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31 - 챕터 1040

1699 챕터

1032화

“무, 무슨 짓이야?”하석윤은 무서워서 다리를 떨었다.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제발 살려주세요. 눈이 삐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때 최하준이 제 다리를 부러뜨려서 몇 달을 못 걸었다니까요.”“아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여름은 파이프를 흔들어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내 몸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어떻게? 한 번 더 춰드릴까?”“아니요. 저는 그냥 다 잊어버렸습니다.”하석윤은 울먹였다.“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그건 안 되겠는데. 3년 전 일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쪼잔한 녀석인데 나중에 또 복수하러 오면 어째?”“맹세합니다. 절대로 복수 같은 건 꿈도 꾸지 않겠습니다.”하석윤은 숨조차도 크게 못 쉬었다. 자신이 괴롭히며 좋아하던 상대에게 이렇게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젠장,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건드려 가지고.아니, 인간도 아니지. 인간이 어떻게 사람한테 이래?’“그런데 나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단 말이야?”여름이 하석윤의 앞에 앉았다. “어쩌면 좋지?”“……”‘그걸 나한테 물으면 뭐 어쩌라고?’“이러면 어떨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장 다 벗는 거야. 어때?”여름이 ‘이 정도면 매우 자비롭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조, 좋습니다.”하석윤은 울고 싶었다. 그래도 맞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그러면 벗기세요.”“지금 나더러 길 한복판에서 네 옷을 벗기라고”여름이 눈알을 굴렸다.“이봐, 내가 무슨 건달도 아니고, 스스로 벗어!”“아, 알겠습니다. 미녀 앞에서 이런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석윤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했다.“미녀?”여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렇죠.”하석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저희끼리 모이면 강여름님이 최고 미인이라고 그런 얘기를 합니다.”“더러운 것들!”여름이 흘겨보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하준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저 인간은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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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화

“하지만… 이주혁이 절 찾아오면 어떡하죠?”하석윤은 심장이 두근거렸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최하준은 마구 두들겨 패면서 자기는 맞기 싫은가 봐? 그러니까 백윤택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확실히 얘기하라니까?”“아아, 정말 현명하십니다.”하석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그러면 가봐도 되겠습니까?”“가! 아, 내 얘기는 조금이라도 넣었다가는 바로 죽을 줄 알라고.”강여름이 쇠 파이프로 탕탕 바닥을 내리쳤다.“아유, 절대 안 합니다.”하석윤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부하들을 깨워서 후다닥 도망쳤다.여름은 그제서야 하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흙바닥에 쓰러져 흰 티는 온통 흙투성이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눈을 가만히 감고 있는 최하준은 절망적인 모습이었다.조각한 듯한 이목구비의 날렵한 선 덕분에 알아봤지, 사실 지금 이 순간의 하준은 영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여름이 아는 하준은 근육질 몸매에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준의 양복에는 늘 주름 하나 없었다.‘최하준이 왜 이렇게 되었지?FTT의 몰락 때문인가?최하준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타협하는 인간이 아닌데?’“일어나 봐.”여름이 고개를 숙이고 하준을 흔들어 보았다.하준이 아파서 감고 있던 눈을 떠 보니 눈앞에 흐릿하게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익숙했다. 목소리마저도 그녀와 비슷했다.“여름아, 여기는 어쩐 일이야?”하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이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꿈속에서나 여름이 곁에 올 테니까.여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기분이 묘했다.결국 허리를 숙여 하준을 일으켰다.하준은 비틀거리며 여름의 손을 잡아 떼며 트림을 했다.“마, 만지지 마. 나 더러워. 당신 옷이… 더러워지겠어.”“집에 데려다줄게.”여름은 할 수 없이 하준의 손을 잡았다.순간 하준이 손에도 상처가 있어서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마음이 복잡해졌다.“바, 바래다 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갈게.”하준은 여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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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화

