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진행되었어?”강이한이 말한 것은 이소월에게 주사를 놓는 일이었다.“...”바로 이때 이온유를 담당하고 있던 간호사가 부랴부랴 달아오면서 말했다.“강이한 씨, 큰일 났습니다. 이온유 아가씨 쪽으로 갑자기 많은 사람이 나타나서 억지로 아가씨의 병실로 쳐들어갔습니다.”“...”“...”강이한과 이정 두 사람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강이한은 온몸을 파르르 떨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이온유의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 코너를 돌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박연준이 경호원 2명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모습이었다.그리고 이유영은 위험한 기운이 가득한 채 병실 문을 열었다.그녀의 뒤에는 여진우와 정씨 가문의 최익준 등 사람들도 와 있었다.‘유영이 손에 든 반짝이는 것이 무엇이지?’불빛에 반사되면서 차가운 빛을 보였다.“이유영!”강이한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모든 분노에 찬 눈빛은 다 강이한 쪽으로 몰렸다. 강이한은 미친 듯이 병실 앞으로 걸어갔다.병실 앞에 도착하기 일보 직전, 여진우가 소리 없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진우의 몸뚱이를 넘어서 병실 안이 보였다. 그러자 이유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온유의 수액을 단번에 확 잡아당겨 버린 것을 볼 수 있었다.“이유영!”강이한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며 이유영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하지만 이유영은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다음 순간 그녀의 손은... 산소 호흡기를 향해 내밀어졌다.“멈춰. 당신 그 손 멈추라고!”강이한은 미친 것처럼 여진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여진우는 번개처럼 상대방의 공격을 휙 피했다.빈틈을 타서 강이한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또다시 여진우에게 가로막혔다.“너도 아픈 것을 알아?”“이유영, 당장 멈추지 못해? 평생 당신 아이를 못 보게 될 줄 알아!”말이 끝나자 이유영의 손동작은 더욱 거침이 없었다.강이한은 숨이 턱턱 막혔다.“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화풀어. 나한테!”그랬다. 강이한
임소미와 정국진은 이미 월이를 성공적으로 구해냈다. 그러니... 조금 전 이유영, 박연준과 여진우 등 사람들이 이온유 쪽으로 온 것은 강이한을 다른 쪽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략이었다.정국진은 실망으로 가득 찬 싸늘하고 심오한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냉철하게 강이한을 휙 밀쳐냈다. 그 순간... 강이한 힘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이유영이 발걸음을 뗀 순간 강이한이 입을 열며 말했다.“당신이 미워할 거면 나만 미워해. 그들과는 상관이 없어...”여기서 말한 그들은 한지음과 이온유를 말한 것이었다.이유영은 강이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바로 임소미를 향해 걸어갔다. 몸부림친 것 때문에 얼굴이 시뻘게진 월이는 지금 부들부들 떨면서 임소미의 품에 안겨있었다.이유영을 본 순간 월이의 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월이는 두 팔을 벌리면서 이유영에게 안기려고 들었다.이유영은 월이를 넘겨받았다. 꼬맹이는 훌쩍훌쩍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딱 봐도 적지 않게 놀란 것이 분명했다.이유영은 조심스럽게 월이를 품속으로 끌어안았으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일단 나가자.”임소미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나머지 일들은 정국진과 여진우에게 다 맡기면 되었다. 그들이 강이한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다 이유영이 마주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이유영은 임소미의 발걸음을 따라 복도의 끝머리로 걸어갔다.강이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한테 눈길조차 한 번 주지 않은 이유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뒷모습은 살짝 떨려있었으며 동시에 무궁무진한 굳건함도 깃들어있었다.한순간 강이한은 마치 심장이 세게 베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그에게 아프냐고 물으면 대답은 당연했다.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가슴속에서... 한 가지 목소리가 끊임없이 그에게... ‘이유영을 잃었어, 영원히 잃었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박연준은 임소미와 이유영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떴다.현장에는 강이한, 정국진, 여진우만 남았다. 복도의 분위기는 극도로 얼
이정과 강이한 신변의 사람 몇 명이 앞으로 나섰다.“도련님.”“...”일어선 순간 강이한은 싸늘하게 이정을 한 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정말 깊은 못처럼 깊숙했다.이정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강이한의 몸에 있는 상처를 보자 가슴이 섬뜩하면서 긴장되었다.“바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겠습니다.”이정은 강이한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러나 이 세상에 지금 이유영 말고 감히 그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오로지 이유영에게만 반격하지 않을 뿐이었다....백산 별장의 주방에서, 이유영은 조심스럽게 월이에게 죽을 먹이고 있었다. 꼬맹이는 그녀의 품에 안겨있었으며 이번 일 때문에 매우 놀란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이유영의 품에 안긴 후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월아, 외할머니한테 올까?”월이가 백산 별장에서 사라진 거라서 요 며칠 임소미도 덩달아 속이 말이 아니었다.당연히 이것들은 모두 강이한이 은밀히 꾸민 계략들 때문이었다.