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11 - 챕터 920

1699 챕터

912화

여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준의 조심스러운 모습을 바라보았다.어쩐지 우스웠다.여름의 사뭇 매정한 말투로 비꼬았다.“아무렴 내가 당신을 보러 왔겠어?”여름은 힘껏 하준의 손을 뿌리쳤다.“우린 이제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니야.”여름이 돌아서서 가려고 하자 하준이 얼른 여름의 앞을 막아섰다. 아프면서도 목소리는 예전처럼 카리스마가 넘쳤다.“내가 언제 너랑 헤어진다고 했나? 강여름, 넌 여전히 내 애인이야.”“저기요,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네. 어제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보니까 백지안이랑 아주 철석 붙어있던데.”강여름은 하준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었다.“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았어도 그딴소리 못할 것 같은데.”“날… 수치심도 없는 인간으로 보는구나.”하준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내가 많은 일을 잘못한 건 알아. 아마도 김 실장 말처럼 나는 여름이를 귀찮게 하면 안 되는지도 몰라. 하지만 어제부터 지금까지 난 여름이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사람은 아플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는 말이 있지.하지만 내가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미안해. 나도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 그날 지안이를 구하러 갔을 때 내가 직접 육민관이 지안이를 마구 때리는 모습을 보고 그만….”“백지안 때문에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같은 쓰잘데기 없는 소리 나한테 하지 마. 듣고 싶지도 않아.”여름은 한 마디로 하준의 말을 끊었다.“전에 혹시나 해서 했던 말이 맞아. 난 복수하려고 당신과 사귀겠다고 한 거야. 백지안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고통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어.”“뭐라고?”하준은 멍해졌다. 누군가에게 세게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왜 그럴 리가 없어?”여름이 싸늘하게 웃었다.“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하나하나 불러줘? 첫째, 백지안이랑 바람이 났었지. 그런데도 사람들이 백지안에게 불륜녀라고 손가락질할까 봐 우리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나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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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화

“셋째, 이혼하도록 압박했지. 백지안하고 결혼하고 싶어서 한 것까지도 이해하겠어. 하지만 왜 민정화가 내 옷을 벗기는 패악을 부리는 데도 그냥 있었지? 그래, 나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사람이 바닥에 눕혀져서 남들이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아? 당신은 내 존엄을 짓밟은 거야.”“넷째, 말할 거도 없이 민관이 사건이지. 백지안이 납치됐다고 당신은 여주산에서 날 버리고 달려갔어. 가지 말라고 해 봤지만 당신은 매정하게 날 버리고 갔지.민관이는 내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인데 당신은 그 애에게 어떻게 했지? 손가락을 잘라버렸어. 최하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공포스럽지 않아?”‘공포스럽다고?내가?’하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여름이 그렇게 하나하나 세지 않았으면 하준은 자신이 여름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잊을 뻔했다.하준은 이상하게도 여름과 관련된 일에서만 유독 악마처럼 변했던 것이다.“여름아, 미안해. 내가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을게. 내게 맹세….”“맹세 따위 하지도 마. 당신이랑 사귈 때 얼마나 달콤한 말을 속삭였어? 그게 불과 며칠 전인지 알아?”표정에서 도저히 혐오를 감추지 못했다.“최하준, 당신 입은 영원히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지.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돌아서면 당신이 어느 순간에 태도를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고.”“이제 다시는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을 거야. 믿어 줘.”하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여름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지안이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날 빼앗아 가서 지안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다며, 그 기회를 만들어 줄게.”죽을 때까지 여름에게 괴롭힘을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이 순간 하준은 무력한 아이 같았다. 그저 여름이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만 주기를 바랐다.“고맙지만 그런 기회 따위 됐어.”전에 이렇게 자신을 잡으려고 애쓰는 하준을 봤다면 ‘최하준, 그렇게 날 무시하더니 본인이 이렇게 가련한 꼴이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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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화

