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621 - 챕터 630

1699 챕터

621화

“그랬구나, 날 위해서 그렇게 해주는 거였어. 내가 잘 모르고, 미안해.”백지안의 얼굴에 감동과 괴로움이 동시에 보였다.사실 속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분노하고 있었다.3년 전 강여름을 압박해 하준과 이혼했다고 공표하라고 했던 일이 이렇게 되돌아와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면… 앞으로 강여름이 계속 이 일로 널 협박하면 어떡해? 이혼을 해줄까?”백지안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우리가 알고 지낸지가 20년에 연애만 십수 년을 했는데 대체 언제까지… 우리 결혼할 수 있기는 한 걸까?”“하여간 내가 이혼할 방법을 생각해 낼거야.”하준이 얼른 티슈를 건넸다. 마음이 더욱 괴로워졌다.“내가 다 생각이 있어.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마.”“그래. 아 참, 오늘… 병원 다녀온 건 어떻게 됐어?”백지안이 갑자기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민정화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자리를 피했다.하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숙였다.“약 받아왔어.”“잘됐다.”백지안의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하준은 되는대로 몇 점 집어 먹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지안은 님겨진 스테이크를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다음 날.화신 그룹.여름은 심플한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회사 문을 밟았다.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서 여름은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어제 그 직원이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강 대표님….”“내 얼굴 익혔나 보네요? 이제 예약 안 해도 되겠군요?”여름은 빙긋 웃더니 엘리베이터를 타러갔다.프런트 직원은 오늘 신임 이사장이 강여름으로 바뀔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다리에 힘이 다 풀렸다. 아침이 되면 바로 잘릴까 싶어 두려웠는데 다행히도 살아 남은 듯했다.회의실에 들어서니 이사가 모두 나와 있었다. 다들 아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백지안은 오른쪽 첫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사 여럿이 공손하게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다.“백 대표, 지난번에 내가 외국에 출장 가면서 신상 백이 눈에 들어오길래 백 대표 주려고 사왔지.”“백 대표, 이게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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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화

여름은 말하는 사람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우스운 것은 그 사람이 왕 이사라는 점이었다.“성은 왕인데 태도는 비굴하기 그지 없네요?”여름이 비웃었다.왕 이사는 흠칫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부끄럽고 화도 났다.“무슨 뜻입니까? 내 말이 틀렸습니까? 다정하고 예쁜 사람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 아닙니까?”“3년 동안 나가 있었더니, 남 불행 기뻐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지금 이 이사회를 누가 소집했는지는 잊지 마시죠.”여름이 싸늘한 말투로 일깨웠다.이 이사회를 소집한 것은 하준이었다.다들 임을 꾹 다물었다.“백지안 씨, 지금 나가주시죠. 심하게 대하기 전에.”여름이 싸늘하게 경고했다.“그리고 하준 씨가 말 안 해줬나 본데, 나라도 지금 당신 처지가 어떤지 따로 말해줘야 하나요?”백지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백지안은 여름과 하준이 이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름이 본처 신분을 밝히고 나면 자신은 순식간에 불륜녀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만다.“아, 알았어요. 갈게요.”백지안이 일어서 불쌍한 척을 했다.여름은 이사의 적대적인 시선은 무시했다.“아, 이사장 명의로 알려두겠는데, 백지안 씨 해고입니다. 오봉규에게 업무 인수인계 끝나면 나가시면 됩니다.”“너무 하군요.”구 이사가 불만을 표했다.“우리도 백지안 해고안에 동의하지 않습니다.”“그래, 회장도 이사회에서 투표로 결정해야지.”이사들이 바로 호응했다“다들 최 회장이라는 뒷배에 기대고 싶으신가 보군요.”여름이 이사를 하나하나 돌아보았다.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뭐, 그렇다면 내가 당신들 뒷배와 통화를 좀 해야겠네요.”여름은 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안에서 하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십니까?”이사가 모두 쉿쉿 거리느라 바빴다.‘전 부인 번호도 저장이 안 되어 있다니 백지안을 대하는 태도와 너무나 다르잖아.’입구까지 갔던 백지안도 걸음을 멈추더니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 되었다.그런데도 여름은 별로 화난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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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화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준의 말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강여름을 비호하는 느낌이 강했다.게다가 강여름의 말투를 보니 아주 거침없는 것이 하준과 관계가 꽤나 편안해 보이지 않는가?순식간에 이사들의 마음이 요동쳤다. 방금 백지안을 심하게 편들었던 것이 후회되지 시작했다.‘젠장, 괜히 강여름 건드렸다가 최 회장에게 불려가면 낭패잖아.’구 이사가 쿨럭쿨럭 기침을 해댔다.“저기… 난 최 회장 말씀에 따르겠소.”“그렇지, 최 회장 말에 따라야지.”다른 이사도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강여름이 하중에게 당하는 꼴을 보려고 입구쯤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지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까지 이사들이 그렇게 자신을 싸고 돌더니 순식간에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아직 안 갔습니까?”갑자기 여름이 백지안을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흔들었다.“방금 최 회장 얘기 못 들었나 봐? 괜히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서 인수인계나 하시죠? 다시는 내 회사에서 당신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백지안은 화가 나서 속이 쓰렸다. 하지만 그저 눈물을 똑 떨어트리더니 후다닥 자리를 떴다.이사들은 안절부절했다.‘이게 다 최 회장 때문이잖아? 아니 한 자리에 전처랑 현 여친을 다 몰아놓고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야?’“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여름이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았다.“방금 ‘최 회장 말을 들어야지’라고 하시던데 말을 그렇게들 하시면 쓰나요? 우리 회사랑 최 회장이 무슨 상관이라고요? 그렇게 최 회장이 좋으며 다들 나가서 최 회장 밑으로 들어가시죠.”여름이 팡 하고 테이블을 치면서 벌떡 일어섰다. 시선이 싸늘했다.“잘 알아 두십시오. 우리 회사의 창업주는 내 어머니 강신희 씨입니다. 그 정도도 기억이 안 나면 배당금이나 받아서 병원 가서 치료나 받으세요. 우리 회사에 괜히 자식, 친지 남겨두지 말고 나갈 때 같이 데려 나가시고.”----회의가 끝났다.엄 실장은 완전히 존경하는 눈빛으로 여름을 우러러 봤다.“대표님,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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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화

