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재결합해!”“당신 꿈도 꾸지 마!”강이한이 재결합 얘기를 꺼낸 순간, 이유영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강이한이... 재결합을 제안하다니!? 이 남자도 참 웃기네. 허허.’강이한은 이유영을 바라보았다.“그래. 그럼, 서재그룹이 파산하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너...!”이유영은 열이 받았다!전생이든 이번 생이든, 이유영은 강이한이 뼛속까지 무지막지하게 얘기가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었다.“왜? 싫어?”“당신도 알잖아. 우리 사이는 진작에 불가능해!”이유영이 이혼을 제기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강이한은 지금 서주의 젊은 주인일 뿐만 아니라 신씨 가문의 약혼녀까지 두었다.근데 지금 여기서 이유영에게 재결합을 제안하다니!?이유영은 이 상황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유영아, 우린... 하나잖아.”강이한의 말투는 그윽했다.“...”‘하나라고!?’사람들은 부부가 결합하는 순간부터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하지만 이 두 사람의 하나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다른 조건으로 바꿔봐!”화를 낸 뒤 이유영의 분노는 오히려 가라앉았다.강이한은 이유영의 굳건한 태도를 보며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난 다른 조건은 없어!”맞는 말이었다.강이한은 생을 건너서 온 것이었다. 바라는 건... 오직 이유영 하나뿐이었지 다른 바라는 건 없었다.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냉랭하게 강이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그럼, 나도 이제 더 이상 당신과 할 말이 없어!”이 말만 남기고 그녀는 뒤돌아서 자리를 떴다.하지만 두 발짝 걸어 나갔을 때 뒤에서 강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이유영, 내가 만약 작정하고 정말 서재욱을 건드린다면 당신이 로열 글로벌을 다 쏟아붓는다고 해도 지켜낼 수 없을 거야.”“...”이유영은 이 말에 마음이 썰렁해졌다.제 자리에 선 채 저도 모르게 멈칫거렸다.강이한이 한 말은 사실인 게 분명했다!강이한이 서주에서의 신분을 이유영도
강이한은 온몸의 피가 차가워지는 것만 같았다!한참 동안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정이 왔을 때 이유영은 이미 떠났다. 이정은 안색이 별로 안 좋은 강이한을 보며 말했다.“도련님.”강이한은 조금 정신을 되찾았지만, 온몸은 여전히 오한이 났다!입을 여는 순간 그의 말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무거움과 고통이 담겨있었다.“네가 말해봐. 난 지금 이유영을 강요하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더 있어?”‘그래. 무슨 방법이 더 있을까?’이유영은 전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만 유독 강이한에게는 쌀쌀하게 대했다. 심지어 그녀와 같은 방을 쓰는 것은 지나친 욕망이 되었다.강이한은 그녀를 강요하는 것 외에 그녀를 자기 곁에 남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강이한은 평생 이토록 무기력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유영에 대해...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사랑하지만, 그녀를 다치게 했다! 근데도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게다가 지금 그녀를 곁에 남게 하는 것을 바라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녀를 해치는 방식으로 곁에 남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은 머리가 띵해 나는 것만 같았다!강이한과 서재욱, 원래 서로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이 지금은... 서로 물어뜯고 있었다.그 흉악한 정도는 멀리 떨어져 있는 청하시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지금 파리에 덩달아 파동을 일으키는 지경이었다.정국진은 이유영을 보며 물었다.“강이한이 왜 갑자기 아무 상관 없는 서재그룹을 적대시하는 거야?”정국진도 이미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그동안 기분이 제일 좋은 건 정국진과 임소미 두 사람이었다. 집에 경사가 났으니, 이유영도 기분이 좋았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소은지의 일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강이한이 이런 짓까지 벌이니 이유영은 정말 미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그게, 이것도 다 저 때문이에요!”이유영은 억울하다는 듯이 정국진을 바라보았다.정국진은 일이 이유영 때문에 생겼다는 소리를 듣더니 순간 표정이
아이의 정체를 강이한에게 알려주자니 이유영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재결합하는 건 더욱 싫었다!하지만 현재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얼른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쨌든 서재욱은 무고하니까...“제가 생각해 보고 알아서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내뱉었다.정국진의 눈 밑은 살짝 어두워졌다.따라서 이유영의 눈 밑도 몇 점 더 그윽해졌다.“유영아.”“네?”“너랑 강이한 사이의 감정 문제는 그 누구도 너희들을 도울 수 없어!”감정 문제는 결코 당사자들이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이 점에 대해 이유영도 잘 알고 있었다.지금 외삼촌과 외숙모는 친정 부모라고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보호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 문제에서, 이유영 자신 빼고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었다.이유영은 정말 속으로 짜증 나 죽을 것만 같았다.아이를 파리로 데려오는 것은 그녀가 예전부터 꿈꿔온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파리로 데려오기만 하면 아이를 곁을 잘 지켜줄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지금 일이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다.귀찮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에 그녀는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아이의 곁을 지켜줄 시간이 나지 않았다!이 모든 것은 다 강이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저도 알고 있어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애써 가슴속의 짜증을 꾹꾹 눌렀다.외출할 때, 이유영은 아이를 안고 있는 임소미의 안색이 훨씬 좋아진 것을 보았다...진실을 알고 난 후 2년 동안, 외삼촌과 외숙모 두 사람은 정말 고달픈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지금 일이 다 잘 풀렸다.이유영이 집에 있고, 여진우도 되찾았으며 외손녀도 곁에 있으니, 임소미에게 있어서 지금이 최고의 삶이 아닐 수 없었다.“엄마, 엄마!”꼬맹이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안아달라고 했다.아이를 본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더욱 만감이 교차했다.“엄마.”“어디 나가려고?”“네.”“요즘 회사에도 안 나가는 것 같더니, 도