여름의 입에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자 하준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여름이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게 아니구나. 나에게 마음이 약해진 적도 있었어.그런데 내가 그날 밤 여주산에서 눈곱만큼도 망설이지 않고 여름이를 떠나면서 그 기회를 잃은 거야.하아, 최하준. 백지안 때문에 널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준 거냐?’“당신은 백지안을 포기 못해. 이제부터 당신과 나는 적이야.”여름은 손을 빼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가, 가지 마….”하준은 다시 따라가려고 했지만 수술 부위가 벌어지면서 환자복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상처가 크게 벌어져 출혈은 더 심해졌다.하준은 여름에게 우리 둘은 적이 아니라고, 여름이 아내가 되어 주고, 애인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더는 백지안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몸 상태가 나빠져 더는 걸을 수가 없었다.너무 통증이 심해서 쓰러졌다. 고개를 들고 흐릿해진 시선으로 멀어져 가는 여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름은 슬쩍 돌아볼 듯하더니 그대로 쌀쌀맞게 가버렸다.‘여름이가 가는구나.내 옷이 피로 물드는데도, 내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면서, 걱정하지도 다급해 하지도 않고 가는구나.하아아….’다시 눈앞이 흐려졌다.“상처가 벌어졌나 봅니다.”귓가에 상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선생님, 빨리 좀 와주십시오.”곧 누군가가 하준을 침대에 눕혔다. 하준은 곧 봉합을 위해 수술실로 옮겨졌다.하준은 마취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그 아픔이라도 있어야 심장이 아픈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여름은 먹을 것을 조금 사서 다시 올라갔다.서신일도 응급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일단은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지만 정신이 돌아오지는 않았다.박재연은 언짢은 듯 서경주에게 경고했다.“기어코 주식을 팔겠다면 다시는 내 자식이라는 말 꺼내지도 말아라. 집으로 돌아오지도 말아라.”서경주는 눈 밑이 떨렸다. 그 말에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의사에게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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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화

여름은 담담히 웃었다.“어쨌든 우리는 이제 벨레스와 아무 관련이 없어요. 이제는 최 대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한마디만 하자면 서경주 부녀의 힘으로는 기시다를 이길 수 없을 거예요.”말을 마치고는 여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곧이어 서유인이 병실에서 뛰어나와 다급히 추성호의 소매를 잡았다.“어떡해? 큰아버지가 곧 죽어도 주식을 팔 생각인가 봐. 이제 이걸 어떡해?”추성호는 빠르게 계산을 굴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절대 기시다를 이사장 자리에 앉힐 수는 없어. 더구나 벨레스 내부 일에 끼어들게 만들 수는 없지. 그대로 두었다가는 벨레스 사람들은 모두 공중에 붕 뜨게 될 거야.“기시다가 얼마나 교활한지 몰라. 당신은 기시다의 적수가 못 돼. 그러니 당신 아버지가 얼마나 하실 수 있을지 봐야지. 만약 아버님이 못 버티신다면….”추성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당신과 당신 아버지는 그저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이나 바라보고 있어야겠지 그나마도 저쪽에서 주겠다는 만큼만 받을 수 있을 거야.”“싫어….”서유인은 놀라서 마구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내 남편이니까 날 도와줄 거지? 우리는 이제 운명 공동체잖아. 그리고 추신이랑 벨레스가 그간 협력을 밀접하게 해 왔는데 벨레스에서 내 지위가 없어지면 우리 공동 투자 회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거 아냐?”“이를 말인가? 나도 그게 걱정이라고.”추성호가 서유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이렇게 할까? 당신을 도와줄 수 있게 명희를 보내줄게, 어때?”서유인은 살짝 망설여졌다. 진명히는 추성호의 비서였다. 서유인은 사실 추성호의 사람이 너무 벨레스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은 좀 꺼려졌다.“여보, 이제는 우리 둘이 손을 잡고 외부의 적과 싸워야 할 때야.”추성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남편으로서 나는 우리 와이프의 집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리 아버님이 벨레스를 든든히 장악하셨으면 좋겠어.”“알겠어.”서유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즉시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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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화

