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사위면 될까?의 모든 챕터: 챕터 2881 - 챕터 2890

3665 챕터

2881장

삼십 분 후 삼계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하현은 지금 이곳에 살지 않지만 보안은 여전히 매우 좋았다.진소흔과 방금 이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에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의 호위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꼭대기 층에 있는 공중 정원에서 하현은 보이차를 우려내었다.따뜻하고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었다.그는 진소흔이 온몸을 벌벌 떨며 맞은편에 앉자 직접 차를 따라 그녀에게 주었다.“자, 대스타님, 보이차 한 잔 하시고 진정하시죠.”“올해 막 올라온 거야. 한 근에 몇 천만에 육박하는 귀한 차야.”진소흔은 차를 마실 기분이 영 아니었지만 하현이 건네주자 마지못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이 모습을 본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눈앞에 있는 좋은 차를 음미하지 못하는 진소흔이 안타까웠던 것이다.진소흔은 정상급 인플루언서인 만큼 매너를 아주 중시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슴처럼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하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천천히 차를 마시며 정원에 핀 꽃들을 바라보았다.십여 분 동안 벌벌 떨던 진소흔은 마침내 좀 진정이 되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하현, 난 죽고 싶지 않아.”“날 구해줄 수 있어?”“당신 정말 날 구해줄 수 있긴 한 거야?”“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노국의 남작이자 성전 기사단 부단장인 이걸윤 휘하에 있는 맹장이야, 맹장!”“아무렇게나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구!”“당신을 믿게 하려면 나한테 당신 능력을 보여줘야 해!”하현이 그녀를 보호할 하등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녀는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을 태세였다.“나 하현이야. 내 앞에서 그런 신분 따위 아무 의미 없어. 난 용문 집법당 당주야. 이거면 충분하겠지.”“항성과 도성에서 용전 항도 지부와 용문 항도 지회 모두 내가 통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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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2장

진소흔은 별로 믿고 싶지 않았지만 하현이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낸 뒤 자신이 해피톡 플랫폼에서 차단된 일을 떠올렸다.지금 그들은 삼계호텔 가장 꼭대기 층에 있었고 이곳은 왕족이나 귀족들이나 묵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이 사실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하현이 보여준 능력은 진소흔을 보호하기에 충분하다는 걸 이미 보여준 것이었다.어찌 되었건 용전 항도 지부와 용문 항도 지회를 모두 아우르는 인물이라면 항성과 도성에선 거의 따를 자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항성의 최고지도자와 도성의 최고지도자가 모두 하현과 막역한 사이라니!생각에 이에 이르자 진소흔의 가슴이 뛰었다.하현의 품에 안겨 그의 신임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의 말 한마디로 다시 대하 연예계 정상을 탈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진소흔은 얼굴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하현, 내 성의를 보여주려면 뭘 해야 해?”“그건 당신한테 달렸지.”하현은 웃으며 찻잔을 쥐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잖아.”“내 몸?”진소흔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나같이 속물적이고 닳고 닳은 여자는 하현 당신 눈에 안 찰 텐데, 안 그래?”“아, 물론 당신이 관심이 있다면 나야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지.”하현은 쓰잘데기 없는 말에 대답하기도 귀찮은 듯 심드렁한 기색을 보였다.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진소흔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필살기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조금은 불쾌한 듯 긴 다리를 움츠린 진소흔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이걸윤에 대해 알고 싶은 거야?”“미안하지만 내가 그의 덕을 보자고 밑에 있었던 건 맞지만 핵심 측근이 아니어서 이 소주에 대해 아는 게 없어.”“그것도 아니면 SNS에 하수진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거라도 올리란 말이야?”“그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 가지고 몸을 던진다고 할 수 있겠어?”“어쨌거나 내가 당신한테 빚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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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3장

