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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화

-이해가 안 가. 위자영이 서경주 동생과 먼저 잤다면 서경재랑 안 사귄 이유는 뭐고, 왜 굳이 강여름을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건데?-이해 안 가지? 서경재는 반쪽짜리라 벨레스에서 상속권이 없었거든. 벨레스는 줄곧 서경주한테 힘이 있었어. 신지는 원래 별 볼 일 없었는데 서경주와 결혼하면서 지금은 재벌 대열에 들어섰지.-3년 전에 서경주 대표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였다며… 위자영하고 서경재 짓 아니었을까?-3년 전에 내가 그런 소문 올렸다가 욕 바가지로 처먹었잖아…“…….”“아아악, 강여름 이게!”위자영이 히스테리컬하게 소리 질렀다.추성호도 이를 갈았다. 강여름은 이미 자신들의 수를 예측한 게 분명했다.사실 서유인이 서경재의 딸인 걸 알았다면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서유인이 벨레스를 물려받으면 천천히 벨레스를 삼킬 작정이었다.강여름의 출현은 그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발자국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강여름이 차 키를 꺼내 누르자 앞에 세워져 있던 흰색 스포츠카가 라이트를 번쩍였다.“강여름.”뒤에서 갑자기 최하준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서경주가 바로 뒤돌아 여름의 앞을 막아섰다.“내 딸에게서 떨어지게.”하준은 들은 체 만 체하고는 여름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연회장에서 전국 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여름이 보여준 차분하고 결연한 태도는 너무나 뜻밖이었다.오늘 밤을 위해 여름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전국의 재벌이 다 모인 이런 자리에서 서경재, 위자영, 서유인의 진면모를 다 까발리다니….‘오늘 밤 연예계 스타들도 많이 와서 라이브 진행하는 방송도 많았는데… 그 바보들은 그것도 몰랐겠지. 이제 신분과 체면을 최고로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세 사람과 관계를 끊으려 할 거야….’비즈니스에서 관계, 인맥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강여름은 힘들이지 않고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정말 탄성이 나왔다.여름에 대한 하준의 기억은 아직도 3년 전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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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화

단단히 화가 난 서경주가 대답하려는데 여름이 살짝 서경주를 밀어냈다. 여름은 담담하게 하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맞아, 속였지.”“잘하는군, 누구랑 작당한 건지 말해. 임윤서? 아니면 병원 사람들인가?”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나 바보처럼 느껴졌다. 3년 동안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니….여름이 고개를 젓더니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때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아마 진짜 죽어서 한 줌 재가 돼 있을 걸.”“그게 무슨 소리지?”여름의 미소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시니컬한 눈빛이 하준을 더욱 걷잡을 수 없이 만들었다. 하준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여름은 웃으며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이렇게 정상인 사람을 정신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 먹고 해 한 점 못 보게 했잖아. 감옥에 갇힌 죄수보다 못했다고. 그렇게 당신들은 날 정신병자로 만들었을 테지.”순간 하준의 목이 메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그때… 정상이 아니었어….”“정신에 문제가 있는 상태와 극도로 화가 치민 상태가 어떻게 다른 건지 말해 보시지?” 여름이 싸늘하게 웃었다.“아이는 잃고, 당신은 날 감금한 채 매일 내 눈앞에서 백지안하고 붙어있고… 내가 그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어?”“최하준… 내 딸에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서경주는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자신도 깨어났을 때 여름의 상태를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모든 게 최하준 때문이었을 줄이야….“이 자식!”서경주가 욱해서 하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하준이 가볍게 막고는 서경주의 손목을 잡았다.“놔.” 여름의 아름다운 눈빛에 싸늘함이 감돌았다.“왜? 3년 전엔 아버지를 빌미로 날 위협하더니, 또 아버지를 가지고 나랑 싸우게?”하준의 어깨가 움찔하며 입술이 살짝 씰룩이더니, 서경주를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을 풀었다. 서경주가 놀라 물었다.“나를 빌미로 위협을 했다는 게 무슨 말이냐?”하준은 침묵하고 여름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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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화