그런데 바지를 갈아입히다가 여름은 그곳에 드레싱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기분이었다.‘저기 드레싱은 왜 하고 있지? 설마… 저길 다친 거야?’여름은 참지 못하고 한번 건드려 보았다. 정말 아무 반응이 없었다.‘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여름은 머릿속이 한동안 하얗게 되었다.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아니 멀쩡하던 데를 왜 이렇게 못 쓰게 되었지?이렇게 고주망태가 된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되네. 사람으로서 얼마나 큰일이야? 특히나 이렇게 욕구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말이지.어쩐지 그날 갑자기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가지겠다고 하더라니.이래가지고는 결혼도 임신도 안 되겠는걸.십중팔구… 외롭게 늙어 죽겠구나.’상처투성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떤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사실 이 정도면 은근히 고소한 기분에 춤을 춰도 모자랄 판이다. 그야말로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혀 온 데 대한 인과응보가 아닌가?하지만 갑자기 마음이 싸했다.‘어휴, 그러니까 사람은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안 된다니까. 다 업보지 뭐야.’여름은 한숨을 쉬고는 하준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상처를 소독약으로 소독한 다음 연고까지 정성스럽게 발라주었다. 그 뒤에 옷을 입히고 나오기 전에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고는 가만히 문을 닫고 나왔다.주차장에 도착한 여름은 한참을 차 안에서 가만히 있었다.이게 대체 무슨 기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던 하준은 벨 소리에 깼다.눈을 떠 테이블에 휴대 전화를 보고는 집어 들었다. 이주혁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야, 너 하석윤에게 맞았다며?”“……”하준은 멍하니 있다가 한참 만에야 여기저기가 쑤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머릿속 기억은 뚝뚝 끊겨 있었다. 머릿속 기억은 뚝뚝 끊겼다. 술집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그 뒤에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았다. 때린 녀석이 뭔가 잔뜩 떠든 것 같은데 누가 때렸는지는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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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화

“확실해?”하준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난 백윤택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원한이 없다고 확신하냐?”이주혁이 떠보았다.“지안이랑 헤어진 일을 말하는 거야?”하준은 경악했다. 곧 눈에 살기가 돌았다.하준은 백지안에게 섭섭하게 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이제 보니 하준과 여름이 재결합하고 나서 백지안 남매는 잔뜩 심술이 나있었던 것이다.이주혁이 한숨을 쉬었다.“모르겠다. 내 말은 백윤택이라는 인간은 애초에 멀쩡한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그런 인간은 도움을 받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원한을 품는다고.”“백윤택이 일부러 그런 거겠지?”하준은 곧 상황이 파악되었다.“직접 손댔다가 너희들이 알아채면 곤란하니까 하석윤의 손을 빌린 거군.”“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지난번에 임윤서에게 흥분제를 먹인 일로도 용식이가 벼르고 있었는데 그때 해외로 도망쳤었잖아. 이제 슬슬 용식이가 화가 풀렸다고 생각했나 본데 한 달도 안 돼서 또 기어들어 왔군.”이주혁이 말을 이었다.“이번 일은 내가 너 대신 알아서 처리할게.”“그래,”하준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아, 그런데 난 어떻게 돌아온 거야?”“내가 어찌 알겠냐? 어쨌든 나도 조금 아까 막 네가 맞았다는 얘기만 들었어.”하준은 고개를 숙이다가 자기 손등과 몸에 약이 발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옷도 완전히 다 갈아 입혀져 있었다.표정이 확 변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바지 안을 확인했다.‘젠장, 속옷까지 다 갈아 입혔잖아?그렇다면 누군가가 날 발견했다는 얘긴데?누구지?’어젯밤 꿈에서 여름을 만났던 것이 기억났다.‘말도 안 돼.’하준은 몸이 떨렸다. 벌떡 일어나서 관리사무소 보안실로 가 CCTV 영상을 요청했다. 어젯밤 영상을 보고 나서 하준은 다리가 풀렸다.정말 강여름이었다. 여름이 옷을 갈아 입혀주었으니 분명 그곳에 드레싱이 되어 있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남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들키는 것만큼이나 비참한 일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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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화