여름은 그제야 퇴근할 준비를 했다.3년 간 자리를 비웠더니 종일 보고 나서야 겨우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집에 돌아와 막 열쇠를 꺼내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여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큰 손이 여름을 덮쳐왔다. 하준의 얼굴에는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왜? 발로 차게?”여름은 눈을 깜빡이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준의 사타구니 사이에 놓인 자기 발을 보았다.“어떨 것 같은데?”“죽고 싶어 환장했어?”하준은 하마터면 이번 생에 대가 끊길 뻔 했던 것이다..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하준은 여름의 발을 잡아 뒤로 쭉 잡아당겼다.한 발로 서 있던 여름의 몸이 하준 쪽으로 기울었다. 막 균형을 잃을 참에 여름은 얼른 하준의 옷깃을 힘껏 잡았다.생각지 못한 움직임에 하준이 균형을 잃으며 여름이 입구 카펫 위로 넘어지고 하준이 그 위로 쓰러지면서 입술이 맞닿았다.여름의 입술은 젤리처럼 탱글한데다 무슨 글로즈를 발랐는지 상큼한 오렌지 향이 났다. 저도 모르게 깨물고 싶어지는 향기였다.마침 그 타이밍에 현관불이 자동으로 꺼졌다.하준이 침을 꿀꺽 삼키며 울대가 꿀렁했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호흡이 교차했다. 하준은 지금 입술에 닿아있는 그 입술을 맛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이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안에서 모녀가 걸어나왔다.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깜짝 놀라서 얼른 아이의 눈을 가렸다.여름은 얼굴이 온통 빨개져서 얼른 하준을 밀어냈다.“아니….”“아이고, 미안해요. 하던 거 계속하세요.”엄마가 얼른 다시 문을 열더니 아이 등을 밀더니 탁하고 문이 닫혔다.“아, 왜 밀어요? 나도 다 봤는데. 지금 아저씨랑 언니랑 뽀뽀하려고 그랬잖아?”“쉿!”“근데 왜 집에서 안 하고 밖에서 저래?”“넌 몰라도 돼.”“나도 나 알아. 사랑하고 재채기는 감출 수가 없는 거래.”“……”하준의 얼굴이 파랗게 되었다.‘사랑은 감출 수가 없어?내가 강여름에게?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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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화