하현은 싱긋 웃으며 손에 든 보이차를 한 모금 마셨다.자신의 설득이 별 효과가 없자 진소흔은 손을 벌벌 떨며 말했다.“하현, 당신들은 아랫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독을 쓴다는 걸 알고 있어.”“내가 별 가치가 없다 생각되면 날 독살해. 그러면 내가 배신할까 봐 두려운 일은 없을 거 아니야.”“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난 이제 어딜 갈 수도 없어. 당신 보호 없이 밖에 나갔다가는 당장 차에 치여 죽을 거야!”“하현, 내가 몸을 던지고 진심을 보여주기 싫다는 게 아니라 뭘 대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우선 독약 같은 거, 나한테 없어. 설령 내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게 당신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는데 내가 왜 독약을 낭비하겠어?”“그리고 사람은 변하기 쉬워. 나라를 배신하고 부귀영화를 좇는 당신 같은 사람은 더욱 변덕스럽지.”“난 당신한테 약점 잡힌 것도 없고 진심이 담긴 성의도 보이지 않는데 내가 왜 당신을 보호해야 해?”“단순히 이영돈을 미워해서?”“그럴 필요가 있을까?”“그러니까 당신이 내놓을 것도 없고 성의도 보이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가도 된다는 말이야.”“잘 가. 배웅은 생략할게.”하현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마쳤다.이걸윤 밑에 있었던 여자를 어떻게 유용하게 써먹을지 아무 생각도 없이 상대했겠는가?하현이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여자는 그동안 적어도 세 자릿수에 달하는 노국의 귀족과 재벌들을 상대했다고 했다.그녀의 체력에 탄복해 마지않으며 하현은 다른 사람에게 모질고 자신에겐 더 모진 진소흔에게 분명 특별한 한 수가 있다고 믿었다.지금까지 미친 척 바보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는 가진 패를 다 까놓고 말하면 상대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결국 그녀가 정말로 이걸윤 일행을 하현에게 판다면 그와 함께 끝까지 싸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은 가련한 척하는 이 여자의 표정에 속지 않았다.어찌 되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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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4장

”그동안 내가 숏폼 동영상 올린 것도 그렇고.”“하수진의 식당에 가서 난리를 피운 거.”“빅토리아 항 광장에서 있었던 해프닝, 인터넷에서의 댓글 부대...”“전부 다 이영돈 지시로 이뤄진 거야.”“물론 이영돈이 분명하게 말로 지시를 내린 건 아니야. 단지 몇 마디 말로 심리적 암시를 줬을 뿐이기 때문에 아무런 증거가 없어.”“그의 주선 아래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가 누군지도 모를 때도 있었어...”“그래서 나는 아는 게 많지가 않다고 말했던 거야.”“내가 알고 있는 건 정말 이 세 가지뿐이야. 당신한테 이게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있잖아, 그게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말할 필요가 없어 최종 결정권은 나한테 있으니까.”진소흔은 하현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첫째 이걸윤은 비록 성전 기사단 부단장이지만 대하인이었기 때문에 노국 황실 안에서의 인맥에 기댔어야 했어. 그리고 그는 성전 기사단에서 자신을 따르는 패를 만들었지.”“그의 휘하에는 기본적으로 노국을 유랑하던 대하계 후손들이 많았어.”“이 사람들은 피부색과 인종이 노국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에 항상 따돌림을 당해서 무리 지어 일했지.”“성전 기사단 안에서 이걸윤의 패거리들은 그의 말만 듣고 성전 기사단장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고 들었어.”“노국 황실의 장공주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고 했어.”하현은 약간 의아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대하계로서 성전 기사단 같은 곳에서 똘똘 뭉치지 않으면 그들은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다.“둘째 이걸윤 본인에 관한 것인데, 그가 도대체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은 성전 기사단의 단장과 맞붙어 승부가 나지 않았던 적도 있었대.”“하지만 그 이후로 성전 기사단장은 그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고 해.”하현은 유라시아에서의 전장을 떠올렸다.성전 기사단장이 비록 하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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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5장

”어때? 이 정도 성의면 관문을 통과한 거야?”“만약 통과했다면 이젠 당신이 날 어떻게 보호해 줄지 말할 차례야, 안 그래?”진소흔은 하현은 지그시 바라보았다.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녀는 쉽게 이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얘기를 해서 이걸윤과 이영돈을 팔아버린 것은 그녀가 앞으로 갈 길은 한곳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을 보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아까 승합차를 운전하던 기사는 남양 쪽 사람이야.”“때마침 지나가던 형사님은 동 씨 집안사람이고...”“그들은 모두 내 사람들이야.”“개자식!”진소흔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벌떡 일어나 하현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욕설을 퍼붓고 난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이미 그녀가 아는 정보를 다 말해 버렸다.그것은 이미 그녀에겐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진소흔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하현은 알약을 꺼내 진소흔 앞에 놓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이건 천축국에서 비싸게 사 온 구식단이야. 먹으면 정말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약이지.”“하지만 의사가 조금만 손쓰면 금방 산소를 공급해 당신을 구할 수 있어.”말을 마친 후 하현은 손가락을 튕겼다.어수룩하지만 성실해 보이는 어부 한 명이 구석에서 나왔다.그의 몸은 축축하게 젖은 채 강한 생선 비린내를 풍겼다.“이 형님이 당신을 바다에서 건진 거야.”“큰 재난에도 죽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 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잖아. 당신은 바다에 뛰어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잊었을 뿐이고.”“핸드폰도 물에 잠겨서 SNS에 올리려던 영상도 올리지 못했어.”“알아들었어?”진소흔은 눈썹을 찡그렸다.“하현, 도대체 무슨 뜻이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큰 재난에도 죽지 않았고 많은 것을 잊었어. 그러니 당신의 이 선생님은 이대로 당신을 죽이기는 아까울 거야.”“당신이 죽지 않은 이상 하수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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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6장