양유진은 와락 차를 출발시켰다. 가는 길에 전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무실에서 빌려둔 룸에서 기다려.”전수현과 한바탕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거의 회사에 도착했을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대표님, 육민관에게 미행당하고 계십니다.”‘육민관이라고?’양유진은 깜짝 놀랐다.“얼마나 따라왔어?”“화신에서 나오실 때부터입니다.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저희가 진작부터 육민관과 양우형을 따라다니지 않았으면 저도 몰랐을 겁니다.”“알겠어”양유진은 휴대 전화를 꽉 쥐었다. 얼굴에는 음험한 미소가 떠올랐다.육민관은 강여름의 명령만 듣는다. 그렇다면 강여름이 자신을 조사하러 붙였다는 말이 된다.‘날 뭘로 의심하는 거지?말도 안 돼.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데 대체 어디서 새 나간 거야?’지금 당장 급한 일은 의심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다시 전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거기서 기다릴 것 없어. 한동안은 못 만나. 강여름이 의심하고 있어.”전수현이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트렸다.“의심할 테면 하라고 해요. 어쨌든 대표님이 이혼할 것도 아니잖아요. 자기가 뭘 어쩌겠어요?”“네가 뭘 알아?”양유진이 냉정하게 받았다.전수현은 양유진의 반응에 울먹였다.“대표님이 너무 강여름에게 쩔쩔매는 게 마음 아파서 그러죠. 지금 대표님 위치라면 아무도 뭐라고 못할 텐데 그렇게까지 전전긍긍할 거 없잖아요?”“내 위치가 뭔데?”양유진이 싸늘하게 웃었다.“난 지금 그저 추동현의 개에 지나지 않는 처지라고.”그런 처지라는 것은 비서인 전수현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양유진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추동현은 지금 우리나라 최고의 거부이니 그자의 심복으로 곁에 있기만 해도 평생 이인자 자리는 차지할 수 있는 거잖아요.설마… 추동현의 발밑에 있지 않겠다는 뜻인가?’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네가 모르는 일도 있는 법이야. 강여름에게 우리 관계를 들키면 절대로 안 돼. 강여름은… 앞으로 써먹을 데가 따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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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화

“다른 얘기할 거 없으면 이만….”하준이 다시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여름이 다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여름아….”하준이 갑자기 여름을 불렀다. 너무나 무거운 호흡이 느껴졌다.“저기… 봤어?”“……”여름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안 봤다고 말 할 수 있겠냐?’“거기 얘기 하는 거야?”한참 만에야 여름은 헛기침을 하고는 목소리를 되찾아 되물었다.“그거야 뭐 내 알 바 아니지.”하준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내 알 바 아니다… 너무 매정하네.’“그건 그렇네.”하준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난 이제 당신의 세계에 끼어들 자격이 없으니까.”여름은 깜짝 놀랐다. 예전의 하준이라면 지금쯤 미친 듯이 화를 냈을 것이다.‘사고 후에 사람이 바뀌었나?’사실 여름은 왜 그렇게 됐는지 너무나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의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자기에게 관심 있다고 오해할까 봐 결국 물어보지는 못했다.하준이 말을 이었다.“다른 게 아니고 고맙다는 말 하려고 전화했어. 들어가. 바쁘지? 이만 끊을게.”통화가 끝나고 여름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조심스러운 하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마음이 영 불편했다.고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하준에 익숙해서 그런지 갑자기 이렇게 조심스럽고 온순한 하준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하준의 집. 하준은 노트북을 열어서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3년 전 배에서 난동을 부리는 영상이었다. 하준은 온몸에 힘을 준 채 여름을 꼭 안고 있었다. 사실은 방금 전 여름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3년 전 두 사람 사이는 대체 어땠는지, 왜 여름을 위해서 자신이 그 많은 재벌가 금수저를 두들겨 팼는지, 왜 그렇게 다른 놈들이 여름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지….자기 성격상 절대로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척을 질 일을 할 리 없었다.3년 전, 여름이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럴 리 없었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뒤에 자신이 다 잊은 것이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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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화

