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571 - 챕터 580

1699 챕터

571화

왜 그 말이 그렇게 계속 맴도는지, 왜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는 하준도 알 수 없었다.“따라와.”하준은 여름을 보며 명령하듯 말했다.여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준은 신경도 쓰기 싫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목구멍으로 피가 솟을 듯 분노가 치밀었다.“내 말 안 들려? 임신한 몸으로 이렇게 불편하게 있으면 안 된다고.”하준이 여름을 잡아 일으켰다.여름이 하준을 와락 밀치더니 슬프게 웃었다.“나라고 불편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겠냐고? 내 친구가 둘이나 저러고 정신도 못 차리고 누워있는데 내가 잘 생각이 들겠어요? 뭐, 백지안 말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당신 같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하준은 여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입고 있던 재켓을 벗어 여름의 어깨를 감싸주었다.놀라서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여름의 귀에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아이들 춥게 하지 말라고.”반짝하고 눈에 들었던 빛은 곧 사라졌다.여름은 자조적으로 웃었다.‘지금 상황이 이 지경인데 나는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야?’그러나 곧 하준의 전화가 울렸다.하준이 휴대 전화를 꺼낼 때 흘끗 보니 액정에 ‘지안’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했다.하준은 일어나더니 저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복도는 워낙 조용했던 터라 심야가 아니었어도 여름은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백지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았다.이때 수술실 불이 꺼졌다.의사가 양유진의 침대를 밀고 나왔다. 양유진은 깨어 있었다. 여름의 초췌한 모습을 보더니 양유진이 미소를 지었다.“피곤하죠? 가서 좀 쉬어요. 난 괜찮아요….”‘괜찮다고?그게 이제 막 수술을 하고 나온 사람이 할 소린가?’여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통화를 마치고 돌아오던 하준의 눈에 여름과 양유진이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여태껏 양유진의 수술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양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윤서를 구하지 못했을걸.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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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화

“됐어요.”여름은 고개를 저었다.‘따라가서 뭐 해? 십중팔구 경찰서 아니면 백지안에게 갔을 텐데.’여름의 예상이 맞았다.20분 뒤 하준은 경찰서에 나타났다. 백지안은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어서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준….”보자마자 백지안은 하준의 품으로 뛰어들어 울먹였다.“미안해. 우리 오빠가 또 사고를 쳤네. 이렇게 못난 짓을 하고 다닐지는 나도 몰랐어.”“전에 다 내가 뒤를 봐주는 바람에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된 거잖아.”하준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사람까지 데리고 가택 침입이라니. 게다가 칼까지 들고 난동을 부려? 아주 이렇게 안하무인일 수가 있나? 왜? 아주 총을 들고 들어가서 은행이라도 터시지?”백지안이 급히 해명했다.“오빠가 임윤서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겠지. 그런데 임윤서는 안 좋아하면 그만이지 툭하면 사람을 모욕하니까, 오빠도 화가 나서 그만….”“그래서? 그러면 백윤택은 하나도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인가?”하준이 열 받아서 물었다.“아니, 그런 게 아니고….”백지안은 하준이 이렇게 진심으로 화낼 줄은 몰랐다. 놀라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껏 가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물론 오빠가 잘못했지. 나도 너무 실망했어. 이게 다 내 잘못이야….”“됐어. 네가 그런 것도 아닌데. 다 백윤택의 자업자득이지.”하준이 백지안의 어깨를 두드렸다.“준, 경찰에 물어봤는데 벌써 입건됐대. 상대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감옥 간다던데?”백지안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애원했다.“난 이제 이 세상에 우리 오빠 하나 남았어. 엄마 아빠도 다 돌아가시고, 이제 오빠까지 감옥에 가고 나면 난 식구를 다 잃는 것이나 다름없어.”“너한테는 내가 있잖아?”하준이 부드럽게 달래긴 했지만 영 백윤택을 구해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다르지. 오빠는 유일한 내 피붙이잖아.”백지안은 하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다시 엉엉 울었다.하준은 가만가만 백지안의 등을 쓸어 주었다. 눈에는 막연한 빛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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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화