그게 아니면 이곳에서 감히 월이를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임소미도 마음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토록 낭패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도 마음이 아팠다.“제가 할게요.”이유영의 말투는 아주 밋밋했다.그리고 배가 많이 고팠는지 월이는 이렇게 이유영의 품에서 죽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하지만 월이에게 너무 많이 먹이면 또 안 되었다.천천히 조금씩 나아가야 했다.“엄마.”“엄마 어디 안 가.”이유영이 일어선 순간, 월이의 작은 팔은 바로 이유영의 목을 둘렀다.적잖게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이유영은 월이를 안고 살살 달래주었다.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현재... 그녀는 아이를 안아서 잘 위로해 주고 달래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그녀가 강이한을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병원에서 찌른 그 한 칼은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준 상처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전에 3일 동안, 아이를 못 찾았기에 이유영은 한시도 쉬지 않고 온밤 밖에서 돌아다녔다.하지만 아이가 돌아온 지금 그녀는 여전히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놓았다가는 또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아이를 품에 꽈 껴안았다.“엄마, 우유.”이유영의 침대로 돌아온 월이는 순간 자신의 안전감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이유영이 월이에게 샤워를 해준 뒤 꼬맹이는 습관적으로 침대에서 한 바퀴 굴렀다. 그러고는 두 눈으로 이유영을 망연하게 쳐다보았다.마치 물안개가 낀 것만 같은 두 눈은 정말 귀엽기 그지없었다.이유영은 제일 빠른 속도로 아이에게 우유를 내려주었다.“우리 월이.”이유영은 직접 월이에게 먹여주려 했지만, 꼬맹이는 젖병을 안고서 혼자서 꿀꺽꿀꺽 먹기 시작했다. 정말 배고파 보였다.게다가 아이가 살이 많이 빠진 것을 보니 요 며칠 강이한의 곁에서 무조건 제대로 밥을 안 먹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알 수 있었다.이런 생각이 들자 그녀의 눈빛은... 날카롭고 위험하게 변했다. 하지만 월이가 곁에 있으므로 해서 그녀는 순간 또 기를 줄였다.‘요 며칠 월이도 엄청나게 고달프게 지낸 거 같은데. 그래서 저녁에 잠도 제대로 못 잔 건가?’이유영의 품에서 비비적거리다가 월이는 바로 잠이 들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고개를 숙인 순간 마음이 짠하고 아팠다.왜냐하면, 월이의 작은 손은 그녀의 잠옷을 꽉 붙잡고 있었다... 전에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러니 지금 월이는 아무리 잠들었다고 해도 엄청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온밤 동안, 이유영은 몸을 뒤척이며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이유영은 그저 그렇게 월이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아이의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그리고 새벽이 되었을 때 겨우겨우 눈을 감았다. 다들... 너무 피곤했다. 요 며칠 동안 정말 적지 않게 고생했다.그녀는 쭉 아침 10시까지 잤다. 그러다가 꿈에서 놀라 번뜩 일어났다.“아...”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이유영은 자기가 아직도 밖에서 아이를 찾고 있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소은지의 헌없이 아름다운 기질은 난초에 못지않았다.강렬한 눈빛과 새빨간 입술, 게다가 더없이 아름다운 와중에 엄숙함도 병존하였다.이유영이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은지야.”소은지는 정신을 되찾고 고개를 돌렸다.이유영이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네가 여기에 웬일로 왔어?”두 사람은 습관적으로 손을 한데 잡았다.그러고는 같이 자리에 앉았다.“아이를 찾었어?”소은지의 말투에는 온통 이유영에 대한 관심과 애틋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도 이유영과 강이한이 일을 이 지경까지 크게 벌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응.”“그 소식들은 다 진짜야?”비록 기사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소은지는 엔데스 현우한테서 대충 사실의 경과를 알게 되었다.‘강이한이 자신의 아이로 한지음의 아이를 구할 생각까지 한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이유영은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여있는 찻잔을 들어 차를 몇 모금 마시고 나서야 겨우 가슴속의 답답함을 억누를 수 있었다.말이 없는 이유영의 모습을 본 소은지는 사실이 정말... 엔데스 현우의 말대로라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었다.“너랑 그놈은 정말 지긋지긋한 악연이야!”소은지는 한숨을 내쉬었다.감정의 일에 있어서 소은지는 예전에 아주 단호했다.그녀는 예전에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어 거지’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만약 집착 때문에 자신을 불쾌하게 하는 감정이라면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엔데스 명우를 만난 뒤부터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어떤 집착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럼 넌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소은지가 또 물었다.어찌 됐든 지금의 상황을 놓고 봐서 강이한더러 주동적으로 이유영을 멀리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말이 안 되었다.이런 상황에서 이유영의 결정이 관건이었다.“은지야.”“응?”“현우 씨한테 알려줘. 나머지 반쪽짜리 서류가 지금 강이한의 손에 있다고!”그 순간 이유영은 아주