“일단 좀 쉬셔야죠.”상혁이 의견을 냈다.“신제품 개발이 곧 성공할 텐데 그러면 국내외에서 모두 FTT에 주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FTT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겁니다.”하준은 입을 다물었다.‘그래, FTT는 점점 더 성장하겠지. 지금까지 번 돈만 해도 얼마인지도 몰라.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 뭐 해? 그 돈을 쓰고 싶은 상대는 날 미워서 죽으려고 하는데.’이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백지안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다. 변명 톡도 줄줄이 도착했다.하준은 열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저녁이 되니 양석훈이 전화를 걸어왔다.“백지안 님께서 욕조에서 동맥을 그었습니다.”하준은 등을 세웠다. 목소리가 긴장되었다.“어떻게 됐어?”“다행히 저희 쪽 인원이 빨리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취했습니다. 지금 구급차 안입니다. 백윤택에게는 이미 연락했습니다만...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하준이 말투는 담담했다.“나도 이제 막 수술이 끝나서 못 가.”“아… 예….”양석훈은 좀 뜻밖이었다. 하준이 당장 달려올 줄 알았던 것이다.예전 같았으면 어떤 중요한 일이 있든 해외 출장 중이든 백지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당장 달려왔을 터였다.양석훈은 구급차 안에 누워 창백해진 백지안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전에는 자기도 백지안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꾸 이러니 이제는 감정이 마비된 느낌이었다.‘이게 처음도 아니잖아? 최근 입원도 너무 자주 했지. 이제는 뭐 병원이 거의 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병실에서 하준은 이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주혁은 6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쉬고 있다가 하준의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걔는 이제 뭐 중독이냐? 아예 그냥 병실 하나를 전세 내 줘야겠구먼.”“툭하면 자기 몸을 희생해서 관심을 받으려고 하네.”하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재판이 끝나고 나서는 백지안과 관련된 많은 일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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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화

백윤택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화를 냈다.“최 회장도 너무하네. 네가 죽을뻔했는데, 꿈쩍도 않다니. 야, 이제 네 자살소동에 저쪽에서도 다들 질린 거 아니냐?”“시끄러워.”백지안이 매섭게 노려봤다.“나는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냐? 최 회장이 전화도 안 받고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하준이가 난 육민관 사건과 무관하다는 걸 믿어줘야 한다니까.”“그런데 최 회장은 아무래도 널 의심하는 것 같아.”백윤택이 한숨을 쉬었다.“최 회장은 포기하자. 송 대표도 나름 괜찮잖아?”“걔 얘기는 꺼내지도 마. 그 자식은 아직까지도 갇혀서 꼼짝도 못 하잖아.”백지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하준 같은 근사한 남자는 온 나라를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고.그리고 난 하준이를 너무 좋아해. 아니면 3년 동안 내게는 손끝도 대지 않는데 내가 붙어있을 이유가 없지.’이번은 처음으로 백지안이 입원했는데도 하준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경우였다.이튿날이 되자 백지안은 참지 못하고 병실에서 물건을 부수고 비명을 지르며 죽겠다며 난동을 부렸다.밖에 지룡 멤버들이 서 있으니 분명 이 소식을 최하준에게 전할 터였다.다행히 사흘째가 되자 결국 하준이 나타났다.그런데 최하준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한참 야위어 있었고 온몸에서는 쌀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검은 눈이 가만히 쳐다보자 백지안은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준… 왜 그래?”백지안은 의외라는 듯 하준을 쳐다보았다.“다쳤어?”상혁이 유유히 말했다. “회장님은 이제 막 위천공 수술을 하셨습니다. 의사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백지안님이 매일 난동을 피운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오신 겁니다.”“미…미안해. 난 몰랐어.”백지안이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눈가에는 은근한 기쁨이 스쳤다.‘나를 신경 안 써서 안 온 게 아니라 수술을 해서 못 온 거구나. 하지만 저 몸을 하고도 날 찾아왔다니 역시 마음속에 내가 있는 거야.’“알았으면 이제 날 좀 놔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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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화