VIP병동 곳곳에는 진소흔의 팬이 선물한 축하 문구와 함께 꽃들이 가득했지만 실제로는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모른다.이영돈은 백합꽃 꽃다발을 손에 들고 문을 밀며 들어섰고 핏기를 잃고 병상에 누워 있는 진소흔을 흐릿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진소흔, 좀 어때?”말을 건네는 그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진소흔은 왜 이렇게 운이 좋단 말인가?진소흔을 구했다는 어부를 조사해 보니 조상 때부터 대대로 어업 일을 해 오던 진짜 어부였고 그 시간에 우연히 빅토리아 항을 지난 것이었다.이영돈의 마음속에는 이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적잖은 후회가 밀려왔다.어찌 되었건 모든 일에는 변수를 동반하기 마련이다.어젯밤 진소흔이 정말로 죽었다면 그는 하수진을 향해 더욱 비난의 강도를 더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한 번에 끌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일은 이미 이렇게 흘러가 버렸으니 바다에서 죽지 않은 진소흔을 또다시 죽이려는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이영돈과 진소흔이 일부러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하수진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재주 피우려다 일을 망치는 꼴이 되고 만다.그래서 이영돈은 어쩔 수 없이 진소흔을 계속 살려 두기로 결정했다.다음에 그녀의 목숨을 이용할 기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진소흔은 비록 이영돈이 가진 바둑돌에 불과하지만 꽤 가치가 있는 바둑돌이기도 했다.“이 선생님, 이렇게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이제 괜찮아요.”진소흔은 창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이영돈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렇지만 바다에 뛰어들었던 탓인지 아직 머리가 많이 어지럽고 기억이 잘 안 나요.”“하수진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제가 바다에 뛰어들기로 제안했다는 것만 기억나요.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참, 제 핸드폰도 물에 잠겨 고장이 났어요. 새 핸드폰 좀 마련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핸드폰이 없으니 불편하네요.”보아하니 진소흔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제안한 것만 기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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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7장

이영돈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얀 마스크를 쓴 하현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진소흔은 비스듬히 누워 반쯤 죽은 사람처럼 하고 있다가 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당신이 시킨 일은 이미 다 했어.”“이제 당신이 날 지켜주겠다는 말 꼭 지켜야 돼.”“신분을 바꿔서 안전한 곳으로 숨는 게 좋을 것 같아.”“안 그러면 조만간 이영돈이 날 죽이러 올지도 몰라.”진소흔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빛이 가득했다.분명 방금 이영돈에게서 살의를 느꼈을 것이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요즘은 좋은 사람 되기 참 힘든 것 같아!”“당신은 대하를 배신하고 숏폼에 조국을 비난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우리 대하 사람들은 항상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기 때문이지.”“하지만 당신은 노국의 작은 비밀 하나 팔아넘겼을 뿐인데 그냥 도망치고 싶어 하잖아.”“그 차이는 정말 큰 거야.”진소흔은 자신의 태도가 하현을 거슬리게 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하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이를 깨물며 말했다.“하 씨. 당신 약속 안 지키면 절대 안 돼!”“내가 언제 당신한테 약속했어?”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나서 손을 뻗어 진소흔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당신이 날 도와줬으니 적어도 당신 목숨을 지켜줄 거야.”“앞으로 며칠 동안은 계속 여기 누워 환자 연기나 잘 해.”“할 수 있으면 혼수상태인 척하는 것도 좋아. 당신이 죽을 것 같다고 상대가 느끼게 하는 게 가장 좋거든.”“내가 사람을 보내 당신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퍼뜨릴게.”“이틀 후에 그가 도성에 가서 화 씨 가문과 도박을 할 때 기회를 봐서 구룡성에 있는 남양회관에 가. 내가 이미 당신을 위해 준비해 놓았어.”“그곳에서 당신은 신분을 바꿔 양 방주 밑에 있는 시녀가 될 거야. 열몇 평 되는 기숙사에서 살게 될 거야. 남양말을 하는 동료들이 있을 거고.”“잘 살 거라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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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8장