그런 와중에도 강이한은... 여전히 월이를 갖고 이온유에게 수술해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이 말을 들은 소은지는 깜짝 놀랐다.“그렇게 어린아이가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데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고?”그 순간 소은지는 이유영이 강이한을 미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조금 전 이유영이 반쪽짜리 서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을 때 소은지는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너무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하지만 이유영의 말을 듣고 난 뒤 소은지는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 어머니로서... 자신의 아이가 그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거기에다가 주모자가 낯선 사람이어도 참을 수 없는데 더구나 아이의 친부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하니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이 더더욱 미웠다.지금 그녀는 정말 강이한이 확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반쪽짜리 서류에 관한 정보를 소은지에게 넘겨주었다.“그 인간이 퍽이나 조급해하겠어.”소은지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피식 냉소를 지었다.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놈이 조급해하는 것은 한지음의 딸밖에 없어. 그런데 우리 월이를 걱정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그랬다.이유영이 보기에는 이토록 가혹한 조건 앞에서 강이한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이온유밖에 없었다.3일이란 시간 동안 월이는 낯선 환경과 사람들 때문에 누가 뭐래도 밥 먹는 것을 거부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일지라도 강이한은 월이를 무시하고 온통 ‘어떻게 해야 순조롭게 이온유에게 수술을 시켜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소은지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졌다.“강이한은 참 죽어도 싼 놈이야!”그랬다.아마 이 순간 그 누구도 강이한을 불쌍히 여길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정말 불쌍한 사람은 미운 데가 있는 법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그랬다. 지금이 꼭 이런 상황이었다.강이한의 불쌍함은 정말 얄밉기 그지없었다.“강이한이 좋은 아버지 행세를 한다고 해서 그를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
소은지는 이유영의 손을 잡고는 그녀의 손바닥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이유영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예전에도 그랬다.매번 이유영이 상처를 받았을 때면 소은지가 아무 말 없이 이유영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너랑 엔데스 명우는 지금 어떤 상황이야?”이유영은 살짝 걱정되어 물었다.어찌 됐든 이유영은 소은지가 도대체 왜 엔데스 현우랑 한편이 되었고 또 엔데스 명우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점에 대해서 그녀는 정말 소은지가 걱정되었다.말이 끝나자마자 소은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새빨간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사람에게 아주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의미심장한 웃음은 마치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일단 폭발하게 되면... 이 속에 엮인 수많은 사람이 다 같이 무너지게 될 것만 같았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이유영은 소은지의 눈빛에 숨겨진 예리함 때문에 충격받았다. 그녀는 소은지의 이런 면을 종래로 본 적이 없었다.예전에 직장에 있었을 때 소은지는 처사가 단호하고 깔끔한 성격이었다.그리고 오늘의 이런 예리함과 한데 잘 어울려서 사람에게... 그녀가 곧 태생부터 여왕인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더구나 오늘의 그녀는 엄청난 지위를 가지기까지 했다.소은지는 마치 파리에 딱 맞게 태어난 사람 같았고 천생이 엔데스 가문의 여자가 될 사람인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 순간 이유영은 이런 소은지를 보면서 걱정이 끊임없이 생겨났다.소은지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놈? 아무래도 2년이나 되는 빚이니 천천히 청산해야 하지 않겠어?”“설유나는?”설유나 때문에 소은지는 방법을 써서 엔데스 현우랑 손을 잡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설유나는 소은지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설유나?’“그놈은 지금 그 여자의 곁을 잘 지켜주고 있어.”소은지는 사람을 붙여 시시때때로 설유나를 감시하고 있었으며 엔데스 명우가 병원을 떠나기만 하면 소은지에게 연락이 오곤 하였다. 그리
소은지가 떠난 뒤 이유영은 걱정이 태산인 얼굴을 하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소은지의 일은... 줄곧 그녀의 마음속 응어리였다.주방에서 임소미는 월이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꼬맹이는 아주 반듯하게 임소미의 품에 안겨있었다.밖에서 돌아온 여진우는 이유영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결국, 이유영은 여진우와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 여진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용건이 있어?”“그 사람... 죽었어?”이유영은 냉랭하게 물었다.그 사람은 강이한을 말한 것이었다.비록 어젯밤에 이성을 잃었다고 하지만 이유영은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여진우는 흠칫하였다.“넌 그 사람을 닭으로 생각하는 거야!?”“...”‘닭? 이게 무슨 비유야?’여진우는 아주 바빠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것도 무슨 일이 있는 것 때문인지 지금 책장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이유영에게 말했다.