차에 시동을 건 뒤에도 하준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여름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좀 비켜주시지?”하준이 복잡한 심경으로 여름을 보았다. 선글라스를 걸친 날렵한 콧날, 그 아래 그려놓은 듯한 입술이 혼미할 정도로 아름다웠다.‘철저하게 환골탈태했군….’낯설기도 하면서 동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자신이 왜 이러는지 하준도 알 수가 없었다. 여자 외모에 혹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잠시 후, 하준이 몸을 이동하자 흰색 스포츠카는 휙 지나갔다.김상혁이 다가왔다.“돌아가시죠.”“조사 좀 해봐. 그때 어떻게 죽은 걸로 위장하고 떠났는지, 누가 도운 건지.”하준이 갑자기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여름이 떠난 쪽을 노려보았다.김상혁은 흠칫 놀라더니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차에 올라탄 뒤 하준은 여름이 SNS에 올린 글을 읽었다.‘선수 치는 데 도가 텄군…’정신이 들자 온몸이 경직되어 왔다.‘젠장… 분명 3년 동안 농락당했는데, 당연히 화가 치밀어야 할 상황에 왜 웃음이 나는 걸까?’“김 실장, 3년 전에 강여름이 정말 병이 아니었던 건가?”“그건… 저도 잘….”김상혁이 머뭇거리며 답했다.“하지만, 백지안 씨는 전문가이니 그분이 그렇다면 뭐… 설마 그분이 우리를 속이겠습니까?”뒷좌석이 잠시 조용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준이 상혁의 말에 멍해졌다.그렇다. 3년 전 백지안이 강여름이 우울증이라고 말했을 때 그대로 믿었었다. ‘하지만 지안이가 거짓말한 거라면?’하준이 미간을 만지작거렸다.‘아니야, 지안이가 그럴 리 없어.’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백지안이었다.“준, 집이야?”“가는 중이야.” 잠시 침묵하더니 백지안이 말을 이었다.“방금 뉴스 봤는데… 강여름이 돌아왔다지? 그 여자 아무래도….”“응.”하준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엔 온통 여름의 매혹적인 모습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했다.“준, 나….”불안한 어조였다.“그 여자 봤어. 나보다 예뻐졌더라. 얼굴 고쳤나 봐? 나 좀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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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화

잠시 후, 하준은 지안을 밀어냈다.“난 서재에서 잘게.”“준, 왜 그래? 그럼 우리 아이는?”백지안이 울먹거렸다. “내가 싫어진 거야? 그때 외국에서 그 일 때문에…”“아니야. 네가 싫었던 적 없어. 내가 문제야.”하준의 눈빛에 번민이 스쳤다.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3년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건 백지안이라는 걸 분명 잘 알면서도 관계를 좀 진전시키려 할 때면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밀려왔다.때로는 자신이 여성과의 스킨십을 혐오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백지안의 갖은 방법으로 심리 치료를 시도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백지안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우리… 병원에 한 번 가볼까? 나 정말 더 못 견디겠어. 난 정말….”지안은 옷을 벗고 앞뒤 가리지 않고 하준에게 달려들었다. 흠칫 놀란 하준이 무의식적으로 지안을 밀쳐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안은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런 수모를 겪어본 적 없는 그녀는 이내 절규하기 시작했다.“미안해.”하준은 옷을 벗어 덮어주고는 지안을 안아 침대에 누이고 침실에서 나갔다.하준이 떠나자, 방에서 백지안이 침대를 두드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하준에게 자신을 사랑하도록 최면을 걸 때, 자신과 관계가 불가능한 사이가 될 거란 예측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때로 억지로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하면 어김없이 거부반응을 보이고는 했다.3년 하고도 반이다.이런 생활을 견디자는 곧 미칠 것만 같았다. 때로 지안은 정말 아무나 찾아 하룻밤이라도 즐기고 싶은 심정이었다.분을 못 이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거절’을 누르고 끊어버렸다.하지만 곧, 그 번호로 사진 한 장이 전송돼 왔다. 자신이 비키니를 입고 어느 중년 남성의 무릎에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입가에는 시커먼 수염이 덥수룩한 우악스러운 인상에 몸과 팔에는 문신이 가득하고 배는 불룩했다. 그리고 자신은 달콤하게 웃고 있었다. 지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에겐 악몽 같은 시절이었다.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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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화

