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이 서신일의 생신잔치에 참석했다. 공개적으로 서유인과의 관계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머지않아 서유인과 하준이 결혼하게 되면 벨레스도 한층 레벨업 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아이고, 유인아, 최 회장이 올 거라고 할아버지에게는 귀띔했어야지?”입이 귀에 걸린 서신일이 서둘러 맞으러 나왔다.하객들도 모두 아첨하려고 우르르 몰려가 둘을 에워쌌다.“최 회장님, 우리 유인이랑 정말 환상의 커플이에요. 하늘이 맺은 인연인 것 같아요.”“아이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위 여사, 정말 복도 많으세요, 저런 귀한 딸을 두시다니.”“…….”반대로 여름 쪽은 썰렁하니 아무도 없었다. 양유진은 너무나 놀란 상태였다.“여름 씨, 저 사람은….”“네.”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심각한 얼굴이었다.하준이 서유인과 함께 할아버지 생신에 참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서경주와 위자영이 이혼을 한다고 떠들썩한 이 때에 서유인 모녀와 나타났다는 것은 최하준이 서유인 편이라는 뜻이었다.‘위지웅이란 자는 지난번 자신을 해치려 했던 인물이다.그런데도 저쪽 편에 서다니….’여름은 온몸을 휩쓰는 냉기에 심장까지 얼어붙을 듯한 기분이었지만 가까스로 분노를 참고 있었다.‘이제부터 최하준은 내 적이야.그렇지만 만인지상의 최하준하고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거지?’창백해지는 여름을 보고 양유진이 와락 손을 뻗어 여름의 허리를 꼭 붙들고는 말했다.“아무리 상대가 최 회장일지라도 난 당신을 놓지 않을 겁니다. 이제 후회하지 말아요, 여름 씨.”여름이 놀라서 ‘헙’하고 입을 오므렸다.“잘못 짚으셨어요. 최하준이 ‘신지’ 편에 섰으니 이제 위자영을 상대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어요.”양유진이 낮게 읊조렸다.“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이쪽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천천히 하자고요.”“네.”영혼 없는 대답이었다.하지만 하준이 서유인과 결혼하는 날엔 신지는 건드리기 힘들어질 터였다.******사람에
서경주가 설명했다.“여름이 약혼자일세, 진영 그룹 회장이야.”“모르겠군요.”하준이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앞에 놓인 찻잔을 흔들고 있었다.“이댁에서는 뭐 주빈석에 이렇게 아무나 다 앉히나 봅니다?”이 말에 양유진의 기품 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맑은 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함이 스쳤다.여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서유인이 참지 못하고 ‘푸흡’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요, 하준 씨가 어떤 사람인데 아무나 하고 같이 앉을 순 없죠.”양유진을 불렀던 박재연은 난처해졌다.“저는 다른 테이블에 앉겠습니다.”양유진이 여름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다른 테이블로 갔다.“잠깐만요, 같이 가요. 저도 뭐, 최 회장과 같이 앉을만한 사람은 못 되거든요.”여름도 양유진을 따라 가장 구석진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주빈석에 앉은 하준은 입술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엔 온통 싸늘한 기운으로 덮여 있었다.다들 하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서신일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속으로 여름을 욕하며 말했다.“아이고, 이거 정말 미안하구먼. 저 애가 철이 좀 없어서.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애가 좀 교양이 부족하지.”“아버지.”서경주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조용히 해라.”서신일이 그런 서경주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리고는 서유인에게 눈짓했다.서유인이 하준의 팔을 잡고 아양을 떨었다.“걱정 마세요. 다음부터 우리 집에서 저 두 사람은 다시 볼 일 없을 거예요.”“그럼, 다음부터 자네가 올 때는 저 둘은 무조건 없을 걸세.”하준이 입술을 살짝 비죽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OK’ 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 최하준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인이었다.이들의 대화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름에게도 들렸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의 불행을 그들은 즐기고 있었다.여름의 얼굴이 점점