“강이한 같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이유영의 힘이 별로 세지 않은 것을 보았으니 여진우도 발길질을 몇 번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별문제가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이유영의 행동은 그저 강이한에게 상처를 낸 정도뿐이었다.말이 끝나자 여진우는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후로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보아하니 너는 정말 그 사람을 무척이나 미워하는구나.”강이한에 대한 그녀의 미움은 그가 괜찮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눈빛에서... 증오의 감정이 끊임없이 차 넘치는 정도였다.“별일 없는 거야?”‘참 명줄이 끈질기기도 하네!’여진우는 대답했다.“그런데 이번 일을 겪었으니 그놈은 아마 아이를 데리고 서주로 갈 거야.”“...”‘서주로 간다고!?’강이한은 더는 파리에 남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서주 쪽의 상황도 지금 몹시 긴박했기에 그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파리에 남게 되면 이유영이든 아니면 이온유이든 그는... 그들을 대처할 방법이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
이유영은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이 바로 알프산 방문 때문이라는 사실도.알프산을 다녀온 후 이유영의 시력은 점점 더 악화하였고 자극을 받은 듯한 이상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강한 빛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갈 생각을 했니?”임소미는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이제 이유영이 어디를 가든 임소미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장소가 이유영의 눈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엄마, 정말 별일 아니에요...”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말하지 마!”임소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진심으로 말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도 의사가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눈 덮인 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러다 이번에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이유영 자신도 몰랐다.“잊었다고? 그 잊음 때문에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임소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임소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엄마, 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네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랄 뿐이야, 알겠니?”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이유영은 그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이유영은 손을 뻗어 임소미의 가냘픈 허리를 감쌌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임소미는 여전히 이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임소미는 평소에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알겠어요, 엄마. 화 풀어요, 네? 저, 수술받을게요.”“유영아...”“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네?”임소미의 품에 안긴 이유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임소미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안쓰러웠다.임소미는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우지는 빠르게 물을 닦아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운 물기는 이유영에게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다.언젠가 이유영의 두 눈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 공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서서히 퍼져 나왔다.아침에 물 한 잔을 쏟은 이후, 이유영은 하루 종일 우지와 우현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이제 옷장 속에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의 옷들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나머지 색깔들은 이미 모두 희미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다.아침 식탁.우지는 조심스럽게 죽을 이유영 앞에 놓으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아직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이유영이 숟가락을 집으려고 할 때, 우지는 바로 숟가락을 건네주었다.“고마워요.”이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센 혼란이 몰아치고 있었다.가슴은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다.그때, 임소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엄마.”“왜 아침 같이 먹으러 오지 않았어?”“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 먼저 드세요.”“그럼 오전에는 꼭 돌아와서 월이랑 같이 놀아 줘. 네가 이곳에 안 온다고 하면 월이가 속상해할 거야.”“네, 알겠어요.”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가슴이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월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전화를 끊고 난 후.