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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화

서경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는 위자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위자영이 펄쩍 뛰었다.“무슨 뜻이니? 네가 몰래 온천 쪽으로 가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최윤형을 유혹하러 갔나 싶었지. 그 인간은 워낙 지저분한 소문 있으니 걱정돼서 급하게 달려간 거 아니냐?”“그렇게 급하게 와서 옷이 흐트러진 채로 최윤형 씨랑 포개져 있는 거라도 봤으면 내 이름도 더럽혀졌겠죠. 그 댁에선 내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테니 며느리 삼을 리도 없고요.여름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정말 내가 걱정됐었다면 혼자 달려오셨어야죠. 이 댁 사람들을 다 몰고 오실 게 아니라. 그리고 그런 이유로 달려와서 그 자리에 내가 없었으면 안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여름이 조리 있게 따지자 서경주는 그 사건이 분명 위자영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이건 정말 너무 심했잖아.’서경주는 화가 나 몸이 부르르 떨렸다.“얘가 당신하고 무슨 원한이 있다고, 평소 집에서 두 모녀가 얠 공격한 건 그렇다 치고, 거기 가서까지 그러는 건 그야말로 애 인생 말아먹겠다는 거 아니고 뭐요?”여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저녁 식사 때 쉐프까지 저 무시하는 거 보셨죠?”“그래, 잊을 뻔했구나.”서경주는 그 일이 떠오르자 위자영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전에 당신이 최민 씨랑 친하다고 나한테 자랑하더니 둘이 얼마나 쿵짝이 잘 맞는지 오늘 아주 잘 확인했어.”“아빠, 쟤 이간질에 놀아나지 마세요.”서유인이 당황해 말했다.“넌 조용히 해.”서경주가 소리쳤다. “둘이 아주 하나같이 악랄하기 짝이 없군.”서유인이 입을 닫지 못했다. 위자영도 화가 났다.“저 아이 온 이후로 저 아이만 끼고 돌고, 아무래도 당신 강신희의 더러운….”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경주가 위자영의 어깨를 움켜쥐었다.“잘못해놓고 뉘우치지는 못할망정…, 당신하고 결혼한 게 정말 후회스러워.”“뭐라고요?!”위자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유인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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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화

아무래도 누가 차에 손을 댄 듯했다. 여름이 급히 핸들을 돌렸다. 내리막 커브 길에서 브레이크 없이 차는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그때, 눈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좁은 길에서 여름은 과감하게 갓길로 피해 지나갔다. 상대차의 기사는 깜짝 놀랐다. “아, 뭐지! 레이싱하나? 이런 길에서 150km라니.”최양하가 고개를 들어 보니 흰색 차량이 쏜살같이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몇 커브를 도는 동안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레이싱을 즐기는 자신도 그렇게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따라가 봐.”운전기사가 악착 같이 따라붙었다. 놀랍게도 그 차는 시속 2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차가 막 뒤집히려 할 때 여름은 기지를 발휘해 공사 중인 임시 흙길로 차를 몰았다. ‘쿵!’하고 차는 커다란 나무에 충돌했다.최양하가 얼른 달려가 문을 열어보니 에어백이 튀어나왔다. 가녀린 여자가 에어백에 폭 싸여 있었다. 의식은 잃었지만, 몸에 다친 흔적은 없었다.“강여름 씨?”최양하는 창백하지만,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기사와 여름을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곧 서경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최양하가 위로했다.“걱정 마세요. 따님께서 정말 현명하고 과감하게 대처했습니다. 차가 꽤 오래 제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커브 길에서 내내 침착하게 조종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공사 중인 진흙 길로 뛰어들어 감속했습니다. 다행히 사람이 안 탄 쪽이 받혀서, 외상도 별로 없습니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다행이군.”서경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최양하에게 말했다.“오늘 너무나 고맙네. 이 은혜 잊지 않겠네.”“천만에요. 그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대략 30분쯤 후, 의료진이 나왔다. 과연 최양하 말대로 여름은 몸과 두부에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지만 다친 곳은 없다고 했다.무사하다는 확인을 받고 최양하는 회사에 일이 있어 회사로 갔다.가는 길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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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화