임윤서가 중얼거렸다.“거짓말 아니지? 나 정말 이제 무사한 거지?”“그럼. 거짓말이면 내가 성을 갈지.”여름이 맹세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임윤서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끊길 듯 말 듯 뭔가가 기억나는 듯했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여름아, 무서워. 정말 너무 놀라서 죽을 뻔했어. 백윤택 그 미친놈이 쳐들어오고, 난 반항했는데 그놈들이 와서 나 막 때리고…. 그런데 양유진이 들어와서….”“이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임윤서의 말을 듣다 보니 여름은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백윤택이 이렇게까지 무식하고 악랄한 짓을 벌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여름이 양유진에게 알리지 않았더라면 윤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서워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괜찮아. 이제 다 지나간 일이야.”여름은 분노를 꾹 참으며 임윤서를 위로했다.임윤서는 내내 여름의 품에서 울었다. 그러나 진정제의 효과 때문인지 임윤서는 다시 곧 잠들었다.여름이 막 윤서에게 이불을 여며주는 데 백지안이 병실로 들어왔다.털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백지안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울먹였다.“강여름 씨, 임윤서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 오빠를 대신해서 사과 드립니다.”그러더니 백지안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지안아, 그만 일어나.”하준이 따라 들어오다가 그 장면을 보고 바로 백지안을 잡아 일으켰다.그러나 백지안은 한사코 바닥에 붙어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다.“준, 잡아당기지 마. 원래 우리 오빠가 잘못한 거잖아.”“됐어. 지금 너 이마도 다쳤는데 이러고 있다가 큰일 나려고 어서 일어나.”“임윤서 씨는 목숨까지도 위태로웠는데 이까짓 이마가 문제겠어?”하준의 손을 떼어내려고 잡고 있던 백지안이 갑자기 엉엉 울며 하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준, 난 정말 임윤서 씨에게 너무 미안해.”“울지마.”하준이 고개를 숙이며 백지안을 안았다.여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장면을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자신의 남편이 자신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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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화

이렇게 심하게 토해본 적이 없었다. 눈물에 콧물에 담즙까지 올라왔다.자기 꼴이 말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여름도 어쩔 수가 없었다.“괜찮나?”하준이 놀란 듯 미간에 주름을 잡고 여름을 쳐다봤다.백지안도 얼른 휴지를 뽑아 여름에게 건넸다.여름은 백지안의 손을 밀어내고 허리를 구부린 채 낮게 웃었다.“괜찮지. 당연히 괜찮아. 그냥 더러운 연극에 오심이 올라와서 그만….”하준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강여름, 말조심해서 하지.”“내 말이 틀려?”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눈에 핏발이 섰다.“당신들은 대체 사과를 하러 온 거야 아니면 애정극을 벌이러 온 거야? 최하준,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라. 하지만 난 법적으로 당신 아내라고. 눈곱만큼이라도 그 사실을 존중해 주지 않겠어?”그리고 백지안을 쳐다봤다.“그리고, 당신, 들어오자마자 울고불고 용서해 달라니? 내가 당신더러 무릎 꿇으라고 했어? 당신이 무릎 한 번 꿇으면 윤서가 당한 폭행과 느꼈을 공포가 단번에 그냥 다 없는 일이 되는 건가? 백윤택이 벌인 짓은 엄연히 불법이야. 가택 침입, 폭행, 살인 미수, 강간 미수 등등이지. 당신은 머리 몇 번 조아리면 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나? 그러면 나도 백윤택을 죽이고 무릎 한 번 꿇을 테니까 용서해 주겠어?”백지안이 입을 뻐끔거렸다.“난 그런 뜻이 아니라….”“나가.”여름이 문밖을 가리켰다.“이런 일은 사적으로 처리할 수 없어. 법대로 저지른 짓에 대해 처벌 받아야지.”백지안이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를 말하려는데 여름이 먼저 다음 말을 이었다.“더는 무릎 꿇고 나에게 사과할 생각 하지 마. 무릎이 다 터져 나간대도 소용없어. 난 최하준이 아니야. 그래 봐야 난 마음 아프지도 않아.”“강여름!”하준이 결국 경고를 날렸다.“내 말이 틀렸나? 피해자는 우리 쪽이라고. 그런데 이게 뭐야? 왜 용서해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무슨 죽을죄를 지은 사람 취급을 받는 건데?”여름이 싸늘하게 웃었다.“나가. 다시는 둘 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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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화