이유영의 세계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이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진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만약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이유영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하셨을까?다행스러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아침 식사 후.이유영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백산 별장으로 돌아갔다.임소미는 이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날, 한지음이 떠난 후, 이유영은 손으로 배를 감싸안고 한동안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을 떠난 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당시의 이유영에게는 눈을 뜨면 온통 어둠뿐인 날들이 이어졌고 어떤 처참한 미래가 닥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만 같았다.강이한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확고했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알게 되는 순간, 그 용기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이유영은 두려웠고 미칠 것 같았다.자기 삶이 아무리 비참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유영이 강이한의 결정을 기다리기도 전에, 이유영 스스로 선택을 내리기도 전에 모든 것이 한 차례 대화재로 끝이 났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한지음을 용서하라고 했다.한지음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이유영을 위해 희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강이한은 결코 알지 못했다.그것이 오직 자신의 문제였다면, 어쩌면 모든 것을 잊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아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용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이유영이 아이를 위해 온갖 고통을 겪었던 그 마지막 시간 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다.한지음이 이유영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든 한지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네, 좋아요! 사모님께 가서 바로 말씀드릴게요. 사모님께서 아가씨가 수술을 빨리 받겠다고 결정하신 걸 들으시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우지가 기쁜 얼굴로 방을 나가는 모습을 본 이유영은 그저 고개를 천천히 저을 뿐이었다.그날 밤.이유영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이유영에게조차 쉽지 않았다.오랜 세월 지켜온 신념들이 의사의 진단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어두운 방 안.어스름한 방안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유영을 응시하고 있었다.차가운 손가락 끝이 이유영의 목 아래 울퉁
의사가 이유영의 상태를 면밀히 점검했다.그 결과, 백산 별장과 반산월은 조명에 한층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임소미와 정국진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조명을 다시 교체했다.밤이 되면 이유영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낮에도 햇빛이 강하면 외출을 엄격히 제한했다.임소미가 이유영의 눈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눈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이 신중히 조율되었다.백산 별장에 밤이 찾아왔다.사람들은 모두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느꼈고 시야가 흐릿한 이유영조차도 조명이 이전보다 더 어두워졌음을 느꼈다.“엄마, 이 정도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미 제대로 볼 수 없는걸요.”이유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유영이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지금의 이 조명은 이유영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하지만 임소미는 딸의 말을 단호히 받아쳤다.“나도 알아. 이 조명이 사람들한테 너무 어둡게 느껴질 거라는 거. 그래도 강한 빛이 네 눈에 더 큰 손상을 줄 수도 있잖아.”임소미는 단호히 말했다.“...”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조명은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눈에 자극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됐어. 엄마 말대로 해. 네 수술이 성공하기 전까진 이 조명 상태 그대로 유지할 거야.”임소미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이유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알겠어요.”이유영은 엄마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임소미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이유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그날 밤.이유영이 반산월로 돌아왔다.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에게 말했다.“조명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이제 아가씨의 눈에는 크게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안경은 꼭 착용하셔야 합니다.”“안경이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예전엔 눈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안경을 굳이 쓰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졌다.