최양하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에겐 앞에서만 굽신대고 제멋대로이던 간부들이 최하준 앞에서는 충견처럼 비굴하게 굴고 있었다.씨익 웃고는 하준을 불렀다.“형.”하준은 냉담하게 힐끗 보았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다. 아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데.”“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출근길에 차 사고 현장을 목격해서 그 사람 병원에 좀 데려다주고 오느라고.”“다음엔 못 오면 회사에 통보해라.”하준은 룸으로 들어갔다.“알겠습니다. 그런데 형은 문병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사고 난 사람이 서 회장 딸이던데. 서유인은 아니고.”과연 하준이 멈칫했다.몸을 돌려 최양하를 똑바로 보았다. 깊은 눈동자 속에 검은 물결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강여름?”“네.”최양하가 사뭇 안타깝다는 얼굴을 했다.최하준은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입을 살짝 내밀었다.“많이 다쳤나?”“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병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왔으니까.”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데 차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구하러 가보니까 이미 인사불성이더라고.”뒤에 있던 심 전무가 ‘히익’하는 소리를 냈다.“그런 내리막 커브에서 브레이크 고장이라니, 저승행 고속도로 아닙니까?”하준은 룸 문을 발로 툭 찼다. “들어갑시다.”룸에 들어간 하준이 상혁에게 눈짓을 했다. 상혁은 의중을 파악하고 바로 조사하러 나갔다.상석에 앉은 하준 옆으로 임원진이 앉아 떠들기 바빴으나 하준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살아오면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함을 잃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시각 하준의 머릿속엔 온통 강여름뿐이었다. 깜찍하고 잔망스러우면서도 수줍던 강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앞에서 수줍게 입맞춤을 당하던 여름이었는데 지금은 차 사고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다니….갑자기 심장이 뻐근해 왔다.하준은 벌떡 일어섰다.“일이 좀 생겨서 좀 가봐야군요. 다들 식사는 알아서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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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화

문밖, 최하준의 주먹에 힘줄이 터질 듯했다.문득 여름을 걱정하며 미친 듯이 달려온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동성에서처럼 속고 또 속는 기분이었다.자신의 앞에서 진실한 척, 수줍은 척해놓고는 뒤돌아 바로 양유진과 밀어를 나누고 있다니.‘대체 날 뭘로 생각했던 걸까?’서늘한 한기가 하준의 눈에서부터 뿜어나왔다.더 들을 수가 없던 하준은 돌아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막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서경주가 하준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최 회장, 여긴 무슨 일로….”“친구가 입원해서 잠깐 보러 왔습니다.”하준은 싸늘한 얼굴로 대충 둘러대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서경주는 하준의 냉랭한 태도에 더는 말을 붙이지 못했다. 병실로 돌아와 보니 양유진이 여름에게 물을 먹여주고 있었다. 서경주는 그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양 대표가 너에게 아주 잘하는구나. 아침에 너와 통화가 안 되니 나에게 전화가 왔더라. 사고 얘기를 듣고는 바로 비행기로 왔어, 네가 깨어나기도 전에.”여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서경주가 의자를 끌어와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양 대표 같은 사윗감하고 비교하면 최 회장은… 방금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만났는데 친구 문병 왔다더구나. 그래도 어쨌든 내가 유인이 애비인데 내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어, 정 없는 녀석 같으니.”“최 회장요”양유진이 놀라며 물었다. “FTT 최 회장 말입니까?”“응, 그 사람이 유인이랑 교제 중이네.”서경주가 말했다.“그렇긴 한데 어쩐지 유인이랑 결혼할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유인이는 지금 눈에 콩깍지가 씌였는데, 내가 보기엔 그 사람 유인이에게 아무 감정이 없는 것 같아. 진짜 좋아하면 그럴 수가 없지.”여름은 잠자코 있었다,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윙윙거리고 있었다.‘그 사람이 왜 병원에 있을까? 혹시 날 보러 온 건가? 설마 문밖에서 나랑 양유진을 보고 안 들어온 건 아니겠지?’하지만 그저 추측일 뿐 최하준의 마음속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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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화