“여름아. 아니야.”임윤서가 애원하듯 여름을 쳐다봤다.“난 그냥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그런 소리 하지 마. 넌 그렇게 비겁한 인간이 아니라고."여름은 화가 나서 하준을 노려봤다.“당신이 말해. 자신 있으면 어디 말해 보라고.”하준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었다.“강여름, 이 일을 자꾸 크게 만들면 당신 아버지는 치료를 못 받게 될 거야.”여름의 머릿속에 콰르릉하고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여름은 다시 임윤서를 쳐다봤다.“저렇게 널 협박하디?”임윤서가 씁쓸하게 답했다.“아빠는 한 분뿐이잖아. 난 네가 아빠를 잃게 할 수는 없어.”“그래, 내게는 이제 아빠 한 분뿐이라 얼마나 소중한지는 다들 알겠지. 그래서 이렇게 번번이 우리 아빠를 가지고 날 위협하는 거겠지.”여름은 싸늘하게 하준을 노려봤다.“지난번에는 백지안의 명예를 지켜주겠다고 나에게 이혼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라고 했잖아. 아직도 사람들은 날 욕하고 있어. 그런데 이제는 그 인간쓰레기도 놓아달라고?”하준은 일자로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여름은 결국 두 손으로 있는 힘껏 하준을 밀쳤다.“최하준,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이 사람이야? 백지안을 위해서 이렇게 누누이 나와 내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내가 전생에 대체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래 당신을 만났을까….”여름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려져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하준은 목이 꽉 막혔다. 어쩐 일인지 누군가가 심장을 손으로 꽉 쥐어버린 듯 아프고 숨을 쉴 수 없었다.“여름아, 울지 마.”임윤서가 어렵사리 일어나 여름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몸을 일으키자마자 통증에 다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아직 아플 텐데 움직이지 마.”여름이 다급히 다가가 임윤서를 부축했다.“내 말 들어. 그렇게 하자. 이제 그만 해. 어쨌든… 난 아직 살아 있잖아.”임윤서가 여름의 손을 잡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안 돼.”여름이 고개를 저었다.“이번에도 백윤택이 처벌을 받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날뛸 거라고.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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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화

하준은 눈물이 가득한 여름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다시 여름을 지키려는 양유진을 쳐다봤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내가 이혼을 하거나 말거나 그건 내 일입니다. 애초에 그렇게 후안무치로 날 꼬드기려고 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겠죠. 다 자업자득입니다.”“누가 유혹했다는 겁니다. 애초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름 씨를 내 곁에서 데려간 게 당신 아닙니까? 여름 씨는 내 약혼녀였습니다.”양유진도 분노로 맞섰다.“약혼녀면 뭐?”하준이 웃었다. 눈에 떠오르는 싸늘함을 자신도 깨닫지 못했다.“그때 내 침대로 들어온 건 강여름이었습니다. 지금도 내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잖습니까?”여름은 이제 참을 수가 없었다.“누가 달라붙어 있다는 거야? 해주기만 한다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이혼할 수 있어.”“뭐라고? 날 유혹해서 애는 가져 놓고 애는 양 대표에게 가서 낳겠다, 그런 말인가?”하준이 여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잘 들어. 나는 절대 내 아이들이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는 꼴은 못 봐.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고 해. 그때 지안이랑 자리 교체하면 되겠네.하준이 말이 마디마디 여름이 심장을 찔러 왔다.너무 꽉 조여서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아팠다.“백지안이 그렇게 좋으면 백지안에게 낳아달라고 해요. 당신 둘의 아이를 가지면 되잖아. 내 아이를 빼앗아 갈 게 아니라.”여름은 눈물로 범벅이 된 채로 애걸했다.“제발 나랑 내 아이들을 놔 줘요.”하준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차가운 얼굴을 돌렸다.“아이를 낳는 건 많이 아프다는데 차마 지안이에게 고통을 줄 수는 없어. 지안이는 그냥 지금 모습 그대로 최하준이 아내로 내 사랑만 받으면 돼.”“그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야?”이제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백지안이 아파서 안 되고 나는 그걸 다 견디고 아이를 낳으라는 건가?저게 인간이야?’여름은 자신이 임신한 것도 잊은 채 하준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미쳤어?”하준은 전혀 방비가 되지 않은 채로 맞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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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화