임소미의 가슴은 비수로 찔린 듯 아팠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끝에 다시 찾은 딸이니,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조금 전, 의사가 임소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이유영 씨가 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의사의 한마디는 그녀가 실명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했다.“정말 강이한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어!”임소미는 울먹이며 감정을 터뜨렸다.강이한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이 눈이 이렇게 된 이유는 모두 강이한이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을 감옥에 넣었기 때문이다.만약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유영도 그 끔찍한 화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임소미는 지금껏 이유영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딸의 흐릿해진 눈은 매 순간 그녀에게 그날의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이유영은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던 걸까?“그만하세요, 엄마.”강이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유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강이한에 대한 이유영의 감정은 이제 미움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는 몰랐다.이유영 역시 한 아이의 엄마였다. 자식이 상처받을 때 부모가 느끼는 그 분노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바로 그때도 이런 감정이었다.강이한이 아이와 관련된 일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유영은 그의 목을 비틀고 싶은 심정이었다.더군다나 임소미는...어릴 적부터 이유영과 함께하지 못했기에 딸이 이런 상처를 입은 걸 본 순간 느꼈을 분노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수술하면 안 되겠니?”임소미의 목소리는 떨림으로 가득했다.그래, 수술.이 눈은 어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그 끔찍한 화재로 인해 이유영의 두 눈은 너무나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기본 재활치료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오직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엄마, 수술은 저한테도 위험
박연준은 전기봉 하나로도 이미 머리가 아팠다.그런데 이유영까지 그에게 지나치게 냉혹하게 굴었다.이유영의 눈에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강이한에게 비친 이유영의 모습은 모든 것을 잃고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이온유가 집으로 돌아왔다.아이에게 놀고 싶다는 욕구는 본능이었다. 퇴원 후 며칠간 쉬고 나니 매일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아빠.”온유는 어느새 훌쩍 자란 모습이었다.온유가 방으로 들어온 것을 본 강이한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며 물었다.“어디 갔다 왔어?”“놀이공원이요!”놀이공원 이야기가 나오자, 온유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그곳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아마도... 어릴 적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에야 놀이공원을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이번 달은 놀이공원은 쉬자, 알겠지?”“네.”온유는 작은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아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아이였다.놀기 좋아하면서도 말을 잘 들었다.강이한은 온유를 안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몸이 이제 막 나았으니,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해.”“정 아저씨가 한적한 곳만 골라 데려갔어요.”온유는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공공장소는 어디든 위험이 도사릴 수 있었다.한 차례 병을 겪고 난 뒤, 강이한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온유가 그런 곳에 가는 것이 늘 불안했다.“온유야.”“네, 아빠.”“아빠가 며칠 동안 출장을 가야 해. 집에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겠지?”“아빠는 온유를 안 데려가요?”아빠가 출장을 간다는 말에 작은 아이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그도 그럴 것이.이온유에게 있어서 강이한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그런 아빠가 집을 떠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서운함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었다.