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은 소만리가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는 갑자기 텅 비어버린 손을 보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놀란 것은 기모진도 마찬가지였다.소만리의 날카롭고 민첩한 행동은 정말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고 그야말로 그의 온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러나 소만리의 행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침착했으며 핑크빛 입술을 다부지게 다물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연을 주시하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이 박력과 기세는 흠잡을 데가 없다.소만리는 경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기모진에게 다정하게 말했다.“모진, 어서 빨리 여기를 떠나.”“소만리.”“어서 빨리!”소만리는 일부러 역정을 내며 기모진을 내몰았다.“모진, 난 당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걸 믿어. 언젠가는 진범이 본색을 드러내고 나타날 거야!”소만리가 그녀에게서 아직 눈을 떼지 못하는 기모진을 향해 재촉했다.“어서 가.”소만리의 눈에 비친 강한 결의와 그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끼며 기모진은 더 이상 이 여자의 의지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소만리를 바다같이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경연에게 흘끗 시선을 스쳐갔다.기모진은 지칠 대로 지치고 손상된 몸을 이끌고 재빨리 옥상을 떠났다.하지만 소만리는 손안에 든 총에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여전히 패기 등등하게 경연을 노려보고 있었다.마음속으로는 기모진이 지금 빌딩 주변을 벗어났는지 아닌지를 계산하고 있었다.“이미 기모진도 멀리 갔으니 당신도 이제 그만 그 총 내려놓지?”경연이 불만스러운 감정을 가득 담아 말했다.“이렇게 총을 들고 나를 겨누고 있는 사람 너무 싫어. 소만리. 당신도 예외가 아냐.”그는 언짢은 듯 말하다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소만리가 움켜쥐고 있던 총을 빼앗으려고 했다.소만리가 저항하다가 실수로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고 ‘펑'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되었다.방금 빌딩을 벗어난 기모진은 갑자기 귀를 찢는 소리를 들었
기모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다가 경연이 소만리를 안고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엘리베이터가 문을 닫는 순간 그는 피로 물든 소만리의 팔과 정신을 잃은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소만리!”기모진은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뒤쫓아 가려고 했다.그 순간 옥상에서 내려온 경찰이 그를 한눈에 발견하였다.“기모진이다!”“잡아라! 기모진이 저항하면 쏴!”기모진이 지금 마음속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소만리뿐이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잡히면 소만리의 상황을 알 수도 없고 경연이 짜놓은 계략에 다시 또 누명을 쓸 가능성이 컸다.그는 계단을 택했고 심신의 극심한 불편과 통증을 꾹 참고 재빨리 모 씨 그룹 빌딩을 빠져나갔다.그는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나가 정문의 상황을 엿보려고 했으나 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길가에서 차를 한 대 불러 타고 핸드폰의 앱을 켰다.소만리는 아들이 직접 만들어준 수정 팔찌를 항상 끼고 있다는 사실을 기모진은 생각해냈다.그 팔찌에는 위치 추적장치가 심어져 있었다.앱을 통해 소만리가 지금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러나 소만리가 지금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그 총소리는 마치 그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온몸이 쓰리도록 괴로웠다.게다가 지금 독소의 영향도 있는 데다 비까지 맞아서 기모진도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하지만 약지의 결혼반지를 보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소만리...”소만리는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실로 옮겨졌다.다행히 총알이 팔을 스쳤을 뿐이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다만 피를 많이 흘려서 소만리는 지금 온몸이 나른하고 축 처진 상태였다.경연은 병상 옆에 서서 서리가 내린 듯 창백한 얼굴을 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너무 강한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정복욕을 일으킬 뿐이야. 소만리. 충고해 두겠는데 다음엔 이렇게 고집부리지 마. 안 그러면 당신이 다칠 거야.”그의 말은 얼핏 들으면 소만
소만리는 일어나 앉아 팔뚝의 욱신욱신한 통증을 참으며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어서 가!”그러나 기모진은 소만리를 꼭 안으며 말했다.“소만리, 쫓아내지 마.”“...”소만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그녀인들 왜 그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지 않겠는가.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사랑을 속삭일 때가 아니었다.자신에 대한 기모진의 걱정과 안타까움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모진, 내 말 좀 들어봐. 나 괜찮아. 난 그냥 외상을 좀 입은 것뿐이야. 며칠만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야.”그녀는 그를 위로하며 몇 마디 덧붙였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거야.”“아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야.”기모진이 소만리를 품에서 놓으면서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다시는 내 아내가 다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기모진이 자신을 절절하게 아끼고 있다는 것을 소만리는 느꼈고 그녀 또한 똑같이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모진, 당신을 위해 흘린 눈물과 피는 모두 당신 아내로서 기꺼이 내 마음이 그래서 한 일이니 자책하지 마.”그녀는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오히려 그의 상태가 자신보다 더 좋지 않다고 느꼈다.“방금 옥상에서 또 발작했지? 힘들지 않아?”기모진도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었던지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미 익숙해졌어.”소만리는 눈썹을 찌푸리며 밀려오는 후회를 주저할 수 없었다.“마지막 해독제 세 개를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적어도 당신이 힘들고 괴로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었어.”기모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만리의 손을 꼭 잡았다.“이따위 아픔은 참을 수 있어.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아픔은 당신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거야.”이 말을 듣고 소만리의 마음이 쓰라렸다.“모진, 내 말 들어. 어서 가.”“소만리.”“어서 가. 안 그러면 앞으로 당신 얼굴 안 볼 수도 있어.”소