“최하준, 뭐하는 거예요? 오밤중에. 백지안한테 안 가봐도 되나?”“나라고 안 가고 싶은 줄 알아? 오전에 당신이 걸었던 그 전화 때문이잖아? 강여름, 아주 교활해. 당신 때문에 지안이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어. 감히 지안이를 울리고 망신을 줘?”하준은 그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 내내 화가 났다. 특히나 나중에 그 자리에 있었던 이사에게서 백지안이 망신을 당하고 쫓겨나면서 울었다는 말을 듣자 여름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마음 아프신가 봐?”여름은 팔짱을 꼈다.“아니,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까지 말해달라고 했나, 뭐?”“뭐? 혼인관계증명서만 가지고 있으면 내가 아무 짓도 못할 줄 알아?”하준이 검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 사람을 건드리면 가루도 안 남게 될 줄 알아.”“누구? 소영이 얘긴가?”여름이 갑자기 말했다.하준의 동공이 잠시 흔들리더니 곧 냉정을 찾았다.“그건 다 자업자득이지. 누가 강제 노역 중에 바다로 뛰어 들라고 했나?”“……”여름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하준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여름의 눈에 살기가 번뜩하고 빛났다.‘저 치들은 역시나 실오라기만큼의 죄책감도 없구나.최하준, 지금 네 말의 온도와 네가 받을 고통이 반비례하게 될 거야. 각오해라.’“내 말 듣고 있는 거야?”여름에게서 아무 말이 없자 하준이 짜증스럽게 여름을 잡아챘다.“내일 같이 가서 이혼하자고.”“안 해.”하준은 울컥해서 눈에 띄는 대로 휴지통에 발길질을 했다.“자꾸 내가 세게 나오게 만들지 말라고.”“할 테면 하시던지.”여름은 비웃었다.“……”하준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하루 종일 어지간히 힘들었던 지라 여름은 그저 씻고 둥이들과 영상통화할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저 남자가 버티고 앉아 있으니 골치가 아팠다.“좀 가줄래요? 씻게.”“이혼해주겠다고 할 때까지 안 가.”하준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황태자 같은 자태를 하고는 세상 찌질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돈이 필요한 거 아냐? 내가 충분히 마련해 줄게. 평생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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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화

“몇 벌 준비해 드릴까요?”하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30벌 줘요.”‘이 정도 사면 1년 정도는 입을 수 있겠지?’“브라도 같이 해서30세트 부탁합니다.”결국 하준은 쇼핑백을 한 보따리 들고는 샵에서 나왔다.마침 이때 지나가던 하진 그룹의 하정현이 그 장면을 보고는 백지안에게 톡을 보냈다. “지안아, 방금 최 회장이 란제리 샵에서 나오는 거 봤는데 속옷을 잔뜩 샀더라. 부럽다, 야.”----같은 시각.백지안은 자기 아파트에서 곽철규와 한창 즐기던 중이었다.20분이 지나서야 겨우 기어 나와 휴대 전화를 보다가 하정현이 보낸 톡을 보고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하준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보아하니 오늘 여름에게서 모욕당한 일을 복수해주려는 모양이었다.“뭘 봐, 한 판 더 하자고.”곽철규가 그렇게 말하면서 거칠게 백지안을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만해. 친구한테서 톡 왔는데 최하준이 돌아올 것 같아.”백지안이 슬쩍 밀어내며 뾰로통하게 말했다.“만날 이렇게 늦게 돌아가면 최하준이 의심할 거라고. 최하준이 없으면 내가 어디서 그 많은 돈이 나서 당신한테 주겠어?”“알겠어. 하지만 최하준이 너 이렇게 노는 년인지는 아냐?”곽철규가 백지안의 턱을 쥐고 흔들며 물었다.“평소에 최하준이 안 안아주냐?”“그래. 확실히 최하준은 자기만 못하지.”백지안이 생글거리며 비위를 맞췄다.“요,요 여우 같은 것. 나도 좀 놀아봤지만 그래도 너만한 거 내가 아직 못 봤다.”곽철규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 늘어진 뱃살만 봐도 구역질이 났지만 백지안은 꾹 참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아파트에서 나오자 백지안의 얼굴은 바로 싸늘한 표정이 됐다. 곽철규가 그 방면에서는 최하준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채워준다고는 하지만 시한폭탄이었다. 반드시 빠른 시일 안에 그 사진과 함께 없애 버려야 후환 없이 안심할 수 있었다.----성운빌.하준이 벨을 눌렀다. 여름이 나와서 문을 열다가 하준의 손에 가득한 쇼핑백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체 얼마나 샀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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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화