“지금 증상은 거의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발견한 건데요. 예전의 일을 다 잊은 게 아니라 저와 전처에 관련된 기억만 소실되었더라고요. 제가 전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처에 관한 나쁜 기억만 잔뜩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계속 나오는 증거들을 모아보니 제가 예전에 여름이를 엄청나게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머릿속에서 여름이와 관련된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하준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저는 원래 패스트푸드 같은 건 경멸하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친구 녀석에게 들으니 제가 전처와 패스트푸드점도 다니고 전처를 지키려고 여러 사람들에게 크게 일을 벌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가격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 선물했더라고요.”연 교수는 미간을 잔뜩 모으고 생각에 잠겼다.“지금 전처에 대한 것만 기억 못하나?”“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게, 다른 것도 기억이 좀 흐릿한 게 있어요.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제가 잊어버린 일들이 거의… 대부분 여름이와 관련된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이상한 게 제가 그렇게나 사랑했다면 왜 머릿속에 여름이에 대한 증오만 남아 있는 거죠? 제가 증오했던 기억만큼은 또 너무 뚜렷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들어서야 그것 말고도 전처와 있었던 많은 기억을 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도무지 알 수 없는 현상에 하준은 막연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마 잘 모르시겠죠. 사실 저도 이 느낌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연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와 연필을 꺼내더니 점선을 그렸다.“이게 지금 자네의 상태야.중간에 빈 부분이 자네가 잊어버린 기억이지.”“네.”하준이 고개를 숙였다.연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면 전에는 자네의 기억이 뭔가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나? 요즘에서야 알게 된 거야?”하준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전에는 의사가 제 증상이 원래 그런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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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화

하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새로 프로그래밍을 해서 짜 넣었다?’하준은 헛웃음이 나왔다.“그럴 리가 있나요? 제가 기계도 아니고….”연 교수가 정색했다.“아, 그건 말이야. 예전에 Y국에는 오래된 최면술이 있는데 딱 그런 식이거든. 편집하는 사람이 감정과 기억을 편집하는데 당사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네.”하준의 머리에서 콰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최면술!최면술로 나의 감정과 기억이 편집되었다고?!’“그러니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원래 전처였는데 누군가가 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라고요?”“뭐, 내 추측일 뿐이지만 말이야. 100% 확신할 수는 없어.”연 교수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자네가 말한 증상은 Y국의 오래된 최면술과 매우 유사하단 말이야. 시술자는 자네가 매우 신임하는 사람이었을 걸세.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거든. 그리고 정신학 방면에도 매우 조예가 깊은 사람일 거야.”‘신임하는 사람….’하준은 바로 백지안을 떠올렸다. 한때 백지안은 하준이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백지안이 하는 말은 무조건 다 믿었었다.게다가 세계 최고의 정신과 의사가 아닌가!그런 백지안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편집했다는 생각을 하니 하준은 소름이 돋았다.믿을 수가 없었다.어려서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 그렇게 자신을 응원해주던 순수한 여자애가 어떻게 그런 악랄한 수를 쓰는 인간인 된단 말인가?“선생님도 그 최면술을 하실 수 있습니까?”하준이 멍하니 물었다.“나는 못 하지.”연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그 최면술은 너무 해악이 커서 국제 사회에서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생각해보게. 사람들이 다들 그런 최면술을 쓴다면 세상이 어떤 꼴이 되겠는가? 게다가 그 최면술은 성공 확률이 매우 희박해. 열에 하나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지. 실패할 경우 뇌손상이 온다고.”“뇌 손상이 온다고요?”하준은 다시 깜짝 놀랐다.“그렇다면 저에게 건 최면이 실패했다면 저도 뇌손상으로 백치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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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화