여름은 단단히 화가 났다.‘웃겨! 어떻게 날 불러낼 생각을 할 수가 있지?’곧바로 문자 메시지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잠시 후 바니 코스튬을 입고 춤추는 영상이 전송되어 왔다.여름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살며시 양유진에게 고개를 돌렸다.“할머니께 잠시 볼일이 있어요. 배웅 안 해주셔도 돼요.”“그렇군요. 집에 가서 전화해요.”양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당부의 말을 전하고 여름이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밝았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십여 분 후, 여름은 길 옆에 세워진 하준의 검정색 스포츠카를 발견하고 얼른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도둑질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누가 보진 않았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양유진에게 들킬까 봐 그럽니까?”핸들을 잡고 있는 하준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껏 비아냥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여름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이거 봐요, 최하준 회장님. 방금까지 여자 친구하고 장모님 되실 분하고 하하호호 하면서 서유인의 남친이라고 광고하셨잖아요? 이 상황에서 내가 당신 차에 타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당신을 유혹하는 줄 알 거 아녜요!”“질투합니까?”하준이 날카롭게 여름을 응시했다.여름이 보란 듯이 깔깔 웃더니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그쪽에 질투할 만큼 흥미 없어요. 용건 없으면 그만 가볼게요.”여름은 여길 왜 왔나 싶어 순간 짜증이 확 났다.하준은 요즘 계속 뭔지 모를 감정에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응어리 졌던 무엇인가가 폭발해버렸다. 여름을 코 앞까지 바짝 잡아 당겼다. “양유진이 왔으니 이제 나는 보고 싶지 않다 이겁니까? 계속 까칠하게 굴면 당신과 양유진 둘 다 이 바닥에서 발도 못 붙이게 해주겠습니다.”“그만 해요.”여름은 있는 힘껏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눈에서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모욕을 준 걸로 모자라요? 내가 죽어야 직성이 풀리겠어요?“하고 싶으면 그러시던지.”하준은 여름의 뺨을
하준이 휙 고개를 돌려 여름을 쳐다보았다. 다시 열이 뻗쳤다.“강여름 씨, 내 말 못 알아들었습니까?”“알아들었어요. 서유인하고는 못 헤어진다는 소리잖아요?” 여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더욱 하준과 엮여서는 안 된다.“……”‘이 인간이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한데, 왜 이럴 때만 바보야!’하준은 답답했다. 계속 여름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피곤하고 짜증났다. 엑셀러레이터를 꾹 밟고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았다.“뭐야! 내려줘요!”여름이 뭐라고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차는 어느덧 하준의 집에 도착했다. 하준은 여름을 위층으로 끌고 가 소파에 밀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다시 말해줄 테니 잘 들으십시오. 양유진과는 헤어져요. 당신이 내 아이를 가지면 난 서유인과 끝낼 겁니다.”여름은 번개라도 맞은 느낌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저 하준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준은 슈트를 벗어던지고 여름이 기대고 있는 소파 등받이에 양손을 짚었다. 여름의 가녀린 몸이 하준의 커다란 품에 폭 파묻혔다.“강여름, 당신은 정말 마약 같아.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날 잡아.”하준의 뜨거운 숨소리가 귀를 뜨겁게 달구었다.여름의 머리 속은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듯 윙윙거렸다.‘날 싫어하잖아? 더러워서 싫다며?내가 임신을 하면 서유인과는 헤어지겠다니?설마 아직 내게…?’여름의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자영 집안의 악랄한 수법을 봤을 때 엄마 강신희의 죽음은 그 집안과 관련 있을 거야.게다가 날 한 번 죽이려고 들었으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내 목숨을 노리고 덤비겠지?최하준은 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방법이야.’ 멍하니 생각에 잠긴 여름을 보더니 하준은 거침없이 여름을 안아 들고 2층 침실로 자리를 옮겼다. 침대에 여름을 눕히더니 거칠게 입술을 삼켰다.순간 여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하준을 힘껏 밀어냈다.“안 돼! 난 그렇게는 못 해요.”뜨겁게 달궈진 분위기가 한순간 싸늘해졌다.하준은 벌게진