전화를 끊은 후 지안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준이 거실 창 앞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와인잔을 든 날렵한 실루엣이 창문에 비치고 있었다. 이런 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멋진 이런 남자라니…. 어떤 여자든 이 사람을 보면 무너지게 될 것이다.백지안의 마음속에 씁쓸함이 밀려왔다.‘누구보다 멋진 이 남자가 하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다니.’“나가려고?”하준이 지안의 손에 들린 핸드백을 흘깃 보았다.“응, 친구랑 기분 전환 좀 하게.”고개를 숙인 채 귓가의 머리를 넘기는 백지안의 모습은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하준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미안해… 병원에 가볼게.”“어… 그래.”지금 어떻게 곽철규를 구워삶을지 궁리뿐인 백지안은 대충 대답하고는 황급히 별장을 떠났다.집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하준은 괴로워하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야옹’하고 울었다.하준은 허리를 숙여 지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나지막이 읊조렸다. “만약 계속 안 되면… 어떻게 하면 좋겠니?”………벨레스 별장.여름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름이 정원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백지안이 숨겨놓은 자기 아파트로 갔습니다. 곽철규도 그리로 갔고요. 호텔에 어렵사리 설치한 CCTV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호텔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백지안 내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군요.”여름이 아쉬워하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이번만 기회는 아니니까요. 언제가 됐든 걸리기만 하면 되죠.”“하긴, 잘 주시해줘요. 언제 나오는지.”“넵.”전화를 끊자 복잡한 심경의 서경주가 나와 말했다.“여름아, 방금 벨레스 쪽 주주 여럿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나더러 벨레스로 가라는구나. 우선 서경재와 서유인의 직위를 해임하는 데 동의했다.”“일단 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벨레스 주가가 더 떨어질 때까지요.”“알았다.”서경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름의 의견에 동의했다.여름이 잠시 당황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쉽게 제 말을 들으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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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화

서경주는 너무나 괴로웠다. 한동안 업계를 쥐락펴락했던 그인데 이제 주변 사람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신세라니…. ‘여름이에게 꼭 잘 갚아줘야지… 내 딸이 더 이상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다음날.여름은 서경주의 검진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권위 있는 병원이었다. 검사 결과는 바로 나왔다.의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서 회장님 혈액에 독소가 발견되었습니다.”“뭐라고요?!”서경주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3개월 전에 검사받았을 때는 정상이었는데요.”의사가 고개를 저었다.“이건 만성입니다. 최소 2년 동안 차츰차츰 쌓였을 겁니다. 평소 기침, 두통, 가슴 답답함 같은 증상 없었습니까?”“아!”서경주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병원에 물어본 적 있는데 검사 후에 의사가 아마 차 사고 후유증에 노환이 겹친 걸 거라고….”“왜 그렇게 진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수치는 너무 명확합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1년 후엔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겁니다. “의사가 동정 어린 눈길로 서경주를 바라보았다. 재벌 세계의 냉혹함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서경주는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선생님, 그럼 그 해독은 가능한 건가요?”여름이 물었다.“가능하긴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는 않으실 겁니다. 빨리 치료받으시는 게 좋고요.”“감사합니다.”여름은 인사하고 나서 충격에 멍해진 서경주를 부축해 나왔다. 그리고는 하얗게 질린 서경주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분명 측근에 있던 사람이 음식에 탔을 거예요. 회사 아니면 집이었겠죠. 전에 상담했던 의사나 검진 담당자도 모두 매수된 걸 거예요.”“매번 유인이가 데려갔었다.”서경주가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쨌든 20년을 키운 딸이야. 최고로 좋은 것만 주었지. 경재가 친아버지란 것도 모르는 줄로만 알았어. 그리고 위자영… 이혼 후에도 내가 수천억을 주었는데… 정말 무서운 모녀구나.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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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화