”됐어, 얘기 안 해도 돼. 죽든 말든 나랑 상관없으니.”하준은 시동을 걸고 ‘붕~’하고 떠났다. 차는 도로 위를 쏜살같이 질주했다. 놀란 상혁이 머리 위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회사에 도착하자 하준은 바로 올라갔다.상혁이 커피를 한 잔 따르고 탕비실에서 나가려는데 하준이 갑자기 불러 세웠다.“기다려, 뭘 알아냈다고?”“…….”‘우리 보스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니까.’상혁이 하준을 돌아보며 침착하게 보고했다.“차는 그 집에서 누군가 건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원사 짓입니다. 그 사람이 봉작구 일대 두식이파 두목 맹두식에게서 돈을 받은 걸 확인했습니다. 맹두식은 위지웅과 긴밀한 관계입니다. 이 일을 조사한다고 해도 위지웅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그렇겠지.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해본 녀석이니 이 방면으로는 도가 텄을 거야.”하준이 커피잔을 들고 후후 불었다. “서 회장 쪽에서는 알고 있나?”“그쪽에선 차를 조사했는데, 차는 전소됐고 현장 보전도 되지 않아서 아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겁니다.”“아마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겁니다.”“서 회장은 양반이라, 자기 사람들 의심하지 못하겠지.”최하준이 차갑게 웃었다.“제가 조사한 결과를 강여름 씨에게 알….”“뭐 하러?”하준이 커피잔을 탁자에 ‘탕’하고 내려놓았다.“자네는 강여름에게서 월급 받나? 내버려 둬! 그런 멍청이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나가.”하준이 버럭했다.상혁은 하준의 괴팍한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이 일을 조사했다. 저녁이 되자 과연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서 회장 집에서 이미 범인을 찾았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지금 집을 봉쇄하고 통신망도 모두 차단했습니다.”하준이 눈썹을 찡긋 올렸다. “서 회장이 못 찾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네.”상혁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하준이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함정이군. 서 회장은 자기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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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화

최양하는 멈칫해서 잠깐 있었다. 표정이 과히 미묘했다.“약혼하셨군요.”강여름은 가볍게 ‘네’ 했다.“그날은 정말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현란한 운전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최양하가 여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다음에 한 번 붙어보죠.”“운전을 잘한다고요?”양유진이 살짝 놀란 듯했다.“뭐, 살려다 보니 없던 능력이 나왔겠죠.”여름이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최양하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병실이 조용해지자 양유진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나랑 약혼한 거 후회하지 않아요?”“왜 그러세요?”여름은 의아해했다.양유진은 떨떠름한 얼굴로 여름을 바라보았다.“어려서부터 순탄하게만 살았는데 여기에 와서 내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알았어요. 최양하 씨처럼 잘난 사람을 보고 나니 갑자기 내가 당신한테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여름이 방긋 웃었다.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벨레스 가로 들어가긴 했지만 제대로 된 자식 대접도 못 받는 걸요. 대단한 집안에서는 저를 며느릿감으로 보지도 않아요.”“그건 그 사람들이 천박해서 당신을 못 알아보는 거죠.”양유진은 여름의 뺨에 있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여름은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던 것을 꾹 참았다.******3일째.위자영 모녀가 씩씩거리며 병원으로 찾아왔다.“당신 뭐 하자는 거예요? 왜 우리를 집에 못 들어가게 하냐고요?”위자영이 들어오자마자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친딸도 못 들어가게 막고, 이제 여름이밖에 없는 거예요, 당신한텐?”“아빠, 정말 이제 날 버리려고 그래요?”서유인도 속상해 울기 시작했다.서경주의 마음도 영 편하지가 않았다.“아니, 잠깐….”“아버지.”여름의 목소리가 그를 막았다.서경주는 바로 입을 닫았다.“네가 우리 아빠 시켜서 나 집에도 못 들어가게 했니?”불똥이 여름에게 튀었다.“거긴 내 집이야. 내가 20년을 산 집이라고.”“내가 잘못했다.”위자영이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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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화