위자영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그까짓 교통사고 때문에 우리가 이혼할 줄 알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여름은 핸드폰으로 서경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계속 울리고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전화해도 소용 없어. 지금 할아버지와 있을 테니.”위자영이 비웃었다.“아직도 분위기 파악 안 되니? 할아버지께서 묵인하신 거라 네 아버지도 어쩔 수 없어.”“알아들었으면, 어서 꺼져!”서유인이 바닥에 널부러진 여름의 옷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를 쳤다.여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옷을 하나씩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아무도 몰랐다. 강여름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여름만이 알고 있었다.‘오늘의 치욕은 하나 하나 갚아주지.’트렁크에 옷을 다 집어 넣기도 전에 서유인은 어디서 떠왔는지 더러운 물을 떠와 여름의 옷에 와락 부어버렸다.“어머, 미안해서 어쩌지? 더러운 걸 치운다는 게 이렇게 됐네?”서유인은 깔깔거리며 웃어 젖혔다. 여름은 얼음처럼 차갑게 쏘아붙였다.“너 최 회장 믿고 이렇게 날뛰나 본데 최 회장이 너랑 결혼 안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서유인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뭐래? 하준 씨는 곧 나와 결혼할 건데.”“희망사항이겠지.”여름은 조소를 띠었다. 아까 본 하준은 여름을 원하고 있었다. 서유인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어 보였다. 말을 마치고 위자영과 서유인 모녀에게 더 심한 조롱을 받기 전에 나와버렸다.달리 지낼만한 곳이 없었다. 회사 근처 오성급 호텔에 투숙할 수밖에 없었다.그날 밤, 서경주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여름아, 왜 짐을 다 뺐니?”“모르셨어요? 저 쫓겨났어요.”“뭐라고?”서경주는 불같이 화를 냈다.“아니, 이 몹쓸 인간이! 가만 두면 안 되겠군. 지금 어디냐? 데리러 가마.”“오지 마세요. 일단은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어요.”여름이 조용히 말했다.“두 사람은 지금 최하준을 뒷배로 두고 있으니 아버지 말도 무시할 거예요. 이젠 할아버지까지도 그쪽에 섰으니, 집으로
여름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제 헤어질 때 최하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하준 짓인가?’오 사장이 말했다.“이 부지를 매입하는데 들인 자본이 막대합니다. 당장 착공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금 회전에 문제가 생겨요. 최악의 경우 파산할 수도 있고 그 땐 대표님과 주주들 모두 감방행입니다.”“생각 좀 해 볼게요.”여름은 깊은 한숨과 함께 오봉규에게 짧게 대답했다.회의가 끝나자 여름은 하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차단된 상태였다.씁쓸히 웃었다. ‘하… 단단히 돌아섰나 보네.’이렇게 된 이상 서경주의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서경주도 전후 사정을 듣더니 같은 소리를 했다.“여름아, 누굴 건드린 거니? 이번에는 내가 나서도 체면이고 뭐고 없더구나. 신지 쪽에서 손을 쓴 건 아니더라만.”“저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 중이에요.”여름은 답을 찾지도 못하고 아버지와 통화를 끝냈다. 여름도 아버지 도움으로 자금을 조달할 생각은 없었다. 벨레스가 서경주 한 사람의 회사가 아니었다. 몇 천억 원이 움직이려면 할아버지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노인네가 동의할 리 없었다.오후에 정호중이 회사로 찾아왔다.“여름아, 내가 좀 융통해 왔으니 우선 급한 대로 써보도록 해.”“고맙습니다.” 여름은 감동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이사는 책임이나 묻고 제 한 몸 사리기 바쁘지 한 푼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호중은 달랐다.“이 회사는 네 엄마의 피땀으로 세워진 회사야. 이대로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다.”정호중이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아참, 엄마의 사인 조사는 어떻게 돼가고 있니?”여름이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아무래도 신지 쪽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아요. 위지웅을 만났을 때 떠 봤는데 전혀 켕기는 얼굴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의아해 하던데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그래? 마지막으로 나와 통화했을 때 발신 장소가 서울이었어.”정호중도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설마 배후에 또 다른 사람이 있