“친구?”하준이 차갑게 웃었다.“시시때때로 지켜주고 전화 한 통이면 무조건 달려가고, 좀 늦으면 난동을 부리고, 백지안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은 평생을 백지안의 행복을 책임지는 그런 친구 말입니까?”백지안이 다급히 해명하려고 했다.“아니, 나는 그런….”“대체 언제부터 사람이 이렇게 되었냐?”하준이 짜증스러운 듯 말을 끊었다.“난 너랑 잠깐 사귀었던 것뿐이야. 지금까지 너랑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심지어 헤어질 때 너에게 그 많은 현금에 재산까지 나누어 주었잖아. 왜 이렇게 자살 소동까지 벌여가며 날 네 곁에 붙잡아 두려고 안달이야?”하준은 이제 지쳤다.평생을 백지안 하나만 책임지라는 듯한 분위기에 질려버렸다.매번 백지안 때문에 여름에게 상처를 주는 데도 질렸다.백지안은 하준의 날카로운 시선에 놀랐다.“오해야. 난 그냥… 내가 사는 게 너무 고달파서…. 준, 사랑해. 너에 대한 내 사랑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어.”“미안하지만 난 이제 널 사랑하지 않아.”하준의 말은 너무나 단호하고 더없이 차가웠다.“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여름이는 나와 결혼을 했었고 나 때문에 아이도 잃었어. 하지만 이혼하면서 난 한 푼도 주지 않았어. 여름이에게는 이렇게 매정했던 내가 너에게 그 정도 했으면 할 도리는 충분히 다 한 거야. 심지어 네 쓸모없는 오빠를 죽어라 보호하고 돌보아 주었다고. 네가 내 병을 치료해 준 데 대한 빚은 이미 다 갚았어. 말해 봐. 내가 아직도 너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이 있나?”백지안과 백윤택은 흠칫했다.하준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데도 카리스마에 압도될 지경이었다.한참 만에야 백지안이 고통스럽게 입을 열었다.“육민관 사건을 내가 벌였다고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난 그런 적이 없어. 맹세해….”“네가 계획한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아. 계속 너의 질척거림에 끌려다니다가 나는 평생 다른 사람하고는 결혼하지도 못하게 될 거야.”하준의 눈빛에 짜증 섞인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했다.“너랑 헤어진 것은 곧 공식적으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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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화

다음날.하준은 공식 계정에 발표했다.-최근 저와 백지안 씨가 재결합하여 곧 결혼한다는 헛소문이 퍼지고 있던데 오늘 명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백지안 씨는 애정이 식어 이미 헤어졌습니다. 앞으로 재결합은 없습니다.소식이 퍼져나가자 온라인에 난리가 났다.-완전 상쓰레기네.-처음으로 인간이 이 정도로 말종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건방져서 뭐라고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전에는 결혼식까지 하려고 하더니 갑자기 애정이 식었다니, 그냥 마음이 변한 거지, 뭐.-역시 마음속에 강여름이 남아 있었던 거 아냐?-곧 강 대표랑 결혼 발표하겠구먼. 대기 중.-완전 가능성 있지. 얼마 전에 여주산에 놀러도 갔잖아?네티즌들은 급기야 강여름의 계정에 가서 댓글을 달았다.-최하준이랑 정식으로 재혼하나요?-공식 발표 언제 해요? 1열 축하 대기 중-최하준 같은 쓰레기랑 재결합하지 말아요. 여름 씨는 훨씬 가치있는 사람이에요.-----화신에서 업무를 보던 강여름은 갑자기 자기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잠시 후 여름도 공식발표를 했다.-저와 최하준 씨는 일전에 잠시 다시 사귀었지만 역시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확실한 애정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재결합 가능성이 없습니다. 다들 다시는 저와 최하준을 엮지 말아 주십시오. 서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발표 후 공식 발표를 기다리던 네티즌 여론이 폭발했다.-확실한 애정이라는 게 다 무슨 소리야? 최하준이 강여름과 사귀는 동안에도 계속 백지안이랑 바람을 피웠다는 소린가?-강여름이 불쌍해. 우리 강여름은 그것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니까 다시는 최하준 때문에 마음 아픈 일 만들지 말아요.-며칠 전에 최하준이 백지안 변호를 맡았었다던데. 두 사람이 법정에서 다퉜대.-와, 최하준 완전 인간쓰레기네.이때 사무실에 있던 하준은 여름의 발표를 보고는 심장에 구멍이 뚫린 듯 공허했다.‘이렇게 매정하네.공식적으로 재결합을 부인하면서 각자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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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화