다음날 소만리가 깨어나 보니 경연이 병상 옆에 서 있었다.그녀는 꿍꿍이를 감추고 서 있는 남자를 말없이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경연은 소만리를 세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어제 피를 많이 흘려서 내가 보양탕을 좀 가져왔어. 씻고 한 술 들어.”소만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보양탕을 보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소만리, 기모진이 당신을 이렇게 다치게 했는데 왜 아직도 그를 그렇게 사랑하는 거야?”경연이 묻는 소리가 화장실 밖에서 유유히 들려왔다.그 말에 소만리는 대꾸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경연은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여전히 온화하고 점잖아 보였다.냉혈한 살인범의 이미지를 전혀 연상할 수 없었다.소만리는 담담한 시선으로 말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이유가 필요해?”그녀는 한마디 되묻고는 침대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경연은 그녀 곁으로 다가가 소만리 대신 보온통을 열어 정성스럽게 국물을 담아 소만리에게 건넸다.그는 붕대를 감은 소만리의 팔을 보고 그릇을 다시 거두어들이며 말했다.“내가 먹여줄게.”경연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소만리의 입에 가져다주었다.“...”소만리는 고개를 돌리며 거부했다.“내가 혼자 먹을 수 있어.”“해독제를 손에 넣고 싶은 거 아냐?”경연은 유유히 입을 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사이에 단단히 협박의 기운을 실어 말했다.소만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을 받아먹었다.먹고 있는 중에 그녀가 곁눈으로 보니 병실 문밖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많은 기자들이 병실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녀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일이 이렇게 빨리 언론에 알려졌다니, 소만리는 틀림없이 경연이 언론에 폭로한 것이라고 믿었다.“기모진과는 이제 분명히 선을 긋고 이제는 나와 핑크빛 분량을 뽑을 때가 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다 당신을 도와주는 거야.”경연이 인정머리 없는 말들을 내뱉고 난 후
소만리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잊었어요? 기모진이 우리 부모님을 죽였을 때 난 이미 기모진과 이혼했고 그 후에 경연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경도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데. 설마 모르셨어요?”“...”위청재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그건, 그 무슨 IBCI 임무라고 하지 않았냐? 너랑 경연은 진짜 부부가 아니었잖아!”“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진짜 부부로 다시 시작하려구요.”소만리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말했다.위청재는 소만리가 내뱉는 말에 정신이 멍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만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소만리, 너 도대체 왜 그래? 넌 분명히 모진을 사랑하잖아.”“그래요. 전 그 사람을 매우 사랑했지만 요 몇 년 동안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불만을 토로했다.“우리 엄마 아빠는 죽었고 여온이도 그 사람 때문에 말도 못하게 되었고 그 사람은 지금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어요. 모 씨 그룹 주식까지 영향을 받아서 곤두박질치고 있다구요. 이젠 지긋지긋해요.”“모진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누명을 쓴 거야! 너도 모진을 믿고 있잖니?”위청재가 초조해하며 소만리의 손을 잡고 설득하려고 했다.“소만리, 너와 모진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잖아. 네가 지금 모진을 떠나면 어떡하니? 그럼 안 돼.”소만리는 싫다는 듯 위청재의 손을 뿌리쳤다. 뿌리치는 손과 작은 얼굴에 싸늘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내가 믿는다고 무슨 소용 있어요? 증거가 확실해요. 그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사형을 면한다 하더라도 이미 인생은 끝장인데, 왜 내가 그런 남자를 계속 따라다녀야 해요? 이미 그 사람 때문에 내 지난 십여 년의 인생이 망가졌는데 더 이상 내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냉혹하고 단호한 말투로 감정을 토해내었다.“지금부터 기모진과 나 소만리는 세 명의 아이를 둔 것 외에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에요. 그가 죽든 살든, 도망치든 잡히든, 나와는 아무 상관
그녀의 남자, 기모진은 절대 살인범이 아니다.그녀 또한 절대 경연 같은 남자를 사랑할 리 없다.경연은 소만리의 날카롭고 강인한 눈동자에서 이런 메시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그는 그녀의 이런 침착함과 강인함을 특히 좋아했다.“내가 올 때까지 잠깐 기다리고 있어.”경연은 그 말을 마치고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났다.그가 나가자마자 소만리는 바로 벌떡 일어나 2층의 침실로 갔다.방이 깔끔한 것으로 보아 경연은 평소 혼자 이곳에서 생활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한 바퀴 뒤져보았지만 의심할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소만리는 좀 더 뒤져보고 싶었지만 팔에 난 상처가 너무나 욱신거리며 아팠다.그녀가 방금 너무 무리해서 방을 뒤진 탓인지 상처에서 은은히 피가 배어 나왔다.소만리는 간단히 드레싱이라도 해보려고 의약 상자를 찾기 시작했다.닥치는 대로 옷장을 열었지만 의약 상자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경연의 옷장에는 양복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옷장에 걸려 있는 양복은 경연과 그녀가 커피숍에서 만났던 날 입었던 것이었다.