“날 가두겠다고?”여름은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내가 낳은 아이를 백지안에게 넘기라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날 가둬두기까지 하겠다니….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무슨 근거로? 당신 이거 위법 행위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여름이 휴대 전화를 들자마자 하준이 낚아챘다.“난 기회를 줬어. 누가 양유진이랑 그렇게 붙어서 날뛰래?”하준도 자신이 왜 이렇게 열이 뻗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무슨 자존심 발작 버튼이 눌린 듯 했다.“당신이 지금 남 얘기할 처지인가? 백지안이랑 바람 난 건 당신이잖아? 당신들 둘이 자고 다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잤으면 또 어쩔 거야? 당신 이러고 미쳐서 날뛰는 그 못생긴 얼굴 보면 백지안이랑 비교가 안 된다고.”하준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잔인했다.여름은 저도 모르게 멍하니 울퉁불퉁한 자기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솟아올랐다.‘내 외모가 어떻게 되든 영원히 사랑하겠다던 사람이 누군데,이제 와서 내 얼굴이 어쩌고저쩌고 왈가왈부야?내 얼굴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인가?’“최하준, 당신이 내 아이들을 백지안에게 맡길 거라면 난 차라리 여기서 뛰어내리겠어.”여름이 창백한 얼굴로 결연하게 말했다.“하려면 하시던지. 이것만 알아둬. 내 아이에게 눈곱만큼이라도 이상이 생겼다가는 당신 친구랑 병원에 누워 있는 당신 아버지도 같이 저세상 가게 될 거야.”싸늘하게 말하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여름이 막 뛰어나가 봤지만 밖에서 문 잠그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힘껏 손잡이를 잡아 돌려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았다.여름은 이곳에 갇힌 것이다.이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전에는 하준이 무슨 짓을 해도 진심으로 하준을 미워한 적은 없었다.하준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백지안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다고 늘 되뇌어 왔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진심으로 최하준이 미워졌다.백윤택이 미웠고, 백지안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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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화

강여름은 매일 그 2층 집에서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그저 텔레비전을 보거나 테라스에 나가서 바람을 쐴 뿐이었다. 가끔 테라스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자면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 억지로 참았다.여름은 1주일을 견뎠다.상혁이 여름을 병원에 데려가 산전 검사를 받으려고 차를 몰고 왔다.“하준 씨는요?”여름이 물었다.상혁이 난감한지 입을 못 열고 있었다.여름이 웃었다.“알아요. 백지안 옆에 붙어 있느라고 바쁘겠죠. 백지안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사모님, 이러지 마십시오.”상혁의 눈에 동정과 연민이 컸다.“같이 병원에나 가시죠.”여름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곁에 있는 낯선 보디가드를 보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병원에 가는 길에 상혁이 운전했다. 뒷좌석에 여름만 남아있게 되었을 때에야 상혁이 입을 열었다.“요즘 제가 회장님과 백지안을 위해서 꽤 애쓰고 있어서 회장님이 이제 저를 의심하지 않으십니다.”“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여름은 하준이 상혁까지 의심해서 지켜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마도 전에 제가 회장님께 사모님 편을 드는 듯한 말을 좀 해서 그런지 한동안은 저를 좀 못 미더워 하시더라고요.상혁이 조그맣게 말했다.“지난번에 제가 유산을 가장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이젠 그 작전도 안 통해요. 하준 씨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겼다가는 윤서랑 우리 아버지를 가만두지 않겠다네요. 난 이제 윤서가 제일 걱정이에요."여름이 담담히 말했다.“백윤택이 풀려나면 이제 전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윤서에게 복수하려고 들 텐데, 윤서는 나랑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서울을 떠나려고도 하지 않을 거예요. 윤서가 바로 외국으로 나가게 제소식을 좀 전해 줄 수 있나요?”“네, 하지만 임윤서 씨도 없으면 사모님은….”“연락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요. 최양하예요.”여름이 갑자기 말했다.상혁은 흠칫했다.“그 분이 도움이 될까요?”“나도 100% 확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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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화