여름은 무척 놀랐다. 사실 지금까지 최양하라는 사람에게 그다지 호감이 없었다. 그러나 최양하와 자신은 어딘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나마 최양하 씨 형편은 저보다는 낫잖아요. 부모님들이 결혼도 하셨고.”“그렇네요. 하지만 늘 형님과 저를 비교하는 시선들이 쫓아오죠. 전 항상 형님 그늘 아래에 있어요.”최양하는 어깨를 으쓱했다.“가요. 같이 들어가 보시죠.”“…감사합니다.”여름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그를 쫓아 나섰다.여름에게는 직원 수만 명의 생계가 걸려있었다. 여름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처지였다.******사흘 후.최하준은 국제회의를 마치고 귀국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자 상혁이 곧바로 회사 상황을 브리핑했다.보고를 들으며 승용차로 이동했다. “화신이 개발하려는 부지와 관련된 서류 작성을 모두 끝냈습니다.”상혁이 말했다.하준이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한 손으로 훌훌 당겨서 느슨하게 풀었다. “우리 쪽에서 누가 화신을 도와준 거야?”“최양하 상무입니다.”“…….”순간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다.상혁은 하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이 자식이 또 무슨 수작이야?”“뭘 좀 알아낸 거 아닐까요?”상혁이 의심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어쩐지 요즘 그 녀석이 너무 한가해 보인다 했어. 푸르크쪽 프로젝트는 계속 진전이 없고 말이야. 이 자식을 그쪽으로 보내야겠어.”최하준이 어떤 주저함도 없이 담담하게 지시를 내렸다.상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푸르크 쪽에 상무님을 투입시키는 사안은 신중히 처리하셔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불안하고, 여사님이 언짢아 하시지 않겠습니까?”“그게 대수야?”하준이 대수롭지 않은 듯 가볍게 웃어넘겼다.“화신에 아무 일 없을 줄 알고 안심하고 있겠지? 강여름은 너무 물러.”상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폭풍전야의 기운을 느꼈다. 요즘 최하준이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나
“난…”이 때, 양유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양유진은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바로 가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나 봅니다. 오늘 밤엔 데려다 주지 못할 것 같네요."양유진은 서둘러 인사를 하고 회사로 갔다.여름은 그대로 서 있었다. 양유진이 이렇게 당황해서 서두르는 건 처음 보는 일이다.호텔로 돌아와 TV를 켜니 진영그룹에서 생산한 약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양유진이 구속 수감되었다는 보도도 잇따라 속보로 전해졌다.여름은 너무 놀라 곧장 변호사를 데리고 양유진이 구속 수감 중인 곳으로 달려갔지만 보석으로 풀려나긴 어려운 상태였다.동성에서 이렇게 갇혀 있었던 지난 기억이 문득 소환되었다. 불쌍하게도 이번엔 양유진이 예전 자신의 처지가 되어 있었다.변호사가 일러주었다.“양유진 대표가 누구에게 밉보인 게 있나 봅니다. 사실 이번 건은 보석으로 풀려날 만 한데, 경찰 측에서 놓아주질 않는군요. 이렇게 되면 방법이 없어요. 진영그룹을 지휘할 수장이 없으면 공장은 멈출 겁니다. 양 대표가 이대로 수감되면 일주일 안에 진영그룹은 도산합니다.”여름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최하준. 대체 언제쯤이나 되어야 그 인간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화신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 최양하에게, 이번엔 양유진에게 손을 뻗치고 있었다.누군가를 이렇게 증오해보긴 처음이었다.‘정말 끈질긴 악연이네.아무리 후회를 해도, 도망치려고 해도 최하준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마음만 먹으면 결코 모두 얻어 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양유진이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무슨 염치로 그 사람 얼굴을 봐...’그날 밤 여름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샐 수 밖에 없었다.양유진 집안에서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와 핸드폰이 폭발할 지경이었다.양유진의 어머니는 울면서 말했다.“우리 유진이 꼭 꺼내줘야 한다. 네 아버지가 힘 좀 써주실 수 있잖아? 이대로 갔다가 우리 집은 끝이야. 유진이는 신장도 하나 뿐인데 감옥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