그날은 강연이 살해된 날이기도 했다.소만리의 후각은 예리하다. 이 양복에서 평소 경연에게서 나는 침향목 향기가 났다.하지만 이 냄새 외에도 총탄 같은 냄새도 났다.강연은 총에 맞아 죽었고 분명히 총을 쏜 사람의 몸에도 그 총탄 냄새가 배었을 것이다.경연이 이 옷을 따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혹여나 잘못 처리되어 오히려 자신에게 위협이 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소만리는 자신이 발견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경연,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당신이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군.모진, 곧 당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거야.그녀가 기뻐하고 있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그녀가 받자마자 기란군의 앳된 목소리가 힘없이 들려왔다.“엄마,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엄마가 나랑 동생들을 싫어한다고 하셨어. 여온이는 지금 너무 기분이 우울한 가봐. 지금까지
소만리는 종이 한 귀퉁이를 움켜쥐고 옥상 가장자리에 서 있는 여온을 바라보며 침착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여온아, 이제 엄마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거기 가만히 서 있어, 알았지?”소만리는 아이에게 얘기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그러자 기여온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고 인형 같은 얼굴에는 더욱 근심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소만리는 계속 다가서다가 아이를 더 자극하는 꼴이 될까 봐 얼른 걸음을 멈추었다.“기 부인, 당신 딸입니까?”주변에 있던 경찰이 물었다. 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붉게 물든 눈동자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작은 여온을 에워쌌다.소만리의 마음은 마치 폭탄에 낙인찍힌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그것보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여기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괴로웠다.의혹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소만리의 귓가에 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기 부인, 당신 아이라면 아이와 얘기를 좀 나눠보시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좀 물어봐 주세요. 가능한 한 빨리 내려와야 합니다. 만약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소만리는 눈을 붉히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슴 아프게 여온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다.“아이가 말을 할 줄 몰라요.”경찰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주변에 있던 기자들에게는 그다지 뜻밖은 아니었다.예전에 기 씨 본가에 인터뷰하러 기자들이 왔을 때 위청재가 한바탕 욕을 퍼붓고 기자들을 쫓아낸 적이 있었다.그때 강연에게 납치당했던 충격으로 여온이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위청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보아하니 이 말은 과연 사실인 것 같았다.“기 부인, 당신 딸은 얼마 전 살해당한 강연에게 납치당해 말을 못 하게 된 겁니까? 정말 그렇다면 기모진이 강연을 죽이려는 동기는 더욱 강해졌을 거예요.”옆에 있던 뭔가 꿍꿍이를 품고 있던 경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소만리는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당신은 지금 사람을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나랑 사건을 분석하자는 거예요
경찰들은 의외로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즉시 명령을 내렸다.“즉각 각종 인터넷과 생방송 플랫폼에서 기여온이 기 씨 그룹 빌딩 옥상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해요. 기모진이 보게 만들어서 반드시 이곳으로 딸을 구하러 오도록 유인해야 해!”이 말을 듣고 소만리는 갑자기 뭔가 눈치챘다. 그녀는 어린 여온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여온은 스스로 여기로 온 것이 아니라 끌려온 것이었다.그 사람의 목적은 이곳으로 기모진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소만리는 이제야 이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하지만 눈앞의 아이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그리고 기모진, 소만리는 그가 절대 이곳에 나타나지 않길 바랬다.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해야 두 사람 모두 무사하게 할 수 있을까?소만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온몸이 불편하고 눈앞의 사물이 아른아른거리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문득 자신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점차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여온아!”뒤에서 갑자기 다급한 고함소리가 울렸다.흐릿해져 가는 소만리의 의식이 순식간에 깨어났다.그녀가 돌아보니 초조한 듯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드리운 강자풍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그의 눈동자에는 기여온의 작은 그림자가 비칠 뿐이었다.“여온아!”강자풍은 긴장한 표정으로 달려갔다.그런데 기여온이 강자풍을 보자 갑자기 발걸음이 뒤로 물러났다!앙증맞은 작은 체구가 바람을 맞으며 갑자기 흔들렸고 소만리는 가슴이 두근거려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왔다.“여온아!”소만리가 소리치며 강자풍을 잡아당기며 일깨워 주었다.“앞으로 가지 마!”강자풍은 걸음을 뚝 멈추었고 이미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움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그의 눈에는 기여온이 이대로 떨어질까 봐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다.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고 손바닥에선 식은땀이 흘렀다.“여온아, 오빠 놀래키지 말고 얌전히 내려와 줄래? 오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