여름은 아무 말이 없었다.이 정도로 쉽게 살해 사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부인의 실체를 이제야 깨달은 아버지는 한 번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의심해본 적 없겠지.’“여름아, 안심하렴. 이번에 이혼하기로 결심 굳혔다.”서경주는 이렇게 말하고 이혼합의서를 작성하러 갔다. 양유진이 말했다.“아버님은 이혼 못 하실 겁니다.”“맞아요.”여름도 동의했다. “두 집안이 오랫동안 협력 관계였던 데다 서유인이 FTT 장남이랑 사귀니까요. 그 집안에서 신지와 벨레스를 다 등에 업지도 않은 서유인을 며느리 삼을 리 없죠. FTT와 혼인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점만 들어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온 집안이 이혼에 동의할 리 없어요.”양유진이 안타까워했다.“그럼 이번에….”“적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아요.”여름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서유인이 최하준의 연인만 아니라면 아버지가 위자영과 이혼할 수 있어.’ ******깊은 밤. 외딴 산골 마을.강여경이 목숨 걸고 마을에서 도망 나오고 있었다. 매일 밤 그 역겨운늙은이에게 괴롭힘당하느라 미칠 지경이었다.“야! 거기 서!”등 뒤에서 우락부락한 노인이 작대기를 들고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다.거의 다 따라잡았을 때쯤 봉고차 한 대가 갑자기 눈앞에서 멈추더니 안에서 누군가 강여경을 끌어올렸다.따라오던 남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렸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드디어 해방이야! 이제는 추위과 굶주림에서도 빨래에 밥하는 일에서도 해방이야!이게 다 강여름과 최하준 때문이야!’“당신이 강여경인가?”차 안에 있던 한 남자가 역겨운 듯 쳐다보며 물었다. “누, 누구세요?”강여경은 깜짝 놀랐다.“널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셔.”5시간 후 강여경은 눈이 가려진 채 낯선 곳으로 끌려갔다.“여기가 어디예요? 당신들은 누구고요?”“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고, 강여름과 최하준에게 복수하는 걸 도와줄 거라는 것만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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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화

“이게 며칠만이냐, 얼굴 한 번 보기 참 어렵구나.”장춘자가 나무랐다.“서유인이 매일 와서 말벗해드리지 않았습니까?”하준이 응수하며 장춘자 옆에 앉았다. 네이비색 조끼에 와이셔츠를 입은 하준의 깊은 눈은 모든 걸 꿰뚫어 볼 듯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알긴 아는구나. 걔가 아무렴 나 같은 노인네 보자고 오겠니? 널 보러 오는 거겠지.”장춘자가 쏘아붙였다. “걔도 딱하다. 멀쩡하던 집안에 혼외자식이 들어오더니 서 회장이 허구헌날 이혼 운운하다니. 서 회장도 사람 참 어정쩡하지 뭐야. 어쩌자고 조강지처랑 이혼을 하겠다고 해?”하준이 턱을 문지르더니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서유인 수완이 보통 아니군요. 천하의 장춘자 여사를 완전히 자기편으로 구워 삶았으니.”“그게 뭐 구워 삶고 말고 할 일이니? 내가 어디 재벌가 지저분한 가정사 한두 번 본다고.”장춘자는 감정이 격해졌다.“에미 이혼만 해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했다.”하준은 담배 한 개비를 꺼냈지만 불은 붙이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눈빛이 싸늘해졌다.장춘자가 한숨을 내쉬었다.“아까 유인이가 그러는데 다음 주 그 댁 어르신 생신에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서 식사한다더라. 네가 꼭 왔으면 하는 것 같으니 이번에는 그 아이랑 관계를 확실하게 해주고 오렴. 안 그랬다간 걔 엄마 이혼당하게 생겼어.”하준은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처럼 그저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어떡할래? 가, 안 가?”장춘자의 언성이 높아졌다.“유인이가 마음에 안 드는 거면 맞선이라도 봐라. 어쨌든 올해는 꼭 결혼해야지.”“갑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꼭 가야죠.”하준은 담담히 웃으며 일어났다.“늦었네요. 걱정 말고 들어가 주무세요.”“아무렴, 그래야지.”장춘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으로 들어갔다.******곧, 서경주의 아버지 서신일의 생일이 다가왔다.68세 생일을 맞아 성대한 파티까지는 아니지만 해외에서 쉐프를 불러 호텔에서 생일 상을 차렸다.초대 받은 사람은 모두 사업 상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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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화