하준은 단숨에 그릇을 싹 비웠다. 그러나 아직 배부른 느낌은 아니었다.화장실까지 가서 빨래하는 여름을 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그냥 가기로 했다.운전하고 가다가 먹자 골목을 지나게 되었다. 볶음밥을 파는 집이 꽤 보였다. 고소한 냄새에 끌려 하준은 결국 한 그릇 주문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 입 먹다 말고 다 뱉고 말았다.“이건 너무 맛이 없잖아!”“뭐, 불만 있수?”가게 주인은 하준의 말에 별안간 화가 났다.“내가 여기서 밥을 십수 년 볶으면서 장사를 이렇게 잘했는데, 뭐? 밥이 맛이 없어?”“맞아요. 이 집 볶음밥이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데.”마침 줄 서있다가 들어오던 대학생이 듣고는 어이없어 하며 한 마디 했다.“……”‘내가 강여름 밥에 중독됐나?아니, 아무리 그래도 볶음밥을 십수 년을 팔았다는 사람보다 강여름이 한 것보다 맛있지가 않다고.’----해변 별장으로 돌아온 뒤.백지안은 야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하준을 맞았다.하준이 빈손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백지안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티 내지 않고 물었다.“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야근을 좀 했거든”하준은 오늘 여름의 집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각하며 무심코 말했다.“그랬구나.”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백지안의 마음이 축 처졌다.“오늘 미팅 때 강여름이 전화해서 협박한 거 아니야?”“그랬지.”하준은 원래 오전 미팅 때 백지안에게 준 망신을 갚아줄 생각으로 여름에게 갔지만 집에 들어서자 마자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준은 심하게 죄책감을 느꼈다.“지안아, 미안해. 내가….”“괜찮아. 아무 말도 하지 마. 다 날 위해서 그런 거 알아.”백지안이 하준의 품을 파고 들었다.“난 그냥 강여름이 널 내게서 빼앗아 갈까 봐 두려울 뿐이야. 오늘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날 찾아와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망가뜨리겠다고 하더라고.”“망가뜨려?”하준의 눈에 얼음 같은 서늘함이 스쳤다.“자기 주제를 알아야지.”그나마 여름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미안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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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화

다음날, 아직 날이 밝기 전.백지안은 몰라 하준의 차 열쇠를 가지고 차고로 내려가 주행기록을 살펴보았다.곧 어젯밤 하준인 두 번이나 성운빌에 다녀온 것을 알아냈다.아침, 백지안은 차를 몰고 성운빌에 갔다가 여름이 안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얼굴이 완전히 뒤틀렸다.‘진짜 강여름이었다니.’너무나 뜻밖이었다.‘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거지? 분명 최면을 걸어 놨으니 강여름을 혐오해야 하는데.강여름이 죽어라고 준을 유혹한 게 분명해.더러운 것.’----오전 8시 반.여름은 사무실에 들어서다가 보니 구 이사와 현 이사 등 몇 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오 사장은 구석에서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아침부터 다들 모였네요.”여름이 앉자 구 이사가 정색했다.“잠이 와야 말이죠. 밤 사이에 우리랑 협력하던 3개 대형 건축사가 모두 협력 취소를 선언해버려서 전국 10여 곳 부지에서 모두 업무가 중단되었습니다. 강 대표, 어제 통화하는 거 들어보니 최 회장하고는 사이가 괜찮아 보이던데 왜 갑자기 다들 우리 회사와 선을 긋는 거요?”“어제 백지안 씨를 건드려서 그런 거 아닙니까?”현 이사가 벌컥했다.“그 건설사가 다 애초에 백 대표랑 최 회장 얼굴 봐서 우리랑 협력하던 곳 아닙니까? 다들 슬슬 뭔 소문을 듣기 시작한 거지 뭐.”“이젠 어쩝니까? 하루 일이 중단되면 회사 손실이 얼마인지 알아요?”왕 이사가 초조하게 말을 이었다.“지금 공사 며칠 중단되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저 업체들이 우리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인 거지.”구 이사가 가슴을 탕탕쳤다.“우리와 협력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다른 회사를 찾아보면 되죠.”여름이 담담하게 말했다.“저저…”구이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우리가 지은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들은 죄다 건설사 이름 보고 계약을 맺는 거요. 죄다 국내 최고의 건설사들이니 고객들이 브랜드 네임에 신뢰를 가지고 집을 사는 거지. 건설사가 바뀌면 고객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나중에 회사 신용에도 크게 영향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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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화