분명한 건, 여진우가 있으면 이유영을 보호해 줄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이었다.이것은 이유영의 키와도 관련이 있었다. 전에 임소미와 정국진은 아담한 이유영을 보면 자꾸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아무리 그녀가 독립적으로 로열 글로벌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시시때때로 겁을 먹곤 하였다.지금 여진우의 복귀는 마치 그들에게 안정제를 놓아준 것처럼, 그들이 없어진다고 해도 여진우가 이유영을 잘 보호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아직 제대로 걷진 못하네요.”바닥에 내려놓은 월이가 뒤뚱뒤뚱하는 것을 보니 이유영은 그저 자기 딸이 너무 귀엽게만 느껴졌다.임소미가 말했다.“아직 잠이 다 안 깨서 그래.”“오. 그래요.”임소미의 대답을 듣자, 아이를 바라보는 이유영의 눈빛은 더욱 부드러워졌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이유영은 아이의 곁을 많이 지켜주지 못했다.“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금방이면 돌아와요.”“일찍이 돌아와. 지금 월이가 얼마나 너를 찾는데. 널 못 보면 또 안 자겠다고 난리 일 걸.”“네. 알겠어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서 나갔다.도원산에서, 이온유는 놀이동산의 한쪽에서 놀고 있었고 강이한은 옆의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손에 든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이유영은 바람처럼 가뿐한 아이를 딱 한 눈 보고는 눈길을 돌렸다.“오늘 학교에 안 가?”이유영의 말투는 별로 좋지 않았다.집사는 이에 깜짝 놀랐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재미나게 노는 이온유를 바라보며 눈 밑에는 일말의 연민이 스쳐 지나갔다.“사모님, 오늘 주말입니다.”비록 집사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그 속에는 분노가 조금 담겨있었다.이유영도 그걸 알아들었다.전에 반산월에 있을 때도 비록 우지와 우현은 이유영과 한지음 사이의 원한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온유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도원산의 사람들은 이온유를 더 좋아할 게 뻔했다.그래서 이유영의 싸늘한 말
이유영을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빛에는 분노가 새어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이유영!”“내 말이 진짜야. 난 저 애랑 같이는 못 지내.”“너...”강이한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아무리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아이의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분노는 이미 강이한의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아 올랐으며 이성을 태워버리기 전이었다. 그는 이온유를 보며 말했다.“온유야, 먼저 가서 집사 할아버지랑 같이 놀아.”꼬맹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뒤돌아 서기전, 이온유는 아주 억울한 눈으로 이유영을 한눈 보고는 부리나케 도망쳐버렸다.이온유의 뒷모습은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아이가 집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강이한은 다시 눈길을 이유영에게 돌렸다. 그의 눈 밑에는 넘쳐날 것만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유영아. 너 온유한테 그렇게 대하면 안 돼...”비록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이유영에게 말할 때 강이한의 말투는 여전히 참고 있었다.“왜 안 되는데?”“너와 지음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은 온유와 상관이 없어. 게다가 지음은...”여기까지 말한 뒤 강이한은 잠시 멈칫했으며 이유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마음 아픔이 역력했다.이유영은 말없이 강이한을 바라보면서 그가 뒤의 얘기를 마저 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강이한은 이미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모든 것은 이온유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생의 이유영은 진실을 알 리가 없었다.지난번 생에서 마지막에 한지음이 이유영을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한지음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영은 다 알 길이 없었다!이번 생에는 모든 것들이 변했다!모든 궤적이 변했기에 이번 생에 한지음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떴으며 유일하게 남긴 건 이온유 이 아이 하나뿐이었다.강이한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 온유는 고작 아야.”“내 말이 사실이야!”이유영은 정말로 이온유와 같이 지낼 수 없었다. 동시에 이것은 강이한에