하준이 서신일의 생신잔치에 참석했다. 공개적으로 서유인과의 관계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머지않아 서유인과 하준이 결혼하게 되면 벨레스도 한층 레벨업 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아이고, 유인아, 최 회장이 올 거라고 할아버지에게는 귀띔했어야지?”입이 귀에 걸린 서신일이 서둘러 맞으러 나왔다.하객들도 모두 아첨하려고 우르르 몰려가 둘을 에워쌌다.“최 회장님, 우리 유인이랑 정말 환상의 커플이에요. 하늘이 맺은 인연인 것 같아요.”“아이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위 여사, 정말 복도 많으세요, 저런 귀한 딸을 두시다니.”“…….”반대로 여름 쪽은 썰렁하니 아무도 없었다. 양유진은 너무나 놀란 상태였다.“여름 씨, 저 사람은….”“네.”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심각한 얼굴이었다.하준이 서유인과 함께 할아버지 생신에 참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서경주와 위자영이 이혼을 한다고 떠들썩한 이 때에 서유인 모녀와 나타났다는 것은 최하준이 서유인 편이라는 뜻이었다.‘위지웅이란 자는 지난번 자신을 해치려 했던 인물이다.그런데도 저쪽 편에 서다니….’여름은 온몸을 휩쓰는 냉기에 심장까지 얼어붙을 듯한 기분이었지만 가까스로 분노를 참고 있었다.‘이제부터 최하준은 내 적이야.그렇지만 만인지상의 최하준하고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거지?’창백해지는 여름을 보고 양유진이 와락 손을 뻗어 여름의 허리를 꼭 붙들고는 말했다.“아무리 상대가 최 회장일지라도 난 당신을 놓지 않을 겁니다. 이제 후회하지 말아요, 여름 씨.”여름이 놀라서 ‘헙’하고 입을 오므렸다.“잘못 짚으셨어요. 최하준이 ‘신지’ 편에 섰으니 이제 위자영을 상대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어요.”양유진이 낮게 읊조렸다.“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이쪽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천천히 하자고요.”“네.”영혼 없는 대답이었다.하지만 하준이 서유인과 결혼하는 날엔 신지는 건드리기 힘들어질 터였다.******사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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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화

서경주가 설명했다.“여름이 약혼자일세, 진영 그룹 회장이야.”“모르겠군요.”하준이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앞에 놓인 찻잔을 흔들고 있었다.“이댁에서는 뭐 주빈석에 이렇게 아무나 다 앉히나 봅니다?”이 말에 양유진의 기품 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맑은 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함이 스쳤다.여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서유인이 참지 못하고 ‘푸흡’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요, 하준 씨가 어떤 사람인데 아무나 하고 같이 앉을 순 없죠.”양유진을 불렀던 박재연은 난처해졌다.“저는 다른 테이블에 앉겠습니다.”양유진이 여름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다른 테이블로 갔다.“잠깐만요, 같이 가요. 저도 뭐, 최 회장과 같이 앉을만한 사람은 못 되거든요.”여름도 양유진을 따라 가장 구석진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주빈석에 앉은 하준은 입술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엔 온통 싸늘한 기운으로 덮여 있었다.다들 하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서신일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속으로 여름을 욕하며 말했다.“아이고, 이거 정말 미안하구먼. 저 애가 철이 좀 없어서.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애가 좀 교양이 부족하지.”“아버지.”서경주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조용히 해라.”서신일이 그런 서경주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리고는 서유인에게 눈짓했다.서유인이 하준의 팔을 잡고 아양을 떨었다.“걱정 마세요. 다음부터 우리 집에서 저 두 사람은 다시 볼 일 없을 거예요.”“그럼, 다음부터 자네가 올 때는 저 둘은 무조건 없을 걸세.”하준이 입술을 살짝 비죽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OK’ 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 최하준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인이었다.이들의 대화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름에게도 들렸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의 불행을 그들은 즐기고 있었다.여름의 얼굴이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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