시아는 잠시 여름의 눈치를 슬쩍 봤다.“너 아직 모르나 보구나. 요즘 이주혁 씨가 자기네 집안 모임에 가끔 나 데리고 가는데 최 회장이 매번 백지안 씨랑 같이 오더라. 둘이 얼마나 달라붙어 있는지 몰라. 끝나면 매번 지안 씨네 가서 자나 보더라."“시아 씨….”상혁이 얼굴로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김 비서, 내 말이 사실이잖아요? 김 비서도 다 봤잖아요?”시아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지난번에는 지아 씨 목에 키스 마크까지 봤다니까, 세상에.”여름이 얼굴이 싸늘해졌다.“그렇구나. 아주 잘됐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모여 있는 게 좋지.”“아닌 척하지 마. 너도 힘들겠지, 왜 아니겠어?”시아가 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춰 보더니 립스틱을 덧발랐다.“아 참, 며칠 전에는 지안 씨가 불러서 해변 별장에 놀러 갔었거든. 거기가 서울에서 집값 제일 비싼 데라면서? 침실에서 문을 탁 여니까 파란 바다가 보이더라.”여름의 안색이 확 변했다.그곳은 여름과 하준이 살았던 곳이었다. 하준이 요양할 수 있도록 여름이 최선을 다했던 곳이고 여름이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여름과 하준은 그곳에서 평생을 약속했고 배 속의 아이들도 바로 그곳에서 생겼었다.‘그런 곳을 백지안에게 내주었다니….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지.정말… 정말 너무하네.’완전히 의기소침해진 여름을 보고서 시아가 마침내 웃더니 천천히 목소리를 낮췄다.“한때 금수저였던 너와 임윤서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겠지. 이제 사람들은 임윤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두고 쑥덕쑥덕하지, 너는 남편에게 차였지. 쯧쯧, 인생이라는 게 돌고 도는 거라니까.”“뭐라고?”여름이 확 고개를 쳐들고 시아를 노려봤다.“윤서 일이….”“그래, 요즘 핫한 뉴스잖니? 동성 재벌가의 금수저가 강간당한 일 말이야. 오호홋! 사람들은 윤서가 일부러 백윤택을 꼬드긴 거라고 하더라고. 이제 누가 그런 애랑 사귀려고 하겠어? 이제 내 눈에는 너희 둘의 꼴이야말로 참 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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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화

여름이 있는 대로 물건을 다 집어 던지는 바람에 새로 온 가사 도우미가 당황하고 말았다.밤이 되자 하준이 마침내 나타났다.하준이 난장판이 된 집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뭔가가 덮쳐왔다.얼른 피하며 여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여름의 손에 든 날붙이를 얼른 멀리로 던져 놓고 돌아보니 뼛속까지 얼릴 한기를 품은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죽을 뻔했잖아?”“내가 틀렸네. 바보가 되는 게 지금보다는 나았겠어.”여름이 가슴 아프게 하준을 바라보았다.“왜 살아남았어? 당신 같은 정신이상자, 가둬두고 풀어주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내가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다니, 미쳤었나 봐.”“시끄러워. 당신이 지금 정신 이상인 것 같은데?”하준은 여름을 화장실로 끌고 가 거울 앞에 여름의 얼굴을 잡아 가져다 댔다.“지금 이 꼴을 보라고, 완전 미치광이 같아.”“그래, 나 미쳤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여름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대체 내 친구를 왜 그따위로 취급해? 당신도 윤서가 피해자인 거 다 알면서. 백윤택이야 도와줘도 이제는 오명을 썼으니 그렇다 치고, 윤서는? 이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받으며 살아야 하잖아?”하준은 머리가 터지는 것 같았다.“말 다 했다? 기사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당신 친구가 백윤택을 먼저 유혹했다고.”“뭐라고?”여름은 황당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임윤서가 먼저 백윤택을 자기 톡에 추가하고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윤택을 유혹했어. 그러다가 백윤택의 소문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완전히 몸을 빼려고 했던 거라고. 세상에 이렇게 치사한 일이 있겠어?”“누가 그런 소릴 해요? 백지안이? 지금 백지아니 하는 말을 다 믿는 거야?”하준이 콧방귀를 뀌더니 무시하듯 말했다.“그럼 내가 지안이를 믿지, 당신을 믿을까? 유유상종이라고 당신도 임윤서랑 같은 부류겠지. 임윤서가 동성에서는 그래도 좀 사는 집안의 자식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살다가 서울에 와서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백윤택을 등에 업고 이득을 취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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