이유영은 자기가 무슨 정신으로 백산 별장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임소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정국진이든 아니면 여진우든, 밖에 어떤 난리가 나도 두 사람은 아주 암묵적으로 임소미에게 얘기하지 않았다.“엄마.”“왔어?”이유영의 표정이 괜찮은 것을 보고 임소미도 안심이 되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네!”사실 이유영은 마음속은 이미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임소미가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보니, 그녀도 마음속의 번뇌들을 열심히 거두었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주방으로 가서 내가 월이를 위해 끓인 음식이 잘 되었는지 봐줘.”“아, 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월이는 이미 이유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 방면에 있어서 임소미는 정말 지극히 세심하게 월이를 돌보았다.이유영은 주방으로 가서 도우미에게 당부하고는 서재로 갔다.서재에는 여진우가 있었다.“아빠 어디 나갔어?”“응.”“사태가 많이 심각해?”이유영은 앞으로 다가가 여진우에게 물었다.전화로 강이한이 여진우의 회사까지 손을 댔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정말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강이한은 일단 미치기만 하면 폭풍우처럼 휘몰아쳤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변했다.“네가 신경 써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서재욱 씨 쪽이야. 그분 이미 파리로 오고 있대.”서재욱이 파리로 온다는 말을 들으니, 이유영은 골치가 더욱 아팠다.여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내가 알기론 서재욱은 아직도 자기가 왜 강이한의 표적이 되었는지 모르는 것 같던데!”“그럼 너는?”“강이한은 아마 내 정체를 모는 것 같아.”“...”‘이런 미친놈!’이유영은 지금 무슨 말로 강이한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강이한은 이유영을 핍박하는 것이 분명했다.지금의 이유영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네가 내 얘기를 명심했기를 바라.”여진우는 이유영을 보며 그윽하게 말했다.“나도 좋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근데 그 사람이 좋은
“너도 밥 먹어. 내가 할게.”임소미는 이유영에게 양보해 줄리 없었다.“...”정국진이 말했다.“네 엄마는 지금 네가 자기랑 일 뺏는 거 싫어해!”‘그래요!’이유영은 임소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임소미가 이렇게 나올수록 정국진은 마음이 더 켕겼다. 정유라가 있고 난 후, 두 사람은 원래 아이를 한 명 더 낳고 싶었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자기에게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을 생각하자 정국진의 눈 밑에는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요 며칠 사이에 그는 이미 그 사람들을 산산조각 나게 짓부쉈다.이유영도 소식들을 전해 듣긴 했다. 양씨 가문의 무덤들이 다 뒤집어엎어졌고 아주 소름이 돋을 정도로 미친 짓이라고...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이유영은 월이를 안고 산책했다. 꼬맹이는 그녀의 품에서 꾸물꾸물하면서 엄마를 부르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어여쁜 꽃을 가리켰다.“꺾으면 안 돼. 꺾으면 금방 시들어져서 안 예뻐.”꼬맹이는 이유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꽃, 꽃.”한 글자인 단어를 아주 정확하게 내뱉었다.이유영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아이에 대한 총애를 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꽃을 꺾어서 월이에게 주었다.꼬맹이는 꽃을 손에 쥔 순간, 그것을 문질러 망가트렸다.“...”‘아이고 월이야, 뭐라고 말하면 좋지?’저녁에 이유영은 직접 월이에게 샤워를 해주었다. 월이가 있고 난 뒤, 이유영은 육아 방면에 관한 책과 관련 영상을 적지 않게 찾아보았다.하지만 매번 영상에서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는 것을 볼 때마다, 이유영은 마음이 짠했다.많은 육아 영상에서 말하기를, 아이가 2살이 되기 전까지 엄마가 아이의 곁을 지키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였다.그럼, 아이에게 안전감을 많이 줄 수 있다고 했다.게다가 엄마와 아빠가 각각 아이에게 가져다주는 영향이 다르다고 하였다. 장시간 동안 엄마와 같이 자란 아이는 엄마가 얼마나 많을 사랑을 퍼준다고 해도 어딘가에서 모자라는 부분이
이유영은 자기 몸에 올라와 있는 월이를 보며, 정말 강이한을 야외에 버려 늑대들의 먹이로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유영아, 너 온유에게 그렇게 대해면 안 된다니까!”전화 안의 강이한의 말투는 더욱 심각해졌으며 모든 인내심은 순간 얼어붙었다.마치 지금 이유영이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 무슨 무서운 일이 발생할 것만 같았다.“말했잖아. 난...!”“엄마. 아.”월이는 웅얼거리면서 작은 손으로 이유영의 핸드폰을 뺏어간 후 마구 누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이유영은 전화를 끊어버린 꼬맹이를 보며 입꼬리가 씰룩거렸다.“아이고 내 딸, 참 장하다!”이유영은 월이를 안고 뽀뽀를 하였다. 그녀는 꼬맹이가 언제 핸드폰을 뺏는 것을 배웠는지 몰랐다. 어쩐지 그동안 임소미가 퀘벡에 있으면서 핸드폰을 별로 안 들여다봤다 했다니, 다 월이가 핸드폰을 뺏어서 놀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아이의 눈 각막은 유난히 약하기 때문에 당연히 전자제품을 많이 보면 안 되었다....전화 반대편의 강이한은 이미 화가 치솟아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그의 눈 밑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했으며 독기가 가득 찼다.“이유영!”강이한은이를 꽉 깨물며 이 세글자를 내뱉었다.‘서재욱의 딸이랑 같이 있으라고 도원산에 올 시간이 없다는 거지? 좋아! 참 좋아.’강이한은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으며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도련님.”...이날 밤, 이유영은 월이를 안고 아주 푹 잤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월이의 양 갈래머리는 이미 하룻밤의 모험을 거쳐 흐트러졌다.까치집 같게 생긴 꼬맹이의 머리를 보며 이유영은 아주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엄마.”월이는 몸을 뒤집어 일어나 앉고는 몽롱하게 이유영을 쳐다보았다. 이유영은 웃으며 꼬맹이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 여기에 있어.”“우유.”“아, 그래. 알겠어.”이유영은 바로 몸을 뒤척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꼬맹이에게 우유를 타왔다.월이는 우유를 받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서주가 이런 상황인데도 강이한은 굳이 파리로 찾아갔다.