하준은 한동안 기다렸는데도 여름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었다.하준은 실망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자신과 관계를 끊겠다고 했지만 두 사람이 뭔가를 주고받고 있다면 최소한 여름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의미지만 이렇게 아무 소식이 없다는 것은 이제 철저히 무시하겠다는 의미였다.무시당하는 맛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하준은 휴대 전화를 던지고 일어섰다. 상처가 새삼 아팠다.상혁도 울고 싶었다.“아직 다 낫지도 않은 채로 특별히 퇴원을 받으셨는데 조심하셔야죠.”“본가에 가야겠어.”상혁은 한숨을 돌렸다. 강여름을 찾아가겠다는 것만 아니면 지난번처럼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고열에 시달리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아 참, 여울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좀 사다 줘.”하준이 말했다.상혁은 움찔했지만 곧 끄덕였다. ‘연애에 열을 올리시느니 딸이랑 놀아주시는 게 백 번 낫지.’----오후 5시, 최양하는 유치원에서 여울을 받아 데리고 왔다.여울은 솜사탕을 들고 깡총거리며 들어오다가 휠체어에 앉은 하준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큰아빠, 왜 그래요?”“큰아빠가 수술을 했어. 수술 자리가 아물기 전에는 걸어 다니면 안 된대.”하준이 부드럽게 말했다. “큰아빠 불쌍하다.”여울은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친아빠가 아닌가.“여울이가 호~ 불어줄까요?”“괜찮아. 많이 나았단다.”하준의 마음이 따뜻해졌다.“내가 여름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좀 사 왔는데. 상혁이 삼촌이 네 놀이방에 가져다 놨다. 주방놀이, 화장대 놀이 이거저거 사 왔어.”“와, 신난다! 고맙습니다, 큰아빠!”여울은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나 꼬맹이는 곧 멈추었다.“아니, 엄마가 선물 막 받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최양하가 고소하다는 듯 웃었다.“엄마 말씀이 맞지. 사람들이 바라는 거 없이 선물을 해주지는 않거든.”“최양하….”하준의 싸늘한 시선이 최양하를 향했다.“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최양하가 콧방귀를 뀌었다.“이제 후회가 되시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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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화

“일전에 외국에서 여름 씨는 수 차례 위험한 일이 있었지만 그 녀석들이 보호해 주었죠. 그리고 육민관이 호신술도 가르쳐주면서 점검 스승이자 가족 같은 관계가 된 겁니다.”“외국에서 무슨 위험한 일을?”하준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여자잖습니까? 그리고 낯선 곳이고. 여자들끼리만 살고 있으니 여러 가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았겠죠.”최양하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오늘날의 강여름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심지어 애까지 둘 데리고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느라 툭하면 병까지 잘 나곤 했었다.그러나 그 부분은 하준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형님이랑 백지안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외국까지 나가서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말을 하다보니 점점 부아가 치민 최양하는 여울을 데리고 자리를 떠 버렸다.여울은 곧장 자기 놀이방으로 향했다.하준의 본가에 엄마는 없었지만 하준의 가족은 진심으로 여울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여기며 잘 해주고 온갖 장난감을 사주곤 했다.놀고 있는데 곧 하준이 휠체어를 밀며 들어왔다.“여울아, 큰아빠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하준이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렇게 어린 꼬마에게 자신이 뭔가를 간절하게 부탁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 처량한 기분이 들엇다.“여름이 이모 좀 불러내 줄 수 있어? 네가 같이 놀자고 하면 여름이 이모가 나올 것 같은데?”“전에 여름이 이모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여울이 고개를 들더니 일부러 꼭 집어 말했다.“날 납치했으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하준은 마른 세수를 했다. 자신이 너무나 한스러웠다.“전에는 큰아빠가 오해를 해서 그랬지. 큰아빠는… 여름이 이모가 너무 좋아. 그래서 여름이 이모가 너무 보고 싶구나. 여울아, 제발 큰아빠 좀 도와주라. 그러면 큰아빠가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게.”“됐어요.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요. 나는 그냥 큰아빠 때문에 여름이 이모가 슬프지 않으면 좋겠어요.”여울이 입을 비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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