서경주와 헤어지고 나서 여름은 또 전화를 받았다.“백지안이 떠났습니다.”여름이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 반이었다.“이렇게 늦게까지… 정말 대단하군요.”“맞습니다.”전화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저도 궁금하네요. 최하준이 만족을 못 시켜주는 거 아닌가….”그때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최하준과 김상혁이 들어왔다. 거부하기 힘든 성숙한 남성 호르몬을 온몸으로 발산하면서 말이다.이렇게 우연히 마주치게 되자 하준은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하준 뒤로 ‘비뇨기과’ 표지를 본 여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말 만족을 못 시켜주는 걸 지도… 일이 있어서 끊을게요.”하준은 여름의 입에서 ‘만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얼굴이 굳었다. “뭘 봐? 난 김 실장 진료에 같이 와 준거야.”의문의 1패를 당한 김상혁은 울고 싶었다. “…….”다른 누명은 다 뒤집어써도 이런 오명만은 거절하고 싶었다.하지만 하준의 눈짓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맞습니다… 제가 요즘 잘 안돼서….”“…….”‘비서 진료에 따라오는 상사도 있나? 그 말을 누가 믿는다고….’여름의 붉은 입술이 예쁘게 싱긋 올라갔다. “그런 건 내가 잘 치료하는데.”“당신이 치료한다고? 당신이 의사야?”하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비아그라 드세요.”여름이 눈웃음치며 고개를 들었다.“풉!”김상혁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준이 상혁을 무섭게 노려보자 상혁은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먹어봤는데… 소용없습니다.”“아… 그래요?”여름이 의미심장하게 하준 쪽을 보았다.“왜 쳐다보는 거지? 난 안 먹어봤어.”하준은 여름을 엘리베이터 밖으로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었다.“누가 뭐라 그랬나?”여름은 초승달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웃었다. 하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과거 여름의 얼룩덜룩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여름은 어떤 남자라도 홀릴 수 있으리만치 매혹적이었다.전에도 자주 이렇게 웃었더라면… 자신도 그렇게 여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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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화

”됐어!”최하준은 매섭게 상혁을 노려보고는 성큼성큼 떠났다.비뇨기과 앞에서 전 부인과 마주치는 것보다 난처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젠장!’………병원을 떠난 여름은 곧장 차를 몰아 화신으로 갔다.떠난 지 3년, 데스크 직원도 벌써 두 번이나 바뀌었다.여름이 들어가려는데 데스크에서 바로 붙들었다.“누구시죠? 약속하셨나요?”“아니요.”여름이 선글라스를 벗고 탄성이 나오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하지만, 대표님 좀 만나야겠는데요.”데스크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비웃듯이 말했다.“약속도 없이 대표님은 못 만나세요.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죠. 시아 같은 슈퍼스타도 아니고….”“시아?”강여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우리 회사 새 모델이잖아요. 얼른 돌아가세요.”직원은 짜증 내며 말했다.여름의 입가에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그럼 지금 대표는 누구죠?”“아니 대표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만난다고요? 백, 지, 안. 백 대표님시잖아요. 최하준 회장님 약혼자요. 곧 취임하실 거예요.”여름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보이지 않는 위엄을 느끼자, 안내 직원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이때,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강… 강 대표님?”여름이 몸을 돌렸다. 남자는 40세쯤으로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는 살짝 긴 편이었으며 초췌해 보였다.“엄 사무장? 왜 이렇게… 늙어버린 거예요?”여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정말 대표님이시네요.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가 진짜였어요. 돌아가신 게 아니었어요!”감정에 북받쳐 여름을 바라보는 엄기숙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네, 안 죽었어요.”여름은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대표 비서까지 맡으셨던 분이 어째서 창고 관리자가 되신 거죠?”엄기숙이 서럽게 말했다.“대표님, 3년 전 대표님 돌아가셨다는 소식 이후에 회사는 최 회장에게 넘어갔답니다. 법률상 배우자였으니까요. 전 이사장 구진철 무리가 최 회장을 믿고 날뛰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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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화