이유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사건 이후, 아이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정은 깊게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를 보셨습니까?”소월이...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유영 품으로 달려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꽉 찼다.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피워 물며 무겁게 말했다.“그 사람... 소식은 들었어?”강이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에 관해 묻기 시작하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염 선생님은 지금 우천에 머물고 있습니다.”“우천?”“네, 주소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은거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염 선생님은 명망 높은 의학자였다. 그는 70세에 서주 국제병원에서 은퇴한 후 행방을 감추었는데 그의 진료는 항상 예약이 어려웠으며 그의 손을 거친 환자는 어떤 이유로 실명을 겪더라도 결국 시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그는 한지음을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염 선생님이 이미 은퇴한 후라,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드디어 찾아내게 되었다. 강이한은 이유영과 함께 전생을 경험했기에, 이유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었다. 수술을 계속 미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수술이 실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평생 어둠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이유영은 이미 한 번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무력함을
남자의 따뜻한 손끝이 이유영의 눈가를 살며시 스쳤다.아주 조심스럽게...이유영은 마치 그 온기가 자신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여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말로는 상황이 심각하대. 이번엔 제발 말 좀 들어줘, 응?”“응.”그동안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유영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유영은 전생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의 공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이유영은 다시 과거의 어둠 속으로 빠지기 싫었기에 항상 핑계를 대며 수술을 미뤘다.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눈 수술은 본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실패라도 한다면 이유영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그 고통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었다.그렇기에 이유영은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았다.그 어둠은.마치 악마의 동굴과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유영아.”“응?”“수술 전까지는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가져봐. 그러면 수술에도 좋을 거야.”여진우의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그는 마치 곧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였다.여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유영이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왜?”여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자, 알겠지?”이유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진우는 잠시 멈칫하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유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씨 가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상의 수술 환경을 준비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지금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다.강이한, 한지음, 이온유... 이들은 모두 이유영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유영은 이런 고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
이유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허리에 전해진 강한 힘이 이유영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익숙한 기운이 스며들며 이유영을 감싸안았다.중심을 되찾는 순간, 이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이한이었다.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와아아...”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유영의 차가운 눈빛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월이야, 월이야.”이유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엄마, 무서워요!”“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작은 아이는 두려운 목소리로 강이한을 보고 외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한은 아이의 입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나쁜 사람... 이의 기억 속 자신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그래, 이게 바로 그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존재가 남긴 기억이었다.