”남양쪽에 가서는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할 거야. 양 방주가 비록 내 친구이긴 하지만 당신이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그녀도 당신을 뻥 차버릴 수 있으니까.”하현이 한마디 귀띔했다.“걱정하지 마. 난 딴따라지 바보가 아니야.”“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도망치는 거야. 지금 세상을 떠돌며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남은 내 체면을 세우는 일이야. 난 내 목숨을 걸 정도로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진소흔은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맞다,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당신은 날 전면에 내세워서 하수진이 직면한 여론의 압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어.”“그런데 왜 날 전면에 내세워 해명하게 하지 않았어?”하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의 해명이 여론을 압박하지 못한다면 이영돈 쪽에서는 또 다른 수법을 쓸 궁리를 할 거야.”“속내를 쉽게 내보이는 것보다 여론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게 더 나아.”“필요할 때 나서면 되니까.”“그러니까 잘 살아 있어. 당신이 언젠가 나서야 할지도 모르니까.”“다음에도 연기를 잘 해준다면 누가 알아?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해 당신한테 멋진 집 하나 마련해 주고 당신은 그 안에서 편하게 살 수 있게 될지.”진소흔에게 마지막 당근을 확실히 주고서야 하현은 돌아섰다.그에게 있어 이 여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어쩌면 요긴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하지만 남겨두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을 수 있다.하현의 말에 진소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하현에게 이용할 가치가 있는 한 그녀는 계속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그러자 그녀는 돌아서는 하현을 막아서고 나지막이 말했다.“참, 이걸윤에 관한 사실 중 당신한테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어.”하현은 진소흔이 자신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진소흔이 하현을 가로막자 그는 발걸음을 멈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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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9장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지막이 말했다.“그럼 어느 가문이 대하 쪽이고 어느 가문이 노국 쪽인지 당신 알아?”진소흔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항성 이 씨 가문이 틀림없는 노국 쪽인 건 알아. 다른 가문은 아는 게 없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혹시 빠진 건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다음에 당신과 내가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당신이 뭔가를 숨기고 있어도 나중에 그때 가선 아무 가치도 없을지도 몰라.”하현의 말에도 진소흔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그녀는 하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지금으로서는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아. 아무 조건도 없이 당신한테 이걸 말한 건 내가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야.”“당신이 날 잘 대우해 준다면 혹시 또 모르지. 다른 생각이 떠오를지...”“참, 내가 듣기론 이걸윤과 하구천이 의형제라고 했어...”“둘 다 전신이라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라고 들었어!”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엷은 미소를 보였다.“의형제에 둘 다 전신이라, 그것참 재미있는데.”...하현이 이걸윤과 하구천이 의형제라는 사실을 듣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이영돈은 이미 업무용 도요타 차 안에 있었다.볼륨감이 남다른 여비서는 공손한 태도로 이영돈에게 태블릿PC를 건네주며 말했다.“이 선생님, 지금도 인터넷상의 여론은 여전히 하수진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죽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몇 마디 말이 오고 갈 뿐 뜨겁지는 않습니다.”“항도 하 씨 가문 아가씨가 손님을 괴롭혔다는 정도의 글입니다.”“그런데...”여비서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그런데 뭐?”이영돈의 미간에 언짢은 빛이 잔뜩 들어앉았다.“그런데 하수진 쪽에서는 진소흔이 조상의 은공을 잊고 조국을 배반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가볍게 올렸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람의 말을 믿으세요?”“이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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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0장

어둠이 짙게 깔린 항성 국제공항 상공.노국에서 도착한 비행기 한 대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사방에는 노국에서 날아온 수십 대의 전투기가 상공을 선회하며 호위하고 있었다.항성 공항은 안팎으로 봉쇄되었다.공항을 봉쇄하고 보안을 책임지기 위해 항성 최고 4대 가문 모두 역량을 총동원하여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안에 투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항성 최고 4대 가문이 이렇게 힘을 합친 것은 수년 만에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이 모든 것은 단지 슈퍼스타의 왕림 때문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의 핵심 인물들을 제외하고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은 단지 노국의 남작이자 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이 곧 올 거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은 이 전설 속의 슈퍼스타가 바로 이걸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지금 공항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다.많은 사람들이 와서 사정을 해 보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통로 입구에서 이영돈은 두 손을 뒷짐진 채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서성거렸다.그의 뒤에는 수십 명의 대하계 남성들이 기사복을 입고 있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이영돈이 항성에 왔을 때 데리고 온 성전 기사들이었다.입이 바짝 마르는 초조한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출국장이 떠들썩해졌다.“부단장님!”입국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고 성전 기사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성전 기사들의 눈에는 경외스러움과 열렬한 환영의 눈빛이 뒤섞여 있었다.성전 기사단이 설립된 지 수백 년 만에 대하계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었다.성전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한 세대를 책임질 전신!그는 한때 기사장총을 들고 적군을 휩쓸었다고 전해졌다.흑주에서 침략전쟁을 치르고 전신에 봉인되었다.게다가 그는 악랄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했다.배를 갈라 처참하게 죽이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특히 묘령의 소녀의 배를 가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갖가지 전설이 이걸윤의 악명을 만들었고 그의 위상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대하계 전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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