 입을 벌리고 다시 소리쳤다.여리고 청량한 아빠라는 말이 또렷하게 기모진의 귓가로 파고들었다.이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것은 환각이 아니었다.기모진은 갑자기 몸을 웅크리고 앉아 앞에 있는 작은 인형 같은 얼굴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여온아.”그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두 손을 들어 여온의 희고 깨끗한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여온아, 우리 여온이 말할 줄 아는 구나. 아빠라고 부를 줄 알아.”그의 마음이 사무치도록 벅차올라서 말소리마저 떨릴 지경이었다.그의 딸 여온이 말을 할 줄 안다!오랜 세월을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그는 ‘아빠'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기모진은 자신을 아빠로 받아들인 기여온의 마음을 느꼈다.그 모습을 보는 기여온의 얼굴에도 점차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다만 아이는 아빠의 눈이 왜 붉어졌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아빠가 울어? 왜 울지?기여온은 큰 눈을 깜빡이며 하얗고 보드라운 작은 손을 내밀어 기모진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살짝 닦았다.그녀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고 귀여운 보조개는 쓸쓸하고 차가웠던 기모진의 마음을 달콤하고 따뜻하게 치유해 주었다.“기모진, 면회 시간이 이미 지났습니다.”교도관이 재촉했다.기모진은 이 순간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결국 손을 놓아야만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놓자 기여온의 입술 양쪽에 있던 보조개도 함께 흩어졌고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6장

    소만리도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지금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기모진밖에 없는 것 같았다.그녀는 기여온을 기 씨 본가로 돌려보낸 후 즉시 경연의 집으로 돌아왔다.경연이 집을 비우고 없자 소만리는 즉시 침실로 와서 옷장에 있는 그 양복을 가져가려고 했다.이것은 경연이 강연을 죽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소만리는 얼른 옷장 문을 열었지만 옷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경연이 한 발 먼저 옷을 수거해 버린 걸까?소만리는 마음이 심란해서 급히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다.한바탕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녀는 옷방에 다시 가보려고 방문을 나섰는데 마침 위층으로 올라오는 경연과 정면으로 마주쳤다.경연은 소만리가 뭔가 황급한 기색을 보이자 방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왜 그래? 뭘 찾고 있었던 거야?”“아들이 만들어준 장미 모양 배지 하나가 없어졌어.”소만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돌아와서 다시 찾아봐.”경연은 갑자기 소만리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나 당신을 데리고 내 부모님 집에 가서 저녁 같이 먹으려고.”소만리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상황을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경연을 따라 들어갔다.경 씨 집 대문에 들어서자 소만리는 온몸이 불편해졌다.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경연의 부모님을 보며 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소만리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당신 시부모 될 자격이 어디 있어.”경연의 부모는 한껏 비꼬며 말했다.“우리 경연이가 제정신인지 아닌지 모르겠군. 이런 시끌시끌하고 위태로운 시기에 널 데리고 집에 오다니!”경연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가 한 말에 상당히 동의했고 소만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경연을 설득했다.“경연, 너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기모진도 배신할 수 있는 이런 여자를 데려오다니! 아침저녁으로 남자들 바꿔가며 다른 남자 따라가는 이런 여자는 인생의 고난을 절대 함께 할 수 없어! 이 여자는 절대 안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237장

    경연은 천천히 소만리의 앞으로 다가갔다.잿빛 눈동자에 짙은 소유욕이 뿜어져 나왔다.그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소만리의 셔츠 단추 하나를 풀었다.소만리는 침착하게 손을 들어 차갑고 냉담한 눈빛으로 경연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위층으로 걸어갔다.경연은 힘없이 뿌리쳐진 자신의 손을 거둬들이며 당당하고 우아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속에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점점 커져 사모하는 빛이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소만리는 방으로 돌아와 얼른 샤워를 하고 경연이 만진 옷을 갈아입었다.욕실을 나온 후 소만리는 다시 그 양복의 행방을 찾아보려고 서재 문 옆을 지나는데 경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미스터 토마스,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에요.”가격?비즈니스 얘기인가?소만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재를 바라보았다.경연은 창가 앞에 서서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남 앞에서 보이던 겸손함과 점잖은 귀공자의 모습은 없었고 도도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태였다.경연이 아버지의 일을 도와 회사 일을 처리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소만리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두 걸음 가다가 그녀는 경연의 입에서 강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들었다.소만리가 벽에 기대어 자세히 들으니 경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미스터 토마스. 당신은 잘 모르는 게 있어요. 강어는 이미 죽었고 만약 당신이 물건을 예정대로 손에 넣고 싶다면 이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강어가 살아있었더라도 그가 당신에게 이 가격을 줬을 거라고 확신해요.”경연은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어요. 단지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흑강당은 아직 해체되지 않았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내가 얻게 해 줄 수 있다는 거죠.”경연의 이 말을 듣고 소만리는 깜짝 놀랐다.흑강당이 아직 해체되지 않았다고?그렇다면 경연이 흑강당을 접수한 거야?

최신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9장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8장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7장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6장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5장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4장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3장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2장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1장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