“그래, 맞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어떤 나쁜 사람도 월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강이한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광경이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소란을 들은 하인들과 집사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강이한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이내 임소미와 정국진도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임소미는 강이한을 보자마자 적대감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여긴 왜 온 거야?”임소미의 말투는 한 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유영이를 좀 봐.”정국진이 임소미에게 말했다.임소미는 강이한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이유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 감정을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
이유영은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이 바로 알프산 방문 때문이라는 사실도.알프산을 다녀온 후 이유영의 시력은 점점 더 악화하였고 자극을 받은 듯한 이상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강한 빛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갈 생각을 했니?”임소미는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이제 이유영이 어디를 가든 임소미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장소가 이유영의 눈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엄마, 정말 별일 아니에요...”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말하지 마!”임소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진심으로 말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도 의사가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눈 덮인 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러다 이번에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이유영 자신도 몰랐다.“잊었다고? 그 잊음 때문에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임소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임소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엄마, 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네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랄 뿐이야, 알겠니?”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이유영은 그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이유영은 손을 뻗어 임소미의 가냘픈 허리를 감쌌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임소미는 여전히 이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임소미는 평소에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알겠어요, 엄마. 화 풀어요, 네? 저, 수술받을게요.”“유영아...”“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네?”임소미의 품에 안긴 이유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임소미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안쓰러웠다.임소미는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우지는 빠르게 물을 닦아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운 물기는 이유영에게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다.언젠가 이유영의 두 눈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 공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서서히 퍼져 나왔다.아침에 물 한 잔을 쏟은 이후, 이유영은 하루 종일 우지와 우현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이제 옷장 속에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의 옷들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나머지 색깔들은 이미 모두 희미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다.아침 식탁.우지는 조심스럽게 죽을 이유영 앞에 놓으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아직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이유영이 숟가락을 집으려고 할 때, 우지는 바로 숟가락을 건네주었다.“고마워요.”이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센 혼란이 몰아치고 있었다.가슴은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다.그때, 임소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엄마.”“왜 아침 같이 먹으러 오지 않았어?”“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 먼저 드세요.”“그럼 오전에는 꼭 돌아와서 월이랑 같이 놀아 줘. 네가 이곳에 안 온다고 하면 월이가 속상해할 거야.”“네, 알겠어요.”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가슴이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월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전화를 끊고 난 후.이유영의 세계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이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진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만약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이유영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하셨을까?다행스러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아침 식사 후.이유영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백산 별장으로 돌아갔다.임소미는 이유