‘난 아무리 열심히 피부관리를 받아도 벌써 눈 밑에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는데….’왜 하준이 여름에게 그렇게 푹 빠졌었는지 알 것 같았다.대체 어디를 다녀왔길래 얼굴이 그렇게 말끔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다 나았으면 뭐? 준은 이미 완전히 내 손아귀에 있는데… 저깟 게 뭐라고.’백지안은 입꼬리를 한껏 올린 채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강여름을 보지 못한 것처럼 꼿꼿하게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백지안, 어디 가? 여긴 내 회사 같은데?” 여름은 갑자기 백지안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여름이 이렇게 이미지 신경 안 쓰고 덤벼들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백지안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악’하고 소리질렀다.“뭐 하는 거야?!”곁에 있던 보디가드가 재빨리 여름을 제지했다.“어머, 고의는 아니었어요. 살짝 당겼다고 이렇게 넘어질 줄은 몰랐네요.”강여름이 뒤로 물러났다. 손을 놓자, 손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잡혀 있었다.“머리숱 많다고 부러워했더니… 다 붙인 거였어?”“강여름, 일부러 그런 거 다 알아. 민 실장. 얼른 잡아!”백지안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우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머리숱이 적고 짧은 게 콤플렉스라 일부러 제일 유명한 헤어샵을 찾아가 시술받은 붙임머리인데 전부 떨어져 나가고 나니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왜 날 잡는 거야, 내가 무슨 범법 행위라도 했어?”여름이 몇 차례 민정화와 실랑이를 벌이더니 잠시 후 민정화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이 광경을 본 백지안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하준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붙여준 사람이었다. 그동안 여름은 무술까지 배워온 것이다. 이건 제법 골치 아픈 문제였다.“지룡파 사람인가?”여름이 잽싸게 일어나는 민정화를 보며 물었다.“차윤 알아?”“흥.”민정화는 이를 갈며 짜증 나는 듯 대답했다.“진작에 회장님께서 다른 곳으로 발령내셨어. 안 돌아온 지 몇 년 됐지.”여름은 어이가 없었다. 보아하니 이 민정화란 사람 역시 최하준이 파견한 사람이 분명했다.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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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화

“어머, 늘 너무 기품있고 온화해서 내 롤모델이었는데….”“쉿, 조용히 말해. 그래도 대표인데 잘리면 어쩌려고.”“…….”백지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공개적으로 최하준의 여자 친구가 된 이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받들고 여신이라 칭송해왔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될 줄은….“강여름 씨, 한 마디만 더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습니다.”“그러시던가, 나도 오늘은 그냥 내 회사 둘러보러 온 거니까요. 내일은 주주들을 모두 소집해 주주총회를 열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연락해야지.”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검지 손가락이 백지안을 가리켰다.“당신은 첫 번째 해임 대상입니다.”백지안은 우습다는 듯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진짜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아시나 본데? 지금 화신은 이미 3년 전 화신이 아니라고. 흥, 열심히 연락해 보시지. 누가 나오나. 날 해임하시겠다고? 꿈 깨시지!”“그럼, 기대하세요.”강여름은 돌아서더니 엄 실장의 명찰을 ‘홱’ 떼어냈다.“창고관리원이 뭐예요? 나랑 가요.”“예.”엄 실장은 기꺼이 따라나섰다.하지만, 입구를 나서려는데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표님,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듣고 화내지 마세요….”“최하준이 백지안을 아끼니 내가 승산이 없다고요?”여름이 웃으며 살짝 눈을 흘겼다.엄 실장은 당황하며 비위를 맞췄다.“대표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그걸 단번에 알아채시다니.”“괜찮아요. 난 이미 최하준이란 사람한테 미련 없어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대수인가요? 내가 살아있는 한 화신의 최대 주주는 나예요. 그 사람이라고 법을 이길 수 있겠어요?”여름은 시종 담담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엄 실장은 자신이 이 사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회사에 온 백지안이 비서 민정화에게 눈짓을 보내자 민정화는 바로 최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회장님, 방금 강여름 씨가 화신에 왔었습니다. 오자마자… 백 대표님 머리채를 휘어잡아서 머리카락이 끊어지고 두피도 다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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