“정말 최악의 최면이군요.”무릎에 놓인 하준의 손이 떨렸다.“그렇지.”연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복잡한 눈으로 하준을 쳐다보았다.“의심 가는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게. 물론 자네가 최면에 안 걸렸으면 하네. 그냥 자네의 착각이었으면 좋겠구먼”“고맙습니다.”하준은 일어서서 연 교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연구실에서 나온 하준은 바로 운전하지 않고 교정을 거닐었다. 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머릿속은 온통 새하얬다.모든 것이 자신의 억측이길 바랐다.‘지안이가 내 뇌를 다 망가트릴 가능성을 알고도 그런 최면을 걸다니….아닐 거야. 지안이가 그렇게까지 못된 인간은 아닐 거야.’하지만 모든 게 사실이라면 3년간 보여주었던 그 온화하고 선한 모습을 떠올리니 하준은 목덜미의 솜털이 쭈뼛했다.‘안 되겠어. 진상을 파야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내 기억의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아야겠어.’하준은 바로 비행기 표를 사서 동성으로 향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굳게 믿었던 지안이에게도 당했는데 이제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비행기가 동성에 착륙하자 최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언제 출근할래?”“저 지금 동성입니다.”“뭐라고?”최란이 불같이 화를 냈다.“오늘 가디언그룹 이사장 만난다고 어제 얘기 다 했잖니? 지금 온 나라의 재벌들이 가디언이랑 협력을 못 해서 난리인데 넌 말도 없이 동성은 왜 갔어? 대체 뭐 하는 짓이니?”“중요한 볼일이 있어서요.”하준이 낮은 소리로 답했다.“대체 이거 보다 중한 일이 뭐가 있어? FTT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말이니?”최란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하준은 다시 강조했다.최란은 대체 하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난 몰겠다. 일 마치면 최대한 빨리 돌아와라. 네가 나한테 회사를 맡겨 놔서 지금 매일 미친 듯이 일하고 있다고. 이러다 내가 과로사하길 바라는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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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화

“아, 이모님? 너무 오래돼서 어떨지 모르겠다. 기다려 봐.”지훈이 가사도우미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찾은 후에야 임옥희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이모님이 지금은 다른 집에서 근무하신다네.”지훈이 하준에게 주소를 하나 주었다.“내가 데려다줄게.”“됐어.”하준이 주소를 받아들었다.“고맙다.”“별소릴. 야, 근데 네가 이러니까 적응 안 된다.”지훈이 차 키를 하준에게 던져주었다.“이거 끌고 가라. 이따 저녁이나 같이 먹자.”“웬일이냐?”하준이 지훈을 흘끗 쳐다보았다.“요즘 우리랑 연락도 뜸했잖아? 서울 와도 우리랑 같이 밥도 안 먹고 동성에 처박혀서 우린 쳐다도 안 보더니?”어쩐 일인지 갑자기 지훈이 부러웠다.동성이 비록 조그마한 도시이긴 해도 지훈은 여기서 서울처럼 온갖 풍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거의 동성의 패주나 다름이 없이 살고 있었다.지훈이 싱글싱글 웃었다.“너희가 항상 시아랑 백지안을 데리고 나오니까 그랬지. 난 걔들 별로 안 좋아하거든. 난….”그러더니 지훈은 입을 다물었다.“아니다. 그냥 그렇다고.”“말해 봐.”하준이 세게 말했다. 옷은 예전보다 힘이 많이 빠진 패션이라 해도 미간에 올라오는 카리스마는 여전했다.“우리도 오랜 세월 친구였는데 말 돌릴 거 뭐 있어? 까놓고 말해 봐.”“뭐. 그래. 난… 네가 써머한테 좀 너무했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백지안은 내가 뭐 원래 친하지도 않았거니와 아마도 난 네가 써머랑 다니던 모습이 익숙해서 그런지 네 옆자리가 백지안으로 바뀌어 있는 게 영 이상하더라. 그리고 주혁이는 어쩌자고 시아 같은 애랑 다니냐? 걔는 진짜 괜찮은 애가 아니야. 그리고 영식이는 또 어떻고? 허구한 날 지안이 바라기에 그저 백지안이 무슨 말만 하면 교주처럼 따르고. 눈에 콩깍지도 뭐 그런 콩깍지가 끼어서는…. 그것도 다 그렇다고 쳐. 그런데 너희가 계속 걔들 둘을 데리고 나오는데 난 영 불편해서 같이 밥 먹자고 부르기도 뭣하더라고.”지훈은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특히 요즘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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