정오. 여름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하준의 전화를 받았다. 상당히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와서 빌어. 나하고 이혼만 해주면 건설사 문제는 내가 다 해결해 줄게.”“됐어요. 내 쪽에서도 다 해결할 방법이 있거든.”여름은 담담히 거절했다.하준이 비웃었다.“당신 방법이라는 게 건설사 늙은이들하고 만나는 수 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 그쪽에서 다들 전화도 안 받지?”여름이 웃었다.“거 나랑 이혼하려고 꽤 애쓰시네. 그 건설사들하고 뒤로 다 얘기가 되어 있겠지.”“다 자업자득 아냐?”하준의 말투가 사뭇 비열했다.“그렇게 경거망동하면서 사사건건 지안이를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지. 빨리 빨리 사인하고 빨리 빨리 끝내는 게 나을걸. 내가 아주 하루하루 피를 말려줄 테니까.”“보아하니 그 집 백여시가 미주알고주알 다 이르고 있구나.”여름은 개의치 않는다는 말투였다.“말리고 싶으면 실컷 피 말려 보셔.”여름이 너무 덤덤하니 하준은 되레 더 화가 났다.‘어쭈, 아직 입이 살았군. 그래 3일 뒤에 기한이 되면 얼마나 후회할 지 두고 보자고.’----오후 4시 반.여름은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마케팅 팀 하 팀장이 백지안에게 붙어서 알랑거리는 꼴을 보게 되었다.여름이 다가가자 백지안이 얼른 말했다.“오해하지 말아요. 나랑 하 팀장은 그냥 일 얘기를 하는 중이었으니까.”하 팀장이 눈썹을 치켜 세웠다.“굳이 해명할 거 있나요? 그냥 백 대표님이랑 얘기만 하고 있는데. 오늘이 강 대표님 회사에 나오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어요.여름은 냉랭한 시선으로 하 팀장을 훑어봤다.상사의 아우라에 하 팀장은 살짝 불안해졌지만 곧 에라 모르겠다 표정이 되었다.‘버티겠다, 이거지? 누군 할 줄 몰라?’“그냥 나랑 애기 좀 한 거뿐이에요. 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저 분들에게 풀지 말아요.”백지안 뒤로 직원 둘이 서 있었다.‘그러니까, 저것들을 내쫓는다면 일자리에서 사적인 복수를 하는 거다, 그런 말이지?’“대체 여기서 뭐 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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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화

“최하준, 이 세상에는 CCTV라는 게 있어. 남 누명 씌울 시간이 있으면 가서 CCTV를 좀 돌려보지 그래? 과연 부딪힌 건지?”여름이 지극히 침착하게 말했다.백지안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하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시종 여름을 힘껏 노려보고 있었다.“당신 말은 내 눈을 믿지 말고 제대로 된 각도 안 나온 CCTV나 믿으란 말인가?”“……”여름은 마른 세수를 했다.‘저기요, 그쪽에서 보신 각도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각도는 아니었거든요.’여름은 백지안이 하준의 뇌에 최면만 건 것이 아니라 지능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됐어, 준. 난 이제 싸우고 싶지 않아. 그만 가자.”백지안이 하준의 손을 잡으며 애원했다.하 팀장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회장님, 백 대표님은 그냥 저에게 서류 전해주러 오신 것 뿐이에요. 그리고 서류에는 써 있지 않은 내용을 좀 더 덧붙여서 말씀해 주시고 저는 듣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강 대표가 뭔 백 대표가 쇼를 하니, 꼴보기 싫으니 어쩌니 하면서 저희가 근무시간에 무슨 하면 안 되는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막 말한 거예요. 뭐 그것까지도 그렇다고 치더라도, 거기다가… 또….”“또 뭡니까?”하준의 눈이 가늘어 지며 한기를 뿜어냈다.하 팀장은 이를 악 물고 말을 이었다.“오늘 자기가 입은 속옷이… 회장님이 사주신 거라며….”백지안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지안아, 오해야. 어제는 사정이 있었어. 너에 대한 내 마음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지금 난 강여름 꼴도 보기 싫다고.”하준은 당황했다. 어제 자신이 충동적인 일을 벌이는 바람에 백지안에게 상처주는 일을 만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이때 여름이 뚫어져라 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주변에서 이 상황을 구경하던 직원은 갑자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제 보니 최 회장이 강여름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봐. 심지어 싫어하는 것 같은데?’‘큰일났네. 줄 잘못 섰네. 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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