강이한은 말했다.“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네 몸은 이제 막 나아졌잖아, 응?”“네.”작은 아이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꿈도 꾸지 마!”강이한은 신지수에게 냉정히 잘라 말했다.신지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말 차갑기 짝이 없네. 그 연회에서 내가 너에게 첫눈에 반했을 땐, 최소한 미소 하나쯤은 보여줄 수 있었잖아.”첫눈에 반했다고? 신지수가? 신씨 가문의 사람이 무슨 낭만적인 감정 따위를 가질 여유가 있겠는가? 라이터가 ‘딸깍’ 소리를 내며 불꽃을 피웠고 강이한은 담배를 천천히 피워 물었다. 신지수는 담배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신지수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연서가 당신들 사이의 깊은 골이라는 건 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안 그래?”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연서라는 존재는 실재하는 사람이었다.그렇기에 연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늘 잠재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진실이었다.신지수의 말이 끝나자, 강이한은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신지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두 사람 사이엔 이제 어떤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아 보여.”“신지수!”강이한의 목소리가 더 깊어지고 무거워졌다.강이한의 표정에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신지수가 말했다.“네가 이유영의 딸을 이용해 한지음의 딸을 구하려 했다는 소문을 들었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신지수가 이 사실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비록 오랜 세월 서주에 있었지만 그래도 강이한은 이유영을 꽤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런데 굳이 왜 한지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강이한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닥쳐!”그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강이한의 몸에서 냉랭한 기운이 흘러나왔다.신지수는 비아냥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강이한, 사실 이유영도 너한테 그렇게 중요한 존재는 아니지, 그렇지?”“언제부터 이유영과 친한 사이였어?”신지수가 이유영의 이름을 너무나 친근하게 부
“그때, 너는 왜 한 번도 멈출 생각 하지 않았는데?”과거에도, 이번 생에서도, 홍문동 사건에서도 강이한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이번 생에서 이유영을 감옥에 보낸 일도 마찬가지였다.심지어 월이를 이온유를 구하는 도구로 이용하려 할 때조차 그는 멈출 줄 몰랐다.그런데 그런 강이한이 무슨 자격으로, 무슨 염치로 이유영에게 멈추라 말할 수 있는가?“만약 그 여자였대도 넌 똑같이 행동했을까?”그 여자는 연서였다.공기가 한순간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이한의 숨소리가 순간적으로 거칠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왜 말이 없어?”강이한의 불규칙한 호흡을 들으며 이유영의 목소리는 더욱 차갑게 내려앉았다.전화기 너머, 강이한의 온몸은 긴장으로 굳어갔다.만약 이유영이 연서였다면, 한지음과 이온유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까?“안 그랬을 거야, 맞지?”강이한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유영은 차가운 조소를 담아 말을 이었다.강이한의 마음은 폭풍 속 배처럼 거칠게 흔들렸다.두 사람은 전화기 너머로 대치하며 날 선 긴장감을 이어갔다.이유영이 말했다.“강이한, 너 정말 잔인하다.”“유영아...”막상 강이한이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진짜 잔인한 건가?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잔인함 이상의 존재였다.이유영이 차갑게 말했다.“다시는 전화하지 마. 네가 어떤 말을 해도 이제는 들을 마음이 없으니까.”이 말을 끝으로 이유영은 전화를 끊었다.세상이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이유영의 온몸은 긴장으로 굳어졌고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방금 전 통화에서 이유영이 던진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약 연서였다면, 그 일들이 벌어졌을까?’이유영은 강이한의 주저함과 침묵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연서라는 여자가 강이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한편, 전화기 너머의 강이한.강이한의 눈빛은 복잡한 감정으로 뒤엉켜 흔들리고 있었다.이유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